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의 가나안 침입 개시
새 지도자 여호수아 : 한 세대를 거쳐 광야에서 방황한 후 이스라엘은
하나임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출애굽에 필적하는
위대한 일이다. 넓은 의미의 가나안 정복은 모세가 트란스 요로단 지방
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때부터 다윗왕의 예루살렘 점령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가나안 땅에 침입하여 그 땅을 점령한 가나안에한
정된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와게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
하시기를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이 요단 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으로 가라 . 곧 광야와 레바논에
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대해(지중해)까지 너
의 영지가 되리라]고 하셨다.(수1:1-4).이리하여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
를 이어 가나안 정복의 새 지도자가 되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
가서 정착하기까지의 중요한 요건은 가나안 7족과 전쟁하여 그 땅을 정
복하는 일과 그 땅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다.
구약성서의 여호수아서는 이 사실에 대한 기록이다.
가나안의 정세 : 가나안은 당시 통일국가가 아니고 반유목민의 부족연
합과 도시의 혼합체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도시는 당시 2대 세력,즉
남의 애굽,북의 힛타이트 혹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는 세력 사이에끼
어 있는 때로는 우세한 제국에 충성을 서약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형편이
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려고 한 당시의 가나안은 문화수준이 상당히 높았다.
그들의 성은 잘 건축되고 강력히 요새화되었으며, 높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경제적으로는 애굽, 북부 메소포타미아, 기타 나라의 넓은 범위
에 걸쳐 무역을 행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에게 이들은 큰 위협이 되
었다.
모세의 가나안 공격 계획은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는데,그것은그
땅의 대략 중간 지점을 동쪽으로부터 공격 점령하여 남과 붑을 갈라놓은
다음, 각 부분을 따로따로 정복하는 것이었다. 모세는 이러한 계획을 새
지도자 여호수아게게 전해준 것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침입은 주전
1250년 이후의 일이다.
여리고 정탐 :여호수아의 첫 공격의 목표는 여리고 성읍이었다. 여리고
는 가나안의 첫 관문으로서 그곳을 통과히지 않고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었다. 요단 강을 건너가기 전에 여호수아는 요단 강 동편 12km 지점의
싯딤에 진을 치고 이곳에서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로 밀파했다.
그들이 여리고를 정탐한 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진지로 무사히 돌아
왔다. 이 일에 대해 기생 라합의 보호와 도움이 컸었다. 그들이 돌아온
후 여호수아는 백성을 거느리고 싯딤의 진지를 떠나 요단 강에 이르렀다.
요단강을 건넘:이스라엘은 3일간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이땐느 바로 맥추절(4-5월경)로 우기가 끝날 무렵인 동시에 헤르몬산의
융설기여서 갑자기 물이 불어 강이 넘쳐 건너기가 매우 위험한 때였다.
그런데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자들의 발이 물을 밟고 들어서자 곧 요단
강 물이 완전히 그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바닥의 마른 땅으로 건너갈수
있었다.(수3:15-17).
이때 강을 건너간 자는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1,200-1,600인 정도로추
정되고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강을 건널 때 강물이 막혀진 지점은 하구에서 25km
상류인 [아담]부근이었다. 여기서는 강물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절벽의
밑을 자형으로 깊이 파고들어가면서 흐르기 때문에 윗부분이 갈라져 큰
언덕이 강중에 무너져내러 강물이 막히는 경우가 있었다. 실제로 아라비
아의 역사가 노와이리(Nowairi)에 의하면 주전 1267년에 약 4시간 동안
요단강물이 그쳤다고 한다. 또 1927년 대지진때에는 여기서부터 약간 상
류에 있는높이 245m 의 강안의 언덕이 추락하여 강물이 막혀 12시간 반
동안 강박이 마른 일이 있었다. 그러나 이때의 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의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었다.
요단강의 기적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명해
12지파의 수대로 강 바닥에서 12개의 돌을 가져다가 두개의 기념비를 세
우게 하셨다. 그 하는 요단강의 제사장이 언약궤를 메고 섰던 곳에 세우
고, 또 하나는첫 진을 친 [길갈]에 세우게 하였다. 이것은 후일에 이스
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하고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
하게 하기위함이었다.
길갈의 본영을 둠 : 길갈은 여리고의 동편 31km 요단 강과의 중간 지
점에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 처음으로 진을 친 곳으
로서 이곳에 이스라엘 군이 본영을 두었다. 이것을 거점으로 하여 여리
고와 아이 성이 곧 점령되었다. 후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곳에 찾아와서
평화의 언약을 맺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을 도와 남쪽의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길갈에서 그의 군대를 이끌고 갔다. 또한 그는 여기서 북
쪽의 동맹에 대항하기위해 출정했다. 군대가 출정하는 동안 백성들은 이
곳에 남아 있었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유월절을 개행하였다.
중앙 팔레스틴의 정복
여리고 성 함락 :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동북쪽 31km 요단 강 하구에
서 북서쪽 13지점에 있는 현재의 텔 에스술탄(Tell es Sultan)으로 판
명되었다. 이곳은 팔레스틴의 관문이며 전략상의 요지로서 견고한 성벽
에 둘러싸인 난공불락의 요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