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설교

모든 목회자가 그렇듯이 나 역시 설교에 신경을 많이 쓴다. 그 까닭은 목회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것이 설교이며 따라서 목회의 중심이 말씀선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설교는 우리의 평생에 걸친 사역이며 목사의 주요 임무인 것이다. 목회자들의 업무는 여러 가지이며 그 모든 것들을 위해 힘쓰지만 설교하는 것이야말로 그 가운데 가장 큰 일이란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에 대하여 계속 연구하며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있어서 다른 어떠한 소명보다도 설교사역이란 가장 높고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소명이란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며(마 28:20 이하) 이 세상이 가장 크게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설교와 교회

우리는 교회역사와 목회현장에서 중요한 현상을 발견한다. 언제나 설교에 따라서 교회가 달라지고 방향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교회가 언제 어떻게 싱싱해졌으며, 언제 쇠퇴해졌는가를 볼 때 그것은 설교가 살아 있을 때와 무력해졌을 때로 구분된다. 그런 면에서 교회사상으로 설교는 교회의 중추적인 역할이며 기초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이적 기사를 행하셨는데 그 목적은 말씀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고, 설교의 비중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 오는 이유 가운데 중요한 것이 설교를 듣기 위함인 것이다.

훌륭한 인물들

목회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과제가 "어떻게 하면 보다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도 예외는 아니다. 한평생 "설교"의 무거운 과제(짐)를 안고 지내 왔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럽고 신나는 일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설교자들이 공감할 것이다.

나는 설교에 대한 감수성이 아주 예민한 편이어서 어떤 한 두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설교자에게서 항상 영향을 받아 왔고, 그것들을 통하여 내 나름대로의 설교 스타일이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별로 특색 없는 것"이 나의 설교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을는지? 그러나 신학생 시절과 목회 초기에 나에게 크게 은혜를 끼치고 감동을 준 설교자가 몇 분 계셨다. 서울신학대의 이 건 교장 그분은 영해의 권위자로써 아주 깊이 있고 무게 있는 성서학자였다. 6.25 동란 때 북한 공산군에 의하여 북으로 납치되어 가셨지만 그의 설교는 성경전체를 꿰뚫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 성경은 없다" 이런 주장 아래서 구약전체 특히 모세오경을 풀이해 주셨던 것이다. 또한 그분과 같이 교수로 활동하셨던 김유연 목사님, 그의 설교는 아주 깔끔하고 재미있는 이른바 "맛있는 설교"였다. 현실적이면서도 복음의 깊이가 심오한 내용은 성별과 층의 구분 없이 환영받는 설교였다. 그의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언제나 저런 설교를 해볼 수가 있을까?'하고 몇 번이고 생각에 잠기곤 했었다. 그런데 그 어른도 역시 이북으로 납치되어 버렸다.

그런데 내게 가장 크게 영향을 준 분은 역시 한경직 목사님이시다. 나는 신학생 시절부터 그 분의 설교를 좋아해서 늘 귀 기울여 듣곤 했다. 그의 설교는 높은 지식과 깊은 영적 체험뿐 아니라 고매한 인격과 희생적이고 싱싱한 삶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설교임을 발견하게 될 때 그 호소력과 감화력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인격과 생활설교가 오늘의 영락교회를 만들어 냈다고 해도 누가 의의를 말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그 분에게서 우선 철저한 "원고설교"를 본받게 되었다. 그래서 목회 초기부터 "원고설교"를 해 왔다. 그러나 나는 한 목사님과 같은 설교 스타일이 되려고 하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이 제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특색과 방향이 있는 터이므로 나는 나대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물론 나의 스타일이나 방향이 결코 좋은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남의 모습을 그대로 모방하거나 전적으로 유입시키는 것도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몇 권의 책들

나는 설교에 관계되는 책들을 그리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게 큰 도움을 준 책은 "강단의 거성"(생명의 말씀사)과 D. L. Moodys Life, Work & Latest Sermons (Rhodes & Mcclure Pub, Co.)인데 이 두 책에서 설교자는 먼저 영적무장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생활과 생명을 쏟아 가며 설교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 있게 배우게 된 것이다. 설교란 결코 말이나 강연 같은 것이 아니라 생활이며 인격이며 생명전체를 쏟아 붓는 Zeal이며 Pathos란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따라서 많은 후배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설교학 책은 Preaching & Preachers (D. M. Lloyd Jones. 한국어 판은 {목사와 설교}(예수교문서선교회)이다. 거기에는 저자의 강연집처럼 된 설교전반에 걸친 모든 것을 아주 평이하게 설명했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실감 있게 감동을 주어 가며 설교의 방향과 내용에 대하여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나는 그 책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 물론 철저한 보수적인 입장에 기초한 책이다.

주석류에서는 The Interpreter Bible (Abingdon)인데 주로 한국어판을 보았다. 그것은 보수적인 입장이 아닌 아주 폭넓은 좋은 내용들인데 나의 설교에 많은 도움을 준 책이다. 거기 있는 주석과 설교힌트는 내 머리를 갑자기 잘 회전시켜 주었다. 정말 고마운 책이었다. 최근에는 때때로 발간되는 정장복 교수의 책들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다.

할수록 어려운 설교

내가 이런 말 저런 말들을 하고 있지만 솔직한 고백은 설교란 할수록 어렵기만 하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부터 원고설교를 해 왔고 교회 주보에 그날의 설교요약을 몇십 년간 실어 왔기 때문에 "요약설교집"을 내기는 아주 쉬워졌다. 그러나 나는 주변 사람들의 권함도 여러 번 받았고 후배들의 요청도 있었으나 한 번도 설교집을 낸 적이 없다. 그 까닭은 설교란 생동감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글로 그냥 읽게 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일까? 하는 마음과 내 설교를 감히 어디다 내 놓을 수 있겠는가? 하는 두려운 마음, 그리고 서점에 가면 설교집의 홍수로 그것이 하나의 공해처럼 느낄 때가 있어서이다. 설교집을 발간하신 분들의 대부분은 아주 훌륭하신 목사님과 대교회의 성공적인 목회자들이지만 때로는 아직 목회경험이나 사역에 별로 조예가 없는 이도 가끔 섞여 있음을 볼 때 그것은 자신을 선전하는 하나의 도구로 삼는 듯한 느낌까지 받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나의 생각이나 말이 하나의 "겸손적 교만"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참 깜빡 잊을 뻔했다. 1990년 7월에 주보에 실렸던 설교요약을 얼마만 선정해서 요약설교집 "네게는 숨기지 아니하리라"(기독교문화사)를 낸 일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농어촌교회전도사들과 신학생들에게 전해졌고 결코 상품화하지는 않았다.

지금도 여러 교회에서 설교요청을 받아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고 있지만 신나고 재미와 보람이 있으면서도 정말 설교란 어려운 것이로구나 생각된다. 그렇더라도 내 생명 끝나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 선포하는 일만은 지속하리라 다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 일을 위하여 부름 받았기 때문에…

설교에 대한 나의 생각

대관절 설교가 무엇이기에 그렇게 중요하고 또 영원한 것이란 말인가?

그것을 학문적이고 권위 있는 학자들이 정설이 아닌 "임상목회"의 통속적인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즉,

설교는 강의가 아니다. 강의란 학문(학설)을 풀어 가르치는 것이나 설교는 그렇지 않다.

강연이 아니다. 강연은 사실이나 사항의 뜻을 논술하는 것이나 설교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강좌가 아니다. 이것은 교수나 전문가가 맡은 학과목을 해설하며 거기에 관한 학술을 가르치는 것인데 설교는 거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설명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사실을 말하여 밝히는 것이나 설교는 단지 그것뿐이 아니다.

설득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일을 설명해서 알아듣고 이해하게 하는 것이나 설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연설이 아니다. 이는 여러 사람에게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나 설교는 그런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독백이 아니다. 이것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지만 설교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설교는 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지만 설교는 서로 이야기하며 의견의 접근을 통한 협력(합의)이 아니다.

그러면 설교란 무엇인가? 일방적인 "선포"요 "전달"이며 "선언"인 것이다. 그것이 생명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달리 타협이나 가감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회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모든 것보다 우위에 있는 사역인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나는 지금껏 많은 이들에게서 좋은 영향을 받았지만 앞으로도 훌륭한 분들의 생애나 그 설교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살고 일하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 나오는 좋은 책들을 통해서도 좋은 것들을 얻어 가지기를 원한다. 그 뿐 아니라 계속 설교하되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설교하기를 원한다. 인생을 짧고 말씀은 길기 때문에…

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