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나눔

수정 삭제 글쓰기 REPLY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작성자:이장섭 조회수:3 / 분류 : 조직
소브리노의 해방 신학의 방법
소브리노의 해방 신학의 방법

1. 교회의 참 표지:자비
소브리노는 교회의 네 가지 표지-사도성, 거룩성, 보편성, 통일성-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교회가 “자비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교회의 표지가 참된 것이 되려고 한다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예수님을 닮아간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의 구조를 재생성 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삶의 구조를 재생성 해 낸다는 것은 예수님이 세상의 죄를 밖에서 바라보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모두 담당하시는 것을 의미하고 그의 부활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생명, 희망 그리고 기쁨을 주시고, 그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의 근거는 그분의 자비하심이다.

2. 자비는 실천을 포함한다
소브리노는 “자비”라는 단어를 개념적으로만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즉 우리가 단순히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라는 의미로만 파악할 때는 위험이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 위험이란 이러한 마음에 상응하는 행동 없이 단순히 감정 자체에만 치우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소브리노는 행동을 포함한 자비에 대한 근거를 성서에서 찾는다. 구약성서에서 하나님께서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만 들으시고, 그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는 그의 사랑에서 근거한 것이며, 이러한 구조를 그는 “자비”라고 부른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구원 역사의 절대적인 시작이며, 그리고 구원의 역사 속에 언제나 나타나고 있다.
예수님의 모든 삶과 사명, 운명을 규정짓고 만든 것은 바로 “자비하심”에 기인하고 있다. 이처럼 자비는 처음부터 행동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구체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써, 그리고 그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자비는 개인적인 고난에만 반응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정의롭지 못한 고통을 야기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위험을 경고하며 또한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어야 하는 적극성을 포함하고 있다.

3. 이상적이고 완전한 인간
소브리노는 이상적이고 완전한 인간을 “자비를 행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이런 사람은 길가에 쓰려져 있는 사람을 보고, 거기에 반응을 하여 자신이 도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와주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이러한 인간이란 자신의 내면에 고통을 받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흡수하여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서 행동을 취한다. 이런 점에서 자비란 고통을 받는 상대를 향한 행동이며,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반응하는 것이다.

4. 십자가에 달린 민중
소브리노는 고난 당하는 라틴 아메리카인 민중들을 십자가에 달린 민중으로 정의함으로써 그들의 고난을 단순한 사회-역사적, 정치-경제적 차원의 문제만이 아닌 구원론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이렇게 정의함으로써, 그는 “십자가의 세 차원”을 말한다. 첫째 실제적 사실의 차원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뜻하며, 둘째로 역사-윤리적 차원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는 것은 단순히 죽는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처형된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로, 종교적 차원에서, 예수는 어떤 다른 것에서가 아닌 십자가에서 죽음을 겪었는데, 그것은 죄와 은혜, 저주와 구원, 인간의 행동과 하나님의 행동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의 세 가지 차원을 말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아메리카 민중들은 현실적으로 죽음을 당하고 있는데, 이 죽음은 정의롭지 못한 구조부터 당하는 것이며, 또 다른 차원에서는 이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화해를 이룰 수 있다.

5. 십자가에 달린 민중의 역할
소브리노에게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십자가에 달린 민중은 야훼의 참된 종인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의 현실화이며, 십자가에 달린 민중과 야훼의 종인 그리스도는 서로를 지시하고 있다.
이런 십자가에 달린 민중은 고난 당하는 수동적 객체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원을 가져오는 존재로 규정된다. 그래서 소브리노는 “십자가에 달린 민중이 곧 구원의 담지자이며, 구원을 가져오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하나님의 종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십자가에 달린 민중은 자신들의 실상을 보도록 해주는 빛이기도 하며, 그들의 삶의 가치-연대성, 봉사, 통일성, 하나님 선물에 대한 기꺼운 수용-를 제공해 주고, 희망을 담지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고통을 일으키는 자들을 기꺼이 용서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달린 민중은 그리스도의 현재화이기 때문이다.

6. 인간의 죄
소브리노는 인간의 죄를 “인간의 마음에 근원이 있고, 이 죄는 가난, 불행, 좌절을 생산해 낸다”고 한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죄를 그들의 삶의 실제적인 상황에서 찾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객관적인 죄는 빈곤이며, 하늘에 호소하는 불의이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비인간적인 빈곤의 상황이며, 그것이 그들을 노예화하고, 그들에게서 존엄성을 빼앗는 것”으로 규정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서 일어나는 죄는 인간을 비인간화시키는 모든 구조와 힘들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신학에서 전통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죄와는 다른 내용을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반하여 믿음은 “죄 많은 현실로부터의 해방이며, 희생자들의 인간화이고 그 다음에, 죄인을 복원시키고, 죄인을 인간화시키는 것”으로 말한다.

7. 용서
소브리노는 “현실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그것을 바꾸는 것이고, 반대적인 왕국대신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으로, 즉 부정의 대신에 정의를, 압제대신 자유를, 이기심 대신에 사랑을, 죽음 대신에 생명으로 바꾸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용서의 근거는 사랑에 있으며, 이것은 자비와 더불어 강력한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행동을 재현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용서를 먼저 행해야 하는 쪽은 “십자가에 달린 민중”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들에게는 구조적인 은혜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적인 은혜란 빛, 희망, 그리고 사랑을 말하는데, 이것을 가지고 있는 민중은 인간화의 가치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인간화를 통해서 제1세계와 제3세계의 통합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8. 결론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서 태어난 소브리노의 신학은 전통적인 신학을 거부한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단순히 감정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간 구원을 위한 근거하는 것이다. 이 자비는 교회의 하나의 표지이며, 교회는 강도 만나 쓰러진 자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이 고난을 일으킨 구조를 변혁시켜야 하는 의무를 진다.
그는 고난받는 민중을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와 동일화함으로써, 단순히 현실을 역사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린 민중은 구조적 은혜를 담지하고 있다. 그래서 민중은 제3세계의 현실뿐만 아니라, 제1세계의 현실을 변혁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민중은 제1세계를 용서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비를 재현한다. 여기에 반해 죄는 비인간화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를 실행하는 사람이 곧 완전한 사람이라고 소브리노는 주장한다. 그의 신학 방법은 현실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 현실은 고난받는 민중의 현실이며 또한 그 현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이 현실에서의 실천이 곧 자비이다. 그리고 이 자비를 실천하는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전글 : 역사적 예수와 그리스도론의 태동

글쓴시각 : 2002/01/18 - 12:36:52
IP : 211.212.44.210

다음글 : 몰트만의 신학방법론-희망의 해석학

수정 삭제 글쓰기 REPLY 이전글 다음글 리스트


신학하는 친구들의 논문나눔 입니다.
Contact to
kerygma@kerygma.p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