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洋的 宗敎에 대한 새로운 관심

1. 문제 제기

이제 이년 반만 지나면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다. 세기가 바뀌어도 법석을 떠는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천년이 다가온다며 흥분해 하고 있다. 새로운 천년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극동 아시아의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나라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천년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시대의 바뀜을 비극적인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낙관적인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세기가 바뀔 때마다 마치 유행처럼 미래에 대하여 비관적인 예언을 했던 시류에 편승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그렇게 희망적이지 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흘 전에 인도에서는 극비리에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요사이 유행하던 환경에 대한 관심은 오존층의 파괴로 인한 이상 기후로 말미암아 관심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생존의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최근의 경제 사정으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 이혼 가정의 급증, 각박하게 치러 내야하는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경제전쟁은 다가오는 세기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뉴스위크지에서 현재의 미국의 40대 즉 베이비붐 세대(빌 클린턴 세대)에 대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었다. 미국의 40대는 베트남 전쟁 세대이며 인권 운동과 프리섹스, 히피즘의 세대이다. 이 세대는 미국의 팽창적 자본주의의 혜택을 톡톡히 누려온 세대로서 물질이 주는 달콤한 매력을 아는 세대이다. 오늘의 미국을 이끌어 가는 그들이 그런데 이제 공통적으로 실존적 위기감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은 물질문명의 이기와 향락도 그들의 젊음을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세계의 물질주의에 대한 불안과 더불어 그들은 2000년대에 대한 불안을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인간의 내면 세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바로 "신성함의 추구"이다. 그들은 이제 유행처럼 고대 사원이나 피라미드 예루살렘이나 이집트 같은 성지를 방문한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티벳 불교에 귀의했다는 소문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많은 서양인들과 종교학자들 신학자들이 동양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특히 티벳 불교와 같은 선불교 계통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이 수많은 질문과 호기심을 갖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이 시점에 우리는 동양인으로서 우리의 사유의 전통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오히려 우리는 서양인들보다도 더 자본주의적 사고 방식과 물질주의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가? 동양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서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중동(middle east)지역의 이스라엘 역사와 그 곳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를 모두 서양인의 사유 전통에서만 이해하려 하고 그것을 너무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학자가 해온 유일한 작업은 서구 신학자들이 실험해온 많은 종류의 이론을 소개하고 논쟁하는 데에 모든 정력을 쏟는 것이 아니었는가? 서양 신학이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며 동양적 사유 전통에 대한 관심을 갖고 눈을 반짝거리는 이 때 오히려 우리는 서양 신학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고 밥벌이를 해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이제 이 글은 우리 안에 있는 동양적 사유의 흐름과 직관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왜 중요한 지를 밝혀 보려고 한다. 먼저 서양적 사유의 종착점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의 소멸의 문제를 다루고 나아가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유의 연관성을 다루며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동양적 사유가 우리의 신학적 상상력을 어떻게 풍부하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2. 서양 인식론의 종착점 - 주체의 소멸

현대 유럽대륙 철학계에 하나의 유행병처럼 돌고 있는 현상은 '주체의 죽음'에 대한 관심이다. 심각한 환경 문제를 초래한 과학 기술에 대한 불신, 인간의 합리적 대화와 의사결정 능력에 바탕한 민주 주의의 위기, 삶의 전영역의 공공화를 통한 개인적 삶의 파괴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온갖 문제는 궁극적으로 인간 주체의 절대화에 있다고 보고, 이러한 절대화된 주체는 이제 더 존재할 수 없다

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헤겔 이후,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를 거치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예고된 사망이다.

'주체(das Subjekt, subjectum)'는 그 뿌리 말인 그리스어의 휘포케이메논(hypokeimenon)의 번역어로, 하이데거에 따르면 '앞에 놓여 있는 것', '근거로서 모든 것을 자기에게로 모으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현대 철학의 용법과는 전혀 달리, '자아'와 인간을 특별히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이데거에 따르면 근대 철학에 와서 처음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근거짓는 기반, 즉 '주체'를 어떤 다른 곳이 아닌 인간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주체'가 되었다는 것은, 인간이 모든 존재자를 자기 자신의 존재와 자기 자신의 진리에 근거 지우는 존재자가 되었음을 뜻한다. " 여기서 인간 존재의 최상의 형태는 세계를 관조하고 명상하는 관조적 삶이 아니라 현실을 가공하고 노동하는 실천적 삶이고, 현실 지배와 이용이 현대 합리성의 본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현대의 이성은 현실을 관조하는, 현실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수용적 이성이 아니라 현실을 지배하고 자기의 욕구에 따라 마음껏 이용하는 능동적 이성 흑은 권력의 이성이고, '주체'는 다름아닌 권력 이성의 형이상 학적인 표현이다.

권력 이성의 출현, 흑은 인간의 주체화에 절대적으로 기여한 사람은 하이데거의 해석에 따르면 데카르트이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철학 발전에 따라 데카르트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장은 데카르트와 더불어 인간은 스스로 주체로 이해하게 되었고 인간을 주체로 해석한 것은 인간과 존재의 관계를 보는 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철학의 종말, 그리고 이것과 연관된 '인간의 죽음', 또는 '주체의 죽음'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1960년대 이와 관련된 논의는, 데리다 같은 사람은 하이데거조차도 여전히 휴머니즘에 빠져 있는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모두 하이데거를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사유하는 것,존재의 감춤과 드러냄을 생각하는 것, 이것은 철학의 종말에 직면해서 비로소 가능하게 되었다고 하이데거는 생각한다.

하이데거 철학은 서양 전통 철학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담고 있다. 서양 문화란 과학과 기술 문화였고 과학과 기술은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 즉 우리가 현실을 관리하고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하고 있음을 하이데거는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생각, 현실을 우리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 서양 기술 사상의 핵심이고 동시에 '주체' 사상의 근간이다. 플라톤과 토마스 아퀴나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칸트와 헤겔, 그리고 니체에 대한 그의 관심은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기술적 사유와 주체의 본질을 캐내는 작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이데거의 대안은 이러한 사유 태도와는 다른, 우리가 스스로 은인자중하고, 침잠하고, 그냥 내버려두는 사유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존재에 대한 열림, 존재에 대한 개방성을 뜻한다. 인간은 이미 세계안에 던져진 존재요, 세계 안에 있는 존재임을 역설하였다. "세계 안에 있다"는 것은 인간이 이미 자기 바깥에, 자기를 떠나 세계와의 연관성 속에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하이데거는 '열림' 또는 '개방성'으로 표현한다.

3. 신학적 사유로의 개방성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는 자기를 내어줌(Es gift)으로써 숙명으로 나타나는데 이 숙명은 은폐와 비은폐를 함께 수행한다. 따라서 때로는 이존재의 진리가 인간에게 감추어지기도 하고 알려지기도 한다. 인간은 이 존재의 숙명 안에 있다. 존재의 진리로부터 비로서 성스러운 것의 본질이 사유된다. 신성의 본질의 빛 속에서만 <신>이라는 말이 나타내지고, 사유되고 말해 질 수 있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신성'(Gottheit)과 '신'에 대한 이해는 전통 형이상학이 신을 지속적인 눈앞의 면전으로 끌고와서 인간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도록 대상화시켜 결국 '신성'이 남아 있지 않는 신인식을 비판한다. 나아가 하이데거는 신이 존재의 원인으로 생각되어서는 안되며 신의 존재는 역운(Geschick)으로 파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A. 예거는 하이데거의 무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해 나간다. 예거에 따르면 신은 세계의 저편(Jenseits)이다 그에 있어 배후에 "은폐된 신"이 없다면, 하나의 "계시된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길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진리에 있어서 참된 것은 일자(das Eine)가 아니라 타자(das Andere)이다. 일자 앞에서 인간은 타자를 만나게 되며,타자에 의해 압도당한다.

H. 오트는 하이데거의 철학과 신학 사이에 대화를 시도하고자 한다. 오트는 하이데거를 '사유의 사유자'로 본다. 하이데거 사유는 사유의 본질을 묻고, 존재의 사유를 문제 삼는다. 시원적 사유를 통해 됫걸음(Schritt Zuriick)질치는데, 신학은 시원적이고 본질적인 사유라고 오트는 주장한다. 오트는 신학자의 인격 속에서 철학과 신학의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이데거 철학의 '사유의 사유'라는 성격을 신학적으로 수용해 그런 사유의 지평에서 신의 계시를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신의 드러냄의 사건인 '계시'를 매개로 존재 사유와 신학적 사유의 만남을 시도하는 오트의 시도나 무의 타자성을 매개로 새로운 신론을 제시하는 예거의 시도는 존재 사유를 유비적 차원에서 수용하는 것이다. 오트와 예거의 신에 대한 이해는 전통적 '신론'에 대한 지평의 확장을 가져왔다. 여기서 김광식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이데거 연구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서양의 철학적 내지 신학적 전통에서 본 신론을 이제 동양의 道개념과의 관계에서도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 편으로는 서양의 전통에서 철학과 신학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동서양의 사상적 만남이라는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음은 물론이다. 동서 사상 사이의 대화는 무엇보다도 신론으로부터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양의 존재론과 동양의 道論이 서로 만나는 곳에서는 신학적으로 볼 때 불가피하게 신의 존재 문제가 문제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독교 신학을 단순히 서양신학의 신론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동양의 道개념과의 대결을 통해서 보다 더 심화론 신론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 동양사상에 있어서는 서양사상에 나타난 존재론과 같은 것을 발전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동양적 사유는 무에 대하여 깊이 사색하였다. 노자(老予)의 도덕경(道德經)의 한 대목에서는 사뭇 예거의 말을 앞질러 말하듯, '有生於無'(즉 존재는 무에서 나온다)라고 하여, '道生一'(도에서 하나가 나온다)을 주석하였다. 다시 말하면, 도(道)가 무라는 것이다. 이것은 예거의 "Gott ist Nichts"와 잘 어울린다. 이러한 도는 형이상학적 실체(Substantia)라는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없고, 우주론적 내지 자연철학적인 실재(Reality)로도 이해할 수 없다. 도는 오히려 만유를 만유로 존재하게 하는 가능 근거로서 궁극적 실재이다.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를 신학적 신론의 지평에서 수용한 예거와 오트의 시도는 결과적으로 철학과 신학사이에 의미있는 대화들을 이끌없고, 나아가 동양사상의 道개념을 통해 신의 존재와 계시 이해를 확장시키려한 김광식의 시도는 동양사상과 서양사상의 대화를 이끌어 낼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기독교적 신론을 확장시키고 심화하는데 있어 출발점이지 결코 종착 지점은 아니다. 따라서 새롭게 제시된 대화의 지평 속에서 앞으로 더 많은 결실있는 연구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겠다.

4. 현대 물리학과 동양 사상의 만남

19세기를 지배했던 과학적 물질주의 사고는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새로운 영성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러한 시대정신의 변화는 서구과학 자체가 스스로

마련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세계를 시간과 공간 속에 놓여 있는 객관적인 실체로 보는 소크라테스 이래의 서구 과학적인 관점은 과학 자체의 발전에 의해 붕괴되어 버렸다. 인간의 의식과는 별도로 공간과 시간 안에서 움직이는 독자적인 실체로서의 우주라는 뉴튼적인 세계관은 이제 상대성 원리에 입각한 우주관과 양자물리학에 그 주도권을 넘겨준 상태다.

현대 물리학에서는 우주를 유기적인 통일체로 본다. 그리고 그 유기적인 통일체로서의 우주 속에는 관찰자인 인간도 포함된다. 이제 과학은 사물들이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실체로 따로따로 존재한다는 관념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독립적인 실체로 보이는 모든 사물들이 실제로는 관계의 그물에 얽혀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입장이다. 더 나아가 관찰되는 대상과 관찰자인 인간의 의식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물리학적인 입장에서 입증되었다. 하이젠베르그(Heisenberg)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 과학은 단순히 자연현상을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은 자연과 우리들 자신 사이에 일어나는 상호교류의 한 부분이다. 'B 하이젠베르그의 이 말은, 과학은 실재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반영된 실재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현대 과학의 이러한 견해는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The Tao of Physics 의 저자인 카프라(F.Capra)의 말처럼, 현대 서구과학의 우주관을 고대 동양사상의 실재관과 매우 유사한 것이 되도록 만들었다. 우주에는 오직 하나의 실재만이 존재한다. 그 하나의 실재가 우리들 밖에서는 객관적인 세계로 나타나고 우리들 안에서는 주관적인 의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재 자체는 객관과 주관의 구별을 넘어서는 것이다. 일상적인 의식 상태의 민간은 객관적인 세계와 주관적인 의식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외부 세계를 감지하는 감각과 내부세계를 인지하는 이성의 영역을 넘어서면, 그때 객관적인 실체이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의식인 실재 자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과학에서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고에 대한 몇 가지 기준을 언급해 보면 그 첫번째 기준은 부분과 전체의 관련성이다. 역학적·고전적 패러다임에서는 아무리 복잡한 체제라 하더라도 전체의 역동성은 부분의 속성들로부터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일단 부분들의 기본적인 속성들과 그것들이 상호작용하는 역학 체계를 이해하기만 하면 최소한 원리상으로 전체의 역동성을 유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규칙은 복잡한 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조각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조각,들 자체는 더 작은 조각들로 쪼개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설명되지 않

는다. 그러나 당신이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접근하려 한다면 항상 어떤 단계, 즉 요소, 실체, 소립자 등등의 기본적인 토막(fundamental building block)에서 끝을 내야 할 것이다. 그것들은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속성들을 지니고 있다. 당신은 상호작용이라는 기본 법칙을 지닌 그러한 기본적 토막들을 통하여 보다 큰 전체를 만들고 그것의 부분적인 속성들을 통해서 그것의 역동성을 설명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로부터 시작되어 데카르트와 뉴턴에 의해 확립되었으며 20세기까지 과학적 견해로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있어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는 보다 더 대칭적이다. 확실히 부분들의 속성을 통해서 전체를 이해하는 동시에 부분들의 속성은 전체의 역동성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전체가 일차적이며, 일단 전체의 역동성을 이해하고 나면 최소한 원리상으로 부분들의 상호작용의 속성과 형태들을 유도해낼 수 있다. 분분과 전체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러한 변화는 양자 이론이 개발됨으로써 과학에서는 처음으로 물리학 분야에서 일어났다. 그 당시 물리학자들은 놀랍게도 원자나 소립자 등과 같이 고전적 의미에서의 부분의 개념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업

다는 것을 알았다. 부분들은 더 이상 명확히 규정할 수 없다. 그것들은 어떻게 실험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속성들을 보여 준다. 점차적으로 물리학자들은 원자 수준에서의 자연은 기본적인 토막들로 구성된 역학적 세계로서가 아니라 관계들의 그물로 나타나며, 결국 이런 상호 관련된 그물에서는 어떠한 부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가 부분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이든지 안정되어 있는 하

나의 양태(pattern)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의 시선을 끌게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부분과 전체 사이의 새로운 관계에 감동받아 그의 자서전

에 』부분과 전체라는 표제를 달았다. 모든 사물들과 사건들이 서로 연관되고 통일되어 있다는 것의 자각과 모든 현상들에 대한 경험을 근본적인 일자(oneness)가 드러나는 것으로 자각하는 것은 동양적 세계관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그것은 모든 신비주의적 전통의 본질이요, 동양적 세계관의 본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동양적 세계관에서는 모든 사물들을 상호 의존적이고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보며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일시적인 양태들로 본다.

과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고에 대한 두번째 기준은 구조(structure)를 통한 사고에서 과정(process)을 통한 사고로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옛날의 패러다임에서는 기본적인 구조들이 있고 나서 그 구조들이 힘과 메커니즘을 통하여 상호작용하며, 그것들이 과정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과정이 일차적이며,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모든 구조는 근원적인 과정이 드러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과정을 통한 사고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함께 물리학에 등장하였다. 질량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인식은 물질적인 실체의 개념과 기본적인 구조의 개념을 과학으로부터 제거하였다. 이원자적 소립자들은 어떤 물질적인 재료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의 양자들이다. 그러나 에너지는 활동 내지 과정들과 관련이 있는 것인데, 이것은 이원자적 소립자들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역동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것들을 관찰할 경우 어떤 실체도 어떤 기본적 구조도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관할하는 것은 계속적으로 서로 다른 것으로 변화하고 있는 역동적인 양태들, 즉 연속적인 에너지의 율동이다.

과정을 통한 사고는 동양적 신비주의 전통들의 주요한 특징이다. 그것들의 개념, 이미지, 신화들 가운데 대부분은 시간과 변화를 본질적 요소로 하고 있다. 힌두교, 활교, 도교의 경전들을 연구하면 할수륵, 세계는 운동, 흐름, 변화를 통해서 지각된다는 것이 보다 분명해진다.

5. 맺음말 - 동양과 서양의 절대자에 대한 이해의 차이성와 유사성

역사적으로 볼 때,그리스도교 신앙이 동양적인 시각의 조명을 받았을 때, 본래의 그리스도교의 계시 속에는 지금까지 서구 그리스도교가 표출해 냈던 것과는 상이한 진리의 다른 모습이 간직되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동양적인 시각의 조명을 받을 때 제일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셈족 사고의 틀 안에서는 하나님은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궁극적인 실재에 적용시킨 여타의 개념이나 명칭들이 그러한 것처럼 '인격'이라는 개념도 일종의 유추개념(a term of analogy)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고자 함이 아니고 하나님은 우리가 형성할 수 있는 모든 개념을 넘어서는 존재라는 사실, 즉 하나님은 인격이라는 개념까지도 '넘어선'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교 역사 속에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던 아레오파기트의 디오니시우스(Dionysius the Areopagite)가 그와같은 하나님 개념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그는 하느님을 '넘어선 존재'(beyond Being)라고 불렀다. 그러나 기독교계 일반에서는 하나님은 여전히 인격적인 존재로만 여겨져왔고, 이러한 하나님 개념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거의 인식되지 않았다. 그래서 몇몇 신학자들이 '궁극적인 실재'라든지 '궁극적인 진리'라든지 또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처럼 '궁극적인 관심'이라는 용어로 하나님의 인격적인 측면과는 구별되는 神性 자체를 표현해 보려고 애쓰고 있는 것도 필요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神을 인격적인 용어로 지칭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브라흐만', '아트만',·'道',또는 불교의 극단적인 부정 개념인 '니르바나'(溫繫)와 '空'등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격 개념을 초극하고 있다. 神 내지는 神性을 지칭하는 이러한 용어들은 인간의 머리로는 인지할 수 없고, 따라서 인간이 형성한 그 어떤 개념도 '넘어서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실재를 가리키는 손가락 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동양의 종교들은 神性을 지칭하는 이러한 명칭들을 가지고 어떠한 이론 체계나 교리를 형성하고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양 종교들에도 교리가 있다. 그러나 그 교리들은 神性 또는 궁극적인 실재의 체험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힌두교의 브라흐만은 만물이 거기로부터 나오고 있는 '근원', 그리고 만물이 거기에 의지해서 존재하고 있는 '토대', 그리고 만물이 지향하고 있는 '목표'로서의 실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우리가 그러한 브라흐만을 유일한 자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영원한 자 또는 초월자나 무한한 자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기타 무엇이라고 부르든지 간에 그 존재는 인격을 넘어서는 존재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성스러움과의 만남이라고 부르는 인간과 궁극적 실재의 만남은 본질상 다른 만남들과 나란히 있는 하나의 만남이 아니다. 그것은 절대, 다시 말해서 절대성자체의 경험이다. 종교를 종교이게 하면서 동시에 종교를 무한히 초월하게 하는 것은절대 자체와의 만남인 것이다.

이것은 "성스러움의 의미"(the idea of the holy)에 대한 루돌프 오토(Rudolph Otto)의 생각과 일치한다. "성스러움의 의미" 라는 구절을 사용할 때면, 나는 20년대 중반쯤 독일 마르부르크에서의 아름답던 시간들을 기억하게 된다. 그때, 루돌프 오토와 나는 언덕과 숲속을 함께 거닐면서 그리스도교와 아시아종교들

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는 이 분야의 뛰어난 학자였고, 거듭하여 이 문제에 몰두했다). "성스러움"이라는 말의 의미를 분석하면서 그가 말한 첫째는, "성스러움"은 "신비"이고, 인간이 실재와 만나는 다양한 영역에서 발견한 모든 절대적인 것들의 근저, 즉 절대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유한한 경험에서는 도출될 수 없고, 본질상 유한한 정신으로는 도무지 포착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하나의 신비인, 보편적 존재 안에 있는 인간 존재의 신비와 연결될 수 있고, 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신비를 경험하면 인간은 이런 질문을 하게 한다: "왜 무언가는 있고 무(無, nothing)는 없을까 ?"

오토는 우리의 정신이 궁극 및 궁극의 신비와 맺는 관계를 두개의 용어로 표현한다. 곧, "트레멘둠"(tremendum)-떨리고 두렵고 경외하게 하는 것-과 "파스치노숨"(fascinosum)-매혹하고 끌어당기고 갈망하게 하는 것-: 성스러움에 대한 인간의 무조건적 두려움과 무조건적 끌림이 두 용어를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다. 그러면서 그것들은 인간의 실현 가능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내포한다. 실현할 수 없으리라는 우려, 그것이 두려움이고, 실현하려는 욕망, 그것이 끌림인 것이다.

오토는 모든 종교로부터 예를 들면서, 이 예들은 모두 한가지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이런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다양한 영역에서 파생된 모든 절대 적 인 것들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것으로서의 절대를 만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