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에대하여

1. 들어 가면서 ...

성령님이여 오시옵소서, 사뿐히!

성령님이여 우리의 삶 가운데 오시옵소서. 지치고 상한 우리네 인생의 무거운 삶 가운데에 찾아오셔서 우리로 하여금 삶에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하옵소서.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눈물의 영이십니다. 당신은 우리네 인생이 눈물을 흘릴때 그 눈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눈물 흘려 주시는 그리고 우리의 눈물 보다 더욱더 우리를 위해 눈물 흘리시는 당신은 눈물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웃음의 영이십니다. 당신은 우리가 웃을때에 우리와 함께 웃어주시는 그리고 우리가 웃는 그 어떤 웃음보다도 더 환하게 때로는 바라만 봐도 편안한 잔잔한 엷은 미소로 웃어주시는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웃음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기다림의 영이십니다. 당신은 지옥에 가는 마지막 한생명 까지도 사랑하셔서 그를 기다려 주시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 하시는, 당신은 동네 어귀에서 집나간 아들 딸을 조금 있으면 오겠지 하고 아니 언젠가는 오겠지 하고 목놓아 기다리시는 기다림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열정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시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은 그런 열정을 가지시고 우리의 무관심의 벽을 허물어 뜨리시기 원하시는 당신은 오늘도 일하시고 계시는 열정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이시여 당신은 그리움의 영이십니다. 당신은 우리의 추억속에 남아있는 아득한 그리움을 꽃피우는 그래서 고향의 삶을 생각나게 하는 당신은 그리움의 영이십니다.

2. 글의 한가운데서 ...

1장 성령의 세례란 무엇이며 또 그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성령의 세례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 많지 않다. 이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한 것인가?

衁. 성경에서 성령의 세례는 단 한번의 경험에 대하여 여러가지 표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성경이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나 성령을 받았으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니)

遁. 성령세례는 그 받는자 스스로가 받았는지 못받았는지 알 수 있는 뚜렸한 체험을 가진다는 것이다.

鑁.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분리되고 구분되는 성령의 역사중 하나이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이 기본적 역사라면 성령세례는 이것이 진전되어 2차적인 성령의 역사인 것이다.

鱁. 성령 세례는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것과 항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성령세례는 죄에서 정결케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증거케 하고 봉사케 하기 위하여 능력을 부어주시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

ꁁ. 성령 세례의 목적은 능력을 주어서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기 다르다. 고전12:4-13:은사는 여러가지 성령은 같다. 우리에게 어떤 능력을 주시고 어떤 사업을 맡길는지 성령께서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으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ꑁ. 성령의 세례에 대한 결과는 담대함이다. 요 18:17절에 베드로는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그를 고발하는 어린 여종의 말에도 벌벌떨었지만 성령의 세례를 받자 공회 앞에서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셨다.

걁.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와 신령한 것에 대하여 생각하고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결론을 내리면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의 영이 믿는자에게 임하시어 그 사람의 모든 기능을 주장하시어 그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시어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부터 맡은바 그의 직분을 감당케 하는 힘을 주시는 능력의 원천인 것이다.

2장 성령의 세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누구나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 행하기 전에 위로 부터 능력을 입을때까지 성에 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루 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성령의 세례는 교회 역사의 모든 시대에 하나님의 모든 자녀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때때로 성령세례란 이적을 행하는 능력을 부여 하기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첫째, 성령의 세례목적은 이적을 위한 특별한 능력을 주고자 함이 아니라 증인이 되기 위한 권능을 주기 위함, 둘째, 이적은 여러 은사중 하나에 불과 셋째, 베드로가 성령의 은사, 약속은 모든 믿는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는 사람을 뉘우치게 하고 죄를 깨닫게 하여 회개케 하는능력이다.

3장 어떻게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 있는가?

세례를 받는 7단계 절차 (행2:38)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1. 처음 두 단계는 회개하여 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회개란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마음을 고치는 것둁다. 이것은 예수님을 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일이다.

2. 둘째 단계로 회개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죄를 사랑하거나 죄를 만족케 하던 태도에서 둁죄를 미워하고 죄를 버리는 태도로 마음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3. 세째 단계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어라.

4. 넷째 순종이다. 행 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다. 순종은 하나님뜻 앞에서 완전히 굴복하는 것이다. 순종이란 내 스스로 순종하고 있다는 생각 마져도 떠난 신뢰의 상태이다.

5. 다섯째 눅11:13 너희가 악할 지라도 좋은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은 간절한 요구이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구해서는 안된다. 스스로에게 왜 내가 성령을 구하는지 물어야 한다.

6. 구하라(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구하라는 것이다.)

7. 막 11: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라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단순한 믿음의 단계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순종치 아니함을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먼저 밝혀야 할 衁 蓵은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못한지를 알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때 기도가 응답된 줄 믿어도 좋을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기다려야 할때는 조건이 구비되지 못했을 때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구주로 영접하지 않거나 죄를 회개치 아니했거나 순종의 자세를 취하지 아니했거나 진실하고 순수한 욕구와 확신 있는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순진한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기다려야 한다.

4장 성령의 세례를 항상 새롭게 받는일.

새로운 문제 하나 하나를 대할때마다 새 영혼을 올바로 인도하려 할 때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해로운 하루를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새로운 충만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5장 성령의 능력은 왜 상실되는가?

1. 사람들이 성별하여 바쳤던 그 몸을 자기 마음대로 범하게 될때 하나님은 그의 능력을 거두신다. 2. 능력은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상실한다. 3. 능력은 방종을 통해 상실한다. 4. 능력은 돈에 대한 욕심으로 말미암아 상실한다. 5. 능력은 교만때문에 상실된다. 6. 능력은 기도를 게을리 함으로서 상실. 7. 능력은 성경을 멀리하면 상실한다.


2부 춤만한 영력을 얻는 비결

1장 하나님 말씀은 어떤 능력을 소유하고 있나?

1. 하나님의 말씀은 죄를 확인하는 즉 정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2. 하나님의 말씀은 중생시키는 능력을 지닌다.

우리 인간의 마음은 밭이다. 당신과 나는 씨뿌리는 자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마음에 뿌리는 씨이다. 우리가 밭에서 씨를 뿌려 주면 하나님은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씨에게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시켜 주시고 자라게 하시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을 생산해 내는 능력이 있다. 4. 하나님의 말씀은 정결케 하는 능력이 있다.

2장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

1.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에 대한 화목제가 된다. 2. 그리스도의 보혈은 구속함을 받았다. 3. 그리스도의 보혈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능력 4.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하나님의 소유물이 되게 하는 능력이다.

3. 글을 마치면서 ...

개인적인 언급을 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신앙이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신앙이라는 것이 중요하기에 개인적인 고백을 하면 다음과 같다. 요즈음 나 개인적으로 소위 말하는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방언이다. 사실 그동안 기도하는 것을 게을리 했었고 특히나 방언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면 못마땅하게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전 부터 기도를 하면서 방언을 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리 오래지 않아 금새 방언을 주셨다. 처음 방언을 받은 그날 하여간에 너무나도 신귀한 체험을 했기에 그날을 잊지를 못할 것이다. 그런데 방언 기도를 하면서 사실 그 의미를 알지를 못한다. 기도를 해도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 그래서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이 주셨다는것을 확신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인지 모르기에 사실은 갑갑하다. 그래서 방언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를 않는다. 그래서 주위에 물어보았다. 어느 전도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 그 단계를 넘어 서야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단계를 넘어서면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주신다는 것이다. 사실 성경에 알아들을 수 없는 일만마디의 말보다 알아 들을 수 있는 다섯마디가 낳다고 하였는데 방언기도를 하는 당사자도 모르는 그 기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본인이 이런 고민을 하면 다른 사람들은 의외라고 생각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도실에 기도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는 아니면 시내산 기도회를 따라 기도하러 가는 모습을 보고는 많은 동료들이 그렇게 말한다. 너의 모습을 보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끼겠다는 것이다.

그럴만도 하다. 항상 이성적이었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었는데 그래서 쉽게 믿지를 못했었는데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는지 나에게 그런 영적인 체험또한 하게 하시는가 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이 책에 대해서 평가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쉽게 평가를 하지 못할 것 같다. 다만 지금 내가 어떤 의미에서이든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다만 하나님께 아니면 성령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 R.A 토레이가 쓴 성령세례라는 책은 읽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성경말씀에 큰 비중을 두면서 쓰여져 있기에 그렇게 이론적인 서적은 사실 아니다. 성령세례에 관한 다른 이론적인 책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요즈음의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변화가 크게 작용을 해서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아니면 학적으로 성령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의 내가 처해 있는 신앙에 있어서의 실존과 사실은 주파수가 맞지 않을 것 같았기에 조금은 나의 가슴에 혹은 성경에 근거를 둔 책을 선택을 한것이다. 물론 이책은 두껍지가 않기에 읽고 싶은 충동이 많이 생긴것 또한 사실이다.

앞으로 주어진 시간들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나의 머리속에서 나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나의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에서 부터 느끼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