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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장섭 조회수:4 / 분류 : 조직
몰트만의 신학방법론-희망의 해석학
1. 신학적 이론들의 배경
몰트만의 신학이 이루어지는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신학자들과 그들의 신학적 사상들이 있었다. 그는 먼저 한스 요하힘 이반트의 “십자가의 신학”과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와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방향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야곱 브로카르두스에게서 요하힘의 종말론과 근대 코께이우스적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발견할 수 있는 고리를 발견하였다. 오토베버에게서는 성만찬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물려받았다. 베버는 성만찬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는 “장차 오실 그분의 임재이며, 종말의 미리 나타남”이라는 이론을 배웠다.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호에게서는 유대교적, 기독교적 메시아니즘을 넘겨받았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약속이다
몰트만은 “희망에 대한 신학이 아니라, 희망으로부터 신학 곧 종말론으로서의 신학, 세계 안에서 해방하는 하나님 나라의 신학”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희망”이라는 개념을 성서에서 찾았는데, 성서 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이 아니라 약속”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언은 그것이 말하는 사건과는 다른 주체를 갖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반면에 “약속은 말의 행위”로써, 약속하는 사람 자신을 통하여 보증되는 확약이며, 약속하는 사람은 그의 말을 “지키며” 그가 약속한 것을 실행해야만 하는 의무를 자신에게 부과한다. 또한 약속을 한 인격은 자신의 약속 가운데서 말을 걸 수 있게 되며, 하나의 확실한 형식을 얻는다. 그의 약속에 대한 신실함을 통하여 그 인격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속성을 얻는다. 그는 이러한 “약속”이 성서 전체에 흐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몰트만은 성서에 나타난 이러한 해석을 통하여 “하나님은 약속한다. 그러나 예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구약에 나타난 계약의 근원적인 형식을 인용한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자 하며, 너희는 나의 백성이어야 한다”는 계약 양식이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이다. 이 계약의 양식 안에는 한편으로 “자기 자신을 구속하는 하나님의 계약의 임재의 약속을 내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백성을 그의 소유로 선택하는 것을 내포하고, 그의 백성 가운데로 하나님의 내주하심을 내포한다”고 해석하고 있다.
성서에 나타난 “모든 개별적이며 역사적인 하나님의 계약의 약속들은 보편적이며 장차 올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고 몰트만은 해석한다. 이렇게 성서 안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서 하나님의 계약의 약속들은 결코 하나의 예언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시간적으로 끝내질 수 있다는 의미에서 성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자 한다”는 약속은 언제나 역사의 과정 속에서 증명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약의 약속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궁극적으로, 보편적으로 효력을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몰트만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들로부터 산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삶”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는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며, 하나님의 영은 영광의 “선수금”과 모든 사물들의 “새 창조의 봄(春)”으로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종말론도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이해되고 있다. 몰트만에게 있어서, 역사적 현재와 종말론적 미래의 중재는 오직 약속의 언어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으며, 개념의 언어 속에서 일어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들은 경험될 수 있는 현실에 상응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을 넘어 항상 미래를 지향한다. 이 약속들은 경험되는 현실을 넘어, 약속된 것의 넘침을 통하여 내포하고 있다. 언제나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을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도 “죄의 용서”를 넘어서며, “의”, “다시 태어남”, “새 창조”, “성령의 부으심”으로 지칭되는 자신의 의미를 가진다.
또한 언제나 미래를 지향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칭의도 약속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 속에 등장하고, 우리를 그의 나라의 미래 속으로 부르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몰트만에게 있어서, 새 창조와 새로운 탄생으로 이해되는 칭의의 사건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본래적인 해석학적인 범주가 되고 있다.

3. 역사는 미래를 향해 열려 있으며, 정치적인 것을 포함한다
몰트만은 역사적(geschichtlich)이라는 말도 “미래와의 관련 속에 있는 과거와 현재의 통일성을 뜻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성 안에는 “정치적인 것”을 함께 포괄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에 대한 “실사적(historisch)” 연구는 역사에 대한 “역사적” 해석의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역사에 대해 정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억압으로부터 생명으로의 해방을 지향”하는 것으로 그는 보고 있다. 또한 역사의 경험과 역사에 대한 참여는 과거의 삶의 증언들을 함께 공유하는 것인 것처럼 공동체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본문들에 대한 모든 양식사적 분석은 그들의 공동체 안에 있는 그들의 “삶의 자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며,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의 의미이다.

4. 해석학은 희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한다
몰트만이 성서를 해석하고, 또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주어진 본문의 독특한 성격과, 이 본문 속에서 현재에 대하여 말하는 과거 사람들의 또 다른 주체성에 중점을 두고, 해석자와 또 그가 그들에게 해석하는 사람들을 해석되어진 것으로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의 중심에는 언제나 “희망”이 주제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희망은 성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 나라는 하나님께서 미래로부터 도래하시는 사건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것이 “성서의 본질적인 요소”라고 그는 보고 있다. 또한 역사를 “희망”의 언어로 해석한다는 것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이것은 단순히 개념화가 아니라, 우리는 그 해방에 참여해야 하는 부름을 받게 된다. 이런 점에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지금 “십자가에 못 박힌 백성”으로 현존하며, 해방을 꿈꾸는 자들을 그에게로 부르시고 계신다. 그러므로 그의 신학적 해석학은 언제나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과의 친교와 해방의 실천”이 근거가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5. 성서는 삼위일체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서에 대한 해석학은 이미 초대교회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몰트만은 이것을 “성서와 교회의 관계”속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성서로 된다는 견지에서 초대 교회를 성서의 주체로 볼 수밖에 없으나, 교회를 생성케 한 “일”의 견지에서는 성서가 교회의 주체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관계 속에서 성서는 신앙공동체의 증언들과 삶을 표현하며, 그 신앙을 살아있게 하는 하나님의 영을 표현한다. 이 신앙공동체의 증언에서 예수는 ‘아들’로 나타나고, 그의 역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활동 속에서 이루어진다. 몰트만은 이러한 영의 활동과 아버지와 아들의 활동을 표현하고 있는 것을 “삼위일체적 해석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신약성서 속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성서에 대한 삼위일체적 해석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미래를 향해 열려 있게 하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고, 인간의 삶을 통합시키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5.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인식은 “아날로기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러한 “유비” 결국 인간은 하나님의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의 인식은 인간의 사고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우리들의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가능하다. 몰트만에 의하면, 이 경험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지며, 미래로부터 오시는 하나님을 희망함으로써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6. 결 론
몰트만의 희망의 해석학은 먼저 성서에서 그 근거를 찾는데, 성서의 내용은 “약속”을 포괄하고 있다. 이 약속은 미래로부터 다가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며,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 우리들 가운데 내재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의 틀을 가지고, 성서, 역사 그리고 교회를 해석하고자 한다. 이러한 해석작업은 언제나 삶의 경험을 고유하고 있는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이 작업을 통해서 그 공동체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열려 있게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공동체의 삶 속에서는 언제나 억압받고 가난한 사람들과의 친교와 해방의 실천이 근거가 되고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오늘날 억압받는 공동체에서 현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존재의 유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받는 현실의 삶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변혁함으로써 하나님의 도래를 희망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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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시각 : 2002/01/18 - 12: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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