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紀行)

전 형 일

"충만하겠군요…" 한국에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한 인사의 말이었다. 글쎄, 그의 뜻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별로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도는 그리 충만하지도, 축복받지도 않은 땅이었다. 8억 5천의 엄청난 인구, 1652개의 언어, 더위와 추위, 혹독한 자연환경, 극심한 빈부차, 카스트 제도등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묵묵히 숨쉬는 나라였다. 기독교인은 3%에 불과하지만, 불교,힌두교,이슬람교의 발상지이며, 그러기에 무수히 많은 유적들이 있는 곳, 해마다 수십만의 힌두교 성자들이 순례의 길을 찾아오는 그 인도에, IVF(한국기독학생회)의 간사와 학생 17명이 UESI(UNION OF EVANGELICAL STUDENT OF INDIA)의 초청으로 92년 1월 13일부터 2월 5일까지 약 3주간의 선교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그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던 나는 그 출발부터 그리 쉽지는 않았다.

1. 인도로 가는 길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찬 바람과 함께. 1월 13일 저녁 8시, 일행들은 모두 출국게이트로 들어가 버렸고 난 홀로 남은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에 휩싸였다. 지난 여름부터 준비했던 게 수포로 돌아가는 건가. 하나님은 왜 날 혼자 남도록 하셨는가.

공항 병무신고 절차에서 문제가 생겼었다. 나는 아직 병역미필이었기 때문이다. 출발시간이 다 되어 팀은 떠나야 했다. 사람들을 보며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앞이 깜깜하기만 했다.

주인도 없는 '씨알의 집'에서 잠을 청했으나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날이 밝기만 기다렸다가 여행사로 향했다. 남진선 총무님의 도움으로 대책을 마련했고, 공항에서의 허가를 받아내었다. 어제와 똑같은 시간의 방콕(BANKOK)행 비행기였다. 드디어 전화번호 하나만 가지고 홀로 이국으로 떠나는 것이다.

방콕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2시, 현지 시각으로는 12시였다. 방콕에서 여행사에 근무하시는 최호진 선배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 분이 내 인도행 티켓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2시간이 되도록 연락이 안되는 거다. 공항에서 잘 생각을 하고 마지막으로 전화를 해 보니 이제야 전화를 받으신다. "어디에 있는 어디에 갑시다"라는 태국말을 배운 뒤, 300 BAHT(약 9000원)을 달라는 걸 깎아서 130에 탔다. 아파트에 도착하니 이번에는 아무리 벨을 눌러도 인기척이 없다. 30분정도 밖에 서 있다가 문을 따고 들어갔다. 괴도 루팡이라도 된 것 같다. 주무시다가 놀라시는 선배님과 함께 태국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캘커타(CALCUTTA)행은 목요일(16일) 오후에 있었다. 캘커타에 도착하면 바로 마드라스(MADRAS)로 연결되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우리 팀은 이미 마드라스에 도착해 있겠지. 하루가 넘게 남은 시간을 시내구경도 하고, 고유 음식,열대과일도 먹으면서 보냈다.

대기자 번호가 44번이었기 때문에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좌석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거야 원, 다시 비행기가 고장이다. 4시간을 그냥 앉아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미 마드라스행 비행기는 놓쳐 버렸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한참을 날다가 드디어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했을 때에는 승객들이 모두 박수를 쳤다. 후진국일수록 비행기 고장이나 연착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이미 공항은 깜깜해졌고 마드라스행 비행기는 떠난 뒤다. 태국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어떤 냄새가 느껴진다. 마치 우리나라의 된장,고추장 냄새랄까. 목을 죄어온다.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고 모기들이 달라들었다. 혼자서 메낭 하나 덜렁 메고 도착한 인도의 첫인상은 삭막했다. 키 큰 군인들이 길다란 장총을 메고 돌아다닌다. 입국 심사장에서는 마음씨 좋아보이는 사람의 줄에 서서 여권과 입국 카드를 내밀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씨올! 씨올!"하며 웃는다. 씨올? 아! 서울을 말하는가 보다. 빙그레 맞장구를 쳐주니 기분좋게 통과다. 이젠 놓친 비행기와 잠자리, 그리고 허기진 몸뚱이가 문제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긴 정말 낯선 이국(異國)이다. 가지각색의 피부,커다란 눈,제각기 움직이고 있지만 모두가 나만 노려보고 있는 듯 하다. 내가 타고 온 인디안 에어라인(INDIAN AIRLINE) 항공사에 들어갔다. 상황을 말하고, 고장으로 인하여 비행기를 놓쳤으니 조치를 취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예상했던 바대로, 책임이 없다며 저쪽에서 오히려 큰 소리다. 한 30분을 실갱이 했을 즈음 항공사의 책임임이 분명해지자 태도가 바뀌어 비행기 티켓을 다시 예약해 주고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여기가 인도인가 할 만큼 최고급 호텔이다. 나쁘진 않군.

다시 17일 금요일 오전 10시 45분 비행기다. 이제 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아침에 서둘러서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는 또 취소되어 있었다. 산 넘어 산이라던가. 하루 한대 밖에 없는 비행긴데, 사람들이 항의하니 오후 5시 편을 마련한 모양이다. 지금 시간은 오전 9시, 오후까지 뭘 해야하나 고민 중에 같은 상황에 놓인 미국인 TOM과 인도인 BANTI 를 만났고, 함께 캘커타로 진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TOM은 학생인데, 이미 남미를 돌아보고 왔고 9월까지 여행을 계속할거라고 한다. 틈만 있으면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업을 한다는 BANTI는 새까만 얼굴에 제멋대로 자라난 머리칼이 처음에는 경계심을 품도록 하는 인상이었으나 연신 재치있는 말과 인도에 관한 자세한 소개로 우리들을 재미있게 해 주었다. 셋은 캘커타의 골목골목을 다 누비고 다녔고 빅토리아 박물관에도 갔다. 그 앞 넓은 잔디밭에서 뛰어놀다가 그만 내 운동화가 찢어져 버리기도 했다. 캘커타는 실로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다. 곳곳의 거지들이 끈질기게도 붸아다녔고 거리는 그렇게 더러울 수 없었다. 빽빽한 차들은 차선은 안중에도 없었고,기사에게 조심할 수 없겠냐고 하니 여긴 캘커타라며 큰 소리로 웃는다. 그래, 그 곳은 캘커타였다.

역시 제 시간에는 출발하지는 않았고 1시간 지연된 오후 6시에 비행기는 마드라스로 향했다. 비행기 안에서 코피가 났다. 사람들이 더 보고 싶었다. 마드라스에 도착하면 바로 사무실로 전화해야지.

공항에 도착해서 짐을 찾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얼굴이 까만 어떤 청년이 '전형일'이라고 씌여있는 팻말을 들고 서 있다. 그 놀람과 반가움이란. 일행들은 이미 세팀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오늘 밤 각 지역으로 출발한다는 거다. 우리 조는 뱅갈로(BANGALORE)로 가는데 밤 10시 기차랜다. 시계를 보니 9시 20분, 잘못하면 또 뒷꽁무니만 붸아다니겠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달려 갔다. 시간이 없다. 9시 40분,역에 도착했다. 그 때였다. 그 넓고 북적대는 사람들 속에서 "JOHN!"- 내 영어 이름이 바로 JOHN이었다.- 이라는 외침과 함께 환호성이 들려왔다. 먼저 나를 발견한 것이다. 출발 10분전에 만난 우리들은 그 넓은 땅을 가로지르는 기차속에서 '한국말'로 밤새도록 이야기했다. 모든게 기도의 힘이었다. 다른 일행들은 다른 기차로 봄베이(BOMBAY)와 구자랏(GUJARAT)으로 떠났기에 얼굴도 보지 못해서 섭섭하기도 했으나, 그렇게 나의 인도 여정은 시작되었다.

2. 아! 뱅갈로!

밤새도록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인 뱅갈로에 닿았다. 새벽 5시 50분. 음침한 역을 걸어나오니 바람이 꽤 차다. 이곳은 해발 900미터로 위도 15도이지만, 시원한 편이라고 한다.

마중나온 간사 JACOB과 함께 릭샤(RICSHAW)를 타고 시내를 가로질렀다. 거리는 꽤 깨끗하고 상쾌하다. 캘커타와 너무 달라서 놀랬다. 이 곳에서 2주동안 여러곳을 방문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젠,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긴장하지 않아도 되므로 맘이 편하여 좋았다.

3. 신실한 기독청년들

뱅갈로에서의 첫 모임은 'EGF'라는 학사모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 젊은 남녀, 연령층이 다양하다. 사람들이 모이자 찬양을 한다. JACOB의 설교도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연합'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식사와 교제를 나눈다.

매주마다 모임이 있는데, 곳곳에서의 이러한 모임을 통해 학사들은 말씀과 교제로 계속 성장한다. 주로,대학을 졸업한 학사들로 사회의 중요한 각 부분에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은 보통 3-5시면 끝나므로 사람들은 이렇게 자주 모임을 통하여 서로를 돌아보고 훈련한다.

인도의 대학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보통 칼리지(COLLEGE)라 부르고 각각의 칼리지가 모여 유니버시티(UNIVERSITY)를 이룬다. 뱅갈로의 경우 150여개의 칼리지가 있고 그게 하나의 유니버시티를 이룬다. 2년의 PRE-UNIVERSITY과정이 있는데, 주로 교양을 배우고,그 뒤 전공을 선택하여 정식으로 3년동안 공부한다. 그들은 인도 사회에서 여러 영역에 들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실제로 학사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교수,컴퓨터 엔지니어, 박사과정중인 여학생… 그리스도와 연합한 그들이 인도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학문 수준은 그리 무시할 수는 없으나, 실험기구나 시설등은 아직 형편없는 편이고, 특히 음악같은 과목은 제대로 교육되지 않아서 악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찬양책을 보면 가사만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하루는, 인도인이지만 몰골리안 계통이어서 우리와 매무 비슷하게 생긴 나갈랜(NAGALAND)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는 20여곡의 찬양을 녹음하기도 했다. 음반취입이랄까?

그러한 대학에 그리스도인은 약 10% 정도에 불과했으나 캠퍼스 내의 성경공부와 연합모임을 성실하게 갖고 있었다. 학생들의 절반 정도는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고, 참가회비가 없어 수련회를 참석할 수 없는 학생이 많아, 아예 수련회 자체를 열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젊은 친구들은 참 밝다. 힌두교인이었으나 그리스도인이 된 어느 남학생의 간증 속에서 그의 눈이 빛나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은 참 순수했다.

4. 이 곳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시외곽에 넓게 자리잡은 'HOSKOTE MISSION & MEDICAL CENTER'에 닿았다. 예배당을 중심으로 병원,양로원,탁아소,축사,농장등이 있다. 그 곳에서는 많은 선교사들을 훈련하고, 또 그들은 농촌 마을에 들어가 직접 살면서 사람들돠 더불어 여러 영역에서 선교활동을 해낸다.

의료 시설이나 의료진이 충분하지 않지만,월등히 적은 급료에도 헌신하며 봉사하고 있었고, 탁아소에서는 부모들이 일하러 나가면 돌볼 사람이 없는 힌두교 가정의 아이들을 모아 기독교적 교육을 한다.

또 다른 곳, 'ACTS INSTITUTE'라는 곳도 갔었다. 그 곳에선, 학생들이 기숙사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오전에는 신학을, 오후에는 각 파트로 나뉘어 농업,목공예,철공,전기,수예등의 기술을 배운다. 훈련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들러가 직업을 가진 실제적인 자비량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ACTS는 다름아닌 AGRICULTURE, CRAFT, TRAINING, STUDY의 첫글자이면서 동시에 '전도'의 의미도 있는 것이다.

이 두 곳에서 느끼는 것은, 인도가 그리스도인의 수는 비록 적지만, 실제적이고 총체적으로 훈련받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삶을 실제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사회와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조명되어 헌신의 삶을 그대로 꾸밈없이 살고 있는 것이다. '사회참여냐, 전도냐?'라는 식의 논쟁뿐인 우리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인도의 교회는 좀 다른 인상이었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예배는 2시간이 넘었고, 의식적 절차가 까다로왔다. 색다른 것은 매주마다 성찬식을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교회는 그런 형식에 깊이 빠져 있지 않지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어떤 형식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거룩하고 조심스러운 예배를 마치고 나서면 문 앞엔 거지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앉아 있다. 그러나, 주의깊게 돌아보는 사람은 없는 듯 하다. 교회는 가진자들만의 것인가 싶어 씁쓸했다.

5. 가난한 나라

대체적으로 물가는 싸다. 인도 화폐 1Rs(루피)는 약 30원 정도로, 지방에서는 1루피로 한끼의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릭사로 2-3 Km를 달릴 수도 있다. 그러나,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벌이로서, 음식점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아이들이라면 일당 2-3 루피 정도이다. 인도에서는 고급요리에 속하는 중국요리는, 그것을 만들거나 나르는 사람들의 일당보다도 많은 셈이며, 월급이 400-500루피(12,500-15,000원 정도)라면 결코 나쁜 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인도인의 40%(4억)가 굶고 있으며 그들 대부분은 옷도 없이, 집도 없이 길 위에서 살고 있다. 한편, 상류층 사람들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을 물쓰듯 한다. 빈부의 차가 엄청난 것이다. 무수히 많은 거지들 뿐만 아니라, 공무원이나 종업원들조차 공공연히 손을 벌린다. 그러므로 우린 여간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캘커타에서 만난 BANTI는 인도의 구석구석을 소개해 준 좋은 친구였으나, 처음에는 도둑맞을, 아니면 사기당할 걱정으로 경계했던 것이 어지간히도 미안하다.

우리나라 돈으로 3-4만원이면, 인도에서는 한 가정이 먹고 살 수 있는 큰 돈이다. 나는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교회와 캠퍼스에서 선교 기도모임을 구성해서, 조금씩 정성을 모아 경제적으로 돕는 것과, 계속적으로 여러 자료를 받아 함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선교에 대한 가능성과 비젼을 함께 키워 나갈 수 있으며, 구체적 헌신을 다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교사가 되겠다는 우리팀 어느 자매에게 "돈 많이 벌어 후원이나 하라"고 했다는 현지 선교사님 말씀은 실로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단지 돈으로 후원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얼마나 검소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한편, 나에게 선교여행의 큰 목적이라면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애통함'이었다. 그러나,인도에서 사람들의 현실적 고통,어려움을 보면서 '동정'으로 대신하려 했지, 영혼의 갈급함에 대해서는 애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나의 잘못을 하나님께서는 깨우쳐 주셨고,하나님의 형상으로 형제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도와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슬럼(SLUM)학교의 가난한 그 아이들의 눈동자는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6. 오른 손, 왼 손

지역과 지역간에도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인도에 우리가 적응하는 것은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첫번째는 음식이었다. 주식은 쌀인데 찰기가 없다. 거기에 카레(CURRY)나 달(DHAL)을 끼얹어 먹는다. 야채나 차파티(CHAPATI), 보리(PURI)등도 함께 먹는다. 차이(CHAY)는 홍차와 비슷한데, 설탕과 우유를 넣어 숭늉 마시듯 마셔댄다. 오른쪽은 '깨끗함'을 의미하므로 식사를 할 땐 오른손만을 사용한다.

반면,왼쪽은 '더러움'을 의미한다. 그래서 화장실에서 화장지 대신 왼손을 사용한다. 팀 가운데 어떤 형제 간사님은, 화장실에서 배설물을 닦아낼 때 사용하는 큰 컵에 며칠 동안 양치질을 해서,얼마나 웃었는 지 모른다. 오른 손,왼 손을 잘 구별해야 하는 것이다.

인도에서의 한국에서 가져갔던 컵라면 맛은 일품이었다. 가게에서, 인도 밀가루를 사다가 수제비도 해 먹었다. 특히, 열대과일은 정말 싸고 맛있다. 처음엔 힘들었던 인도음식도 어느 정도 입에 맞아 많이 먹어 댔다. 그래도 살로는 안 갔던 모양이다. 한국에 돌아올 땐 4Kg이나 줄었으니 말이다.

가끔 거리에서 이와 잇몸이 시뻘건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병에 걸린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펀(PUN)이라고 하는 일종의 담배를 피우고 나면 그렇게 된다고 한다. 술에 취한 사람은 그리 많이 볼 수는 없었다.

여자들은 '사리'라고 하는 전통의상을 입는데, 무척 화려하다. 재미있는 것은 굉장히 긴 천을 몸에 둘둘 감아 입기 때문에 빨래를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게다가 부자이건,가난한 사람이건 여자들은 모두 귀걸이를 하고 다닌다. 코를 뚫고 팔찌에,발가락지까지 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인도에서의 오락이라면 역시 영화가 아닌가 싶다. 1년이면 900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되며, 거리에는 극장이 줄지어 있고, 벽이란 벽에는 온통 영화 포스터이다. 중심가의 한 극장에선 마침 '나 홀로 집에(HOME ALONE)'이 상영되고 있었다.

도로는 릭샤를 비롯한 인력거들과 오토바이,버스,전차 그리고 사람들로 꽉 메워져 있다. 공해가 매우 심해서 처음엔 심한 호흡곤란을 느꼈다.

선교사로 사역하자면 이런 환경과 문화속에서 현지인들과 똑같아져야 한다. 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습관,문화를 송두리째 버려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인도의 상황은 더욱 힘들다. IEM(INDIA EVANGELICAL MISSION)을 방문했을 때 대표자가 했던 말이 인상적이다. 타국에서의 문화충격을 극복하기 어렵듯이, 인도내에서의 지역간에 서로 다른 문화충격 역시 크다고,그래서 CROSS CULTURAL MISSION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누군가 그 일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그 일을 맡기신다면…

7.나를 보내소서

이번 선교여행은 여러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발견하게 된 좋은 기회였다. 실제로 나는 물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하고 있고, 인고나 제 3지역에서 직업을 가지고 선교할 수 있을까를 관심있게 알아보기도 했다. 인고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학위를 받으면 칼리지의 교사로 일할 수 있다. 게다가, 인도도 역시 이,공학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완전히 다른 문화,사고방식을 어떻게 극복하며,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의 가정,친구,직업을 다 포기하고 그 척박한 땅으로 뛰어든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선교를 낭만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준비되어야 하는 것은 언어 훈련이다. 대화가 안되면 아무것도 안된다. 일정을 거의 마치고 평가회 시간에, UESI 의 간사님 한 분이 "인도에 다시 온다면 언제든지 환영하지만, 그땐 분명히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만 한다."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거다. 사실,좀 부끄러웠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방에 큰 세계 지도를 하나 붙이려 한다. 세계를 품고 싶고, 역사의식을 갖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부르신다면 기꺼이 응답할 헌신된 마음을 먼저 소유하고 싶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부르셨는지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하다.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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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도서

<세계를 간다 29 (인도편)>, 중앙일보사

강석경, <인도기행>, 민음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