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의봉 목사의

성지순례기

책 머리에

목사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 보고 싶은 곳, 예수님의 체취가 서린 성지 이스라엘, 그리고 사도 바울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소아시아, 사도 요한이 기도 중에 주님을 만난 밧모섬….

그렇지만 고향을 다녀오듯 선뜻 나설 수 없는 것은 200여만 원이란 경비 때문만은 아니다. 주일을 포함하여 보름 가까이 교회를 떠나 있는다는 것이 목사에게 있어서 그리 간단한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혼자도 아니고 부부가 이렇게 나란히 성지순례를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은 더없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성지를 순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또 목사가 교회를 오랫동안 비워야 하는데도 교회 걱정은 하지 말고 좋은 여행이 되라면서 많은 경비를 부담하고 선뜻 보내 주신 우리 평안교회 성도들, 우리가 이제 어린 아이가 아니니 염려하지 말라면서 손을 흔들어 준 지영이와 대연이…. 이 여러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었다.

그 동안 필리핀이나, 대만 등 몇 차례 해외 여행의 기회가 있었다. 작년인가, 옛날부터 알고 지내던 어느 권사님이 모든 비용을 부담할 테니 가벼운 마음으로 필리핀 선교여행을 떠나자고 제의할 때는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고집스레 사양하고 결국 아내에게 양보한 것은 목사로서 첫 해외 나들이는 성지순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성지를 처음 다녀온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처럼 가진 값진 경험과 그곳에서 배운 교훈들을 잊지 않기 위해 하나하나 메모하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 이 감동과 기억이 사라질 것 같아 한 권의 순례기를 쓰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성지순례를 위한 사전 연구에 도움이 되었던 박준서 박사님의 '성지순례'와 장태봉 목사님께서 한국교회공보에 연재하셨던 '성지순례기' 그리고 두산동아의 '세계대백과사전'(CD판)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하였다. 또한 사진 중 일부는 (주)솔다에서 제작한 CD판 '성지순례'에서 발췌했음을 밝힌다.

아마도 이 작은 책이 함께 동행했던 선배, 동료들에게는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며, 성지순례를 위해 여러모로 애써 주신 우리 평안교회 성도들에게는 조그만 보답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의 여행이 단순한 관광이 되지 않도록 친절한 배려를 해 주시고 성지 순례기의 출판을 기뻐하면서 비용을 상당 부분 맡아 주신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종근 원장님, 엄청난 추가 부담을 감수하고도 우리의 편안한 여행을 위해 애써 주신 성민관광의 이성근 안수집사님과 이상표 대리님, 그리고 각 나라에서 친절히 안내해 주신 많은 분들 특히 이스라엘에서 학교 시험기간 중에도 친절히 도와 주신 조용식 목사님과 김한성 전도사님께 감사를 전한다.

1997. 8. 24.

안양신대원 개학을 앞두고

황 의 봉 목사

목 차

이집트 편

(1)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카이로 까지 --------------------- 9

⼗김포 공항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카이로까지

(2)카이로에서 시내산까지 ------------------------------- 15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파피루스 ⼗아부 사르가 교회

⼗홍해와 스에즈 운하 ⼗시나이 반도 시내산 등정

⼗카타린 수도원 ⼗이집트를 떠나면서

이스라엘 편

(1)타바 국경에서 사해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 41

(2)예루살렘에서의 첫째 날 ----------------------------- 47

⼗통곡의 벽 ⼗십자가의 길

⼗마가 요한의 다락방과 다윗왕의 가묘

⼗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 ⼗학살 기념관(야드 바셈)

⼗이스라엘 박물관 - 책의 전당 ⼗주기도문 교회와 예수 승천당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목자 잃은 어린 양

⼗사모님들의 야간 외출

(3)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 82

⼗만국교회 ⼗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여리고

⼗요단강 ⼗갈릴리 호수

(4)갈릴리 호수 주변 ----------------------------------- 92

⼗가버나움 ⼗오병이어 교회 ⼗베드로 수임 교회

⼗팔복교회 ⼗아스토리아 호텔에서 ⼗안식일

(5)이스라엘 북부 -------------------------------------- 100

⼗가나 ⼗나사렛 ⼗므깃도 ⼗가이사랴

⼗텔아비브 공항 ⼗조용식 목사님의 편지

로마 편

(1)텔아비브를 떠나 로마로 ---------------------------- 121

(2)로마에서의 하루 ----------------------------------- 123

⼗바티칸 시국 ⼗베드로 대성당 ⼗카타콤베 ⼗마차 경주장

⼗진실의 입 ⼗바울 순교 기념 교회 ⼗콜로세움 ⼗성 계단 성당

⼗성 요한 성당 ⼗트레비 분수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밤

터키 편

(1)로마를 떠나 이즈밀로 ------------------------------ 145

(2)소아시아 일곱 교회 -------------------------------- 145

⼗사데 교회 ⼗빌라델비아 교회 ⼗히에라볼리 ⼗파묵칼레

⼗라오디게아 교회

(3)에베소 -------------------------------------------- 154

⼗사도 요한 교회 ⼗누리 형제의 서점 ⼗아데미 여신상

⼗누가의 묘 ⼗에베소 구시가지

⼗에베소 교회와 성모 마리아의 집 ⼗쿠사다시에서

그리스 편

(1)멀미호를 타고 밧모섬으로 ------------------------- 167

⼗요한의 계시 동굴 ⼗사도 요한 기념 수도원

⼗점심 식사 그리고 한낮의 휴식 ⼗미론의 집

⼗해수욕장에서 ⼗사도 요한의 세레터 ⼗스칼라 항을 떠나면서

(2)고린도 ------------------------------------------- 177

⼗고린도 운하 ⼗아크로 고린도산 ⼗고린도 유적지

⼗비마 ⼗에라스도 거리 ⼗고린도 교회와 잊지 못할 점심

(3)아테네 ------------------------------------------- 185

⼗아레오바고 ⼗아크로 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올림픽 스타디움 ⼗아테네 공항으로

영국 편 --------------------------------------------- 191

⼗런던에서의 잊을 수 없는 밤 ⼗하이드 파크 ⼗버킹엄 궁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쇼핑 ⼗런던에서 서울로

부록1 ------------------------------------------------- 205

⼗성지순례 개요 ⼗참가자 명단

⼗성지순례 일정표 ⼗자체경비 결산서

부록2 ------------------------------------------------- 214

⼗이스라엘 연구

이집트 편

(1)김포공항을 출발하여 카이로까지

꿈에도 그리던(이런 표현은 좀 촌스럽지만) 성지순례가 결정된 후 몇 가지 다짐을 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지는 않을 테니 한 번의 성지순례로 다른 분들이 세번 네번 다녀온 소득을 얻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번의 성지순례가 길잡이가 되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선 성지에 대한 사전 지식을 쌓기로 했다. 특히 연세대학교 박준서 박사님의 '성지순례'(조선일보사)와 한국교회공보에 연재한 장태봉 목사님의 '성지순례기'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성서교재간행사에서 나온 '성서의 역사' 베르너 켈러가 쓴 '역사로서의 성경'(보이스사)을 읽고 부족한 부분은 '기독교 대백과사전'(기독교문사)과 동아출판사의 '세계 대백과사전'을 통해 보충할 수 있었다. 또한 심재호 집사님은 '성지순례 CD판'을 구해다 주셨다. 컴퓨터가 구형이라서 CD Player가 2배속밖에 안 돼 느리고 답답했지만 생생한 최신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교회 차영신 사모님이 몇 날 며칠을 작업하여 만든 '성지순례 가이드북'은 성지순례의 고마운 동반자였다. 나는 12박 13일 동안 순례를 하면서 항상 박준서 박사님의 책과 성지순례 가이드북을 손에 들고 다녔다.

①김포 공항에서

6월 23일 새벽 5시 30분, 새벽기도를 마친 후 성도들의 전송을 받으며 한정권 전도사님이 운전하시는 교회 승합차에 몸을 실었다. 옆에는 이상욱 형제가 동행해 주었고…. 일행과 약속한 7시 10분보다 10분 일찍 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봉천동에 사는 백낙천 전도사님 부부가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반겨 맞아 준다. 이른 새벽부터… 고마운 사람들이다.

집결 장소인 국제선 제1청사 2층 중앙, 조흥은행 환전소 앞에 가 보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 계셨다. 우리 일행은 모두 27명이었다. 단장에 유덕식 목사님(영진교회), 총무에 정철옥 목사님(아름다운교회), 그리고 회계는 내가 맡기로 했다. 함께 떠난 일행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단장인 유덕식 목사님, 사실 이 분에게는 성지순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벌써 두어 차례 다녀오셨다. 그런데도 이번에 우리 일행이 떠난다니 기쁘게 동행해 주셨다. 더구나 영진교회 부목사로서 이스라엘 히브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 조용식 목사님에게 드릴 선물인지 라면 대여섯 박스에 다른 짐도 꽤 많았다. 마치 친정 아버지가 딸네 집에 가시는 것 처럼.

우리교회(교회 이름이다) 박인성 목사님, 군목으로 제대하시고 목회를 하시는데 아직도 군인 정신이 투철하신 우리 수도노회 서기이시다(자칭 서기장). 성지에는 군목시절 다녀오셨다고 한다. 새빛교회 김세창 장로님, 작년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에 또 우리와 합류하셨다. 순례기간 내내 아침 금식을 하셨는데, 가을에는 목사 임직을 받으실 분이다. 민홍기 목사님, 이제 연세가 좀 드셨는데 성지순례 초행길이라 가슴이 설레신단다. 장암제일교회 김용래 목사님, 여기 저기 해외여행을 자주 하신 분이다. 성지순례도 이번이 초행은 아니다.

신소망의 집 박재원 목사님, 이 분은 금년에 60회 생신을 맞으셨다. 가족들이 잔치를 해 주겠다는 것을 사양하고 그 비용으로 성지순례를 떠나신 것이다. 성산교회 박춘식 목사님, 이 분도 작년에 성지순례를 다녀오셨는데 그때 로마에선가 비디오 카메라를 떨어뜨려 촬영을 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항상 걸렸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아예 비디오 촬영을 위해 떠나신다. 이를 위해 다시 최신형 디지탈 42배줌 8㎜ 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하셨다. 좋은 작품을 만드실 것 같다.

반석교회 허용준 목사님, 어쩌시려고 사모님은 안 모시고 왔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크게 후회하실 텐데…. 그래서 그런지 친구 한 분을 모시고 왔다. 감리교 적성제일교회 이대성 목사님이다. 삼광교회 위대환 목사님과 금밭교회 박석구 목사님은 나이도 비슷하고 두분 다 싱글이니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

영문교회 허광탁 목사님과 백영혜 사모님이 함께 동행하셨다. 이 분들도 성지뿐 아니라 여러 곳을 돌아다니셔서 해외여행의 경험이 풍부하시다. 경천교회 권태일 목사님과 정기자 사모님, 쌍둥이 두 아들을 모두 군에 보내고 홀가분하게 나오셨다. 무슨 각오를 했는지 비디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금빛교회 조남준 목사님과 신미숙 사모님, 교회의 형편이 성지순례 이야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라고 걱정하시더니 부부가 나란히 나오셨다. 그건 목사님 생각이고 성도님들은 공항까지 따라나와 반갑게 전송하신다.

은총교회 정종진 목사님과 유공식 사모님, 얼마 전에 임직 받으신 이종헌 장로님이 손수 오셔서 이것저것 챙겨 주신다. 예제교회 류준모 목사님과 장원영 사모님, 이번 팀 중에 가장 젊은 부부인 것 같다. 바로 얼마 전에 우리 노회에 가입을 하셨다. 영어가 유창하시니까 여행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사모님은 비디오 카메라를 어깨에 메시고…. 초원교회 김동성 목사님과 이상숙 사모님, 이번 일행 중 우리 수도노회에 소속되지 않으신 분은 이대성 목사님과 김동성 목사님이시다. 그러나 김동성 목사님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고 있어서 낯설지가 않다. 우리는 문득문득 이 분이 우리 노회 식구인 줄 착각을 한다.

아름다운교회 정철옥 목사님과 차영신 사모님, 이번 일에 큰 몫을 담당해 주실 실제적인 인솔자이시다. 특히 차영신 사모님은 우리를 위해 자세한 가이드북을 만들어주신 고마운 분이다. 그리고 나 평안교회 황의봉 목사와 박명순 사모. 그리고 성민관광에서 동행하는 인솔 가이드인 이상표 대리님까지 모두 28명이 한 팀을 이루었다.

우리는 공항 약속 장소에 모여 대학원장(박종근 목사)님이 주신 빨간 조끼와 예일교회 안수집사이신 성민관광 이성근 사장님께서 주신 작고 쓸모 있는 가방들을 나누어 받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이 두 분은 우리와 함께 떠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짐을 부치고 우리는 함께 둘러서서 기도하였다. 은혜스럽고 좋은 여행이 되게 하실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

가슴 설레는 마음으로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영국항공(British Air Ways) 보잉747-400 점보여객기, 앞으로 장장 11시간 이상을 이 비행기 안에서 보내야 한다. 우리가 탄 비행기는 다행히 좌석의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하고 난 후 우리 부부는 가운데 좌석 네 개를 독차지했다. 좌석 가운데에 있는 팔걸이를 올리면 긴 시트가 된다. 우리는 번갈아 가며 누워서 갈 수 있었다. 특히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것은 필시 우리를 염려하신 주님의 친절한 배려임에 틀림없다. 참 고마우신 분이다.

②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카이로까지

우리를 태운 비행기가 영국 런던에 있는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 45분이었다. 그러나 현지 시각은 낮 12시 45분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두 끼 식사를 하고, 11시간을 날아 왔는데 다시 점심시간이라니…. 평생 처음으로 시차(時差)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8시간이나 벌었다. 나는 신이 나서 시계를 8시간이나 후퇴시켰다. 아내의 시계는 항상 한국 시각에 맞추고, 내 시계는 항상 현지 시각에 맞추기로 했다. 그렇다면 지금 비행기보다 조금 더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가 있다면(영국까지 8시간에 날 수 있는) 출발시각이 곧 도착시각이 될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계속 같은 속도로 서쪽으로 날아갈 수 있다면 시간은 멈추는 것이다. 또 그보다 더 빠른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날아가면 시간 뒤로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건 타임머신인데…. 이건 꼭 공상과학 만화 같은 이야기라서,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내 말이 맞지 않아도 비웃지는 말고).

히드로 공항에서 카이로행 비행기를 바꾸어 타기 위하여 공항에서 서너 시간 서성거려야 했다. 장로님께 전화를 걸어 런던에 도착했다고 말씀드렸다. 집에도 전화를 했다. 지영이가 받는다. "지영아 엄마랑 아빠랑 영국 런던에 지금 도착했어. 그런데 지금이 몇 시인지 아니? 여긴 오후 1시야." 나는 이것이 제일 신기했다.

4시 35분발 비행기였는데 무슨 일을 그리 꾸물거리는지 예정보다 거의 한 시간이나 지나서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륙했다. 이번에도 같은 영국항공이지만 한국을 떠날 때보다 훨씬 작은 보잉777 여객기였다. 좌석은 빈 자리가 없이 꽉 찼다. 그래도 네 시간만 가면 된다니 다행이다.

비행기 안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우선 한국인 승무원이 없고 기내 방송도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 비행기 안에서 저녁식사를 또 준다. 결국 오늘은 식사를 네 번 하는 것이다. 만약 집을 나설 때 아침식사를 했다면 다섯 번 하는 것이다. 이상한 것은 같은 영국항공의 식사이고 메뉴도 김포를 떠난 비행기에서 먹은 것과 비슷한 치킨인데 맛은 전혀 달랐다. 아마도 서울을 출발한 비행기에는 대부분 한국 손님들이 많으니 우리의 입맛에 맞추었고, 이 비행기는 카이로 행이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의 식성에 맞춘 듯하다. 그러나 먹자. 먹어야 산다. 앞으로 얼마나 더 이상한 음식을 먹게 될 지 모르는데 이 정도는 적응을 해야지. 꾸역꾸역 먹었다. 맛도 모르고 먹었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30분경, 입국 신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캄캄한 밤이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이상표 대리님은 우리의 시계를 다시 12시 30분에 맞추라고 하였다. 아까 런던에서 8시간을 벌었는데 여기서는 두 시간을 빼앗겼다. 참 요지경속이다. 아무튼 45년을 넘게 살아온 나는 내 생전에 이렇게 낮이 길어본 경험은 없다. 아침 6시부터 새벽 1시까지(우리 나라 시간으로) 장장 19시간이 낮이었다. 나는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 생각이 났다.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지어다" 하였더니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않았다는 이야기(수 10:12-13) 말이다. 내가 그 이야기를 했더니 정철옥 목사님은 정색을 한다. "황 목사님, 그게 아니야, 아모리 족속과 싸울 때는 하나님이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셔서 해를 멈춘 것이고, 지금은 해가 멈춘 게 아니라 시차 때문이야, 우리가 해를 따라 돌았던 것이지." "정말 내가 돌았나?" 일행이 까르르 웃는다.

우리는 공항에서 이집트 안내를 맡은 김인순 집사님을 만났다. 이 분은 전문 가이드였는데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이집트의 공식 명칭은 '이집트 아랍 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 면적은 약 1,001,000㎢인데 95%가 사막지대이고 주거지역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약 5%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구는 약 6,000만 명, 종교는 회교가 국교로 전국민의 82%가 모슬렘이고 17%는 크리스천인데 이집트 기독교를 콥트 교회라고 한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나일강의 물줄기가 여러 지류로 갈라지기 시작하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1,2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아프리카 대륙과 중동 지역 최대의 도시다. 상상을 초월하는 피라미드가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극도의 빈곤이 있다. 세계의 황금을 전부 모아놓은 듯한 국립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 더 좋은 '사자(死者)의 마을'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카이로와 구약성경의 관계는 요셉이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 왕의 꿈을 해몽하여 총리가 된 후 온(On)이라는 도시의 제사장 딸과 결혼한다. 온이 바로 지금의 카이로이다. 태양신을 섬기던 도시로 태양신을 위한 신전이 있었다.

카이로는 현재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 모스크를 자랑하는 도시이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집트 원주민의 교회 콥틱 교회가 있다. 이슬람국가인 이집트에서의 신앙생활을 하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손목 안쪽에 작은 십자가 모양의 문신을 새겨 서로 알아보는 표시로 삼고 있다.

김 집사님은 간단한 아랍어 인사말을 가르쳐 주셨다. '앗 살람 알 라이쿰.' 그리고 감사합니다 라는 말은 '쇼크란' 이라고 했다. 이게 쉽다. 쇼크(?)만 받으면 되니까? 머리 나쁜 사람이 '앗 살람 알 라이쿰' 하고 책을 읽기보다는 '쇼크란'이 얼마나 쉬운가? 또 이 사람들은 '민샬라'란 말을 잘 쓴단다. 우리말로 '신의 뜻이다'라는 말이라는데 간단한 접촉사고를 내도 싸우는 일이 없단다. 그냥 손을 흔들며 '민샬라'(이것도 신의 뜻이다) 하면 된단다. 심한 경우는 약속시간 1시간을 늦게 와서도 태연하게 '민샬라' 한다는 것이다. 참 편한 방법이다.

우리는 호텔까지 오면서 신호등을 거의 볼 수 없었다. 김인순 집사님의 말을 빌리면 제주도는 3다도(바람, 돌, 여자)인데 카이로에는 3무의 도시라고 했다. 하수도가 없고, 신호등이 없고, 길거리에 공중전화가 없단다. 그러나 요즘 들어 신호등 몇 개가 생겼단다.

우리가 투숙한 호텔은 카이로 시내에 있는 Europa Hotel이었다. 호텔에 들어와 씻고 잠자리에 들어간 시각은 오전 3시가 다 되어서였다. 우리 부부는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오늘 장장 비행기를 15시간이나 타는 여행이었는데, 이 먼 나라 이집트의 카이로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그리고 우리 온 교회가 실시하고 있는 일천번제 기도도 드렸다. 이미 새벽시간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마치고 난 후 거울에 비친 얼굴은 벌써 아프리카 사람이 다 되어 있었다.

(2)카이로에서 시내산까지

오늘의 일정은 오전 7시 30분부터 시작이 되기로 하였다. 오전 6시 30분 모닝콜(Morning Call), 7시 30분에 예배 및 아침식사, 그리고 8시 30분에 호텔을 나서기로 하였다. 그러나 3시에 잠자리에 든 일행은 이미 6시가 되기 전에 다 일어났고, 7시에는 모두 식당에 내려와 있었다. 목사님들은 평생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해 온 습관이 있어서 몇 시에 잠자리에 들건 5시가 되기 전에 눈이 떠지나 보다. 예정보다 30분 일찍 예배를 드리고 식사까지 마치니 8시도 채 안 되었다. 우리의 안내를 맡은 김인순 집사님이 오셔서 깜짝 놀라신다. 어제 늦게 주무셨기 때문에 아침 일정이 늦어질 것을 예상하고 나왔는데 오히려 30분 일찍 식사를 마치고 짐까지 모두 차에 싣고 기다리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란다. 안내를 하다 보면 피곤하신 분들을 아침 일찍 깨우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인데 이번 목사님들을 모시고 다닐 때는 한 가지 고민은 던 것 같다고 환히 웃는다. 이렇게 우리는 성지 순례의 첫 날을 맞이했다.

①피라미드와 스핑크스

아침 8시 10분, 우리는 예정보다 20분 일찍 Europa Hotel을 나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피라미드가 있는 기자로 향했다. 시내 한복판에서 낙타를 몰고 어디론가 열심히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도 피라미드가 있는 곳으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였다. 시내를 채 벗어나기 전에 10시 방향에서 거대한 피라미드가 눈에 들어왔다. 멀리서 언뜻 보아도 웬만한 산 같았다.

피라미드(Pyramid)는 고대 이집트의 국왕·왕비·왕족 무덤의 한 형식을 말한다. 어원은 그리스어인 피라미스(Pyramis)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 불렀다. 현재 80기(基)가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은 카이로 서쪽 아부 라와슈에서 일라훈에 이르는 남북 약 90km인 나일강 서안 사막 연변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와력(瓦礫)의 산으로 변한 것과 흔적만 남아 있는 것도 있어, 옛날의 모습을 남기고 있는 것은 의외로 적다고 한다.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 제세르왕의 '계단 피라미드'로 재상 임호테프가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한 변이 63m인 직사각형 석조 마스타바로, 중앙에 깊이 28m의 수혈(堅穴)을 파고 그 밑에 매장실을 만들었다. 그러나 확장공사가 시작되어, 결국 마스타바를 6단 포개놓은 모양의 밑변 109×126m, 높이 62m의 계단 피라미드가 완성되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는 헬리오폴리스를 중심으로 예로부터 존재했던 태양신 숭배가 피안(彼岸)의 신앙과 결부된 결과로, 계단은 죽은 국왕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태양신과의 결부는 후의 정통 피라미드의 출현으로 한층 긴밀해졌다.

피라미드 그 자체는 왕의 미라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음식물과 가지각색의 물품을 진열하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도 필요했다. 그래서 피라미드 북측에 장제전(葬祭殿)이 건조되고, 다시 동쪽에 세드제(祭)의 의식을 행하는 신전·소신전·중정(中庭)이, 남쪽에는 제단이 있는 대중정이 축조되고 그것들을 높이 10m, 동서 277m, 남북 545m의 사가거형의 주벽(周壁)으로 둘러 장대한 묘소를 형성하였다. 이것들을 '피라미드 복합체'라고 부른다.

또한 쿠푸왕은 카이로 남서쪽 15km에 위치한 기자에 최대의 피라미드를 건설하였다. 이것은 대피라미드 또는 제1피라미드라 일컬어지며, 높이 146.5m(현재 137m), 저변 230m, 사면각도는 51°52'이라고 한다. 각 능선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오차는 최대의 것이라도 5°30'에 지나지 않은 만큼 극히 정교한 것이다. 이 피라미드는 평균 2.5t의 돌을 230만 개나 쌓아 올렸다고 하니 진정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이 아니겠는가? 그 장대한 규모와 간결한 미는 다른 데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피라미드에 대해 현재 남아 있는 최고(最古)의 기록인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BC 5세기)의 '역사'권2에 의하면 기자의 대(大)피라미드는 10만 명이 3개월 교대로 20년에 걸쳐 건조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제1피라미드 남서쪽에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가 있었다. 높이 136m, 밑변 216m, 동쪽에 있는 장제신전에 450m의 참배로가 뻗어 하곡신전에 이른다. 유명한 스핑크스는 하곡신전에 가까운 참배로 북쪽에 엎드려 있다. 그 밖에 멘카우레왕의 제3피라미드와 왕족들의 소(小)피라미드 6기가 있었다.

우리가 궁금하게 생각한 것은 이 무거운 석재를 필요한 높이까지 어떻게 운반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들은 피라미드 측면에 직각으로 경사로를 만들고 석재는 썰매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일정한 높이마다 핵재(核材)·내장재·전재(塡材)·외장재의 순으로 쌓아 놓고, 피라미드가 높아짐에 따라 경사로도 높아졌다. 이 경우 경사로의 기울기는 일정해야 하므로 길이는 점차 길어진다. 정상까지 다 쌓고 나면 위에서부터 외장을 완공시켜가면서 서서히 경사로를 낮게 하여 완성시키는 방법을 취한 것이다. 외장은 정성들여 시공되고, 석재는 종이 한 장 끼워지지 않을 정도로 정밀하게 쌓아졌다. 쌓았다기보다는 짜 맞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피라미드에 도착하니 벌써 많은 아랍 사람들이 조잡하게 인쇄된 그림엽서를 가지고 와서 1달러씩 판매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 카이로 시내에서 낙타를 끌고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벌써 부지런한 몇몇 사람이 낙타를 끌고 와서 기념 사진을 찍으라고 한다. 한 사람이 낙타를 타고 찍는데 1달러란다. 그러니 부부가 같이 타면 2달러. 내일 새벽 시내산을 등정할 때 낙타를 타고 갈 계획이니 오늘 시험삼아 한 번 타 보기로 하고 아내와 둘이 낙타의 등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기념 사진들을 찍은 후 자리를 옮겨 안내를 맡은 김인순 집사님을 따라 카프라왕의 제2피라미드의 내부로 들어갔다. 높이가 1m 남짓한 작은 굴이 30-40도의 경사를 이루며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휴전선 부근의 땅굴을 여러 차례 다녀 봤기 때문에 이런 곳을 다니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신기한 것은 땅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시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후덥지근한 것이었다. 습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정말 피라미드의 내부 어디를 봐도 쾨쾨한 곰팡이 냄새나 습기의 흔적을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고온 건조한 기후 때문에 미이라를 만들기 적합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내려와 멘카우레왕의 제3피라미드와 작은 피라미드들이 있는 곳을 지나 스핑크스가 있는 곳에 멈추었다. 본래 스핑크스(Sphinx)란 고대 오리엔트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다. 그러나 그 기원은 이집트로서 사람의 머리와 사자의 동체를 가지고 있다. 왕자(王者)의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표현된 것인데, 이집트와 아시리아의 신전이나 왕궁·분묘 등에서 그 훌륭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이집트의 기제에 있는 제4왕조(BC 2650년경) 카프레왕(王)의 피라미드에 딸린 스핑크스가 가장 크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것은 자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한 것인데, 여러 번 전쟁을 겪으면서 파괴를 당하여 군데군데 보수(補修)한 흔적이 있었고 지금도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스핑크스 전체의 길이 약 70m, 높이 약 20m, 얼굴 너비 약 4m나 되는 거상(巨像)이었다. 이마에 있던 뱀의 모양과, 코, 그리고 턱수염은 떨어져 나가고 없으며 얼굴도 상당히 파손되어 있으나 그 모습은 카프레왕의 생전의 얼굴이라고 한다. 앞으로 뻗은 앞다리 사이에는 투트메스 4세의 석비(石碑)가 있다. 이 스핑크스는 '지평선상의 매'를 나타내는, 태양신의 상징이라고 한다.

스핑크스는 이집트 외에 시리아·페니키아·바빌로니아·페르시아·그리스 등지에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다. 특히 그리스 신화에서는 에키도나와 오로토로스의 아들, 또는 라이오스의 딸이라는 등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테베의 암산(岩山) 부근에 살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라는, 이른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내어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전설은 유명하다. 그러나 오이디푸스가 "그것은 사람이다(사람은 어렸을 때 네 다리로 기고, 자라서는 두 발로 걷고,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어 세 다리로 걷기 때문에)"라고 대답하자, 스핑크스는 물 속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한편, 그리스에서는 BC. 1600년경의 미케네의 수혈묘(竪穴墓)나 크레타섬에서 발견된 인영(印影)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스핑크스는 원래 동물의 왕 사자에 대한 주물(呪物)숭배(페티시즘)에서 비롯된 것으로,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이나 성격이 달라진다. 즉, 매나 숫양의 머리를 한 것, 서 있거나 앞다리만 가진 것, 또는 왕으로서의 권력을 상징하는 것, 신전(神殿)의 장식에 쓰인 것 등이 있다고 한다.

②파피루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여기저기서 파피루스를 파는 상인들을 만났다. 그러나 김인순 집사는 이런 것들은 진짜 파피루스 풀로 만든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직접 파피루스를 만드는 곳을 안내해 주겠다고 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파피루스를 직접 만들며 전시 판매하는 곳이었다. 주인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직접 파피루스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었다.

파피루스(Papyrus)는 사초과의 다년초로서 지중해 연안의 습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줄기는 높이 1∼2m이고 둔한 삼각형이며 짙은 녹색으로서 마디가 없다.

마치 우리 나라의 왕골과 비슷하게 생겼다. 잎은 퇴화하여 비늘처럼 되고 줄기의 밑부분에 달린다. 줄기 끝에 짧은 포엽이 몇 개 달리고 그 겨드랑이에서 10여 개의 가지가 밑으로 처질 듯이 자라서 담갈색의 작은 이삭이 달린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라는 종이는 이 식물의 줄기로 만든 것이며, 현재의 제지법이 유럽에 전파되기 전에는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많이 재배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종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보트·돛대·매트·의류 및 끈 등을 만들었고 속[髓]은 식용으로도 하였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변에서 자라는 이 파피루스의 줄기를 세로로 얇게 잘라 종횡으로 배열하여 밀착시켜 파피루스 종이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제5왕조(BC 2494∼BC 2345)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996년경까지 약 3500년 이상이나 사용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바이블(Bible)이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파피루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파피루스 용지는 24×15cm 정도의 크기가 보통이며, 그 밖에 크고 작은 여러 종류가 있다. 서적의 경우는 20매씩 잇대어 붙여 1권으로 시판되었는데, 가장 긴 것은 890cm나 되었으며, 20매를 겹쳐서 책으로 만들어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파피루스에 그린 그림들은 주로 이집트의 신화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고, 기독교 성화들은 콥틱교(이집트 기독교)식 그림들이었다. 그림의 크기나 종류도 다양해서 1달러 짜리부터 수백 달러를 호가하는 그림들도 있었다. 여러 목사님들은 성화를 중심으로 몇 점씩의 그림들을 사 들고 나왔다.

③아부 사르가 교회

카이로는 현재 아랍권에서 가장 많은 이슬람교 사원(모스크)이 있다고 한다. 인구 6천만 명 증 82%가 모슬렘이라고 하니 가히 이슬람교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마다 모스크의 뾰족탑 미나렛이 눈에 뜨인다.

그러나 이런 모슬렘 도시인 카이로에 기독교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교회가 있다. 콥틱 교회이다. 콥틱(Coptic)이란 말은 애굽토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애굽토스란 이집트 원주민 혹은 그들이 사용하는 말을 지칭한다고 한다. 현재 이집트에는 인구의 17%, 약 1천만 명의 콥틱 교회 교인들이 있다.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AD. 260-340년 경)의 말에 따르면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던 전도자 마가가 그의 말년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하고 교회를 세우면서 콥틱 교회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주장했는데 반하여 이들은 신성만을 고집하다가 AD. 451년 칼케돈 회의를 통해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갔던 것이다. 그후 콥틱 교회는 세계 교회의 주류에서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AD. 641년 이집트가 이슬람교도들인 아랍인들에게 정복당한 후 이슬람교 밑에서 많은 풍상을 겪어오면서도 오늘날까지 그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오고 있다.

콥틱 교회가 밀집되어 있는 지역은 고도(古都) 카이로였다. 많은 콥틱 교회들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교회는 역시 아기 예수 피난교회라고 부르는 아부 사르가(Abu Sarga) 교회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했을 때 잠시 쉬었던 석굴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전해 온다. 대부분의 콥틱 교회들이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교회도 역시 입구는 지하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지어진지가 1,000년이 넘었다고 하지만 건물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교회 내부에는 12개의 굵은 기둥들이 받치고 있었는데 12제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강단 뒤편에는 예수님이 피해 숨었던 석굴이 보존되어 있었는데 안을 들여다 보니 물이 반쯤 차 있었다.

우리는 아부 사르가 교회를 나와 근처에 있는 유대인 회당인 벤 에스라 쉬나고게를 찾아갔다. 전통적인 유대 회당의 형태라고 한다. 회당 중앙에는 율법의 상징인 십계명을 새긴 돌판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회당을 지키고 있던 랍비는 우리의 뜻하지 않은 방문을 무척 반가워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④홍해와 수에즈 운하

아부 사르가 교회를 나온 우리는 시내산이 있는 시나이 반도를 행한 긴 여행길에 올랐다. 300㎞가 넘는 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날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더웠다. 아무리 물을 마시지만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마침 길가에 수박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 차를 세웠다. 박준서 박사님도 그의 책에서 "원래 이집트는 달고 맛있는 수박산지로 유명하다"고 했다. 상인은 수박을 저울에 달아가며 값을 부른다. 그런데 그 저울이라는 것이 얼마나 엉성하게 생겼는지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아무튼 잘 익은 수박 한 통에 3달러가 조금 넘었다. 우리 돈으로 3,000원 정도니까 싼 편이다. 우리는 8개나 샀다. 그리고 칼로 4등분을 하여 한 덩이씩 나누어 먹었다. 얼굴을 수박에 파묻고 먹는 수박의 맛은 일품이다. 그렇게 물을 마셔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수박을 먹고 나니 갈증이 사라진다. 빨갛게 익은 수박 속에 촘촘히 박힌 수박 씨는 얼마나 큰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느 사모님은 "수박 씨가 마치 바퀴벌레같이 생겨 징그럽다"고 하여 일행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수박을 배부르게 먹은 우리는 신이 나서 달렸다. 카이로 시내를 벗어나자 끝도 없는 사막이다. 나무도 없고 풀도 없는 뜨거운 사막, 이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걸어갔다. 우리는 냉방이 잘 된 버스를 타고 달리면서도 덥고 지루하다고 하는데, 짐을 지고 가족을 거느리며 이 사막을 터덜터덜 걸어갔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불평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이로 구시가지를 벗어나기 전에 우리는 무덤지구를 통과하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는 사후의 세계가 있는 것을 믿었다. 그래서 죽은 후에도 새로운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지어 주고 그 속에는 새로운 사후세계에서 사용할 가재도구까지 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택문제는 죽은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산사람에게 더 큰 문제였다. 그들은 이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얻었다. 사자(死者)들의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자연히 집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잘 지어진 사자(死者)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주택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이런 현상을 다행으로 여기고 무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무덤을 제공해 줄 것을 제의했다.

본래 이슬람 사람들은 부자가 가난한 자들의 요구를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니 대통령의 이런 제의에 국민들은 찬성을 했단다. 정부에서는 이 무덤지구에 전기와 수도시설을 마련해 주어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무덤지구가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어울러 사는 이상한 마을이 되고 말았다.

이미 시간은 1시가 훨씬 지났다. 카이로를 떠날 때 차에 싣고 온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다.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휴게소까지 한 시간은 걸릴 것 같으니 어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신다. 결국 우리는 2시가 다 되어서야 '시나이 휴게소'란 간판이 붙은 휴게소를 만났다. 우리는 이 휴게소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자리 사용료는 별도로 낼 것 없이 식수나 음료수만 팔아 주면 된다고 한다.

도시락은 카이로에 사는 교민이 만든 모양이다. 한식으로 정성껏 만든 모습은 외국 여행을 막 시작한 우리에게 감동을 주었다. 또 언제 이런 식사를 할 지 모르겠다면서 모두들 맛있게 그릇을 비운다. 우리는 깨끗이 먹은 도시락의 그릇들을 가방에 담았다. 나중에 이 작은 그릇들에다가 우리가 준비해 온 멸치나 고추장을 나누어 담으면 요긴하게 쓰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카이로를 떠난 지 두 시간 가까이 되었을까? 거칠고 메마른 사막에 파란 물줄기가 보였다. 수에즈 운하(Suez Canal)란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인도양을 잇는 길이 162.5㎞의 운하로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두 대륙의 경계를 이루는 수에즈 지협에 굴착된 세계 최대의 해양 운하이다.

수에즈 지협에 운하를 파서 항해를 할 수 있게 되면 지중해와 홍해의 교통운수 발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착상은 고대부터 있었다. 16세기부터 본격적인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모두 토목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실현하지 못하였다. 또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때, 영국의 인도무역에 타격을 주기 위해 비슷한 계획으로 조사하였으나 지중해와 홍해의 수위 차가 10m나 된다는 결과를 보고 단념하였다.

그 후, 1954년 이집트의 태수가 된 마호메트 사이드 파샤가 프랑스인 페르디낭 드 레셉스에게 운하 개착 특허권과 수에즈 지협 조차권(租借權)을 주었고, 56년에는 이집트의 종주국(宗主國)이던 터키도 이를 승인하였다. 레셉스는 58년 '만국 수에즈 해양운하회사'를 이집트 법인(法人)으로서 설립하였으며, 공사는 59년 4월부터 시작되었으나, 운하의 개착 공사가 일시적으로 중지되었다.

그 후 이집트 태수 사이드 파샤가 사망하고, 63년 1월 이스마일 파샤가 즉위하자 그의 열렬한 희망에 따라 영국과 터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재개되었으며, 드디어 69년 11월 17일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다.

이 개통으로 런던∼싱가포르 항로는 케이프타운 경유로 2만 4,500㎞인 것이 1만 5,027㎞로 줄어들고, 런던∼봄베이는 2만 1,400㎞인 것이 1만 1,472㎞로 단축되었다. 운하의 단면은 수심 7.9m, 저부(底部)의 폭원(幅員) 22m, 수면의 폭원 60∼100m의 얕은 대형(臺形)이었다. 1964년의 확장 공사 착수(미완성) 때까지에 수심 14.5m, 저부의 폭원 90m, 수면폭 160∼200m로 이미 확장되어 있었으며, 운하의 남북 3개소에 바이패스가 만들어져 5만 5,000t급 선박이 지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선단(船團)이 운하를 통과하는 평균 시간은 약 15시간이다. 현재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회사가 관리, 운영하고 있다.

결국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고 건너갔을 홍해를 건너는 셈이다. 수에즈 운하 어디쯤인가 모세가 건넌 자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에즈 운하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 홍해(수에즈 운하)를 어떤 방법으로 건널 것인가? '운하 위로 다리가 있겠지' 하고 생각한 내 생각은 정확히 빗나갔다. 운하 위에 다리를 놓은 것이 아니라 운하 밑을 파서 터널을 뚫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세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홍해를 건넜다.

마침 거대한 화물선 한 대가 천천히 운하를 통과한다. 이것은 얼마나 멋있는 광경인가? 우리는 부랴부랴 언덕에 올라가 운하와 운하를 통과하는 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조금 더 달리다가 한적한 곳에서 잠깐 내려 홍해의 바닷물에 발을 담가 보기로 하였다. 과연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 오른쪽에 넓고 푸른 홍해가 나타났다. 이 파란 물을 왜 홍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잠시 차를 세우고 바다에 뛰어 들어갔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해수욕은 삼가기로 하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조개 껍질을 줍기도 하였다.

⑤시나이 반도

이제부터는 끝없는 사막이 나타났다. 시나이 반도에 들어선 것이다. 이 시나이 반도는 면적이 이스라엘보다 두 배 이상 넓은 6만 1,000㎢나 된다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곳을 '위대한 광야'라 표현하고 있다. 아무리 달려도 나무 한 그루 구경할 수 없었다.

얼마 후,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대추야자나무가 울창한 오아시스 '아윤무사'였다. 모세 일행이 스루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물을 찾다가 이곳에 도착했는데 그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곳 이름을 '마라'라고 불렀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고 모세가 그 나무를 물에 던지니 물이 달아졌더라고 하였다(출 15:22-25).

이곳 아윤무사에는 오래된 샘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물은 바닥에 조금 보일 뿐이었다. 이곳이 바로 마라의 샘이란다. 이곳은 기온이 덥고 물이 짜서 쓴맛이 난다고 한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나무는 과연 어느 것일까? 그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대추야자나무밖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우리는 샘에 둘러서서 함께 기도하였다. 그 동안 이곳에 살고 있는 베두인족 상인들이 목걸이 등 장신구를 가져와 판다. 그러나 살 만한 것은 없었다.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우리의 목적지인 시내산을 향해 달렸다.

사막 길을 달려 남쪽으로 내려오면 끝없는 사막이 계속 펼쳐지고 있다. 정말 시나이 반도는 물이 귀한 땅임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탄식과, 르비딤에 도착한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어 안타까워할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호렙산 반석을 치라고 하셨다. 그들은 그곳을 므리바 또는 맛사라 불렀다고 하였다(출 17:5-7). 몇 시간을 달렸을 때 우리 앞에는 10m가 넘는 우람스런 대추야자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홍해에서 시내산까지 이르는 동안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오아시스 마을인 '파이란(Feiran)' 이라고 한다.

우리는 파이란 오아시스에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40℃가 넘는 뜨거운 공기가 온 몸을 휩싼다. 우리가 멈춘 이 자리가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운 르비딤(출 17:8)이라고 한다. 정말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언덕에는 모세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손을 들고 기도를 했다는 장소가 있었다. 몇몇 목사님은 그 산언덕까지 갔다 오자고 하시지만 푹푹 찌는 더위에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그 산 아래에서 함께 손을 들고 통성으로 기도하고 기념 촬영을 하였다.

그새 어디서 나타났는지 많은 베두인 꼬마들이 달려온다. 목사님들은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 목걸이 볼펜, 과자와 사탕 등 있는 대로 나누어 주었다. 또 연세가 제법 들어 보이는 할머니, 아기를 안고 나온 아주머니들도 신기한 듯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안내를 맡은 김인순 집사님의 말에 의하면 몇 년 전만 해도 이곳 사람들은 순진하고 착한 베두인족이었단다. 관광객이 나타나도 멀리서 바라볼 뿐 가까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불쌍하게 생각한 순례객들이 이들에게 빵과 사탕 그리고 몇 푼의 돈을 쥐어 주기 시작하면서 이 사람들은 관광객들만 오면 달려들어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특히 한국 관광객들의 책임이 크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아내는 조금 전에 아이를 안고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던 한 아낙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하고 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파이란 오아시스를 떠나면서부터는 지형이 바뀌었다. 사막지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돌산이 즐비한 산악지대였다. 1,000m가 넘는 듯한 웅장한 바위산들이 겹겹이 병풍처럼 둘러 있었다. 화산활동으로 분출된 용암이 거대한 돌산을 형성한 것이다. 날은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어둑어둑한 우리의 눈앞에는 넓은 평지가 나타났다. 여의도 광장의 3-4배 정도되는 넓이이다. 카이로에서 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난 지 석달 만에 도착했던 시내산 기꺊을 우리는 8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시나이반도 남방에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우리를 맞이할 신비한 모습의 산 하나. 하늘과 땅을 이을 듯한 해발 2,285m 높이의 거대한 이 바위산을 아랍인들은 '제벨 무사(Jebel Musa)'라 부른다. 모세의 산이란 뜻이다.

이 산기슭에서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어 노예의 땅 이집트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떠나 이 산을 향해 걸어 출애굽한 지 석달 만에 도착했다. 이곳은 다행이도 오아시스 지역이라 물은 풍부했다.

모세는 이 산의 정상에서 40일 40야를 금식하며 기도한 후, 두 돌판에 새겨진 '십계'를 받아 두 팔에 안고 내려왔다. 구약성경은 이 산을 하나님의 산이라고 불렀고, 오늘날도 시내산의 등정이 성지순례의 백미이다. 우리의 마음에 평생 동안 간직할 감격과 감동을 우리 가슴에 남겨 두기에 풍부한 산이다.

시내산 등정은 동이 트기 전 밤2-3시경에 하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낮에는 워낙 덥기 때문이다. 새벽 2시가 되면 설악산 대청봉보다도 거의 600m나 더 높은 시내산 정상을 향하기 위하여 힘차게 출발할 것이다.

Monganland Hotel에 도착한 우리는 내일 시내산 등정을 위해 저녁식사를 마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⑥시내산 등정

25일(수) 새벽 1시, 설렘과 기대 속에서 우리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늦게 잠이 들었지만 약속 시간보다 1시간 먼저 우리는 일어났다. 우리만 잠을 설친 것이 아니었다. 다른 목사님들도 마찬가지다. 벌써 일어나 짐을 꾸리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린다.

우리는 소매 긴 옷을 준비하고 손전등과 사진기, 식수, 그리고 사발면까지 챙겼다. 시내산의 높이가 2,285m라고는 하지만 정상 등정의 출발점인 성 카타린 수도원(1,530m)까지는 버스로 올라가기 때문에 실제 등산 높이는 750m 정도가 된다고 한다.

우리는 근처 베두인족들이 준비한 낙타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아내가 늘 허리가 아파 고생하고 있는데 성지순례 초반부터 무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우리가 언제 낙타를 타보겠는가?

새벽 2시, 우리는 숙소 앞에 모였다. 이상표 대리님까지 28명, 김인순 집사님까지는 모두 29명인데 김용래 목사님은 숙소에 남아 있겠다고 하신다. 이미 시내산에 올라가본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선뜻 나설 용기가 나지 않는가 보다.

하늘에는 반달이 떠 있고 마치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찬란한 별들이 우리의 등정을 축하하듯 비추어 준다. 버스에서 내려 어둑어둑한 길을 조금 올라가니 널따란 벌판에 수많은 낙타들이 엎드리어 있다. 우리는 베두인이 이끄는 대로 10달러씩 흥정을 하고 낙타에 올랐다. 그래도 지난번 피라미드 앞에서 한 번 올라본 경험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 아내가 탄 낙타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낙타를 타고 등정했지만 조남준 목사님 부부와 권태일 목사님 부부 등 몇몇 분들은 젊음을 과시하듯 도보로 올라가고 계셨다. 생전 처음 타보는 낙타를 타고 등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왜 이리 끄떡이는지 몸의 균형을 잡기 어려웠다. 잠시 후, 이제 낙타의 등에 몸을 맡기고 편안한 마음이 되니 사르르 졸음이 오기도 한다. '이러다 낙타의 등에서 떨어지면 큰일이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낙타의 등을 잡았다. 걸어 올라가는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는 한 시간 남짓 올라갔다. 낙타의 정류장에 와 보니 벌써 서너 분의 목사님들이 와 계셨다. 나는 수고한 낙타 주인에게 10달러와 팁 1달러를 주고 볼펜 한 자루를 목에 걸어 주었다. 뜻밖의 선물이 얼마나 좋은지 "탱큐, 탱큐" 하면서 퍽 고마워한다.

이제 남은 길은 낙타에서 내려 도보로 올라가야 하는 마지막 800계단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이 마지막 800계단을 오르는 것도 벅찼다. 몇 번을 쉬면서 돌계단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우리는 시내산 정상에 올라와 있었다. 시간은 벌써 새벽 4시가 지났다. 사방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올라와 있었고, 어제 올라왔는지 자리를 덮고 자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는 한적한 장소에 모여 산상예배를 드리고(민홍기 목사님께서 설교하셨다), 전망이 좋은 곳을 잡아 일출을 기다렸다. 점점 사람의 수는 많아졌다. 아침 6시경, 날이 서서히 밝아오는가 싶더니 동쪽 산봉우리에서 수줍은 듯 빨간 태양이 떠올랐다. "야!- " 숨을 죽이고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일제히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오늘의 일출 모습은 사진이 잘 나올 것만 같았다. 금빛교회 신미숙 사모님이 선창을 하시자 우리는 함께 찬송을 불렀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해와 저녁놀 밤하늘 빛난 별."

시내산 정상에서 먹는 라면(사발면)의 맛은 일품이다. 한국에서 오는 많은 순례객들이 항상 라면을 가지고 오는지 시내산 정상에 있는 간이 매점에서는 아예 물을 끓여 1달러씩 받고 팔고 있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이 성산(聖山)에 올라와 꼭 라면을 먹어야 하느냐'고 따지기도 한다지만 그렇다고 먹어서 안 될 것은 또 무엇인가?

새벽 두 시부터 설쳐대다가 이곳까지 올라와 출출할 때 먹는 한 그릇의 라면을 통해 조국애를 느낀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몇 년 전, 기독교 방송국에서 '새롭게 하소서'를 진행하시는 분들이 '컵라면은 우리 같은 방송국 진행자들을 위해 만들어주신 양식'이라고 말하면서 웃던 생각이 난다.

오늘 마사다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들어가야 한다. 우리는 날이 밝는 것을 본 후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돌계단을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시내산을 내려가는 길은 두 코스가 있다. 낙타를 타고 올라온 길과 어느 수도사가 평생 돌계단을 쌓아 만들었다는 돌계단 길이 있다. 그곳의 경치가 더 아름답다는 것이 경험 있는 분들의 조언이다.

많은 목사님들은 이미 올라올 때 본 길보다는 좀 힘들고 어려워도 돌계단이 있는 길을 택했다. 마음이 그쪽으로 끌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허리가 좋지 않은 아내가 걱정이 되어 눈치를 살폈다. 결국 박춘식 목사님이 비디오를 찍으면서 내려올 테니 그것을 보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고 우리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편한 길을 택했다.

그러나 이 길도 편한 길은 아니다. 절반쯤 내려왔을 때 아내는 허리가 끊어져 내리는 것 같다고 한다.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날씨는 무덥다. 쉴만한 나무 그늘은 찾아볼 수 도 없고…. 우리는 일행과 점점 멀어졌다. 아내의 몸이 가볍든지 아니면 내가 삼손처럼 힘이 세다면 등에 업고 내려갔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일 뿐. 그래도 카타린 수도원에 8시 30분까지만 도착하면 된다. 우리는 천천히 쉬엄쉬엄 내려갔다.

우리가 시내산에 올라갈 때는 어두워 볼 수 없었지만 내려오면서 보니 험준한 바위 틈 곳곳에 풀 한 포기씩 붙어 있어 겨우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몇 개월씩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은 역시 고귀한 것이다.

어렵고 힘들게 카타린 수도원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정확히 8시 25분이었다. 물론 우리가 일행 중 제일 늦게 도착했고…. 그래도 감사한 일이다. 아내가 그런 몸을 가지고 시내산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왔다는 사실은 정말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끝까지 참아 준 아내가 고맙다. 등산 후유증이 없어야 할텐데, 그러나 이것은 이미 주님께 맡긴 문제가 아닌가?

⑦카타린 수도원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 하고 불렀던 곳. "제가 여기 있나이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신을 벗으라!" 이렇게 모세가 신을 벗었다는 곳에 희랍 정교회에 속하는 수도원이 있다. 로마제국 시대에 순교한 어느 귀족의 딸 이름을 땄다고 하는 카타린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서기 6세기 중엽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us)황제에 의해 건립된 후 지금까지 1,400년 이상 한번도 파괴되거나 정복당한 일 없어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내산을 지켜온 역사 깊은 수도원이다.

이 수도원은 요새처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밧줄로 연결된 광주리를 타고 오르내렸다고 한다. 지금도 정문 위 성벽에는 커다란 광주리가 매달려 있었다.

굳게 닫힌 카타린 수도원의 문은 예상시간보다 10분이 늦은 9시 10분이 되어서야 열렸다. 한 사람 정도 지나갈 만한 좁은 통로를 통해 수도원으로 들어가니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기 551년에 완성된 수도원 안에 있는 교회와 정교하게 조각된 교회의 나무 대문은 옛날 모습 그대로이다.

대문으로 들어서자 이드로의 우물이라고 전해지는 우물이 있었지만 뚜껑으로 굳게 덮여 있었다. 아마도 모세 같은 청년이 나타나야 열리겠지.

지금도 수도원 경내 한 구석에는 모세가 보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떨기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이 나무는 시나이 반도 남부에서만 자라는 독특한 나무란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차례 다른 곳에 옮겨 심어 보았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촉박했는지 우리는 떨기나무 아래에서 모세를 부르시던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볼 여유도 없었다.

카타린 수도원은 1,400여년 동안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수도사들이 하루에 두 번씩, 4시간 동안 장엄한 예배를 드려온 곳이라고 한다. 교회 전면의 벽은 예수와 모세, 엘리야 그리고 예언자들과 제자들을 나타낸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이 작품은 모자이크 작품 가운데 세계 최고의 걸작으로 뽑힌다고 한다.

우리가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특히 수도원 안에 있는 도서관은 귀중한 성경사본과 성경 희귀본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3,000점 이상의 고대 성경사본과 5,000권 이상의 희귀한 성경들이 있다.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경사본과 희귀성경들을 많이 소장한 곳이다.

독일학자 티센돌프는 이 수도원을 3번 방문한 끝에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을 찾아냈다(1859년). 시내산 사본은 서기 300년에 필사(筆寫)된 것으로, 필사본의 신약성경으로서는 가장 최고(最古)의 사본이다. 수도원에서 그에게 기증한 시내산 사본을 그는 러시아 황제에게 증정했다. 그후, 러시아가 공산화가 되면서 재정이 약해진 소련이 1933년에 10만 파운드를 받고 영국에 팔아 지금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서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수도원 측의 주장은 기증한 것이 아니라 각서까지 받고 빌려 준 것이라고 한다.

1975년 9월, 퇴락한 방을 고치기 위해 벽을 헐었을 때, 벽과 벽 사이의 공간에서 다시 50상자 분의 수많은 성경사본(聖經寫本)이 발견되었는데 사본을 보호하기 위하여 극비에 부쳐졌지만 결국은 이 소식이 알려지고 말았다. 그 후 카타린 수도원 측은 다만 학자들에게만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필사나 사진 촬영을 금지한다는 조건 아래 사본을 볼 수만 있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⑧이집트를 떠나면서

호텔에 돌아온 우리는 샤워를 할 시간도, 아침을 먹을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세수도 하지 못하고 급히 짐을 꾸린 우리는 호텔에서 아침 식사로 준비해 준 빵 도시락 한 개씩을 받아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이스라엘 국경에서 이스라엘 가이드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12시란다. 벌써 열 시가 넘었으니 지금부터 쉬지 않고 달려도 약속시간에 닿기는 힘들 것 같다.

버스는 쉬지 않고 이스라엘 타바 국경을 향해 달렸다. 우리는 커다란 도시락을 풀었다. 박스로 포장된 도시락은 엄청나게 큰데 담겨 있는 빵은 몇 개 안 된다. 시나이 반도를 끼고 타바 국경에 이르는 길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가도가도 끝없는 광야, 마치 작은 그랜드 캐년이라고 부를 만한 협곡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까워 오면서 가끔 한 그루씩 서 있는 나무들이 보인다.

밤새 잠을 설치고 새벽 등반 길에 올랐던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몹시 피곤한지 거의 세상 모르게 곯아 떨어졌다. 그래도 우리의 안내를 맡아 주신 김인순 집사님은 우리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마지막 강의를 하신다. 한 사람만이라도 듣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모든 사람이 잠을 주무셔도 강의를 하시겠다고 한다. '나라도 모범학생이 되어야지' 집사님 뵙기 민망스러워 눈을 부릅뜨지만 깜빡깜빡 졸음이 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아예 맨 앞 좌석 조수 석에 앉았다. 그래야만 집사님의 강의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12시가 다 되어서 우리는 아키노 만에 있는 이집트의 관광 휴양지 누에바에 도착하였다. 버스가 도착한 곳은 뜻밖에도 '한강식당' 이라고 한글로 쓴 간판이 있는 집 앞이었다. 이곳에 점심 도시락이 준비되어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주인 역시 우리를 반겨 맞으며 그 귀하고 아까운 물을 선뜻 내놓는다. 물이 얼마나 시원한지 우리는 벌컥벌컥 마셨다. 한 병, 또 한 병, 이렇게 해서 몇 병이나 마셨는지 모른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냉수 한 그릇, 우리 나라에서는 이 냉수 한 그릇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다.

우리는 아예 이곳에서 도시락을 펼쳐 놓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마치 몇 개월만에 먹어 본 음식처럼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아니 신나고 행복하게 먹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집의 밥은 지금까지 먹어 본 끈기 없는 쌀밥이 아니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맛있는 쌀밥이었다.

이 식당의 주인은 아직 직분이 없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이라고 김인순 집사님은 소개해 주었다. 그는 주일이 되면 여기서 무려 456㎞나 떨어진 카이로에 가서 주일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워낙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전날 밤에 출발하여 다섯 시간을 달려 교회에 도착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456㎞라면 서울에서 부산보다 먼 거리가 아닌가,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 주일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식당 주인은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여기서 점심을 드실 줄 알았으면 김치라도 담갔을 것을 그랬다"고 하시면서 미안해 하신다. 아마 우리는 성지순례를 하면서 이 한강식당의 점심 맛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분의 신앙과 함께. 나는 한강식당의 명함을 한 장 받아왔다. 전화번호는 (062)500970이었다.

이제 우리는 그 동안 정들었던 김인순 집사님과 헤어질 때가 되었다. 타바 국경이 가까운 것이다. 집사님은 지금까지 많은 분들을 모시고 안내를 해 왔지만 이번에 만난 우리처럼 은혜스럽고 친밀한 팀을 본 일이 없다면서 섭섭해한다. 아마 그저 듣기 좋으라고 의례적으로 하는 그런 말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역시 김인순 집사님의 그 이집트의 역사나 문화 등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에 감탄을 했다. 혹시 기회가 있으면 우리 대학원에 초청하여 차분한 가운데 다시 그 강의를 듣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스라엘 편

(1)타바 국경에서 사해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2박 3일 동안 우리를 안내 해 준 김인순 집사의 전송을 받으며 우리는 타바(Taba) 국경에 도착하였다.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이상표 대리는 이곳까지 오면서 몇 번 강조했다. 타바 국경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라고 - 입국심사에만 최소한 두 시간 이상 경과할 것이니 자신의 안내를 잘 따라 달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면이 온통 아랍국가들로 에워 싸여 있고 항상 테러의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나라보다 보안검색이 심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집트를 경유하여 들어오는 관광객들의 짐을 통해 폭발물이 반입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금만 의심스러우면 가방을 온통 조사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서너 시간 족히 걸릴 것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런 일이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우리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만약 우리 나라의 판문점이 개방되고 관광객의 왕래가 자유로워진다면 우리는 이보다 더 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스라엘 입국 예정시간인 12시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도착한 우리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타바는 우리를 긴장시켰다. 혹시 인터뷰에서 잘못 대답하여 전체 일정이 늦어지지나 않을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날씨는 무더웠다. 아니 무덥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용광로 곁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집트 지역을 벗어나 이스라엘 지역을 통과하려고 하는데 그곳에는 이미 히브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 조용식 목사님(영진교회 부목사)이 나오셔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언제나 그랬지만 조 목사님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는 그 환한 웃음은 역시 멋이 있다. 잔뜩 긴장이 되던 터인지라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조용식 목사님 일행의 협조가 있었는지 볼펜의 위력인지는 몰라도 한 시간이 채 못되어 이스라엘에 입국절차가 끝났다. 아무래도 높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신 것 같다. 조 목사님은 새벽 여섯 시에 시외버스 편으로 예루살렘에서 이곳 타바 국경까지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단다.

냉방이 잘 된 시원한 버스에 올랐다. 조 목사님은 이렇게 더운 날씨에는 건과가 몸에 좋다고 하시면서 살구, 무화과, 호도, 바나나 등 건과(乾果) 바구니를 내놓으셨다. 그리고 앞으로 며칠간 우리를 안내해 주실 분을 소개해 주셨다. 김한성 전도사님으로 역시 히브리대학에서 공부하고 계신단다. 지금이 히브리대학교 시험기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오셔서 시간들을 할애해 주신 두 분께 우리는 힘찬 박수를 보냈다.

오늘 에일랏 지방의 최고기온은 42℃ 란다. 아무리 덥다고 해도 35℃를 넘어보기 힘든 서울의 날씨와는 도무지 비교가 안 된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버스의 냉방이 얼마나 잘 되는지 차 안에서는 도무지 더위를 실감하지 못하겠다. 에일랏에 잠깐 차를 멈추고 생수를 구입하였다. 1.5ℓ의 생수가 2달러씩이다. 이집트보다는 비쌌다. 그러나 이날 마신 물이 어찌나 시원하고 맛이 있던지 잊을 수가 없다. 이 물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어 있었던 엔게디(삼상 23:29)의 물이란다. 엔게디(Engedi)란 새끼 염소의 우물이란 뜻인데 이집트에서 사 마신 물보다 훨씬 맛이 좋았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쉬지 않고 북으로 달렸다. 이스라엘의 모든 관광지가 오후 5시에는 문을 닫기 때문에 마사다에 올라가려면 시간이 늦다는 것이다. 차창 밖에 좌우로 펼쳐진 이스라엘의 모습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었다. 이집트에서부터 계속된 황무지의 연속이었다. 지금 이스라엘은 건기이기 때문에 모든 시내가 마르고 풀조차 말랐다는 것이다. 곳곳에 마른 시내가 보인다. 이것은 와디라고 해서 비가 올 때만 흐르는 시내란다.

오른쪽으로 사해가 나타났다. 사해란 말은 성경에 없다. 창세기 14:3에는 '염해(鹽海)'라고 하였고 여호수아 3:16에는 '아라바의 바다'라고 불렸다. 사해는 남북의 길이가 75㎞, 동서의 폭은 넓은 곳이 18㎞이며 둘레는 200㎞나 되며 넓이는 950㎢라고 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매일 평균 500만t의 물이 요단강으로부터 흘러 들어오지만 나가는 곳이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의 기온이 워낙 높아서 넘치지 않고 일정한 수위를 항상 유지한다고 한다.

이곳 사해의 물은 염도가 35%나 되어 보통 바닷물보다 10여 배가 짜다. 따라서 어느 물고기도 살지 못하여 희랍 사람들이 2세기경부터 사해(死海)라 불렀다고 한다.

사해의 물 속에는 염분만 많은 것이 아니라 각종 광물질이 무궁무진하게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해의 남쪽에는 많은 공장들이 세워져 있었다. 여기서는 물 속에 녹아 있는 칼슘, 마그네슘, 포타시움, 유황, 브로마인 등 수많은 광물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런 것들은 이스라엘의 중요한 수출 품목으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플라스틱이나 농약, 페인트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브로마인(Bromine)은 전 세계 소비량의 26%가 사해에서 생산된다고 한다. 오늘날의 사해는 죽음의 바다가 아니라 무진장한 보물이 숨겨있는 '보물 창고'인 셈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사해 주변에 큰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사해의 물은 각종 피부병에 좋으며, 또한 사해 주변에는 온천들이 많이 있는데 이 온천물과 사해 물은 관절염이나 류머티스를 치유하는데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하여 병을 고치기 위해 전세계로부터 사해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바쁜 여정이지만 잠깐 차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 롯의 처가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곳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소금 덩어리를 채 취하였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간 후 알맞은 장소를 찾아 잠깐 수영을 하면서 물에 뜨는 것을 체험하기로 하기로 했다.

사해의 물은 생각보다 맑았다. 무더위에 지친 탓인지 몇몇 사람만 수영복을 갈아입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이 눈에 들어가면 쓰리고 아프며 눈을 뜰 수 없으니 절대로 눈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라는 설명을 들은 후 물에 들어간 목사님들은 물 위에 누워 보기도 하며

신기해 했다.

그러나 많은 목사님들은 사해보다 공중전화 부스가 더 눈에 들어오나 보다. 지금이 오후5시,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11시경이니 전화하기엔 가장 알맞은 시각이기 때문이다. 공중전화가 설치된 곳마다 목사님 사모님들이 매달려 안부를 묻고 이곳의 표정을 전하기가 바쁘다. "이제 우리는 이집트를 떠나 이스라엘에 들어왔어. 여긴 사해 바다인데 지금 기온이 42℃래. 그래, 집엔 별일 없는 거지?" 전화를 하는 목소리는 원고를 읽는 것처럼 거의 비슷했다.

멀리 마사다가 보이지만 결국 우리는 마사다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사람의 접근을 거부하는 높이 450m의 천연적 요새, 정상부분의 크기는 길이 약600m, 넓이 약250m. 예루살렘이 로마에 함락될 때 엘리아살 벤 야일을 지도자로 한 960명이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이곳에 진을 치고 3년간 저항을 했던 곳이다. 서기 73년 5월, 로마군대가 토담을 쌓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날 밤, 960명은 장렬하게 죽음을 선택하였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대 훈련의 최종 코스는 이 마사다라고 한다. 마사다 정상에서 그들은 목소리를 합하여 힘있게 외친다. "마사다의 비극은 다시 없을 것이다"(Masada Never Again!).

사해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다. 우리는 메주케라 부르는 엔게디 지방의 골짜기를 잠깐 들렀다. 다윗이 시편에서 노래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바로 이런 곳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바닥에는 곳곳에 칼날같이 날카로운 차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었다고 하였는데(출 4:25) 이런 돌이면 충분히 양피를 베고도 남았으리라. 이렇게 곳곳에 날카로운 돌들이 많아 이스라엘은 타이어 펑크로 인한 자동차 사고는 보험 혜택을 입을 수 없다고 한다.

험준한 골짜기 사이로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가이드의 설명을 도무지 들을 수 없다. 그저 사람도 날아갈 듯한 강풍에 모자가 날아갈까 봐 거기에 정신이 팔렸다. 때마침 금빛교회 신미숙 사모님의 모자가 벗겨지면서 사해 쪽으로 날아갔다. 조남준 목사님은 모자를 따라 달려가고…. 저러다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모자가 아니라 목사님이) 하고 모두 마음을 졸였는데 아슬아슬하게 잡을 수 있었다. 역시 평소에 운동을 좋아하시더니 그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

많은 목회자나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금식하신 본을 받아 40일을 금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물 맑고 시원한 한국의 기도원에서 40일을 금식하신 것이 아니라 이런 유다 광야에서 금식하셨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무덥고 삭막한 광야에서는 40일이 아니라 단 4일을 금식하기도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다시 차를 타고 계곡을 따라 한참 내려가니 다시 사해 바닷가가 나온다. 그런데 이곳 호숫가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사해 주변에서는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으로 자신도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조 목사님은 말씀하셨다.

사해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은 계속 오르막길이었다. 얼마쯤 지나니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처럼 귀가 멍하다. 해면(Sea level)을 통과하여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사해가 해면보다 398m 낮은 곳에 있고 예루살렘은 해발 750m에 위치해 있으니 우리는 불과 30분만에 1,150m나 올라간 셈이다. 좌측 차창 밖으로는 내일부터 순례 길에 오를 고대 예루살렘의 성벽이 보인다.

9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우리는 예루살렘 시내에 있는 Kikar Zion Hotel에 도착했다. 이스라엘에서는 특히 음식을 먹을 때 주의할 일들이 있다. 그들의 식사법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레위기에 보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나 사물, 짐승, 가축 등은 세 가지 중 하나에 속해 있다. 부정한 것, 정(淨)한 것, 거룩한 것이 그것이다.

유대인들은 식사를 할 때도 먹기에 합당한 음식('코셔'라고 한다)을 정한 그릇에 담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행객들이 식당에 자신들의 음식 가져오는 것을 대단히 싫어한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부정한 음식이거나 부정한 그릇('트라이프'라고 한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그런데 맛이 이상하다. 물어 보니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생크림이라고 한다. 오늘 저녁 식사에 양고기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양젖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너는 염소 새끼를 어미젖으로 삶지 말지니라"(출 23:19) 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우유제품과 고기제품을 철저히 분리한다. 그래서 치즈와 햄을 넣은 샌드위치는 질색을 한다. 치즈는 우유로 만든 것이고 햄은 고기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이 법을 충실하게 지키기 위해 두 벌의 그릇과 두 벌의 포크와 나이프를 준비한다. 우유제품을 사용한 그릇이나 포크로 고기를 담아 먹지 않기 위해서다. 심지어 설거지를 할 때도 고기용 식기와 우유제품용 식기가 섞이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한다.

그렇다면 고기를 먹은 후 몇 시간이 지나야 우유를 마실 수 있을까? 전통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독일계 유대인들은 세 시간, 동부 유럽 유대인들은 여섯 시간이 지나야 마시는데 네델란드계 유대인들은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마신다고 한다.

코미디 같은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나 여행객으로 온 우리가 그들의 성스러운 전통을 지키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이 되어 김이나 고추장 등 우리가 가져간 밑반찬을 이스라엘에서는 아예 꺼내지 않기로 하였다.

다행히 이스라엘에서 처음 먹는 저녁식사는 입맛에 맞았다. 늦은 시각이라 배고픈 차에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각자 숙소로 돌아가 여장을 풀었다.

(2)예루살렘에서의 첫째 날

목사님들을 항상 부지런하다. 특히 새벽에 일어나는 것은 훈련이 잘 되었다. 우리의 인솔자인 이상표 대리는 목사님들을 모시고 다니니 아침 일어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좋단다. 6시에 모닝 콜을 하지만 그때까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침 7시 빵과 우유 그리고 과일 등 뷔페로 준비된 아침식사를 마친 후 8시부터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꿈에나 그려 보던 예루살렘 순례 길에 올랐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열 개 분량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내려 주셨다. 그 중 아홉은 예루살렘의 몫이 되었다."(탈무드 중) 흔히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이라고 노래하는 예루살렘. 예루살렘은 세계의 3대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의 중심지로서 인간의 고귀한 영혼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예술적인 세련미를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곳은 전세계 16억 기독교도, 9억의 이슬람교도, 1,600만 유대인들에게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영원한 성도(聖都)'로서 신앙의 고향이다. 아침 햇살과 석양이 비칠 때면 예루살렘은 온통 '황금의 도시'로 변한다. 이 아름다움 때문에 도성을 차지하려는 쟁탈전이 벌어져 전쟁의 참화를 여러 번 경험한 도시로 지금까지 20번 이상 주인이 바뀌는 운명을 겪었고, 거의 10번이나 완전히 파괴되기도 했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심한 대결과 갈등에 긴장감이 팽배해 있다.

역사와 종교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시로서는 규모가 작다.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성벽 길이는 총연장 4km, 성내 면적은 정확히 약 30만 평에 불과하다. 예루살렘이 고도(古都)임을 보여 주는 성벽은 450여 년 전인 16세기 중엽 이곳을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 제국의 황제 술레이만 1세 때 축성되었다.

새로 건축한 신예루살렘은 구예루살렘의 서편에 있어서 사람들은 구예루살렘을 동예루살렘, 신예루살렘을 서예루살렘으로 부른다. 1948년 5월, 독립을 계기로 급속도로 건설이 된 신예루살렘은 넓이가 구예루살렘의 100배가 넘는 현대적인 도시이다. 다만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은 검은 복장에 긴 수염을 기른 정통파 유대인들이 이곳이 이스라엘의 도시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예루살렘이 역사의 중심무대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1,000년 쯤에 다윗왕이 이곳을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부터이다. 이스라엘 어느 지파에도 편중되지 않은 중립적인 도시를 새 왕국의 수도로 정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다윗왕은 그때까지 이스라엘 어느 지파도 정복하지 못했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가나안 원주민 성을 정복한 뒤 그곳을 이스라엘의 왕국의 새 수도로 삼았다. 이렇게 여부스족이 살던 도성 예루살렘을 다윗 왕이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정한 이후 예루살렘은 지금까지 3,00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오늘날까지 한 번도 사람의 숨결이 끊이지 않은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가 되었다.

①통곡의 벽

둘레 4㎞의 예루살렘 성에는 용도에 따라 모두 8개의 문이 있다. 분뇨문, 시온문, 욥바문, 새문, 다메섹문, 헤롯문, 스데반문(사자의 문), 황금의 문이 그것이다. 우리는 분뇨문을 통해 통곡의 벽을 찾아갔다.

지난 2,000년 동안 통곡의 벽은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귀향의 꿈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어 왔다. 서기 66년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을 향하여 반란을 일으키자 로마군대는 무력으로 진압시켰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저항했다. 로마병이 횃불을 던지자 성전이 불에 타 완전히 파괴되었다. 성전은 성경대로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어 다시는 복구되지 못했다. 다행히도 성전을 받치고 있던 서쪽 축대의 일부가 화를 면해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이 서쪽 벽은 성전 파괴 이후 1,900년 동안 전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들(디아스포라)에게 귀향의 꿈을 상징하는 성소가 되어왔고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수난과 박해를 받으며 살아온 그들은 이곳을 찾아와 2천년 유랑의 한을 달래며 눈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통곡의 소리가 들린다 하여 '통곡의 벽'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1948년 이스라엘은 2천년만에 독립하지만 예루살렘 성은 요르단 측이 장악하고 있어 유대인들은 이 벽에 접근하지도 못하였는데 1967년 6월 5일 '6일 전쟁'의 영웅 '모세 다얀' 장군은 이 벽을 탈환하기 위해 이스라엘 최정예 공수부대를 투입,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하니 유대인들이 갖는 통곡의 벽에 대한 소중함이 어떠한지 알 것만 같다.

통곡의 벽은 좌우로 나뉘어 있어 좌측에는 남자들이, 우측에는 여자들이 들어가 기도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소매가 짧은 옷은 입지 못하게 하고 남자들은 반드시 모자를 써야만 한다. 길이 60m, 높이 18m의 벽, 돌과 돌 사이의 틈새에는 기도문을 적은 종이들이 가득 메우고 있어 이들의 간절한 염원을 알 수 있게 한다. 우리 일행도 남자 여자 나누어 각자 통곡의 벽으로 향했다. 그리고 각자의 기도문을 적어 돌 틈에 끼우고 머리를 벽에 맞댄 채 기도하였다. 목사님들의 사무치는 염원이 얼마나 간절한지 시간이 지나도 떠날 줄을 몰랐다.

기도를 마치고 주위를 둘러 보니 아버지와 아들이 손잡고 나와 기도하는 사람, 벽에 기대고 앉아 성경 읽고 있는 사람, 여럿이 둘러서서 머리를 맞대고 찬송하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작은 공간이 가득 찼다. 이 많은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 나온 사람들이 아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시간시간 이곳에 나와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늘의 이스라엘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한 소년을 에워 싸고 나타났다. 무슨 일인가 하여 바라보았더니 성년의식을 치르는 것이라 한다. 유대인들은 만 13세가 되면 '발 미쯔바'라 하는 성년의식을 거행하는데 가족 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통곡의 벽 앞에서 거행함으로 그 의미를 새롭게 한다고 한다.

이 벽에는 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할 때 백성들에게 작업의 양을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부자들은 인부를 얻어 재빠르게 성벽의 축대작업을 마쳤는데 가난한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자기의 손으로 정성껏 축대를 쌓았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이들의 충성을 보시고 가난한 자들이 쌓은 서쪽의 성벽을 보호하셔서 바벨론 군대가 성전을 불사르고 파괴시킬 때 이 벽만을 지켜 주셨고 그 후 여러 전쟁 중에서도 보호하셨다고 한다.

우리가 성전을 건축하거나 교회를 섬기는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생각된다.

통곡의 벽 바로 뒤편에는 이슬람교 대사원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무장한 이스라엘 경비병들이 소지품 검사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린 모리아 산으로 훗날 다윗이 은 50세겔을 주고 아라우나에게서 사들인 후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했던 곳이다. 그 후 바벨론에 의해 무너진 것을 스룹바벨이 재건했는데, 다시 헤롯 대왕이 BC. 20년 착공을 하여 46년 만인 AD. 26년 일부를 완공하고 62년에야 모든 공사를 끝냈다. 그러나 완공한 지 8년 만인 AD. 70년 로마의 티투스에 의해 파괴된 후 다시 재건하지 못했다. 지금은 성전의 터 위에 AD. 691년 카리프 압둘말리크가 세운 '바위 돔(Dom of the Rock) 사원'이란 이슬람 대사원이 세워져 있다.

"네가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다"(겔 5:11)는 에스겔의 예언이 적중한 것이다. 지금은 이 돔에 황금을 씌워 '황금돔 바위 사원' 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황금 돔은 사담 후세인이 650만 달러를 들여 순금으로 입힌 것이라 한다. 이 사원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다듬어지지 않은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린 모리아 제단의 바위라고 한다. 그러나 이슬람교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제물로 바친 것이라고 주장하며 또한 이 바위에서 마호메트가 승천했다고 주장한다고 한다.

황금돔 바위 사원에서 동쪽으로 100m쯤 가니 '황금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옛날에는 성전의 지성소가 가장 가까워 제사장들이 이리로 출입했고 예수님도 종려주일에 이 문으로 들어오셨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 오시면 이 문을 통하여 감람산과 베다니를 오가셨다. 이 문은 예루살렘 성문 중 가장 아름답다 하여 미문(美門)이라(행 3:1) 하였다. 지금은 굳게 닫힌 이 문에 대해 유대인들은 장차 메시아가 오시면 열리 것이라고 한다.

황금문(미문)에서 성벽을 따라 300m쯤 북쪽으로 올라가니 또 하나의 성문이 나왔다. 스데반 문이라 불리는 이 문은 성문 주위에 네 마리의 사자 얼굴이 조각되어 '사자문' 이라고도 하고, 구약 시대에 성전에 제물로 쓰일 양들이 주로 다녔다고 해서 '양문'(요 5:1) 이라고도 한다. 사자문이라 불리게 된 것은 성벽 건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을 때 꿈에 사자가 나타나 위협을 했기에 황급히 건축을 하면서 사자상을 조각하여 붙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밧세바 문' 이라고도 불리는데 6일 전쟁 때 아랍 군들이 성문을 굳게 잠그고 있어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성 위에서 빤히 보이는 곳에 미인이 목욕을 하게 하는 소위 '밧세바 작전'을 하여 아랍 군인들이 정신이 나간 사이에 성문을 탈환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또한 스데반 문이라 불리게된 것은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할 때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쳤는데(행 7:58) 이 문 밖에서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스데반 성문에서 안쪽으로 80여m 지점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요 5장) 현장으로 유명한 이 연못은 제2성전 시대에 증가하는 성 안의 인구와 주변 주민들에게 물 공급을 위한 노천 저수지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못은 길이 약 100m, 폭 70m, 깊이 7m 정도의 큰 못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와 보기 전에 머리 속에 상상했던 베데스다 연못과는 너무 다른 것에 놀랐다.

이 부근에는 성 안나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 교회당은 소리의 공명이 잘 되도록 설계되어 있어 찬송가를 부르면 마치 천사의 노래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권태일 목사님이 시범을 보인 후 우리 순례객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합창하였다. 이렇게 소리가 왕왕 울려서야 어찌 미사를 집전하며 하나님 말씀을 강론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메시지는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할 것 없이 그냥 그 음성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로마 가톨릭의 사상을 잘 가르치고 있는 성전이란다.

②십자가의 길

역시 우리의 최대 관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셨던 그 길이다. 이 길을 흔히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라고 하는데 이 말은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란 뜻이다. 유대인들의 성지가 통곡의 벽이요, 모슬렘들의 성지가 황금돔 사원이라면 기독교인들의 성지는 단연 이 십자가의 길이다. 이 비아 돌로로사는 사자의 문에서 서쪽으로 200여m 지나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이곳에 도착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던 우리는 기대한 것과 너무나 달라 마음 한 구석 실망의 빛을 감출 수 없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이 길이야말로 기도하며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거룩한 길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 전개된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낮지막한 야산, 골고다 언덕이 아니라 오래 되고 낡은 집과 상점들이 좁은 길 좌우에 늘어서 있고, 상점에서는 순례객들에게 물건을 파느라 아우성이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을 찾아갔을 때의 모습도 마치 이와 같았으리라. 만일 세상이 백옥같이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성자와 같이 거룩하다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 아랍 사람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로마 가톨릭에서 성당을 지어 놓고 인위적으로 꾸미고 치장해 놓은 모습이 마치 이교도의 성지를 찾아온 느낌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만큼 성전이라도 세워 놓았으니 아랍 사람들이 점령하지 못했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무덤자리까지 아랍 상인들의 시장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안내를 맡은 김한성 전도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비아 돌로로사를 순례하게 되었다. 1㎞쯤 되는 이 고난의 길에는 전통적으로 발길을 멈추는 장소가 14군데 있다.

⸡빌라도의 법정. 지금은 아랍 국민학교가 자리잡은 곳인데 본래는 안토니아 성채 안에 있었던 곳이라 한다. 성경에 보면 "빌라도가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이란 곳에서 재판석에 앉았더라"(요 19:13) 하였는데 바로 이곳에서 빌라도의 박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곳.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조롱하며 십자가를 지게 한 장소인데 지금은 '채찍질 교회'가 서 있었다.

⸣첫 번째 쓰러지신 곳. 이곳은 폴란드 교회에서 지은 작은 교회가 세워져 있어 기억할 수 있게 하였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던 예수님께서 모친 마리아를 만난 곳. 이곳에는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세운 작은 교회가 있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억지로 십자가를 대신 진 곳. 이곳에도 가톨릭 프란체스코회에 속하는 작은 교회가 있다.

⸦베로니카 여인을 만나신 곳. 성경에는 없는 이야기지만 전승에 의하면 이곳에서 기진맥진 해 지신 예수님께 베로니카가 자신의 손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의 피와 땀을 닦아 드렸는데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뚜렷이 새겨졌다는 것이다. 이곳부터 성묘교회 앞까지는 좁은 아랍인들의 시장 골목이다. 여러 가지 물건들을 길에 내놓고 파는데 모두 조잡한 물건들이다.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신 곳. 골고다 언덕으로 오르는 길이다. 길은 더욱 좁아지고 경사가 급해진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여인들을 위로하신 곳.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여기서 골고다 언덕을 향하는 길은 중간이 막혀 있어 옆으로 돌아가야 했다.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신 곳. 골고다 언덕에 거의 다 올라가신 지점인데 꼽틱교회(이집트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다. 꼽틱교회에서는 순례객들을 위하여 나무 십자가를 만들어 입구에 세워 놓았다. 아마도 한 번씩 짊어져 보라는 뜻인가 보다. 정철옥 목사님께서 나무 십자가를 지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도무지 무거워 보이지 않는다. 이왕에 만들어 놓을 바에야 당시 예수님께서 지셨던 십자가의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 준비해 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우리가 꼽틱 교회로 들어가자 입구에서 안내를 해 주는 이집트인이(혹시 목사인지?) 서툰 한국말로 맞이한다. "꼬레아, 머리 조심" 정말 입구가 낮아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이마를 부딪히기 십상이다. 꼽틱교회는 이렇게 항상 지하에 있는 것인가? 지난번 카이로에서 본 아부 사르가 교회(예수님 피난교회)도 이렇게 지하에 있었다. 꼽틱 교회는 가난한 교회이니 마음이 감동되는 대로 1달러씩 헌금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하였다. 헌금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많은 꼬레아 성도들(?)이 1달러씩 헌금을 하고 지나가니 성전 안에 계시던 분의 얼굴에는 고마운 빛이 역력하다.

예수님께서 옷이 벗겨지시고 능욕 당하신 곳. 이제부터는 열네 번째까지 골고다 언덕 위에서 일어난 일들로서 장소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모두 성묘교회 안에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곳. 십자가가 세워졌던 자리에는 동그란 구멍이 있었다. 그 속에 손을 넣어 보니 바위가 만져진다. 잠시 그 곳에 손을 넣고 기도했다

십자가에서 예수를 내려 놓으신 곳. 여기서 세마포를 입혔다.

예수께서 묻히셨던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새 무덤. 여기서 주님은 부활하셨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골고다는 해골 모양을 한 산 언덕인 줄 알았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곳과 무덤 사이는 얼마 정도 거리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십자가가 있던 장소와 묘지는 불과 10m남짓밖에 안 되고 모두 성묘교회 안에 있었다. 왜 그럴까?

서기 132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두 번째 반란이 일어나자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반란을 진압한 뒤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에서 모두 추방시키고 기독교 유적을 말살시켰다. 그리고 136년에는 골고다 언덕을 깎아 평지로 만들고 십자가 못 박힌 장소 위에 비너스(Venus) 상을 세웠고 성묘에는 쥬피터 상을 세웠다.

그러나 십자가의 능력을 어떻게 권력이 막을 수 있겠는가? 200년이 지난 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자(313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는 325년에 성지순례의 길에 올랐다. 십자가 고난의 장소인 골고다 언덕과 부활의 현장인 무덤을 찾기 위해서다. 다행히 기독교를 말살하기 위해 세운 비너스상 덕분에 그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신전 지하에서는 예수께서 못 박히셨던 나무 십자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콘스탄틴 황제의 명령으로 비너스상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세워졌다(336년). 그 후 몇 번이나 파괴당하고 재건되는 수난을 겪다가 십자군 운동이 일어나고 성지를 탈환한 십자군에 의해 1149년 성묘교회를 완전히 복구했는데 지금의 성묘교회는 십자군 때 재건된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그 후 1291년 아랍의 살라딘이 십자군과 싸워 승리한 후 다시 성지는 이슬람의 손에 넘어가지만 다행히 살라딘은 성묘교회를 파괴하지 않고 대신 교회를 장악했다는 표시로 교회로 들어가는 두 개의 문 가운데 하나를 돌로 완전히 막아버렸다. 그리고 교회 대문의 열쇠는 이슬람교 측에 맡겼다. 이 때부터 오늘까지 700년 동안 성묘교회는 한 개의 문만 사용하고 그 문의 열쇠는 지금도 이슬람교 측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성묘교회 중앙 예수님께서 묻히셨던 자리에는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제공한 동굴 무덤은 찾을 수 없고 그 자리에 높이 6m, 너비 6m, 길이 8m가량 되는 4평 정도의 예수님의 기념묘가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언덕을 깎아버렸으니 없어진 것이다. 그나마 그 장소라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다행히 무덤교회를 나와 조금 지나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무덤이 하나 있어 당시 무덤의 형태를 알 수 있게 한다.

③마가 요한의 다락방과 다윗왕의 가묘(假墓)

성묘교회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요리조리 가이드를 따라가니 시온문이 나왔다. 이 문의 좌우 벽에는 무수한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948년 아랍과의 독립전쟁 때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독립의 소중함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애국애족의 산 교육장이란다.

우리는 시온 문을 빠져 나와 다윗왕(?)을 만났다. 옷차림도 왕관을 쓴 모습에 비파를 켜는 거구의 할아버지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우리가 다가가자 그는 비파를 켜며 "호산나 호산나"를 부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 일행은 이 다윗왕과 함께 어울려 손뼉을 치며 찬양을 불렀고 기념 촬영도 했다. 성지순례객들은 누구나 이 분을 만나게 된다고 한다. 함께 노래가 끝난 후 기쁜 마음으로 팁을 5달러 드렸다. 그러자 이 분은 우리의 모델이 되어 개인사진을 찍게 해 준다. 나는 맨 나중에 찍었다. 내가 팁을 준 바로 그 사람인 줄 알아보았나 보다(사실은 내 돈이 아니라 우리가 공동으로 거둔 회비인데…). 자기 왕관을 벗어 내 머리에 씌워 주고 사진을 찍게 한다.

이렇게 사진까지는 멋있게 찍었는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함께 있던 일행이 눈에 안 보인다. 낙오된 사람은 4명, 도대체 일행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데 웬 남자 천사(?)가 나타나 "꼬레아?" 하고 묻는다. 반가워서 우리의 그 유명한 빨간 조끼를 보이며 서툰 영어로 "예스, 꼬레아 웨어?" 하고 물었더니 어느 건물을 가리킨다. 너무 반가워 그가 알려준 대로 달려갔다. 그러나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러다가 우리 넷이 미아가 되는 것 아닌가? 조남준 목사님께 혹시 우리 호텔 이름을 아느냐고 했더니 잘 기억이 안 난단다. 하기야 나처럼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도 호텔 이름을 외워 두지 않았으니….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다시 되돌아 나오는데 그 천사(?)가 거기 그냥 있다. 우리는 손을 가로 저으며 "꼬레아, 노우, 없어요" 하고 영어 반, 우리말 반 사정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그 천사는 알겠다는 듯이 그 집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가리키며 가보라는 시늉을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점점 멀리 갔을지 모르니까.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 보니 한 50평쯤 되어 보이는 큰 방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 방에는 온통 빨간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어찌나 반가운지. 우리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일행은 우리가 낙오된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고딕(gothic)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큰 홀이다. 벽쪽에 기둥이 죽 늘어서 있고 중앙에는 세 개의 돌기둥이 아치형으로 천정을 떠받치고 있었다. 아내가 살금살금 다가와 옆구리를 쿡 찌른다. 어디 갔다 왔느냐는 투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아내는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나 보다. 아내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마가의 다락방이래."

우리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마가의 다락방을 찾아왔다. 그 동안 집주인이 수없이 바뀌어 예수님 당시 모습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 장소가 최후의 만찬을 하셨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던 현장인 마가 요한의 다락방이 틀림없다고 한다.

다락방을 나와 계단으로 내려오니 조금전 일행을 찾아 헤맬 때 들여다 본 곳이다. 다윗왕의 무덤이란다. 물론 다윗왕의 실제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12세기 십자군 시대에 파괴된 다락방 교회 자리에 다윗왕의 기념묘를 세웠다 한다.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왕은 모두 41명, 그런데 다윗왕 뿐 아니라 솔로몬, 히스기야, 어느 한 사람의 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왕의 무덤을 피라밋으로 만들기까지 했는데 왜 그럴까? 그것은 아무리 위대한 왕이라 해도 그가 죽은 후에 무덤을 거창하게 만들어 인간을 영웅화 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신앙 때문이란다. 그래서 이곳은 유대인들에게는 통곡의 벽 다음으로 신성시되는 곳이다.

큰 석실 안에는 길이 2m, 폭 1m 정도의 석관이 빨간 비로드 천으로 덮여 있다. 그리고 천 위에는 "이스라엘 왕 다윗은 살아서 여기 있다"고 히브리어로 수놓여 있고 유대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이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밖에 나와 잠시 쉬는 사이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 어디서 "퍽- 피식-" 하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승용차 바퀴의 펑크 소리였다. 자세히 보니 승용차 한 대가 일방통행인 주차장의 출구쪽으로 잘못 들어가려다 설치해 놓은 장애물에 의해 펑크가 난 것이다. 마치 우리 나라의 검문소와 같이 일방통행 표시가 있는 곳에 무단 침입을 하면 바닥에 설치된 쇠꼬챙이가 용서하지 않고 타이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진행방향으로 들어가면 꼬챙이가 접어지고 반대방향으로 들어가면 꼬챙이가 일어서도록 되어 있었다. 펑크는 낸 운전자는 황당한 듯 차에서 내려 겸연쩍게 웃고 있었다. 철저한 것은 좋은데 좀 삭막하고 지나친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후에 유심히 보니 다른 주차장이나 일방통행로에도 곳곳에 이런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④베들레헴 예수 탄생교회

우리는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8-9㎞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곳은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서 자동차의 번호판 색깔도 노란색이 아니라 청색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지역에 노란 번호판을 단 차가 지나가면 돌을 던지고 했다는 설명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의외로 평온했다. 대부분 파란 번호판의 차들이었지만 노란 번호판(유대인 소유 자동차)도 흔히 눈에 띄었다.

오늘따라 순례자가 많은가 보다. 교통이 복잡하여 예수 탄생교회까지 대형버스가 올라가지 못했다. 우리가 큰길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구유의 광장(Manger's Square)이라고 불리는 넓은 광장과 함께 예수 탄생교회가 우뚝 서 있었다. 광장도 축구장 넓이에 버금갈 만큼 넓었지만 교회 또한 생각한 것보다 규모가 컸다. 예수 탄생교회는 입구가 작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왔기 때문에 교회도 작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혀 있었나 보다.

역시 입구는 교회의 규모에 비해 너무 작았다. 높이가 불과 120㎝, 넓이도 80㎝밖에 안 되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었다. 자세히 보니 원래의 문은 아치형으로 크게 흔적이 남아 있었다. 원래 문이 세 개였는데 십자군 시대에 양쪽 두 문은 벽으로 막았고 중앙의 문은 회교도들이 말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낮게 줄였다는 것이다.

그 후 이 예수 탄생교회에 들어오는 사람은 왕이나 장군이나 그 누구라도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구유에 탄생하신 겸손하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히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곳이라 하여 '겸손의 문'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도 역시 한 사람씩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성전으로 들어갔다. 성전 내부에서 설명을 들은 후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인 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줄을 섰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지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일부 목사님들은 그냥 가자고 한다. 물론 한 시간을 기다려서라도 보아야 한다는 목사님도 계시고….

총무이신 정철옥 목사님이 예의 그 기지를 발휘하셨다. 강단 쪽에서 질서를 맡고 있는 경비원(?)과 뭐라고 한참 주고받더니(말이나 통한 건지, 방언을 하셨는지…) 볼펜 한 개씩 두 사람의 목에 걸어 준다. 그리고 비디오를 찍고 계신 박춘식 목사님을 부른다. 뒤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니 이분들 따라 들어가 비디오만 찍어 오라는 사명(?)을 부여 받았다. 우리는 그들이 이 중대한 사명을 마치고 올 때까지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대리석 돌계단을 내려가면 대리석으로 바닥이 깔려 있는 작은 동굴이 나타난다고 한다. 폭 3.5m, 길이가 13m 정도 되는 이곳이 아기 예수가 탄생한 곳이란다. 동굴 바닥에는 은으로 만든 별 모양의 장식이 탄생 지점(눅 2:8-20)임을 알려 주는데, 1717년 가톨릭 교회에서 만든 베들레헴의 별이라고 한다. 별의 둘레에는 라틴어로 "이곳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별은 14각으로 되어 있는데 십자가의 길 14처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14대, 그 후부터 예수까지의 14대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예수 탄생교회 옆에는 또 하나의 교회가 있었다. 두 교회는 서로 맞붙어 있어 내부로 통하고 있었다. 이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에 속한 성 카타린 교회로 19세기말에 건축되었다고 한다. 예수 탄생교회가 그리스 정교회에 속하였기 때문에 따로 세운 것이다. 그러니까 성탄절 전야에 전 세계로 방영되는 베들레헴 예배는 예수 탄생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이 성 카타린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 탄생교회를 나와 구유의 광장에서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베들레헴을 떠났다. 친절한 유대인 버스기사께서는 그 사이에 이곳까지 버스를 올려다 놓으셨다. 이 더운 날씨에 이 작은 배려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무튼 어제부터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는 이 분은 퍽 기분이 좋은가 보다. 또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고마운 분들이다. 조용식 목사님, 김한성 전도사님, 그리고 버스 기사님, 그리고 우리를 인솔하고 있는 이상표 대리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좋은 분들을 만나게 해 주셨다.

오늘 점심은 좀 특별한 곳으로 인도되었다. 예루살렘에서 관광업을 하고 계신 송사장님이란 분의 집으로 초대되어 한식을 먹을 수 있었다. 예루살렘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하니 어디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계단을 몇 번 올라가 어느 집의 2층으로 초대되었다. 역시 관광업을 하시는 분이라 가이드는 잘 아는 듯했다. 어제 이집트를 떠나면서 누에바 휴양지에 있는 한강식당에서 한식을 먹었기에 또 한식을 먹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에 먹음직스런 한식이 뷔폐식으로 차려있었다. 한 가지, 여기는 배추가 없나 보다. 김치는 양배추로 담은 것이었다. 앞으로 한식을 먹을 기회가 흔치 않을 것이라는 말에 며칠 분을 한꺼번에 먹었다. 우리가 이렇게 먹어도 남는 것이 있을런지 괜히 걱정이 된다.

⑤학살 기념관(야드 바셈)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오후 순례 일정에 들어갔다. 오늘 오후의 안내는 조용식 목사님께서 맡아 주시겠다고 한다. 먼저 찾아간 곳은 금세기 최대의 비극적인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특이한 기념관이었다. 예루살렘 신시가지 서편 '회상(回想)' 이란 뜻을 가진 지카론(Zicaron) 언덕 위에 세워진 '유대인 학살 기념관'이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당시 독일 나치의 손에 무참히 학살당한 600만 유대인들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인데 이들은 '야드 바셈(Yad Vashem)'이라 부른다. 이 말은 이사야 56:5의 "기념물과 이름을 주며"에서 따온 말로 '기념물과 이름'이란 뜻이다. 이곳은 몸소 겪었던 처절하고, 비참하고, 비통하고, 극심했던 쓰라린 역사를 덮어두지 않고 보존하여 이와 같은 일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한 기념물이며, 무고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영구히 보존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먼저 우리는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조 목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조 목사님은 오늘 오후 일정과 관계된 여러 가지 유인물을 준비해 오셨고, 특히 조 목사님 사모님은 시원한 냉커피와 쥬스, 그리고 복숭아와 살구 등 과일을 한 바구니 가지고 나오셨다. 우리는 조 목사님 사모님을 만나 뵐 때 반가웠다. 냉커피와 과일이 반가운 것이 아니다. 사실이다. 이건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이고, 외지에서 외롭게 지내고 계신 사모님과 아이들을 만난 것이 반가웠다. 그러니 이 먼 예루살렘에서 우리를 만난 사모님과 아이들은 얼마나 반가울까? 단순히 한국 사람들만 만나도 반가울 텐데 같은 노회 목사님들 특히 사모님들을 만났으니…. 그러나 저러나 어제는 건과 바구니, 오늘은 생과 바구니, 이렇게 며칠 지나다가는 조 목사님네 온 식구가 금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생각하면 얼마나 신나고 좋으면 저러실까 생각도 되고….

우리는 조 목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천천히 기념관 쪽으로 걸어갔다. 잘 다듬어진 길 양쪽에는 탕자의 비유에서 나오는 쥐엄열매가 열리는 카롭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 그리고 각 나무 밑에는 국적과 이름을 써 놓은 팻말이 보인다. 이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핍박당하고 학살당할 때 그들을 숨겨 주거나 도와 준 사람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 자신들을 괴롭히고 해친 사람들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도와준 사람들까지 철저히 찾아내어 기억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자연히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의 나무가 어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엄청난 유대인을 아우슈비츠에서 건져낸 그 사람의 나무가 없을 리 없기 때문이다. 조 목사님은 우리에게 쉰들러 나무를 찾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하셨다. 상에 눈이 어두운(?) 우리 일행은 각자 쉰들러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좀 특별한 장소에 심기었거나 더 큰 나무, 혹은 수종(樹種)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특별한 나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벗고 안경을 끼고 살펴보지만 그런 나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 때 갑자기 아름다운교회 차영신 사모님이 소리를 치셨다. "목사님 여기 있어요. 오스카 쉰들러, 독일사람, 맞지요?" 우리 일행은 그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잘못 생각했다. 특별한 장소에 심긴 것도 아니고 특별한 나무도 아니었다. 역시 카롭나무 한 그루가 다른 나무들과 함께 심겨 있었고 그 밑에는 분명히 '독일, 오스카 쉰들러'라고 쓰여져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그의 명패 앞에는 작은 돌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쉰들러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사람들이 훗날 쉰들러의 무덤을 찾아와 그의 묘비 위에 돌을 하나씩 올려 놓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났다. 우리는 대개 꽃을 꽂아 놓는데 이들은 왜 돌을 올려 놓을까? 아마 꽃이 처음에는 보기 좋지만 곧 시들고 말기 때문일까?

우리는 야외에 전시된 작은 보트 한 개를 보았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작은 보트인데 이 보트가 유대인 7,200명의 생명을 구출한 배라고 한다. 그들은 이런 배 한 척까지도 어떻게 찾아냈는지 이곳에 전시를 하고 있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정면을 가득 채운 조각작품이 있었다. 이스라엘 최대의 조각가 '나프달리 베셈'의 작품으로 흑색 벽면에 부조(浮彫)된 초현실주의적 상징물이다. 머리가 잘려나간 생선, 연기 나는 굴뚝, 촛불로 자신의 가슴을 태우는 여인, 하늘을 향한 계단, 날개 달린 배…. 이 모든 것은 상상을 초월한 엄청난 비극과 그 속에서 이루어진 기적적인 소생을 표현하려 한 것이리라. 벽면 한쪽에는 이스라엘 독립의 상징인 용맹스런 사자의 모습이 있지만 그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암흑의 역사를 표현하려고 했는지 기념관의 전시실은 모두 검정색이다. 그래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도 흑백영화로 처리했는가 보다. 수난관 입구에는 유럽의 지도가 그려져 있고 각 나라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의 숫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독일을 비롯해서 공산국가였던 동구라파 나라들에서 유대인들이 대량 학살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현황판에 나타난 숫자를 대충 훑어 보았다. 독일에서 504,000명, 헝가리에서 445,000명, 체코에서 357,000명, 폴란드에서는 무려 3,300,000명의 희생자를 냈다. 반면에 스웨덴(7,000명)이나 덴마크(7,500명), 노르웨이(17,000명) 등 개신교 지역에서는 희생당한 숫자가 아주 적었다. 유대인들이 개신교로 개종한 경우는 대부분 이 당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의 생명을 구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시된 사진, 문서, 서적, 실물 등을 보면서 조 목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던 일행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과 탄식의 소리를 낸다. 한 마디로 기가 막히다면 올바른 표현일까? 끌려가는 수많은 유대인들, 그들을 향해 총을 겨눈 독일 나치들,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 그 참혹한 장면을 차마 설명할 수 없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굶어서 뼈만 앙상하게 죽어 있는 장면, 유대 여성들이 머리를 깎인 후 옷을 벗긴 채 나체로 독일군들 앞에 끌려가 희롱을 당한 후 뒤에서 총을 쏘아 죽이는 장면, 살아있는 사람을 마취도 하지 않고 살을 찌르고 배를 가르는 장면….

첫 번째 전시실은 1933년 히틀러의 본격화 유대인 박해의 모습을 보여 준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박해하기 위하여 언론을 통하여 교묘히 유대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신문에는 인자한 가면을 쓴 음흉한 유대인을 그린 만화가 실려 있다.

결국 모든 유대인들은 직장, 학교, 공직 등 모든 곳에서 추방당했다. 이 때 아인슈타인은 미국으로, 프로이드는 영국으로 피신했고, 약 20만 명의 유대인들이 나치를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유대인의 재산은 몰수되고, 가슴에는 '다윗의 별'을 달아야 했고, 제한 거주지역이나 강제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이때 많은 유대인은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쓰러져 죽어갔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의 박해의 서곡에 불과하다.

'1941'이라 명명된 방은 우선 느낌부터가 스산하다. 강제수용소 안 가스실에서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었고, 시신을 태우는 화장터 굴뚝에서는 이로부터 4년 동안 검은 연기를 쉬지 않고 뿜어냈다. '이름의 방'에는 학살된 희생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 방은 어떤 폭탄에도 파괴되지 않도록 특수 설계했고, 모든 명단이 전산화되어 있어 누구에게나 자료가 공개된다.

기념관 밖에는 '기억의 장막(Tent of Remembrance)이 있다. 아무 장식도 없는 정방형 건물 바닥에는 유대인들이 희생된 22개의 강제수용소 이름들이 히브리어와 로마 글자로 새겨져 있다. 아우슈비츠, 부헬발트, 트레블렌카…,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이다.

'야누스 코르자크 정원'에 이르면 한 어른이 겁에 질린 아이들을 팔로 감싸고 있는 조각이 세워져 있다. 폴란드의 작은 마을 학교에 유대인 학생들을 잡아가기 위해 독일 군인들이 들이닥쳤을 때 겁에 질린 어린이들이 코르자크 선생님의 품에 파고들었다. 코르자크 선생님은 겁에 질려 무서워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트럭에 같이 올라탔다. 선생님은 그 차가 어디로 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트레블렌카 강제수용소 가스실에서 선생님은 이 아이들과 함께 희생되었다. 이 정원과 조각은 그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야누스 코르자크가 유명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학생들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유명한

의사요, 교육자요, 박애주의자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그러한 인물로서 자신이 설립한 고아원의 아이들과 함께 나치 수용소에서 죽었기 때문에 더 유명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흔히 그가 폴란드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실상은 폴란드 시민권을 얻은 유대인이란 사실이다. 우리는 막연히 모든(?) 유대인이 나치 독일에 의해 죽음의 수용소에 갇히고 가스실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지만, 각 나라마다 상황이 달랐던 것 같다. 물론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 살던 유대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폴란드나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독일이 아닌 다른 나라(비록 독일군에게 점령당하긴 했지만)에 살았던 유대인들의 경우는 이미 제1차 세계 대전 이전에 시민권을 획득하여 그 나라의 시민으로 대우받던 사람들도 꽤 있었고 야누스 코르자크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스라엘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야누스 코르자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이것을 그대로 옮겨 본다. 괄호 안에 있는 부분은 덧붙인 글이다.

"야누스 코르자크, 그는 1879년 폴란드의 부유한 유대인 가족에게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하여 유명한 의사가 되었다. 불우한 환자들에게는 치료비를 받았지만 가난한 환자가 왔을 때는 치료비를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약이나 먹을 것을 살 수 있도록 돈을 주었다.

그는 바르샤바에 있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그는 부모가 없거나 좀 더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유대인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을 세우고 아이들의 교육에 전념했다(단순한 고아원이라기보다는 학교의 기능도 있었던 모양이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야누스 코르자크는 이스라엘을 방문하고 그 곳에서의 키부츠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이민을 와서 교사가 되기를 원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꿈을 이룰 수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그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고아원으로 돌아와 그 곳에서 일했는데 그 고아원은 유대인 아이들만 모아 놓은 곳이었다.

드디어 전 유럽에서 유대인을 없애버리라는 히틀러의 명령이 하달되고(대략 1941년 말) 독일군들이 폴란드를 중심으로 동유럽 곳곳에 만들어 놓은 수용소로 유대인들을 모아서 가스로 처형하는 것이 본격화되던 1942년, 코르자크의 고아원에도 모든 유대인 아이들을 트럭에 태워 수용소로 옮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나 코르자크는 폴란드 시민이고 의사요 교육자로 이미 저명인사였으므로 죽음의 수용소가 코르자크 본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서 군인 트럭을 타고 모두 소풍을 가게 되었다고 안심을 시킨 후에 자신도 함께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의 수용소 트레블렌카(폴란드에 있던 가스 처형장)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르며 갔다." (김소연 역)

코르자크의 순교자적인 죽음만이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말했다. 무엇보다도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그의 훌륭한 교육 철학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가 남긴 글을 한편 소개한다. 역시 괄호 안에 있는 글은 덧붙인 설명이다.

"아이들도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존중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착한 아이라서 존중받을 경우에는 그가 자라서 먼 훗날 (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고, 비록 나쁜 아이일지라도 존중받는다면 그는 더이상 나빠지지 않아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이렇게 말하는 교육자들이 있는데) '나는 아이들에 대해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아이들에 대한 모든 것을 안다' 교육자들에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금물이다.

아이들에 관한 책을 한 번, 두 번, 세 번 … 열 번까지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이들에 관해서 많이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넓고 큰 우주와도 같기 때문이다. 한 아이는 하나의 큰 세상을 만들고, 두 아이는 세 개의 커다란 세상을 만든다. 아이들 둘이 각각 하나씩 만드는 세상 둘, 그리고 둘이 함께 만들어 내는 제3의 또 다른 세상.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 셋이 모이면 일곱 개의 세상을 만들어 낸다(아이들 셋이 각각 하나씩, 둘씩 짝지어 만드는 세상 세 개, 셋이 한데 모여 만드는 세상 한 개, 이 모두 합쳐 일곱 개).

아이들 그 모든 세계에는 (나름대로의) 기쁨과 슬픔, 친구와 가족, 놀이와 작은 전쟁이 있다. 이제 만약 열 명 내지 이십 명의 아이가 있다면 그들이 함께 만들어 내는 세상은 엄청나게 많아질 것이다.

- 야누스 코르자크의 '아이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나' 중에서(김소연 역)

전시관의 한쪽에는 Children,s Memorial이란 곳이 있다. 이곳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한 부모가 학살당한 아이를 위하여 사비를 들여 세운 기념관이라고 한다. 지하에 세워진 기념관 입구에 들어서니 서너살 되어 보이는 한 아이의 초상이 조각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것 같고 다시 보면 잔뜩 겁에 질린 아이의 모습 같았다. 내부 전시실은 천장과 사면이 모두 거울로 장식되어 있고 중앙에는 오직 한 개의 촛불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촛불은 어두운 방에서 거울에 반사되어 수천 수만 개의 빛을 비추고 있어 마치 별들이 반짝이는 우주의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무거운 음악과 함께 독일 나치에게 학살당한 150만 명의 어린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고 있었다. 어린이들의 전시관을 빠져 나왔지만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잊었다.

이 야드 바셈 학살의 기념관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초 중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라고 한다. 이들이 이 학살 기념관을 나올 때는 눈빛이 달라진다고 한다. '과거를 망각하면 잘못된 과거는 반복된다'라는 명언이 있다. 야드 바셈은 이 지상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전시관 출구에 있는 비석에는 전 세계 유대인들에게 상기시킬 만한 명구가 있다.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않는다."

⑥이스라엘 박물관 - 책의 전당

야드 바셈을 나온 우리는 감격을 간직한 채 이스라엘 박물관으로 향했다. 짧은 일정에 이스라엘 박물관의 모든 전시실을 다 볼 수는 없는 일이고 우리의 관심사인 '책의 전당'(The Shrine of the Book)만 들어가기로 했다. 책의 전당에는 주전 100년에서부터 주후 73년 사이의 유물들, 특히 유대 광야에서 발견된 사해 사본들이 전시되어 있고, 바르 코크바의 주도로 유대인들이 로마에 대항해서 두 번째 반란을 일으켰던 시기(주후 132-135년)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우선 책의 전당 외형은 마치 항아리의 뚜껑을 엎어 놓은 형상이었다. 이것은 시내사본들이 담겨 있었던 항아리의 뚜껑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실내에 적당한 습도를 맞추어 주기 위해 지붕 주위에 분수가 설치되어 있어 계속 물을 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진품들은 모두 지하에 있는 자료 보관실에 소중히 보관되어 있어 일반인들에게는 열람이 금지되어 있고 전시실에 전시된 것은 대부분 진품이 아니라 똑같은 모양의 모조품이라고 했다. 또한 혹시 미사일의 공격을 받으면 책의 전당 건물이 땅 속으로 가라앉아 유물들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특수 설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이 유물을 얼마나 소중히 다루고 있는지 보여 주는 것이다. 심지어 전시실 내에서는 사진이나 비디오 촬영을 금했다. 이것은 다른 나라처럼 자료의 유출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후래쉬에서 반사되는 불빛에 의해 자료가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사해 사본 중에서 성서와 관련있는 것은 190여 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1947년 양을 잃어버린 목동이 자신의 양을 찾아다니다가 쿰란의 한 동굴에서 7개의 두루마리를 발견한 것이 그 계기이다. 이때 발견된 7개의 두루마리는 베들레헴에 있는 아랍인 고서 상인에게 팔렸고, 이 소식을 들은 히브리 대학교 고고학 교수 수케닉(E. L. Sukenik)이 이 7개의 사본 중에서 3개를 사들였는데, 이때는 아직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하기 전이라, 아랍 상인의 손에서 이 사본들을 사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이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하고 아랍인들과 전쟁을 해야 하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나머지 네 개의 사본들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수케닉 교수의 아들인 야딘(Yigael Yadin -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할 당시 참모총장이었으며, 국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고 후에 히브리대학 고고학 교수를 지냄) 교수는 고트만(Mr. D. S. Gottesman)이라는 사람의 재정적인 후원으로 미국인들로부터 나머지 네 개의 사본들을 사들여 지금과 같이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게 된 것이다.

사해 사본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1947년 한 목동이 7개의 사본들을 발견한 이래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져, 쿰란 주변의 동굴 11개, 와디 무바鱻, 심지어는 마사다에서 수백 개의 사본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쿰란 지역에서 발견된 사본조각들이 제일 양이 많아 대략 800여 개에 이른다. 이 800개 모두가 성서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고, 자신들의 생활 규칙을 기록한 것에서, 성서 주석까지(특히 하박국 주석이 유명한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음) 아주 다양한 내용의 문서들이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서 사본들인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서와 관련 있는 것은 약 190여 개의 사본 조각들이다. 하지만 이들 조각들은 대부분 심하게 파손되어 있어서 성서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아볼 수 있는데 사해 사본 조각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성서의 내용은 우리 성서의 10분의 1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더서와 느헤미야서를 제외하고는 단 한 글자, 단 한 구절일지언정 성경 37권이 다 발견되었고, 쿰란 제1동굴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두루마리(박물관 전시)는 이사야서 전체(1장-66장)를 거의 보존하고 있다.

사본들을 기록한 재료는 대부분 양피지이지만 의외로 파피루스에 기록한 것들도 꽤 있다. 사본들에 사용된 글자체로는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히브리어 성경의 글자체인 '정방형 문체'도 있고, 히브리어이기는 하나 현재의 글자체와는 아주 모양이 다른 '고문자체(Paleography)'도 있다. 아울러 사본들이 반드시 히브리어로만 씌어진 것은 아니고 헬라어로 씌어진 것도 있는가 하면 아람어로 씌어진 것들도 있다.

사본들이 씌어진 시기를 판별하는 방법은 주로 글자의 모양을 통해서(고문자체 연구법) 하기도 하지만 방사선 동위 원소 측정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방법들을 통해, 위에서 언급한 이사야서의 경우 주전 202년에서 107년 사이(방사선 측정법), 제4동굴에서 발견된 다니엘서의 경우 주전 125년에서 100년 씌어진 것으로 추정한다(고문자체 연구법).

⑦주기도문 교회와 예수 승천당

박물관을 나선 우리 일행은 부지런히 주기도문 교회와 예수 승천당이 있다는 감람산으로 향했다. 이미 오후 5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해가 지려면 아직도 멀었는데 오후 5시만 되면 대부분의 관공서나 관광지가 문을 닫기 때문이다. 어제도 이 시간에 쫓겨 마사다를 못 올라가지 않았는가?

감람산은 기드론 골짜기 건너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에는 이 산 전체가 감람나무 숲으로 덮여 있다 하여 감람산으로 불렸다고 하는데 지금의 감람산은 감람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자주 올라가셔서 기도하신 산이기도 하고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잡히신 산이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부활한 후 승천하신 곳이다. 이 산은 예수님의 생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이곳에는 많은 교회가 있고,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해발 810m의 감람산은 고대부터 감람나무가 무성하였다. 감람나무의 열매 올리브는 진한 연두색이며, 대추만하다. 이 열매로 만든 기름이 올리브유이다. 먹기도 하고 바르기도 하며 이스라엘의 왕들이 왕위에 오를 때 머리에 기름을 붓기도 했다. 또한 향료를 섞어 귀한 향유를 만들기도 한다. 여러 가지 용도로 쓰이기 때문에 풍요롭고 기름진 땅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긴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후, 성지 이스라엘에 있는 3개의 동굴 위에 각각 역사적인 교회를 짓게 하였다. 첫째는 베들레헴에 있는 외양간에 세운 '예수 탄생교회', 둘째는 예수님께서 묻혔던 동굴 무덤 위에 세운 '성묘교회', 셋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쳤던 감람산 동굴 위에 세운 '주기도문 교회'이다. 폭 30m, 길이 65m나 되는 큰 교회로 지어졌지만 다른 역사적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파괴되고 재건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 서기 600년대에 파괴되었다가 12세기 십자군 때 재건되었고, 그 후 다시 파괴되었다. 현재 모습의 교회는 1870년대 프랑스 왕족과 결혼했던 한 여인의 집념어린 노력의 결과로 다시 세워진 것이다. 교회가 세워진 곳에 있는 동굴은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가르친 곳이라는 전승이 있어 교회 이름도 그렇게 불려진 것이다. 교회 안에 들어서면 80개국의 각종 언어로 쓰여진 주기도문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는데 한국의 가톨릭 부산교구에서 보낸 한글 주기도문도 있다고 한다.

우리는 주기도문 교회에 도착하였다. 오후 5시가 막 지난 시간이라서 교회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우리는 서운한 마음을 품고 바로 옆에 있는 팔각형 담 안으로 둘러싸인 건물로 들어갔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장소를 찾아간 것이다. 다행히 이곳을 관리하는 분은 열쇠를 갖고 와 문을 열어 주었다. 물론 우리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그림 엽서와 기념품을 판매하기 위한 장삿속이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입구를 통해 구내로 들어서면 중앙에 8각형으로 된 작은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 작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텅 빈 바닥에 자연석 일부가 노출되어 있었다. 유리를 덮어서 보호하고 있는 이 바위가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밟으셨던 바위라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 바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흡사 사람의 발자국 같이 움푹 패였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남기신 족적이다.

이 교회는 이 바위를 중심으로 4세기경에 세워졌다. 그 후 이슬람교도들은 이것을 파괴했고, 그 후 12세기에 십자군은 다시 이곳에 거대한 예수 승천교회와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다시 1187년에 이슬람교도들은 교회와 수도원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회 안에 있던 8각형의 소형건물만은 부수지 않고 천장이 없던 구조물에 둥근 돔을 씌우게 하여 예수승천의 상징을 없애버리려 했던 것이다.

⑧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우리 일행은 오늘 일정의 마지막 순서로 조용식 목사님과 가이드 김한성 전도사님이 박사과정을 밟고 계신 히브리대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 1,500명의 교수진과 20,000명의 학생을 보유하고 있는 히브리대학교(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는 중동지역에서 첫째 가는 대학으로서 학교의 규모뿐 아니라 학술 수준이 매우 높아 세계적인 명문으로 꼽히고 있다.

먼저 현관에 들어서니 한 벽 가득히 채운 사람들의 명패가 눈길을 끈다. 이 대학의 이사들과 교수진인가 했더니 학교를 위해 거액의 기부금을 헌금을 한 사람들의 명패라고 했다. 조금 전 야드 바셈에서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라는 그들의 외침을 생생히 들어온 터인지라 학교를 위해 거액을 내놓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위해 현관에 새겨놓은 그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와 같은 히브리 사람들의 정신은 곧 그들의 사상적 기초가 되는 성서의 정신이며, 하나님의 정신이 아닐까? 정말로 느헤미야서를 보면 성벽 건축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사람들의 명단을 일일이 기록해 놓아 기억하게 하며, 반대로 성벽 건축에 방해한 사람들의 이름과 못된 행적도 일일이 남겨 놓았다. 신약 요한삼서에도 역시 으뜸되기만 좋아하고 대접할 줄 모르는 디오드레베와 그와는 반대로 모든 사람들이 증거하고 인정한 데메드리오의 이름을 남겨 두어 훗날까지 분명히 기억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어느 독지가가 학교에 재산을 기부하면서 '무슨 건물을 짓는데 써 달라든지, 무슨 연구에 써 달라든지, 아니면 잔디를 가꾸는데 써 달라'고 하면 학교에서는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기부한 사람이 지정한 곳에만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는 조 목사님의 안내로 학교 안의 이곳 저곳을 두루 살펴보았다. 마침 시험기간이라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도서관에 들어가 보는 것은 자제하기로 하고 조 목사님이 공부하시는 강의실 한 칸에 모여 학교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다.

⸡학교소개

1918년 6월, 시오니즘 운동의 지도자이자 이스라엘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하임 와이즈만(Chaim Weizmann, 1874-1952) 박사에 의해 예루살렘의 스코푸스 산(Mount Scopus)에 세워졌다. 그러나 캠퍼스가 공식적으로 문을 연 것은 지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마틴 부버(Martin Buber), 알버트 아인쉬타인(Albert Einstein) 등을 중심으로 한 운영 팀이 갖추어진 1925년으로서, 이때 히브리 대학교의 세 가지 기본 목표가 수립된다.

1. 국제적인 명성을 누리는 고등 교육 기관.

2. 유대인 국가를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는 대학.

3. 유대인들을 위한 대학

현재 히브리 대학교는 초창기 설립자들의 예언(?)대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가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우선 1947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하게 되면서 이스라엘과 요르단의 국경선은 현재처럼 사해 바다를 중심으로 그어진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그어졌기 때문에 히브리 대학교가 위치한 스코푸스 산은 요르단 영토 한가운데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히브리 대학교는 어쩔 수없이 캠퍼스를 이전하게 되는데, 1955년까지는 예루살렘 시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건물들에서 강의 하다가, 1955년 현재의 이스라엘 박물관 옆에 있는 '기바트 람' 지역에 새로운 캠퍼스를 조성하고 얼마 후에는 '에인 케렘'지역에 의학 캠퍼스를 조성하게 된다. 그러나 1967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의 아랍 국가들과 치른 6일 전쟁의 승리로 이스라엘은 사해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게 되고 스코푸스 산에 있던 캠퍼스(오늘 방문했던 캠퍼스)를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네 개의 캠퍼스에 2만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데 이 중에 약 3천명 정도가 외국에서 온 학생들이다. 외국 학생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이미 학교 설립 초기부터 시작되었는데, 1955년부터는 외국 학생들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히브리 대학교는 인종, 성별, 종교, 정치, 국적, 사회적 지위, 재산, 출생 성분 및 어떤 이유로도 차별함 없이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다.

⸢학부과정(B.A. 과정)

가. 수업연한 : 대개의 학과는 3년에 마치도록 되어 있다. 단, 법과대학과 약학대학은 3년 반, 간호학과는 4년을 하도록 되어 있음.

나. 입학자격 : 이스라엘 학생의 경우는 NITE 국가시험을 치르거나 미국의 입학 시험인 SAT를 치러야 한다. 외국 학생이 학부에 입학을 할 경우는 이스라엘과 동등한 수준의 고등학교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마쳤거나, 대학을 1년 이상 다닌 경우, 또는 이스라엘의 대학에서 1년짜리 대학 예비 과정을 이수한 경우에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단 의과대학은 오직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경우에만 허락을 받을 수 있다.

⸣석사과정(M.A. 과정)

가. 과정이수 : 대개 2년에 마치도록 되어있다.

나. 입학조건 : 학부의 성적이 상위 1/3 이상에 들어야 함. 외국 학생의 경우는 미국 학점 제도를 기준으로 최소한 B학점 이상이어야 함. 또한 외국 학생의 경우 일정한 수준의 히브리어 실력을 갖추어야 하는데 히브리 대학에서 실시하는 언어 코스(총 6단계, 대략 2년 정도 소요)에서 대개 4-5단계 이상이어야 입학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박사과정

성서학의 경우 Ph. D학위를 취득하게 되는데, 외국 학생의 경우 해당 국가에서 인정하는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자신의 전공에 맞는 지도 교수를 찾은 후에 그 지도 교수의 허락을 받으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입학 허가를 받게 된다. 이후 항상 자신의 지도 교수와 상의하여 논문을 완성하게 되는데 외국 학생들의 경우는 대개 1-2년 정도 자신의 나라에서 배우지 않은 과목들을 이수한 후에 본격적인 연구를 하게 된다.

⸥한국 유학생 현황

성서학 관련 전공 학생들의 경우, 박사과정에 10여 명, 석사 과정에 5명 정도 있다(다른 전공까지 합치면 더 많음). 출신 학교별로는 장신대, 감신대, 서울신대, 부산 고신대, 연세대, 건국대, 외국어대 등이 있고, 성서학이라는 전공의 특성상 일반대학 출신자 몇몇을 제외하고는 거의 목사나 전도사 칭호를 갖고 있다.

⸦기타

현재 히브리 대학교에서 성서학 관련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 사람은 3명인데 현재 대한성서공회 부총무인 민영진 박사(연세대 신학과), 장로회신학대학 구약학 교수인 강사문 교수(연세대 신학과), 전주대학교 교수인 김경래 교수(총신대?) 등이다. 비록 성서학 전공은 아니지만 수메르어 연구로 학위를 취득한 조철수 박사(연세대 신학과)의 경우는 작년까지 히브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지금은 귀국.

설명을 마친 조 목사님은 창문을 열면서 이곳으로 넘어가자고 한다. 점잖은 목사님들이 창문으로 넘어가시다니, 이게 무슨 영광의 탈출(엑소더스)인가? 아니면 공부를 마치고 등록금을 내지 않으려고 뒷문으로 도망치는 학생들인가? 유명한 대학이라서 공부를 마치고 나가는 방법도 희한하다고 영문도 모른 채 서로 웃으며 창문을 넘었다.

거기는 건물의 옥상이었다. 강의실에서 옥상을 올라오려면 한참 돌아와야 하는데 시간을 벌기 위해 용감히 창문을 넘게 했다는 말에 우리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쩌면 이번 성지순례 길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 같다. 대학 옥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예루살렘 시내의 모습은 또 새로운 모습을 준다.

우리는 다시 돌아내려 파란 잔디가 자라고 있는 정원을 거닐었다. 항상 물을 뿌려 주어 촉촉이 젖어 있는 잔디가 얼마나 푸르고 싱싱한지 밟기가 미안했다. 이런 우리의 마음을 헤아렸는지 조 목사님은 "안심하십시오. 잔디는 밟아 주어야 합니다" 하고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 잔디가 곱게 심겨진 곳에는 어디나 팻말이 붙어 있다. "출입금지" "밟지 마시오" 아니면 좀 애교 있게 "밟으면 아파요" 이렇게 평생 세뇌를 받고 자란 터라 잔디를 밟는다는 것이 왠지 죄송스러웠다. 혹시 아프다고 우는 것은 아닐까? 밖으로 나오며 자세히 보니 건물마다 이름이 새겨 있다. 그 건물을 짓도록 재산을 헌납한 사람들의 이름이란다. 새삼 이름 그리고 기억의 중요성을 생각해 본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⑨목자 잃은 어린 양

히브리대학 방문을 마치고 저녁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어 숙소 근처에 있는 화란인 정착촌을 찾아갔다. 화란에서나 볼 수 있는 풍차가 하나 있어서 찾기 쉬운 지역이다. 우리는 잠깐 내려 풍차 옆에서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행 중 두어 명이 보이지 않았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김한성 전도사님께서 찾아 보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얼마 후 낙오된 사람들은 나타났는데 정작 찾으러 나간 김 전도사님이 보이지 않는다. 날은 점점 어두워 갔다. 호텔에 예약된 식사시간은 지났는데 가이드는 나타나지 않고…. 몇 몇 목사님들과 우리의 인솔자인 이 대리님은 초조해 하면서 그냥 먼저 가자고 한다. 김 전도사님은 이곳 지리를 잘 아실 테니 우리가 먼저 가도 뒤따라 올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조용식 목사님의 생각은 달랐다. 김 전도사님은 눈이 나쁘고 그나마 안경까지 없어 날이 어두우면 고생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조금 더 기다리기로 하고 이번엔 조용식 목사님이 김 전도사님을 찾으러 나섰다. 그 동안 우리는 한가하게 꽃밭에서 사진을 찍다가 날아 어두워지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집을 떠난 지 겨우 나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퍽 오래된 것 같다. 그 동안 얼마나 정신없이 뛰어다녔는지 이렇게 서로 둘러앉아 담소해 본 일이 없었다. 조 목사님과 몇몇 사람들의 애타는 심정도 아랑곳 없이 우리는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을 하며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얼마나 지났는지 밤이 제법 어두워졌을 때 조 목사님과 김 전도사님이 나타나셨다. 걱정 반, 반가움 반, 우리는 어찌된 것이냐고 물었다. 차에 오르시던 조 목사님이 이 대리님을 향해 버럭 화를 낸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이 대리 역시 혈기 있는 스물 일곱의 젊은 나이가 아닌가?

이유를 알고 보니 일행을 찾기 위해 철망이 쳐 있는 울타리를 겨우 넘어 들어갔는데 이곳저곳 찾아다니다가 그만 날이 저문 것이다. 눈이 나빠 앞이 잘 안 보이는 김 전도사님은 빠져 나올 길을 찾지 못하고 얼마나 당황하며 헤맸는지 모른단다. 마침 늦게서야 조 목사님을 만나 겨우 철망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단다. 그러니 만약 몇몇 사람 말대로 그냥 떠났다면 김 전도사님은 밤새 얼마나 고생을 하였겠느냐는 것이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목사님들은 이 대리님과 조 목사님을 앞으로 불러 세워 서로 손을 잡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불편한 마음은 가라앉게 되었다. 물론 마음 속의 불편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을 것이지만 다음날, 이들은 서로 환한 얼굴로 화해하고 인사를 하여 우리의 마음도 흐뭇했다.

이런 해프닝이 있고 난 후 우리는 김 전도사님의 시력이 나쁘다는 것과 안경이 부서졌는데 다시 맞출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김 전도사님의 안경을 맞추어 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놓고 함께 기도하기로 하였다. 우리의 기도는 쉽게 응답되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 중 한 분인 은총교회 정종진 목사님 부부가 여행경비를 아끼고 300달러를 안경 값으로 선뜻 내놓기로 하신 것이다. 아무튼 김 전도사님은 철망 안에서 큰 고생을 하셨지만 하나님은 고생을 복으로 갚아 주셨다.

⑩사모님들의 야간 외출

오늘은 예루살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불과 2박 3일의 짧은 여정이기에 마지막 날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아무튼 내일은 갈릴리로 떠날 예정이므로 조 목사님 사모님과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다. 목사님들은 느끼지 못했지만 사모님들은 아무래도 이 밤을 그냥 보낼 수 없나 보다.

이런 마음을 가장 먼저 헤아린 사람은 역시 눈치 빠른 조용식 목사님이다. 조 목사님 부부는 저녁 식사를 마친 사모님들에게 예루살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시겠다면서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조 목사님 사모님과 이렇게 만났다 헤어져야 하나 섭섭해 하던 터인지라 모두들 피곤한 것도 잊고 반갑게 따라나선다. 물론 피곤하여 도저히 따라나서지 못한 몇몇 분들도 있지만….

사모님들끼리 다녀온 일이라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겠는가? 그러나 밤 12시가 넘어서 돌아온 아내는 깜빡 잠이든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 재미있었던 야간외출을 이야기해 주지 않고는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모양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졸린 눈을 지그시 뜨고 들은 이야기다. 그러니 얼마나 바르게 전달이 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모님들은 예루살렘 지리가 익숙지 못하니 어디인지도 모르고 조 목사님 부부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나섰단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그들이 찾아간 곳은 밝고 생기가 넘치는 젊음의 거리였다. 마치 우리 나라의 대학로 같았단다. 나중에 조 목사님을 만나면 거기가 어디였는지 꼭 물어 보리라.

조 목사님은 이스라엘의 별미인 전병을 사 주셨다. 우리 나라의 전(파전, 녹두전…)같이 생긴 전병에 이것저것 속을 담아 둘둘 말아 먹었다는데 도대체 그것의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다 먹어버려서 이름도 모른단다(조 목사님, 다음에는 기자를 꼭 대동하셔야지요).

2차로 눈에 익은 맥도널드에 들렀다. 식성대로 음료수, 쉐이크, 아이스크림을 먹은 것까지는 기분이 좋았단다. 보지 않아도 뻔한 것-. 자신들의 나이도 잊고 옛날 소녀로 돌아갔을 것이다.

열두 시가 다 되어서 일행은 호텔로 돌아왔다. 그래도 호텔을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조 목사님께서 호텔 앞까지 바래다 주었기 때문이다. 조 목사님 부부는 사모님들을 호텔 근처까지 모시고 온 후 버스정류장에서 헤어졌다.

사건은 여기서 발생하였다. 사모님 일행이 호텔에 도착해 보니 호텔 문이 잠긴 것이다. 설마 호텔 문을 잠글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당황한 나머지 조 목사님이 계신 정류장으로 달려가 보니 목사님 마저 이미 버스를 타고 떠나셨다.

다시 호텔 앞으로 돌아온 일행은 난감했다. 문은 잠겼지, 말은 안 통하지…. 설마 호텔 문을 잠글 줄 몰랐던 사모님들은 어쩔 줄을 몰랐단다. 이쪽 저쪽, 문이 있는 곳마다 돌아다녀 보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열릴 줄 몰랐다. 깍두기로 따라오셨던 류 목사님은 영어를 잘 하시니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다. 여기 저기 뛰어다니던 류 목사님은 어디서 호텔 식당 종업원 두 분을 모시고 왔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퇴근하던 중 류 목사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사람들을 사모님 일행을 모시고 다시 정문 쪽으로 와서 조그맣게 생긴 초인종 같은 것을 눌러 주었다. 그랬더니 굳게 닫힌 문이 스르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 여기 이런 게 있었는데….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렇게 해서 한 밤의 해프닝은 끝이 났고 보고를 마친 아내는 스르르 잠이 든다. 행복하게….

(3)예루살렘에서의 갈릴리로

아침 7시,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짐을 꾸려 버스에 올라 탔다. 오늘 일정은 겟세마네 동산에 있는 만국교회를 잠깐 들러보고 여리고를 경유하여 갈릴리로 향하게 된다.

①만국교회

감람산은 우리 나라의 남산이나 북한산처럼 우뚝 선 봉우리가 아니다. 해발 810m라고는 하지만 예루살렘이 해발 750m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냥 작은 언덕처럼 보일 뿐이다. 감람원은 감람산 아래쪽 기드론 골짜기 부근에 자리잡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면 항상 들려 기도하시며 묵상하시던 곳이다.

아침 8시, 비교적 이른 시간이지만 벌써 여러 대의 버스가 와 있었고 많은 순례객들이 감람원으로 종종걸음을 친다. 우리도 버스에서 내려 감람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정문에 들어서니 잘 가꾸어진 정원에는 수령(樹齡) 2,000년이 넘었다는 감람나무 8그루가 있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어른 서너 아름은 족히 될만한 고목들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나무의 썩은 둥지에서 다시 새 가지가 나오고 있었는데 가지는 무성하고 잎도 싱싱해 보였다. 이러한 감람나무의 모습이 이스라엘 구원에 대한 약속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지금도 이 나무에서 감람열매를 수확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감람나무가 오래될수록 그 열매는 기름이 더욱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성도는 신앙의 경륜이 길고 직분을 맡은 지 오래될수록 더 충성하는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감람열매는 진한 연두색으로 대추와 비슷하게 생겼다. 유대인의 식탁에 오르는 주식 중의 하나이며 이 열매의 기름이 올리브유이다. 올리브유는 식용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몸이나 머리에 바르기도하고, 향료를 섞으면 향유가 되기도하여 유대인들에게는 사랑받는 기름이다. 감람원과 경계를 이루면서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겟세마네(Gethsemane)의 뜻은 '기름을 짜다'라는 말로 옛날에는 이곳에 기름을 짜는 방앗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날, 마가 다락방에서 성만찬을 베푸신 후 그날 밤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으로 오셨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기도하실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겟세마네 교회는 이처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신 후 제자들을 이끌고 예수님께서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며 고뇌의 기도를 드렸던 장소에 세워진 교회이다. 1924년에 여러 나라의 교회에서 모금한 헌금으로 건축했기에 만국교회라고 불리어진다. 이 장소에는 서기 300년대부터 교회가 있었지만 재건과 파괴가 순환되어 금세기 들어 이탈리아의 교회 건축가 바를루치(Barluzzi)에 의해 건축되었다.

교회에 상징적인 의미를 많이 강조하였다. 4개의 돌기둥이 전면을 바치고 있는데 돌기둥은 4복음서를 뜻하며 돌기둥 위에는 4복음서의 저자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석상이 있다. 교회 안은 의외로 어둡고 컴컴하며 천장에는 수많은 별들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겟세마네의 그 깊은 밤을 의미한다. 제단에 있는 전면의 벽은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성화로 채워져 있고, 제단 앞 큰 바위가 노출되어 있다. 이 바위를 가시로 만든 면류관 형상의 철책이 둘러싸고 있어 가시관을 쓴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고뇌에 찬 기도의 현장임을 상기시켜 준다. 제단 앞 바위를 중심으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다. 이 3개의 바위가 예수님께서 엎드려 세 번 기도했던 바위라고 한다.

②여리고로 내려가는 길

누가복음 10장의 예수님 비유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우리는 겟세마네 교회를 떠나 강도를 만난 사람이 갔던 그 길을 따라 여리고로 내려갔다.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계속 내려가는 길이다. 그도 그럴것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까지의 거리는 불과 32㎞에 불과한데 두 도시의 고도 차이는 1,010m나 된다. 예루살렘은 해발 750m의 언덕이고 여리고는 바다 표면보다 260m나 낮은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여리고까지 가는 내려가는 길은 석회암으로 된 험한 바위산과 풀 한 포기 찾아보기 힘든 민둥산 사이에 꼬불꼬불 길이 나 있다. 게다가 여리고에 이를 때까지 거의 마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 혼자 다니다가는 강도를 만나기 좋은 지형임에 틀림없다.

지금도 여리고로 내려가는 중간지점에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오래된 여관이 하나 있다. 문 앞에는 "Welcome to the Good Samaritan Inn" 이란 간판이 걸려 있지만 지금은 여관으로 쓰이지 않고 기념품 판매점으로 변하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거의 풀을 찾아보기 힘든 산에서 양과 염소들이 떼를 지어 돌아다니며 무엇을 뜯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한달 내내 비라고는 내리지 않는 건기라서 풀들이 다 말라 죽었다. 아침이 되면 이렇게 마른 풀에 이슬이 내리기 때문에 양들은 이슬에 젖은 마른 풀들을 뜯어 먹는다고 한다. 양들이 불쌍하다. 우리 나라에 산다면 얼마나 푸르고 싱싱한 풀들을 마음껏 뜯어먹을 수 있을까?

우리는 잠깐 베두인들이 사는 마을에 들러 사진을 찍기로 하였다. 마음씨 좋은 운전기사는 황야길을 계속 내려가다가 베두인의 천막이 나타나자 길 한쪽에 버스를 세웠다. 우리는 사탕과 초콜릿 등 아이들에게 줄 만한 것들을 주머니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내리는 것을 보고 베두인 꼬마들이 달려온다. 세수를 하지 않았는지(하긴 물이 귀한데 무슨 세수?) 누런 코를 흘리며 새까만 손을 내밀어 "마니, 마니" 하고 소리친다. 도대체 "마니"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할까? 일행은 미리 준비한 초콜렛, 과자와 사탕 등을 나누어 주었다. 이 아이들은 공부를 하지 않기 때문에 볼펜을 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어느 목사님이 줄 것이 없어 가지고 있던 색연필을 주었더니 무엇인지도 모르고 입으로 물어 뜯는다. 아마 먹을 만한 것인 줄 아나 보다. 우리가 어렸을 때 미군들을 보면 누런 코를 흘리면서 "쵸콜렛, 기브미" 하고 따라다닌 기억이 난다. 그들의 모습에 비친 우리의 모습도 마치 이와 같았으리라.

아이를 품에 안거나 등에 짊어진 아주머니들도 호기심 어린 모습으로 서성거린다. 우리는 베두인 천막을 배경삼아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마니, 마니" 애처럽게 외치는 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 버스에 올랐다.

우리는 계속 여리고를 향해 내려가다가 산 언덕 '와디켈트'라는 곳에 차를 세웠다. 깎아지를 듯한 절벽을 사이에 두고 흘러내린 깊은 골짜기는 유다광야의 황량함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와디켈트를 흐르는 인공수로를 조성해 놓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6세기말 키프로스 출신 수도자 조오지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성 조오지 수도원'이 절벽에 매달려 있듯이 서 있었다. 이 수도원에는 시내산으로 도주하던 엘리야가 머물렀다는 것과,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아버지 요아킴의 기도로 천사가 나타나 자기 아내가 마리아를 잉태했음을 알려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한다.

③여리고

와디켈트를 뒤로하고 얼마쯤 내려가니 신기루처럼 푸르른 녹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바로 높이 10m가 넘는 종려나무들이 가로수를 이루고 있는 종려의 성읍(신 34:3) 여리고이다. 여리고에는 매 분당 4,000ℓ가 넘는 물이 주야로 솟아 오르는 샘이 있는데 엘리사가 소금을 넣어 결실하는 물이 되게 하였다고 하여(왕하 2:19-22) '엘리사의 샘'이라고 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텔 에스 슐탄' 이라고 부르는 옛 여리고 발굴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점령한 첫 번째 성읍이 바로 이 여리고이다. 이때가 BC. 13세기, 지금부터 약 3,300년 전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리고는 6,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여리고에는 BC. 7,000년대에 이미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형성되었던 곳으로 고고학적으로 세계 최고(最古)의 성곽 도성이다.

이러한 역사적 가치 때문에 여리고에서는 많은 고고학자들의 연구와 발굴작업이 이루어졌는데 특히 1950년대 영국의 여성 고고학자 캐들린 케년(Kathleen Kenyon)은 이곳을 집중적으로 발굴, 9,000년에 이르는 장구한 여리고의 역사를 밝혀 주었다고 한다. 언덕으로부터 13m 아래까지 발굴된 현장에는 겹겹이 다른, 토사물의 계단이 무수한 역사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거기에는 옛 여리고의 견고한 성벽도 있었고 높이 8m나 되는 둥근 모양의 망대도 발굴되었는데 이 망대는 지금까지 알려진 인류 최초의 망대라고 한다.

여리고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은 예수님의 시험산이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하셨을 때 마귀가 나타나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시험한다. "마귀가 또 그를(예수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9) 하였다. 여기의 높은 산이 바로 이 시험산이며, 마귀가 보여 준 천하 만국은 비옥한 여리고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멀리 보이는 시험산의 중턱에는 그리스 정교회의 수도원이 마치 성터와 같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또한 예수의 시험을 따르고자 많은 은수자들이 수도생활을 하던 동굴들이 보였다. 안내를 맡은 김 전도사님의 말에 의하면 아직까지 성지를 순례한 팀 가운데 저 시험산에 올라간 팀은 없었다고 한다. 아마 마귀에게 시험당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인가?

여리고는 지형적으로 바다면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연중 기온의 변화가 거의 없고 항상 덥다. 게다가 엘리사의 샘이 있어 물이 풍부하고 토양까지 비옥해서 각종 과일의 산지로 유명하다. 우리가 여리고 발굴 현장을 돌아보고 내려오니 우리의 인솔자인 이상표 대리님이 사비를 털어 살구, 복숭아, 포도 등 과일을 한 바구니 사 왔다. 우리를 위해 수고하는 인솔자를 우리가 대접해야 하는데 한참 잘못됐다. 그러나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너무 너무 좋아 대접하고 싶어 그랬다는대야 할 말이 없다. 특히 퍼렇게 덜익은 듯하고 못생긴 포도의 맛이 어찌 단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④요단강

여리고를 떠난 우리 일행은 다시 버스를 타고 요단강을 항해 북으로 달렸다. 차창 밖에 보이는 경치는 엊그제 에일랏을 지나올 때 보았던 그 삭막하던 모습은 아니었다. 비록 건기라서 풀들이 말라 있기는 했지만 종려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잘 가꾸어진 밭에는 농작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갑자기 박춘식 목사님께서 "지금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고 있습니다" 하더니 "우리는 단 1초만에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하고 말한다.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던 우리는 어이없는 웃음을 웃고 말았다. 이게 그 요단강이라니…. 우리 동네에 흐르는 작은 시내만도 못하다. 창동과 상계동 사이를 흐르는 중량천은 '중량대강'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하겠다.

요단강은 성경에 여러 번 등장하면서 우리의 신앙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광야와 약속의 땅을 구분하는 중요한 경계선이며 가나안을 들어가는 관문이기도 하다. 찬송가 가사에도 요단강이 성도의 삶과 죽음 사이를 갈라 놓는 분기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강의 직선거리는 217㎞, 그러나 굴곡이 심한 사행천이어서 실제 길이는 약 400㎞나 된다. 이스라엘의 초대 국무총리였던 '데Ꞩ 벤 구리온'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크게 실망했던 것은 요단강을 맨 처음 보았을 때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구든지 성지순례 전에는 큰 기대를 가지고 성경에 소개된 요단강을 마음 속에 그려 보지만 실제로 요단강을 보는 순간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갈릴리 남쪽의 요단강 상류에 수문이 있어 수위를 조절하며, 또 요단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지류의 강들도 댐을 막아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지금은 보잘것없는 강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었을 당시에는 지금보다 수량(水量)이 풍부하고 큰 강이었을 것이다.

⑤갈릴리 호수

요단강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니 널따란 호수가 보인다. 누군가 "갈릴리 바다다" 하고 외치니 모두 탄성을 지른다. 여긴 가이드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갈릴리 호수임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잠깐 차에서 내려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정신없이 찍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세례 터가 있었다. 본래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신 곳은 이보다 훨씬 아래쪽인 여리고 근처이다.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요 1:28)에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고 예수님도 그 근처 어디에서 세례를 주셨기 때문이다(요 3:22의 유대 땅). 그러나 그곳은 수량(水量)도 풍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요르단 국경지대로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이곳에 세례 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날도 이곳 저곳에서 세례식이 행해지고 있었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감격스러운 듯 물 속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성지순례를 다녀오신 목사님들이 요단강 물을 병에 담아와 세례를 주었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나는 망설였다. 나도 물을 떠가고 싶은데 빈 병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들고 다니는 식수를 쏟아 버리고 이 병에 요단강 물을 담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세례 터에 도착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생각보다 물이 깨끗하지도 않았고 구태여 이 물을 한국까지 담아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아만 장군의 말이 생각났다. "다메섹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왕하 5:12).

우리는 버스를 타고 다시 갈릴리 호수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갔다. 갈릴리 호수는 남북의 길이가 21㎞, 동서의 폭(넓은 쪽)이 14㎞, 넓이는 약 170㎢가 된다. 호수 둘레는 약 50㎞다. 헐몬산에서 발원한 물이 북쪽에서 흘러들어 온 뒤 요단강을 통해 사해로 빠져 나간다.

갈릴리 호수 지역은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성장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말씀을 선포하면서 공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곳도 바로 이 지역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어부였다.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부르셨다.

갈릴리 주변 마을인, 가버나움, 벳새다, 거라사 등은 예수님께서 자주 들르시고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기도 하셨다. 이처럼 갈릴리 지역은 예수님의 생애와 활동에서 주된 무대였다.

우리는 티베리아스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였다. 오늘의 식사는 퍽 인상적이었다. 우선 조개모양을 한 바구니에는 우리 나라의 중국식 호떡 모양을 한 빵이 담겨 있었다. 다른 식당에서도 이 빵을 먹어 보았지만 따끈따끈하고 말랑말랑 쫄깃쫄깃한 빵을 반으로 자르고 그 속에 갖은 야채와 양념을 넣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주 메뉴는 그것이 아니었다. 호수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을 통째로 기름에 튀겨 큰 접시에 담아 내놓았다. 이것이 '베드로 고기'란다. 깜짝 놀라 '우리가 베드로를 뜯어먹는 거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고 민물고기의 일종인 바스(Bass)인데 베드로가 잡던 그 고기라는 것이다. 베드로가 무슨 고기를 잡았는지 어찌 알 수 있으랴만 그가 갈릴리의 어부였기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게 되었다. 우리가 타는 배는 모양이 좀 특이했다. 안내를 맡은 김 전도사님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1986년 초, 예수님 당시의 배가 발견돼 전세계를 놀라게 하였다. 가뭄이 심해 갈릴리 호수에서 물을 끌어내 사용하자 수면이 낮아져서 물 속에 파묻혀 있던 배 한 척이 발견이 된 것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연대를 측정하니 그 배는 서기전 40년에서 서기 100년 사이에 만들어 진 것으로 판명되어져 예수님께서 당시에 갈릴리 호수를 운항하던 배가 틀림없다고 발표했다고 한다. 우리가 타는 이 배는 그 배의 모양을 따서 만든 배인데 미리 예약을 해도 이 배를 타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큰 행운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갈릴리 호수에 갑자기 큰바람이 불고 세찬 풍랑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한다. 갈릴리 호수는 해면보다 280m 낮은 곳에 있다. 그런데 호수 동편 지역은 해발 평균 1,000m나 되는 골란 고원이 있다. 이런 지형 이유 때문에 갈릴리 호수와 주변지역과는 온도차가 심하여 바람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도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실 때 큰 풍랑을 만난 일이 있었는데 조금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배가 출발하자 선장은 태극기를 꺼내 뱃머리에 걸었다.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한국인인 줄 알고 태극기를 준비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태극기의 위치가 바뀌지 않게 정확히 단다. 사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 중 태극기를 정확히 그릴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는 것은 고사하고 어디가 위아래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상당히 있을 것이다. 태극기를 내걸자 총무이신 정철옥 목사님은 갈릴리바다 산상예배 현수막을 내거셨다. 도대체 현수막은 몇 가지를 만들어 오신 것인가?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우리는 선상예배를 드렸다. 위대환 목사님의 인도로 류준모 목사님이 기도를 하시고 유덕식 목사님께서 설교를 해 주셨다. 그리고 허광탁 목사님의 축도로 선상예배는 마쳤다. 예배가 끝난 후 맘씨 좋은 선장을 위하여 팁을 모았다. 이것은 헌금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이번 여행 중 비디오 촬영을 담당한 박춘식 목사님은 갈릴리 호수의 아름다움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계셨다. 그리고 남은 시간 목사님 부부가 한 쌍씩 앞으로 나와 인터뷰를 했다. 물론 비디오에 녹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준서 교수님의 책을 보면 "배가 호수의 중간쯤 가면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면서 물결이 거칠어지고 큰 파도가 치면서 배가 뒤집힐 듯 심하게 흔들린다"고 쓰여 있는데 예배를 드리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우리는 갈릴리 호수 건너편이 이미 도착하고 있었다.

(4)갈릴리 호수 주변

①가버나움

배에서 내리니 언제 왔는지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북쪽 편에 위치해 있다. 갈릴리 호수 주변에 있는 마을 중에서 예수님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곳이다. 한 때 여기서 사시기도 했고, 유대인 회당에서 가르치시기도 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살던 마을이기도 하다. 베드로의 장모 열병도 고쳐 주신 곳이기도 하다. 마태복음 9:1에는 "본 동네"라고 소개될 만큼 예수님에게는 제2의 고향이기도 하다.

검은색 현무암으로 담장이 둘러쳐 있고 정문에 "예수님의 가버나움 동네(Capharnaum the Town of Jesus)"라고 쓰여 있다. 가버나움은 1920년대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하였는데 발굴된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예루살렘과는 달리 당시의 생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8각형 형태로 건축되었던 교회의 유적지를 발굴했다. 특이하게 생긴 이 교회는 서기 5세기쯤 건축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흥미 있는 사실은 이 교회가 베드로의 집이라고 전해 오는 터 위에 세워졌다는 점이다. 지금은 이 베드로의 집 터 위에 배의 모습을 지닌 교회를 지었는데 그 밑에 있는 초대교회의 유적을 보전하기 위해 기둥 위에 건물을 지었다.

베드로의 집터 옆에는 서기 400년대에 건축된 회당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유대인의 회당은 전에 있던 회당의 터 위에 세워진 것으로 판명이 되었다. 그러므로 발굴된 회당 밑에 있는 그 이전의 회당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버나움 회당이라고 할 수 있다(막 1:21).

그런데 마가복음 1장을 읽어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신 후 회당에서 나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 열병이 든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시몬의 집이 회당 바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안내하시는 김 전도사님의 말을 빌리면 당시 회당 주변에 집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대부분 부자이거나 유력한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베드로는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가 아니라 부자이면서 유력한 집의 어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당한 학문적 지식도 갖추고 있었을 것이고, 베드로전후서와 같은 편지는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당시 가버나움은 다메섹에서 지중해 방면으로 왕래하는 통로이어서 상업이 발달하여 자연히 상주 인구도 많았다. 따라서 회당도 있었고 로마의 세관도 있어서 백부장이 주둔하리만큼(마 8:5) 번창한 도시였다. 발굴된 가버나움 주변에는 그 옛날의 영화를 자랑하듯 바퀴가 달린 법궤, 일곱 줄기의 촛대(메노라), 포도송이들이 돌로 조각되어 있고(이런 것들은 대부분 회당에서 발굴된 것), 올리브유를 짜던 기름틀, 맷돌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②오병이어 교회

예수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시고도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던 기적의 현장, 그 장소가 갈릴리 지역인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히 어느 장소인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 않다. 1930년대 초 독일 고고학자들은 갈릴리 호수 북서편에 있는 다브가(Tabgha)라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서기 400년대에 건축된 교회의 유적을 찾았다. 아랍인들에 의해 파괴된 후 1,000년 만에 발견된 것이다. 바닥은 전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져 있었다.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자연석들을 사방 1㎝정도 크기로 쪼갠 뒤 이를 짜 맞추어 만든 예술품이다.

모자이크 중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오병이어였다. 이것은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셨던 오병이어를 묘사한 것이다. 독일 가톨릭 교회에서는 1936년 이 교회의 유적지에 큰 교회를 건축하였다. 그리고 모자이크의 훼손을 막기 위해 교회 제단 앞에 위치하도록 설계했다. 이 교회를 오병이어의 교회라고 부른다. 이 장소가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이 오병이어 교회를 통해 갈릴리 호숫가에서 행하신 이 놀라운 기적을 다시 한 번 상기할 수 있었다.

③베드로 수임 교회

오병이어 교회를 나와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면 동남쪽에 검은 돌로 지은 작은 교회가 보인다. 갈릴리 지역에서 나는 검은색 현무암으로 지은 석조건물이 '베드로 교회'이다. 바깥벽이 물결에 출렁일 정도로 호수 가까이 세워졌는데 어떤 이는 '베드로 수임(受任)교회' 라고 하고 가톨릭에서는 '베드로 수위권(首位權)교회' 라고 부른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셔서 제자들과 같이 떡과 생선으로 아침 식사를 하신 곳이다(요 21:1). 교회 안에 들어가면 제단 앞에 자연석으로 된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예수님 식탁'이라 하여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같이 식사하신 장소로 전해지고 있다. 가만히 다가가서 바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니 예수님의 체취가 가깝게 느껴지는듯 하다.

이 식탁에서 떡과 생선을 드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내 양을 먹이라."

교회 밖으로 나가니 정원 한쪽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조각한 동상이 세워졌다. 그리고 바다 깊은 곳에 둥근 공이 하나 떠 있었다. 바로 저곳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알아보고

뛰어내린 곳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빙성이 없다. 너무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라리 그냥 저 바다 어디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낫겠다.

④팔복교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 예수님의 유명한 산상보훈이다. 8복을 가르치셨다고 전해지는 곳은 갈릴리 북쪽 호반에 있는 호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산이 팔복산이다.

이곳에 8복교회가 세워진 것은 주후 5세기경이었고, 현재 보듯이 여덟 가지 복을 상징해서 팔각형 구조로 건축된 교회는 1936-1938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교회 내부에 들어가 보니 8개의 아치가 원형 교회를 이루고 교회 중심부 위에 있는 둥근 천장은 금색 모자이크로 메워졌으며 그 밑으로 8개의 유리창에는 8복이 라틴어로 하나씩 기록되어 있었다.

이 교회를 설계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건축가였다. 그는 8복에 하나를 더하여 아홉 가지 복을 표현했다.

예수의 팔복 말씀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나로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할 때… 너희는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 상급이 큼이라" 즉 예수를 믿는 신앙 때문에 핍박과 수난을 당하는 사람의 복이다. 팔각형 모양의 건물 중앙 커다랗고 둥근 지붕(돔)을 만들어 아홉째 복을 상징한다.

교회 정원에는 오래된 수목들이 울창하게 서 있었는데 뿌리가 땅 위로 올라와 어디까지가 나무이고 어디까지가 뿌리인지 구별이 어려웠다.

우리는 팔복교회 주변에서 겨자씨를 채취할 수 있었다. 겨자나무는 우리가 상상한 대로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 우리의 키만큼 자란 풀이었다. 한참 겨자씨를 채취하고 있는데 박석구 목사님이 물병을 흔들어 보인다. 바로 팔복교회 앞에 있는 상점에서 샀는데 1.5ℓ가 든 생수를 1달러 주고 샀다고 자랑을 한다. 이게 웬 복인가? 이건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요, 콜롬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건에 버금가는 위대한 발견이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에서는 0.5ℓ병에 든 물을 1달러씩 주고 샀는데…. 우리 일행은 우르르 몰려가 한 병씩 구입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점을 '팔복상점'이라 명명했다.

⑤아스토리아 호텔에서

갈릴리 지역 순례를 마친 우리 일행은 티베리아스에 돌아와 아스토리아(Astoria)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우리 부부가 묵을 방은 415호실이었다. 몸은 피곤하고 화장실도 급했다. 열쇠를 받아든 우리는 무거운 가방을 하나씩 들고('끌고' 라는 표현이 맞다) 엘리베이터를 탔다. 415호실이니 4층이리라 생각하고 4층을 찾으니 3층까지밖에 없다. 이런! 하는 수 없이 3층에서 내렸다. '한 층은 걸어 올라가라는 것인가 보다. 희한한 호텔도 다 있네' 생각을 했지만 화장실에서는 긴급 호출명령(?)이 내렸기 때문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3층에서 내려 한 층을 더 올라가니 이런 변괴가 있나? 거기는 옥상이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 방은 어디 있단 말인가? 3층과 옥상 사이에 또 무슨 다락이 있나 하고 살펴보았다. 없다. 사정은 급하고 방은 없다. 아내 보기 민망했다. 이런 못난 사람을 남편이라고 믿고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우리는 다시 그 무거운 가방을 끌고 로비로 내려왔다. 마침 정철옥 목사님이 로비에 계셔서 묵직한 배를 움켜잡고 하소연을 했다. "목사님, 우리 방이 없어요-." 당황한 정 목사님은 우리 열쇠를 받아 쥐고 후론트로 뛰어갔다. 그제야 가이드가 말한다. "목사님 400호는 4층이 아니고 이 로비에 있어요. 바로 저기잖아요." 이런 우리가 엘리베이터를 탄 반대쪽에 조그맣게 410-420호는 저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시비를 가릴 시간이 없었다. 가방을 밀고 당기면서 객실로 들어가 먼저 화장실로 달려갔다. "어휴- 시원해." 좀 살 것만 같았다.

호텔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조그만 야외 수영장도 있었다. 저녁식사는 닭고기가 먹음직스럽게 나왔다. 한참 식사를 하다 보니 정 목사님과 이 대리님이 보이지 않는다. 단장이신 유 목사님은 '웬일일까' 하시며 나가더니 그분도 안 들어오신다. 우리의 식사가 끝날 무렵 일행이 들어오는데 분위기가 심상찮다. 오늘까지 나는 이런 얼굴을 보지 못했다. 진행을 맡은 우리는 한쪽 구석에 둘러앉았다. 정 목사님은 대단히 화가 나셨나 보다. 그 맛있는 저녁도 사양을 한다. 도저히 먹고 싶지 않다고….

호텔에 들어오는 순간 기분이 언짢았던 모양이다. 사실 지금까지 5일간 머문 숙소는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대체로 삼성(★★★)급이었는데 어느 호텔은 화장실 천장에서 물이 새기도 했고, 어떤 곳에서는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방도 있었다고 한다.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싶지만 객실에는 소형 냉장고를 갖춘 곳이 없다. 이래저래 목사님들께 미안하고 심기가 불편하던 차에 내가 객실을 못 찾아 한바탕 소동을 피웠으니 그만 폭발한 모양이다. 화가 나신 것은 정 목사님만이 아니다. 우리를 인솔해온 이 대리님은 지금까지 며칠 동안 목사님들에게 미안하여 말도 못하고 어찌할 줄을 몰랐단다. 이 대리님의 말에 의하면 이게 아니란다. 우리 성민관광 사장님이 목사님들을 이런 곳에 모실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에 아무리 전화해 보지만 사장님은 이스탄불 지역으로 나가셨기 때문에 연락도 되지 않아 애를 태우고 있던 차에 정 목사님을 통해 폭발되고 만 것이다. 사정을 알게 된 선배, 동료 목사님들은 "이 정도면 잘만 한데 뭘 그러느냐"고 오히려 진행부를 위로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나중에라도 그 책임 소재를 분명히 따지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후 1층 옥상에 마련된 수영장에 나갔다. 며칠 만인지 모르겠다. 류준모 목사님 부부를 비롯해 박석구 목사님, 위대환 목사님이 나와 계셨다. 모두 30대 젊으신 목사님들이다. 조금 후에는 김세창 장로님이 들어오셨다. 오랜만에 물 속에서 돌아다니는 기분은 퍽 즐거웠다.

지난 3일 동안 우리와 여행을 같이 해 온 유대인 버스기사(안타깝게도 그 분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근처에 유명한 온천이 있으니 몸도 풀겸 가지 않겠느냐고 제의를 한다. 우리는 10달러씩 거출을 하여 버스기사를 따라 나섰다. 밤늦은 시간, 20-30분을 달려 우리는 요르단과 이스라엘 국경 안에 있는 온천에 도착하였다. 입장료는 상당히 비쌌다. 1인당 45드라크마, 그러니 15달러(13,500원)나 된다. 버스 기사는 우리를 잠시 세워 두고 매표소에 가서 한참 실랑이를 하더니 단체 입장권이라면서 30드라크마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왜 이리 비싼가 물었더니 이곳은 단순히 온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넓은 농장인데 그 안에는 온천을 비롯한 각종 레저시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버스기사는 '우리 일행은 온천만 하고 갈 것이니 더 할인을 해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결국 안 통하더라는 것이다.

온천은 마치 야외 수영장처럼 생겼다.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다. 오늘 저녁부터 안식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수영복을 입고 탕 속에 들어갔다. 유황 성분이 많은지 냄새가 났다. 십여 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덥고 목이 말랐다. 조 목사님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지고 온 건과(乾果) 바구니를 풀었다. 여기는 몇 시간 있으면서 목욕하고, 먹고, 음료수나 물을 마시고, 하면서 온천을 즐기는 곳이란다.

버스기사가 스넥코너에 가서 콜라와 감자튀김을 사왔다. 이런, 우리가 기사대접을 해야 하는 건데…. 오늘은 친구 아들 성년식이 있는 날이란다. 성년식은 큰 행사여서 친구나 친척들뿐 아니라 부모의 친구들까지 함께 모여 성대하게 축하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미안했다. 남의 속도 모르고 온천을 가자고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친구는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지만 목사님들은 내일이면 헤어지게 되니 여기 있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아닌가 보다. 우리는 온천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렇게 약속된 운행시간이 훨씬 지나서까지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시는 기사님에게 따듯한 박수를 보냈다.

⑥안식일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사밧이라고 한다. 마침 안식일이 시작되니 생각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지금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히브리학과 교수로 계신 최명덕님께서 3년 전 '그말씀'지에 '유대인의 관습 연구'라는 것을 연재하신 일이 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에서 공부를 하던 중 겪었던 안식일 에피소드 몇 가지를 소개하셨던 일이 있었다.

예루살렘 남부 유대인 정착촌에 살고 계실 때 이야기였다. 어느 날 저녁, 누군가 집 대문을 두드렸다. 열어 보니 옆집에 사는 아주머니였다. 자기 집의 불을 켜 달라는 것이었다. 스위치만 올리면 들어오는 불을 왜 자기가 켜지 못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이웃집의 신세를 지는가 하고 생각해 보니 그 날이 안식일이더란다. 금요일 저녁 막 해가 진 후였다. 해가 지면 불을 켜는 행위는 창조 행위라서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이방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따라서 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불을 켜는 데 그만 깜빡 잊고 불을 켜 놓지 않았는데 그만 해가 지고 만 것이다.

언젠가는 금요일 저녁 9시경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의 집에 놀러 갔다. 그런데 커피를 끓여 오더란다. 안식일이 시작되었는데 어떻게데 불을 피웠단 말인가? 깜짝놀라 물어 보니 웃으면서 부엌으로 데려 가는데 자세히 보니 오븐에 있는 네 개의 불 중 한 개가 아주 약하게 켜 있었고 그 위에 뜨거운 주전자가 얹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켜 놓은 그 불은 안식일이 끝날 때가지 끄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나는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먼 길을 가지도 않고 일을 하거나 오락을 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이상했다. 오늘이 분명히 안식일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천에 온 것이 이상했고 우리의 친절한 버스 기사는 음료수까지 사 오지 않았는가? 조용식 목사님의 말을 빌리면 요즘 유대인들 가운데 구약의 율법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전체 유대인의 10%정도라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안식일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한다고 하니 이 나라의 안식일 개념도 많이 변했나 보다.

(5)이스라엘 북부

아침 7시 호텔에서 식사를 마친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순례지로 향했다. 오늘 오후 5시 15분, 로마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우리는 가나, 나사렛, 므깃도, 가이샤라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 중에 가이사랴는 예정에 없던 곳인데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조 목사님의 설명이다. 어제 왜 그리 바쁘게 뛰어다녔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①가나

가나는 티베리아스에서 나사렛 방향으로 25㎞, 나사렛 6㎞ 못 미친 지점에 있는 조그마한 동네로 현재는 아랍계 기독교인들과 러시아에서 온 회교도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지금의 지명은 케프르 켄나(Kefr Kenna)이다. 이 작은 마을이 기독교의 성지가 된 것은 예수님께서 이 동네에 있었던 혼인잔치에 초대받으시어 참석하셨기 때문이다. 잔치가 무르익어 갈 무렵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예수님은 이곳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어 첫 번째 이적을 행하셨다(요 2:1-11). 가나 이적 교회는 이 혼인잔치 집 자리에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일행이 티베리아스를 떠난 지 20-30분, 우리는 가나 마을에 도착하였다. 가나 교회는 좁은 골목 안에 있었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조그맣고 빨간 돔이 양쪽에 있는 2층 석조 건물이었다. 정문 한 쪽에는 영문으로 The Wedding Church라고 표기해 놓았다. 전승에 의하면 가나는 3세기경부터 기독교 순례자들이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879년 프란치스칸들에 의해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교회의 지하실에는 가나에서 발굴된 예수님 시대의 여러 생활용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앙에는 오래된 포도주 항아리가 보존되어 있었는데 이 항아리가 바로 예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 그 항아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가나교회 옆에는 정교회에서 세운 또 하나의 교회가 있는데 여기에는 기적의 항아리를 두 개나 가지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고 한다.

교회 정문 바로 앞에는 매점이 있는데 기념품과 가나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었다. 아랍인 주인은 작은 잔에 포도주를 따라 놓고 맛을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몇몇 목사님은 성찬용으로 한 병씩 구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나에서는 포도주를 살 게 아니라 맹물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과연 이곳이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 가나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어원과 전승을 제외하고는 위치를 확인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갈릴리에는 가나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곳이 두 곳이 있다. 케프르 켄나(Kefr Kenna)는 고대와 중세의 전승, 로마 가톨릭과 희랍 정교회가 이적의 가나라는 설을 지지한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곳은 단순히 나사렛과 가깝고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순례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이라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한다. 오히려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14.4㎞ 떨어진 고대 마을의 유적지 키르벳 카나(Khirbet Qana)가 유력하다고 한다. 이곳은 역사가 요세푸스나 유세비우스의 글에 의해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 유적지는 언덕 꼭대기로 아직 발굴이 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주후 1세기 시대의 사금파리와 동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②나사렛

가나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서쪽으로 채 10분도 못 가니 언덕 아래 나사렛이란 마을이 나왔다. 조 목사님은 우리에게 '수태고지(受胎告知) 교회'를 찾아보라고 한다. 우리는 이 교회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수태고지 교회는 비교적 최근에 새로 지은 교회로서 이 마을에서 가장 크게 우뚝 선 교회였기 때문이다.

동정녀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던 그 자리 위에 기념 교회가 처음 세워진 것은 AD. 326년 콘스탄틴 대제의 모후 성 헬레나에 의해서라고 한다. 그 후 여러 번 전쟁으로 파괴와 재건을 반복하다가 수태고지의 기적을 기념할 만한 훌륭한 교회를 짓기 원하는 뜻이 실현되어 이탈리아 건축가 '간바니 무치오'의 설계로 1955-1969년 사이에 중동에서 가장 큰 교회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교회는 마리아의 집터에 세워진 다섯 번째 교회라고 한다.

수태고지 기념교회는 가로 30m, 세로 70m의 거대한 규모인데, 돌로 지어진 교회로 베이지색 바탕에 옅은 황토색 돌을 줄무늬가 되도록 가로로 배열해 놓아 온화하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우선 정문으로 들어가니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수태 소식을 전해 주는 장면과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상이 조각되어 있었다.

특히 교회의 넓은 벽면은 전 세계 여러 나라 교회들에서 보내 온 성모 마리아와 성자 예수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왜냐하면 모두 자기네 나라의 민속 의상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보내온 성화는 마리아나 예수님 모두 중국 옷을 입고 있었고, 아프리카에서 보내온 성화는 마리아나 예수님 모두 흑인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한쪽에 우리 나라에서 보낸 성화도 걸려 있었다. 가톨릭 부산교구에서 보냈다는 모자이크 작품인데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마리아가 색동옷을 입은 예수를 안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각 나라의 토착성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나라와 민족을 초월한 온 인류의 구주임을 보여 주는 것이리라.

그런데 성전 안에 들어가니 우리 나라의 성화보다 훨씬 크고 진주를 촘촘히 박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일본 성화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바깥뜰에 전시된 성화들보다는 성전 안에 전시된 성화들이 크고 잘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우리는 일본의 성화와 한국의 성화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교세는 한국이 훨씬 많은데 어째서 이렇게 되었을까? 국력의 차이인가? 아니면 돈의 위력인가?

교회 내부에 들어가니 높이가 60m나 되는 중앙의 뾰족탑이 마치 백합화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아 마치 하늘에서 백합꽃이 내려오는 듯한 느낌을 주게 한다. 그리고 백합꽃 모양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은은한 햇빛은 내부의 경건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북쪽에는 성 요셉교회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곳은 요셉이 살던 집으로 예수님께서 애굽으로 피난을 다녀온 후 이곳에서 성장하시면서 목수 일을 배우시고 가족들과 살던 곳이다. 이 교회는 1914년에 건축되어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③므깃도

'여기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가?' 이것은 내가 이스라엘에 입국한 첫날 가이드에게 질문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볼 수 있었던 대부분의 땅은 물이 없어 말라버린 황무지였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의 안내를 맡은 김한성 전도사님은 "북쪽 갈리리 지방, 특히 이스르엘 평원을 가보면 여기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구나 하실 것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였다. 정말 차창 밖으로 보이는 이스르엘(Jezeel) 평야는 지금까지 보아온 이스라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표현이 잘 어울린다. 이스라엘 전 면적의 5%도 채 안 되는 작은 땅에서 온 국민이 먹을 양식을 공급해 주는 유일한 곡창지대-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땅이다.

말이나 왔으니 말이지만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는 우리 나라는 작년(1996년)에도 106억 달러 어치의 농산물을 수입하여야 했다. 그런데 농토래야 보잘 것 없는 이스라엘은 온 국민이 먹고도 32억 달러 어치의 농산물을 수출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얼른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들은 이 비결을 '토라 농법'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에 농사를 짓는 법이 나와 있다는 것이다. 그대로 했더니 오히려 농산물 수출국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 어디에 '토라 농법'의 원리가 있는가? 그들은 서슴없이 이사야 43:18-19을 소개한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그들은 이 말씀에서 지금까지 해 오던 방법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통상적인 관념은 사막이나 황무지에서는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갖지 않고 오히려 메마른 광야나 사막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광야나 사막에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은 길이 없고 강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광야와 사막에 농로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막에 수로(水路)를 만들었다. 1964년, 마침내 요단강 물을 끌어들여 전 국토를 흐르게 한 수로 공사가 완공 되었다. 그래서 강우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그것마져도 우기에 집중적으로 내리며 건기에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지만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까지 오면서 농토뿐 아니라 가로수나 화단에도 물을 뿜어내고 있는 검은 색 파이프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로에서는 계속 조금씩 조금씩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전에 우리가 가보았던 히브리대학의 잔디밭도 건기이지만 항상 축축이 젖어 있었다.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야를 지키는 관문과도 같아 지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이때문에 '가나안 땅(이스라엘 땅)을 장악하려면 먼저 이스르엘 평야를 장악해야 하고, 이스르엘 평야를 장악하려면, 먼저 므깃도를 장악해야 한다'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만큼 므깃도는 이스라엘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성이다.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에 역사적으로 므깃도를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다. 고고학자들은 므깃도가 24번이나 파괴되었다가 재건된 흔적을 찾아냈다.

먼저 박물관을 찾아갔다. 므깃도를 발굴할 때 출토된 수많은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 곳에는 므깃도의 모형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놓아서 넓은 므깃도의 지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안내하는 사람이 한 부분을 설명하면서 그 곳의 스위치를 누르면 전등이 켜지고 설명하려는 부분이 입체적으로 돌출 되어 표면뿐 아니라 내부의 지층까지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 므깃도 언덕으로 올라갔다. 바위 틈 곳곳에 독사가 있으니 주의하라는 말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므깃도는 서기전 3,000년대에 도시가 세워진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는데, 언덕 정상부분에 오르면서 솔로몬 시대에 지어진 성문의 유적을 볼 수 있다. 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은 성문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성문을 이중으로 만들었는데, 이 성문터의 바로 옆에서 발굴된 솔로몬 시대의 성문은 삼중으로 되어 있었다.

므깃도를 발굴할 때 고고학자들을 가장 흥분시켰던 것은 소위 '마병장'을 발굴할 때라고 한다. 성경을 보면 솔로몬 왕은 군사력의 상징인 기병대(騎兵隊)와 병거대(兵車隊)를 강화하고, 이들이 주둔하는 병거성과 마병성을 여러 도시에 건설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므깃도에서 말들의 고삐를 매는 돌기둥이 늘어서 있는 넓은 장소가 발굴된 것이다. 광장은 약 450필의 말과 150여 대의 병거를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였다. 중앙에는 말에게 물을 먹이던 물통까지 있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마병장이 솔로몬 왕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계속 연구한 결과 그보다 100년 뒤인 아합 왕 때 만든 것으로 판명되었다 한다. 솔로몬 왕이 건축한 므깃도 도성은 애굽 왕 시삭의 침공을 받아 파괴되었고, 그 후 아합 왕 때 재건되었던 것이다.

므깃도 남쪽 부분에는 곡식 저장 탱크가 만들어져 있었다. 지름은 약 10m, 깊이 7m 정도 되는 탱크는 돌로 정교하게 쌓아 올렸고,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는 돌계단이 내부의 벽을 따라 만들어져 있었다. 이상한 것은 곡식 저장 탱크에 지붕이 없는 것이었다. 비가 오면 곡식이 다 썩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조용식 목사님은 껄껄 웃으시면서 아직도 우리가 한국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다. 이 지역에서 건기에 비 올 확률은 0%라고 하면서 그런 염려는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하셨다.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 중에 가장 악명이 높았으나 므깃도의 용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하터널을 만든 일은 획기적이다. 므깃도에는 원래 샘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언덕 기슭의 지하 10m 지점에서 솟아나는 샘물이 므깃도의 유일한 식수였다. 평화시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적에게 포위되었을 때는 물을 길러 성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합 왕은 지하 터널을 만들었다. 성안에서 60m정도 깊이로 땅을 파 내려가서 성 밖의 샘을 향해 120m에 달하는 지하 터널을 팠다. 터널은 폭이 2m, 높이가 2.5m는 되어서 사람이 물을 긷고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이 지역은 거대한 암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어떻게 이 깊고 긴 터널을 팠는지 우리는 터널을 한없이 들어가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희랍인들은 므깃도를 아마겟돈이라고 불렀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아마겟돈이 최후의 전쟁 장소로 기록되어 있다. 선과 악의 마지막 결전장, 아마겟돈이 바로 여기인 것이다.

④가이사랴

므깃도의 감격을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헤롯이 건설한 거대한 항구도시 가이사랴(Caesarea)로 향했다. 지중해안에 있는 다른 항구들과는 달리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은 아니지만 예수님 탄생 당시대의 왕이었던 헤롯에 의해 항구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헤롯 왕에게 이 지역을 하사하자 건축광 헤롯은 감격하여 이곳에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항구를 건설하였다고 한다. 파도가 심한 이 지역에 길이 600m와 300m의 방파제 두 개를 만들었고(어떻게 이 공사를 했는지 수수께끼이다), 이 항구에 잇대어 큰 도시를 건설하였다. 막대한 돈과 인력을 동원하여 10년 만에 완공한 후 로마 황제에게 대한 감사의 표시로 '가이사랴'라 이름을 지었다는 것이다.

가이사랴는 시장 터와 야외 원형극장,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구비 당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던 대도시였다. 유적지 가운데 장관은 로마식 수로(水路)이다. 가이사랴에는 먹을 물을 공급할 샘이 전혀 없었다. 그리하여 도시를 건설할 때 12㎞ 떨어진 갈멜산 줄기의 샘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를 만들었다. 해변가 모래밭을 따라 아치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 수로를 만들어 놓은 도수교의 장관은 지금도 볼 수 있었다.

가이사랴 최대의 유적으로 남아 있는 원형극장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관람석에 앉아 있으니 지중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최소한 3,000명은 앉아서 관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공연이 자주 있는지 거대한 오디오 시설과 조명시설이 갖추어 있었다.

수도노회가 자랑하는 바리톤(?) 권태일 목사님이 무대에 올라가 열창을 하니 사모님들도 질 수 없다면서 금빛교회 신미숙 사모님을 내세운다. 그러나 저러나 초대받지 않은 가수 박춘식 목사님의 열창에 관람석에 앉아 있던 외국 관광객들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곳에는 로마 총독부가 있었으며, 고넬료는 이곳에 주둔한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베드로를 이곳에 모셔 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듣게 했다(행 10장). 바울이 로마에 재판을 받으러 로마에 가기 전에 이곳에서 2년간 갇혀 있었다.

고고학자들이 가이사랴 발굴 때 원형극장 계단에 엎어져 있는 총독, '본디오 빌라도'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 비를 발견했다. 이것은 빌라도가 가이사랴에 주재했다는 증거다.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로 호송되어 2년 동안 그곳의 감옥에 감금된 후 로마 시민권을 근거로 황제의 재판을 요구해 죄수의 몸으로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한 다음 그곳에서 바울은 참수를 당하여 순교했다.

가이사랴 해변에는 멋있는 식당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가이사랴는 원래 일정에 없던 곳, 따라서 식당이 예약되지 않았었다. 게다가 오늘은 유대인의 안식일이라 최소한의 직원 만 나와 예약 손님을 받고 있었다.

아쉬웠다. 조용식 목사님은 이런 사정을 설명하면서 지금 보이는 가이사랴의 아름다운 해변을 눈에 넣고 다른 마땅한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텔아비브 공항을 향해 가다가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었다. 마치 우리 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볼 수 있는 자율식당 같은 곳이었다.

⑤텔아비브 공항

어느덧 우리는 이스라엘에서의 3박 4일 순례를 마치고 로마로 떠날 시간이 가까웠다. 목사가 되어 언젠가 한 번은 꼭 와 보고 싶었던 이스라엘, 예수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성지. 그러나 우리가 가서 찾아 본 곳곳에는 예수님의 자취보다 가톨릭에 의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성당들이었다. 물론 2,000년 동안 수없이 정복과 탈환을 거듭했고 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말살하려고 했던 아픔이 있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할 것이다.

텔아비브 공항의 출국검사는 유명하다고 한다. 입국할 때 의외로 쉽게 입국했기 때문에 출국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검사대에서는 두 사람씩 불러 간단한 인터뷰를 한 후 짐을 검사했다. 예루살렘 한인상점에서 구입한 비누박스는 모두 테이프를 뜯어내고 확인을 했다. 내가 가지고 간 트렁크는 성도님의 집에서 빌려간 것이었다. 까닭에 트렁크에는 그 분의 영문 이니셜이 있었는데, 우리를 인터뷰한 여직원은 그 이름을 가리키면서 '이 사람이 누구냐'는 것이다. 몇 번 확인을 한 후에 다시 가방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그러나 이런 절차들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직원들은 친절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짐을 부친 후 나흘 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했다. 특히 항상 웃는 모습으로 운전을 해 준 기사는 목사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섭섭해했다. 이런 광경이 공항 직원들에게 신기하게 보였나 보다. 조용식 목사님에게 "이 사람들이 누군데 버스 기사가 일일이 악수를 하느냐, 또 당신은 가이드도 아닌 것 같은데 누구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분들은 성지순례를 오신 코리아의 목사님 부부들이고, 저 분은 나흘 동안 버스로 안내했던 기사인데 그 동안 너무 정이 들었던가 보다. 그리고 나도 역시 코리아 목사인데 히브리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 주었더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란다.

조용식 목사님 가족들 모두가 공항까지 나와 주셨다. 지난번 예루살렘에서 야간 외출을 하셨던 사모님들 몇몇이 50달러씩 모아 300달러를 조 목사님 사모님께 전달해 주었고, 수도노회 해외선교부에서 보내 준 선교비를 조 목사님께 전달했다. 조 목사님 사모님은 또 눈시울을 적신다. 또한 목사님, 사모님들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목사님, 빠른 시일 내에 학위 취득하셔서 돌아오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 동안 고생하신 분은 김한성 전도사님이다. 더구나 우리가 도착한 때가 학교 시험기간이었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모든 곳을 안내하고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신 수고를 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버스 기사와 김 전도사님에게 약간의 사례를 해 드렸다. 그리고 지난번 '목자 잃은 양' 사건 때 정종진 목사님 부부가 약속하신 안경대금 300달러도 선뜻 내놓으셨다. 우리는 함께 기도를 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조 목사님 가족, 김 전도사님, 그리고 유대인 버스기사는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여기서 우리는 Alitalia 항공 A-321편으로 로마로 향했다. 공항 활주로를 이륙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 6월 28일(토) 오후 5시 30분이었다.

⑥조용식 목사님의 편지

우리가 성지 이스라엘을 순례할 때 가장 신이 나서 뛰어다니신 분은 조용식 목사님이셨다. 학교 후배를 가이드로 소개해 주고 연일 함께 동행하며 필요한 자료를 구입하고, 또 복사해 주기도 하고 시시로 마른 과일, 냉커피, 주스를 만들어 오셨다.

우리가 성지순례를 마치고 며칠 지났을 때, 조용식 목사님으로부터 커다란 소포가 유덕식 목사님께 배달되었다. 여기에는 장문의 편지와 히브리대학교 사진엽서와 학교의 로고가 새겨진 화일노트, 우리의 한이 서린 마사다 사진 엽서, 그리고 점심을 먹으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가이사랴의 사진엽서가 들어 있었다.

여기 조 목사님의 장문의 편지 전문을 싣는 것은 성지순례를 다녀온 우리나 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유익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샬롬, 목사님.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죄송합니다. 너무 아쉽습니다. 조금만 더 준비를 잘 했더라면 모든 분들에게 기쁨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을…. 호텔 문제나 여행사 문제는 별도로 치더라도 저의 준비 소홀 역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드리자면 앞뒤로 시험이 겹쳐 있어서 마음만 급했지 제대로 시간을 관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사랑으로, 이해로 감싸주심에 오히려 몸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

그런데, 이번 만남을 통해서 정작 저 자신은 두 가지의 커다란 소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후배의 입에서 "정말 목사님들이, 특히 수도 노회 목사님들이 다르시네요". 라는 감탄사가 나왔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유대인 운전기사의 입에서 "이번 그룹은 이제까지 만났던 어떤 한국인 그룹보다 좋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번에 만나신 제 후배는 학부와 대학원을 오로지 연세 신학과에서 마친 친구로서(저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와는 달리 아무런 교단 배경이 없기 때문에 석사를 마치도록 교회를 다니기만 했지 정작 교회에서 정식으로 봉사할 기회를 제대로 얻어보지도 못한 친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친구를 볼 때마다 항상 교회의 소중함과 목회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자 노력했었습니다. 물론 이 친구도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면 언젠가는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겠지만, 많은 학자들이 그렇듯이,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없이, 그저 교회의 눈치를 보는 차원(?)에서의 밀접한 관계를 갖기 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회는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사실상 후배의 경제적인 형편을 배려하는 측면이 크긴 했지만, 저로서는 후배가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목사님들의 세계를 짧은 기간이나마 가까이서 접해 보고 본인 스스로 목회자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저희 노회 목사님들이 아니었더라도 앞으로 제 후배가 경험해야 할 목사님들 세계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장담하건대 앞으로 이 친구가 겪어야 할 목사님들의 세계, 특히 성지 순례 혹은 해외 여행 등으로 이곳에 오실 목사님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모습으로 후배의 뇌리에 남을 것입니다. 보셔서 알겠지만 일 년 열두 달 하루 25시간(?) 내내 도서관과 책상에만 앉아 있어도 시간이 부족한 저희들은 사실상 들에 핀 꽃 이름이 무엇인지, 나무 이름이 무엇인지, 동네 이름이 무엇인지 일일이 머리 속에 넣어 두기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이런 사소한 것들을 훤히 꿰고 있는 친구들은 공부를 하지 않는 친구들이거나 아예 이곳에 온 지 너무 오래 되어 닳고닳은 친구들일 것입니다. 아울러 도서관에만 앉아 있는 생활이란 거의 인간 관계를 단절시키는 삶이기 때문에 이러한 팀의 인솔에 있어서 사람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여야 요령껏 빠져나갈 수 있는지 감각과 눈치를 터득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지요. 그러니 훈장 노릇이나 해야 할 친구들이 목사님들을 모시고 다니면 목사님께서 얼마나 답답해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러한 답답함을 참아 주실 목사님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교회에서 스트레스 잔뜩 받으시다가 모처럼 나오신 길인데 이렇게 답답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오히려 더 잘됐다 싶어 스트레스 확 풀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이후 답답한 이 친구들의 머리 속에 남게 될 목회자와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장차 교회와 목회자들에 대한 맹목적 비판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교회와 신학이 각각 따로 노는 원인 중의 하나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이번의 만남은 성공적이었습니다. 평소 제가 저희 교회와 노회와 교단에서 흠뻑 받던 사랑의 실체를 제 후배가 생생히 느끼는 기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만나신 김 전도사는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도 왔었던 친구이지만 이제까지 제가 받는 사랑의 실체를 조 목사 재주가 좋아서, 또는 운이 좋아서 정도로 알던 친구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사랑이라는 단어와 '재주', '운'이라는 단어가 어찌 성립될 수 있겠습니까? 재주가 좋아서, 혹은 운이 좋아서 받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지요. 목사님의 사랑은 별도로 치더라도 노회 목사님들이 사랑해 주시는 것과 저의 재주는 더더군다나 상관이 없지요. 제가 노회를 위해서 한 일이 아직까지 하나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이번 만남을 통해서 제 후배는 생생히 느낀 것입니다. 제가 받는 사랑의 실체는 오로지 주의 몸된 교회와 우리 노회, 교단의 발전을 위한 목사님들의 철저한 이해와, 겸손과, 자기 희생의 결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더욱 감사했던 것은 이번에 모신 목사님들 중에 제 후배와 동년배인 목사님도 계셨는데, 동년배 목회자의 인격과 품위를 보면서 제 후배가 깊은 감명을 받는 모습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번 만남을 통해서 제가 간절히 바라던 것 중의 하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 목사님들께는 많은 희생과 지출이 따르셨지만.

생각지도 않게 노회의 선교비를 받은 관계로 졸지에 선교사가 되어버렸지만 사실 선교비를 받기 전부터 아니 이스라엘로 출발하는 순간부터 저는 성서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교에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세상 지식을 '분토'와 같이 여긴다고 말하면서 선교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선교를 하려면 공부가 필요 없고, 공부를 한 사람은 선교와 관계가 없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선교를 하겠다는 사람이 왜 공부를 하냐고, 그것도 박사 학위를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따지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다음과 같이 말해 줍니다. "나 역시 세상 지식을 분토와 같이 버리기 위하여 공부하노라"고 말입니다. 궤변이라고 말씀하실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토와 같이 버리기' 위해서는 우선 '있어야지요.' 아무것도 없으면 버릴 것도 없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가지되 소유하지 않고 분토처럼 버릴 수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을 '거름'으로 사용하시어 30배, 60배,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특히 유대인 선교를 위해서는 성경에 대한 지식이 필수입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배운 성서 지식(구약)은 성인이 되었을 때 한국의 신학교 교수 뺨치는 수준이고,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비유, 사건, 또는 그 당시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의 모습은 현대의 유대인들 모습인 동시에 이들의 문화요 풍습이요 일상 생활이기 때문에 어설픈 지식으로 다가섰다가는 신약 성경에서조차 유대인들에게 망신당하기 십상이지요. 결국 한국 학생들이 불타는 사명감을 갖고 한 명이라도 더 유대인 대학에서 히브리어로 교육받고 히브리어로 공부해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다면 추수할 일꾼이 늘어나는 셈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지 이것만으로는 이스라엘 선교가 불가능하다는데 있습니다. 지식적인 측면이야 미국이나 독일, 영국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만 못하겠습니까? 하버드 대학이나 옥스퍼드 대학은 사실 히브리 대학보다 좋으면 좋았지 못할 것은 없지요. 문제는 유대인들이 이들 서구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그 사실을 대대로 잊고 있지 않다는데 있습니다. 이점이 사실상 이스라엘 선교를 불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유대인들도 카톨릭과 개신교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인데, 다시 말씀드려서 중세 시대에 유대인들을 박해한 것은 카톨릭이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유대인들을 도와준 스웨덴이나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지금도 칼빈주의 하면 화란(덴마크)을 연상하듯이, 종교개혁 당시에 이미 개신교 국가들이 되었기 때문에 카톨릭보다는 개신교를 덜 미워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신교 속에도 이들을 학살한 히틀러가 있고, 이들이 학살당하는 것을 암암리에 방관한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있기 때문에 결코 호의적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의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대인들의 끔찍한 과거 역사와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 그러면서도 개신교, 즉 기독교를 대표할 수 있는 나라가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유대인 운전기사의 칭찬(?)은 단순히 팁을 두둑이 받는데 대한 만족의 표시로 여길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진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스라엘은 빈부의 격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이민자들은 제외하고), 저희들이 만난 운전기사의 경우는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중산층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산층들은 이스라엘의 적은 인구 때문에 사돈의 팔촌(?) 정도는 수시로 교류가 있는 상황입니다. 소문은 금새 퍼집니다. 특히 외국인에 대한 소문이 더 빠릅니다. 이스라엘에서 관광 수입은 국가의 아주 중요한 수입원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우리들의 사소한 행동조차 한국이라는 나라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며 이 기준은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우리들이 이 나라에서 본격적인 선교를 할 때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많은 한국 팀들이 이스라엘을 다녀가지만(1년에 1만 명 이상), 그것도 90%이상이 성지 순례라는 명목으로 오지만, 자신들이 뿌리는 '원딸라', 자신들이 유대인들의 뇌리에 심어 주고 가는 이미지들이 장차 이스라엘을 복음화 시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는 상상조차 못할 것입니다. '원딸라(실제로 1불이 아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유대인들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어째서 이들이 잘살게 되었는가? 도대체 이들이 믿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들이 남긴 이미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왜 이렇게 겸손한가, 왜 이렇게 친절한가?"

이스라엘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이곳에 계시는 목사님 한 분과 이스라엘 선교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스라엘 선교야말로 순복음 교회 스타일인 '삼박자 구원'논리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기억이 납니다. 즉, '죄사함', '영생', '천국과 지옥' 등의 형이상학적 설득보다는 "예수 믿고 신통, 인통, 물통!!!"이라는 구체적 접근이 오히려 더 효과적이라는 뜻이었지요. 유대교의 기본교리는 "Now and Here!" '지금(현재) 그리고 이 땅(여기)에서' 유대인들은 선민으로 택함을 입었고, 토라를 받았으며, 구원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죄사함의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고 있으며, 메시야만 오시면 자동적으로 해결될 문제이므로 영생,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가질 이유가 없지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이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부와 재물은 하나님께 받은 복의 상징이지, 청교도들이나 수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불의의 상징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랍비가 자신의 직업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사도 바울도 그랬던 것처럼),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상권, 경제권 장악은 일종의 교리이자 신념인 것입니다. 때문에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내세도 아니요, 총과 칼도 아니요, 주위의 비난도 아니요, 오직 자기들보다 더 잘사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론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항상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을 기억합니다. "...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라(롬 11:11)"

바울 역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스라엘의 선교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이 시기가 나서, 한 번쯤 자신들에 대해서 스스로 심각하게 결단을 내리는 순간이 오지 않고서는 선교가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면 도대체 누가 이스라엘을 시기 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미국이 잘 사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 시기 날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넓은 국토, 그 풍부한 자원, 그 많은 인구. 미국이 잘 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요. 일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이 시기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쬐그만 동양인들이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니 시기 날 법도 하지요. 그러나 문제는 일본의 저력이 기독교라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의 악착같은 근성에서 나왔다는 것이지요. 일본에 대해서는 시기는 나되 이것이 유대인들 선교와는 아무상관이 없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성수대교, 삼풍 무너진 기사가 이스라엘 신문에 나오고,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 기사가 이곳 매스컴에 오르내릴 때도, 그리고 한국 경제가 점점 어렵다는 전망이 나올 때도, 만약 하나님께서 한국을 21세기의 선교국으로 택하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잘 살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세계가 시기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들의 판단과 자신들의 논리로는 부패 왕국에, 정치 후진국에, 모순 투성이인 나라가 분명히 망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먹고 잘 산다면 얼마나 이상하고 시기가 나겠습니까?

이들을 시기 나게 하고 이들을 선교하려면 이제 두 가지 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첫째, 한국의 원동력은 예수를 통한 신통, 인통, 물통의 결과라는 것을 알리는 일. 다시 말해서 우리는 대대로 조상신도 믿어 보고, 불교도 수입해서 종주국(인도)보다 더 열심히 믿어 보고, 유교에 입각해서 공자의 '인' 사상에 따른 정의 사회를 구현하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사실상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예수교,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힘이라는 것을 알리는 일이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와야 합니다. 1년에 만 명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매 년 수십 만 명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한다면 3년 내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입에서 "한국은 불교국이냐?"하는 질문이 사라질 것입니다.

둘째, 이제 '성지 순례'는 없어져야 합니다. 성지 순례라는 명목으로 우리들이 돌아다니는 코스는 사실상 '성지' 순례가 아니라 '카톨릭 교회 순례'입니다. 지난 일천여 년 동안 카톨릭 교회는 '성지'를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이 땅 곳곳에 수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웅장한 교회 건물들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들은 '주만 따르오리다'라는 결심을 새롭게 하지만 정작 주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무엇인가 우리들이 잘못 따르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커다란 돌로 지어진 교회 건물들은 카톨릭 교회가 지금까지 유대인들을 박해해 왔던 하나의 상징입니다. 그 커다란 돌 하나 하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유대인, 아랍인 모두 포함)들의 피와 땀이 묻어 있는 돌덩이들입니다. 그 높은 수도원의 담장들은 선교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의 수양에만 몰두한 결과입니다.

이제는 '성지 순례'라는 명목으로 카톨릭의 건물들을 만나고 갈 것이 아니라 '선교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만나고 가야 합니다. '성지 한 번 갔다 왔으니 됐다'거나, '이번에 못 본 게 있어서 또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바울이 이방 선교에 목숨을 걸고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우리도 이스라엘 선교에 뜻을 가지고 1차, 2차, 3차… 계속 와야합니다. "쳇, 팔자 좋은 소리하고 있네, 누구는 모르는감? 돈이 그렇게 펑펑 쏟아지는가?"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말씀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정말 기도가 더욱 절실합니다... 주님께서 허락만 하시면….

정말 목사님들 또 오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오실 때는 '이스라엘'을 만나고 가셔야지 '카톨릭'을 만나고 가셔서는 곤란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 이번에 방문하신 '야드 바셈(유대인 학살 기념관)'과 '이스라엘 박물관'은 앞으로 점점 바뀌어야 할 이스라엘 여행 목적의 첫 시금석이 되겠습니다. '야드 바셈'에서 유대인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는 그들의 학살 역사를 배우고,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배웠다면 이제 이스라엘을 만나는 일의 절반 정도는 끝났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건 이번 여행(이제부터는 '성지 순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에서 부족했던 것은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특히 교우들의 사랑에 답례할 것이 많으셨을 목사님들의 선물 구입을 굳이 한인 상점으로 모시고 간 점은 두고두고 사과 드립니다. 그러나 정 목사님 사모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같은 값(?)이면 같은 동포의 것을 팔아 주어야 한다는 점, 밉던 곱던 그래도 한인 교회 교인들이라는 점 등을 고려하여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임을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죄하는 뜻으로 기념품을 보냅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세미나를 오셨기 때문에 학생(?)의 신분에 맞도록 히브리대 마크와 히브리어 글씨가 새겨져 있는 '화일'과 히브리대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를 보냅니다. 그리고 마사다에 한이 맺히셨을 텐데, 대신 마사다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 끝으로 예정에 없던 가이사랴이긴 했지만, 지중해의 아름다운 바다를 보면서 점심 식사를 못하신 것이 아쉬우실 것 같아서 가이사랴 유적지 사진이 들어있는 엽서도 보냅니다. '화일'은 사모님들 몫도 준비했지만(28개), 엽서는 목사님들(20장씩) 몫밖에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쪼록 목사님께서 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쓸데없이 돈 쓴다고 나무라시겠지만 "돈은 자꾸 쓰면 또 생겨요, 자꾸 써요!"라고 여행 중에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에 감명 받아(?) 자꾸 쓰지는 못하고 한 번 썼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목사님들과 노회와 교단의 은혜 충만을 기도하면서,

1997. 7. 1 예루살렘에서

조 용 식 목사 올림

로마 편

(1)텔아비브를 떠나 로마로

조용식 목사님 가족과 김한성 전도사님을 작별한 우리는 Alitalia 항공 A-321편에 몸을 실었다. 공항을 이륙한 시각은 예정대로 오후 5시 15분.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순례국인 로마를 향하는 것이다. 바울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했던 로마, 그는 묶인 죄수가 되어 풍랑을 헤치고 죽을 고비를 넘어 로마에 왔는데 우리는 이렇게 좋은 비행기를 타고 로마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허락만 하시면 가고 싶어했던 로마였다. 이런 로마를 자유인이 아니라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해 호송되어 가는 죄수의 몸으로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지만 우리는 자유의 몸으로 편하게 온 것이다.

비행기가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이름을 딴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 내리니 이 거장을 기리는 큰 동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로마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8시. 내일 하룻동안 우리를 안내해 주실 성악가 김정승 선생님이 나와 기다리신다. 로마에는 한국 교민 약 2,000명이 있는데 그 중 성악을 공부하는 분들이 약 1,000명, 교황청 직원이 약 500명,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이 약 500명쯤 된다고 소개해 주신다. 한인 교회는 세 곳이 있고, 한인 성당도 한 곳이 있다고 한다.

'영원한 도시' 로마는 생각과는 다르게 소박한 모습이었다. 기원전 8세기 중엽 테베레 강변 팔라티노 언덕 위에 목동들이 작은 마을을 세워지자 차츰 주변의 언덕까지 확장되어져 왕정과 공화정시대를 거치면서 커질수록 도시의 규모도 확장되어졌다.

500년간 계속된 로마의 공화정은 카이사르의 암살로 끝나고 옥타비아누스 장군이 첫 번째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되었다. 이와 함께 로마의 운명에도 획기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41년간 황제의 자리에 앉았던 아우구스투스는 '벽돌 도시' 로마를 '대리석 도시' 로마로 일신시켰다.

이탈리아에서 생산되는 단조로운 회색빛깔의 대리석을 보완하기 위하여 제국 내 도처에서 각양각색의 희귀한 대리석이 로마로 운송되었다.

로마인들은 건축에 천부적 재능을 발휘해 피라미드를 세웠던 이집트인들조차 생각해내지 못한 새로운 건축공법을 고안해 냈다. 즉 둥근 아치(Arch)와 둥근 천장(Vault)을 만드는 방법이다.

로마의 건축물들은 예술적 아름다움과 함께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그들은 무엇이나 대규모로 지었다. 서기 3세기 카라칼라(Caracalla)황제가 건축한 공중목욕탕은 냉탕과 온탕, 운동실, 도서관까지 갖추었는데 길이가 337m, 폭이 320m나 된다. 우리 평수로 약 33,000평이 넘는 넓이라고 하는데 오늘날 이곳은 오페라와 음악 공연장으로 쓰이고 있다.

대 서커스장(Circus Maximus)의 유적도 장관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에게 서커스란 마차 경주를 뜻한다. 카이사르 때 짓기 시작하여 네로 황제 때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다. 이 마차 경주장은 길이가 370m, 폭이 80m에 달한다. 그리고 경기장 둘레에는 30만 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이 있다.

로마에는 우리들을 경탄케 하는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우리가 로마를 찾는 중요한 이유는 이런 곳을 찾기 위함이 아니다. 이곳이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당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룻동안에 이런 곳들을 모두 둘러보지는 못하겠지. 결국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하나 던져 언제 다시 찾아 올 날을 기약하기로 하고 하루의 일정을 잘 짜야 할 것 같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공항을 빠져나와 우리가 묵기로 되어있는 호텔 '시티 이천(City 2000)'으로 향했다. 호텔을 향해 가는 길에서 본 승용차들은 대부분 우리가 국민차라고 부르는 티코나 혹은 프라이드 정도의 소형차들이었다. 아마 르망이나 아반테쯤 되면 이건 큰 차에 속했다. 한적한 교외에 있는 호텔은 작고 아담했다. 그런데 정철옥 목사님과 이상표 대리님은 우리를 버스에서 기다리게 한 후 먼저 호텔로 향했다. 아마 어제 티베리아스의 아스토리아 호텔에서의 일로 인해 먼저 확인을 하고 들어갈 모양이다. 그런데 30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우리가 답답해하자 단장이신 유덕식 목사님이 들어가셨는데 이 분도 함흥차사(咸興差使). 한 시간이 지나서야 일행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더 나은 호텔로 옮겨 보려고 한 시간 이상 실랑이를 했는데 시간이 늦어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 저녁 숙소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시티 이천'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그러나 이 호텔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비교적 깨끗한 호텔이었다. 우리는 다만 이상표 대리님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노심초사하시는 것이 미안할 뿐이다.

(2)로마에서의 하루

아침 6시, 지금 서울은 주일 오후 1시이니 주일예배가 끝난 시간이다. 교우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교회의 안부를 묻기에 이보다 좋은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목사님, 사모님, 모두들 전화기에 매달려 교회의 안부를 묻기에 바쁘다.

호텔에는 세미나 룸(Seminar Room)이 있었다. 우리는 먼저 이곳에 모여 조남준 목사님의 인도로 주일 새벽예배를 드렸다. 신앙고백을 한 후 13장 찬송을 힘차게 부른다. 김동성 목사님이 기도를 하였고 김용래 목사님이 시편 133편을 본문으로 설교를 하셨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리고 민홍기 목사님의 축도로 예배를 마쳤다.

로마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비록 빵이지만 맛이 있었다. 김정승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이렇게 아침 식사를 많이 하는 것을 보고 이곳 사람들은 놀란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저 아침에 모닝 커피 한 잔에 토스트 한 개 정도로 아침 식사를 끝내는데 우리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를 건강하게 보낸다고 믿고 있으니 이해가 안될 수 밖에. 동서양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이렇게 차이가 있나 보다.

아침을 든든히 먹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김정승 선생님은 자신을 소개한 후에 먼저 운전 기사에게 인사를 하자고 하면서 가르쳐 준다. "주세뻬 본 조르노" "기사님 좋은 날 되십시오" 라는 말이란다. 다른 인사 하나 더 가르쳐 주었다. "쌀루떼"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말이란다. 그러고 보니 '본 젤라또'는 뭔가? 그건 '좋은 아이스크림'이란 뜻이란다.

김정승 선생님은 인사에 얽힌 재미난 일화를 소개해 주었다.

한국의 김철수란 외교관이 이탈리아 대사(?)로 부임한 첫날, 식당엘 갔더니 한 사람이 찾아와 "본 아뻬띠또" 하고 정중히 인사를 하더란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나. 아마 자기를 소개하는 모양이다 싶어서 이 사람도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김철수입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이분은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본 아뻬띠또" 그러자 외교관도 일어서서 "김철수입니다" 하고 정중히 답례한 것은 물론이고.

아침에 출근을 하여 대사관 직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모두들 배를 움켜잡고 웃더란다. "대사님, 본 아뻬띠또는 '식사 잘 하십시오' 하는 말입니다." 얼굴이 빨개진 이 사람이 내일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했다. 다음 날, 식당에 갔더니 어제 그분이 저쪽에서 알아보고 다가온다. 때를 놓칠세라. 먼저 일어나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본 아뻬띠또" 그랬더니 그분도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를 하더란다. "김철수입니다."

이 말을 듣고 모두들 박장 대소하였는데 어느 목사님 한 분은 웃지 않았다. 뭐가 우스운지 통 모르겠다는 태도다. 하는 수 없이 다시 통역을 해 주니 그제야 알아들은 듯 빙그레 웃는다. 이 분의 별명은 '형광등.'

우리는 호텔을 나와 순환도로를 타고 바티칸 박물관으로 향했다. 김정승 선생님은 자신이 성악가니 목사님들께 드릴 선물은 이것밖에 없다면서 '산타루치아'를 부른다.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그러나 지금 우리 차는 총알같이 로마로 달린다.

①바티칸 시국

그런데 불행한 일이 생겼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바티칸 박물관이 문을 닫았다. 주일이라 그런 것은 아니란다. 이런 일은 일 년에 몇 번 없는 일이라니까.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차를 계속 달려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버스에서 내려 '베드로 광장'에 들어섰다. 우리는 입국 절차도 없이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심장이요, 세계의 가톨릭 신도들이 동경하는 영혼의 고향인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市國)'(Vatican City State)에 들어 온 것이다. 바티칸의 역사는 서기 8세기,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프랑크의 페핀왕은 로마의 성 밖 바티칸 언덕 일대를 교황에게 기증했다. 교황이 자기를 왕으로 인정해 준 보답이었다. 이때부터 바티칸 지역은 교회의 소유가 되었다.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제법상의 주권국이다. 지금 현재는 독자적인 국기(國旗)와 경찰력을 갖고 있으며 독자의 화폐·우표 등을 발행하고 외국과 대사를 교환하는 등 독립국가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바티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이지만 그 안에 있는 건축물들은 최상급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의 규모이다.

바티칸 시국의 경비를 위해서는 오랜 전통에 따라 스위스인이 고용되고 있으나, 우편사무·화폐주조 및 성 베드로 광장의 경비 등에 관해서는 이탈리아 정부와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협의하여 결정하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특색은 교황이 원수(元首)로서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다는 점인데, 그 주권은 시국 창건 이전부터 있어 온 교황주권이고, 또한 교황주권에 봉사하기 위해서 시민권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입각한 주권이다. 제265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hanes Paulus II)가 1978년 10월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바티칸 시국의 시민권을 가지는 자는 로마에 거주하는 추기경(樞機卿)과 국무장관 또는 지사(知事)의 허가를 얻어 바티칸 시국에 정주하는 개인(직접·간접의 교황청 봉사자) 및 그 가족이다.

교황청의 재정이 곧 바티칸 시국의 재정이 되어 있는데, 수지결산 등은 공개되지 않고 있으나, 세계 각국의 신도로부터의 헌금과 라테라노 조약과 더불어 교황이 받아들인 배상금의 적립금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이 경상수입이 되고 있어서, 전자는 연간 약 150만 달러, 후자의 기금(基金) 액수는 약 5억 달러가 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그 재정규모는 매우 크다고 한다. 특히, 후자의 기금은 이탈리아 국내의 여러 산업뿐만 아니라, 구미(歐美) 제국의 금융계·산업계에 투자되어 회전되고 있으므로, 교황청과 세계 각국의 산업계와의 유대도 크다. 한국은 1960년에 정식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69년에 한국교구의 김수환(金壽煥)대주교가 추기경에 서품 되었다.

②베드로 대성당

바티칸 시국을 하나의 왕관으로 표현해서 왕관의 한 가운데서 찬란히 빛나는 보석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찾은 베드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이다. 베드로 대성당은 로마에 있는 여러 교회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로마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네로 황제 때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세비우스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가 바티칸 언덕에 매장되었을 때 그곳에는 곧 작은 기도처가 만들어져 위대한 순교자의 무덤 위치를 보존하였다고 한다. 4세기 초,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자 그곳에는 베드로를 기념하는 바실리카식 교회가 세워졌다(430년). 그러나 1,000년여의 오랜 시간이 흐르자 교회는 낡고 퇴락하여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저명한 건축가 D.브라만테에게 명하여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게 하였다. 브라만테는 그리스 십자식플랜의 중심에 대원개(大圓蓋)를 얹고, 네 구석에 한 개씩의 작은 원개를 얹는 구상을 세운 듯, 대원개를 떠받칠 4개의 큰 지주와 그것들을 잇는 4쌍의 아치를 완성하였다. 그가 죽은 뒤 라파엘로가 여기에 긴 회당부(會堂部)를 추가한 라틴 십자식 플랜을 계획하였으나 그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뜨고, 공사는 바르다살레 베르레의 손을 거쳐 A.P.da 상갈로에게로 넘어갔다. 그도 또한 궁륭(穹)의 일부를 착수하였다가 1546년에 세상을 떴다.

1546년 교황 파울루스 3세는 마침내 71세의 미켈란젤로에게 공사의 전권을 맡겼다. 그는 그리스 십자식 플랜을 채용함으로써 브라만테의 안(案)으로 돌아가는 듯하였으나, 브라만테의 그것과는 달리 네 구석의 작은 원개를 없애고 건물 전체의 긴밀한 조형성과 다이내믹한 공간을 대원개를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통일한다는 탁월한 구상을 생각해내었다. 일체의 보수를 사양하고 오직 신에 대한 사랑과 사도 베드로에 대한 존경에서 이 조영사업에 몸바친 그는 1564년 그의 생애를 마칠 때까지 대원개의 기부(基部)에 해당하는 탕부르의 공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직경 42.4m, 바닥에서 탑 십자가까지의 높이가 약 133m에 달하는 이 원개 공사는 그가 남긴 목제(木製)의 모형과 함께 1588년 자코모 델라 볼타에게 인계되었고, 다시 도메니코 폰타나의 손으로 넘어가 1590년 마침내 완성되었다.

헌당식(獻堂式)은 1622년에 거행되었고, 마침내 명장 G.L.베르니니가 나타나, 1655년에서 1667년에 걸쳐 원주회랑으로 에워싸인 훌륭한 정면 광장을 완성시켰다. 투시효과를 교묘히 이용한 이 훌륭한 광장(일정한 지점에 서서 보면 앞에 있는 원주에 가려 뒷부분의 원주가 보이지 않는다)은 가톨릭의 총본산에 어울리는 규모와 성격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C.마데르나에 의해 정면구성으로 손상된 대성당의 모습을 살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건물을 짓는데만도 100년이 넘게 걸렸고, 그 후 내부 공사와 장식을 마무리하는데는 200년이 더 필요했다. 이 기간 동안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모두 동원되었는데 특히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천장의 돔(대원개)부분은 건축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베드로 대성당은 '앗시시 성프란시스 대성당' '예루살렘 성당'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하루 관광객은 2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우리가 찾은 날은 마침 주일이어서 교황이 집전하는 주일 미사가 있었다. 한 번 구경 삼아 들어가 보기로 하고 베드로 광장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엄청난 인파에 이리저리 밀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의 모습에 가려 안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은 보이지도 않는다. 예수님 당시에 삭개오가 이랬겠지 생각을 하였다. 다행히 빨간 조끼들을 입고 있어서 우리 일행을 찾을 수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우리는 일단 다음 장소로 이동하고 오후에 다시 이곳을 찾기로 했다.

우리는 점심 식사 후 다시 이곳에 들렀다. 미사가 끝난 후라서 그런지 이제는 관광객들만 득실거린다. 성당 입구에서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어 반바지를 입은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나는 오늘따라 시원한 반바지를 입고 나섰다. 반바지래야 무릎을 덮는 바지이니 괜찮겠지 하고 태연히 들어가는데 경비원이 앞을 가로막는다. 들어갈 수 없단다. 이런, 젠장. 말이나 통해야지. 하는 수 없이 나는 일행과 떨어졌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무슨 수를 쓰든 들어갈테니 일행과 함께 있으라고 당부를 했다.

그러나 사실 난감했다. 하는 수 없이 바지를 좀 내렸다. 마침 바지가 고무줄 바지라서 엉덩이에 걸치니 제법 길어졌다. 게다가 상의가 길어 그런 대로 어그적 어그적 들어갔다. 경비원 눈치를 보며, 나는 이렇게 해서 반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베드로 대성당을 들어갔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형편은 어떤가? 관광객도 반바지나 소매 없는 상의를 입으면 들여보내지 않는데, 요새 주일날 교회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성도들 가운데는 소매 없는 상의, 반바지나 핫팬츠 차림의 볼썽 사나운 옷을 입고 태연히 들어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은 분명히 가르치지 못한 목사의 책임이리라.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나를 걱정스럽게 기다리고 있던 아내가 정색을 하며 반가워한다.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반바지를 엉덩이에 걸치고 들어왔다면서 우리는 환히 웃었다. 그리고 그 동안 보고 들은 곳을 데리고 뛰어다니면서 서툰 설명을 한다.

성당은 길이가 현관을 포함하여 211.5m, 천장의 높이는 45.44m로서 성당 내부는 입석시 약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에도 오른쪽 구석 유리창 뒤에 자리잡고 있는 미켈란젤로의 24살 청년시절 걸작품 '삐에타 상'은 퍽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수많은 작품 중에 유일하게 자신의 서명을 남긴 작품으로 유명하다. 삐에타(Pieta)란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시대의 조각·회화에 나타나는 그리스도교 미술의 한 주제이다. 이탈리아어로 '경건한 마음, 경건한 동정(同情)'이라는 뜻으로 "신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때 이 명사가 쓰이는데, 미술에서는 보통 성모 마리아가 죽은 예수의 시신을 무릎에 안은 구도를 특히 이렇게 표현한다. 미켈란젤로의 삐에타 3부작은 특히 유명한데 피렌체 대성당, 밀라노의 카스텔로 스포르체스코성의 론다니니 삐에타, 그리고 여기 로마 베드로 대성당의 삐에타가 그것이다.

교회안 중앙 오른편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베드로 상이 있었다. 13세기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이 상은 오른쪽 발가락이 닳아져 뭉툭했다.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이 발에 입을 맞추어 닳아진 것이란다.

우리가 직접 가 보지는 못했지만 베드로의 쇠사슬이 보관되었다는 '쇠사슬의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조각 중에 하나인 뿔달린 모세 상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모세의 머리에 뿔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상은 교황 주리어스 2세의 호전적인 용기를 기념하여 그의 무덤에 세워 놓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모세 상이 드러내고자 한 것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노했으나 그것을 억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비록 이 뿔이 그 의도를 더욱 잘 드러내긴 하였지만, 사실은 성경구절을 잘못 번역해서 생긴 실수다.

출애굽기 34:29,30에 보면 "모세가 그 증거의 두 돌판을 손에 들고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 자기가 여호와와 말씀하였음으로 인하여 얼굴 꺼풀에 광채가 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아론과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얼굴 꺼풀에 광채 남을 보고 그에게 가까이하기를 두려워하더니" 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서 '광채가 나더라' 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garan 혹은 karon으로, '광채가 튀어나오더라' 라는 뜻이거나 '빛을 앞으로 내보낸다'는 뜻이다. 그리고 뿔이라는 단어는 geren이다. 그래서 라틴어로 구약을 번역한 불게이트는 이 부분을 'goud cornuta esset facies sua(그 얼굴에 뿔이 돋았더라)'라고 잘못 번역하였다. 보통 성경에서 뿔이라는 단어는 세력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기 때문에, 예술가들은 잘못된 성경 지식에 기초한 나머지 그림이나 상에 힘의 상징으로 뿔을 달았던 것이다. 아무튼 로마 가톨릭 신앙의 현주소를 알게 하는 걸작(?)임에 틀림 없다.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의 제단'은 바로크 예술의 거장 베르니니(Bernini)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제단의 바로 밑부분이 베드로의 무덤이라고 하니 베드로 대성당은 베드로의 무덤을 중심으로 그 위에 건축된 것이다.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위엄 있는 교회를 짓겠다는 염원이 지나친 열정으로 이어지면서 면죄부를 팔아 건축비를 충당하는 부작용을 빚었다.

③카타콤베

카타콤베(Catacombe)는 '낮은 지대의 모퉁이'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카타콤베'에서 나온 말로 영어권에서는 카타콤(Catacomb)이라고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카타콤베'라고 한다. 본래 로마 아피아 가도(街道)에 면(面)한 성(聖)세바스찬의 묘지가 두 언덕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3세기에 이 묘지의 위치를 표시하기 위해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세까지만 해도 지하묘지로서 알려진 것은 이 묘지뿐이었으나, 16세기에 초기 그리스도 교도의 지하묘지가 발견되고부터는 모든 지하묘지를 카타콤베라 부르게 되었다.

'성 안에는 시신을 매장할 수 없다'는 고대 로마법 때문에 지하묘지는 모두 성 밖에 만들어졌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예수께서 3일 동안 동굴무덤에 안치되었던 것처럼 순교자들을 세마포에 싸서 카타콤베 묘실에 안치했다. 천연 동굴무덤이 없었던 로마에서 카타콤베는 이에 유사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장례법을 예수와 같이 한 것은 그들도 예수처럼 부활을 염원하는 부활신앙에 근거를 두었다.

카타콤베는 기독교가 박해받던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피신처로 사용한 곳이기도 한데 서기 300년대 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등장으로 기독교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되면서 카타콤베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카타콤베 내에 공식적으로 예배장소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로마에는 약 300여 개의 카타콤베가 있다고 추정하며 이 중 63개가 발견되었는데 이 63개 카타콤베의 연장 길이만도 약 1,000㎞에 달하고 600만 명 이상의 시신이 묻힌 것으로 추정한다.

이 많은 지하 공동묘지들 중에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유명한 곳은 역시 '산 칼리스토 카타콤베'(San Callisto Catacombe)이다. 어두컴컴한 계단식 구불거리는 좁은 통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구불거리는 좁은 통로가 사방팔방으로 뻗어있다. 깊이20m 4층 구조로 되어 있는 통로 길이만도 총20㎞가 되며 약 50만 명의 신자들이 묻혔다고 한다. 서기 230-310년까지 80년 동안에는 로마교회의 감독(교황)들도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 카타콤베에 안치되었는데 모두 9명의 교황들이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우리는 카타콤베에 들어가기 전에 입구에 마련된 예배처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그저 50여 명이 앉으면 가득찰 만한 작은 예배처소였지만 우리에게는 퍽 뜻깊은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박석구 목사님의 인도로 주일예배는 드려졌는데 384장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찬송한 후 신앙고백, 383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찬송을 불렀다. 김세창 장로님께서 기도를 하신 후 조남준 목사님이 설교를 해 주셨다. 로마서 13:11-14을 본문으로 '이 시기를 바로 알자'는 설교였다.

"이 시기는 자다가 깰 때이다. 그저 열심히 일하면 되는 개미의 시기가 아니라 각종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미의 시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점점 가까웠다. 내가 벗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입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찬송 458장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를 찬송한 후 헌금을 드렸다. 회계를 맡은 내가(황의봉 목사) 기도를 한후 1장을 찬송하고 단장이신 유덕식 목사님의 축도로 주일 예배는 마쳤다. 예배 후 헌금을 집계해 보니 미화 88달러, 한화 5만2천원(57＄), 그리고 현지 이탈리아화 일만리라(5＄)였다. 합계 150달러이다.

오늘날 카타콤베는 초대교회 기독교인들과 순교자들의 안식처로서 또한 신앙인들의 피난처로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지만 특히 귀중한 기독교 성화들을 보존하고 있는 장소로도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다.

성화들은 대부분 성경을 주제로 그린 것이었다. 특히 구약의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자주 묘사되어 초대교회가 당했던 수난의 역사를 반영해 준다. 예수 그리스도를 선한 목자로 그린 성화도 많고, 십자가와 배의 닻을 혼합하고 알파(A)와 오메가(W) 문자가 새겨진 것도 있다. 기독교인을 일컫는 물고기 모양의 표시도 발견된다. 희랍어로 물고기라는 어휘 '익투스(Ichthys)'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의 머리글자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내를 맡은 김정승 선생님을 따라 카타콤베 안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마치 미로와 같아서 길을 잃으면 빠져 나오지 못할 것 같다. 어느 신혼 부부 한 쌍이 이곳에 들어왔다가 길을 잃어 헤어졌는데, 환갑이 되어 만났다는 과장된 이야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④마차 경주장과 진실의 입

카타콤베를 나와 시내로 들어오면서 우리는 영화 '벤허'를 연상케 하는 치르코 막시모(Circo Massimo) 즉 '마차 경주장'에서 잠시 사진을 찍었다. 이곳은 로마제국의 가장 큰 마차 경주장으로서 이 마차 경주장은 길이가 370m, 폭이 80m에 달한다. 약 30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으며, 2두전차나 4두전차의 경주를 했던 곳이다.

이곳은 또한 영화 '벤허'에서 보듯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를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황제가 손을 흔들던 자리는 폐허가 되었지만 운동장은 잘 가꾸어진 채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야외 촬영을 나온 신혼부부를 만나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그 다음 우리가 찾은 곳은 코스메딘의 성모 마리아 성당 현관에 있는 '진실의 입'이었다. 강의 신 홀르비오의 얼굴을 조각한 대리석 상인데 거짓말을 한 사람이 입에 손을 넣으면 그 손이 잘린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목사님과 사모님들은 이런 전설이 재미있다는 듯이 너도나도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을 찍는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던 김정승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진실의 입에 대한 설명을 하고 나면 남자 관광객들은 20명 중 두세 명은 슬슬 피하며 절대로 손을 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모두 손을 집어넣는데 그 중에 몇 사람은 잘린다는 것이다. 손이 아니라 손톱이….

아무튼 이곳은 성당 현관이다. 그런데 신화에 나오는 신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괴물 형상의 이 돌은 그리스 시대에 맨홀 뚜껑으로 쓰이던 것이었다고 한다(중앙일보 1997. 8. 28).

이탈리아 말로 사랑은 아모레(Amore)라고 한다. 이 아모레를 뒤집으면 로마(Roma)가 된다. 그래서 옛날부터 로마는 사랑의 도시라고 했다.

우리는 '천사의 성'이 바로 보이는 식당 La Taverna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러나 손님이 얼마나 많은지 점심시간을 늦추어야 했다. 잠시 '천사의 다리'를 오가며 아프리카에서 온 상인들이 팔고 있는 가죽제품이나 소품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테베레 강 위에 있는 성 천사의 다리(Ponte Sant' Angelo)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에 도달하기 위한 다리로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명에 의해 AD. 130년에 공사를 시작, 139년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 때 완성되었다고 한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영묘는 하드리아누스 황제를 비롯해 몇몇 후계 황제들의 묘소로 약 60년간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교황들의 요새로 사용되었다. 바티칸과 영묘를 잇는 성벽 위에 길을 만들어 외적의 침략시 위험으로부터 대피하는데 쉽게 했다.

후에 '성 천사의 성(Castel Sant' Angelo)'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해 온다.

AD. 590년 흑사병이 로마를 휩쓸고 있을 때 당시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성 꼭대기에 미가엘 천사가 나타나 찬란히 빛나고 있는 칼을 칼집에 꽂는 모습의 환상을 보았는데 이로부터 흑사병은 깨끗이 없어졌으며 이것이 유래가 되어 '성 천사의 성'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성 꼭대기에 대리석 천사 상을 세웠다가 1753년 청동 상으로 바뀌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한국인들의 단골 식당인지 우리에게 식사를 날라주는 아저씨는 "많이 드세요, 땡큐,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말을 아주 재미있게 하셨다. 또 음식을 날라주면서도 얼마나 경쾌하게 일을 하는지 일을 즐기는 사람 같았다.

스파게티가 나왔는데 여기에 우리가 가져간 고추장을 약간 섞어 먹으니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악사가 들어와 아코디온 연주를 신나게 한다. 게다가 더운 날씨에 시원한 물은 달라는 대로 가져다 주었다.

우리는 모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점심을 마쳤다. 그런데 팁을 주고 나오려고 하는데 물 값도 줘야 한다고 한다. 아뿔사, 우리 모두 여기가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깜빡 잊었다.

이날 점심에 먹은 식수 값은 무려 33달러나 되었다. 우리는 물 값이 아까워 PET병에 모두 따라 가지고 나왔다. 어쨌든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친 후 오전에 들렀다가 사람이 많아 그냥 나왔던 베드로 대성당을 다시 들어갔다.

⑤바울 순교 기념 교회

로마에 도착 한 후 바울은 어떻게 되었을까? 위대한 교부(敎父)신학자 터투리안(서기160-225년)의 글에서 발견된다. 갖은 고생을 겪으며 지중해를 건너 로마에 도착한 바울은 황제의 재판을 기다리던 2년 동안 복음 전파에 힘쓰다가 황제의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으나 기독교를 박해한 네로 황제 때 로마에서 참수 당해 순교했다.

바울이 참수 당했다고 전해지는 곳은 로마 서쪽 성문 밖 5㎞지점에 있었다. '세 샘터(Tre Fontana)'라고 불리는 그 곳에 '바울순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교회 안으로 들어가니 바울이 참수 당할 때 그의 목을 받쳤다는 돌기둥과 그의 목이 세 번 튀어서 세 개의 샘이 솟았다는 자리가 소중하게 보존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손을 잡고 기도했다. 위대환 목사님께서 대표로 기도하셨는데 "내가 죽지 않으면 내 민족이 죽고, 내가 죽으면 내 교회, 내 민족이 산다"는 기도에 모두 "아멘"을 크게 외쳤다.

⑥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um)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투기장(鬪技場)으로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AD. 70년 예루살렘을 정복한 티투스는 약 10만 명의 포로들을 로마로 데리고 왔는데 일설에 의하면 그 중의 약 4만 명을 콜로세움 축조공사에 동원시켰다고 한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경기장의 바닥에는 나무 마루가 깔려 있었으며 그 위를 모래로 덮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기장 바닥 밑에는 지하실들이 많이 있는데 이는 검투사들의 대기실과 맹수들의 우리, 그리고 경기시 필요한 도구들의 보관 창고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본 콜로세움의 내부에는 마룻바닥이 벗겨진 지하실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곳이 로마 사람들에게는 검투사와 맹수들 사이에 벌어지는 격투장이었지만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대에는 콜로세움이 순교 현장이었다고 전해 온다.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이곳에서 피를 흘렸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순교의 피로 물든 장소임에는 틀림이 없다.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제국의 힘과 권세를 상징하던 이곳에 지금은 대형 십자가가 우뚝 세워져 있다.

네로 황제가 로마의 건축물에 싫증을 느끼고, 자신이 세계 최고의 건축가로서 기록되고 싶다는 욕심으로 로마를 불태운 후 새로 건축하기 위하여 방화를 하였다. 네로의 생각에는 로마의 시민이 새 로마건축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피해를 입은 로마 시민이 분노를 나타내며 원망하자 방화 주범으로 기독교인을 지목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닥치는 대로 기독교인을 핍박하고 학살하고 심지어는 경기장에 세워 사자의 밥으로 만들었다. 초대교인들은 사자의 울부짖음에도, 로마 시민의 야유 속에 신앙을 꿋꿋이 지킨 것이다. 일설에는 네로 황제가 순교 당한 기독교인들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고통과 두려움의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한 얼굴이 평화와 기쁨이 배어 있음을 보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우리가 본 콜로세움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 돌이 떨어져 나가 흉하게 구멍만 남아 있었다. 이 콜로세움은 AD. 608년까지 경기장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중세기 때에는 요새로도 사용되었고, 그 후 지진으로 많이 부서지기도 했는데, 이때에 떨어진 돌들을 복원시키지 않고 성당 건물이나 귀족들의 저택을 짓기 위한 석재들의 채석장으로 전락하는 등 방치상태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⑦성 계단 성당

성 계단 성당은 예루살렘의 로마 총독부 건물에서 가지고 온 28개의 대리석 계단을 보관하기 위해 기원 후 4세기에 세워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585년 식투스 5세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28개의 대리석 계단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으로부터 수난을 받았을 때 밟았던 계단들로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 헬레나가 로마로 옮겨온 것이다.

나무로 덮인 이 28개의 대리석 계단 위로 가톨릭 신자들은 기도를 하며 무릎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고 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행을 상기하며 기념하기 위해 오래 전부터 행해진 고행이라고 한다.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는 이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다가 '복음은 이런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중도에서 벌떡 일어나 걸어 내려왔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루터가 로마 가톨릭의 지도층에게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첫 신호요, 종교 개혁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날도 복음의 진수를 알지 못하는 무지한 가톨릭 신자들은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쉬엄쉬엄 기도문을 외우며(어떤 이는 기도서를 읽으며) 무릎으로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 불쌍한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지금도 절규하실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⑧성 요한 성당

성 요한 성당은 성 계단 바로 길 건너편에 있었다. 1929년 바티칸이 한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게 된 유명한 '라테란 조약'이 서명된 라테란 궁은 이 성 요한 성당과 나란히 있었다.

'라테란의 성 요한 대 성당'의 정면은 1735년 알렉산드로 갈릴레이가 만든 작품이라고 하는데 성당 꼭대기에는 약 6m 높이의 큰 석상들이 있었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석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교부들의 석상 15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현관에 있는 중앙 청동문은 305년에 주조된 것으로 본래 로마 공회장의 원로원에서 사용했던 것인데 1650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의 좌우 기둥 벽에는 12사도의 대리석상들이 도열해 있었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바티칸에서 외출하여 제일 먼저 이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 전통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 성당이 옛 교황청 소재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는 베드로와 바울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한 시간에는 미사가 진행 중이어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밖으로 나왔다.

성 요한 대성당 앞의 성 요한 광장에는 '아씨시 성 프란체스코의 청동 기념상'이 서 있었다. 이 청동 기념상에는 새나 비둘기들이 항상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하는데 우리를 안내하는 김정승 선생님은 "하기야 여기에다 매일 먹이를 주는데 새들이 떠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면서 이런 것을 가지고 기적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⑨트레비 분수

성 요한 대성당을 떠난 우리는 로마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인 폴리 대공의 궁전 정면에 있는 트레비 분수(애천 분수)로 향했다. 트레비 분수를 향해 가면서 김정승 선생님은 로마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하나를 해 주셨다.

로마 사람들의 가치관을 시험해 보기 위해 한 여인을 가난한 집시로 분장을 시켜 큰길에서 구걸을 하게 하였는데 2시간 동안 모금된 돈은 15,000리라(7.5달러)였다고 한다. 다시 이 사람을 거지로 분장시켜 강아지를 한 마리 안고 있으면서 '강아지가 배고파요'라는 팻말을 들고 서 있었더니 2시간 동안에 30,000리라(15달러)가 모금되었고, 다시 수녀로 분장시켜 '불우 이웃을 도웁시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었더니 70,000리라(35달러)가 모금되더라고 한다. 역시 로마는 가톨릭의 나라임에 틀림없다.

한 때 인구 150만을 육박했었던 로마 제국시절에 건설된 14개의 고가수로를 통해 물을 풍부하게 공급받고 있는 로마는 아름다운 분수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 분수의 도시라고도 불린다.

그런데 분수의 도시로 알려진 로마의 많은 분수들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분수는 역시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이다. 이 트레비 분수는 G.L.베르니니의 원안(原案)에 따랐다고 하는 니콜라 살비(1639∼1751) 설계의 대표작으로, 1732년 착수하여 살비 사후인 1762년에 완성하였다.

흰 대리석 작품으로 개선문을 본뜬 벽화를 배경으로 거대한 1쌍의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해신(海神) 트리톤이 이끄는 전차 위에 해신 넵투누스상(像)이 거대한 조개를 밟고 서 있으며, 주위의 거암거석(巨岩巨石) 사이에서 끊임없이 물이 흘러나와 연못을 이룬다.

이 연못을 등지고 서서 동전을 던져 넣으면 다시 로마를 방문할 수 있다고 하는 속신(俗信)이 있다. 그런데 동전 두 개를 던져 넣으면 애인 사이는 결혼을 하게 되고, 부부 사이는 더 사랑이 깊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단다. 동전 세 개를 던져 넣으면 사랑하지 않는 부부 사이가 헤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남자들은 세 개를 넣고 싶은데 대부분 경제권이 여자에게 있는지라 여자들은 남편에게 동전을 두 개밖에 주지 않아 두 개를 넣는 사람이 제일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동전을 몇 개 던질 것인가 화제가 되었다. 괜히 쓸데없는 속설 때문에 아까운 동전 버리지 말라고 하지만 아내는 그래도 던져 보고 싶은가 보다. 결국 주머니를 뒤져 십원짜리를 찾아내어 힘껏 던졌다. 그런데, 그렇게 던지는 것이 아니란다. 연못을 등지고 오른 손으로 왼쪽 어깨를 향해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결국 아내는 다시 한 개를 던졌는데 이것은 두 개를 던졌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한 개를 던진 것으로 해야 하나 모르겠다. 그렇다고 헌법재판소에 물어볼 수도 없고….

가만히 보니 어느 가정이든지 동전을 던지는데는 목사님보다 사모님들이 더 열심이다. 대부분 사모님들은 두 개를 던지는데 목사님들은 한 개를 던지신다. 바티칸 박물관이나 천지창조 천장화가 그려진 '시스틴 소성당'을 방문하지 못한 목사님들이 로마 관광을 다시 오고 싶어 그러시는 것인지 아니면 사모님이 한 개밖에 주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바쁜 일정 속에서 모처럼 30분의 시간을 준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두 개를 샀다. 지난 6월 23일 서울을 떠난 후 처음 먹어 보는 아이스크림 맛이다. 일 주일만에 먹어 본 아이스크림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⑩로마에서의 마지막 날 밤

로마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엘 들어갔다. 반갑게도 그 식당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아리랑'이었다. 그러나 인건비 때문에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한국인은 거의 없고 중국인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여기에는 한식당이 두 곳 있는데 다른 곳은 주일이라서 문을 닫고 장사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신앙이 좋으신 분인가 보다.

메뉴는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개장이었다. 그런데 식사가 나오기 전에 김치와 오이무침을 다 먹어버렸다. 걱정을 하고 있는데 주인 되시는 분(?)이 보시더니 웃으시면서 아예 커다란 그릇에다가 김치와 오이무침을 잔뜩 내놓으신다. 그 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겠느냐 면서 추가부담은 드리지 않을 테니 실컷 드시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역시 동족은 그래서 좋은가?

여기서 먹은 육개장은 그 어디서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맛이 있었다. 밥도 큰 그릇에 따로 담아다 주신다. 실컷 먹었다. 더 먹고 또 먹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먹어 치워도 남는 것이 있을지 걱정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김정승 선생님은 하루 동안 변변히 안내해 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노래뿐이니 노래를 불러 드리겠다면서 시편 23편 등 몇 곡의 찬송가를 부른다. 우리가 도착하여 투숙한 호텔은 '캐피탈 호텔'(Capital Hotel) 이었다. 여기는 사성급(★★★★) 호텔로 깨끗하고 넓은 호텔이었다. 우리는 꿈같은 로마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편히 잠자리에 들었다.

우리의 목적이 성지순례가 아니었다면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물고 싶었다. 로마에서 가보지 못한 곳도 있지만 나폴리나 특히 폼페이는 꼭 가 보고 싶은데 언제 또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터키 편

(1)로마를 떠나 이즈밀로

Capital Hotel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했다. 터키의 이스탄불로 향하기 위해서다. Alitalia항공의 Super-80 여객기를 타고 공항을 이륙한 시각은 오전 10시 10분이었다. 지금까지 타 본 비행기 가운데 가장 조그만 비행기이다. 비행기 안에 TV도 라디오 이어폰도 없다.

우리는 이스탄불 공항에서 다시 국내선 여객기를 타고 이즈밀로 떠나기 위해 공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국내선이라 그런지 30분이 연착한다고 하더니 한 시간이 지나서야 공항을 출발하게 되었다.

그 동안 이스탄불 공항 국내선 대합실 안에서는 엄청난 사건들이 벌어졌다. 류준모 목사님이 바나나 네 개를 50만원(터키 리라)에 사서 함께 나누어 먹은 것이다. 콜라 한 컵에 24만원, 주스 한 컵에 70만원…. 우리가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다. 미화 1달러의 현지 환율은 147,000터키 리라라고 한다. 그러니 바나나 세 개에 3달러쯤 되나 본데, 화폐가치가 너무 없다 보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간이 부은 남자(?) 한 분을 보았다. 우리 일행 중에 선글라스를 1200만원에 산 분이 계셨다. 영진교회 유덕식 목사님이시다.

터키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실 가이드로는 UBF선교사로 계신 이재욱 선교사님이 오셨다. 한 시간이 연착되어 우리는 오후 4시 50분에 터키 항공의 B737-400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조그만 비행기에 좌석이 꽉 찼다. 이렇게 무거워서야 비행기가 뜰 수나 있을는지 걱정이다. 우리는 비행기가 활주로를 이륙할 때는 몸무게를 줄이려고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비행기는 힘차게 활주로를 이륙한다.

(2)소아시아 일곱 교회

이스탄불에서 이즈밀까지는 약 600㎞, 그러나 이렇게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하니 눈 깜짝할 시간에 도착을 하였다. 저녁시간이지만 날

씨는 꽤 무덥다. 오늘 현지 기온은 35℃라고 한다. 인구 200만이 넘는 이즈밀(Izmir)은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터키에서 세 번째 큰 도시이다. 이곳 이즈밀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이 있던 지역 중 하나이며 유명한 순교자 폴리갑(Polycarp)을 배출한 교회인 서머나(Smyrna)이다.

그러나 우리는 짧은 일정 속에서 일곱 교회를 모두 둘러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간직해야만 했다. 이즈밀에 와서 폴리갑 기념교회를 보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서머나뿐 아니다. 이즈밀 정북쪽 100㎞지점에 있는 작은 도시 버가마(Bergama)에 있는 거대한 버가모(Pergamum) 유적과 그곳에 남아 있는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도 마음으로 그려볼 뿐이다. 두아디라도 예정에 넣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이번 순례 길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들 중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그리고 에베소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일곱 교회들을 하나씩 꼼꼼히 찾아보리라.

①사데 교회

우리는 오후 5시 25분에 기다리던 버스에 올라 사데 교회로 향했다. 비행기의 연착으로 오늘 일정에 차질이 있을 것 같다. 한 시간을 넘게 달렸을까, 우리는 이즈밀에서 동북쪽으로 약 80㎞에 위치한 사데 교회에 도착하였다.

사데(Sardis)는 서기전 6세기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을 제패했던 리디아 왕국의 크로이수스 왕궁이 있던 수도였다. 우리에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와 함께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소아시아 일곱 초대교회 중의 하나인 사데 교회가 있던 곳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사데를 끼고 흐르는 작은 시내는 황금천(黃金川)이라고 부를 만큼 많은 금을 함유했다. 당시의 크로이수스 왕은 이곳에서 사금(砂金)을 채취하여 최대의 부를 누렸다. 또한 금화를 처음으로 주조하여 최초의 주화를 만들 만큼 금이 풍부했던 지역이다. 당시의 크로이수스 왕은 부를 상징하는 왕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 엄청난 부의 흔적은 없고 성벽만이 일부 남아 쓸쓸한 모습이다.

아테네의 솔론(7대 현인의 한 사람)이 사데를 방문하자 왕은 왕국의 보물을 보여 주며 물었다. "현인이여! 당신이 만난 사람 중에 누가 제일 행복한 것 같소?" 자신의 이름을 기대했지만 뜻밖에도 "사람이 행복하게 생애를 마칠 때까지는 아무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소."라 대답했다고 한다.

서기전 540년에 페르시아가 침공하여 철옹성 같은 성을 정복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던 때 성안에 있던 병사 한 명이 실수로 투구를 성 밖에 떨어뜨리자 그 병사는 성벽을 타고 내려와 투구를 집어서 다시 성벽으로 기어올라갔다. 철옹성과 같은 성벽에도 취약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 위치를 눈여겨 본 페르시아 군대가 그날 밤 성벽을 올라가서 성을 함락시켰다. 함락 후 왕이 붙잡혀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 왕은 화형을 당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한다. "솔론이여! 솔론이여!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겠다."

우리는 사데의 유적 중에서 아데미 여신의 신전을 찾아갔다. BC.330년대 알렉산더 대왕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된 '다산과 풍요의 여신' 아데미를 위한 신전이다. 아데미 신전은 전면의 폭이 50m, 길이가 90m에 달하며, 모두 78개의 석주가 늘어선 모습은 생각만 해도 장관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은 석주들 가운데 18m 높이의 이오니아식 석주 두 개가 외롭게 서 있어 과거의 웅장했던 신전의 모습을 설명해 주고 있다.

아데미 신전 남쪽 끝 부분에 붉은 벽돌로 지은 작은 교회의 유적이 남아 있었다. 웅장한 아데미 신전의 석조건물과 벽돌로 지은 조그만 교회가 너무나 대조적이다. 왜 하필 이곳에 이런 궁색한 교회를 지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쨌든 사데 교회는 분명히 큰 교회는 아니었다. 주님도 사데 교회의 규모를 칭찬하지는 않으셨다. 그곳에서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을 칭찬하셨을 뿐이다.

우리는 사데 유적지를 둘러본 후 마을에 내려와 물과 복숭아를 샀다. 1.5ℓ 물은 한 병에 75,000리라, 즉 1달러에 두 병을 준다. 로마에서 한 병에 2달러를 주었던 생각을 하면 얼마나 싼지 모른다. 우리는 탐스러운 복숭아가 있어 125,000리라를 주고 사서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어찌나 달고 맛있는지 우리 나라에서 먹던 바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데를 떠나 빌라델비아로 가는 차 안에서 우리를 안내해 주신 이재욱 선교사님은 5분 망각증이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새로 이사를 온 어느 할머니가 동네 경로당에 가서 할머니들과 서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자기 소개를 하려니 옛날에 다니던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더란다. 이름을 한참 생각하고 있는데 학교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고 늘 부르던 교가 생각만 어렴풋이 나더란다. "우리 학교 이름은 생각이 나지 않는데 교가는 생각이 나요.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하던 노래였어요" 하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할머니 다니던 학교 교가가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였어요? 우리 학교 교가도 그것인데…" 둘이는 반가워 어쩔 줄 몰랐단다. 그러자 또 다른 할머니도 "어? 우리 학교 교가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인데?" 그래서 경로당은 온통 동창회가 되었단다.

집에 돌아온 이 할머니는 영감에게 "여보 영감 너무 신기한 일도 있지, 오늘 경로당에 가 보니 글쎄 우리 초등학교 동창들이 여럿 있더라구요. 학교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남산 위에 저 소나무' 하는 교가를 부르던 학교라고 했더니 할머니 여럿이 자기들도 그 교가를 불렀다고 하지 않겠수?" 가만히 듣고 있던 할아버지가 "어? 우리 학교 교가도 '남산 위에 저 소나무'였는데?" 하시지 않겠는가? 알고 보니 한평생 동창 부부가 살아왔는데 그것도 몰랐다면서 서로 좋아했다나?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그렇다. 자꾸 외워라. 건성으로 듣지 말고 머리 속에 꽉 박히게 하라. 그게 잘 안 되면 적어라. 그래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번 성지순례를 하면서 부지런히 적기로 했다. 외우는데는 소질이 없으니까.

②빌리델비아 교회

어둠이 서서히 깃들이는 길을 우리는 부지런히 달렸다. 빌라델비아로 향하는 길의 좌우에는 넓은 포도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포도의 주산지로 특히 건포도가 유명하다고 한다.

우가 한 시간 남짓 달려 인구 3만의 도시 알라세히르에 도착한 때는 이미 어둠이 짙게 드리우는 시각이었다.

이곳이 주님의 칭찬을 듣기만 하고 꾸지람을 받지 않았던 빌라델비아 교회가 있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 있는 유일한 유적은 비잔틴 시대에 있었던 교회의 세 기둥뿐이었다. 약 15m 높이의 육중한 기둥들은 당시 교회의 거대했던 규모를 짐작하게 해 준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빌라델비아 교회의 모습은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지킨 이 교회를 이렇게 흥왕케 하셨나 보다. 그런데 이제는 이 복음의 땅에 교회는 찾아볼 수 없다. 온통 회교의 모스크만 보일 뿐이다. 만약 바울 사도가 다시 이곳을 찾아오신다면 얼마나 가슴이 아프실까? 아니 이 기막힌 현실이 먼 훗날 우리 나라의 모습은 아니길 기도해야 하겠다. 사도 바울에 의해 복음이 제일 먼저 전파되었던 땅, 그 복음의 열매는 어디 가고 오늘날 이슬람 국가가 되어 교회 유적마다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있단 말인가.

비록 늦은 시각이지만 이곳을 관리하는 분은 굳게 닫힌 문을 친절하게 열어 준다. 물론 그림엽서를 팔기 위해서이다. 그림엽서의 종류도 단 한 가지, 이것을 두 장에 1달러씩 판다. 비싼 것 싼 것 따질 필요 없이 문을 열어 준 것만도 고마워 몇 장을 사서 나누어 가졌다. 몇 년 전에는 동판으로 만들어져 돌기둥에 '빌라델비아 교회'라는 동판이 있었다는데 현재는 없다. 오늘날 터키가 인구 99.5%가 이슬람교도인 회교국가이기 때문에 없애버리고 기독교 유적을 발굴하거나 보존하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나 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기독교 유적지라는 사실마저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고 한다.

밤도 깊고 배는 출출하다. 우리는 빵 가게에서 바게뜨 방 몇 개를 샀다. 허기진 배를 채우듯 뜯어먹는 모습이 불쌍하기만 하다.

③히에라볼리

우리는 착잡한 마음으로 빌라델비아를 떠나 히에라볼리로 떠났다. 여기서 히에라볼리(Hierapolis)까지는 160㎞, 밤길이기 때문에 두 시간은 넘게 걸릴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히에라볼리에 있는 헤라클레스 호텔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였다. 짐을 풀기 전에 먼저 식당에 들어갔다. 뷔페식으로 마련된 저녁식사는 이미 다 식은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각에 무슨 탓을 하랴. 굶기지 않으려고 지금까지 기다려 준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시장한 탓에 그저 입에 맞는 것만 골라 대충 요기를 하고 숙소에 들어가 여장을 풀었다.

호텔 마당에 있는 아담하고 깨끗한 야외 수영장이 유혹을 한다. 밤이 깊었지만 참을 수 없었다. 수영복을 갈아입고 풍덩 뛰어들었다. 어찌 시원한지 살 것만 같다. 열두 시가 다된 밤중에 수영을 하는 멋도 괜찮다.

밤 한시가 지나 잠을 잤지만 일어나는 시간은 언제나 오전 5시경이다. 이십 년이 넘는 습관인데 어쩌랴.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호텔 안에 온천이 있다고 하여 내려가 봤다. 유황냄새가 코를 찌르는 온천수는 손을 담글 수도 없을 만큼 뜨겁다. 호텔 직원이 온도계를 담가 보니 수온은 55℃를 가리키고 있다.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 온천을 하라는 말인가, 아니면 구경만 하라는 말인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이기만 하다가 차라리 수영이나 하자면서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히에라볼리는 골로새서 4:13에 나오는 도시이다. 역시 그 어디엔가 바울 사도의 발자취가 있을 텐데 2,000년이 지난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안타깝다.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이 성경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히에라볼리 근처에는 유명한 온천지대인 파묵칼레와 라오디게아 그리고 골로새가 있다. 우리는 오늘 파묵칼레와 라오디게아를 거쳐 에베소로 가기로 했다.

④파묵칼레

노천온천 파묵칼레(Pamukkale).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절묘한 작품 중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온천지대이며, 이 물에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함유되어 오랜 시간을 지나면서 석회질이 침전되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희귀한 비경(秘境)을 이루고 있었다. 높이가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화(石灰花)로 이루어진 이 자연의 장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송이로 뒤덮인 것 같다. 그래서 '목화성(Cotton Castle)'이라는 뜻인, 파묵칼레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다. 여명에서부터 석양까지 햇빛의 조도(照度)에 따라 색이 변하는 파묵칼레는 신비한 느낌마저 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석회석 지대에 들어가 노천온천을 즐기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네스코에서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잘 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는 한쪽에 가서 배수로에 흐르고 있는 물을 만져 보았다. 배수로의 물도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었다.

일찍이 로마인들은 이곳에 대형 목욕탕을 지어 수많은 황제, 제왕들이 즐겨 찾았다. 우리는 이곳 온천의 원탕을 찾아갔다. 로마시대에 건축된 이곳의 석조건물 목욕탕은 오늘날 대부분 원형대로 복원되어 옛 황제들이 누렸던 호사를 범인(凡人)들도 만끽할 수 있었다. 마치 연못처럼 생긴 야외 온천수는 뜨겁지도 않고 따듯하여 피로를 풀기에는 아주 좋았다. 물 속에는 옛날 건물의 유적인 돌기둥들이 그냥 잠기어 있었다. 우리는 30여분간 온천을 할 수 있었다. 많은 목사님들은 옷을 벗기가 귀찮은지 그냥 그늘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부지런한 몇몇 목사님들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온천으로 들어갔다. 마치 옛날의 제왕들처럼 온천을 즐기며.

⑤라오디게아 교회

히에라볼리에서 7㎞쯤 가니 라오디게아가 있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하나가 있던 곳이다. 이 지역을 장악했던 그리스의 통치자 안티오커스 왕은 도시를 건설한 뒤(BC. 3세기) 왕비 라오디게의 이름 따 라오디게아(Laodicea)라고 명명했다.

고대 라오디게아에서 사용한 물은 히에라볼리의 온천수였다. 온천수를 이곳까지 끌어온 돌로 만든 수로가 지금까지 일부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히에라볼리의 그 뜨거운 온천수는 7㎞의 수로를 통과하는 동안 자연히 식을 수밖에 없어 라오디게아에 오면 미지근해 진다. 요한계시록에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믿음이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책망하신 말씀이 이 물에서 비유된 것이다.

고대에 이곳에는 병원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눈병을 고치는 안약의 산지로 유명하다. 계시록 말씀에 "영적인 눈을 뜨기 위해 안약을 사서 바르라"고 한 것은 라오디게아가 안약의 산지임을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 분명하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려 20여분을 걸어 우리가 찾아간 라오디게아는 이제 폐허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누가 세웠는지 '초대성지 보존회'라는 이름으로 한글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우리를 반겨 맞는다. 여기 그 안내판의 글을 그대로 옮겨본다.

"이 도시는 라오디게아라고 불리우는 여섯 개의 고대 도시 중 가장 오래된 도시로 시리아의 쎌레우쿠스 왕조중 안티오쿠스 3세가 이 도시를 건설한 뒤 자기 아내의 이름을 본떠 라오디게아라고 명명했다. 이 도시는 BC. 190년 마그네시아 전쟁 후에 페르가봄 왕국의 손아귀에 들어갔다가 앗탈로스 3세가 죽은 뒤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초대 기독교 시대와 비잔틴 제국 말엽이었다. 이 도시는 안약치료제의 제조와 질병 치료에 효과가 큰 온천으로 유명했다.

이 교회는 로마의 바실리카풍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앱스(반원형 부분)를 가진 동쪽편 벽은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아시아에 흩어진 다른 여섯 지역의 교회들과 함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부유함으로부터 오는 종교에 대한 그들의 미온적인 태도로 인해 책망을 받기도 한 내용이 요한계시록 3장14절 이후에 기록되어 있다. 그 후 하나의 주교 자리가 있을 만큼 세력이 컸으나 잦은 지진과 이슬람 세력의 등장으로 그 위치가 점점 약화되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이 근처 동네 주민인 듯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주운 동전들을 들고 와 사라고 졸라댄다. 우리는 버스가 있는 곳까지 따라와 졸라대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에베소를 향해 길을 떠났다.

여기서 에베소까지는 2시간 반을 달려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중간에서 점심을 먹고 에베소로 향했다.

(3)에베소

에베소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요한과 관련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운명하시기 직전 제자는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다(요 19:26-27). 그 후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갔다고 한다. 마리아는 에베소에서 말년을 보내다가 일생을 마쳤다고 전해진다. 서기 431년 에베소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에서 열린 에베소 종교회의는 이러한 전승을 교회의 공식 입장으로 채택했다.

①사도 요한 교회

먼저 우리는 아야슬루 언덕에 있는 사도 요한의 교회를 찾아갔다. 무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아야슬루 언덕에서는 에베소의 전경을 다 내려볼 수 있었다. 바로 눈 밑으로는 조그만 도시 에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산 밑으로는 지금은 폐허가 되고 유적만 남아 있는 고대 에베소 유적지가 있었다.

이 아야슬루 언덕에 거대한 규모의 사도 요한 교회 유적이 있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기둥들과 몇몇 건물의 일부만 남아 있었지만 이 교회는 서기 500년대 중엽에 요한의 무덤이라고 전해지는 장소에 세워진 교회라고 한다. 대부분의 가톨릭 성당이 그랬듯이 이 교회의 제단 부분에도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었다. 우리 나라처럼 봉분이 있는 것은 아니고 평평한 대리석 바닥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곳이 사도 요한의 무덤이라는 영문 안내문이 있었다.

여기에는 당시 교회의 유적을 발굴해 놓았을 뿐 아니라 당시 교회의 모형도와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교회의 모형물을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우선 우리는 이 교회의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적만 보아도 이 교회의 규모가 얼마나 웅장했었는지 짐작이 간다. 한국의 가톨릭에서는 곤지암에다 100년을 걸려 이 사도 요한 교회와 비슷한 모형으로 성당을 짓고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②누리 형제의 서점

사도 바울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터키는 회교국으로 전체 인구 5,500만 명의 98%가 모슬렘이고 기독교 인구는 550명 가량이라고 한다. 나는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귀를 의심했다. 550만 명이냐고 다시 물으니 그냥 550명 이라고 한다. 이건 정말 비극이다.

아야슬루 언덕을 내려온 우리는 에베소에 있는 유일한 교회요 이곳에 살고 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를 만날 수 있었다. 누리 형제라고 부르는 이 분은 4년 전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다고 한다. 맨 먼저 직장을 잃게 되었다. 이런저런 명목으로 고소 고발을 당해 수없이 체포되고, 주민들에게 수없이 테러를 당하며 갖은 협박을 받아 오고 있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에베소에 사는 3만여 주민들 가운데 '누리'라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들은 누리 형제를 '종교를 이용하여 돈을 버는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한다는 것이다. 즉 돈을 벌려고 알라신을 배반하며 이슬람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욕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어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서점을 마련하였는데 장사가 잘 될 리 없다. 아직은 자립이 안 돼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지역을 찾아오는 성지순례단을 이곳으로 안내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를 돕기도 할겸 이곳에서 책을 사기로 했다.

누리 형제의 서점은 아데미 여신상 바로 뒤에 있었다. 우리가 찾아가니 반갑게 맞아 준다. 이미 오래 전에 만난 친구처럼. 솔직히 다른 휴게소나 가판대보다 값이 비싼 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외롭게 믿음을 지켜 나가는 형제에게 힘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목사님들은 값을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샀다. 어떤 분은 성도들에게 드리겠다면서 '모자이크 캔디'를 열 개도 넘게 샀다. 캔디라기보다는 마치 땅콩이 들어간 엿과 같다고 할까? 누리 형제는 이 모자이크 캔디 몇 상자를 뜯어놓고 우리에게 대접을 한다.

나중에 아내가 터키지역 최우수 여행자로 뽑혀 상을 받았는데 풀어보니 그 맛있는 캔디였다. 상으로 받은 것이니 기념으로 집으로 가져가기로 했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짐을 풀면서 에베소에서 엄마가 상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을 하니 아이들은 신기한 듯 몇 개씩 집어먹는다. 그러나 역시 우리 나라의 수준에는 못 미치는지 결국 우리 부부가 며칠 동안 하나씩 하나씩 다 집어먹었다.

서점의 지하에는 교회가 있다고 해서 내려가 보았다. 지하 비밀 교회이니 무슨 흔적이 있겠는가? 강대상도 없다. 십자가는 물론이고 성화도 없다. 그냥 평범한 방이었다. 그러나 주일이면 몇 명이 이곳에 모여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나오다가 누리 형제의 부부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주님이여 이들을 승리케 하옵소서.

③아데미 여신상

우리는 누리 형제의 서점을 찾아가다가 길거리에 세워진 아데미 여신상은 퍽 인상적이었다. 젖가슴이 많다못해 가슴에서부터 배까지 20-30개는 달려 있다. 화려하고 부유한 대도시,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 이것이 로마시대의 에베소의 모습이다. 에베소 사람들은 희랍신화에 나오는 최고의 신 제우스의 딸인 아데미(Artemis)여신을 섬겼다.

다산(多産)과 풍요를 가져다 준다는 이 여신을 위해 에베소 사람들은 큰 신전을 건축하였다. 그러나 BC. 356년 신전이 정신병자에 의해 불타버리자 에베소 사람들은 자신의 신전을 불태우는 것도 막지 못할 만큼의 무력한 여신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었다. 그러자 아테네의 한 현인이 다름과 같이 웃지 못할 설명을 했다고 한다. "아르테미스 여신은 바로 그 때 출타 중이었기 때문에 막지 못했다. 그 여신은 그때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탄생한 알렉산더를 축하하기 위해서 그곳에 갔기 때문이다." 마침 신전이 불탈 당시 알렉산더가 태어났던 것이다.

훗날 알렉산더 대왕의 제의도 거절하고 에베소 사람들은 자신의 힘으로 신전을 재건하였다. 아테네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보다 크고 웅장한 신전을 짓고 싶었다. 마침내 신전이 완성되었는데 전면의 폭이 70m, 길이가 130m, 높이는 20m나 되는 거대한 규모였다. 이 아데미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AD. 50년대, 사도 바울은 복음을 들고 2차,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이 아데미 여신의 도시인 에베소를 찾았다. 그리고 3년여 긴 시간을 들여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초기 전도활동은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아데미 신전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고 있었던 사람들의 방해로 곤욕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헌신적인 도움과 바울이 아들처럼 사랑했던 디모데의 힘이 합해져 에베소 전도는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데미 여신의 도시 에베소에 복음이 뿌려지고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④누가의 묘

에베소 거리를 벗어나 구시가지쪽으로 가다가 우리는 반가운 한글 안내문을 읽을 수 있었다. 한인교회에서 세운 안내판에는 '누가의 묘'라는 제목과 함께 1860년 영국의 고고학자 T.J.Wood가 예배처소로 사용하던 건물의 일부인 십자가와 황소모양이 그려진 비석을 보고 누가의 무덤이었음을 판명했다고 적혀 있었다.

바울의 동역자요 주치의로서 바울과 한평생을 같이 살아온 그가 바울 순교 후에 어디로 갔는지 기록을 찾을 수 없고 다만 '누가에 대한 반 마르키온파 서문'에 그가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비두니아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74세에 별세하였다고 했는데 이곳 에베소에서 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바울의 죽음 이후 누가의 행적을 연구해 보고 싶다.

누가의 묘를 들러본 우리 일행들이 구에베소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늦게까지 남아 사진을 찍던 우리 부부와 김동성 목사님 부부는 조그만 트럭에 실린 멜론을 볼 수 있었다. 이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멜론을 잘라 우리에게 주면서 먹어 보라고 시늉을 한다. 날씨는 덥고 목은 마른데 얼마나 감사한지 염치 불구하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넙죽 받았다. 그런데 이 멜론 맛이 기가 막히다. 원래 멜론이 수분은 많지만 이렇게 달 수가 없다. 몇 조각을 얻어먹다 보니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번 예루살렘에서 시진을 찍다가 길을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던 나는 겁이 덜컥 났다.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이냐?

나는 그 달콤한 멜론의 맛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아내의 손을 잡아끌고 일행이 간 방향으로 달려갔다. 에베소 구시가지 입구 매표소에서 정철옥 목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내는 두고두고 누가의 무덤에서 먹었던 멜론 이야기를 한다. 그 때 몇 통 샀어야 했는데…. 먼 훗날 언제 다시 누구든지 이 누가의 묘에 갈 기회가 있거든 조그만 트럭에 멜론을 싣고 온 아저씨를 만나 한 통 사오길 부탁한다. 그 때까지 이 아저씨가 거길 떠나지 말아야 할텐데….

⑤에베소 구시가지

옛날 에베소는 두 개의 큰 산을 사이에 두고 계곡에 건설된 인구 20만의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 이 거대한 도시는 완전히 매몰되고 말았으며 지금은 이 매몰된 구시가지를 거의 복구하여 놓았다. 이 에베소 거리는 우선 대리석으로 포장된 넓은 도로가 인상적이다. 폭 21m나 되는 넓은 길 양쪽에는 역시 대리석 기둥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밤만 되면 횃불을 대낮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 대리석로는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야외 원형극장까지 약 500m에 이르고 있었다. 우리는 이 구시가지의 앞문으로 들어가 뒷문에 이르기까지 이 에베소 구시가지를 살펴보았다.

맨 먼저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소연극장이라 불리는 작은 원형 극장이었다. 본래는 지붕이 있었고 하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이 소연극장은 시청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연극 공연보다는 원로원 회의장으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거대한 목욕탕이었다. 목욕탕은 그 나라 문화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사치와 허영의 상징이었다. 우리는 에베소에서도 사우나실까지 갖추어진 거대한 목욕탕을 볼 수 있었다. 한쪽에는 불을 때는 거대한 아궁이들이 있었고 이곳에서 뜨거운 물을 보내는 송수관이 땅 밑으로 나 있었는데 한 번에 수백 명은 목욕을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바로 옆에는 수세식 좌변기가 있었다는데 나는 다른 곳을 둘러보느라 보지 못했다. 이곳을 본 아내는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나에게 그 동안 어디를 갔다왔기에 그걸 못 보았느냐고 채근이다.

에베소에는 이처럼 사치와 향락의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에베소에서 본 도서관의 웅장한 모습은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이곳은 일찍이 에베소에서 활동했던 희랍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와 헤라클레이토스의 학문 전통을 이어오는 곳으로 로마 제국내의 최대 도서관 중 하나로서 이곳에는 파피루스 이외의 양피지로 만든 책만도 20만 권 이상 소장하고 있었다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화려하고 부유한 대도시, 상업과 학문의 중심지, 이것이 로마 시대 에베소의 모습이었다. 에베소 사람들은 이런 자기 도시에 큰 긍지를 느꼈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찬탄의 소리를 그치지 않았다.

바울이 이곳에서 3년이나 머물면서 전도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까지 에베소의 철학자이며 수사학자인 트란누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철학 강연장소 '두란노 서원'(행 19:9)의 유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시장구역인 아골라(Agora)가 시작된다. 한쪽 구석엔 홍등가도 있었다. 그러나 역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2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아시아 최대의 야외 원형극장이었다. 3단 형태의 구조로 각 단은 22계단으로 된 거대한 반원형 로마식 야외극장이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도를 하다가 은장색 데메드리오의 방해를 받았던 일이 사도행전 19장에 있다. 은감실(銀龕室)을 만들어 팔면서 돈벌이를 잘 하고 있던 데메드리오가 바울 때문에 장사가 안 될 것 같으니 에베소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그 일행인 가이오, 그리고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와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고 시위를 하였는데 바로 이곳이 그 현장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훗날 사도 요한이 이 원형극장에서 집회를 가졌는데 수많은 병자가 낫고 온갖 이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⑥에베소 교회와 성모 마리아의 집

원형극장을 벗어나 조금 내려가니 에베소 교회 유적이 있었다. '성모 마리아 기념교회' 라고도 불리는 이 교회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요한이 에베소에 오신 것을 기념하여 지은 교회라고 한다.

이 교회의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시대로 소급되는데 431년 에베소 종교회의가 열렸던 장소로도 추정된다.

역사적으로 에베소와 관련된 큰 수수께끼는 마리아가 말년에 살았다는 곳이 어디일까 하는 문제이다. 19세기 초엽, 독일의 캐더린 에메리히(Catherine Emmerich)라는 여자는 그 장소를 찾아냈다고 주장하였다. 어떤 고고학적 고증을 통해 찾아낸 것이 아니고 특별한 계시를 통해 찾아냈다는 장소는 에베소 옆에 있는 파나야 카풀루(Panaya Kapulu) 산 속이었다.

이 산 속에는 폐허로 남아 있던 비잔틴 시대에 지은 작은 교회가 마리아가 살던 집터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그 후 이 교회를 복원하였고 1961년 교황 요한 23세는 가톨릭 교회의 성소로 공포하였다. 그 후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을 방문하여, 마리아의 집은 오늘날 전세계 크리스천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 성지로 되어 있다.

가톨릭의 특징이 그렇다고는 하지만 아무튼 퍽 편리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으로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에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을 그들은 간직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성지를 순례하면서도 가톨릭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떨칠 수 없다. 여기 마리아의 집 입구에 세워진 우리말 안내판의 전문을 참고로 옮겨본다.

"이곳은 성모 마리아께서 당신 생애의 마지막 해를 보내셨던 곳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다시 성모 마리아를 가리키시며 요한에게 말씀하시기를 '보라, 네 어머니라' 하셨다(요한복음 19:26-27).

그리하여 요한은 성모 마리아와 함께 에베소로 오게 되며, 에베소 3차 종교회의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요한이 성모 마리아께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어 드렸다고 하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집의 장소는 잊혀지고 폐허가 되었다.

1878년 캐더린 에메리히(Catherine Emmerich)라고 하는 독일 수녀가 꿈 속에서 계시 받은 내용을 '성모 마리아의 생애' 라는 제목으로 펴냈는데, 이 책 속에 성모 마리아의 집 위치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수녀는 자기가 태어난 고장을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었으므로 1891년 나자렛 신부가 탐사반을 조직하여 오늘날의 성모 마리아의 집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집터 모양은 캐더린이 계시 받아 기록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스 정교도들이 해마다 8월 15일(마리아 승천일)에 이 집에서 순례 행사를 가졌었다.

1961년 교황 요한23세는 성모 마리아의 집의 위치에 대한 분쟁을 종식시키고 이곳을 성지로 공식 선포했다."

우리가 에베소 유적지에서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는 곳까지 가는 길에 세븐 슬리프(Seven Sleep)라는 지역을 지나갔다. 과거에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피해 숨었던 동굴들이라고 한다.

⸇쿠사다시에서

내일 아침 일찍 밧모섬으로 떠나기 위해 머문 숙소는 지중해 안에 있는 터키의 휴양도시 쿠사다시의 Guzey Hotel이었다. 쿠사다시는 성경의 지명을 따르면 밀레도이다. 사도행전 20장 17절 이하를 보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던 바울은 이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눈물의 작별 인사를 하였다. 호텔에 이르는 동안 예쁘게 지어진 수많은 집들이 해변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것은 터키 사람들의 별장이라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웬만한 중산층은 이런 별장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호텔에 들어와 여장을 풀고 난 후 수영장 구경을 하기 위해 밖에 나왔던 나는 그만 곤란한 일을 겪고 말았다. 깨끗하고 텅 빈 수영장을 보고 저녁을 먹은 후에 수영을 즐기리라 다짐을 하고 돌아온 것까지는 좋은데 3층에 올라와서 생각하니 그만 방 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320호 같아 벨을 누르려 하니 나올 때 본 모습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위치를 기억하려 해도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후론트로 내려왔는데 이건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다. 손짓 발짓을 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단다. 아니 왜 바벨탑은 쌓아서 우리를 이렇게 고생시킨단 말인가? 우리 일행 모두에게 방 번호가 있는 명단을 나누어 주었으니 일행 중 누구 한 사람만 만나면 되겠는데 모두 다 어디 갔는지 통 보이질 않는다. 이렇게 난처하고 난감할 데가 없다. 10분도 넘게 헤매고 다니다가 식당을 기웃거려 보니 우리 일행이 모두 모여 맛있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뿔사, 시계를 보니 오후 8시 저녁시간이다. 이상표 대리님에게 우리 방 번호를 확인하고는 급히 달려 올라갔다. 우리 방은 312호였다.

태평하게 앉자 있는 아내를 데리고 허겁지겁 내려와 보니 벌써 식사를 거의 끝냈다. 우리에게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묻는다. 식당에서는 한 아저씨가 전자악기(신디사이저)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지만 신나고 경쾌하다. 음식 맛이 저절로 난다. 그런데 다른 손님들은 모두 나가고 우리 부부만 남아 꾸역꾸역 저녁을 먹고 있는데도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악기를 연주한다. 미안해서 좀 쉬시라고 하고 싶지만 이 분은 음악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구든 자기 직업에 이렇게 만족을 하고 자기 일을 즐긴다면 세상은 얼마나 즐거울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수영복을 챙겨 수영장에 내려가 보니 목사님들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계셨다. 이곳 현지 청년들과 우연히 만나 음료수 내기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나야 원래 축구와 인연이 없으니 풍덩 물 속으로 들어갔다. 언제부터 내가 물개가 되었나?

그리스 편

이제 우리의 12박 13일 성지순례 일정도 거의 끝나간다. 오늘이 7월 2일 수요일, 집을 떠난 지 열흘째 되는 날이다. 오늘 우리는 밧모섬을 경유하여 내일 그리스로 들어가게 된다. 이번 일정에서 유일하게 호텔에 들어가 보지 못하는 곳이 그리스이다. 그리스에서의 일박은 밧모섬에서 그리스로 가는 배 안에서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비행기와 버스를 원 없이 탔는데 오늘과 내일 우리는 배를 원 없이 타게 될 것이다

(1)멀미호를 타고 밧모섬으로

오전 5시, 다른 날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났다. 정신없이 아침을 먹고 호텔을 떠난 시각은 오전 6시 35분. 우리는 사도 요한이 '새 하늘과 새 땅'의 계시를 받았던 밧모섬으로 향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산재한 3,000여 개 섬 가운데 하나이다. 상상의 섬이 아니라 실재하는 섬인 것이다. 터키의 서해안에서 약 60㎞, 그리스 아테네로부터는 250㎞쯤 떨어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터키에 훨씬 가까우나, 현재 그리스령이다. 우리는 먼저 배를 타기 전에 출입국 신고를 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현지 안내를 맡은 분이 대신 해 주었다. 출입국 수속이 복잡하지 않은가 보다. 세관원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운전하고 온 이상한 짐차에 옮겨 실은 것으로 다 끝났다. 이 분들이 세관을 통과하여 우리가 탈 배에까지 실어다 준다고 한다. 부두에서 우리는 터키 안내를 해 주신 이재욱 선교사와 작별을 해야했다. 밧모섬에는 그리스 안내를 맡은 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2박 3일 동안 수고해 주신 선교사님과 함께 기도한 후 배에 올랐다.

우리가 밧모섬까지 타고 갈 배는 정원 50여명 남짓한 조그만 배였다. 지난번 갈릴리에서 선상예배를 드린 배보다 작은 것 같다. 이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다섯 시간 갈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난다. 조그만 배가 훨씬 요동이 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뱃멀미 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배의 별명을 '멀미호'라고 명명하였다. 그래도 아름다운교회 차영신 사모님은 멀미약을 넉넉히 준비하여 이 사람 저 사람 나누어주었다.

오전 7시 22분, 날씨는 항해를 하기에 아주 좋은 날씨이다. 우리 부부는 아예 잠을 자기로 하였다. 선실로 내려가 의자를 하나씩 차지했다. 그런데 너무 길이가 짧아 다리를 잔뜩 오므려야 누울 수 있다. 이래 가지고야 어디 잠을 자겠는가? 배가 출항하자 요동하기 시작한다. "주여 이 배에 혹시 요나가 타지는 않았겠지요?"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한 시간쯤 잠을 잔 나는 갑판 위로 올라갔다. 오히려 여기가 더 시원하고 좋았다. 우리 몇 명은 배 맨 위에 올라 앉아 너른 바다를 구경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행히 망망대해는 아니었다. 항상 육지가 멀리서 보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내 수영 실력으로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았다.

돌연 배 오른쪽, 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앞에 고래가 나타났다. 3-4m쯤 되어 보이는 고래가 갈색 등을 보이고 물 속에 나타난 것이다. 내가 먼저 "고래다" 하고 외쳤다. 순간이었다. 고래는 잠깐 솟구치는가 싶더니 배 앞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 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선실에 누워 있는 아내를 갑판 위로 데리고 올라왔다. 28명의 우리 일행은 작은 배의 여기저기에 떼를 지어 있었다. 갑판 아래 선실에 몇 명이 누워 있고, 갑판 뒤편에도 몇 명이 누워 있었다. 갑판 앞에서는 나무 의자에 몇 명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 몇 명은 구명보트가 실려 있는 배 꼭대기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모두 자신들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도무지 자신의 자리를 떠나지 않으려 한다. 아마도 뱃멀미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지금 멀미를 하지 않으니 자리를 잘 잡은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우리 일행은 크게 멀미를 하는 사람이 없이 밧모섬에 도착하였다. 물론 약간 속이 울렁울렁한 사람은 있었나 보다.

낮12시, 예정보다 20-30분 일찍 우리는 밧모섬 유일한 항구인 '스칼라(Scala)'항에 도착하였다. 밧모섬의 면적은 우리 나라 울릉도 절반정도 되며 남북의 길이가 16㎞, 동서의 폭은 섬의 중간부분이 불과 1㎞ 정도로 잘록하다.

우리가 닿은 스칼라항은 이 섬에서 유일하게 대형선박이 닻을 내릴 수 있는 항구이다. 배에서 내렸다. 요한이 유배되어 왔던 섬이기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곳일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대단히 경관이 뛰어난 섬이었다. 이곳의 집들은 대부분 백색 칠이 되어 있었다. 푸른 에게해와 깨끗한 백색의 집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우리가 밟는 땅을 요한도 밟았으리라!

그리스에서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온 김영자 집사님이 기다렸다가 따뜻이 맞이한다. 그런데 버스는 냉방이 안 된다. 집사님은 점심을 우선 먹고 오후에는 버스를 바꾸도록 주선해 보겠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상하다. 차영신 사모님이 나누어 주신 멀미약을 먹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정신이 몽롱하고 졸려 몸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내심 멀미약 좀 얻어먹을 걸 그랬다고 후회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멀미약을 먹지 않은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른다.

밧모섬에서 제일 큰 호라(Hora)마을이다. 우리가 찾아갈 요한의 기도 동굴이나 요한 기념 수도원은 모두 이 호라 마을에 있었다.

⸁요한의 계시 동굴

바다가 잘 보이는 절경에 백색건물이 하나 있다. 바다 쪽으로 향한 계단으로 내려가면 별로 크지 않는 동굴이 있다. 이곳이 바로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기도하며 살았다고 전해지는 '요한의 계시 동굴'이다. 이곳은 희랍 정교회에 소속된 곳이다. 계시동굴 입구에는 한 사람이 지키고 있어서 반바지를 입고는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래도 이 사람들은 입구에 긴치마와 긴 바지를 여러 벌 준비해 놓고 빌려 주고 있었다. 그것도 무상(無償)으로.

동굴의 한편에는 요한과 그의 충실한 제자였던 프로코러스를 그린 성화들이 가득하게 걸려 있다. 희랍 정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요한은 그가 받았던 계시를 프로코러스에게 구술했고, 프로코러스는 이것을 기록하여 요한계시록으로 남겼다고 한다. 아무튼 성경의 근거는 없는 이야기이다.

동굴의 제일 안쪽에 들어가니 커다란 바위가 있고 이 바위 1m 높이쯤 되는 곳에 사람 손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홈이 파져 있었는데, 그 홈에 은으로 테를 둘러놓았다. 요한이 엎드려 기도하고 일어날 때마다 그 벽면을 손으로 잡고 일어나서 팬 자국이라고 한다. 그 밑에는 요한이 엎드리어 기도한 자리에도 역시 홈이 패어 있고 은테를 둘러놓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본 사도 요한의 성화에는 한결같이 이마에 혹과 같은 군살이 그려져 있다.

이런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런 설명이 필요 없이 '이 동굴이 사도 요한이 항상 기도하다가 주님을 만나고 계시를 받은 곳입니다'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감동을 줄 것 같다. 이런 점이 기독교와 가톨릭의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지난번 로마에 있는 성당을 보면서 느낀 점과 지금 희랍 정교회를 비교해 보니 분명한 차이가 있다.

로마 가톨릭에는 조각품들이 많은데 희랍 정교회에서는 조각을 볼 수 없다. 대신 성화가 많이 있다. 이 희랍 정교회의 성화를 '이콘'이라고 부른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조각품을 우상이라 하여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느끼는 것은 이 사람들의 성화에 대한 지나친 열정(?)이나 로마 사람들의 조각에 대한 관념은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없었다.

②사도 요한 기념 수도원

전체 인구가 2,500명 가량인 섬 주민의 절반 정도가 살고 있는 호라 마을 한가운데 있는 언덕의 정상에는 난공불락의 요새와 같이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채가 압도할 듯 버티고 있었다. 바로 '요한 수도원'이다. 서기 1088년 '크리스토불러스'라는 수도자가 이 섬을 찾아와 요한을 기념하여 세운 수도원으로 희랍 정교회에 속해 있다. 수도원 안에는 크리스토불러스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 수도원의 박물관과 도서관은 희귀한 성경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수도원의 자랑하는 귀한 성경 중의 하나는 신약성경 마가복음서이다. 서기 500년대에 기록된 이 성경의 매장 첫 글자는 순금으로 썼고, 나머지 글자는 전부 은으로 썼다. 글자 그대로 '보물 성경'이었다.

거상들은 순조로운 항해를 염원하며 많은 보물을 수도원에 기증하여 현재 이 수도원 박물관은 엄청난 보물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성만찬 때 순금으로 만든 성구(聖具)들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러한 것을 해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요새와 같이 튼튼하고 접근하기 힘들게 건축했던 것이다.

이 수도원의 '요한 계시록'을 펼쳐들고 있는 요한의 초상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화다.

③점심식사 그리고 한 낮의 휴식

요한의 계시 동굴과 요한 수도원을 둘러본 우리는 점심식사를 위해 다시 스칼라항으로 내려왔다. 점심식사는 현지식이었다. 시간이 많으니 천천히 많이 먹으라고 당부를 한다. 그러나 빨리빨리 먹던 습관이 쉽게 고쳐지겠는가?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먹어치웠다. 처음 먹어 보는 그리스 식사는 환상적인 것이 못되었다. 그래도 디저트로 먹은 수박은 구미를 돋운다. 더구나 우리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들은 어찌 담배를 피워대는지 참다못해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다행히 이 분들은 미안한 듯 자리를 피해 준다.

점심을 먹고 나니 4시 30분까지는 휴식시간이란다. 아니 이 바쁜 일정에 웬 휴식시간인가 했더니 이곳은 더운 낮에는 관공서도 문을 닫고 버스 기사도 쉬는 시간이란다. 그러니 어디를 간단 말인가? 워낙 좁은 도시라서 몇 군데 기웃거리다 보니 갈 곳도 없다. 이상표 대리님은 조그만 오토바이를 빌려(렌트업체가 있었다) 신나게 돌아다닌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식당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국에 전화를 하려고 하니 그리스의 공중전화는 이 나라에서 판매하는 카드를 넣어야만 통화가 된다. 결국 전화도 하지 못하고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 집에 전화 걸기는 가장 좋은 시간인데 아깝다.

④미론의 집

4시 30분이 되어 도착한 버스는 오전에 왔던 그 버스가 아니었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작동되는 버스였다.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도착하여 맨 먼저 전도했다는 '미론의 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밧모섬에 있는 산마다 키가 작은 가시나무가 무척 많았다.

이곳에서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미론은 사도 요한이 이곳에 유배를 올 때 같은 배를 타고 온 이곳 관리였다고 한다. 그런데 도중에 험한 풍랑을 만나 미론의 아들이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지고 말았는데 사도 요한이 기적을 행하여 미론의 아들을 살려냈다고 한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미론은 사도 요한을 이곳 자기 집으로 초대하게 되었고 밧모섬에서 맨 처음 주를 영접한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미론의 집은 백색 원형지붕을 하고 지붕 위에는 역시 흰 십자가가 있었다. 안에 사람이 들어가 살도록 지어진 것은 아니고 다만 미론을 기념하기 위한 작은 건물이었다. 퍽 인상적인 것은 집으로 내려가는 양옆에 무성하게 자란 선인장과 무화과 나무였다. 특히 선인장은 수백 년도 더 된 듯 고목처럼 생겼고 보기 힘들다는 선인장 꽃도 만발해 있었다.

⑤해수욕장에서

미론의 집을 나선 우리는 산 너머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도중에 양떼를 만났는데 양떼들이 길을 막고 지나가 우리는 신기한 듯 양떼를 구경하며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해수욕장에 도착해 보니 물이 한없이 맑다. 사람들은 서너 명밖에 보이지 않는다. 너무 신나서 물 속에 들어가려는데 비보(悲報)가 전해진다. 이곳에는 샤워시설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 호텔에도 들어가지 않는데 그렇다면 어디서 샤워를 한단 말인가? 다행히 우리가 오늘 밤 타고 갈 배에는 샤워시설이 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해수욕을 하란다. 지금이 다섯 시, 우리가 배를 타고 샤워를 하려면 최소한 다섯 시간은 이대로 지내야 한다.

결국 용감한 사람 몇몇을 제외하곤 바닷가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닷가엔 조약돌이 참 아름다웠다. 아내는 예쁜 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여기가 우리 나라인 줄 아는가? 이 무거운 조약돌을 어떻게 끌고 다닐 참인가? 그러나 아내는 신기한 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조약돌을 줍는다. 아무튼 이렇게 모은 조약돌은 결국 집까지 가지고 왔다.

⑥사도 요한의 세례터

스칼라 항구 오른쪽에는 사도 요한이 밧모섬 주민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세례터가 있었다. 세례터라야 따로 어떤 시설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닷가에서 세례를 주었던 모양이다. 강물이나 냇물에서 세례를 준 사람이 많고, 혹은 침례교인들이 목욕탕을 빌려 침례 주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바닷물로 세례를 주었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지금은 평범한 바닷가인데, 세례터를 확인하는 안내판이 있고 바로 옆에는 이 섬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교회(희랍 정교회)가 있다. 교회의 안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다.

어찌하였든 죄수의 몸으로 유배된 사도 요한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증거들이 미론의 집이나 이 세례터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곳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짓고 유배되어 온 사람들일텐데 이 사람들이 요한을 통해 복음을 듣게 된 사실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마치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나서 사방으로 흩어졌을 때(행 8:1) 흩어진 그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졌던 것처럼 어느 곳이든지 구원받고 성령 충만 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마다 복음은 전파되고 교회는 세워졌던 것을 알 수 있다.

⑦스칼라항을 떠나면서

우리가 밧모섬의 성지들을 모두 순례하고 점심을 먹었던 그 식당에 돌아오니 저녁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의 메뉴 중 밥이 있었다. 가이드가 밥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잘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밥을 제법 할 줄 안다고 한다. 그런데 반찬이 없다. 아무래도 아직 반찬 만드는 법은 가르쳐 주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무엇으로 밥을 먹으란 말인가? 다행히 일행들이 가지고 온 김과 고추장이 있어서 나누어 먹었다.

배가 도착하는 시각은 일정하지 않다고 한다. 오후 8시부터 항구에 나가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다. 지루하게 기다렸다. 오후 9시 30분, 날이 어둑어둑할 무렵 산더미 만한 배가 서서히 항구로 들어온다. 우리가 타고 나갈 배란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들으니 정원이 2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사실 밧모섬 현지인들의 말을 엿들어야 믿을 수 있는데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까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하지는 못했지만 엄청나게 큰 것만은 사실이다).

내부로 들어가니 더 크고 넓어 보였다. 우리는 본래 4인 실을 쓰기로 되어 있었는데 2인 실로 변경시켜 주었다. 처음 며칠간 호텔문제로 불편을 겪었는데(사실은 불편을 겪은 것이 없다) 우리가 이런 숙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아신 성민관광의 이성근 사장님이 긴급조치를 취하신 것이다 . 비용이 얼마가 추가되더라도 좋은 곳으로 모시라는 엄명을 내렸다면서 급히 선실도 4인 실에서 2인 실로 변경시켰다고 한다.

선실 내부는 2층 침대가 놓여 있는 작은 호텔이다. 그러나 화장실과 사워실은 밖에 있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긴 배 안에서 어떻게 개인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배가 움직이는 대로 침대도 흔들린다. 작은 배가 촐랑거리며 흔들린다면 큰배는 천천히 점잖게 흔들린다. 그러나 멀미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잠을 청했다. 그렇지 않으면 멀미를 할지 모르니까. 밤새 파도소리가 마치 비가 쏟아지는 것처럼 들려왔지만 우리는 언젠지 모르게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다.

우리는 이렇게 깊은 잠에 취하여 10시간 이상을 왔는데 몇몇 목사님들은 멀미를 하셨나 보다. 어제밤 바람과 파도가 심하고 배가 몹시 흔들렸다고 한다. 특히 단장이신 유덕식 목사님은 퍽 고생을 하셨단다. 원래 유 목사님은 충남 서천의 해변가 출신이시다. 부모님이 어부이시기 때문에 뱃멀미는 모르신다고 하셨다. 어제 쿠사다시 항구를 떠나시면서 다른 사람은 다 뱃멀미를 해도 당신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도 멀미를 하셨는데 어젯밤 또 고생을 하셨나 보다. 연세가 드신 탓인가?

오전 7시 선상에서 먹는 아침 식사는 환상적이었다. 빵, 빵, 빵, 그리고 커피와 오렌지 주스는 막 준다. 더 먹어도 준다. 또 먹어도 준다. 베이컨 세 조각, 새알 만한 달걀이 두 개. 그리고 우리가 준비해 간 고추장과 김은 더욱 구미를 돋운다. 조그만 일회용 쨈 그릇에 꿀이 담겨 있다. 꿀은 그냥 홀짝홀짝 마셨다. 피로를 푸는데는 꿀이 제격이 아닌가?

식사를 마치고 일행이 나간 뒤 식당에서 수고하신 분들에게 팁을 1달러씩 나누어 드리고 목걸이 볼펜을 하나씩 드렸다.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팁을 줄 때는 "탱큐" 하고 받더니 볼펜을 주니까 "탱큐, 탱큐, 탱큐"를 연발한다. 우리를 서빙(serving)하지 않고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까지 달려와 부러운 듯 바라본다. 인심을 쓰자. 그들에게도 하나씩 주었다. 우리는 코리아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말도 잊지 않고.

아침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짐을 챙겨 들고 출입구 쪽으로 나갔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짐을 죽 놓았다. 20-30분쯤 지나자 아래층 문이 열렸다. 우리는 무거운 가방을 들고 배의 맨 아래 자동차를 싣는 곳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우리는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편하고 좋은 선실을 일찍부터 나와 왜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서둘지 않아도 우리가 다 내릴 수 있을텐데…. 참다 못한 목사님 한 분이 불평을 터뜨린다.

오전 9시 우리는 아테네 옆에 위치한 항구도시 피레우스에 도착하였다. 배에서 내리니 우리를 태울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버스에 올라타니 안내를 맡으신 집사님은 노상에서 파는 빵을 사오셨다. '스테판'이라고 부르는 그리스 정통 빵이란다. 목걸이 만한 도너츠라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다만 설탕대신 참깨가 붙어있다. 우리는 스테판을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의 목적지 고린도로 떠났다. 그때 시각은 9시 20분이었다.

(2)고린도

항상 그랬지만 오늘도 바쁘다. 오전 7시에 도착할 예정이었는데 예정보다 두 시간이 늦다. 오늘 고린도를 거쳐 아테네를 돌아보고 6시 35분 비행기를 타려면 5시 30분까지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갈 곳은 많고 시간은 없다. 여기서부터 고린도까지는 약 85㎞, 우리의 버스는 계속 해변을 따라 달린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운 경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곤한 목사님들의 눈은 반쯤 감겼다. 가이드는 아테네의 역사와 신화를 열심히 설명한다. 목사님들이 듣거나 말거나.

①고린도 운하

거의 한 시간쯤 달려 고린도 운하에 도착하였다. 옛날부터 고린도의 지협 때문에 이 지역을 운항하는 배들은 반도를 한 바퀴 빙 돌아야 했다. 더구나 주변 해역은 암초와 풍랑이 심해 파선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도인들은 이 문제를 기발한 방법으로 해결하였는데 그것은 고린도 지협에 돌로 포장된 길을 만들고, 또 특수하게 만든 바퀴 달린 수레에 배를 얹어 실은 후 수레를 끌어 이쪽 바다에서 저쪽 바다로 배를 이동했다. 1956년에 있었던 고고학 발굴 때 배들을 실어 날랐던 도로가 발굴되어 증명이 되었다. 이 도로를 '디올코스(Diolkos)'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지금도 당시 배를 실어 날랐던 수레들의 바퀴자국이 남아 있었다.

로마 제국시대에 들어와서 네로 황제는 이곳에 운하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네로 황제가 직접 이곳까지 와서 황금의 삽으로 흙을 파서 운하 공사를 시작했지만, 그러나 워낙 힘든 난공사여서 네로 황제가 죽은 후에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1,800년이 지난 19세기 말, 운하를 만드는 공사가 재개되어 높이가 70m나 되는 암벽을 25m의 폭으로 둘로 자르는 난공사 끝에 운하는 완성되었다. 1893년 완공된 이 운하는 현재 동쪽의 에게해와 서쪽의 이오니아해를 하나로 이어준다. 바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이 암벽을 잘라 만든 지역이다.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니 마치 두부모 자르듯 까마득한 암벽을 잘라내었다.

②아크로 고린도산

우리는 운하 옆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고린도로 향했다.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 아가야(그리스 남부)지방의 수도로 동서 무역의 요충지였다. 그곳은 상업이 발달하여 사람들은 부요했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거쳐 지나는 곳으로 문명이 부패한 도시였다. 이곳이 바로 비너스(Venus)를 숭배하는 본거지로 특히 음란했던 도시로 알려졌다.

신의 숭배를 미끼로 신전에서는 공공연히 음란 행위가 벌어졌고 또한 이 도시는 매춘이 활발했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가 신고린도를 오른편으로 하고 조금 지나니 눈앞에 우뚝 선 작은 돌산이 나타난다. 이 산을 '아크로 고린도산'이라 부른다. 이 산에는 큰 신전이 있었고 1,000명의 여사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신전의 여사제들이 곧 신전 창녀였던 것이다. 그들은 이 신전에 있는 여사제와 음행을 하면서 이것이 신과 접촉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성적으로 방탕한 사람들은 '고린도인처럼 산다'고 말했던 것이다. 조금 전 고린도 운하 옆에 있던 휴게소에서는 그림 엽서들을 팔고 있었다. 그림 엽서를 한장 한장 뒤적이다 보니 자기 키만한 성기를 과시하는 남성상이 있었다. 그림 엽서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아 어디서 이 실물을 볼 수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런 남성상이 출토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 아크로 고린도산 밑에 거대한 고린도 유적지가 발굴되었다. 지진에 의해 4-8m의 지하에 묻혔던 고대 고린도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크로 고린도산의 신전을 중심으로 거대한 음란의 도시가 형성되었었고 하나님은 무려 21차례 크고 작은 지진으로 이 도시를 심판하신 것이다.

그렇게 죄악이 팽배한 도시 고린도를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바울을 보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고린도 교회는 주후 50년경에 제2차 전도 여행을 하던 바울이 고린도 지방을 방문하여 그곳에 있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강론을 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그 때, 많은 유대인들로부터 반대와 배척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머문 1년반 동안 많은 회심자를 얻게 하셨고, 또한 회당장 그리스보까지 회심하는 놀라운 결과를 얻게 하셨던 것이다(행 18:8). 그때 그들과 함께 세운 교회가 바로 고린도 교회다.

이 때, 바울과 함께 고린도 교회를 위해 동역한 사람 중에는 장막을 만드는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그리고 베뢰아에서 맡은 임무를 마치고 합세했던 실라와 디모데가 있었다. 그 후 바울이 열심히 사역한 결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크게 성장한 교회를 남겨 두고 에베소로 떠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없는 사이 고린도 교회 안에는 세상적인 지혜와 도시의 악한 관습이 들어오고 또한 그것에 유혹되어 심한 시련과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면서 음행과 온갖 죄를 용납하고 타락해 가는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신랄하게 책망하는 내용을 서신으로 보냈는데 이것이 고린도전서이다.

유명한 '사랑의 찬가'(고전 13장)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초대교회에 보낸 편지임을 우리는 잘 안다. 이처럼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깊은 애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던 교회였다. 그러기에 바울은 부족한 자식을 더욱 아끼는 애틋한 부모의 심정으로 더 사랑하였고, 두 번에 걸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③고린도 유적지

우리는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고린도 유적지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상상은 했지만 이곳은 완전히 폐허가 된 거대한 도시였다. 건축물의 규모는 몰라도 도시 자체의 규모는 에베소보다 훨씬 크고 넓어 보인다.

입구에 들어서니 우선 폐허가 된 옥타비아누스 신전이 눈에 띤다. 신전의 대부분은 땅에 묻혔고 그 일부만 발굴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먼저 박물관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고대 고린도의 모습을 관찰하였다. 우선 박물관 뜰에 세워진 수많은 석상들은 한결같이 목이 잘려 나가고 없었다. 이것은 당시 조각 방법이 몸통 부분을 조각한 뒤에 머리 부분은 따로 조각하여 끼웠기 때문에 지진이 나면서 모두 끼워 놓은 목이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부패하고 타락한 당시 고린도 지도자들을 심판하신 것과 같은 흉한 모습이다.

박물관에는 고린도 회당 유적이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가 가버나움에서 보았듯이 회당 건물에는 그 특유한 조각이 있어 금방 알 수 있었다. 일곱 개의 촛대(메노라), 포도송이 등의 무늬가 기둥이나 들보 같은 곳에 조각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고린도 유적지에서도 이런 조각이 있는 돌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글씨가 앞부분은 떨어져 나갔지만 '쉬나고게(회당)'라 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회당이 바로 바울이 안식일마다 강론했던 그 회당이다(행 18:4). 이 회당장은 그리스보인데 그의 온 가족이 예수를 믿으므로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회당 옆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가 살고 있었다. 그는 바울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비록 우리가 본 것은 메노라와 글씨 몇 자가 있는 돌 하나였지만 우리는 여기서 2,000년을 뛰어 넘는 바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것이 성지를 순례하는 묘미가 아니겠는가?

고린도 유적지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물은 아폴로 신전이다. 이 신전은 우리가 책에서 흔히 보았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우리가 이곳에 들어올 때 받은 입장권에도 이 아폴로 신전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 아폴로 신전이 유명한 이유는 목조건물에서 석조 건물로 변화되는 초기 건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④비마

바울의 고린도 전도는 순항을 한 것만은 아니다. 유대인들의 박해는 끈질겼다. 바울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밤, 주님은 환상 중에 나타나셨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니라"(행 18:9-10).

용기를 얻은 바울은 1년 6개월간 머물면서 전도에 힘을 쏟았다. 그럴수록 유대인들의 박해는 거셌다. 마침내 유대인들은 바울을 잡아 당시 아가야 총독이었던 갈리오에게 끌고 왔다. 그러나 재판자리에 나온 갈리오는 냉정했다.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했거나 부정한 일을 행했으면 내가 재판하겠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아니라 언어나 명칭, 너희 법에 관한 문제라면 나는 재판을 하지 않겠으니 너희가 스스로 결정하라." 하고 재판자리에서 쫓아냈다고 성경은 기록되어 있다. 약이 오른 유대인들은 애매한 회당장 소스데네만 두드려 팼다.

이처럼 사도행전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끌고 갔던 장소가 '재판자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을 희랍어로는 '비마'(Bema)라 부른다. 비마란 총독이 연설하거나 재판을 할 때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돌로 만든 높이가 5m, 폭이 15m 정도 되는 큰 단이다. 우리는 비마 앞에 서 있었다. 이 단 앞에 바울이 끌려와 서 있고, 단 위에는 길리오가 총독의 정장을 입고 의자에 앉아 있었을 것이다. 신약시대의 역사가 생생하게 되살아 나는 이곳에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였다.

비마 가까운 곳에는 피레네 샘과 시장터(아고라·Agora)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고린도의 다른 유적은 생략하기로 했다. 이 넓은 유적을 샅샅이 살펴보기에는 일정이 너무 짧았다.

⑤에라스도 거리

우리는 밖으로 나와 에라스도 거리로 향했다. 가는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거친 곳이니 원하는 사람만 따라오라고 하였지만 우리가 누군가? 나중에 보니 결국 28명 모두 따라오고 있었다. 이곳은 성지순례를 하시는 분들도 대개 그냥 지나치고 마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내려가는 길은 온통 가시덤불과 잡초로 뒤엉켜 있었고 군데군데 대인지뢰(?)도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낭패를 당한다. 나도 내려갈 때는 무사히 갈 수 있었는데 다녀와서 버스를 타려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 발밑을 보니 언제 밟았는지 대인지뢰(대변)의 파편이 신발 바닥에 붙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 길은 대리석으로 깔려진 길이었다. 이 길은 우리가 조금 전에 보고 온 피레네 샘 근처의 아고라(시장)에서부터 연극장이 있었던 이곳까지 연결된 길이라고 한다. 길을 걷다 보니 대리석 위에 선명한 글씨가 보인다. 안내를 맡은 집사님이 읽어 주시는 단어를 하나하나 살펴보니 '에라스도(Erastus)가 사비(私費)를 들여 이 길을 돌로 포장했다'라는 글씨였다.

시장에서부터 연극장까지 이 중요한 도로를 사비로 포장을 하고 이름을 남긴 에라스도는 과연 누구인가?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에 편지를 보내면서 이렇게 썼다.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롬 16:23). 에라스도는 고린도시의 재무를 맡아보던 고관이었다. 그가 바울을 만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얻은 바울은 얼마나 힘이 되었을까?

우리는 다시 험한 길을 올라오면서 야생 무화과와 오렌지 나무에서 과일들을 딸 수 있었다. 이만큼 이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다. 그곳에는 야생 샐러리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샐러리보다 향기가 훨씬 진하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하였는데 썩을 면류관이란 바로 이 야생 샐러리로 만든 면류관이라고 한다. 대개의 성경주석에는 달리기에 우승한 사람들에게 월계수 잎으로 만든 면류관을 씌워주었다고 기록되었지만 이 고린도에서는 월계수 잎이 아니라 샐러리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도 월계수 잎은 며칠 가겠지만 샐러리야 하루 이틀만 지나도 썩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이에 비교한다면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은 썩지 않을 면류관이 아닌가.

⑥고린도 교회와 잊지 못할 점심

우리는 고린도 신도시 안에 있는 '고린도 기념교회'를 찾아갔다. 바울이 세운 교회는 아니고 바울이 고린도에 복음을 전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크고 깨끗한 교회였다. 교회 입구의 오른쪽에는 고린도전서 13장이 새겨져 있었고 왼쪽에는 역대 교역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탄 우리는 고린도 운하 옆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다. 물론 아까 올 때 지나왔던 그 길은 아니다. 그런데 이날 식당에서 준 물은 바닷물이 섞인 짠물이어서 도저히 마실 수 없었다. 차라리 물을 사 먹으라고 하지 속보이게 어차피 못 마실 물을 왜 주느냐고 목사님들의 원성이 대단하다. 게다가 점심으로 나온 음식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손바닥 두 개를 맞붙인 것만큼 커다란 고기인데 무슨 소스를 얹었는지 도저히 비위가 상해 먹지 못하겠다. 이제까지 열흘이 넘도록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 보았지만 이런 음식은 처음이다. 이 아까운 고기를…. 차라리 생고기를 구워 먹어도 이보다 맛이 있을 것이다. 아깝다. 휴대용 가스렌지만 있었다면….

우리가 얼렁뚱땅 식사를 마치고 운하 위의 다리를 건너는데 배가 지나간다고 빨리 뛰란다. 처음에 수에즈 운하를 지날 때도 마침 배가 지나가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이 고린도 운하에서도 이런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다른 점은 수에즈 운하에서는 화물선을 만났는데 이 배는 우리가 밧모섬에서 나올 때 타고 온 배보다 결코 작지 않는 거대한 여객선이었다. 갑판 위에 있는 승객들은 우리를 향하여 손짓을 한다. 우리도 힘차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배가 서서히 나타나자 지금 막 우리가 건넌 다리가 서서히 물 속으로 잠기기 시작한다. 배가 지나가도록 다리를 들어올리는 경우는 보았지만 철로 만든 육중한 다리가 물 속으로 내려가는 것은 처음 보았다. 나중에 배가 지난 후 다리를 들어올리면 미처 피하지 못한 큰 물고기들이 다리 위에서 펄떡펄떡 뛴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한 척의 배가 준비되어 기다린다는 말에 그 물고기는 줍지 못하고 길을 떠났다.

(3)아테네

아테네. 그리스 문명의 산실이요 요람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곳,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주를 논했던 철학의 도시이다. 천재 시인 바이런(Byron)은 이 아테네를 너무도 사랑하여 이런 노래를 남겼다. '아테네의 여인이여! 그대와 헤어지기 전, 나의 마음을 돌려다오!' 바이런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자원하였고 그가 사랑하던 아테네를 위하여 36세의 젊음을 바쳤다. 그 때가 1824년이다. 그 후 173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흥분과 설레는 마음으로 아테네에 입성한다.

①아레오바고

바울이 이 아테네에 발을 딛게 된 것은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 유대인들의 박해를 피해 내려왔을 때이다(행 17:15). 바울은 아덴(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면서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

하늘과 땅 위에 오직 한 분뿐인 참되신 하나님을 믿고 섬기던 바울은 분한 마음을 떨치지 못한다. 그리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날마다 회당으로 저자거리(시장터 즉 Agora)로 나가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을 하였다. 흥미를 느낀 아테네의 철학자들은 이 '새 교'를 전하는 말장이 바울을 아레오바고(Areopagus)로 데려갔다.

아레오바고는 제우스 신의 아들 아레스(Ares)가 자기 딸을 겁탈한 사촌형제를 죽인 죄로 다른 신들 앞에서 재판을 받은 바위 언덕을 말한다. 그 후 이곳을 '아레스의 언덕' 곧 아레오바고라 불렀고, 이런 전설에 따라 이곳에서는 살인죄를 범한 사람을 재판하다가 나중에는 시의회가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소크라테스도 이곳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바울로서는 아테네의 가장 중요한 장소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모든 인간은 그의 피조물이다. 따라서 사람은 금이나 은, 돌로 만든 신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가 올라간 아레오바고는 해발 113m의 나지막한 바위 언덕이다. 차에서 내려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을 20-30m쯤 올라가면 한 눈에 아테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데, 워낙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 전체가 대리석이라서 대단히 미끄러웠다. 더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닳고닳아 조심해야지 자칫하면 미끄러져 다치기 십상이었다.

②아크로폴리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보인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 한복판에 솟아 있는 언덕으로 아테네의 상징적인 유적지이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올림포스 신들에게 제사 지내던 성역으로 지도층 인사들조차 출입이 제한되었던 곳이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대부분은 중심지에 약간 높은 언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을 폴리스라고 불렀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도시국가가 폴리스로 불리게 되어 본래 폴리스였던 작은 언덕은 'akros(높은)'라는 형용사를 붙여 아크로폴리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각 폴리스에는 원칙적으로 아크로폴리스가 있었지만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라고 할 때에는 아테네 시를 가리킨다. 아테네시의 아크로폴리스는 동서 약 270m, 남북 약 150m로 서쪽의 올라가는 입구를 제외하고 다른 3방향은 가파른 절벽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에 다시 성벽을 쌓고 인공을 가해 방비의 거점으로 삼았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는 세계 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③파르테논 신전

아테네의 황금기는 BC.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였다. 그는 유능한 정치가요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였다. 그는 아테네에 많은 건물을 지어 그리스 건축 예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 가운데 최고의 걸작은 역시 파스테논 신전(Naos-tou Parthenonos)이다.

아클로폴리스에 세워진 파르테논 신전은 BC. 479년에 페르시아 인이 파괴한 옛 신전 자리에 아테네 인이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것으로서, 도리스식 신전의 극치를 나타내는 걸작이다. 조영(造營)은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총감독 하에, 설계는 익티노스, 공사는 칼리크라테스의 손으로 진행되어 BC. 447년에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하였다.

이 신전은 중앙이 약간 솟아 있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아 언뜻 보면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지만 이것은 사람 눈의 착시현상까지 계산하여 멀리서 바라보도록 설계, 축조한 것이라고 한다. 1687년 베네치아 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것을 부분적으로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폭이 30.8m, 길이가 69.5m, 높이가 10.4m 되는 46개의 도리아식 석주가 둘러서 있어 그리스 건축예술의 백미를 이룬다. 흥미 있는 사실은 파르테논 신전 어떤 부분도 기하학적 직선으로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육안으로 쉽게 식별이 되지는 않으나 이 신전의 모든 부분은 예외 없이 완만한 곡선으로 되어 있어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신전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기둥마저 수직으로 서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든 기둥들은 안쪽으로 약간 경사지게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 910m 상공에 있는 가상의 한 꼭지점에서 모두가 정확히 만나도록 설계되었다.

당시의 정밀한 설계와 발달된 수학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파르테논 신전은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서 인류문화제 제1호로 지정했다.

공항 출국시간에 쫓긴 우리는 아쉽지만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고 '요정의 언덕'에 올라가 멀리서 바라본 후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향했다.

④올림픽 스타디움

일명 파나티나이콘 스타디움이라 불리는 이곳은 1896년 제1회 국제 올림픽 경기가 열렸던 경기장이다. 기원전 331년에 판 아테나 대축제의 경기장으로 조성되었던 곳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트랙은 고대 경기장과 같은 말굽 모양으로 되었고, 좌석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수용 인원은 5만 명이라고 한다.

금년 8월에 이곳에서 세계 육상경기가 열릴 예정이고 2004년에는 올림픽을 유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특히 이곳에 세워진 석상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성기를 통해 힘을 과시하는 표현법이 익살맞게 나타났다. 석상 앞뒤에는 각각 다른 얼굴을 한 같은 사람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다. 관중석을 향한 얼굴은 젊었지만 고추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은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었지만 고추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아무리 늙어도 꾸준히 운동을 하면 이렇게 힘이 있고 정력이 왕성하지만 비록 젊어도 운동을 하지 않으면 힘이 없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⑤아테네 공항으로

우리들은 이것저것 꼼꼼히 살필 여유가 없었다. 운동선수들처럼 뛰고 뛰었다. 정신없이 뛰었다. 공항에 도착해야 할 시각은 다가오고 갈곳은 많다. 이상표 대리님은 발을 동동 구른다. 그래도 이렇게 서두른 덕택에 5시 40분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남은 시간은 50분, 일반적으로 공항에는 두 시간 전에 나가야 하는데 이 대리님이 바쁘시다. 우리는 어제부터 수고해 주신 김영자 집사님과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타고 떠날 비행기는 6시 35분 발 영국항공의 보잉767 여객기. 그러나 허겁지겁 출국 수속을 밟고 시간에 맞추어 비행기에 올랐는데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기다렸다. 아마 허둥지둥 우리보다 더 늦게 달려오는 손님들이 있는지도 모른다. 비행기는 탑승예정인 손님이 모두 탈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준다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우리는 너무 허둥댄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오후 8시, 비행기는 서서히 이륙을 하였다. 아테네의 못 다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영국 편

처음에 김포 공항을 떠나 도착했던 영국의 히드로 공항. 우리는 11일 만에 다시 이곳에 내렸다. 그러나 그 때는 공항 안에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오늘은 영국 땅을 밟기 위해 왔다. 이때의 시각은 오후 11시 50분, 그러나 영국 시각은 9시 50분이었다.

흔히 영국을 '영국 연합왕국' 이라고도 하지만 정식 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이다. 영국을 흔히 잉글랜드(England)라고 하지만 잉글랜드는 그레이트 브리튼의 일부이며, 그 밖에 웨일즈와 스코틀랜드가 모여 그레이트 브리튼을 형성한다.

런던의 히드로 공항은 평균 50초에 한 대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유럽 최대의 공항이라고 한다. 영국에서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나온 가이드는 아직 미혼인 양성희씨. 지금까지 우리를 안내해 준 분들이 모두 교역자님들이거나 집사님이셨는데 이 분은 아직 종교가 없단다. 또 목사님들을 많이 모셔 보지 못했는지 호칭을 뭐라고 할지 몰라 '선생님'들이라 했다 '관광객'이라고 했다 횡설수설한다. 보다 못한 한 분이 안타까운지 우리는 목사 부부들이니 그저 '목사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편할 것이라고 알려 주니 그제야 숨을 쉬는 것 같다.

그녀는 우리가 하루를 잘 숙소로 안내하면서 굉장히 긴장을 한 이유를 설명했다. 도대체 어떤 손님이 오시는지 한국에서 하루 종일 전화와 팩스가 그칠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번에 오시는 분들을 잘 모실 것을 당부하고 최고의 호텔로 모시라는 주문이었단다. 그래서 통상 모시고 가는 호텔들 중에서 비교적 깨끗하고 좋은 곳을 예약했더니 예약을 취소하고 돈은 얼마가 들든지 상관치 말고 최고의 호텔로 다시 예약하라고 해서 지금 우리가 가는 곳을 정했단다.

통상적으로 여행사는 단체 손님을 미리 예약하기 때문에 객실 요금을 상당히 할인 받게 되는데 이번엔 급히 변경하느라 거의 정상요금을 다 지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여행객을 안내해 온 자신도 이 호텔에 들어가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법석을 떨다가 우리를 만나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목사님들을 만나니 이렇게 재미있는 분들인 줄은 몰랐다면서 웃는다. 우리는 성민관광의 이성근 사장님께 그저 고맙고 미안할 뿐이었다.

①런던에서의 잊을 수 없는 밤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자비스호텔(Jarvis International Hotel)이었다. 여기는 호텔의 등급을 왕관으로 표시하고 있었는데 왕관을 세어 보니 다섯 개나 되었다.

영국의 호텔들은 대부분 옛날 귀족들의 저택들을 개조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최신형보다는 정통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시설보다는 서비스가 좌우한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간 호텔도 불과 3층 정도의 나지막한 호텔인데 대단히 넓고 부대시설이 많았다. 그러나 늦게 도착하여 일찍 나가야 하는 우리에게는 이런 부대시설을 이용해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호텔 객실 안에는 커피포트와 함께 몇 가지의 커피와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것은 호텔에서 서비스하는 것이니 부담 없이 타 먹으라고 했다. 우리 부부는 샤워를 한 후 차를 마시고 시내산에서 선물 받은 컵라면을 뜨거운 물에 부어 둘이 먹었다. 사실 지금까지 뜨거운 물을 구할 수 없어 넣고 다녔던 것이다. 깊은 밤, 컵라면 한 개를 가지고 둘이 나누어 먹은 그 맛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날 알게 된 일이지만 우리의 단장이신 유덕식 목사님이 한바탕 소동을 피우셨나 보다. 유 목사님은 한국을 떠날 때부터 양복 한 벌을 가지고 오셨고 전기 다리미도 챙겨 오셨다. 지금까지 우리가 묵었던 호텔과는 달리 여기는 다리미판도 붙어 있었다. 양복바지와 와이셔츠의 다림질을 끝내신 유 목사님은 누구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려고 밖을 내다보셨다. 물론 문이 닫히지 않게 한쪽 발은 방안에 들이밀고…. 그런데 몸을 너무 내밀었는지 발이 방에서 빠져 나오면서 문이 닫히고 말았다. 깜짝 놀라신 목사님은 방문을 열어보지만 본래 호텔 문은 자동으로 잠기지 않던가. 덥다고 옷은 다 벗고 속옷차림으로 졸지에 복도에 내밀린 목사님은 얼마나 난처하셨던지. 길고 긴 복도에 아는 사람은 얼씬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양으로 후론트에 달려가 열쇠를 달라고 할 수도 없고 앞이 캄캄하셨단다.

몇십 분이 지났는지, 저쪽에서 김동성 목사님의 모습이 보였다. 목사님은 너무 반가워 달려가셨는데 복도 중간 중간에 문이 또 왜 그리 많은지, 아무튼 소리를 질러 김 목사님을 만나 사정을 하여 가까스로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신다. 나는 지난번 쿠사다시에서 호텔 방 번호를 잊어 해프닝을 연출했는데 단장님은 한 수 위다.

아침 식사는 어디서 볼 수 없는 성찬이었다. 대부분 호텔의 아침 식사는 커피와 달걀 후라이, 그리고 빵 하나 정도인데 반해 이곳은 먹을 것이 풍성했다. 아무튼 우리는 마지막 아침 식사를 우아한 호텔에서 우아하게 마치고 하루의 일과를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②하이드 파크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여기에 안개만 조금 끼면 전형적인 런던의 아침이라고 한다. 한국 사람들이 영국을 여행할 때 특히 조심할 것은 자동차의 차선이 일본처럼 우리와 반대라는 점이다. 운전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도 습관적으로 반대쪽을 보고 건너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영국 특히 런던에서 주의할 것 또 하나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런던이라고 하면 영국 신사를 연상케 된다. 중절모를 쓰고 버버리 코트를 입고 긴 우산을 들고 있는 전형적인 영국 신사들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런던에서는 도난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사의 나라 영국 수도 런던에서 그 무슨 실례의 말씀이냐고 했더니, 영국은 신사의 나라지만 런던은 국제도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특히 한국 사람은 현찰을 많아 가지고 있어 언제든지 표적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은 돈뿐 아니라 한국인 여권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비자가 찍힌 한국인 여권은 여기서도 엄청난 값에 거래된다고 하니 욕심을 낼 만한데 무엇보다 주의할 것은 이렇게 분실된 여권은 자칫하면 북한 공작원들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고 한다. 양성희씨의 이런 설명을 듣고 나도 모르게 여권이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영국은 의료보험이 잘 되어 있어 웬만한 병원비는 모두 무료라고 한다. 그리고 교육비도 무료,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주택을 무료로 공급해 주며, 직장을 잃으면 여유가 있을 만큼의 실업수당을 주며 일정한 나이가 되면 노인수당이 나와 여생을 고생하지 않고 살도록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한다. 물론 그대신 세금은 많단다.

우리가 버스를 타고 맨 처음 찾아간 곳은 하이드 파크(Hyde Park)였다. 하이드 파크는 영국인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의 하나로 중세기에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의 정원이었으나 17세기 헨리8세가 왕실 수렵장으로 사용하면서부터 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그 뒤 공화국 시대에 몰수·매각되었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다시 시민공원으로 복귀되었다. 북동단의 마블아치와 남동단의 하이드파크코너를 잇는 경계선에서 서쪽에 이웃하는 공원 켄징턴가든스에 이른다. 마블아치 부근의 일각은 스피커스코너로 애칭되는 장소로 자유스러운 연설장으로 알려졌다. 남서쪽에 펼쳐진 광대한 잔디와 수림, 1733년에 완성된 구부러진 야구방망이형(形)의 서펜타인못[池], 남쪽으로 치우친 로튼로우라는 이름의 기마(騎馬) 도로 등이 유명하다. 1851년에는 제1회 만국박람회의 주회장(主會場)이 되었다.

런던에는 모두 115개의 크고 작은 공원이 있는데 하이드 파크는 두 번째 큰 공원으로 공원의 넓이가 67만평이나 된다고 한다. 런던의 시내 한 중심에 이렇게 넓고 잘 다듬어진 공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일인가?

이곳에서 조금 남쪽으로 벗어나면 18세기에 캐롤라인 왕비가 직접 지휘하여 조형했다는 인공연못(Serpintine)이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하이드 파크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옆으로 구경을 하면서 버스로 지나쳐야만 했다.

③버킹엄 궁

버킹엄 궁(Buchingham Palace)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궁전으로 영국 왕실의 상징이다. 1703년 버킹엄공작 셰필드의 저택으로 건축되었으며, 1761년 조지 3세가 이를 구입한 이후 왕실 건물이 되었다. 1825∼36년 건축가 J.내시가 개축하였으며, 왕실의 소유가 된 뒤에도 당분간은 왕궁의 하나에 불과하였다. 1837년 빅토리아 여왕 즉위 뒤에 국왕들의 상주(常住)궁전이 되었다. 1846년 E.블로어와, 1913년 A.웨브가 동쪽 옆면을 증개축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었다. 2만㎡의 호수를 포함한 17만 4000㎡의 대정원, 미술관, 도서관 등이 있다.

궁전의 담은 마치 우리 나라 덕수궁 돌담 같다. 겉모양은 생각보다 단순하게 생겼는데 내부에 들어가 보면 대단히 화려한 궁전이라고 한다. 지금 이 궁전 안에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그의 남편 필립 공, 그리고 300여 시종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여왕이 궁전에 있을 때에는 건물 정면의 로열스탠더드 깃발이 펄럭인다고 하는데 오늘도 깃발은 나부끼고 있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을 재현할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하는 궁전 앞 광장의 빅토리아 여왕 기념비는 황금천사가 조각된 아름다운 작품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버킹엄 궁의 사진 대부분을 이 기념비 앞에서 찍었다. 이 궁전의 전통 복장을 한 근위병 교대식은 유명하다. 4-9월까지는 매일 교대식이 있고, 10-3월에는 하루걸러 오전11시경에 시작한다. 우리가 조금만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이 멋진 교대식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쉬웠다.

④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영국의 국교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분리 독립된 성공회(Anglican Church)이다. 성공회라는 명칭은, 니케아 공의회(325)의 신앙고백 중 교회에 관한 표현으로, '하나이요, 거룩하고, 공변되고, 사도적인 교회' 라고 한 것을 빌어 성(聖)과 공(公) 두 자를 합하여 성공회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영국계 인종이 분포된 국가나, 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에 있는 성공회는 '영국 교회(Church of England)' 라고 부르며, 영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했던 미국의 성공회는 '주교 감독제 교회'라는 뜻의 에피스코팔 교회(Episcopal Church)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넓은 뜻의 성공회란, 영국교회의 대표주교인 캔터베리 대주교 관구(大主敎管區)와 통공(通共)관계에 있는 모든 교회를 일컫는다.

15세기에 동·서 교회가 분리되면서 서유럽의 교회들은 계속해서 교회의 최고 감독수위권을 로마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에 이르러 독일과 북유럽의 교회들이 로마의 감독권 밖으로 이탈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종교개혁이다. 여기에 이어서 영국의 교회도 신학적으로, 정치적으로 로마의 지배하에 있기를 거부하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영국의 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분리되어 별도의 역사와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이것이 성공회가 로마 가톨릭과 헤어진 역사이다.

영국에 그리스도교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다만 175년경에 이미 상당수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그 후 약 15세기 동안 교회는 영국 땅에서 착실히 발전을 하였다. 1533년 캔터베리와 요크, 즉 영국교회를 대표하는 두 개의 관구(管區)회의에서 공히 영국의 왕(당시 헨리 8세)을 교회의 우두머리로 할 것을 결의하고, 동시에 로마 교황은 신앙적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감독권을 행사할 권리가 없다고 선포하였다. 이어서 1536년 '로마의 감독권'을 폐지하는 법령을 발표하고, 1570년 교황 비오 5세가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를 파문(破門)하자, 영국교회는 완전히 로마교회와 갈라서고 말았다.

성공회의 신앙적 특징은, ①복음을 전하려는 왕성한 전도의욕, 학문에 대한 존중, 그리고 교회의 토착화 정신이며, ②동·서 교회로 분리되기 이전에 공의회(公議會)가 결정한 모든 교리를 그대로 지키고, 성경과 7성사(聖事)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삼으며, ③극단적인 그리스도교와 가톨릭교 사이에 중도(viamedia)를 걷는 것이다. 한 때 영국교회는 교리의 표준을 39개조 신앙고백과 《도리문답서》 그리고 에드워드 6세 때 발행된 두 권의 설교집으로 정한 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성공회의 신앙적 전통은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성공회기도문(聖公會祈禱文)》에 수록되어 있으며, '42개조 신앙고백'을 기본 신조로 하고 있다. 성공회의 교리적 이해는 온건한 칼뱅주의라고 볼 수도 있는데, 성경의 권위와 신앙의인(信仰義認)의 교리를 중시하고 원죄설을 시인한다. 성공회는 예전적(禮典的) 교회로서 작성된 기도문에 의거하여 모든 예전을 집행한다. 성세성사(세례식)와 성체성사(성찬식) 외에 고백성사·혼인성사·견진(堅振)성사·종부(終傅)성사·신품성사(성직 안수식) 등 7성사를 행한다. 신도는 미사에 참예하며 매일의 조도(朝禱)와 만도(晩禱)를 통하여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다.

성직에는 세 계급, 즉 주교(主敎:Bishop), 사제(司祭:Priest), 부제(副祭:Deacon)이다. 주교는 성직을 받을 자에게 서품하며, 견진성사를 베풀고, 자기 관할하의 모든 교회의 성체성사를 비롯한 모든 성사의 집행을 감독한다. 주교는 교구의회에서 선출되고, 다른 세 주교의 동의를 얻어 주교가 된다. 사제는 전도구(傳道區:Parish)를 돌보며 특별히 성체성사 즉 미사를 집전하는 책임이 있다. 부제는 사제를 보좌하며, 성사집행권은 없으나 설교할 수 있고, 교회의 제반 업무를 맡는다.

성공회는 공교적(즉 가톨릭) 신앙을 지킨다. 즉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신조(사도신경, 니케아신경, 성아타나시오신경)를 믿는다.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을 정경(正經)으로 삼고, 믿음과 도덕의 근원적 표준을 삼는다. 이외에 외경(外經)인 14권의 책을 생활의 모범과 도덕의 교훈서로 읽고 이를 준정경(準正經)으로 삼고 있다.

성공회의 대표적인 성당은 역시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이라고(Westminster Abbey) 할 수 있다. 정식으로는 Collegiate Church of St. Peter in Westminster라 부른다. 605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대체로 에드워드 참회왕(懺悔王:재위 1042∼66)이 1050년경에 착공하였다. 영국 왕실과 인연이 깊은 대성당으로 역대 제왕의 묘소는 거의 이곳에 있고 또 윌리엄 1세의 대관(戴冠:1066) 이후로는 대관식장으로서도 알려져 있다. 저명인사의 묘도 많아 특히 남쪽 익랑(翼廊)은 시인(詩人)의 코너로 불리어 초서, 스펜서, 테니슨 등 많은 대시인들의 무덤이 있다. 중심을 이루는 현재의 대성당은 건축이나 미술에 의욕적이던 헨리 3세가 1245년에 착공한 것이다. 북(北)프랑스 고딕양식을 계승, 1298년에는 거의 완성되었다. 또 늑골궁륭(肋骨穹:리브 볼트)의 조형적 가능성을 추구한 영국 특유의 수직식(垂直式) 장식으로 알려진 화려한 헨리 7세의 예배당(1502∼20)이나 영국이 낳은 대건축가 C.렌의 손으로 세운 탑(17세기) 등도 유명하다.

그 옆에는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빅벤(Big Ben) 시계탑이라 부르는 커다란 시계탑이 인상적이다. 1859년 G.베게트의 설계로 주조되었는데, 당초의 공사를 담당한 벤자민경(卿)의 공적을 기리는 뜻에서 이 명칭을 붙였다고 한다. 97.4m 높이의 탑 위에 세워진 시계는 문자판의 지름은 약 7m, 중량이 13.5t으로서 당시 4만 파운드의 비용을 들여 만든 그야말로 세계 최대의 시계탑이라고 한다. 또한 이 시계는 100년이 지났지만 시간이 정확하기로 유명하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건너편에는 세계 감리교 총본부가 위치하고 있었다.

⑤쇼핑

고국에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아무래도 선물 구입에 관심들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가이드는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은근히 물건을 사도록 부추긴다. 지금까지 하이드 파크나 버킹엄 궁, 웨스트민스터 교회는 빨리빨리 지나쳤는데 이 매장에 와서는 시간을 넉넉히 준다.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버버리 직매장이다. 버버리 직매장은 각 나라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도록 별도의 매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안내 받아 간 곳은 한국인들을 위한 매장인가 보다. 한국인 직원들이 안내를 해 주고 있으며 한국의 원화도 받고 있었다.

매장에는 버버리 제품과 닥스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버버리 코우트 한 벌에 70-80만원은 주어야 한다. 스카프 한 장에는 30만원은 주어야 한다. 그래도 우리 일행 중에는 사모님에게 버버리 코우트와 스카프를 둘러 드리는 분들도 있고, 이것저것 물건들을 고르고 있다. 나와 아내는 슬그머니 매장을 빠져 나왔다.

길 건너에 있는 소품 매장, 화장품과 시계, 만년필 등 각종 기념품들이 많이 있었다. 역시 한국인 종업원이 안내를 해 주며 원화 결재도 가능하다. 두 주간 동안 고생하신 전도사님들, 장로님, 우리의 여행을 잘 다녀오라면서 봉투를 쥐어주던 성도들, 그리고 지영이와 대연이…. 문득 이런 얼굴들이 스쳐간다. 아내와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다가 우리는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처음에 떠날 때 서로 약속을 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손을 꼭 잡고 매장을 빠져 나왔다. 아침에 비를 뿌리던 런던의 하늘이 오늘따라 맑고 상쾌해 보인다.

⑥런던에서 서울로

쇼핑을 끝낸 우리는 서둘러 히드로 공항으로 떠났다. 이곳의 짐검사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이제 숙달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스라엘도 쉽게 통과하지 않았는가?

히드로 공항에서 한국말 안내 방송을 들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의 안내 방송은 한국어로 해 주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오후 1시 30분, 런던의 히드로 공항을 힘차게 이륙하였다. 맨 첫날 우리를 태우고 왔던 그 비행기, 그 승무원들이었다. 왠지 모르게 반갑다. 이번에도 좌석의 여유가 있었다. 나와 아내는 가운데 줄 네 개의 좌석을 차지했다. 둘이 번갈아 가며 다리를 쭉 뻗고 누워 잘 수 있었다. 김포 공항에는 한국 시각으로 8시 10분 도착 예정이란다.

비행기가 이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찍 기내식이 나왔다. 저녁 식사다. 그럭저럭 오늘 점심은 굶은 셈이다. 우아하게 먹기로 했다. 김치와 된장찌개가 그립지만 소꿉장난 같은 이런 기내식이 또 생각날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치니 창문을 모두 닫는다. 저녁 먹었으니 잠을 자라는 신호다. 내일 아침 김포 공항에 도착하니 지금이 비록 낮이지만 밤으로 알고 푹 자야 된다. 솔직히 몸이 피곤하다. 우리는 사르르 눈을 감았다.

우리가 김포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한국 시각으로 7월 5일(토) 오전 8시 20분이었다. 반갑다, 우리 나라. 대한민국. 서울. 공항의 구석구석이 마치 낯익은 우리 집 같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오니 벌써부터 우리 가족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낙천 전도사님, 허을선 권사님, 양순례 권사님, 이상욱 형제, 그리고 딸 지영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다른 목사님들도 모두 가족들이 나와 반겨 준다. 우리 때문에 애를 태운 성민관광 대표이신 이성근 안수집사님도 나오셔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다. 오히려 우리가 미안하다. 우리는 비디오 녹화를 위해 한 사람씩 인터뷰를 마친 후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였다. "주님, 먼 일정이었는데 우리 28명 모두에게 건강 주시고 은혜스러운 성지순례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 아내는 백전도사님이 운전하시는 승합차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우리는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직전에 기내에서 아침식사를 했지만 이 분들은 우리를 기다리느라 아침을 먹지 못하셨나 보다. 교회 근처에 기사 식당에 가서 얼큰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 우리는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우리 나라의 산과 들은 너무나 푸르다. 마침 장마철이라 축축이 물기를 먹은 나무들이 더욱 싱싱하게 보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분명히 여기에 있었다.

부 록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 목회자전문과정

성경지리연구를 위한 성지순례 개요

1. 일시 / 1997년 6월 23일(월) - 7월 5일(토) 12박 13일

2. 순례국가 / 이집트, 이스라엘,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영국

3. 조직

지도교수 : 박 종 근 목사

단 장 : 유 덕 식 목사

총 무 : 정 철 옥 목사

재 무 : 황 의 봉 목사

의 무 : 권 태 일 목사

홍 보 : 박 춘 식 목사

4. 참가인원

목 사 : 18명

장로(강도사) : 1명

사 모 : 8명

여행사 직원 : 1명

합 계 : 28명

5. 여행 주관 회사 : (주)성민관광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807-9 대영B/D201호(☎834-8333~5)

대표 이성근(예일교회 안수집사)

6. 인솔책임자 : 성민관광 이상표 대리

7. 기념품

안양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박종근 목사 : 여행용 조끼

(주)성민관광 이성근 사장 : 휴대용 가방

8. 공식 비용 : 1인당 210만원

9. 자체 경비 : 1인당 70달러

참가자 명단

조별	성 명	소 속	주 소	전화번호
1	유덕식 이상표	영진교회 성민관광	서울 노원구 상계2동 373-8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807-9	(02)965-5852 (02)834-8333
	박인성 김세창	우리교회 새빛교회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율정1리 서울 성북구 보문동 1가 122-1	(0351)865-1999 (02)924-9526
2	민홍기 김용래	삼선제일 장암제일	서울 성북구 삼선동 3가 90-8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7-7	(02)742-8908 (0351)872-6555
	박재원 박춘식	신소망교회 성산교회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5리 산118 서울 노원구 중계동 84-48	(0346)62-7766 (02)931-6254
3	허용준 이대성	반석교회 적성제일	경기도 연천군 왕진면 북삼리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마지리	(0355)835-8012 (0348)959-4077
	위대환 박석구	삼광교회 금밭교회	서울 도봉구 방학2동 641-38 서울 동작구 신대방2동 361-1	(02)3493-5384 (02)815-8309
4	허광탁 백영혜	영문교회	서울 중구 만리동 2가 179-1	(02)392-2415
	권태일 정기자	경천교회	서울 광진구 광장동 281-14	(02)446-6234
5	황의봉 박명순	평안교회	서울 도봉구 쌍문2동 713-31	(02)904-3589
	조남준 신미숙	금빛교회	서울 노원구 상계5동 173-3	(02)937-6922
6	정종진 유공식	은총교회	서울 강서구 화곡2동 867-11	(02)690-8581
	류준모 장원영	예제교회	서울 강북구 미아4동 82-19	(02)924-7142
7	김동성 이상숙	초원교회	서울 구로구 개봉1동 108-16	(02)611-2920
	정철옥 차영신	아름다운	경기도 안산시 사동 1334	(0345)409-3777

성지순례 일정표

일 자	장 소	교 통 편	시 각	주 요 행 사 일 정
제1일 6/23 월	서울 런던 이집트 카이로	BA042 BA155	07:10 09:15 13:00 16:35 23:20	김포 국제공항 제1청사 2층 집합 김포 국제공항 출발/항공편으로 런던향발 도착하여 비행기를 갈아타고 항공편으로 카이로 향발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 Accom : Europia Hotel
제2일 6/24 화	카이로 수에즈 시내산	전용버스	07:00 08:00 13:00 20:30	호텔에서 예배 후 조식 간단한 시내 관광(피라미드,예수피난교회) 후 버스편으로시내산 향발 시나이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수에즈만 경유하여 아윤무사(마라의 샘) 모세가 아말렉과 싸운 파이란 오아시스 시내산 밑에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 Accom : Monganland Hotel
제3일 6/25 수	시내산 누에바 이스라엘 에일랏 예루살렘	전용버스 전용버스	02:00 05:30 08:30 13:00 13:30 16:00 20:00	기상후 시내산 등정(2,285m) 시내산 정상에서 산상예배, 일출조망 카타린 수도원 순례(떨기나무,이드로 우물 등) 아카마만의 휴양지 누에바에서 중식 이집트 국경 타바 경유하여 이스라엘 입국 사해, 메주케 경유 예루살렘 도착 호텔 체크인(석식) Accom : Kika Zion Hotel
제4일 6/26 목	예루살렘 베들레헴 예루살렘	전용버스	07:00 08:00 20:00	호텔에서 조식 전일순례(통곡의 벽, 황금바위돔, 비아돌로로사, 무덤교회, 마가다락방, 다윗왕의 가묘, 예수탄 생교회, 야드바셈, 성서박물관, 예수승천당, 히브리대학교, 화란인정착촌) 호텔에 돌아와 석식 Accom : Kika Zion Hotel

일 자	장 소	교통편	시 각	주 요 행 사 일 정
제5일 6/27 금	예루살렘 티베리아스 가버나움 티베리아스	전용버스 전용보트 전용버스	07:00 08:00 12:00 19:00 20:00	호텔에서 조식 전일순례(겟세마네 만국교회, 선한사마리아여관 여리고, 요단강, 세례터, 갈릴리호수 티베리아스 도착하여 점심식사 Boat Ride, 선상예배, 가버나움, 오병이어교회, 베드로수임교회, 팔복교회 석식 후 호텔 체크인 야간 온천 Accom : Astoria Hotel
제6일 6/28 토	티베리아스 나사렛 텔아비브 이탈리아	전용버스 AZ 811	07:00 08:00 13:00 17:15 19:50	호텔에서 조식 가나, 나사렛, 므깃도, 가이사랴 순례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항공편으로 로마향발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기내 석식) Accom : City 2000
제7일 6/29 주일	로마	전용버스	07:00 08:00 11:00 18:00 19:00	호텔에서 조식 전일 시내관광(베드로대성당, 카타콤베, 주일예배 마차경주장, 진실의입, 바울순교기념교회 콜로세움, 성계단성당, 성요한성당,트레비분수 한식당에서 석식 호텔 체크인 Accom : Capital Hotel
제8일 6/30 월	로마 터키 이스탄불 이즈밀 파묵칼레	AZ 700 TK 336 전용버스	07:00 10:10 13:40 17:00 18:00 23:00	호텔에서 조식 항공편으로 이스탄불 향발(기내 중식) 이스탄불 도착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항공편으로 이즈밀 향발 이즈밀 도착 사데, 빌라델비아, 히에라볼리 도착(파묵칼레) 석식후 호텔 체크인 Accom : Hercules Hotel

일 자	장 소	교통편	시 각	주 요 행 사 일 정
제9일 7/1 화	파묵칼레 에베소 쿠사다시	전용버스	07:00 08:00 13:00 20:00	호텔에서 조식 파묵칼레, 노천온천장, 라오디게아교회 도중 중식 사도요한교회와 무덤, 누가의 무덤, 기독서점 에베소 구시가지, 에베소교회, 마리아의 집 석식후 호텔 체크인 Accom : Guzey Hotel
제10일 7/2 수	쿠사다시 그리스 밧모섬 스칼라	전세선편 전용버스 N/FERRY	06:00 07:00 12:00 13:30 16:30 19:00 21:00	호텔에서 조식 전세 선편으로 밧모섬 향발 밧모섬 도착, 계시동굴, 사도요한 기념수도원 점심 식사후 휴식 미론의 집, 해수욕장, 요한의 세례터 석식 정규 선편으로 피레우스 향발 Accom : 선내 숙박(2인 1실)
제11일 7/3 목	피레우스 고린도 아테네 영국 런던	전용버스 BA 633	07:00 08:00 09:00 13:00 15:00 18:35 20:25	선내에서 조식 피레우스 도착하여 고린도로 고린도운하, 고린도유적지, 비마, 에라스도거리 도중 중식 아레오바고, 올림픽스타디움,아테네 공항으로 항공편으로 런던향발(기내 석식) 도착하여 호텔 체크인 Accom : Jarvis Hotel
제12일 7/4 금	런던	전용버스 BA 041	07:00 08:00 13:20	호텔에서 조식 잠시 시내관광(하이드파크, 버킹엄궁, 쇼핑) 항공편으로 서울 향발(기내 숙박)
제13일 7/5 토	서울		08:20	김포 국제공항 도착 기도 후 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