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목회와 相生의 영성

김 외 식 교수

(감신대/실천신학)

I. 시작하는 말

한국에서의 동양과 서양의 만남은 지난 10 여년 동안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것은 초기의 형태인 철학이나 사상적인 만남만이 아니라 종교 간의 만남, 동양의 명상법과 서양의 심리학, 심지어 서양의 물리학과 동양의 신비주의와의 만남까지 시도되고 있다. 물⥭학의 경우, 보아(N.Bohr)를 필두로 하여 양자역학을 완성시킨 하이젠베르크(W.Heisenberg)가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 原理)를 발견하게 되자, 전통적인 뉴톤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뿌리채 흔들리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운 실재관, 사유 체계를 위한 모형 변화(paradigm change)가 요청되었다. 한편 이와 맥을 같이 하여 神學의 일각에서도 큉(H.Küng)과 트라시(D.Tracy) 중심으로 신학의 모형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대의 모형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해석학적 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그리고 제3세계 신학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한국의 소장 신학자들이 논의하고 있는 포스트모던 신학은 크게 보면 현대의 모형 속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한편 이러한 현대 모형을 또 한번 교체하려는 시도로도 보인다.

한국에서 60년대부터 감리교신학대학의 윤성범, 유동식을 선두로 하여 변선환, 김광식을 거치면서 최근 소장 신학자들의 토착화 신학은 신학의 모형 변화 내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리고 80년대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기독교 영성(Christian Spirituality)에 대한 신학과 교회의 관심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근대과학은 자기들의 언어야말로 사실의 언어요, 참 언어 즉 "메타언어"(metalanguage)라고 규정짓고, 문화와 종교의 언어들은 하위 언어 혹은 제2급의 언어로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메타언어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서 신앙의 언어 특히 신비주의나 영성의 언어는 신학에서조차도 환영을 받지 못했다. 자연과학에서 발생한 사유 체계의 모형 변화는 직접, 간접적으로 신학에 영향을 주면서 과거 신학에서 소외되었거나 소멸되었던 언어들을 되찾고, 의미 회복을 시도하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포스트모던 신학과 최근의 기독교 영성 운동은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하겠다.

본 연구는 넓게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 그리고 토착화 신학이라는 맥락에서 또한 좁게는 요한 웨슬리와 한국과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시도해 본다. 60년대 한국의 토착화 신학은 조직신학자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나, 최근에는 조직신학자, 성서신학자 그리고 실천신학자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공동 작업을 벌이는 것이 특색이요, 발전된 양상이라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본 연구는 윤성범이 시도하려 했던 소위 신유학(neo-confucianism)의 理氣論과 최근 박종천, 홍정수가 시도하고 있는 相生의 神學을 요한 웨슬리의 목회와 접목시켜 보려 한다. 이러한 시도에 있어서 논자는 영성이라는 관점(a perspective of spirituality)에서 주제들을 다루고자 한다.

II. 理氣論과 相生의 영성

한국에 있어서 토착화의 실천신학적 작업은 앞서 잠깐 언급한 대로 조직신학이나 성서신학과의 대화 속에서 전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실천신학은 신유학의 개념을 가지고 기독교의 계시를 이해하려 했던 윤성범, 샤마니즘에서 한국인의 근원적인 정신 구조를 찾으려 했던 초기의 유동식과 풍류도에서 드디어 한국적인 영성을 발견하였던 후기 유동식, 그리고 불교와의 실존-휴머니즘적 대화를 시도한 변선환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만 아니라 한국의 토착종교인 천도교(혹은 동학)와 증산교에 대해 신학적 해석 작업을 시도하고 있는 박종천·홍정수와, 한사상(Hanism) 중심으로 신학을 전개하는 김상일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고 본다. ⥭밖에도 실천신학이 한국인의 종교심, 신앙심의 뿌리를 캐어 목회현장과 연결시키려고 한다면 道敎 및 仙道에 대한 심층적 연구도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이기춘의 {韓國的 牧會神學의 探究} 는⥭비록 인접 신학자들과의 충분한 대화를 거치지는 않았지만, 한국인의 심성을 유교적인 부성적 심성과 무교적인 모성적인 심성으로 분석하고, 양성(兩性)의 묘합으로서 한국적 목회신학을 시도한 점은 귀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왜 理氣論과 相生을 함께 묶어 다루는가? 일찌기 윤성범과 유동식은 그들의 초기 저서에서 유교와 무교, 천도교 등을 다루고 있으나 각각 소개하는데 그치고, 이들 사상을 통전적인 시각에서 다루지 않았다. 윤성범은 율곡의 理氣論을 개략적으로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야스퍼스의 Dasein과 Geist의 관계는 栗谷의 理通氣局보다 칸트에 철저하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실로 栗谷은 야스퍼스와 견줄 수 있으며, 후자보다 훨씬 앞

선 감이 나는 것이다.

스승 윤성범의 뒤를 이어 이정배는 율곡의 理氣一元論的 形而上學을 트뢸치의 종교적 선험성의 신학적 구조와 대비하여 연구하였다. ⥭정배가 氣의 자기 활동성에 촛점을 두고 인간 존재의 형이상학화를 다루었다면, 김경재는 율곡의 主氣論的 경향을 사회변혁론으로 벌전시켰다.

율곡의 이러한 동태적이고, 현상학적인 主氣論的 사고 경향은 곧 그가 삶을 언제

나 동태적인 변화의 가능성 속에서 본다는 것을 뜻하며, 여기에 규범적이고 체제보

수적인 전통 규범 원리 및 법제의 고정화 관념을 깨뜨리고 삶의 상황이 변화하면,

氣의 發에 따라 理가 乘하듯이 法制와 체제도 가변성을 갖고 통변해야 한다는 사회

변화의 논리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조선조의 理氣論에 단순히 官學形式의 형이상학적인 논쟁으로서만이 아니라 민중지향적이며, 변혁적인 프락시스(praxis)까지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게 된다. 그러나 조선조의 理氣論은 主理派와 主氣派 혹⥭ 領南學派와 畿湖學派로 나뉘어 분열·대립·갈등을 자아내었다. 만약 이때 相生이라는 정신을 가지고 理氣論을 다루었다면, 조선조의 정치, 경제의 사회의 양상은 많이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당시 영남학파의 대표였던 이퇴계가 主理的 입장에서 출발했지만 奇大升과의 四端七情論辨을 통해 理氣互發까지 도달한 과정을 보면, 퇴계의 마음 중심에 相生의 정신이 잠재해 있었다고 본다. 뒤에서 자세히 논하겠지만, 理氣互發은 相生에 대한 性理學的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조선조의 체제보수적이며 主理的 풍토가 양반 계급이나 권력을 장악한 기득권층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본다면, 19세기에 발생한 동학과 ⥭산교의 사상은 체제변혁적이며, 主氣的 경향을 띠고서 서민 및 소외 계층으로부터 분출한 것이다. 따라서 증산교의 解寃相生 사상은 이런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으며, 解寃相生은 이론(theory)이자 곧 실천(praxis)이며, 실천이자 곧 이론인 것이다. 역시 성리학적으로 표현한다면, 理이자 氣이며, 氣이자 理로서 理氣互發이요 理氣相生인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토착화신학이 윤성범을 이어 소장파 신학자들에 의해 동학과 증산교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면 理氣論을 간단히 소개하고 상생의 영성을 다루도록 하겠다. 중⥭의 理氣哲學은 주렴계의 太極圖說, 장재의 氣哲學, 二程(程明道, 程伊川)의 理氣二元論, 그리고 이를 종합한 朱子의 理氣論에서 그 완성을 보게 된다. 주렴계는 太極에서 陰陽, 陰陽에서 五行(five forces) 그리고 太極·陰陽·五行의 상호작용에 의해 萬物이 化生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장재는 萬物의 생성을 氣의 聚散으로 설명하면서 氣가 모이면(聚) 萬物이 되고, 흩어지면(散) 太虛가 되는 것으로 본다. 氣哲學에 의하면, 太極이 곧 氣이다. 정이천은 形而上者로서의 道를 理로, 그리고 形而下者로서의 器를 氣로 바꾸어 理氣二元論을 수립했다. 이때 理는 본체적 존재로서 體이며, 氣는 작용적 존재로서 用인 것이다(理體氣用). 朱子는 주렴계·장재·이정의 학설을 종합하여 太極을 理, 陰陽을 氣로 하되, 理와 氣의 관계에 대해서는 事物이 氣라는 質에 의해서 형성된다면, 그 사물에는 "所以然之故"로서의 理와 "所當然之則"으로서의 理가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理氣의 先後에 대해서는 理氣相卽不離이지만, 궁극적으로는 理先氣後는 퇴계에 와서 理尊氣卑의 主理的 경향을 띄게 되면서 위에서 말한 학파 간의 상쟁·갈등을 낳게 된다. 또한 朱子의 理體氣用說이 心性論의 구조에서는 性體情用의 논리로 발전되면서 四端七情論辯으로 이어지게 된다. 퇴⥭는 仁·義·禮·智의 단초가 되는 惻隱·羞惡·辭讓·是非의 마음 즉 四端을 '理의 發'로 보고 喜怒哀懼愛惡慾의 七情은 '氣의 發'로 보았다. 그러나 高峯과의 논변 끝에 四端은 理發而氣隨之(理가 발하고 氣가 따른다)로, 七情은 氣發而理乘之(氣가 發하고 理가 탄다)로 수정한다. 그렇지만 고봉이 계속 반론을 제기하자 퇴계는 수정설인 互有發用, 즉 理氣互發說을 주장하게 된다. 한편 율곡은 理의 독자적인 發出을 강력히 부인하고 四端七情을 막론하고 氣發而理乘을 주장하면서 아예 못을 박는다.

이러한 조선조 성리학의 四七論辯은 마치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 원리나 입자-파동의 이중성 이론을 읽는 느낌을 갖게 해 준다. 비록 퇴계의 理氣互發說이 理發이라는 모순 때문에 당시에 있어서는 합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었지만 相生 주제(motif)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으며 오늘날 영국 런던 대학의 물리학자 봄(D.Bohm)의 '내장된 질서'(implicate order) 개념과 연결시켜 연구한다면 새롭게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여하튼 理氣論은 誠敬論으로 발전하면서 "天道와 人道의 합일을 꾀하는 가장 유력한 개념" ⥭로 나타나는데 비록 그것이 기독교 신비주의의 본질인 神人 합일의 영성과 일치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평행적으로 연구할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그것이 개인의 자기 완성(기독교적으로 말하면 完德 혹은 기독자의 완전) 이라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율곡의 理通氣局說 같은 사회 변혁의 실천으로 연결된다고 할 때 요한 웨슬리의 개인적 성결(personal holiness)과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이라는 통전적이며 全一的인 영성, 즉 相生的인 영성과 병행시킬 수 있을 것이다.

본래 相生이라 하면 陰陽(氣)의 發用에 의한 五行의 相互作用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이해되어 왔다. 五行을 사계절로 본다면 木(wood)은 봄이요, 火(fire)는 여름, 土(earth)는 늦여름, 金(metal)은 가을, 그리고 水(water)는 겨울이다. 이것이 순조롭게 연결되면 相生作用을 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를 건너뛰게 되면 (가령, 봄인 木이 여름인 火를 건너뛰어 土를 만나게 되면) 相克作用을 일으키게 된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木 木

水 火 水 火


金 土 金 土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오행의 작용에는 相生관계를 형성하는 어떤 원칙(principle) 혹은 내재율이 있으며, 이 원칙이 파괴되면 相克관계가 형성된다는 사실이다. 또 오행의 근원이 되는 음양 자체가 相生관계에 있다. 음양의 관계는 이원론적인 "either-or"가 아니라 포괄적이며 全一的인 "both-and"이다. ⥭ 음양의 원리가 인간 무의식의 심층에 자리잡은 것을 정신분석학자 융(C.G.Jung)은 원형(archtype)으로서 Anima(남성 속에 있는 여성다움)와 Animus(여성 속에 있는 남성다움)로 분석했다. 개인의 경우 자기 내면속의 이러한 음양의 원리와 상생관계에 있지 못하고 상극관계에 있게 되면 정신병을 유발하거나 파괴적인 인간이 되고 만다.

인류 문명과 역사를 보면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 사이에 상생 및 상극 현상이 끊임없이 교차되면서 진행되어 왔다.

증산교의 교주 강일순은 매우 단순한 분석이라 할 수 있겠는데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와 문명을 天과 地, 陽과 陰이 대립하는 상극의 先天시대라 규정짓고, 이제는 대립이 끝나고 새로운 상생의 後天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증산교의 後天開闢 사상이다. ⥭렇게 후천개벽하여 현세 낙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개인의 수련이나 수도를 통한 도덕적 자기완성의 노력이 있어야 하나 이것만으로는 필요충분 조건이 되지 못하므로 둘째, 자연적,사회적,우주적인 환경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인 강증산에 의한 이러한 우주적 일대 혁명을 天地公事라 부른다.

증산사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해원 상생사상을 분석해 보면, 해원은 도구적 이미지(instrumental image)요 상생은 종착적 이미지(terminal image)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해원은 상생으로 나아가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서 다음의 몇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자유주의(亂法)의 극복이다. 현대 과학문명이 저질러 놓은 자연,환경파괴, 가공할 무기의 양산 및 전쟁은 난법이며 이것이 극복되어야 한다. 둘째, 올바른 역사관의 정립인데 다른 말로 萬古逆神의 해원이다. 이것은 올바른 뜻을 품고 天下事를 도모했다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말한다. 셋째로 상놈의 해원인데 착취당하고 억압당한 사람들의 해방이다. 넷째로 正陰正陽인데 이것은 단순히 남녀간의 윤리나 여성해원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위에서 열거한 해원과 관련된,

"强弱平等, 男女平等, 貴賤平等, 貧富平等 "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의 해원상생사상을 볼 때 웨슬리에게서 볼 수 있는 개인구원적 차원과 사회구원적 차원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상생이 단순히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You're OK, I'm OK.)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증산사상이 신학적으로 비판받아야할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조의 理氣論辯에서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했던 민중의 한을 해원상생에 촛점을 두고 풀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있게 평가할 수 있다.

III. 요한 웨슬리의 목회와 상생의 영성

18세기 초 암울한 영국 상황에서 한 가난한 국교회의 사제의 아들로 태어난 웨슬리는 새 시대를 여는 하나님의 새로운 도구로서 쓰임받게 되었다. 당시 영국사회는 정치,경제,사회,종교의 제 방면에서 실로 총체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때 웨슬리 형제를 중심으로 한 감리교회 운동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맴돌고 만 내면적인 각성운동이나 부흥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영적인 새 기운이 영국사회의 다방면에까지 미친 변형운동으로⥭연결되었다. 그러면 웨슬리의 감리교 목회와 그 뿌리가 되는 영성은 무엇이었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영성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합일(Union with God)을 추구하는 중세 신비주의적인 개념이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데 집중한 개인주의적인 근대 경건(moderna devotio)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홈즈는 포괄적이면서 심층적인 수준에서 영성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영성이란 1.인간의 관계성 형성 능력이며, 2.그 관계의 대상은 감각현상을

초월하는 존재이며, 3.이 관계는 주체의 노력과는 별개의 것으로 확장된

또는 고양된 의식으로서 주체에 의해 인식되며, 4.역사적 상황 속에서 본질

을 받고, 세계 속에서 창조적 행위를 통하여 그 자신을 드러낸다.

비슷한 맥락에서 김지하는 포괄적이며 동학적인 운을 띠고 이⥭게 말한다.

영성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이하고 신비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우주 생명이 살아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서로 공경하며 동식물과 무기물 속에

도 우주 삼라만상 전체의,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광활한 적막속에서 끊임없

이 창조적으로 활동하는 하나의 큰 생명이 테두리 속에 영겁의 한 흐름속에

일치되고 있다는 이 믿음을 각성하고 실천할 때,그것이 바로 영성이며 영적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영성은 세가지로 압축해서 고찰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의 심층 내면에서 초월자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요, 둘째는 이 경험으로 인한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각성(new Knowledge of self or self awareness)이며, 셋째는 이웃,자연,우주와의 사랑의 관계성 형성 혹은 실천이다. 이 셋은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셋이면서 하나요, 하나이면서 셋이다(三而一,一而三). 또한 이 셋은 不相離이면 不相雜으로서 相生的 관계에 있다. 만약 이것 중 한쪽으로 치우치면 진정한 기독교의 영성은 왜곡되고 변질되고 만다.

일찌기 웨슬리는 영성에 관한 고전들을 탐독했는데 초기 동방과 서방의 교부들(Basil,Chrysostom,Augustine,Jerome 등)을 연구하였고, 심지어 에브렘 사이러스(Ephrem Syrus), 마카리우스(Macarius the Egyptian)의 저작들을 읽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나아가서 웨슬리는 로마 가톨릭의 반종교 개혁자들(Counter-reformists)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가 미국 조지아 선교 당시에 만났던 독일 경건주의 후예들이 모라비안 교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신비주의의 장단점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연구와 경험을 통해 그는 기독교의 2대 전통인 신비적이며 묵상적인 전통(tradition of contemplation)과 사회적이며 활동적인 전통(tradition of activism)이 서로 대립 혹은 상극관계에서 각각 자기 길을 걸어왔음을 보았다. 웨슬리는 바로 이 두 개의 영성 전통을 하나로 묶어 그의 목회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목회에 있어 개인적이며 신비적인 영성과 사회적이며 참여적인 영성은 상호보완적 相生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감리교 목회의 근간이 되는 웨슬리의 영성은 包括的이며 相生的인 영성이다. 20세기 영성의 대가(spiritual master)라 할 수 있는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이 마리아적인 관상의 길과 마르다적인 행동의 길을 통전적으로 보려고 할 때 그것은 웨슬리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겠다.

이러한 요한 웨슬리의 영성을 배경에 두고, 그의 신학과 실천을 형성했던 네 가지 요소인 성서, 전통, 경험, 이성을 우리는 理氣相生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우선 성서를 理, 전통을 氣로, 이성을 理로, 경험을 氣로 규정해 본다. 그리고 각 요소들이 相克관계와 相生관계를 형성하는 것을 도표화해 본다.

도표:

성서 전통 성서(理)

(理) (氣)

경험 이성(理)

경험 이성 (氣)

(氣) (理)

전통(氣)

먼저 성서가 理로서 고유한 원리만을 주장하고 여타 요소들과 상극관계에 있게 되면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빠지며, 전통이 그렇게 할 경우는 중세 가톨릭과 같은 교권주의(ecclesiasticism), 경험이 그렇게 할 경우는 신비주의(mysticism), 이성이 그렇게 할 경우는 합리주의(rationalism)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상생관계에서 본다면, 성서는 단지 理로서 머물지 않고 氣를 받아들여 理氣之妙의 깊은 뜻을 파악하게 되는데, 현대 해석학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경험은 氣로서만 머물지(신비주의) 않고 理를 받아들임으로써 理氣之合의 건전한 윤리를 창출하게 된다. 요한 웨슬리의 신학의 진수인 칭의(justification), 성화(sanctification), 그리고 기독자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은 理氣之合, 理氣互發의 相生的인 바탕에서 성립되었다고 보겠다. 또한 그의 목회구조, 기능 등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웨슬리의 목회 구조를 보면, 그의 아버지 사무엘(Samuel Wesley)에게서 물려받은 국교회적인 제도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청교도적인 창의성이 잘 결합되어 있다. 그의 교회 통치 유형(the type of government)은 성공회와 가톨릭의 성직자 중심의 감독제도(episcopacy)나, 독립 교회와 조합 교회의 회중중심제도(congregationalism)나, 장로 중심인 장로회제도(presbyterianism)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으면서 그 장점들을 창의적으로 종합한 결과라 하겠다. 속회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창출된 감리교 고유의 제도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속회원들 중에서 좀더 믿음의 진보를 원하는 사람들을 가려내어 훈련시킨 신도반(the Band)은 현대 집단 역학(group dynamics)의 이론에 비춰보아도 손색이 없는 탁월한 규율과 지침으로⥭운영되었다. 그외 선발 신도반(the Select Band), 참회자반(the Penitents), 애찬회(the Love-feasts) 혹은 아가페(Agape), 야성회(the Watch Nights) 그리고 편지의 날(the Letter-Days) 운영을 보면, 그의 목회가 어떤 한 두 제도나 유형에 고착되지 않고 성서·전통·이성·경험의 묘합에 의해 실천되었음을 보여 준다.

웨슬리는 목회 지도력에 있어 평신도 지도력과 여성 지도력을 중시하였다. 이것은 가톨릭이나 국교회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또한 그의 선교의 대상이 당시 사회에서 소외되고 박탈당한 가난한 서민층이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이것은 강증산이 동학혁명 이후 더욱 방황하고 억압받던 상놈과 여성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상놈의 해원이라든가 正陰正陽의 실천을 펴나갔다는 점과 유비될 수 있다 하겠다. 그는 아래의 구원관을 가지고 실천목회에 임했다.

내가 뜻하는 구원이란 통속적으로 말해서 지옥으로부터 알몸만 빠져 나오거나 천

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로부터의 현재적인 구원, 영원의 원초적 경건

성과 본래적 순수성에의 복귀, 신성의 회복, 하나님의 형상대로 의와 참된 성결,

정의, 자비, 진리 안에서 우리 영혼이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구원은 도피적이며, 피안적인 것만 아니라 참여적이며 현재적인 것이며,개인적인 것인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칫 상극적인 대립 관계에 서 있기 쉬운 구원관을 상생적인 관계로 균형을 취했다.

웨슬리는 개인적인 수준에서 수도자의 생활에 버금가는 철저한 훈련과 절제의 생활을 주장했으며, 이것은 "은혜의 수단"(means of grace)인 기도, 성서연구, 묵상, 금식, 성례전 참여를 생활화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아가서 사회 봉사적인 수준에서 가난한 이, 병자, 실직자, 나그네 등을 위해서 구제 사업, 자선 병원, 고용 계획, 융자 기구를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웨슬리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사회 개혁적, 참여적 수준에서 농토의 사유화 법령폐지(the Enclosure Act), 노예제도 공격, 부패 선거구 제도의 철폐, 전쟁 반대운동을 벌여 많은 결실을 거두었다.

마지막으로 웨슬리의 예배를 잠간 언급하면서 理氣論의 구조에서 설명해 보고자 한다. 웨슬리의 예배에는 두 중핵인 설교와 성만찬이 동시에 선포되고 실시되었다. 이것은 그의 성서연구와 교부들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웨슬리는 설교와 성만찬의 의미를 보다 심화시키고, 둘의 관계를 불가분리의 관계로 엮어 놓았다. 따⥭서 웨슬리는 성만찬을 당시 국교회나 현재의 한국 개신교회가 하는 것 처럼 일 년에 두어 차례 실시하지 않고, 매주 실천하는, 소위 주례적 성만찬(the Weekly Communion)을 실천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가 理라면, 성례전은 氣이며, 이 둘은 不相離 不相雜(서로 떨어져도 않되며, 서로 섞어 놓아도 않됨)이다. 웨슬리 예배의 영성은 理氣互發的(퇴계)이나 그의 예배가 곧 사회변혁으로 연결된 것을 보면 理通氣局的(율곡)이다.

이런 점에서 논자는 한국의 토착적인 예배를 시도할 때 理氣論과의 접목을 제안하고 싶다.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은 선포되고 들려지는 말씀(Word as spoken and heard)인 설교와, 가시적이며 행동화된 말씀인(Word as acted and visible) 성례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가 理이며, 성만찬이 氣라 할 수 있으므로 이론적으로는 설교의 영성은 理發氣隨이며, 성례전의 영성은 氣發理乘이라 할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互有發用이 가능하다.

설교의 경우 氣隨에 있어 陽氣와 陰氣 중 어느 것이 우세하게 따르느냐에 따라 예언자적이며 부성적인 설교가 되는가 하면, 반대로 치유적이며 모성적인 설교가 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교회의 설교가 전자보다는 후자에 많이 치우쳐 있는 현상은 자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리고 성만찬의 경우 氣發理乘을 자명한 이치로 생각하면, 事效的(Ex Opere Operato)의 성례전관에 빠지게 되므로 理氣互發의 묘합, 즉 성례전의 이치를 충분히 깨닫고 믿음으로 실천함이 요청된다고 하겠다.

IV. 맺는 말

유목생활을 중심으로 발전된 유럽 문명권은 직선적인 역사관을 가졌으며, 농경생활이 중심된 아시아 문명권은 순환적인 역사관을 가졌다. 직선적인 역사 이해는 시작이 있고 종말이 있으나, 순환적인 역사 이해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계속 되풀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한 중동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기독교는 위의 두 역사 이해를 묘합한 특이한 역사관을 갖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영성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그의 영성 생활은 도피(기도, 금식, 관상 등)에서 참여(설교, 치유, 가르침)로, 참여에서 도피에로의 순환 및 반복이었다. 그에게는 공생애의 시작이 있었고, 십자가 상의 죽음이라는 종말이 있었으나(직선적 역사), 죽음에서 다시 부활함으로써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셨다(순환적 역사).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에 입각한 역사관은 직선적인 동시에 순환적인 역사 이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도표화하면 시계추의 진동(oscilliation)과 같다.

저세상 이세상

관상 활동

도피 참여

종말 시작

죽음 부활

음 양

우리나라의 태극 형상 이나 한자의 弓 자는 위의 도표와 매우 근접해 있으며, 본격적으로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일찌기 요한 웨슬리는 기독교 영성에 대한 깊은 연구와 실천을 통해 기독교의 영성의 두 전통인 도피적이며 관상적인 길과, 참여적이며 행동적인 길과의 바른 균형을 취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두 전통은 대립이나 상극이 아니라 포용적이며 상생적인 관계에 있었다. 물론 모라비안의 정적주의자들(Quietists)과 율법폐기론자들(Antinomianists)과의 논쟁이나 목회 치리(治理)에서 열매없는 나무는 도끼로 찍는(金克木) 상극적인 면이 없지는 아니하지만, 그것은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한 가지치기(요 15:1-2)였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그의 신학과 목회를 규정지은 성서, 전통, 이성 그리고 경험이라는 요소들은 理氣妙合의 관계에서 상보적이며, 상호의존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금 한국교회의 상황은 지난 100 여년 동안의 놀라운 성장에도 불구하고 영성적인 측면에서 보면 반성할 점이 적지 않다. 바로 이러한 때에 목회 경험과 교회 전통을 중시하는 主氣的인 목회자들과 성서와 이성을 중시하는 주리적인 신학자들이 상호협력, 보완하는 가운데 진정한 기독교적이고 감리교적이며 한국적인, 理氣之妙의 신학과 목회를 창출하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