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훼퍼의영성과사회참여

들어가는

기독교 역사의 초기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로서의 수직적 영성을 많이 강조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리고 현대에 가까워올수록 이웃 사랑 또는 투신으로서의 수평적 영성을 강조했음을 볼 수 있다.

사실 온전한 영성은 이 두 내용이 떨어질 수 없는 통전적인 것으로서 해방을 위한 사회변혁의 영

성이고 행방이다. 단순히 자기 부정이나 고행, 심령의 변화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요, 또 단순히

행동을 통한 역사 변혁 및 사회 해방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닌 이 둘을 하나로 하는 이런 온전한

영성과 해방의 개념이 20세기를 지나 에큐메니칼 영성과 제 3세계 영성에 와서야 정립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영성과 해방의 현대적인 모델을 본회퍼에게서 찾을 수 있겠다.

1.교회 투쟁기에 나타난 본회퍼의 영성

어떤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사상이 형성된 새대적 배경이나 그 사상가의 전기적 경험에

그것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본회퍼의 사상은 교회 투쟁과 정치 투쟁의 경험 속에서 그리고 죽음

을 앞둔 옥중 생활 속에서 형성되고 변천되었기 때문에, 그의 영성을 살쳐보기 위해서는 그 시기

를 구분하여 그 시대 상황과 그의 전기적인 삶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1. 신도의 공동 생활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교회,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교회, 원수 사랑, 절대 순결을 세상

에 보여야 하는 교회, 이런 겨회가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교회를 위해서 본회퍼는 엄격한 영적

훈련을 강조했고 핀겐발데 신학교 안에서 형제의 집을 세워서 공동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공동

생활을 통해서 엄격한 영적 훈련을 실시했으며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같이 살고 같이 기도하고

서로 죄를 고백하고 陷서했다. 이러한 공동체의 삶을 바탕으로 [신도의 공동 생활]이 집필되었다.

[신도의 공동 생활]은 내면적인 영성의 함양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각 장

별로 살펴보면

1장의 '공동 생활' 에서는 성도의 사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귐은 성찬의 사귐까지 가야 하며

그럼으로써 사귐의 목적에 이를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단순한 사귐이 아

닌 예수를 중심으로 한 본질적인 사귐을 강조하고, 그것은 기도와 성례전에 의해서 완성된다고

한다. 또한 이 사귐은 한 운동이나 조직이나 단체나 경건한 이들의 모임이 돠어 버리지 않고, 거

룩한 기독교의 공교회로 이해돨 때에 비로소 건전하게 지속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약하고 보잘

것없는 사람, 아무 쓸데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의 산 사귐에서 쫓아내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를 추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2장의 "남과 함께 사는 하루"에서는 기도와 성서 읽기의 중요성과 찬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기도는 한 번 사람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괴로움과 즐거움을 털어놓고 마는 것이 아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꺾이지 않고 꾸준히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자기의 마음에

인을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자유로운 기도가 주관에 사로잡혀 제멋대로 드리는 기도가 되지

않으려면, 기도할 때 성서를 읽는 일도 겸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이로서 기도는 튼튼한 밑받침

과 터전을 얻는다고 말한다. 또한 성서를 배워 보겠다고 혼자 애쓰지 않는 사람을 복음적인 그리

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성서의 중요성을 말하며 읽는 방법까지 자세히 말하고 있다.

찬양을 많이 부를수록 우리가 맛보는 기쁨은 더 커지고, 무엇보다 마음을 모으고 훈련을 거쳐서

즐겁게 부르게 되면 함께 노래하는 것이 우리의 공동 생활에 미치는 축복은 더 풍성하게 될 것이

라고 한다.

3장의 "홀로 있는 날"에서는 고독과 명상을 강조하고 있다. 홀로 있을 수 없는 사람은 사귐 앞에

서 마음을 가누어야 하고, 사귐 속에 서 있지 않는 사람은 고독 앞에서 마음을 가누엉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혼자서 성서를 읽고 혼자 기도하고 혼자 남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4장의 "섬김"은 혀에 굴레를 씌우는 것이며, 온유하게 대하는 것이며, 남의 말에 말없이 귀를 울

이는 것이며,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것이며, 서로의 짐을 져 주는 것이며, 말씀으로 섬기는 것이

라고 한다.

5장의 "죄의 고백과 성만찬"에서는 죄의 고백을 듣고 사죄를 해주는 형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

고 하나님의 현재를 나타낸다. 형제 앞에 죄를 고백하는 겸허 속에서, 영적으로 신체적으로 깊은

굴욕의 아픔 속에서 선다는 것은 본회퍼에게는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백한 죄는

관계를 단절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힘을 잃는다. 그 까닭은 죄를 고백함으로써 자기 정당화의

마지막 노력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귐에로 뚫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본회퍼의 이런 공동 생활은 사회와는 과계 없이 개인적인 영성을 쌓기 위해 숨어드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그 사회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수정하려는 준비를 강화시켜 주는 것이었다.

2.나를 따르라

본회퍼는 거룩해진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제자가 된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은헤"

를 받는다는 것의 뜻을 가려 낸다. 그에 의하면 "값비싼 은헤"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를 따

르는 삶의 한가운데 있으며, 그 고난에의 참여 안에서 영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본회퍼가 강조하는 영성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실천적 삶이며, 그것은 세상의 삶 가운데

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성은 값싼, 싸구려

은헤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훈련을 통하여 얻어지는 복종의 삶에서의 영성인 것이다.

본회퍼의 영성은 종적이고 수직적이며 탈세상적인 영성이 아니라, 횡적이고 세상 안에서의 세속

적인 영성이다. 그의 영성은 세상 밖에서 명상하는 영성이 아니라 실천하는 영성인 것이다.

2. 정치 투쟁기에 나타난 본회퍼의 영성

1. 윤리

본회퍼는 {윤리}에서 두 영역에 관한 이론을 거부한다. 두 개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하나로 통일되는 그리스도의 현실이 있을 뿐이다. 즉, 기독교적인

것은 세상적인 것에, 성스러운 것은 속된 것에, 계시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에만 존재한다. 따라서

교회만을 거룩하게 여긴다거나, 이 세상적인 것이 자립하여 자기를 절대화하려는 것은 오류이다.

그러면 교회와 세상의 대립은 어떻게 극복돠고 통일되는가? 본회퍼에 의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인

의 삶으로 나타나는 영성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려 죽고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와 같이 사는 십자가의 영성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영성은 성육신의 능력 의하여 인간

이 되는 것을 말하며, 부활의 능력 가운데 사는 삶을 말한다. 이 두 가지의 영성, 즉 십자가의 영

성과 부활의 영성을 통하여 교회와 세상의 대립이 극복된다는 것이다. 이 영성은 그리그도와 세

계의 만남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럼으로 이 세상의 해방에 참여하는 것이다.

2. 옥중서간

{윤리}에서는 궁극 이전의 것이 궁극적인 것을 위한 길 예비로서 요청되고 양자가 조합적으로

강조되었다면, {옥중서간}에서는 궁극 이전의 것 속에서 궁극적인 것을 본다. 그는 이 세상에 대

해 강조를 하고 있고 역사의 한복판에서의 십자가의 영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피

안적인 교회가 아니라 이 세상적인 교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성숙한 세상과 성서적 하나님의 경합을 그는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라는 역설적인 말로 표

현한다. 이 말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말과 같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

는 것"은 모든 종교적 인간들로 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는 특징이며, 종교적 인간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사실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고난에 인간의 동참을 촉구한 것은 중요한 이미가 있

다. 기존의 현실과 유리되어 골방 속에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을 추구했던 편협한 영성의 개념을

넘어서 이 땅의 생활 속에서 구체적인 고난의 실천을 통해서 영성이 함양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

는 것이다.

교회는 기도와 정의 실천 속에 숨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실천은 주관적이고 아이한 실천이 아니

라 적과 힘에 대한 냉정하고 효과적인 대결을 포함한 현실적인 실천이어야 한다. 또한 자기 방어

를 일삼고 자기 보존에 급급한 교회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 고난받는 교회, 자신을 내주는 교회여

야 한다. 본회퍼는 교회가 역사적 정의를 이식하고 동포 전체와 그 고난에 참여할 것과 전 재산

을 궁핍한 사람들에게 아누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비록 그가 가난한 민중이란 말을 쓰지는 않

았지만, 정의의 실천을 강조하고 역사적 정의를 말하고 궁핍한 사람 에게 교회 재산을 내줄 것

을 요청했다는 점에서 가난한 민중을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본회퍼는 물질적 현세

성을 강조하고 이 세상에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에 주목했다. 자기 방어를 일삼고 자기 보존에 급

급한 교회는 죽은 교회이고 희망이 없는 교회이다. 가난한 민중을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교회만

이 산 교회이며 의망이 있는 교회이다. 이것이 옥중에서 죽음을 앞두고 본회퍼가 교회에게 들려

준 말이다. 그는 또한 자신의 배경인 귀족적인 집안, 학자로서의 보장된 삶을 버리고 자신의 이기

적인 안락한 삶, 고백 교회를 포함한 독일 교회의 소시만적 경향을 비판하고 곤궁과 소외고 고통

받는 삶을 지향하며, 자신 스스로가 이 말씀을 실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것을 자신의 삶으로

써. 행동 언어로써 들려 주었다. 지금까지 본회퍼의 작품속에 나타나 있는 영성을 통해 볼 때 그

는 투쟁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영성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적 영성과 해

방이 그의 전체 삶 속에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3. 맺는말

본회퍼에게 영성의 문제는 1930년대 초반 그의 강사 시절의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서 발아하고

교회 투쟁을 통해서 성장했고, 옥중서신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회퍼에게 영성의

문제는 투쟁의 문제요, 또 투쟁의 문제는 영성의 문제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영성의 문제는 자기

해방과 함께 교회의 해방, 그리고 사회의 해방을 그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본회퍼의 영성 개념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첫째, "물러섬의 영성"이다. 모든 영성운동의 출발점은 시간과 공간에서 기존의 것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鱁본회퍼의 영성은 본질적으로 기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물러섬"은 자아로부터 시작해서 기존의 모든 사회적 제도들과 비판적 거리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회퍼는 영성 훈련의 목표가 단순히 전통적인 수도원적 은둔에 있지 않

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특히 신비주의에서 강조되었던 신과의 직접성의 문제도 이러한 "물러섬"

으로부터 출발하지만, 본회퍼의 영성은 중세말의 신비주의 운동이나 종교 개혁 당시의 성령주의

운동에서처럼 인식론적으로 "신과의 신비적 일치"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둔다.

"물러섬"의 영성은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인 그리스도 사건에 집중된다. 즉, 비판적 거리라는 영

성을 통해서 당시 기독교의 "기계 장치의 신"을 극복하고 "세계의 한가운데서 수난하시는 하나

님", 피안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차안적인 기독교"," 종교적인 기독교"에 대해서 "비종교적인 기독

교"를 발견한 것이다. 이러한 "물러섬"르로서의 영성을 통해서 본회퍼는 "피안 한가운데서 차안"

을 만나고 또 "하나님 없이 하나님 앞에"서는 것이다.

이러한 물러섬의 영성은 모든 정치 종교의 "비신화화"와 함께 모든 이념적인 것들의 "탈이념화"

의 근거가 되는 것이요, 모든 인간 우상화의 "탈 우상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영성

은 모든 종교 비판, 사회 비판, 이넘 비판을 수반한다. 이 영성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회

퍼에 따르면 영성의 궁극적 기초는 "인간이 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불활하신 유일한 분의 모

습을 닮아 가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 즉, 성육신 사건, 십자가 사건, 부활 사건 등은 일상적인 사

건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를 향한 비판적 사건이며, 이 사건의 주인공인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는 것이야말로 "물러섬의 영성"을 획득하는 구체적인 길이다.

둘째, "공동체의 영성"이다. 모든 영성 훈련은 사귐으로부터 출발 한다. 영성 훈련의 전통

을 지니고 있던 수도원들에서는 단독자에 의한 신과의 신비적 일치 못지않게, 형제들간의 사귐과

서로간의 격려를 통한 훈련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사귐이 없는 영성은 참 영성일 수가 없다.

그런데 본회퍼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영성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성립된다고 함으로써 그것의

근원과 목표를 기독론에서 파악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타자로서 형제와 자매가 나 밖에서 구원

의 기원을 드러내고 보등해 주기 때문에 형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또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로부터 오며, 형제 자매의 사귐이, 신체적으로 되어 버린 하나님 임재의 표현과 그 형식으로 이해

되듯이, 하나님과 인간들의 깨어진 원초적 사귐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비로소 재건된다. 성서에 鱁

보면, 사귐의 본질을 이루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란 상으로 나타난다.

셋째, 해방의 영성이다. 비판적 거리와 형제간의 사귐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성육신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한 자의 영성은 아닐 것이다. 비판적 거리를 통해서 그리고 형제간의

사귐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자기 추구와 자기 주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해방의 영

성이라는 사회적 지평을 상실한다면 그것은 게토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러한 해방의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의 포기", "의로운 일의 실천", 타자를 위한 교회"를

요청하고 있다. 사실상 "타자를 위한 교회"는 특권의 포기라고 하는 소극적인 과제와 정의의 실천

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위탁을 지니고 있다. 특권의 포기는 사회적 봉사의 차원을 가지나 정의의

실천은 정치적 봉사의 차원도 내포하고 있다.

본회퍼의 영성의 특징을 "물러섬, 공동체, 해방"이라는 표제어를 통해서 살펴 보았다. 이것은 영

성이 위의 세 가지 차원들을 가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보완

적이벼, 기독교 영성을 참 영성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영성은 재물,특권등과 같은 것을 포기하

는 것과 함께 불의한 권력 구조들에 대한 결연한 투쟁으로 나타나며 동시에 가난하고 억눌린 자

들을 돌보는 사랑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귐을 통해서 같이 해

나가야 한다. 만일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결여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육신하고 십자

가에 처형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영성이 아니며, 따라서 삼위일체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영성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