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교회의 분쟁 상황과 관련해서 본 바울의 지도력

- 고린도전서 1-4장을 중심으로 -

최 진 영(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대학원 신약학 전공)

Ⅰ. 서론

고린도전서가 쓰여질 당시, 에베소에 있던 바울이나 고린도의 공동체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분쟁에 휩싸여 있었으며, 그 가운데 많은 윤리적 문제들이 야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지도력은 도전받고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다. 바울의 지도자로서의 대응은 후대의 관점에서 보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사도적 실존과 십자가의 신학을 통해 교회의 분쟁 상황을 해결하고자 했던 바울의 모습이,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고린도전서 1-4장에 나타난 고린도교회의 문제 상황과 그에 대처한 바울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글은 텍스트 안의 직접적 진술들을 분석하기 위해 역사비평적 방법을 기본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텍스트의 설득력과 문학 전략에 초점을 둠으로 특정한 텍스트가 산출된 상황을 효과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하는 수사학적 분석 방법도 동원될 것이다.

Ⅱ. 고린도전서 1-4장의 수사학적 유형

고린도전서 1-4장에 언급된 '지혜'에 관한 내용은 고린도교회의 논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본문에 '지혜'란 말이 압도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 대해 단서가 되는 말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 지혜의 기원을 추적하거나 바울의 적대자를 규명함으로써 고린도교회의 논쟁 상황을 역사적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해왔다. 그것은 주로 고린도교회의 적대자들이 영지주의에 접근해 있었다든지, 헬라의 밀의종교나 종교적 열광주의의 영향을 받았다든지 하는 종교사적 접근에 집중되었다.

한편 고린도전서를 연구하는 오늘날의 수사비평가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의 수사학적 작품들의 유형에 따라 고린도전서를 분석하고, 거기서 바울의 수사학적 전략과 그러한 반응을 초래한 고린도교회의 수사학적 상황을 밝히고자 한다. 청중들을 향해 어떤 의도를 가졌느냐에 따라 연설가들이 택하는 수사학의 유형은 달랐다. 1-4장에는 자랑에 대한 비난이 나타나기 때문에 논증적 요소가 있고(epideitic rhetoric), 사도권 수립을 위한 변증적 본문(apologia)도 포함되어 있다(judicial rhetoric). 그러나 그것들은 일치를 주장하는 더 큰 심의적 목적(deliberative rhetoric)에 기여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특히 1-4장에 나타난 심의적 수사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고린도교인들이 앞으로 선택해야 할 행동의 기준을 재정의 함으로 '미래'를 강조함, 2)모두가 연합하도록 권고하며, '유익'(ՔՏ ՓՕՌՖՅՑՏՍ)에 대해 호소함, 3)분파를 극복하고 분열을 반대해온 그의 삶의 모습에서 '모범'(ՐՁՑՁՄՅՉՃՌՁ)을 예시함, 4)심의에 적합하고 가장 보편적이었던 '분파와 일치'라는 주제를 다룸. 이런 점들에서 고린도전서는 고린도의 공동체가 그들의 분쟁 상황을 끝내고 일치하도록 설득하는, 심의적 논증을 가지는 전일적 구성의 편지라고 할 수 있다.

Ⅲ. 고린도전서 1-4장의 구조

1. 고린도전서에서 본문의 위치

고린도전서의 문학적 통일성은 학자들에 의해 대체로 인정되어 왔다. 그럼에도 고린도전서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보이는데, 그것은 고린도전서에 편지를 쓰게 된 계기가 이중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1-6장에서 바울은 글로에의 사람들로부터 전달받은 구두정보에 근거하여 고린도교회의 분열 문제를 다루며, 7-16장에선 스테바나를 비롯한 몇 남자들로부터 전달받았을 문서정보에 근거하여 고린도교회에서 이슈가 된 문제들을 다룬다. 그 두 부분의 내용들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점들이 반드시 고린도전서가 두 개 이상의 서신이라는 점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고린도전서의 편지 형식을 보면 바울이 의도적으로 편지 전체를 수사학적으로 배열(dispositio)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심의적 수사학의 양식에 따라 고린도전서의 구조를 살핀다면 고린도전서의 문학적 통일성은 훨씬 잘 설명될 수 있다.

1:1-3 편지의 서문: 발신자, 수신자, 인사말

1:4-9 감사(exordium)

1:10-17 주제 진술(narratio)

* 1:10-논증 목적(prothesis) : "분쟁의 중지와 일치를 향한 호소"

1:18-15:57 주제 증명(probatio)

1:18-4:21 고린도교회의 분파문제

5:1-11:1 고린도교회를 분열시킨 음행, 소송, 결혼, 우상제물 등의 문제들

11:2-14:40 예배에 함께 모일 때의 분열상

15:1-57 죽은 자의 부활 문제

15:58 결론(peroratio)

16:1-24 편지의 결문

여기서 1:10이 편지 전체의 주장을 요약하는 말이라 할 때, 고린도교회의 분쟁 상황은 편지 전체 주장의 배경이 된다. 즉 1-4장이 고린도교회의 분열을 직접 다루고 있다면, 5장부터는 공동체 분열의 양상들이 나타나며 이와 관련하여 교회 일치를 위한 구체적인 충고들이 주어진다. 1-6장과 7-16장은 다른 종류의 정보에 기인하는 각기 다른 문제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상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다. 바울이 7장 이하에서 고린도교인들의 이슈를 다루며 단순히 고린도교인들의 편지 순서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대개의 수사학적 문제는 이야기의 서두에 표현되는 점으로 미루어 바울의 요점은 편지의 전반부에 나타나 있다고 할 수 있다.

2. 본문의 구조

1:10-17 고린도교회의 분쟁(ִՑՉՄՅՒ/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의 분파 선언 제시)

1:18-2:16 십자가의 말씀(ՋՏՃՏՒ)과 지혜(ՓՏՖՉՁ)에 관한 신학적 내용

3:1-3:23 고린도교회의 분쟁(ִՑՉՒ/ 바울파, 아볼로파의 분파 선언 제시)

1:18-2:16은 전후문맥의 실제적 문제로부터 빗나가 있는(digression) 신학적 본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 이중적 문제가 하나의 단위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바울의 문제를 다루는 기술, 즉 수사학적 장치에 기인한다. 주제 또는 논조를 변화시킴으로, 주된 논쟁을 직접적으로 다룰 때 독자들이 느낄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하 본문 분석에서는 1-4장을 통일된 본문으로 보고, 바울과 고린도교인들의 사회적 경험, 신학, 공동체 상황에 대한 태도 등을 비교함으로 바울의 지도자됨에 결론을 도출하고자 한다.

Ⅳ. 고린도교회의 분쟁 상황

1. 고린도교인들의 사회적 경험 (1:26-31)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부름을 받을 때 "지혜로운 자"(ՓՏՖՏՒ), "능력 있는 자"(ՄՕՍՁՔՏՒ), "집안 좋은 사람들"(Յ״ՃՍՅՉՒ)이 많지 않았다고 한다. 즉 교육받지 못하고 사회-정치적 영향력도 없고 가문도 좋지 않던 고린도교인들은,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의해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위상의 역전을 경험했다(7:14-24과 비교). 고린도교인들은 자신들의 부름 받음을 사회적 위치의 변화와 관련시켜 생각했던 것이다. 바울이 그들과 자신의 입지를 대조할 때, 세 짝은 다시 언급된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위상(1:27-29)	그리스도인이 된 후의 위상(4:10)
바울	(지혜와 능력과 명예를 지님)	어리석고, 약하고, 비천함
고린도교인들	어리석고, 약하고, 낮음	지혜롭고, 강하고, 영광을 누림

이런 배경에서 고린도교인들은 자랑을 하였다. 1:27-29에서의 바울의 암시는 4:7에서 고린도교인들을 직접 향하게 된다.

1:27-29	고린도교인들을 부르심	하나님이 택하심	불특정인(ՐՁՓՁ ՓՁՑՎ)의 자랑에 대한 언급
4:7	고린도교인들을 구별하심(ՄՉՁՊՑՉՍՅՉ)ԉ	하나님이 주심	고린도교인들의 자랑에 대한 언급

그들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바울) 없이 다스린다."(4:8) 고린도교인들은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지혜와 능력의 풍성함이라는 새로운 영적 경험을 했으며, 변화된 자신들의 정체성을 인식했다. 그리고 그것이 자랑의 동기를 제공했다.

특히 바울이 지시하고 있는 독자들, 즉 지위의 상승을 경험한 자들 가운데는 여성들도 있었다. 지혜, 능력, 가문, 그리고 민족적 정체성('유대인과 그리스인'), 예속 상태('종과 자유인'), 성('남성과 여성')이라는 사회적 신분 요인들에 있어서, 고린도교회의 여성들은 부름받았을 때 대체로 낮은 위치에 속했다. 따라서 그들은 남성들보다 더욱,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표현과 명예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공동체에서 그들의 새로운 위치는 상대적인 사회적 지위의 상승을 의미했을 것이다.

2. 고린도교인들의 신학 (2:6-16)

바울은 앞서 고린도교회에서 지혜를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1:17; 2:1-4). 그러나 그는 지금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한다". 바울의 이러한 모순된 언급은 고린도교인들의 신학을 반영하고 있다. 첫째, 스스로를 지혜로운 자로 여긴(3:18; 4:10)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에게 지혜를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을 요구했다. 이에 바울은 "말의 지혜", "말이나 지혜의 탁월함", "말 잘하는 지혜"를 거부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지혜를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지혜를 말하지 않은 이유는 "십자가의 도(ՋՏՃՏՒ)"(1:18)의 배타성 때문이었다. 둘째, 고린도교인들이 요구한 것도 단지 지혜를 말하는 기술이 아니였다. 말이나 지혜의 "탁월함"(ײՐՅՑՏ՗Շ)은 형식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의 높아진 현존, 곧 "영광의 주"를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였다. 이 '지혜'는 감추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이제 하나님의 영을 통해 계시되었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신령한 자들"(ՐՍՅՕՌՁՔՉՊՏՉ,Ԍ2:15; 3:1)로 주장하였다. 그들의 지혜와 지위는 그들의 영광을 위해("ִՉՒ ՄՏՎՓՁՍ ֿՌՙՍ")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다(2:7). '감추임-드러남'이라는 지혜 이해의 도식(Q11:49; 7:33-35 참조)과 예수를 고양된 자로서 고백하는 신학(빌2:9-11 참조)은 헬라적 유대기독교의 맥락에 찾아질 수 있다. 셋째, 고린도교인들은 스스로를 "완전한 자들"로 간주했다(롬12:2; 고전13:10; 빌3:12 참조). 고린도교인들은 지혜가 완전한 자들에게만 지정된 것이며, 공동체의 "아이들"(ՍՇՐՉՏՉ)은 바울이 "젖"(ՃՁՋՁ)으로 은유한 초보적인 가르침-예컨대 바울의 십자가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완전한 자들(ՔՏՉ ՔՅՋՅՉՏՉ) 가운데서는" 지혜를 말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들이 결코 완전한 자요 신령한 자가 아니라고 선언한다(3:1).

요컨대 고린도교인들의 잘못은 기독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그 자신들의 실존과 자기 이해에 부합하게 그리고 있다는 데 있었다. 고린도교회의 신령한 자들, 완전한 자들은 그들이 공동체 내에서 높아진 경험을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 하에서 이해했으며, 이로써 그들의 기독론적 통찰은 십자가의 케리그마로부터 구별되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3. 고린도교회의 분쟁 양상 (1:10-12; 3:21-23)

'분열'(Փ՗ՉՓՌՁՔՁ)이 고린도 공동체의 핵심적인 문제였다고 할 때(1:10), 그 신령한 자들, 완전한 자들의 존재는 과연 이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먼저 고린도교회의 분열상에 대한 바울의 언급을 살펴보기로 하자(1:11-12). 바울은 글로에의 사람들로부터 고린도교회에 분쟁(ִՑՉՄՅՒ)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러나 분쟁을 네 분파선언에 관한 내용으로 이해한 이는 바울 자신이다("ՋՅՃՙ ՄՅ ՔՏՕՔՏ ץՔՉ..."). 이 선언들에 대한 묘사는 고린도교인들의 분쟁상황의 불합리함을 보여주고,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바울의 수사학적 전략일 수 있는 것이다(3:4-9, 10, 21-23을 참조). 고린도교회의 분쟁 상황에 대해 보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실은, 전체 교회가 한 지도력 아래 복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16:16). 스테바나의 지도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바울의 지도력도 도전받고 있음을 의미했다(4:18).

바울의 지도력을 의심하고 도전한 이들은 바로 '신령한 자들'로 자처한 사람들이다. 11-14장에서도 분쟁을 야기시킨 자들은 신령한 자(ՐՍՅՕՌՁՔՉՊՏՒ)와 예언자(ՐՑՏՖՇՔՇՒ)로 언급된다. 즉 1-4장에서 바울에게 지혜를 요구한 자들과 11-14장의 예언, 방언, 지식으로 알려진 사람들 곧 일군의 예언자들은 같은 사람들이다. 두 본문의 언어적 연관과, 내용 및 주장하는 방식의 유사성을 살펴보라. 11-14장에서 문제를 일으킨 예언자들 중에는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 바로 뒤에 예언자, 신령한 자에 대한 경고가 주어지기 때문이다(14:34-37). 거기서는 '하나님-그리스도-남자-여자'의 위계가 강조되며, 특히 12:13에는 갈3:28과 달리 '남자와 여자(는 하나)'라는 언급이 생략되어 있는 바, 바울은 자신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로 예언과 방언을 하는 여성 예언자들을 염두에 두었다고 할 수 있다.

12:25에서의 분쟁이 '그리스도의 몸의 갈라짐(Փ՗ՉՓՌՁ)'이라는 신학적 용어로 표현되었다면, 11:18의 분쟁(Փ՗ՉՓՌՁՔՁ)은 그것의 윤리적 징후이다.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의 '자랑'과 '교만'을 지적할 때도 그것의 신학적 의미와 윤리적 현상들을 연관시킨다. 그들이 받은 영과 소유하고 있는 지혜에 근거한 신학적 자유는 윤리적 자유에까지 확대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린도 공동체의 분쟁 양상인 것이다.

Ⅴ. 바울의 지도자로서의 대응

1. 바울의 사도적 실존 (4:9-13)

고린도교인들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와 지위의 상승을 체험한 반면,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을 받음으로 지위의 상실을 경험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기 전에 '지혜'롭고(행22:8; 갈1:14), '능력'있고(빌3:5), '지위'를 가진(행22:25)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유대인, 자유인, 남자로서도 유리한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것을 잃는다. 그는 바리새인이기를 포기함으로 '지혜'를 잃었으며, 고린도교회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지혜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가 사도로서 고난받는 것(4:11-13), 더욱이 그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손으로 일해 벌어먹으며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린도교인들에게 '능력' 없음과 약함으로 보여졌을 것이다. 고린도교인들은 바울의 이러한 태도를 비판했고(2:14-15; 4:3-4; 9:3), 바울 없이 왕노릇하며, 그가 고린도교회에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4:18). 이는 공동체에서 그의 '명예'가 훼손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의 특권적인 '유대인 신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도 이방인도 없다고 할 때 의미가 없어졌다. '자유인'으로서 그의 권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종이라는 정체성에 의해 제한되었다. 그리고 '남성'으로서 그의 위치는 고린도교회의 여성 예언자들과 같은 차원에 존재하게 되었다.

'세상의 쓰레기와 모든 것의 찌꺼기처럼 되었다'는 탄식이 그의 지위 상실의 정도를 말해준다. 동의어인 "쓰레기"(ՐՅՑՉՊՁՈՁՑՌՁ)와 "찌꺼기"(ՐՅՑՉ՘ՇՌՁ)는 '대속적 희생'이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은 바울이 자신을 "사형을 언도 받은 자"(ִՐՉՈՁՍՁՔՉՏՒ)로 인식한 데서도 나타난다. 고난에 대한 이러한 수용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ԉ그와 같아지려는 것이다. 그의 사도적 실존은 그의 십자가의 신학과 큰 관련이 있다.

2. 바울의 십자가 신학과 선포 (2:1-5; 1:18-21)

바울의 사도적 실존은 그의 선포자로서의 태도와, 선포의 형식과 내용 모두에 영향을 미쳤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약함, 두려움, 떨림으로 그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빌2:12 참조). 바울은 "말이나 지혜의 탁월함"을 거부할 때, 유창하게 지혜를 말하는 기술과 함께 그 신학도 거부했다. 물론 바울 자신도 고린도교인들과 함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라는 사실을 공유했다. 그런데 바울의 새로운 공헌은 모든 세상 지혜로부터 십자가의 예수를 분리하여 주장하는 방식에 있다. 즉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지혜이다.

바울은, '어리석음 가운데 있는 지혜와 약함 가운데 있는 능력'이라는 십자가의 역설적인 면을 통해 자신의 지위 상실을 정당화 한다. 동시에 그는 고린도교회에서 진정한 지혜와 능력을 가진 자로서 자신의 위상을 회복한다. 한편 고린도교인들에게 십자가의 도(ՋՏՃՏՒ)는 그들의 말에(ִՍ ՋՏՃՙ) 근거한 세상 지혜를 어리석은 것으로 만들며, 그들이 이미 누리고 있는 영광을 유보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그리스도의 '낮아짐'에 대한 인식, 바울 자신의 '낮아짐'에 덧붙여, 고린도교인들의 '높아짐'도 고린도교회에서 그의 선포의 배경이 되었다.

3. 공동체의 지도자로서 바울 (4:14-21)

바울은 십자가의 역설을 통해 고린도교인들의 태도를 교정하고자 하는 동시에 자신의 권위 주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제 바울은 자신이 공동체의 유일한 아버지임을 주장한다. 그 설득의 과정은 1-4장과 11-14장의 본문 비교를 통해 제시될 수 있다.

바울은 분파 선언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하고 자신의 권위를 더 높은 권위와 연결시킴으로, 갈등구조 속에 자신을 편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게 되면서 새로운 영적, 사회적 체험을 한 고린도교인들 특별히 여성 예언자들에게, 그러한 바울의 권위 주장은 쉽게 인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권위적인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대한 그의 호소는 위험의 요소를 품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그의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반대의 효과를 가질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훈계하고 매를 들고 찾아올지 모르는 아버지처럼 분쟁 상황에서의 일치를 호소했다.

Ⅵ. 결론: 지도자로서 바울의 모습이 주는 현대적 의의

그러나 바울이 실제로 원한 것은 매를 든 아버지가 아닌 사랑과 온유함으로 다가가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4:21). 바울은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 그리고 유대 사회의 지배적 문화였던 가부장제를 수용하되, 그것이 강압과 굴종이 아닌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도록 했다. 바울의 고린도 경험은 이 "사랑의 가부장제"(love-patriarchalism)가 성립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고린도교인들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영적인 능력의 풍성함과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만약 바울의 기독교가 이렇게 열광주의적으로 평등주의적으로 나아갔다면, 그것은 그 급진성 때문에 세상에서 소종파로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바울은 분쟁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공동체에서 가부장제적 위계를 제시함으로 분쟁을 잠재우고 일치를 추구하고자 했다. 동시에 그는 공동체의 모든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사랑'을 제시했다(12:31b; 13장). 그것은 바울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ץՄՏՒ)이었다. '본받으라'고 한 아버지의 모범은 그의 삶의 '길'에서 발견된다. 바울은 공동체에서 유일한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주장하되, 그리스도처럼 낮아짐의 길을 택한 어리석고 약한 아버지를 자처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과연 온 몸으로 온 삶으로 자녀를 설득하듯이 공동체의 일치를 호소한 바울의 모습을 따르고자 하는가? 교인들 위에 군림하며 회초리를 든 아버지의 모습만을 강조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공동체의 아버지된 자들은, 초기 교회에서 여성들이 예언자로서 활동하던 상황은 무시한 채 바울의 언술들만을 가져옴으로 교회의 여성 지도력을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바울의 시대와 동일한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동시에 강압적이고 독단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저항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바울의 지도자로서의 모범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오늘날 지도자들에게 권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합리적 권위여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바울에게서 그러한 면을 배운다. 희생을 통한 사랑의 검증, 선포와 삶의 일치, 상대방의 용어와 사상을 통해 설득해가는 기술 등이 그것이다. 고린도교회는 그 어디보다도 문제가 많은 곳이었지만, 이는 역으로 바울이 목회적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치룬 대가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어리석음과 약함과 낮음이라는 가치에 터해 신학-선포-삶의 일치를 추구한 바울의 지도자적 모습은, 진정한 권위의 기반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