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사회개혁

1. 서 론

바울의 로마서를 살펴 보면 로마에의 유대교 공동체를 향한 표현이 내재

되어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즉 로마의 핵심은 로마의 유대인 공동체와

로마인(이방인)과의 관계와 공동체 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유

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 그리스도교가 전파될 당시 회당에 많았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라 불리운 자들이었는데, 그리스도교의

선교활동의 시작시에 유대인의 맥을 탄, 유대교의 한 종파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하였다.

그 결과 고립하지 않은 회당의 덕분에 그리스도교 전파는 한층 수월해 질

수 있었다. 그러다가 글라우디오 칙령의 발표로 유대인 추방이 시작되었

다. 이것은 큰 의미를 주는데, 즉 유대 공동체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며,

이방인 (즉,하나님을 경외하는자들)만 남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가운데 설립된 그리스도교는 당연히 유대교를 배제한 상태였다. 그

러다 다시 돌아온, 율법으로 자유로와졌던 그리스도인과, 기존의 율법을 전

혀 모르는 독립된 종교로 본 이방 그리스도인과의 갈등이 생겼다.

로마서는 이러한 갈등의 해소를 위하여 씌여진 것이며, 이것은 어떤 구원

사관을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아닌 교회의 분열을 막으려고 했던 바울의

시도가 나와 있다.

즉 이것은 강한자와 약한자의 문제가 되는 데, 본인은 이것을 기초로 하

여 강한자와 악한자의 개념을 확대하여서 교회와 사회의 문제로 이러한 문

제를 살피고자 한다. 이런 문제 제기로 우리는 많은 숨은 의문과 과제를

찾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토착화의 과제를 볼 수 있다. 로마인과 유대인의 각각 다른 것이

하나가 될 수 있었음은 우선 로마인의 유대교화(하나님을 경외하는자)와 이

들의 개종, 또 회당을 중심으로 선포가 가능했던 그리스도교의 토착화가 이

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또 통일(민주적)문제도 볼 수 있다. 바울이 로마인과 유대인들을 설득

함으로 지역감정을 없애고자 한 것이 죄의 문제보다 분열의 문제를 없애려

는 것을 앞세웠기 때문이며, 이것은 현 시대의 분열의 문제(동서간, 남북

간,우리나라의 민족통일)로 개념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그의 생업을 통하여(천막짓기)자신의 신분을 높은 곳에서

낮은곳 (노예) 으로 떨어뜨리게 하는 것 처럼 보이게 했다. 그는 작업장

에 들어감으로서 자신의 신분을 상당히 잃었는데, 왜냐하면 키케로의 설명

같이 작업장은 결코 자유인을 받기에 적절한 장소가 못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을 버림으로 새로운 곳에 선교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래

서 이 문제를 중심으로 선교 문제를 살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로를

통해 바울은 보수 없이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이것은 오늘의 교회의 문제와

도 통한다.

여기에서 교회의 (교역자의)갱신의 문제가 나온다. 고린도서의 내용은

교회의 갱신에 관한 면도 있다. 또한 바울의 서신의 많은 부분에서 교회

에 관해 다루어 진다. 이것을 가지고 교회의 갱신과 반성,발전 방향을 살

필 수 있을 것이다.

또 그의 생업 속에서 계급에 대한 관심이 숨어 있다. 즉 노예의 문제와

계급의 갈등과 관심은 그 근본 개혁의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 준다. 그래

서 올바른 사회 개혁은 혼자의 힘으로는 될 수 없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

와도 합치될 수 있다. 그래서 여기에서 정치 신학을 다루어 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가지고 유추하여 볼 때 또 다른 문제가 야기된다. 그것

은 (비록 바울이 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나) 사회 개혁의 문제를 놓고 보았

을 때 앞으로 나타날 다원화의 사회이다.

내것, 네 것을 말할 수 없고, 어떠한 이데올로기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이

다원화 사회를 우리는 살펴 봄으로써, 또한 기독교의 영향으로 사회개혁된

것들 (언어의 발전, 문화적 영향등)을 대략 다루어 봄으로써 흐름을 맺을

까 한다.

2. 본 론

1> 교회 변혁과 토착화의 문제

기독교의 그 지역의 토착화 문제는 기독교가 그 사회에 자리를 잡는가,

아닌가의 문제를 결정 지어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한 종교가 그 지역

에 토착화 되지 않으면 그 종교는 그 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없고 정

신적 지주가 될 수 없는 종교는 이미 그 사회의 변혁을 음으로든, 양으로든

주도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이 토착화의 문제를 한국상황에 맞추어 살

펴볼까 한다.

대체로 기독교 복음은 어떠한 생소한 문화와 사회 속으로도 파고 들어

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우리가 가지고 복음의 본질이 변질되지 않는 한도에

서 교회가 선교지의 백성의 생활과 자체를 동일시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백

성의 사회 및 국가와 밀접한 유대를 갖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선교하는 자세와 방법은 반드시 신학의 도움을 받아서 탐

구되어야 한다. 여기서 기독교의 한국 토착화는 한국 신학이라는 독특한

신학운동을 요청한다.

즉, 한국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석하고 그것을 신학과 교회 제반

생활과 의식에 반영시킨다고 할 때 이 모든 것의 특색은 한마디로 한국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한 국적인 것을 찾는 길은 반드시 한국 역사

의 태고 시대의 것 (신화)을 들추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현재 한

국인의 생활속에 살아 있는 고유한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다.

즉 현재 살고 있는 나로서의 한국인 신학자가 서양적인 해석에서 탈피하여

그리스도의 진리에 직행해서 그 진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무교적인것,유

교적인 것, 불교적인 것, 도교적인 것, 심지어 서양적인 것까지 오늘 한국

인의 심성과 생활 속에 살아 있으면서 한국적인 것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한국 신학을 개척할 한국인으로서의 주체 의식을 가지고 한국적

에로스를 포착하여 그것에 맞는 신학적 사고를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 안에는 예언, 방언,치병등 기사 이적을 지나치게 희구

하는 종교 심리에 사로잡힌 교인들과 목회자들의 수가 날마다 늘어가며 종

교집회가 일종의 굿이 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종교가 그 종교로서

의 기능과 정신을 이끌려면 이같은 영적인 만족은 필수 불가결하다.

그러나 묵시와 환상을 억지로 보려고 하다가 종교적 착각과 변태증에 걸리

는 사람들도 날로 늘어간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이런 모양으로 변해 간다

면 그 기독교는 오늘 한국사회에 바로 토착하는 종교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배교자를 만들어 낼 지 모른다. 이조시대에 불교가 위정자들로 부터 심한

박해를 받았을 때 연명하기 위하여 유교와 도교에 교합되어 갔던 것처럼 기

독교도 그러한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

2> 노예문제를 통해 본 사회개혁

희랍,로마시대에 있어서 노예 신분의 기원을 살펴보면, 노예로부터 출

생한 경우와 원래의 자유를 상실한 상태 등 두가지의 범주로 볼 수 있다.

원래의 자유를 상실한 상태는 노예로 전락하게 된 보편적 양태인 전쟁포로,

국세조사 등 기부에 신고 기피, 또는 군입대 기피자로 잡혀 팔리는 자, 채

무 이행하지 않는 자,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등이다. 노예들은 물건이나

동물처럼 취급되어 보통 자유인과 같은 권리 행사를 하지 못했다.

노예는 단순히 하나의 종일 뿐 아니라 주인의 실제적 소유이고, 가축처럼

취급되었다. 도미씨아노, 하드리아노, 안토니오 삐오,마르코 아우렐리오,

콘스탄틴 대제등 몇 로마 황제는 잔인한 주인으로부터 법으로 노예들을 보

호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대부분의 보호법은 공포되자 마자 유야무야한 법이

되곤 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할 지라도 도덕적인 힘이 없다면 마음으로

부터 사고방식을 바꾸고 옛 관습을 개혁하기에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노예 보호법이 보다 이상적으로 갱신되었다 할지라도 마인 사랑 안에서 자

유의 참된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가치가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주인

이나 종 양편 모두의 마음에 참된 자유와 형제애를 심으려 힘썼다. 그리

스도교 초기부터 교회는 노예제도를 결코 자연스럽고 정당한 제도로 받아들

이지 않았다.

교부들에게도 이것은 인간에게 가장 처참한 형벌로 이해되었다. 노예제

도를 거부한 그리스도교적 실천관행을 보면 형제적 평등을 볼 수 있다.

교회는 항상 내적인 준비, 즉 개인의 회심으로부터 사회개혁의 작업을 시작

한다.

서로 사랑하는 곳에 노예제도란 있을 수 없으며, 평등과 형제애가 회복

된다고 한다. 바울 사도도 이것을 강조하였는데 그는 스스로 노예의 위치

까지 자신의 신분을 하락시킴으로 이 문제에 실제적인 관심을 보였다.

"나는 자유인이어서 아무의 종도 아니지만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

(고전 9: 19)

여기서 스스로 종이 되었다는 말은 그가 생업에 정진하는 사실에서 인증한

다고 주석가는 말하고 있다.

" 여러분을 높이기 위하여 내가 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의 복음을 값없이 전한 것이 내게 죄가 됩니까 "

(고후 11: 7)

여기의 표현도 생업에서 근로하는 일에 대한 간접적인 인증을 본다. 물

론 이 글의 표현은 바울의 자급, 자족의 표현이긴 하나 천막짓기 같은 공인

의 신분으로 생업에 종사한 것은 사회적인 의미를 준다.

노예적이며, 비천한 생업에 종사함으로 바울은 자기의 신분을 상당히 손실

당했다고 생각했겠으나 그는 이것을 통하여 그들의 아픔을 변화하고 사회개

혁에 큰 일을 했다. 그는 자기 주인들에게 애정과 순명정신을 가지도록

노예들에게 권고한 교회의 태도를 부정적으로 비판하였다.

"남의 종이 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의를 다하여 자기 주인으로 복종하

십시요...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섬

기는 마음으로 기쁘게 섬기십시요; 각사람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유지하십시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에 노예였다 하더라도 조금도 마음쓸 것 없습니다. "

(엡 6:5 - 7)

(고전7:20-21)

그러나 전체 문맥을 볼때, 바울 사도는 단지 주인편에만 유리하게 노예의

충실성을 강조한 게 아니다. 오히려 종과 주인 사이의 상호 평등의 관계

에 대한 것이다.

"주인된 사람들도 자기 종들에게 같은 정신으로 대해

주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종들을 협박해서는 안됩

니다. 그들에게나 여러분에게 주인이 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시며,또 그분은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대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 두십시요 "

( 엡 6: 9 )

이렇게 바울 사도는 노예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신분 자체

가 영원한 생명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에 아무런 방해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므로 노예제도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대한 어떤이

들의 부정적인 비판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상태로 불리움을 받았다. 그러나 애덕으로 서로가 서

로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어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

(고전 9:19 )

라고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죄의 노예상태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애덕

의 종으로 건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면에서 유일한 노예상태는

죄의 노예일 뿐이다. 노예신분의 외적 상태는 참된 자유를 누리기에 큰

장애거리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예신분은 이름뿐이며 물질적이고

일시적이며 단기간의 지배를 받을 뿐이다. 따라서 노예신분 자체로도 자

유를 누릴 수 있다.

바울은 종의 신분은 그대로 현존하는 상태에서 앞으로의 자유와 영적인

자유만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을 보면 노예제도가 현실적이지

않은 현대 사회는 이 문제가 정치적 소외,문화적 고립, 경제적 착취를 당하

는 사회적인 면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의 자유는 곧 해방을 가

르킨다. 이것에서 해방신학,정치신학,민중신학등 많은 방향을 찾을 수 있

겠으나 여기에서는 정치신학 쪽만 살펴보는 것으로 한다.

3. 정치신학과 사회개혁

1) 정치 신학

정치신학이라는 말이 오늘날 교회와 신학이 사회의 구체적인,그리고

혁명적인 변동과 변화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고 피부로 느끼고, 그 격동하는

사회의 문제들과 함께 씨름하여야 한다는 세속신학의 사상적 분위기에서 나

왔다.

이것을 처음 사용한 사람들 중 레만과 칵스, 몰트만이 이 말을 많이 퍼

뜨렸는데, 레만은 "신의 행동과 정치적 성격, 성서적 표징과 신의 정치"라

는 제목의 신학 강좌를 통하여 하나님의 세상에서의 사역은 정치적이라고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하여 하시는 역사에 관하여 말했다.

또한 칵스는 그의 세속도시의 한 장인 "사회변혁의 신학을 지향하여"에서

역사신학의 방향을 구체적인 현 역사의 격동을 말하는 혁명적 사회 변혁의

신학,즉 정치 신학으로 지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본훼퍼는 하나님을 세속적으로 말하는 방법이 무엇이겠는가 라는

질문의 답변이 바로 정치적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해서 세속 도시의 신학적

노력은 곧 정치적인 신학을 말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레만은 크리스챤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하나님의

뜻때로 행하는 것이 궁극적인 답변이라 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뜻때

로 라는 말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즉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가 그의 중심 문제이다.

레만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하시는 일은 정치라고 한다. 그는 코이노

니아라는 말에서 하나님의 뜻은 경건한 상투어가 아니고 구체적인 정치 문

제를 놓고 말한다고 한다. 그는 교회의 하나님은 곧 정치의 하나님이라고

잘라 말하면서 우리가 믿은 유일한 하나님은 곧 정치적인 신이라고 규정한

다.

성서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선택하셨고, 그의 백성들과 언

약의 관계를 맺으셨다. 그리고 포로의 상태로 부터 해방되어 광야에 방황

하는 백성들을 약속하신 땅에 인도하시는 동안 율법을 세우시고, 언약의 관

계를 맺는 정치적 역사가 있다. 신약에 와서는 메시야가 오셨다.

그의 새로운 은혜의 해가 이미 이 세상에 시작되었으며, 하나님의 통치

가 여기 있다는 것이다. 구약 성서와 신약성서의 분기점이 있다. 신약

성서는 메시아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권능과 통치로 오

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며, 결국 새 하늘과 새땅을 이룩하신다는 것이다.

이러한 묵시문학적 메시아 사상의 배경에는 미래를 향한 역사적인 하나님

의 정치활동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정치적 이미지 없이 참되

고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치적인 하나님이며, 그의 정치

적 이상을 역사안에서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육신 하신 예수 그

리스도야말로 궁극적인 하나님의 정치적 행위라는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기반과 세계관의 관계는 유지되어 있다.

기독교 변증론자들은 로마 황제 숭배 종교를 기독교적 입장에서 거부하고,

로마 제국의 평화를 위하여 기독교가 그 기반이 된 것을 보면 개념들이 어

떻게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다.

여러가지 언어를 가진 각종 민족이 하나의 교회 안에서 함께 섬기는 하

나의 하나님이 여러 가지 종교의 다신주의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 하나

님 안에 하나가 된다는 개념과 교회 안에서 통합한다는 개념은 통일이라는

정치적 개념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변증론자들은 그리스도의 평화적 왕국과 평화 로마 제국의

개념을 일치시켰다. 즉 기독교는 외적 로마제국의 평화를 위한 내면적 종

교가 되므로 기독교는 평화적인 것으로 사회를 변혁시킨다.

그리스도의 평화와 로마의 평화는 절대로 일치되지 않는다. 기독교 소

망은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평화는 어떠한 케사르나 힘의 이

데올로기로도 성취될 수 없고 유지될 수 없다. 오로지 십자가에 달리신

이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평화는 정치적 이성을 포함한 모든 이성보다 높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의 평화는 우주적인 평화이므로 로마의 영토나 기독교

세계의 영역에만 국한시킬 수 없다. 이와같은 소망은 계속 확대될 것이

며, 그래서 교회에 의한 사회 변혁이 정치적으로 가능해 지는 것이다.

2) 통일 신학과 화해

분열된 세계와 분단된 민족의 상황 속에서 교회는 화해의 역군으로 나서

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와 고린도서 등에서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서로

를 이해하는 화해에 대해 말함으로써 이 문제를 강하게 지적한다.

예수의 죽음도 그러한 대속적 행위라고 바울은 말하고 공동체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대속활동을 계속하여야 하며, 그리스도

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

회의 개혁활동이다.

신약성서에는 그리스도를 화해자라고 부른 곳은 없으나 몇 군데에서 그

의 업적에 대해 화해하셨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사도의 할 일을화해의

직분 또 선교를 화해의 말씀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 신약성서의 모든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창

조물보다 먼저 사신이로서,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이로서, 화목의

중재자가 되신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또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화해하시는 계시는"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저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케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

셨느니라" 라고 하는 바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화해의 도구로서의

역할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담당했으며, 화해는 죽으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화해를 알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기

인하며,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이라고 바울이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신국의 왕으로 영적으로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다스리시

며, 또 세상의 모든 왕위에 군림하시는 왕이며, 그의 왕권은 세상의 어떤

왕도 대항하거나 침범할 수 없은 절대적인 동시에 영원한 왕권이다. 그

래서 오직 그리스도만이 교회를 통하여 이 사회를 개혁, 구원시키실 수 있

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직능중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었던 원수 관계를 없애고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로 전환시켜 주

었다는 직능, 즉 제사장적 (화해적) 직능을 정점으로 한것이다. 화해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를 체험한 화해의 공동체 안에 들어가

는 자들은, 그 사실을 이 세상에 알리는 일에 기도와 자기 희생으로 참여해

야 한다. 즉 그리스도의 화해를 정치,경제,사회,문화의 각계에서 실현되

도록 해야 한다.

이처럼 오늘의 역사 현실에 있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이는 오직

화해자 그리스도뿐이며,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화해는 정신적 및

신앙적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적 차원에까지 교회를 통

하여 이어지는 것이다.

즉 이것이 공관복음 또는 바울에 의해 단순한 선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고치고, 포로를 석방하여 주며,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에게 새 힘을

주는 것을 포함하는 사건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화해의 사건은 단순한 심리적 ,종교적 가난에

서 뿐만 아니라, 배고픈 자가 빵을 얻고, 경제,사회,물질적으로 소외되고

비인간화 된 상태에서 인간화된 생태로 회복되고 환경 오염에 의한 자연파

괴에서 외는 인간 생존의 위협에서부터 구원받는 그런 사건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런 사회 변혁으로 우리를 변혁시킨다.

3) 교회와 국가의 문제로 본 사회 개혁

바울 서신 가운데서 교회와 국가에 관한 언급이 더러 있으나 가장 큰 논

쟁은 로마서 13장이다. 이것은 2차대전 중 독일 국민들에게 나치 정권의

살인마적 행위에 어떤 구실을 마련해 주었고, 또 한국에서는 일본의 신사참

배가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변명하는 이론을 가져다 주기도 했다. 즉

이것은 부정적인 사회 변혁을 준 것이다. 로마서 13장에서는

"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 "

(롬 13 : 1 )

는 말씀 때문에 정부나 어떤 신학자들은 국가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고 주

장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복음에 충성하여 전제적인 국가의 주장이나 정책을

비판하거나 저항하면 바울이 마치 국가가 요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맹종하

는 것처럼 그를 비굴하고 무 비판적인 인물로 오해하기를 즐겨하는 권력층

은 바울이 그들의 잘못된 명령에 복종하고 전제국가의 모든 범죄를 눈감고

찬양하기라고 하는 듯 한 착각을 주고 바울의 말을 인용한다.

그러나 이말은 그것이 아니다. 즉, 위정자들의 권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나왔으며, 하나님이 정하셨는 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 생활의 환경유지를

위해 정부를 통해서 그의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적극적으로 권위에 순종하되, 맹목적 복종이 아닌

양심에 따른 합리적, 자발적인 복종으로써 그 내용을 따라야 한다. 즉 이

말은 교회는 국가의 양심이 되어 국가가 타락했을 때에 선정을 요구해야 한

다. 그러나 언제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고 가르쳐야 한다.

전체주의 국가의 부당한 요구 즉, 한계선을 넘는 요구에 대해서 교회는

한사코 저항해야 하지만, 그 국가를 넘어뜨리려고 칼을 들고 전쟁을 감행하

는 것은 교회의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혁명보다는 순

교를 택해야 한다. 즉 이 말은 침묵이 아니라 때로는 생명을 내걸고 라도

바른 말을 외치고 국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은 그 사회의 개혁을 주도 하신다.

국가는 하나님이 인정한 권력을 가지고 교회는 그것을 간섭하게 된다.

이것이 비굴하지 않고, 정당하며 서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질 때 참다운 사회

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앞으로 정진해야 할 것이 우리의 과

제이다.

4. 교회개혁과 사회개혁

사회의 개혁 뿐 아니라 교회의 개혁도 필요하며,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올바르지 않게 될 때 그 사회는 침체되고, 그 교회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교회 개혁과 사회개혁의 특징과 엇갈림을 알고,나아

가서 해결책을 알아봐야 한다.

1) 16세기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에서의 사회개혁

르네상스는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표어를 내걸고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성

의 근거를 중세의 교회와 신학에서가 아니라 순수 희랍,로마 문화에서 찾았

다. 르네상스는 역사의식을 교회와 신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시와 문학

을 교회와 인간에서 해방시키며, 자연법을 성경과 교회로부터 독립시켰고,

인간의 도덕성을 신으로부터 독립시켰으며, 인간의 천재성과 개인을 높이

찬양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성이 인간을 구원한다고 보았고 르네상스는

자연을 초자연으로부터, 하부구조를 상부구조로부터 인간의 학문활동과 예

술활동을 중세의 교회와 신학에서 해방시켰고,국가를 교회의 지배로부터,인

간을 신과 교회로부터 해방시켰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교회와 신학 없는

사회개혁을 지향했고,교육을 통한 인간개조와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다.

또한 종교 개혁도 주된 관심이 사회 개혁이 아니라 교회 개혁이었다.

이것은 르네상스와는 전혀 독립된 개념으로 개혁된 것으로 오직 교회 개혁

만이 이들의 과제였다. 즉 사회 개혁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2) 18세기 혁명과 영적 각성

18세기의 계몽주의 교회는 이성을 계시로부터, 자연을 초자연으로부터 ,

사회를 교회로부터 해방시켰다. 이것은 17세기의 교리 절대화에 반대하였

고, 종교 전쟁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성경,교회,신학 대신 이성과 이성적

종교를 내세웠다.

즉 16세기에는 교회개혁에 주력했지만 17세기에는 둘다 무시했고, 18세기

에 들어와서 는 성경과 교회를 무시힌 사회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스스로 자체 개혁에 힘차게 몰입해서 개신교의 선교가 활성화 됴다.

즉 계몽주의와 경건주의가 서로 항상 상반되어가면서 19세기로 넘어간 것이

다.

3) 19세기 이후의 개혁

18세기의 경건주의와 복음주의적 부흥 운동은 기성교회의 갱신은 물론

선교적 열정과 사회개혁에 이바지 했고, 19세기의 선교활동은 지구촌의 교

회로 하여금 사귐과 일치를 지향하게 하였고, 보다 짙은 에큐메니칼 차원의

선교와 사회봉사 (개혁)를 일어나게 했다.

이것은 다시 20세기로 이어져서 20세기의 사회를 변혁시킨 20세기 교회사

의 특징인 사회개혁을 일으켰다. 개신교의 6차에 걸친 W.C.C. 의 사회

개혁 역대 분과 보고서들이 2천년 교회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교

회의 사회 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로마 카톨릭의 제 2차 바티칸 공의

회가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있고, 사회 개혁과 교회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교회가 역사 속에서 기존해 있는 사회적 제도로서 세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따라서 교회의 현실 참여와 사회 개혁은 그

정당서이 계속 이어지고 앞으로 많은 과제를 줄 것이다.

5. 기 타

교회는 그 사회 변혁의 기능을 극대화 하여 한 나라의 언어까지도 발전

시켜주었다. 미국의 영어의 발달, 우리나라 국어의 발달까지도 이들이 성

장시켜 준 것과 같다.

그 중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가 한국에 전파되어 근대 한국 문화에

끼친 최대의 공헌은 근대 한국의 대중문화 발달의 초석이 될 만한 기독교의

한글 성서 번역과 개역, 그리고 그것을 통한 선구적인 한글 사용의 대중화

와 보급에 있었다. 다시 말하자면 기독교는 한국의 언어 생활의 혁신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의료 선교도 큰 사회 변혁의 기능을 담당하게 한다. 한국에 처음

들어온 선교 기관은 바로 의료 선교기관이다. 의료 선교는 복된 소식을

만민에게 전함과 동시에 만인이 건강하게 살도록 도와준다.

인간사회 전면에 걸친 정의와 화해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모든 종류의

압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는 하나님의 관심에 동참해야한다. 특히 그리

스도는 질병치유에 있어 우리 모두가 건강하기를 원하시고, 사람들은 건강

하기를 바래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이것은 사회개혁면으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3. 결 론

교회는 여러 가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리하여 교회는 때로

사회의 안정과 통합에 기여하기도 했고,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성시키기

도 했다. 나아가서 교회는 사회 변동의 주체가 되기도 했고, 반대로 사회

변동을 억제하는 보수적인 힘이 되기도 했다.

또 어떤 경우는 교회가 사회 변동의 영향을 받아 그 자체에 변화가 생겨

나기도 했다. 두서 없이 전개한 앞의 글들은 이것을 증거해 준다. 그런

데 교회의 사회 변혁의 문제를 논할 때 고려되어야 할 중요한 점은 사회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 변혁하기 위해 사회의 변동 상황

에 민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변동에 교회가 끌려간다는 것이

아니라, 매 시대 매 상황의 변황에 따라 교회의 책임 영역과 내용은 새롭게

인식되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 경제, 사회 ,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개혁의 요

구가 봇물 터진듯이 충일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개혁의 요구에 대하여 교

회가 봉사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

그리스도교적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사회개혁을 통한 이상향의 건설을그

기본 목표로 하는가 ? 법과 제도만이 이상적으로 고치면 자동적 변혁이 되

는가 ? 이러한 문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될 것이고 계속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런 시점으로 볼 때 앞으로 우리의 할 일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우리

가 지금살고 있는 사회는 세속화의 사회이다. 이 사회의 특징은 논리적인

것이다. 즉 논리적 사고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권위를 두지 않는 사회

라는 뜻이다.

즉 논리적 사고 이외에는 어떠한 것에도 권위를 두지 않는 사회라는 뜻이

다. 어쩌면 이것은 내 종교가 유일, 절대의 종교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즉 내것,네것을 최고라고 여길 수 없는 시대이다. 또

한 우리의 사회는 다원화된 사회이다.

즉, 공산, 자본등의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서는 더 이상 움직여지지

않고 오직 국가,사회,민족 등의 공동체의 합일에 의해 움직여진다. 즉 세

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여기에서도 내것,네것이 최고라고 못하는 다원화가

됴다.

이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던져준다. 즉 세속화와 다원화 사회 속

에서 (내 어떠한 것도 주장할 수 없는 - 즉, 내것이 맞다고 할 수 없는 -

사회) 우리는기독교를 지키는 것 뿐만 아니라 이것이 도리어 다원화, 세속

화된 사회를 개혁시켜야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세상의 법과는 틀리기 때문에 세상의 이론에 하

나님의 법을 대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그분 이외에는 결단코 하나님에게 나아

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속화,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의 것을

굳게 잡고, 변증해 나가기 위해서는 보다 굳건한 믿음과 헌신의 생활이 필

요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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