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탐방기 강 사 문 (장신대 교수/구약학)

이번 호 {해외에서 온 편지}에는 지난 96년도 2학기 연구학기를 예루살렘 Ecole Biblique에서 보낸 장신대 강사문 교수(본 연구소 연구위원)의 "예루살렘 탐방기"를 싣습니다.

지난 학기(1996년 2학기) 예루살렘에 있는 불란서 성서와 고고학 연구소(Ecole Biblique et Archeologique Francaise)에 머물고 있을 때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적어 보내라는 성서학연구소의 요청에 따라 몇 자 적어 보려고 한다. 이곳은 113년 전(1884)에 세워진 도미니칸 수도회 소속 학교로 불란서 신부들이 주종을 이루나 세계의 십 여개 나라의 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곳이다. 상주하는 15명의 교수들과 박사과정의 학생 12명, 잠정적으로 머무르는 객원 교수 및 학자들 십여 명을 만날 수가 있었다. 우리에게 사해사본을 발굴한 학자로 널리 알려진 故 R. de Vaux같은 분이 이 곳의 교수였고, 사해사본 연구의 일인자인 Emile Puech 교수, 이곳에서 60년을 한결같이 학문에만 전념하여 작년(1996) 한 해에만도 한 권의 책과 세 개의 논문을 쓴 85세의 R. J. Marie­Emile Boismard 교수, 바울서신과 팔레스틴 고고학의 대가인 J. Murphy­O'Connor 교수, 앗시리아학의 거장인 Marcel Sigrist 교수 등이 이곳의 상주자들이다. 이곳에서 삼 개월 동안 머무르면서 느낀 점들 가운데 특히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우선 믿음과 행위의 일치 문제이고, 다음은 영성생활과 학문의 일치에 대한 새로운 느낌들이다.

옛날부터 예루살렘은 종교의 도시이다. 아브라함 때에 이미 그 곳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살렘 왕인 멜기세덱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종교성이 강한 도성이었던 것 같다(창 14:18). 그런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예루살렘은 지금도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래서 세속 도시인 텔아비브에는 세계 대도시들처럼 각종 유흥 밤 문화가 찬란하지만 예루살렘은 요란한 밤 문화가 없다. 밤에도 고요한 도시이다. 한 두 곳에 영화관들이 있어 젊은이들이 영화를 감상하기도 하나 상인들이 야한 포스터 같은 것을 벽에 붙여도 핫시딤 같은 종교인들은 이런 벽보들을 다 뜯어버린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이므로 환경적으로도 깨끗해야 하므로 이런 세속 문화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이런 세속문화는 서양문화로서 유대인의 고유한 종교문화를 해치는 것으로 간주하여 배척하고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는 세속도시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밤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도심지라 해도 밤 아홉 시 이전에 이미 시내는 조용할 뿐이다. 아랍인들이 사는 구(舊) 시가를 중심한 지역은 이보다 더 일찍이 해진 후 얼마 안되어도 밤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예루살렘이 종교도시이므로 주민의 상당수가 종교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믿으며 아랍인들은 이슬람교를 믿으며 기독교를 믿는 자들은 주로 외국인들, 아랍인들과 극소수의 유대인들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각기 다른 종교들을 신봉하고 있지만 그들이 믿고 있는 신앙과 행위는 철두철미하게 일치한다. 각 사람은 자기 종교의 주어진 생활 월력과 시간표에 따라 생활하게 된다. 왜냐하면 각자는 자기 종교가 갖는 생활 규정표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금요일에 모스크 사원에 가면 이슬람교도로 인정되고, 토요일에 회당에 가면 유대교인으로 인정되고, 일요일, 즉 주일에 교회에 가면 기독교인으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금요일은 이슬람교의 성일이고, 토요일은 유대교의 안식일이고, 일요일은 기독교의 주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속되는 삼일의 성일에 어느 성일을 지키느냐에 따라 각자의 종교와 각자의 정체성이 결정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각 사람의 신앙과 행동은 분리되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유대인들 중에 유대교를 믿는 자들이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생활문화가 유대교 문화이므로 회당에는 안 나가는 자라도 유대교의 생활문화 주기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다티(종교인)라고 하고 특히 더욱 열심인 자들을 가리켜 하씨딤(경건자란 의미)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음식과 의복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먹고 입으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음식과 의복도 성경이 말하는 대로 먹고 입으며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사는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 비늘 없는 물고기는 유대인들이 먹지를 않으므로 양어장에 남아 있는 메기나 뱀장어는 한국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다. 유대인 다티들은 민 15:38-39절에 있는 대로 머리에 키파(작은 빵떡 모자)를 쓰고 허리 둘레에는 실로 꼰 술을 네 가닥 늘어뜨린다: "너희는 대대손손 옷자락 끝에 술을 만들어야 하고 그 옷자락 술에는 청색 끈을 달아야 한다. 너희는 이 술을 볼 수 있도록 하여라. 그래야만 너희는 주의 모든 명령을 기억하고 그것들을 실천할 것이다." 또는 레위기 21:5절에 나오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말씀대로 머리칼과 양 귀 옆의 털을 자르지 않고 꼬불꼬불 기른다. "제사장은 머리털을 깍아 대머리같이 말며 수염 양편을 깍지 말라. 특히 안식일은 모두가 생업에서 손을 떼는 날이다. 왜냐하면 십계명에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에 모든 일을 힘써 하고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이라도 해서는 안된다"(출 20:8- 11, 신 5:12-15)는 말씀 때문이다. 그래서 안식일에 유대인은 세계 어느 곳에 있던지 안식일을 지킨다고 한다. 안식일에는 대중 버스는 물론이고 일반 차량도 거의 안 다니고 비행기도 안 뜨고 모든 교통 수단이 중지된다. 심지어는 불도 쉬어야 하기 때문에(출 35:3) 금요일 저녁에 해 놓은 음식으로 토요일을 지낸다. 이와 같이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기 때문에 회당이 있는 지역의 길을 차단하기도 한다. 잘못하여 외국인이 핫씨딤이 사는 지역을 차로 지나갔다가는 돌을 맞기도 한다. 사진 찍는 것도 금지되고 엘리베이터도 사용을 못한다. 복도의 전기불도 켜지 않는다. 베긴 정부 때에 정부가 안식일 위반으로 내각에 대한 불신임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등 어려운 때도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이스라엘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오는 전투용 비행기 인수식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정 시간보다 늦게 도착하게 되어 빨리 인수식을 서둘러 했으나 인수식 도중에 해가 지는 바람에 안식일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해지는 시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대교 정부가 안식일을 위반했다는 것은 유대교 국가로서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결이 되었지만 내각 총사퇴를 위한 불신임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던 때가 있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도 금식을 한다. 특히 금식은 속죄일에 온 국민이 한다. 느 9:1절 이하에 이르기를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이 칠월 이십 사일에 다 모여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고 낮 시간의 사분지 일을 죄를 자복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금식전통은 지금도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러므로 너무 형식적인 율법을 강조하는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으나 성경에 있는 대로 행하려고 애쓰는 것만은 틀림없다. 유대교는 믿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행함의 종교임에는 분명하다.

이슬람교 역시 믿는 대로 행하는 행함의 종교이다. 아랍인들의 98% 이상이 이슬람교에 속한다. 이들은 실행오계를 철저하게 수행한다. ①"신은 알라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고 마호메트는 알라의 사도이다"라는 신앙고백을 이슬람교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을 해야 한다. ②각 개인은 하루에 다섯 번 씩 메카를 향해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새벽 3-4시부터 밤 8시까지 기도 소리가 요란하다. 개인은 물론이지만 이슬람 사원은 사원대로 새벽부터 스피커를 통해 요란한 기도 소리를 울려 퍼뜨린다. 그러나 이런 요란한 확성기의 기도 소리에도 불구하고 불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이따금 아랍 운전 기사와 같이 여행을 하다 보면 운전 기사들이 시간이 되면 아무말 없이 무조건 차를 세우고 내려가서 메카를 향하여 땅에 머리를 대고 한참 동안 기도를 하고 차로 돌아와서 기도 시간이 되어서 양해를 구할 시간이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래서 예루살렘 시내는 온종일 각 종교의 기도 소리가 끊일 사이가 없다. ③자선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라마단 행사가 끝나는 날 이슬람교도들의 합동예배 전에 연 수입의 2.5%를 자선금으로 희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④성년이 된 이슬람교도들은 1년에 한 달 간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입에 물 한 모금조차 마시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아랍 달력은 윤달을 쓰지 않기 때문에 이 라마단(Ramadan) 금식기간이 늘 유동적이다. 일년 사계절 어느 때에도 해당된다. 그래서 때로는 여름도 되고 겨울도 된다. 섭씨 30도 이상 되는 여름에 온종일 물 한 모금 못 먹고 정상근무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이번 라마단은 겨울이었다. 그러나 모든 성년 이슬람교도들이 기쁨으로 묵묵히 한 달간 금식월을 지내는 것을 볼 때 하루도 온 교우들이 금식을 못하는 우리를 생각하며 느끼는 바가 크다. 이번 겨울방학 중 학생들과 2주간 성지답사 훈련을 할 때 아크만이라는 아랍 기사가 우리 차를 운전하였다. 그런데 이 운전기사는 항상 웃는 인상이었고 우리가 무엇을 요구해도 거절하는 때가 없고 항상 복종형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낙천적이고 순종형이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대답하기를 "나는 무슬림(순종하는 사람)이다"하는 말에 많은 학생들이 우리 전도사들보다 더 인간성이 훌륭하다는 감탄의 소리를 들었다. 가난하고 알라신을 믿을 망정 순박한 인간 아크만이 그립다. ⑤이슬람교도이면 누구나 평생 한번은 메카를 순례해야 한다고 한다. 위의 두 종교에서 느끼는 바는 그들이 믿는 대로 행동하는 철저한 행동의 종교임을 알 수 있다. 행동의 종교에서는 행위 속에서 믿는 자들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특히 다원화 종교 속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전도의 행위이다. 유대교나 이슬람교가 날로 팽창일로로 가고 있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속한 기독교는 성지에서 제일 작은 실체이다. 성지 밖에서는 기독교의 세력이 크지만 성지에서는 제일 열세하다. 예수님이 탄생한 곳이지만 예수 믿는 자들이 제일 적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약 700만 인구 중에 기독교인은 불과 13만 정도이다. 그 중에 약 40%가 희랍 천주교, 약 30%가 희랍 정교회, 약 15%가 라틴(로마) 천주교회에 속한 아랍 사람들이고 나머지는 시리아. 알메니안, 콥틱과 에디오피아 등 정교회(Orthodox), 카톨릭 교회와 개신 교회에 속한다. 개신 교회는 성공회가 약 2,000명, 다음으로 루터교회가 천 여명 정도이고, 그 외 침례교회, 나사렛 교회, 안식일 교회 등이 기백명 정도이고 유대 기독교인도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2-3천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한인 교회도 매주 토요일에 백 여명 가까이 모여 예배드리고 있다. 성직자도 약 2,200명에 달한다고 한다.

1948년 당시 예루살렘의 20만 인구 중에 10만의 유대인과 4만의 이슬람교도와 약 3만의 기독교인과 기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던 것이 지금은 60만 예루살렘 인구에 만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가장 큰 교회 공동체였던 희랍 정교회의 2만 천명의 교인이 지금은 삼천명 정도라고 한다. 이런 기독교인 숫자의 감소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주원인은 1948년 이후로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인한 아랍 기독교인들의 해외이민이다. 유대인들의 팽창과 이슬람교도들의 위협으로 인해 양 틈바구니 속에서 존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기독교인들의 교육과 직업 같은 생존 조건들이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이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현재의 조건이 변화되지 않는 한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는 않다. 그래서 이런 삶의 정황에서는 믿음과 행위는 분리될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임을 절감하게 된다. 유대 생활권에서 기독교인 행동을 하기가 힘들고 또 이슬람교 생활권에서 기독교인 행세를 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 즉 유대교 문화권 또는 이슬람교 문화권 속에서 생존키 위하여 임시 방편들이 있으니 곧 유대교나 이슬람교의 생활 시간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그들이 자고 깰 때 우리도 자고 깨고,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고, 예배할 때 우리도 예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기독교들과 몇몇 개신교회는 토요일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혹 이슬람교 생활권에서는 금요일에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러나 터가 잡힌 정교회나 서방 천주교회에서는 일요일에 주일 예배를 드린다. 그래서 교회의 위력도 정치나 문화의 힘과 비례하고 있다는 감이 든다. 정치적 힘과 교회의 힘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도 때로는 정치적 힘으로 그의 나라를 확장시키고 계신다고 생각된다.

두 번째로 느낀 것은 성직자들의 영성훈련과 학문성이다. 필자가 머물러 있던 Ecole Bibilique는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연마하는 113년 된 학문의 전당이요 신앙을 단련시키는 경건의 훈련장이다. 사십 여명 내의 적은 신앙 공동체이지만 우선 세계 십여 개국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종 문화 언어의 공동체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독교 성직자들로서 학문에 전념하는 학자들이다. 연령은 20대 남녀 젊은이들로부터 80대의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런 형태의 공동체 생활은 코에노비아 형태의 수도이다. 이런 기독교 영성훈련은 이미 주후 4세기 이후 유대 사막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때부터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예수님의 유대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고 세례자 요한도 광야에서 활동하신 것을 기억하며 광야 영성훈련을 시작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유대광야에서 비잔틴 시대의 코에노비아 수도원을 44개나 발굴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와디 켈트에 있는 성 조지(St. George) 수도원이다. 깊은 계곡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장소이다. 이런 곳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일과 명상과 수도로서 평생을 그 사막에서 여생을 보내곤 하였던 것을 본받아 공동체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런 공동체보다 더 엄격한 동굴에서 은둔 수도사들이 생활했던 암자동굴이 최근에 19개나 발굴되었다. 이런 수도원의 대표적인 것이 암자동굴의 창시자인 성인 사바의 이름을 딴 지금의 마르 사바(Mar Saba)이다. 예루살렘에서 기드론 계곡을 따라 사해 쪽으로 7시간 걸어가면 유대광야 한 복판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이다. 우선 사막 한 복판이라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다. 한번 동굴 속에 들어가면 평생을 그 동굴에서 생을 마치게 된다고 한다. 우리 장신대 학생들이 그 곳을 답사해 보고서 비로소 사막의 영성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수도원을 라우라(Laura)라고 하는 것은 동굴과 동굴을 연결하는 절벽의 길을 의미하는 희랍 말 라우라를 따서 부른 호칭이다. 수 십 개의 라우라가 있는 중앙에는 교회나 빵 굽는 장소가 있는데 토요일과 주일에는 교회에 모여서 함께 지내고 월요일에 각기 자기 라우라로 갈 때는 각자가 만든 수공품을 내고 일주일 분 식량을 받아 가지고 가서 동굴에서 혼자 일과 명상으로 주간을 지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막의 영성훈련 정신으로 사막이 아닌 도심지라 할지라도 생활한다고 한다. 에콜 비블리크의 상주자들은 그들의 의식주가 공동체에 의해서 해결되지만 개인의 용돈은 월 50세겔, 즉 우리 나라 돈으로 2만원에 해당되는 것으로 한 달을 지낸다. 그만큼 개인의 삶이 제한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곳 체류자는 2개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열쇠로 4개의 문을 열 수가 있어 다른 사람의 방 외에는 다 갈 수가 있다. 다른 열쇠 하나로 자기 방을 열 수가 있기 때문에 24시간 제약이 없다. 도서관도 24시간 사용할 수 있으니 연구에는 제한이 없으나 개인 삶에는 약 2만원 한정 내에 있으니 무제한 속의 제한이다. 그 곳의 일과는 6시 30분 아침 예배로 시작하여 저녁 7시 25분까지 하루에 4번의 예배와 찬양 기도회가 있다. 강요는 아니지만 그 곳에 있는 자는 거의가 하루에 최소한 2-3번은 필히 참석한다. 누구나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기 전에 30분씩 영의 양식을 먼저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한다. 하루에 세 번씩 참석하는 영성전통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기독교 수 백년 사막의 영성전통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더욱이 기도회 시간을 알리기 위해 종을 치는 신부는 하루에 4번의 종을 치기 위해 장시간 외출도 못하고 4번의 기도회 시작 5분 전에 종 탑 밑에 서 있는 모습은 맡은 바 책임에 충실한 종의 모습이다. 한갓 종치기로 보이는 Fr. Langlament는 은퇴한 저명한 불란서 구약학자고 히브리어에 능숙한 사람으로 Revue Bibilique의 편집 책임자이기에 더욱 놀랐다.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세계적인 학자들이다. 이곳 도서관은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도서관으로 성서학과 고고학에 관한 자료는 거의 다 소장되어 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80세의 봐마 교수도 온종일 연구실에서 두문불출하고 한 과목을 가르친다. 은퇴한 지 오랜 팔십 중반의 두르네이 교수도 아침마다 불편한 걸음이지만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와서 참고 서적들을 확인하신다. 그 외의 중견 소장 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모두가 온종일 책상의 노트북 앞에서 여념이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는 세계적인 작품이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여기서 상주했던 Congar나 De Vaux같은 분들이 고인이 되었지만 그 분들이 쓴 책의 인세가 이 공동체의 경비로 충당되고 있다고 한다. 죽어서도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영성의 삶과 학문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보여진다. 믿음은 행위에서 나타나고 행함은 경건된 영성생활로 이어질 때 참 믿음의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