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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나명석 조회수:85 / 분류 : 조직
제 신학자들의 신관
<신론 세미나 시간에 다룬 신학자들의 신관을 머리 속에 정리했습니다. 수필식으로 쓴 것입니다.>


1. Kant와 Hegel의 신관

Kant: 이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도덕법으로서의 하나님

Kant의 순수이성 비판에 의하면, 이성은 물 자체(Ding an sich)를 인식할 수 없다. 여기에서 물 자체가 하나님이라면, 감성과 오성을 통하여 최고 진리를 판단하고 추론하는 이성은 하나님을 인식할 수 없다. 그래서 Kant는 자신의 실천이성 비판에서, 하나님과 이성을 실천적인 관계로 규정한다. 즉 Kant는 하나님을 인간 행위의 정언적 명령(도덕법)으로서 요청한다. 따라서 Kant에 의하면, 실천 이성은 정언명령으로서의 하나님과 실천적으로 관계한다.
그러므로 칸트의 인식론에서의 신학적 파생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이론적 이성이 파악할 수 없는, 실천적 이성이 요청으로만 전제할 수 있는 하나님의 초월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영향받은 신학에서 하나님은 절대자, 초감각적 관념으로서 신앙의 대상일 뿐이지, 순수 이성의 인식대상은 아니다. 그러므로 칸트에게 영향받은 신학은 이원론적 구조를 형성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세계는 분리되었고, 아무런 관계 없이 존재하게 되었다. 이러한 칸트의 인식론은 키에르케골과 바르트의 신학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칸트에게서의 신관은 이성을 초월한 하나님은 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이 땅 위에 존재할 뿐이다. 여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을 말할 수 있다면, 다만 인간의 행위의 정언적 명령, 곧 도덕법으로서 하나님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칸트에게서의 신관에서 범신론적 견해는 발견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칼 바르트의 전적 타자(ganz Andere)로서의 하나님 개념의 구도는 칸트의 영향권에 속한다. 그러나 칸트의 하나님 개념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있다: 과연 하나님은 세계와 관계하시지 않고, 다만 인간의 요청된 하나님일 뿐인가?

Hegel: 인간 정신의 활동성으로서 보편적으로 인식가능한 하나님

칸트에 반대하여 헤겔은 이성이 감각적인 것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 -칸트에게서의 물 자체- 도 경험될 수 있다고 본다. 즉 헤겔에 의하면, '사유를 통하여' 하나님은 인식된다. 헤겔에 따르면, 정신으로서의 하나님은 자신을 대상화하여 정립한다(자기 소외). 이렇게 하나님이 자신을 대상화하여 정립된 것이 세계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대상화는 일회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헤겔에 의하면, 하나님의 자기 대상화로서 정립된 것에서 나타나는 부정을 다시금 부정하는 활동성이 있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절대정신의 변증법(Dialektik)이다. 다시 말해서 정신의 변증법적 운동은 사유의 활동성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러한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로서의 하나님은 세계와 구별되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인간 정신의 사유활동과 하나님 내지 절대 정신의 자기 전개는 구별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의 정신은 절대 정신의 현존 양식 내지 존재 양식이다. 이러한 점에서 헤겔에 의하면, 하나님은 숨어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이 아니라,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이다.
이러한 헤겔의 절대 정신으로서의 하나님 개념은 신학적으로 판넨베르크(W. Pannenberg)의 보편사 신학 구조에서 구성적 개념이다. 또한 이러한 헤겔의 하나님 개념은 존재론적 신학의 범주에서 "자연신학"에 구조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과적으로 헤겔의 하나님 개념에서 노정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헤겔의 하나님 개념에서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하나님 계시가 간과될 수 있다.

2. K. Barth의 신관의 타당성과 한계점

1) 전적 타자이신 하나님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은 인간 내지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해 계시는 "전적 타자"(ganz Andere)이다. 그래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이 땅위에 존재할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내지 세계 사이의 유비(Analogie)는 결코 없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 유비(Analogia entis)는 발견되지 않는다. 오로지 바르트에게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비가 있다면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 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바르트가 주장하는 신앙의 유비는 무엇인가?

2) 하나님의 자기 계시 내지 인간과 관계 맺음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신앙의 유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발생한다. 바르트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즉 하나님은 단 한 번 인간에게 자기 자신을 계시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것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과는 전적으로 초월해 계시고, 질적으로 다른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 맺는 사건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따라서 바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맺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관계의 유비(Analogia relationis)이다. 이러한 관계의 유비 속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신앙의 유비로서 관계 맺는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서 인간은 하나님을 인식하는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남는 것은 신앙일 뿐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의 구원은 없다. 예수 그리스도 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파괴된 관계의 회복자요, 화해자이다.

3)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 방식

결과적으로 바르트에게서 하나님은 전적 타자이신 한 분 하나님이다. 이 한 분 하나님이 단절된 인간 내지 세계와 관계를 맺으시는데, 이 관계를 맺는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요 화해자이다. 이러한 화해자와 중재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곧 성령의 사역이다. 따라서 바르트에게서 성부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과 구분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바르트에게서 성부이신 한 분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성령의 모습으로 사역하신다. 즉 한 분 하나님이 세 가지 양태로 사역하신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신의 삼위일체론에 있어서의 하나님 개념을 한 분 하나님의 세 가지 존재방식으로 명명한다.

4) 바르트 신관의 타당성과 문제점

바르트 신관의 타당성은 성서가 증언하는 대로, 하나님과 인간의 전적 구별을 짓는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또한 계발적으로 인간 행동의 여부가 인간 자신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타당하다. 삼위일체론적 측면에서 바르트는 일체에 중점을 두어, 삼신론을 피해간다.
그러나 바르트 신관의 문제점은 그의 하나님 인식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하나님 인식도 하나님 자신에 의해 가능하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인식되는 존재이지 인식의 주체임이 부정된다면, 인간의 자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는 구원론적 측면에서는, 인간 행동의 아노미 현상이 문제시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바르트의 하나님 개념을 삼위일체론의 카테고리로 정리한다면, 양태론적 군주신론이다. 양태론이 이단시되었던 점은 바르트의 삼위일체론에서 약점이다.

3. P. Tillich 신관의 타당성과 문제점

1) 인간 실존의 분석으로서 구성된 하나님

틸리히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아래로부터 추론된 하나님이다. 왜냐하면 틸리히는 인간 실존의 분석을 바탕으로해서, 거기서부터 실존의 반대로서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 개념을 추론해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틸리히 신학은 인간의 상황, 인간의 실존으로부터 출발하여 하나님의 말씀, 기독교으 사신을 변증하고자 한다. 따라서 틸리히의 신학은 "변증신학"(apologetische Theologie)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틸리히는 인간 실존을 분석하여, 그 인간 실존에 내포된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 문제점 내지 질문에 답변을 시도하는 신학이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인간 실존은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ex) 존재이다(Ex-istenz). 따라서 틸리히에 의하면, 실존은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점에서 불안한 존재이다. 그래서 틸리히에게서 불안은 실존의 구성적 개념이다. 다시 말해서 실존에서 문제 내지 질문되는 것은 불안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불안한 실존의 극복으로서 존재(Sein) 개념이 상정된다. 틸리히에게 있어서 이 존재 자체가 바로 하나님이다.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불안의 극복이다. 그러므로 틸리히에게서 하나님은 실존분석을 통해 추론된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2) 실존에 대하여 역설적으로 상관관계를 맺는 하나님: 실존의 답변으로서의 하나님

틸리히에게 있어서 불안한 실존과 존재 자체로서의 하나님은 역설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다. 왜냐하면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실존은 불안하고, 동시에 실존의 근원으로서의 존재 자체는 그러한 불안이 해소된 혹은 극복된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틸리히의 하나님은 유한한 혹은 불안한 실존에 대한 답변으로서 중재된 무한하고 불안이 극복된 존재 자체이다. 따라서 틸리히에게서 실존과 존재는 역설적이다. 이러한 틸리히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결과적으로 역설적 상관 관계 속에 있다.

3) 틸리히 신관의 타당성과 문제점

틸리히의 자연신학적 하나님 이해는 철저히 인간학적으로 정향된 하나님 개념이다. 왜냐하면 틸리히는 인간 실존으로부터 하나님 개념을 추론해 나가기 때문이다. 이러한 틸리히의 하나님 개념은 전적 타자이기 보다는,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이다. 따라서 틸리히 신관은 오늘날의 생태계 파괴의 현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왜냐하면 인간과 하나님이 존재론적 유비의 관계 속에 있다면, 생태계 파괴는 하나님 자신의 파괴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틸리히 신관의 문제점 또한 노정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틸리히의 하나님 개념이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하나님과 얼마나 합치되는가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 실존 분석으로부터 추론된 하나님은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실존에게 존재로 향하는 용기를 주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사실상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아니다. 오히려 실존이 자신이 추상하여 세운 존재 자체 개념에 맹목적으로 헌신할 뿐이다.

4. J. Moltmann의 신관

1) 십자가의 그리스도 고난으로부터 출발하는 하나님 개념

몰트만에 의하면, 하나님에 관한 모든 질문은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로부터 출발하고 답변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 자신에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이 몰트만에게는 중요하다. 따라서 몰트만의 하나님 개념은 기독론적으로 정향되어 있다.
몰트만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의 사건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몰트만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하나님 사건은 아니다. 즉 몰트만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하나님 자신의 고난으로 일치시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고난과 하나님의 고난이 단순하게 일치될 경우, 이러한 논리는 성부수난설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하나님의 죽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의 죽음"으로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서 몰트만이 전통적 유신론의 견해처럼, 하나님은 고난당할 수 없다는 유일신론적 견해를 지지하는 것 또한 아니다. 왜냐하면 몰트만은 삼위일체론에서 일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삼위일체론적 사고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2) 삼위일체론적 하나님 고난 사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하나님

몰트만의 하나님 개념은 철저히 십자가의 기독론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여 삼위일체론적으로 정향된다. 몰트만에 의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무한한 사랑 가운데서 아들을 내어주는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을 당한다.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의 장소가 십자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몰트만의 하나님 개념의 출발점은 바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고통을 짊어지고 계시는 분이며,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함께 당하시는 분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겪는 고난 속에서 성령이 생성된다. 이 성령은 인간에게 아버지의 사랑을 나타내고, 생명을 선사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에게서 그리스도의 고난은 삼위일체론적인 사건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3) 정치신학적 하나님 이해: 고난당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서 인격적인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몰트만의 하나님 개념은 '하나님이 고난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고난당할 수 있음'을 통해 하나님의 인격성이 드러난다. 또한 왜 하나님이 고난 당하시는가 라는 반문에서, 하나님은 세계의 고난의 역사에 동참하시는 것이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몰트만의 정치신학의 출발점이다. 연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종말론적 미래를 고난당하는 자들에게 열어주시는 분이다. 이러한 역할을 성령이 감당한다. 따라서 몰트만에게서 성부, 성자, 성령의 내재적 사귐은 경륜적 드러남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은 성부, 성자, 성령의 내재적 삼위일체의 사귐임과 동시에, 세계와 관계하시는(사귐을 갖는) 삼위일체론적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몰트만의 고난당하시는 하나님 개념은 성부수난설을 극복하고, 동시에 삼위일체의 유일신론(Monotheismus)적 이해를 극복한다.

5. 삼위일체에 대한 L. Boff의 기본 이해

1) 현실 경험의 고백적 삼위일체론

보프는 교리적 삼위일체론과 현실적 삼위일체를 구분한다. 왜냐하면 성서에서 삼위일체에 관한 직접적인 증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프는 역설적으로 성서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제시한다고 본다. 즉 보프에 의하면 교리적으로 진술된 삼위일체 교리는 이미 삼위일체를 전제하고 난 이후 인간의 지성에 의한 산물이다. 이러한 교리적 삼위일체론에 반하여 보프는 삼위일체는 인류 내지 인간 삶의 현실 속에 현존하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삼위일체는 교리라는 전제에서 연역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적 사역의 현실 경험으로부터 고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프는 억압과 고통 당하는 현실로부터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진술한다.

2)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의 사귐으로서의 각 위격의 사역

보프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과 기도와, 해방시키는 행동과 성령의 권세를 통한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됨과 아버지 되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따라서 보프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에게 삼위일체적 사역을 하였다. 보프에 의하면, 성령도 마찬가지이다. 성령은 마리아에게 나타났고, 예수님의 거룩한 인간성을 형성하였고, 예수의 세례시에 강림하여 예수를 성령의 지속적인 운행자로 만들었고, 우리에게 아버지와 아들의 신비를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보프에 의하면, 성령과 연합하여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 없이는, 삼위일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단순히 근거없는 사색이 될 뿐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보프는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내재적 교통으로서의 삼위일체가 현실 사회 속에서 경륜적으로 나타나야 함을 발견한다. 다시 말해서 몰트만의 내재적-순환적 삼위일체 개념을 자신의 사회적-정치적 삼위일체 개념의 기반으로 삼는다.

3) 사회적 삼위일체: 삼위일체의 사역 공간으로서의 현실 세계와 정의(Gerechtigkeit)

성부 하나님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현실 세계 속에서 사역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이 현실 세계와 유리되어 있다면, 하나님은 이 현실 속의 인간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프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토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보프가 이해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실 세계 속에서 자신을 주로 세우시기 위해, 현실의 악과 불의를 해방시키는 행동 내지 그 행동방식이다. 따라서 보프에게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은 철저하게 정치적이다.
보프에 의하면 이러한 성부 하나님의 사역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보프에게 있어서 예수의 사역은 해방과 정의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했고, 죄인들과 화해했고, 소외된 사람들과 나누었고, 모든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보프에 의하면, 성령은 신약성서의 증거 속에서 신적인 인격으로 경험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령은 인격적으로 행동하고, 우리에게 영감을 주며, 위로하며, 간섭하고,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현실화시키는 능력이다. 따라서 성자의 사역과 성령의 사역의 연결성은 성령의 해방시키는 사역에서 발견된다.
그러므로 보프는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의 사역의 공통성을 이 현실 세계의 불의와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시는 것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행동의 통일성은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본성의 친교(사귐, communio)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의 내적인 친교가 없다면, 현실적으로 드러난 하나님의 사역과 성자의 사역, 그리고 성령의 해방시키는 사역에서의 통일성은 기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프의 삼위일체의 기본 구조는, 몰트만이 내재-순환적 삼위일체를 정치-사회적 삼위일체로 확대시켜나간 것을 수용한 것이다. 그래서 보프는 현실 세계의 고통당하고 억압된 개인, 가족, 그리고 국가의 해방의 근거를 이러한 몰트만과 자신의 사회-정치적 삼위일체론적 해석에서 찾는다. 따라서 보프에게서 삼위일체론은 삼위-일체 라는 사변적이고 교리적인 진술이 아니라, 현실세계에서의 삼위의 통일된 사역 내지 사역방식이다. 보프에 의하면 이들 삼위의 통일된 사역 내지 행동방식은 바로 "해방"과 "정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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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시각 : 2001/07/06 - 09: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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