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유대 묵시들의 출현(Prophecy and the emergence of the Jewish apocalypses)

마이클 니브(MICHAEL A. KNIBB)

1963년 유대와 기독교 묵시에 관한 로울리(Rowely)의 유명한 소책자의 3판이 출판되었다. 이 책 안에는 그 이전판에서 나타난 것처럼 예언이 묵시의 모태라는 견해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다음해 러셀(Russell)도 비슷한 견해를 주장했는데, 그는 유대 묵시에 대해 매우 푹넓은 범위에 걸쳐 실체적인 입증을 하였는데 이는 로울리가 보여준 연구를 넓은 의미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예언과 묵시 사이의 연결점들이 매우 충분하게 탐구되어져있다(Rowley,1963, pp. 15-43; Russell, 1964, pp. 73-103, 178-202). 이것을 회고해볼때 아마 조금 놀랍게도 학자들은 폰 라트의 1960년에 출판된 구약성서신학(Theoiogie des Alten Testaments)의 제 2권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이 책에는 예언과 묵시문학 사이의 어떤 연결점이 전혀 없으며, 오히려 지혜에서 묵시문학이 탄생되었다고 제시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폰 라트의 견해는 수용되지 않았지만, 묵시 문서들의 성격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가져오는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신약성서연구들과 교의신학에서 묵시에 대해 주어진 관심에 의해 이 논의는 영향을 받았으나, 이 주제는 현 소논문 밖의 범위에 속하는 문제이다(예를 들면 Koch(코흐)의 개관, 1972,pp. 57-111; Funk(펑크)(1969)와 Pannenberg(판넨베르그)(1968)의 소논문들; Murdock(머독),1967; Beardslee(베어드슬리), 1971; Braaten(브라텐),1971를 참고하라). 구약성서와 유대적 묵시 문서들의 관계에 관해 최근에 세 가지 주제가 특별히 중요하게 토론되어져왔는데, 여기서 이것들을 점검할 것이다; (1) 'apocalypse'과 'apocalyptic' 용어들의 정의 ; (2) 묵시문학과 지혜(문학)사이의 관계; (3) 예언에서 묵시들로의 전환의 정확한 계통들. 묵시문학에 대한 연구의 역사는 최근 몇년 동안에 여러 번 점검되어졌는데, 여기서는 아래의 학자들의 개관을 중시할 것이다. Schmidt(슈미트)(1969; 제 2판,1976), Koch(코흐)(1972),Barr (바-르)(1975-6), Hanson(핸슨)(1976 b), Delcor(델코)(1977), Coppens(코펜스)(1979, pp. 17-39), 그리고 Schreiner(쉬라이너)의 소책자(1969)뿐만 아니라 Nicholson(니콜슨)(1979), Morris(모리스)(1972) 그리고 Schmithals(슈미탈스)(1975); Russell(러셀)(1978)과 Raphael(라파엘)의 소논문들(1977)을 비교하라. 또한 여기서 이루어져야 할 연구는 어떤 겉만 깔끔한 범주로 빠지지 않을 것인데, 말하자면 묵시적 문서들 자체를 뒤로 두고 '묵시적 강화의 내면에 놓인 충동와 분위기'를 탐구하려는 Wilder(와일더)의 흥미위주의 시도를 들 수 있다.

I.

유대적 묵시문서들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하나의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기술되어져 있는 묵시문서들이 그것들의 저자들에 의해서 묵시로 불려지지 않았다고 보여 진다는 점인데, 이것은 실제로 묵시쟝르라는 것이 있었는지에 의문을 갖게한다. 더 나아가 어려운 점은 현대 학자들이 'apocalyptic'이라는 용어를 여러방향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발견되는데, 이것이 하나의 계속적인 혼란의 근원이 되어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apocalypse'와 'apocalyptic'이란 용어들은 신약성서 '요한계시록'를 부르는데 사용된 계 1:1의 헬라어 단어 ՁՐՏՊՁՋՕՐՓՉ에서 줄기를 찾을수 있다. 여기서 이 용어는 이 문서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의 신적인 계시를 말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졌다. 그리고 계 1:3에서 보면 이 동일한 문서가 또한 하나의 예언으로써 기술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아마 큰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고대세계에서 기독교 저자들은 요한계시록과 비숫한 기독교 저작들을 'apocalypses'로 부르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약간의 비교될 수 있는 유대 문서들에서 'apocalypse'라는 용어가 그것들의 번역자나 편집자에 의해서 표제로 사용되어졌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이와비숫하게 기독교의 문서들의 번역자들과 편집자들도 그렇케 했을것이다(Vielhauer(필하우어),1965, p.582). 필하우어는 이 점을 시리아와 헬라어 바룩의 묵시와 연관해서 언급하며(말하자면 제 2, 3 바룩), 또한 아브라함의 묵시에게도 틀림없이 같은 고려들이 적용되었을 것인데, 아브라함의 묵시의 제목은 다음 말들로 시작한다; '아브라함의 계시의 책'.(잘못이름 붙쳐진 모세의 묵시, 즉 다시 말하자면 아담과 이브의 삶에 대한 헬라어 개정판은 Collins(콜린스)(1976, b. 2;1979 c, p.44)가 지적한데로 하나의 다른 성격의 문서이다.) 어떤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apocalypses'로 가르키는 유대적 문서들이 그들 저자들에 의해서 그렇게 기술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렇지만 현시대의 학자들은 이 용어를 요한계시록의 형식과 비교될 수 있는 하나의 전(全) 유대 문서들의 구룹으로 언급하는데 사용하고 있는데, 일찌기 이름붙여진 시리아와 헬라의 바룩의 묵시와 아브라함의 묵시뿐만 아니라, 또한 다니엘서, 제 1에녹과 제 2에녹서, 제 4에스라서(말하자면 제 2에스드라 3-14장) 그리고 아브라함의 유언들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단지 이런 문서들만을 'apocalypses'로 분리하는데 동의할 것이다. 이런 문서들이 실제로 하나의 구룹으로 함께 속하는지 그리고 만약에 그렇다면 다른 문서들 또한 이 구룹에 속하는지는 토론되어져야할 문제들이나, 여기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점은 'apocalypses'는 요한계시록의 그것과 비슷한 양식의 문서들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었던 문학적인 용어이며, 그리고 이와 일치하는 형용사 'apocalyptic'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하나의 문학적인 용어였다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apocalyptic'이란 용어가 하나의 문학적 쟝르를 가르키는 형용사로뿐만 아니라, 또한 결코 묵시로 제약되지 않는 이 시대의 종말과 미래 인간의 운명에 관계된 하나의 사상패턴을 언급하는 명사 또는 집단적인 용어(Sammelbegriff: Koch(코흐) 1972, p. 20; 원독일어판, p. 17)로 사용되어왔다는데서 혼란이 일어난다. 'apocalyptic'이란 용어는 이와같이 어떤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의 모호한 용어가 되었고, 그리고 거기에는 합쳐짐으로 피할 수 없는 위험이 있는데, 그것은 이 용어의 개념이 어떤 가치를 인정받을때까지는 중단되지 않을 많은 다른 종류의 문서들까지도 포함하는데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것이다(Hanson(핸슨),1976a, p. 29). 'apocalyptic'이란 용어가 가끔 모호하게 사용되는 경우에 대해 러셀의 'Jewish Apocalyptic'(유대묵시)에서, 예를 들자면 다음의 문단 안에서 잘 설명되어져 있다.

중간시대에 걸쳐서 나타난 유대 묵시의 성격은 극도로 복잡하다; 한 책과 다른 책간에는 상당한 차이점들이 있는데, 적어도 다니엘서와 묵시적 전통으로 다니엘서을 따르는 것들 사이에서 적지 않게 나타난다. 그렇지만 거기에는 그것을 하나의 분명한 문학적 몸체(corpus)로 정당하게 분류할 수 있는 하나의 동질성이 있다. 이 동질성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항상 정의 내리기는 쉽지 않는데, 왜냐면 그것은 비록 매우 뚜렷한 어떤 특성들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심지어 그것의 일부 양식적 특징들이 결여되어 있을 때에라도 묵시는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록 예언과 관계 되지만 오히려 예언의 그것과는 다른 종교적인 분위기 또는 기질안에 놓여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다양한 '표시들'은 필수적이거나 또는 모든 묵시적 문서들에게서 발견되어져야 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하나의 특별한 사상과 믿음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하나의 독특한 종류의 인상을 만든다는데서 묵시에 속한다(러셀, 1964, pp. 104-5).

러셀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러셀 자신이 'apocalyptic'이란 단어의 모호성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과 많은 곳에서 문학적 장류인 'apocalypse'와 묵시적 사상의 패턴 사이의 구분을 명확히 했다는 것을 덧붙쳐야 한다(pp. 39-40, 106-7).

현대 용법에서 'apocalyptic'이란 단어의 모호성을 인식한 것은 전혀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만(궁켈, 1895, p, 290;스타우퍼, 1955, p, 19), 단지 최근 몇년에 와서야 볼 수 있듯이 이 용어의 모호성에 대해 진지하게 취급되어졌으며, 그리고 이것과 관계된 용어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여기서 무엇보다 먼저 코흐의 노력에 대해 언급할 것이다. 코흐는 묵시들과 집단적인 용어인 'apocalyptic'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지었고, 이 양자의 특성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Koch(코흐), 1972, pp, 18-35; 참조 Barr(바-르), 1975-6, pp, 14-19; Stone(스톤) 1976,p, 450,n. 64). 한편 이와같이 그는 묵시들를 설명하는데 양식비평를 시작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지식운동 안에서 'apocalyptic'이라고 인정되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의 그룹들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이 모티프(Motif)의 그룹들은 다음과 같다;

(1) 임박한 미래에 모든 세상의 환경들을 뒤엎을 것에 대한 시급한 기대;

(2) 하나의 거대한 우주적 재앙으로써 종말;

(3) 종말의 시기와 이전의 인간 그리고 우주의 역사 사이의 밀접한 관계와 세상 역 사가 창조시부터 미리 결정되었던 내용으로 분절됨;

(4) 이 세상의 일들에 대한 천군들과 악마들의 개입;

(5) 재앙을 넘어서 이스라엘 안의 의인들을 위한 새로운 구원;

(6)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행동의 결과로써 일어나는 재앙에서 구원으로의 전환 과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설립함; 이시대와 도래할 시대 사이의 구분;

(7) 왕의 기능들을 갖는 중개자의 잦은 출현;

(8) 새시대에 대한 묘사에 '영광'이라는 표제를 사용함.

코흐는 이 주제들의 구룹들이 후기 이스라엘과 초기 기독교 묵시문학에 국한되어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시했지만, 이것들을 함께 배열하는 것이 이 운동의 특징들을 유일하게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견해에서 보면, 우리는 묵시는 하나의 문학적 현상으로써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의 특별한 마음의 태도의 표현이라고 인식할 수 있으며, 그리고 결과적으로 'apocalyptic'를 하나의 집단적인 용어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본다(1972, p. 33).

코흐의 논의는 비록 간단하기는 하지만 매우 가치가 있으며, 최근의 연구들이 더 진행되어지면서 원칙상 그가 하나의 지식 운동으로써 묵시들(apocalypses)과 'apocalyptic' 사이를 명확히 구분한 것은 양쪽을 더 연구하는데 확실히 유일하게 만족스러운 기반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코흐의 주장은 많은 면에서 비평되어져야 한다.

첫째로, 우리가 관찰할 수 있듯이 그는 두개의 교리적 가정들 중 하나로써 그것을 주장함으로 'apocalyptic'이란 개념이 실행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 여기서 그는 문학적 현상과 지식 운동 양쪽을 마음에 두는 것처럼 보인다 - 우리는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구성된 문서들 또는 그 안에서 히브리 또는 아람적인 정신이 지배적인 문서들, 말하자면 다니엘, 제 1 에녹서, 제 2 바룩서, 제 4 에스드라서, 아브라함의 묵시 그리고 요한 계시록 등의 문서들에서 시작해야 한다(코흐, 1972, p, 23). 반면에 귀납법적 방법이 묵시의 연구하는데 있어서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으로 보이며, 또 일반적으로 동의하듯이 이 범주에 속하는 문서들로 연구를 한정함으로 이 장류에 있는 어떤 또는 모든 중간기 문서들을 한 덩어리로 만들려는 경향을 바로잡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헬라어로 기록된 유대적 묵시들(제 2 에녹서, 제 3 바룩서와 아브라함의 유언)이 여기서 고려되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열두 족장들의 유언과 모세의 승천기는 더 문제가 되는 문서인데, 코흐(1972, p. 34;원 독일어 판, pp. 31-2)는 여러개의 콤란 문서들처럼 이것들을 묵시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영어 번역판이 아닌 원독일어판에서 보면 코흐는 주로 그것들의 관계를 문학적인 쟝르가 아닌 지식 운동과의 관계에서 중요시 했던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 두 문서를 묵시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이 문학적 장류에 유언 또는 고별연설을 포함하도록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참조.G. von Rad (폰 라트), 1968, p. 331, n. 28). 그러나 이 문제는 후에 더 많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코흐가 지식 운동에서 'apocalyptic'인 특징들이라고 하는 목록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이 종류의 목록이 현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제공할 만한 가치를 갖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비평되어져왔는데(Betz(베츠), 1969 a, pp. 135-6; Hanson(핸슨), 1975, pp. 6-7; 1976 a, p. 29), 반면에 Stone(스톤)(1976, pp. 440-1)은 코흐가 말한 목록이 특별히 코흐가 주목한 모든 특징들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 어떤 묵시들(예를들면, 제 3 바룩서)에 근거하고 있으며, 이에반해 그가 말하는 많은 특징들이 묵시가 아닌 다른 문서들(예를들면, 열두 족장들의 유언들)에게서 발견되어진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코흐의 목록은 일반적으로 묵시로 간주하는 그런 내용들을 가진 문서들을 정도 이상으로 넓게 포함시키고 있다고 받아들여지는데, 이것은 'apocalyptic'과 묵시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으나,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코흐의 시도가 옳게 보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종류의 목록이 'apocalyptic'이란 용어에 하나의 충분한 이해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며, 과거에 나타났듯이 문학적인 특징과 신학적 특징들을 획일적인 방법으로 함께 뭉쳐지는 경우에는 더 할 것이다(참조 Stone(스톤), 1976, p. 441). 그러나 공통의 특징들을 동일시하는 것은 묵시와 'apocalyptic' 양자의 적합한 이해와 정의를 위해 필수적인 선결요건 될 것이다(참조 Koch(코흐), 1972, p. 23).

이 시점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 스톤의 논의을 언급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는데(1976, pp. 439-43), 스톤은 부분적으로 코흐의 비평에 근거를 두고 말하기 때문이다. 스톤은 강조하기를 이런 혼란은 'apocalyptic' 또는 'apocalypticism(묵시주의)'과 묵시들(apocalypses) 사이를 분명하게 구별하는 것을 실패함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 둘은 동일시 될수 없다는 것은 묵시주의가 거의 전적으로 일부의 묵시들 안에서 나타나고 있지 않고 한편 이 문학적 쟝르에 속하지 않는 문서들 안에서 발견되어진다는 사실에서 분명해진다. 스톤은 그의 짧은 토론에서 인식 가능한 많은 관찰들을 보여주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 요점에만 관심을 갖겠다. 첫째로, 스톤은 묵시들을 설명하려면 묵시주의뿐만 아니라 그들의 저자들이 관심을 갖는 모든 영역의 문제들, 예를들면 제 2 바룩서 59:5-11; 제 2 에녹서 23:1-2; 그리고 제 1 에녹서 60:11이하 등에서 나타나는 세상에 대한 사색적인 관심의 문제에 대해 고려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확신있게 주장한다; 위의 문서는 그의 소논문의 주요한 촛점를 형성하는 것들의 목록이다. 둘째로, 다시 되돌아와야 할 점으로, 스톤은 만약에 우리가 'apocalyptic'과 'apocalypticism'라는 용어를 합쳐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다면 혼란을 피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하나의 대안으로 그는 시험적으로 '묵시적 종말론'이라고 제안한다.

스톤의 소논문과 같은해에 나온 한 아티클에서 핸슨은 이중적이 아닌 삼중적인 구분으로, 말하자면 묵시들(즉 다시 말하자면 문학적인 장류), 묵시적 종말론 그리고 묵시주의 사이의 구분을 주장한다. 그는 묵시적 종말론은 '하나의 쟝르나 사회종교적인 운동이나 사상의 체계가 아니라, 오히려 세속적인 현실들을 신적인 계획들의 입장을 통하여 보는 하나의 종교적인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묵시적 종말론을 하나의 예언자적 종말론의 연속으로 간주하나 후자와 대조적으로, 전자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비전이 더 이상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상황의 현실들 안으로 통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참조 Hanson(핸슨), 1975; 뒤이어지는 pp. 169 이하를 보라). 묵시적인 종말론은 묵시주의와 같은 것이 아니지만, 묵시주의가 발전할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핸슨은 묵시주의 자체를 하나의 사상의 체계 또는 이념으로 간주한다. 이것는 하나의 사회 종교적인 현상으로 공통성을 지닌 그룹들('묵시적 운동') 안에서 나타난다: (a) 특별한 형태의 사회적 배경, 즉 소외를 경험한 그룹, (b) 관계된 그룹의 반응, 말하자면 묵시적 종말론에 호소함으로 하나의 대안으로써 우주의 의미를 만듬. 핸슨은 최초의 묵시적 운동이 기원 전 6세기에 시작한 것으로 본다.

최초의 묵시적 운동들에 관한 핸슨의 견해들을 아래에서 보다 자세하게 볼 필요가 있다.( pp. 170-6를 보라); 여기서 그의 삼중적 구분이 전적으로 도움이 되는지 물어야 한다. 핸슨이 분명하게 묵시주의와 묵시적 종말론를 분리하는데 성공했는지 그리고 정말 그것들 사이의 분리가 가치있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핸슨이 이같은 분류를 시도한 이유들은 - 예언은 묵시적 문서들 안에서 단지 하나의 흐름이며(심지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하더라도), 묵시들이 아닌 문서들 안에서 묵시적 사상들이 실제한다는 사실 - 오히려 묵시들과 묵시적 종말론 사이를 분류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다른 방향으로 말하면, 만약에 묵시주의와 묵시적 종말론 사이의 하나의 실제적 구분이 존재한다면, 이것은 묵시들에게서 묵시주의를 분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핸슨의 삼중적인 구분은 묵시주의가 단지 묵시들들 통하여 접근될 수 있으며(참고 콜린스, 1979 b, p. 4), 그것들에게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한다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묵시들과 묵시적 종말론, 이 두가지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것이 묵시에 대한 사회학적인 연구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소논문의 분야에서 이 문제에 관계해서 취급하는 가장 최근에 연구 중 하나는 콜린스와 많은 그의 동조자들이 시도하는 것으로 묵시들의 문학적인 쟝르에 대해 설명하고 정의하려는 것이다(1979 a). 이 시도는 콜린스 자신에 의해(1979 c) 공헌된 것으로 유대적 묵시들뿐만 아니라 또한 랍비문서들안에서 나타난 묵시적 자료들과 기독교, 영지주의, 헬라 그리고 로마 그리고 페르시아 문서에 대한 연구에 기초한다; 콜린스(1979 b)는 또한 그가 연구중에 채택된 방법들과 결과들을 요약하는 하나의 서론적인 소논문을 제공한다. 콜린스는 여기서 우리에게 주요 관심이 되는 두 가지 공헌을 했다(1979 b와 c).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이 연구가 이전의 코흐, 스톤 그리고 핸슨의 논의를 받쳐주는 것으로 그들의 많은 결론들을 채택하고 있다는 사실인데, 여기서는 단지 문학적 쟝르의 문제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 작업에서 따른 방법은 일반적으로 묵시들로 간주되거나 또는 그것들과 유사하게 보여지는 모든 문서들 안에서 유력하게 반복되는 특징들의 목록을 적음으로 그것들의 유사성의 정도를 평가하여 정당하게 이 쟝르로 구분될 수 있는 문서들을 결정하는 것이다 - 이것은 말하자면 귀납법적 방법이다. 콜린스는 주장하기를 반복되는 중요한 요소들은 묵시들의 골격과 내용 양측과 관련된 하나의 주요-도식를 형성하며, 이 도식 내에서 이 쟝르에 대한 하나의 이해가능한 정의를 내리는데 기초를 제공하는 분명한 특징들이 계속적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적지 않은 요소들이 우리가 묵시들로 명칭하는 매 문서에서 계속 나타난다. 이 요소들은 골격과 내용 양쪽을 모두 포함한다. 그 안에는 항상 하나의 이야기 골격이 있는데, 곧 계시의 방법(환상들, 환청들, 타계의 여행들, 문서들)이 서술되어져 있다. 이것은 항상 타계의 중재자와 인간 수령자를 포함한다 - 이것은 결코 단순히 천상의 존재나 인간에 의한 하나의 직접적인 신탁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항상 세상에 대한 미래와 타계의 실제들 양자 모두를 보여주는 하나의 종말론적 구원을 가지고있다. 이 종말론적 구원은 항상 그 성격상 한정적이며, 그리고 개인 사후에 대한 일정의 양식에 의해 표시된다....

그러면 계속되는 요소들의 공통적인 핵은 우리에게 하나의 쟝르에 관한 이해가능한 정의를 내리게 한다; '묵시'는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가진 계시 문학쟝르로 그 안에서 계시는 타계의 존재가 인간 수령자에게 보내는 중재에 의해서 나타내며, 그것이 종말론적 구원을 내다보는 한에 있어서는 현세적이며, 다른 것을 포함하는 한 공간적이며, 초자연적의 세계가 되는 초월적인 실제를 보여준다(Collins(콜린스), 1976 b, p. 9).

이 도식과 정의를 근거로, 콜린스는 비록 양식적인 관계는 되어있지만 이 쟝르에 속하지 않는 것에서 묵시들인 문서들을 구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더 나아가 묵시적 장르 자체는 많은 유형들로 세분화될 수 있으며, 이런 묵시들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구분은 다음과 같다 (1) 타계의 여행 기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2) 타계의 여행 기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유형들은 아래와 같은 것에 따라 더 세분화 되어진다. (a) 역사적인 회고를 포함하고 있는 묵시들, (b) 우주적인 그리고 또는 정치적 종말론은 있으나 역사적 회고가 없는 것, (c) 또는 단지 개인적인 종말론만 있는 것. 이같은 분류의 구조내에서, 클린스의(1979 c) 견해에 의하면 대체적으로 기원전 250년에서 기원후 150년 사이로 추정되는 다음의 유대적 문서들을 묵시들로 간주한다:

(1 a) 역사적 회고는 있으나 타계의 여행이 없는 묵시들: 단 7-12; 제 1에녹서 85-90(동물 묵시) ; 제 1에녹서 93 과 91; (11) 12-17(주간들의 묵시들);희년 의 책 23; 제 4에스라; 제 2바룩서

(2 a) 타계의 여행과 역사적 회고가 있는 묵시들; 아브라함의 묵시

(2 b) 우주적 그리고 / 또는 정치적인 종말론를 가지고 있는 묵시들 : 제 1에녹서 1-36; 제 1에녹서 72-82(천상의 권위자들의 책);제 1에녹서 37-71(에녹의 비 유들); 제 2 에녹서; 레위의 유언 2-5.

(2 c) 단지 개인적인 종말론을 가지 타계의 여행들이 있는 묵시들: 제 3 바룩서; 아 브라함의 유언 10-15; 스바냐의 묵시.

비록 더 자세하게 토론되고 점검되어야할 많은 점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 목록에 대해 자세하게 논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다니엘서를 두 부분으로 날카롭게 나누는 것과 그리고 단지 후반의 여섯장들을 묵시로 간주하는 것이 정당한지, 또는 희년의 책 23장이 실제로 묵시인지 등이다. 또한 여기서 이 목록의 기초를 놓는 도식과 정의에 대해 자세하게 논평하는 것도 또한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이 시도는 형식과 내용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들에 근거해 묵시들로 정당하게 간주할 수 있는 하나의 정확한 문서들의 목록를 제공함으로 일보 전진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희년의 책 23장를 제외한다면 콜린스의 목록에 포함된 모든 문서들이 실제로 묵시들에 속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지만, 여기에는 정의에 대한 그의 기준에 의해 제외된 문서들에 대해 더 관심를 가져야한다. 한편 콜린스는 구약성서에 안에서 스가랴 1-6을 비록 계시의 방법에 있어서 후기의 묵시들이라고 예견하지만 그것이 분명하게 묵시적 종말론을 가지지 않았다는 근거로 제외시키고, 다른한편 이사야 24-7;56-66; 에스켈 38-9; 요엘서; 스가랴 9-14장을 비록 묵시적 종말론의 일부의 주요한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묵시적 계시의 방법이 없다는 근거로 제외하였다(1979 c, p. 29). 중간기의 문학에 대해서 콜린스는 유언들(제 1에녹서 91:1-4; 모세의 승천(또는 유언); 열 두 족장들의 유언들;욥의 유언)과 신탁들(시빌의 신탁들) 양쪽를 제외하는데, 둘 중 어느 경우도 타계의 인물에 의해 계시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1979 b, p. 10; 1979 c, pp. 44-7). (Collins(콜린스)(1979 c, pp. 48-9)는 또한 당연히 묵시들로 간주할 수 있는 쿰란에서 나온 약간의 단편적인 문서들의 위치에도 손질을 하였는데, 이 문제는 여기서 더 이상 다룰 수 없다. 잘 알려진 쿰란문서들은 묵시들이 아니지만 묵시적 종말론의 연구에는 중요하다.)

이제껏 다루어진 구약성서의 문서들에 대한 입장은 나중에 다루고, 중간기의 문서들로 한정해서 생각해보면, 여기서 유언적이며 신탁적인 자료들를 묵시적 쟝르에서 배제하는 것이 옳게 보인다는 것 이상을 언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 다 문학적 양식들은 분명히 묵시들과 비숫하데, 유언서들의 경우에는 특별히 가까운 관계가 있다; 제 1에녹서 91-104(에녹의 서신)는 그 안에 묵시(제 1 에녹서 93과 91;(11)12-17)를 포함하고 있으며, 성격상 유언적인 자료가 제 2에녹서의 한 부분를 형성한다( 제 2에녹서 39-66장을 보라). 이러한 점들에도 불구하고 유언들과 신탁들은 성격상 묵시와 충분히 다르므로 그것들을 다른 쟝르로 때어놓는 것이 더 유익하다; 같은 방법으로 쿰란의 성경 주석서들도 묵시적 쟝르로 덧입혀져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시로부터 아주 구별된다. 열 두 족장들의 유언들, 시빌의 신탁들과 대다수의 쿰란 문서들 같은 문서들은 묵시적 종말론의 토론에 있어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문학적인 쟝르로 묵시들에 속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 부분를 시작하는 문단에서 제기했던 두 가지 문제들를 반복함으로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을 유용하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1) 비록 고대세계에서 동일시되지는 않았지만, 묵시들이라고 규정되는 하나의 구분된 그룹이 있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최근의 연구들(Vielhauer(필하우어) 1965, pp. 582-7; Koch(코흐), 1972, pp. 23-8; Hanson(핸슨), 1976, pp. 27-8; Gammie(가미), 1976, pp. 191-4; Collins(콜린스), 1979 a)은 이런 문서들에 대한 문학적 양식 비평적 서술를 하는 가치있는 시도를 했으나, 이것은 더 분명하게 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묵시들에 대한 하나의 정확한 목록을 만드는 시도가 도움이 될 것이다.

(2) 만약에 하나의 명사로 사용된 'apocalyptic'이란 용어를 분리시켜 다른용어와 합쳐 사용한다면, 많은 혼란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Stone(스톤), 1976, p 443와 Koch (코흐), 1972, p. 35를 대조해서 참조하라). 내 견해로는 가장 도움이 되는 구분은 단순히 묵시들과 묵시적 종말론 사이를 나누는 것이다; 후자는 아마 그렇게 불리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왜냐면 그것은 비록 묵시들 안에서 유일한 요소가 아니며 그것들에 제한되지는 않지만, 그것은 하나의 분명한 지배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종말론적인 요소를 제쳐두면, 특별히 제 1에녹서의 일부분, 제 2에녹서 그리고 제3 바룩서 안에 반영되어져 있는 우주에 대한 사색적인 관심이 묵시들 안에 실제한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II.

지혜가 묵시문학의 모태로 묵시문학을 탄생시켰다는 사상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최근에 이것을 현저하게 드러낸 것은 폰 라트의 저서들에 의해서이다. 이 문제에 대한 그의 견해들은 '구약성서신학' 제 2권에 처음 제시되었으나(1960, pp. 314-28; 이 판의 영어판은 1965, pp. 301-15), 제 4판에서 이 주제에 대한 그의 논점은 상당히 개정되고 확대되었다(1965; 사실 여기서는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제 5판이다(1968, pp. 316-38), 그리고 '이스라엘의 지혜'(Weisheit in Israel, 1970, pp. 337-63;영어판, 1972, pp. 263-83)라는 저서에서 다시 이것을 취급하고 있다. 여기서는 '구약성서신학'의 가장 최근판(5판)에서 언급된 주장에 근거를 두도록 한다.

폰 라트는 이 소논문의 이전부분에서 고찰되었던 방법론적인 문제들을 제기함으로 그의 논의를 시작했다. 그는 묵시적(apocalyptic)이란 용어는 두 가지 별개의 방식으로 사용된 하나의 모호한 용어라고 주목하면서 묵시적 개념을 묵시들의 문학적인 현상에 국한시키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주장한다(Beardslee(베어드슬리)도 비슷하게 주장한다 1971, p. 422). 그렇지만 실제적으로 그는 묵시들(apocalypses)과 묵시적(apocalyptic)이란 용어 사이에 일관성 있는 구분을 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폰 라트가 주목한 것은 묵시적이라는 것이 지혜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사실이다. 첫째로, 다니엘, 에녹 그리고 에스라는 현자들과 서기관들의 이름으로 제시되어있는 반면에 대조적으로 묵시 문서들은 유명한 선지자들의 이름으로 붙여지지 않았다는 다는 점이다. 둘째로, 묵시적 문서들의 관심은 우주적인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고대세계에서 지혜의 한부분이었다는 것이다(솔로몬의 지혜. 7:18-20). 폰 라트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묵시를 예언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왜냐면 역사에 대한 예언자적 이해와 묵시적 역사이해는 전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그는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에반해 고대 이스라엘 안에서 특별히 예언자에 있어서 역사는 이스라엘이 야훼를 경험하는 영역이며, 이 한가지 영역에서만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인데, 묵시적 문서들에서 나타난 이스라엘에 대한 역사에는 전적으로 어떤 고백적인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니엘서 7장에 대한 언급에서 폰 라트는 사건 밖에 보는 사람의 입장, '관객의 입장에서' 사건에 대해 말한 것이라 본다.) 그의 견해에 의하면, 묵시적 저자들은 역사의 사건에 야훼가 참여하고 있다는 어떤 인식도 보여주지 못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다는 것이 오히려 핵심적인 것이다. 그의 주장을 발전시키는 두 번째 단계에서 폰 라트는 묵시들에 대한 전승사적 접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그는 다시 결정론의 주제를 다루었다. 그는 시대에 대한 신적인 결정론의 개념이 묵시적 사상의 중심으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지혜의 기본적인 전제가 되며, 또한 시대에 대한 이해( 에스더 1:13절을 참조하라), 말하자면 신탁과 꿈의 해석은 현자의 일이며, 이 점은 다니엘과 요셉 사이의 평행적 관련성들을 언급함으로 설명되어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더 언급할 점은 두 가지이다: 폰 라트가 본대로 신정론의 문제에 대한 묵시적 관심과 지혜와의 연결의 문제이다. 이것과 관계해서 제 4 에스드라서와 제 2 바룩서에서 사용된 용법을 폰 라트는 지혜를 교훈하는 하나의 문체적인 수단으로 간주하는데, 말하자면 질문과 대답의 방법이다. 폰 라트는 스스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형식을 지혜의 자료로 간주하여, 묵시적 문서들이 지혜전승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거의 소수이지만 폰 라트의 견해에 전적으로 수긍하는 학자들이 나타났다. Lebram (레브람)(1978)은 그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Betz(베츠)는(1969a, p. 136; 1969b, p. 201) 폰 라트에 대해 언급하면서 비록 그의 주관심은 묵시주의가 하나의 순수하게 유대 안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간주할 수 없으며, 오히려 헬레니즘에서 기원한 혼합주의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을 논증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묵시주의 안에 있는 지식과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베츠의 입장에 대한 비슷한 강조가 Smith(스미스)의 연구에서 발견된다. 그는 그의 논의의 근거를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자료들에 대한 검증 위에 두고 '지혜와 묵시는 양측이 본질적으로 서기관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관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p, 140). 그는 또한 '묵시주의는 왕궁과 보호자가 결핍된 지혜문학'이라고 주장한다(p. 154). Muller(뮐러)는(1972, 1969 것도 참고하라) 그의 견해에 의하면 묵시 이면에 놓여있는 지혜의 종류에 대해 정의함으로 폰 라트를 변호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뮐러는 교육적인 지혜와 인간내면에 대한(mantic) 지혜 사이를 구분해야 하며, 묵시주의는 전자보다 후자의 연속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주목하기를, 폰 라트(1968, p. 331; p. 323를 참고하라)가 묵시 안에 단지 지혜의 어떤 요소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관찰했을 때, 폰 라트 자신은 이 점을 다루었다고 말한다. 특별히 꿈해석과 신탁과 '징조들'에 대한 고대의 학문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폰 라트에 견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다음을 참고하라. Vielhauer(필하우어), 1965, pp. 597-8; von der Osten-Saken(폰 데어 오스탠-자켄), 1969;Zimmerli (침멀리), 1971, pp. 139-44, 특별히 140; 1978, p. 235; Koch(코흐),1972, pp.42-7; Nicholson(니콜슨),1979, pp. 207-11). 이 비판적인 논평은 두 개의 주요 노선을 따르고 있다(JSJ(Journal for the Study of Judaism)안에 있는 Knibb(니브)의 소논문을 참고하라).

다른 한편으로는 만일 지혜가 묵시적 문학의 기원을 이루는 기반이라고 한다면 지혜문서들과 묵시문서들 사이의 차이점들은 매우 크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별히 지혜문서들 안에서는 종말론에 대한 관심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는데 이에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대조를 통해 잘 보여지는데, 코흐는 동 시대의 전후에 문서인 집회서와 다니엘서를 대조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폰 라트 자신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묵시의 가장 독특한 특징이 역사의 종말에 대한 관심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강조했다(1968, pp. 329-30). 그러나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 이것은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보여주는 가정으로, 지혜는 어떤 경우에 백과사전식의 경향이 있는데, 후기의 단계에서는 마지막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외국의 자료들, 특별히 이란의 자료들의 흡수가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어떤 증거에 의해서도 지지받지 못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에 대한 예언적 관점에서 묵시적 관점으로 인도된 길이 없다는 폰 라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지적되어왔다. 폰 라트의 견해에 의하면 후자의 현저한 특징들은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되었다는 사상이며, 예언의 일반적인 특징은 야훼께서 역사의 사건들을 통제하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반면에 von der Osten-Saken(폰 데어 오스텐-자켄)(1969, pp. 18-34)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제 2 이사야는 역사에 대한 묵시적 견해와 특별한 평행을 보여주는데, 야훼께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결정하실뿐만 아니라 또한 예고하시기도 한다는 확신을 보여준다. 물론 묵시문서들 안에서 표현된 결정론적인 사상이 표현된 방식은 예언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 그러나 이것은 묵시들이 예언의 연속선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논문의 다음 부분에 있는 논의를 살펴보라). 더 나아가 여기에서는 폰 라트가 주장한대로 비록 결정론적인 사고가 지혜문헌들과 묵시들 양측의 기본적인 특징이라고 해도, 지혜의 결정론은 역사와의 관련이나 혹은 종말과의 연관에 있어서 그 어느 곳에도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것들이 묵시들의 결정론에서 핵심적인 특성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개관된 비평은 묵시 문학의 기원에 대한 폰 라트의 견해를 받아드리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그의 견해가 너무 일방적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Hengel(헹겔)의 책 1권을 참조하라, 1974, pp. 206-7). 이 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기 위해서 지적했던 증거들은 아직 설명될 필요가 있다. 특별히, 중간기의 유대 묵시들에게 붙여진 가장 중요한 네 가지 이름이 현자들과 서기관들(다니엘, 에녹, 에스라, 바룩)의 이름이었다는 것과 대조적으로 선지자들의 이름들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엘리야의 묵시와 스바냐의 묵시는 매우 불확실하며, 예외적인 가능성을 가진다; 이사야의 승천기에 포함된 묵시(6-11장)는 기독교 묵시이다)에 대해 적당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 지혜문학의 특징은 확실히 묵시들 안에서 발견되어지므로 여기서 이것들을 긍정적으로 설명하려는 일부의 최근의 시도들을 언급할 것이다.

첫째로, 여러 저자들은 묵시 문서들과 지혜 사이의 특별한 연결점들로 간주되는 것을 검증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콜린스(1977)는 솔로몬의 지혜서가 성서의 지혜전통과 묵시문학 사이의 가장 밀접한 접촉점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지혜문학과 유대적 묵시문서들과 사이의 비교를 시도하였다. 그 시도는 명확한 접촉점을 마련했다는 데에 가치가 있지만 묵시들의 취급에 있어서 지나친 객관화로 인해 논지가 약화되었다. 매우 다른 종류의 비교, 말하자면 시대에 대한 묵시적 태도와 지혜의 그것과의 비교를 de Vries(드 브리스)(1978)가 시도하였다; 그는 지혜로 묵시를 묶는 필수적인 요소중의 하나가 무시간성(timelessness)인데 - 이것은 '가장 심오하고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그것들의 일반적 경향으로 실제의 모든 것을 하나의 단순한 우주적인 원리로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p. 270). 또한 여기서 지혜와 묵시문학에서의 공간적 이원론과 윤리적 이원론의 개념에 대한 Gammie(가미)의 분석과 그의 제안을 언급한다; '지혜문학은 묵시적 저자들이 이러한 개념들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적어도 근원들 가운데 하나는 공헌햇다고 킩 수 있다(p. 384).'

둘째로, 분명하게 많은 묵시문서들에서 주어진 자연과 우주에 대한 관심을 진지하게 취급해야 할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것은 특별히 천상여행 기사를 포함하고 있는 문서들에게 있어서 그렇다. 예를 들면 제 1 제 2에녹서(Betz(베츠), 1969a, pp. 136; 1969b, p. 201; Stone(스톤), 1976, pp. 425-6, 431, 434-5를 참고하라)이다. 이러한 관심은 묵시들이 식자(識者)전승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마지막으로, 적지 않은 연구들이(Collins(콜린스), 1975, pp. 30-1; Willi-Plein(윌리-플라인,1977, pp. 66-8, 76-81를 보라; JSJ에 있는 Knibb(니브)의 소논문) 묵시들의 저자들이 그 안에서 구약성경을 사용하고 재해석하고 있다는 방향으로 강조점이 두어지고 있다. 묵시들은 하나의 해석문학이며, 그리고 이것은 더 나아가 학문적 문서들로 그것들의 성격의 일면을 보여준다. 유대의 묵시들은 구약성서의 예언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또한 그것들은 매우 견고하게 식자전승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III.

1979년 출판된 한 연구 소논문에 니콜슨은 묵시가 예언의 계승자라고 고려될 수 있었던 내용과 범위에 대한 방향에 연구의 촛점을 맞추었다. 그의 연구는 25년의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년도인 1974년에 나타난 것으로 이 주제에 대한 하나의 유익한 설명을 제공해주었는데,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다시 복습하는 것은 불필요할 것이다. 여기서의 주로 지난 10년 동안에 출판된 많은 연구들 중에 휠씬 제한된 하나의 관심에 모아지는데, 예언에서 묵시적 종말론으로의 전환되는 계통들과 묵시들이 구약성서의 예언자적 전통의 다른 요소들에 놓여져 있다고 보인다는 점이다.

나는 편의상 이 문제에 대한 핸슨의 연구, '묵시의 여명'(The Dawn of Apocalyptic)을 언급함으로 시작하겠다(1975; Carroll(카롤)(1979)의 훌륭한 요약과 비평을 보라; 핸슨은 그의 견해를 많은 소논문에서 예비적인 양식으로 제시했으나(특별히 1971, 1971; 또한 Cross(크로스)를 참고하라,1969), 그 논의는 단지 여기서는 '묵시의 여명'의 근거 위에서이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핸슨의 책은 단지 묵시적인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저자는 이것을 이른바 많은 묵시적 저서들의 중심에 흐르는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한다. 그는 예언적 종말론에서 묵시적 종말론으로의 전환은 이사야 56-66장를 포함한 예언들의 수집물에서 관찰될 수 있는데, 이 수집물에 대한 분석이 이 연구의 중심이 된다. 예언적 종말론과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정의를 하는 것이 이 방법의 기초가 되며, 이와 관련된 문단을 전체로 인용하는 것이 가치가 있을 것이다.

예언적 종말론은 하나의 종교적인 관점으로 정의되는데 예언자가 계시된 천상회의에서 목격한 것과 명백한 역사와, 실제 정치세력들, 그리고 인간의 수단에 의해서 해석한 이스라엘과 세계를 위한 신적인 계획들을 국가들에게 선포하는 예언자적 선언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말하자면 예언자는 왕과 백성들에게 어떻게 천상회의의 계획이 그들 국가의 역사와 세계역사 상황내에서 영향을 줄 것인가를 해석한다.

묵시적 종말론은 하나의 종교적인 관점으로 정의되는데 야웨의 주권에 대한 우주적 환상을 꿈꾸는 선민들에게 알려지는 계시(보통 성격상 신비적(Esoteric)이다)에 솸점이 맞쳐진다 - 특별히 이것은 그에게 신실한 자를 구원하는 야웨의 행위와 관련되어진다 - 이 계시는 환상가들이 주로 명확한 역사, 실제 정치세력들, 그리고 인간의 수단에 의해 번역하기를 중단하는데, 이는 환상가들이 처해 있는 암울한 포로기 이후 상황들에서 나오는 현실에 대한 비관적인 입장에 기인하다. 이런 상황들은 그들에게 야웨의 회복을 그리는 것으로는 부적합한 것들로 보인다(1975, pp. 11-12; 더 위에 언급된. pp. 160-1를 보라).

이에 반하여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은 신화론적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계속해서 정치세력들과 명확한 역사에 개입하는 야웨의 목적의 환상을 해석했다. 제 2 이사야는 포로기의 재난적인 상황에 반응하여 투쟁 신화의 제의적인 패턴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사라진 왕의 등극제의에서 빌려옴으로, 전(全) 우주의 창조자와 지배자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환상을 표현하려고 했다. 신화론적 자료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제 2 이사야는 환상과 현실, 신화와 역사 사이의 긴장을 유지했다. 그렇지만 그를 따르는 환상가들은 이 긴장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갈수록 정치적-역사적 영역을 포기하고 신화론적 영역으로 숨어버렸다.; 핸슨에 따르면 묵시적 종말론은 이와같은 배경에서 나왔다. 신화적 주제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 2 이사야는 핸슨에 의해 '원-묵시'(proto-apocalyptic)로 지명되며, 반면에 사 55-56장은 묵시적 종말론이 그 안에서 발전되고 있으므로 '초기 묵시'(early apocalyptic)로 서술된다(Hanson(핸슨), pp. 11-31, 126-32, 299-315). 핸슨의 주목적의 하나는,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아니지만, 사용된 신화가 가끔 그렇게 주장되듯이 페르시아의 이원론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자체에 뿌리를 두며, 궁극적으로 가나안 전통들(특별히 신적 전사의 신화)에 근거한다는 보여주는 것이다.

핸슨은 Ploger(플뢰거)의 영향력 있는 저서 '신정론과 종말론'(Theokratie und Eschatologie, 1959)에 다소 비판적인 입장이나, 어느 정도 그의 접근은 이것과 유사하다. 플뢰거는 하시딤(이 견해는 다니엘서에 반영되어 있다)과 마카비 운동(이 견해는 제 1마카비서에 반영되어 있다) 간의 대조적인 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포로기 이후 공동체 내의 전(前) 역사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이와같이 그는 포로기 이후 공동체 내에서 비(非)-종말론적 신정론의 입장과 하나의 종말론적 기대가 살아 있는 요소들 사이의 내면적인 긴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믿는다; 전자의 태도(아마 지배계층과 제사장들이었을 것이다)가 제사장 문서와 역대기 문서에 반영되어지고, 후자의 태도는 다음에서 반영된다: 욜 2:28-3:21(MT 3-4); 슥 12-14; 그리고 사 24-27, 일련의 문장들로 다른 것과 합쳐져 고대를 회복를 바라는 종말론과 묵시적 종말론의 형태 사이의 하나의 연결점을 형성한다. 핸슨의 접근은 이것과 매우 유사한데, 그가 포로기 이후 초기 공동체 내에서의 성직정치 그룹과 환상가의 양 그룹들 사이의 날카로운 갈등과 투쟁이 있었으며, 묵시적 종말론은 지배권을 얻는데 실패한 결과로 환상가의 그룹에서 나왔다고 믿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플뢰거의 견해와 핸슨의 견해에는 매우 본질적인 차이점들이 있다.

핸슨의 재구성에 따르면 성직정치 그룹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사독계열의 제사장들에 의해 지배되는 그룹으로 회복에 대한 그들의 계획들이 켈 40-48장에 나타나 있다. 환상가의 그룹들의 핵심은 제 2 이사야의 제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말하자면 예언자의 한 그룹이라고 할 수 있지만, 포로기 동안 팔레스타인 땅에 남아 있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요인들과 연결되어져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포로기 동안 일시적으로 성전부지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레위 제사장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그룹의 회복에 대한 계획들은 이사야 60-62장에서 발견된다. 핸슨은 이사야 56-66장 내의 신탁들은 레위계-예언자적 그룹의 입장에서 기원전 6세기 후반부에 제의의 회복에 대한 권리문제로 몹시 치열해지고 있는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더 나아가 그가 상황-유형적 방법이라고 부르는 것에 의하면(아래의 pp. 175-6를 보라), 이사야 56-66장 내에 나오는 신탁들을 연대기적인 순서로 배열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 안에서 이 투쟁의 연속적인 단계들이 문서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연속된 순서 내에서 그 투쟁이 치열해질수록 환상과 실제 사이의 긴장이 증가되고 있는 것이 발견되며, 또 레위계-제사장 그룹이 사독그룹에게 그 자리를 빼앗기게 되는데, 이사야 65장과 66장에 와서 마침내 후기 묵시적 종말론의 기본요소들이 되는 이미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묵시적 종말론의 고유적인 특징들은 이사야 65장에서 하나의 일관된 통일체로 모아져 있다; 현 시대는 악하다; 악인에게서 선인를 구별하고 현 세계와 올 세계 사이의 대칭으로 갈라 놓는 표시가 되는 하나의 큰 심판이 임박했다; 심판 넘어에 놓여있는 새로 창조된 평화와 축복의 세계는 신실한 자들을 위해 주어지며, 신세계, 우주적인 심판, 그리고 하나의 변형된 이원론에 대한 가르침은 후기 묵시적 종말론의 기본 구성요소들이다(핸슨, p. 1975, 160; 참조 p. 185)

핸슨(1975, pp. 172-3, 193-5)은 이사야 56-66장의 신탁의 순서의 시기를 제 2 이사야의 생애 앞부분 직후에서 기원전 515-510년 아래까지의 기간으로 추정한다. (사 56:9 - 57:13); 그는 이 신탁들은 모아져 기원전 475과 425년 사이에 하나의 묶음이 되었으며, 사 56:1-8과 66:17-24를 이 시기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편집된 골격으로 간주한다(1975, pp. 162, 186, 388-9). 그의 재구성에 따르면 성직 지배그룹들과 환상가들의 그룹과의 투쟁의 역사는 소위 이사야의 묵시(이사야 24-27)와 스가랴 9-14에 계속 문서화 되었다. 그는 이사야 24-7에 대해서는 단지 간단한 논평만을 하는데(1975,pp. 313-14), 이것을 '중간 묵시'(middle apocalyptic)라고 부르며 대략적으로 기원 전 520년경으로 추정하는데, 이 기간은 성전 논쟁의 기간이다. 그렇지만, 이 장에서는 Millar(밀라)의 의해 이것이 조금 자세히 연구되어져 있다(1976; 1978-79년에 Coggins(코긴스)에 의해 반복되어 나온 소논문을 보라). 밀라는 핸슨과 기본적으로 같은 입장을 채택하고 있으며 동일한 상황-유형적 방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이에 대해 그는 이사야 24:1-16a; 24:16b-25:9; 그리고 26:1-8을 제 2 이사야 시기와 가까운 것으로 추정하며(520년보다 580년에 근접함), 사 26:11-27절에 대해서는 약간 후기로 그리고 나머지 자료도 조금 후기로 추정한다. 그는 이사야 24-7장를 일치하게 '원-묵시'로 간주하나, 사 26:11-27은 핸슨이 '초기 묵시'로 설명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핸슨은 스가랴 9-14장의 신탁들을 이사야 56-66장에 사용했던 같은 방법론에 근거하여 연대기적인 순서로 위치시켰으나, 그는 이 장들을 때때로 그것에게 간주되는 시기들보다 휠씬 더 이른 시기로 본다. 그는 재구성 과정에서 스가랴 9-11과 13:7-9절의 신탁들은 다소 그 시기가 이사야 56-66의 신탁들과 함께 겹쳐져 있다고 본다. 스가랴 12:1-13:6절은 '중간 묵시'로 설명되는 것으로 조금 나중에 위치하는데, 말하자면 5세기의 전반부에 놓여진다(1975, p. 368). 스가랴 14장은 475년과 425년 사이로 추정되며, 이사야 56-66과 스가랴 9-14장의 모든 신탁들 중에 가장 늦은 것이다; 이 장은 종말론적 사건의 환상을 정치적-역사적인 영역에 관계에서 보는 어떤 시도도 완전히 단념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이것이 묵시적 종말론으로써 특징지어져야 할 부분이다(1975, pp. 394-400).

제의의 회복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에서 성직지배 그룹의 견해는 핸슨에 따르면 에스켈서, 학개서 그리고 스가랴 1-8장에 반영되어져 있으나, 여기서 핸슨은 이스라엘에서 묵시의 시작은 에스켈에서 스가랴로 가는 전승 내에서는 추적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에스켈의 예언들은 제 2 이사야의 예언들과는 달리 '원-묵시'라고 설명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들 안의 양식들과 상징들이 후기의 묵시적 문서들에게서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실용적인 '성향'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가랴 1-8장은 만약에 묵시가 문학적인 기초에서 엄격하게 구분되어진다면 묵시로써 간주할 수 있으나, 이것도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환상의 양식과 주제들은 학개서 안에서처럼 스가랴 1-8장에서 성직 지배층의 성전 계획에 대한 지지를 고무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지나, 이 예언들 안에서 진정한 종말론적 특징은 없다; 오히려 하나의 실용적인 목적이 스가랴 1-8장에서 식별된다; 그의 회복 계획은 결코 현세의 현실들과의 접촉이 사라지지 않으며, 이것은 스가랴서를 묵시의 조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막고 있다(1975, pp. 228-29). 이 점에 대한 핸슨의 접근은 Gese(게제)의 견해와는 대조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게제는 이것을 분명하게 거절한다. 게제는(1973; 1972 North(노스)와 1972년 Amsler(암슬러)를 참고하라) 스가랴의 밤의 환상들의 양식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묵시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일곱 환상들은 - 제 3장은 여덟개의 환상들중 4번째 환상을 포함하는데, 이는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간주된다 - 그것은 원래적으로 하나의 완전한 묵시의 양식으로 연결되어 새로운 시대의 돌입에 대한 하나의 칠중적인 계시이다. 그는 양식과 내용 양자에서 묵시문학의 대부분의 특징들이 밤-환상들에서 발견된다고 주장함으로 그의 판단를 견고히 한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스가랴의 제사장적 제휴라는 조명하에 이러한 결론의 중요성에 강조점을 둔 게제의 연구는 흥미롭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묵시는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구룹에서 태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료직'의 집단에서 태동했다(이 논평은(Jacob(야콥)의 주장과 비슷하다,1977, pp. 55-6) 플뢰거의 입장으로 전개되나, 그것들은 핸슨의 입장에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더 나아가 그의 주장은 밤-환상들에서 없는 하나의 묵시적 요소는 새시대를 시작하는 마지막 대 전쟁에 대한 설명으로 환상-주기에 추가되어져 있는 자료에서 발견된다, 말하자면 스가랴 9-14장이다. 마지막 대 전쟁의 주제는 처음 스가랴 9장과 10장에서 언급되기 때문이라고 게제는 말한다; 그는 스가랴 9장에 대해 이 장은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에 대항한 군사적 행동을 언급하는데, 스가랴 9장에서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선동에 의해 일어나 것으로 간주되고, 종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본다. 다른 묵시적인 요소들이 게제의 견해에 의하면 스가랴 9-14장에서 발견되어진다; 메시야적 희망(9:9-10절을 참고하라), 마지막 때의 순교의 개념(12:10-14절을 참조하라), 고난 받는 메시야 사상(13:7-9절을 참조하라). 게제는 이들 내에 포함된 역사적 암시들을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에 의해 이 장들의 연대를 측정한다; 그는 스가랴 9-11장을 대략적으로 330년에서 300년 사이의 기간으로 보며, 스가랴 12-14장을 프톨레미 왕조의 기간으로, 더 정확하게 기원전 3세기로 본다.

이 논의를 완성하기 위해서 얼링이 에스켈 38-9장에서 이끌어내 논의를 한 번 더 토론하고자 한다(1972; Vowter(파우텔)을 참고하라, 1960, pp. 41-2). 그는 이 장들의 핵심을 에스켈 자신에게서 줄기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것들은 가장 오래된 묵시적 단락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는 묵시적 문학 쟝르의 대부분의 특징들이 에스켈 38-39장에서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이 단락은 그가 주로 관심을 가졌던 후기의 묵시적 전통들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관심을 가졌된 이전의 단락들과 함께 이 단락은 전통적으로 '묵시'의 예언적 기원들에 관한 논쟁을 가져왔다(Zimmerli(침멀리)를 참조하라, 1978, pp. 228-30). 그것들 안에는 예언의 문학적 장르에서 묵시문학적 쟝르로 전환, 포로기 이전 예언자들의 미래 기대에서 묵시적인 종말론으로의 전환이 나타나 있다는 것에 대해 약간의 의문이 제기된다. 전자에 대에서 가장 중요한 문단들은 에스켈 40-48과 - 8-11장은 또한 관계가 있고 - 스가랴 1-8에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후자는 이사야 24-27; 56-66; 에스켈 38-39; 요엘 2:28-3:21(MT 3-4); 스가랴 9-14에 나타나 있다. 이 정도에 대한 말하는 것은 우리가 막 언급한 모든 토의들 안에서 옳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들에 관해 적지 않은 불확실성과 혼란이 남아있다는 것도 분명하다. 이 문제에 대해 한 예로 스가랴 1-8이 묵시적 종말론을 포함하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묵시로 간주할 수 있지의 의문이 간다.

또한 핸슨의 견해는 콜린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는데(1979c, pp. 29-30), 그는 스가랴의 환상들은 진정한 묵시적 종말론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성직지배그룹의 지지를 증가시키는 환상의 양식이 사용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은 예언자적 묵시적 종말론의 성격에 대한 이해에 근거하고 있는데(위에서 인용된 정의를 참고하라, pp. 169-70), 이것은 묵시적 종말론의 지지자들이 공동체에서 힘이 없고 권리를 뺏아긴 구성들이라는 그의 견해와 연결된다; 스가랴는 힘없고 권리를 빼앗긴 구성원들의 대변인이 아니라 지배계층의 대변인이었다; 말하자면 그의 환상들은 분열된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서 나왔으며, 그리고 그렇게되면 그것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묵시를 형성한다는 게제의 견해는 수용될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핸슨의 견해는 여기에서 다소 인위적으로 보이며, 이것은 그의 판단의 기초를 세운 정의들과 주장들의 유효성에 의문을 낳게 한다. 어떤(an) 종말론이 스가랴 1-8 안에서 발견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또한 이것은 예언적인 신탁들에 의해서 표현된 것이 아니라 묵시들에서 사용된 환상의 이야기 유형으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문서를 하나의 묵시 자체로 간주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의 양식은 아주 불완전한 것이다. 스가랴 1-8장에 대한 그의 해석에서(역시 학개와 에스켈의 것도), 핸슨은 자신이 재구성한 사건들이 '단일한 포로기 이후 투쟁'에 의해서 지나치게 영향을 받도록 의도했다고 보인다(1975, p. 240). 그의 재구성은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 기간의 문서들을 읽을 있는 하나의 매력적인 관점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가설적인 재구성이며, 실제들은 그의 이야기가 보여주는 이상으로 오히려 복잡했을 것이다. 게다가 예언자적 종말론과 묵시적 종말론에 대한 그의 정의 또는 그가 신화와 역사로써 사용했던 그런 용어들은 만족스럽다고 분명하게 말할 없으므로, 여기에서 Carroll(카롤) 비평을 언급하는 이상은 불가능하다(1979, pp. 18-27).

많은 불확실성을 남기는 문제에 관한 다른 질문은 여기서 관련된 예언자적 신탁들의 시기를 규명하는 것이다.특별히 이사야 24-27; 스사랴 9-14장 이다. 이 목적을 위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방법들은 약간의 매우 불확실한 결과를 가져왔으나, 핸슨과 밀라에 의해 채택된 상황-유형론적 방법이 더 확실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도 의심스럽다. 이 방법의 기초는 공동체의 투쟁의 상황에서 그것들 뒤에 있는 분별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신탁들을 해석하여 유형론적 도구를 그것들의 분석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 '시적인 구조와 은유적 구조, 예언적인 신탁 유형들(쟝르들), 그리고 예언적 종말론-묵시적 종말론의 연속'의 유형론들이다 (1975, p. 29). 핸슨은 이 신탁들의 연대를 시기에 맞게 정확하게 추정함으로 연대기적인 순서에 따라 그것들을 위치시키려는 것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가 포로기와 포로기 이후 초기 기간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들을 가지고 그의 유형론적 분석의 방법들을 확신있게 개인적인 신탁들을 연대기적인 순서에 의해 위치시킬 수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 이 사실과는 아주 별개로 핸슨이 허용하는 유일한 종류의 전개는 직선적인 것이다(Carroll(카롤)을 참조하라, 1975, p. 27). 게다가 다른 유형론들과 또 다른 방법들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하는데, 처음보기에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에대해 예를 들자면, Habets(하베츠)는(1974, Coggins(코긴스)를 참조하라, 1978/99, p. 332) 하나의 유형론적 방법을 사용하여 이사야 24-7장이 3세기 초보다 더 이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사야 24-7과 56-66장에 대한 Vermeylen(페르마일렌)의 분석은 또 다른 예를 제공하는데, 핸슨의 것과는 첨예한 차이를 보인다(Vermeylen(페르마일렌),1977, pp. 349-81, 451-517); 그의 결론을 생각해보면, 그의 연구는 이사야 24-7장과 56-66장를 그 자체에 포함된 실체에서 추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부분들의 구성과 전체로서의 이사야서를 그것들과 관련하여 추정함으로 나름대로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유대 묵시들은 마치 묵시적 종말론이 예언자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처럼, 구약성서의 예언의 연속를 보여준다는 견해가 설득력있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Jacob(야콥),1977년을 참조하라). 그렇지만 예언적인 것뿐만 아니라 다른 영향들이 묵시들의 출현에 기여하였으며, 특별히 묵시들은 학문적인 구문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곧 식자(識者)전승 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언에서 묵시들로의 전환이 하나의 점진적인 과정이었는지, 또는 Carroll(카롤)(1979, p. 30)이 제안한 것처럼 하나의 대안적인 견해로 후기 예언에서 고전적의 묵시로 발전되는데 많은 불연속적인 도약을 하였는지는 불확실하게 남아 있다; 카롤이 지적하듯이, 확고한 증거가 없는 것이 불연속적인 도약의 이론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어려움이다.

각 주

1. 묵시로서의 그것의 양식은 초기에 거의 강조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는 예레미아스 (1977, 특별히 pp. 39-108, 226-33를 주목해보라)의 연구를 언급하는 것이 적합할 것 이다. 예레미야스는 비록 밤-환상들이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묵시을 형성한다 는 것을 부인하지만, 그것들이 예언과 묵시(다니엘서가 대표하는 것처럼)들 사이의 일 시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견해에 대한 증거들을 신중하게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