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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신학 장 경 철 (서울여대 강사 / 기독교학과) |
유통의 분야가 후진성을 면치 못하면, 언제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농산물의 유통구조가 불필요한 여러 단계를 거쳐서 중간상인의 착복이 심하다면, 생산자는 헐 값에 자신의 작물을 팔아야 하는 반면에, 소비자는 비싼 값에 그러한 농산물을 구입해야만 할 것이다. 단지 가격의 문제만은 아니다. 싱싱한 물건을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제 때에 제 물건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농산물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전 국민의 대다수를 점하고 있는 나라의 상황이라면 이러한 유통 구조의 후진성은 곧 국민 전체의 후진성과 불편함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농산물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또한 우리의 지식 산업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설교와 신학이라는 주제를 살펴봄에 있어서, 우리는 이러한 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현상황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지식 산업보다는 우리가 종사하고 있는 설교와 신학 분야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첫째, 설교란 무엇인가? '설교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둘째,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셋째, 신학하는 것은 설교하는 것과 어떤 관련을 지니고 있는가? 보다 구체적으로, 신학하기는 설교하기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1. 설교란 무엇일까?
우리는 먼저 설교를 간결하게 정의한 뒤에, 신학하기의 내용을 살펴보고, 다음에 그것이 설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습을 기술하는 식으로 우리의 논의를 전개하도록 하자. 우리는 먼저 설교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정의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하나님 자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위의 정의를 통하여 설교의 행위와 설교의 목적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설교의 행위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람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될까? "목사로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해야 함과 할 수 없음을 동시에 인정해야 하며, 바로 그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K. Barth, The Word of God and the Word of Man, 186; 굵은 글자는 강조된 것임) 바로 여기에 설교하는 것이 은혜의 사건일 수밖에 없음이 인식되어야 한다.
설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모습을 눈에 보이도록, 마음에 느껴지도록, 그리고 우리 삶 가운데 경험되도록 하나님을 전달하는 것이다. 설교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삶 전체에 드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설교하기는 하나님의 현존과 역사를 유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재와 현실(Reality)이 회중의 삶 가운데 전해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 속에 기록된 과거의 기록들에 관하여 말함으로써, 이제 곧 현재와 미래 가운데 드러날 하나님의 미래의 역사를 선포한다. 하나님이 보다 분명히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 설교의 목적이기에, 올바로 전해진 설교는 언제나 계시의 사건이 된다. 즉, 이전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거나 희미했던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 된다는 뜻이다.
2.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이란 무엇인가? "신학은 하나님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먼저 신학은 하나의 학문임을 알아야 하겠다. 학문이란 어떤 연구의 대상을 가지고 있고, 그 연구 대상을 독특한 방법론을 가지고 연구하고 접근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그러면 신학의 연구대상은 무엇인가? 그것(그분)은 물론 하나님 자신이다. 신학(神學)은 신앙학이나 교리학이 아님을 아는 것이 여기에서 중요하다. 신학의 일차적인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 이외의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이 아니기에, 오직 하나님만이 신학의 연구대상이다.
신학의 대상이신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떤 분인가? 신학의 대상은 무엇보다 살아 계신 분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대부분의 학문은 그 대상에 대한 정밀한 관찰로부터 시작된다. 이 점은 신학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그 관찰의 방식은 상당히 판이하다. 보통은 대상을 고정시켜 놓은 뒤에, 그 대상을 주의 깊게 (필요하다면 현미경이나 망원경의 도움을 빌어가면서) 관찰한다. 하지만 우리는 신학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
신학의 연구대상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그 대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독특한 방법론을 취해야 함을 우리에게 암시해 준다. 우리는 연구하는 대상에 따라서 그 대상에 적합한 방법론을 사용하며,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수학을 연구하는 것과, 천문학을 연구하는 것, 사회학을 연구하는 것, 또는 문학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서 모두 동일한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 신학을 연구하는 독특한 방법론은 무엇인가? 우리는 "신학은 날아가는 새를 그리는 것과 같다"는 말에 기대면서 이 질문에 간결하게 답하기를 원한다. 신학은 "날아가는 새"를 그린다. 다시 말하자면, 신학은 하나님-생물학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해부하고, 그 하나님의 이 부분은 어떠하고 저 부분은 어떠하다는 식으로 하나님 연구를 진행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연구하는 신학이 아니라, 죽은 대상을 연구하는 하나님-생물학이며, 심지어는 자신의 머리 속에서 (칼빈에 따르면, "우상의 공장" 속에서) 만들어내고, 이제는 고정시켜 죽여놓은 그 대상을 연구하는 것이며, 포이에르바하나 마르크스의 주장대로 인간의식의 투사에 불과한 신-개념을 연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신학을 이해함에 있어서, 신학은 살아 계신 대상을 그리는 것이며,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며 연구해 가는 것은 대단히 독특한 일련의 과정을 요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이러한 신학적 방법론의 특성에 유의해 가면서, 우리는 신학하기를 배워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다 신학자가 될 필요는 없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는 알건 모르건 간에 모두가 신학을 하고 있는 것이며, 또 그러한 의미에서 신학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논외의 문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각 사람이 전개하는 신학의 종류가 문제가 될 뿐이지 신학하기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원하건 원치 않건, 의식하건 의식하지 못하건 신학하기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제는 바른 신학하기를 계속 배우는 것이며, 좋은 신학자가 되기를 갈구하는 것이다.
3. 설교와 신학
그렇다면 신학하기는 어떻게 설교하기를 도울 수 있는가? 먼저 우리는 설교하기가 신학하기와는 어떻게 다른가를 간결하게 살펴보자. 설교란 우리가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하나님 자신을 전하는 것이다. 반면에 신학이란 그 하나님에 대한 연구로서 일종의 이차적인 성찰이다. 신학하는 것은 학문하는 것이기에 신앙의 활력을 다 담아내지는 못함을 우리는 여기서 인정해야 한다. 마치 한 건물의 약도가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실제로 응접실의 안락함을 그대로 재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학문하는 것 자체는 신앙의 활력을 그대로 분출하지는 못한다. 약도는 약도로서의 제한된 기능을 가지고 있듯이, 신학은 신학으로서의 자기 기능을 가지고 있다.
만일 신학하는 것이 날아가는 새를 그리는 것과 같다면, 설교하기는 곧 나의 화폭(畵幅)에 그려진 그 새로 하여금 다시금 날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틴 로이드-존스는 그의 유명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강연에서 설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설교란 무엇인가? 논리에 불을 지른 것이다! 정열적인 이성이다! 이 두 가지는 모순인가? 물론 모순이 아니다. 사도 바울과 다른 설교자들에게서 그러하듯이, 진리에 관계된 추론은 참으로 정열적이어야 한다. 그 추론은 신학에 불을 지른 것이다. 불타지 않는 신학은 문제가 있는 신학이다. 아니면 적어도 우리의 신학 이해에 문제가 있다. 설교란 불타고 있는 사람을 통하여 나오는 신학이다." (D. M. Lloyd-Jones, Preaching and Preachers, 97. 서문강 옮김, {목사와 설교}, 127)
로이드-존스의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신학은 긴박성 내지는 시급성(urgency), 열정, 생명성 등의 요소를 지닌다. 한 마디로 설교에는 불이 붙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설교란 곧 자신의 신학적 성찰에 불을 지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신학하기는 설교하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신학이 설교에 도움이 된다고 할 때, 우리는 단순히 신학적인 용어들을 설교에 사용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조직신학자의 이름이나 학설을 인용하는 것이 설교에 도움이 되지 않음은 약간의 관찰과 한 두 번의 경험이 이를 충분히 증거한다. 여기서 우리는 구체적 신학적 학설들의 인용이 아니라, 설교자 자신의 신학하기가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면 설교와 관련하여 바른 신학하기는 도대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여기서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서 우리가 자주 범하기 쉬운 잘못을 지적하고자 한다. 바른 신학하기란 신학을 한다고 할 때, 신학을 하고 다른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뜻인가? 신학한다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을 독립변수로 두고, 다른 것들을 종속변수로 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사회학을 한다는 것은 사회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심리적, 생물학적 요인보다는 사회학적 요인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이듯이, 또는 심리학을 한다는 것은 모든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심리적 요인을 최우선에 두는 것이듯이, 신학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요인을 인간의 모든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을 뜻한다. 즉, "하나님 있음"과 "하나님 없음"의 요소가 인간의 삶의 모든 현상에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가장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것을 발견하고 증거하는 행위를 신학하기라 부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라는 독립변수를 주요 요인으로 두는 가운데 다른 주변학문의 통찰들을 유용하게 사용해야지, 신학하기를 어문학이나 역사학 하는 것과 대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학한다는 것은 다른 학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직 하나님에 관해서만 생각하고 세계에 대한 관심은 닫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신학하기의 독특한 특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학문들은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에 대해서 눈을 감아야 한다. 하지만 신학하기는 다르다. 신학하기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은 곧 창조주 하나님이기에, 피조물에 대한 이해가 풍성하지 못하다면 그 피조물들의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의 이해는 빈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풍성한 하나님 이해는 언제나 풍성한 세계 이해, 풍성한 인간 이해를 수반하게 된다. 좋은 설교자가, 그리고 좋은 그리스도인이 세계에 대해서 언제나 개방적이며, 신문, 서적, 경험 등으로 대표되는 매체를 통하여 세계를 더 깊이 알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인간 이해, 세계 이해, 역사 이해를 보다 성서적으로 확장하고 심화시켜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어떻게 독립변수로 현존하며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올바로 사고(思考)하고 기술하는 것이 바른 신학하기이며, 이것은 설교자의 설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신학하기에 있어서, 로이드-존스의 표현대로 "불타지 않은 신학은 문제가 있는 신학이다." 그러나 타는 불의 범위가 어느 정도이며, 얼마만큼의 범위만큼 빛을 발할 것이고, 또 어느 정도의 열을 낼 것인가의 문제는 준비된 장작의 양과 질에 좌우된다. 미국 대각성운동의 주도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지적한 바와 같이, 엘리야의 장작을 태운 것은 하늘로부터 떨어진 불이었으나, 그 이전에 엘리야는 자신의 장작을 차곡차곡 쌓아두었음(열왕기상 18:30-38)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설교자의 신학이 제한되어 있다면, 즉 하나님 자신을 전함에 있어서 설교하는 사람의 신학하기의 범위가 축소되어 있다면, 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 그가 드러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다 온전하게 하나님의 모습을 파악하고자 하는 지적인 노력이 언제나 수반될 때 그의 하나님 전달은 보다 효과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해리 에머슨 포스딕이 "당신의 하나님은 너무 작다"(Your God Is Too Small)라고 설교한 것은 그저 한 두 사람의 삶이 제한적임을 지적했다가 보다는, 오늘도 하나님을 전하는 사람들의 하나님 이해가 너무도 왜소함을 지적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신학이 하나님의 모습에 걸맞는 그림을 가지도록 부단히 애써야 할 것이며, 자신의 생각에서부터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구체적 신학하기의 작업 가운데 자신이 전달한 하나님, 자신의 설교를 통하여 유통된 하나님이 과연 하나님 자신이었는가를 계속적으로 되물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설교자의 신학은 하나님의 지평을 향하여 나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설교하기를 풍성하게 살찌우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러한 신학의 공헌과 함께 신학의 위험성도 또한 지적해야 한다. 신학하기를 즐기는 동안에, 성도들과 죄인들을 구체적으로 사랑하기보다는 철학적 개념과 신학적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더 즐기는 유혹이 있을 것이다. 마치 생물학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을 관찰하듯이 관찰할 뿐이며, 심지어 배우고 연구는 할지라도 목회의 대상에 대하여 울며 아파할 대상으로 생각지 않는 위험이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좋은 설교자는 신학하기를 배우면서, 동시에 미련없이 신학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옛 신앙의 선배들은 때로 절-학문(節-學問), 곧 학문을 절제해야 할 필요성을, 학문하기와 함께 가르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