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용 복지공약에서

진정한 복지정책으로

선거 때마다 우후죽순으로 쏟아지는 사회복지 공약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방향은 잘못되어 있고 현실은 복지사회와 멀기만 하다.그동안 복지정책은 어떠했으며 김영삼 정권의 과제는 무엇인가.

---------------------------------------- 이영환(성공회신학대학 사회복지학과 교수)

----------------------------------------

선거 공약의 감초, 사회복지정책

우리나라 사회복지제도나 정책의 발달과정을 살펴볼 때 가장 눈에 뛰는 특징은 주로 정권이 바뀔 때 새로운 복지제도가 창설되거나 기존제도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집권한 정권이 국민의 불만을 무마하고 정치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복지정책을 이용해온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출발은 일제말기 1944년에 공포된 조선구호령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조선구호령은 당시 국민총동원체제를 뒷받침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어 이후 우리나라의 가장 기본적인 복지제도로 기능하다가 1961년에 내용변화는 거의 없이 명칭만 생활보호볍으로 개칭된다.또한 5·16정권의 국가재건 최고회의는 사회보장에 관한 법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의료보험법 등을 제정하여 근대적인 사회복지제도의 기초를 확립한다(그러나 산재보험은 경제개발 계획의 필요성에 의해 1963년부터 실시되지만, 의료보험은 1976년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80년 초 서울의 봄을 뒤엎고 등장한 신군부의 5공화국 정권은 정통성 확보를 위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복지국가 건설을 국정지표로 내세웠다.이후로 복지국가 혹은 복지사회라는 말이 세간에 풍미하게 되었고 뒤를 이은 6공화국 정권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정책을 추진하였다.그 덕택으로 그동안 몇몇 복지제도들이 창설되거나 확대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대를 지나면서 복지사회가 실현되었다고 믿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복지국가나 복지사회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 역시 찾아보기 쉽지 않다.

실제로 80년대에 중요한 복지제도들이 신설되거나 확대되어온 것은 사실이다.81년도에는 영세민을 위한 생활보호제도가 전면 개정되어 내용이 대폭 개선되었으며, 1973년 제정되었으나실시가 유보되었던 국민복지연금법도 개정되었다(그러나 역시 실시되지는 않았다).의료보험제도는 꾸준히 대상자의 범위를 넓혀오다가 88년도에 농어촌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89년에 도시지역 의보가 실시됨으로써 전국민 의료보장 시대가 개막되었다.88년에는 가장 핵심적인 복지제도라고 할 수 있는 국민연금제도가 대규모 사업장부터 실시되었고, 89년에는 영세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이 건설되기 시작함으로써 본격적인 사회주택제도가 출발하였고, 지역사회 복지관이나 탁아소들이 빠른 속도로 건립되어 나갔다.뿐만 아니라 장애자나 노인, 아동, 청소년(소년 소녀 가장 포함), 저임금 근로자 등 요보호 계층들에 대한 부문별 복지정책과 제도들도 상당 정도 계획되고 추진되어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정책의 제도도입면에서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여 실업보험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회보장제도가 실시되고 있으며, 여타의 사회복지서비스들도 대체로 구색은 갖추는 정도에 이르렀다.그러나 이러한 사회제도들의 내용과 수준이 모든 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정도인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또한 복지국가는 국가가 국민의 사회보장과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데 우선적인 책임을 지는 국가, 따라서 복지부문에 있어서 민간보다 국가의 역활이 중심이 되는 국가를 의미한다고 할 때 우리나라가 과연 그러한 방향을 향하여 올바르게 전진하고 있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다.그동안 우리나라의 복지부문은 외형적인 성장(비록 크지는 않지만)과 함께 내면적인 왜곡을 끊임없이 겪어왔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즉 정치적 동기의 순수성 결여가 결국 제도내용의 저급성을 초래함으로써, 백성들의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왜곡된 형태의 복지제도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우선적으로 정부의 복지예산의 실태서 찾을 수 있다.

복지예산 부족 과도한 방위비 때문

정부의 복지예산은 사회복지에 대한 정부의 책임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우리나라의 경우 사회보장과 보건의료, 환경사업 및 서민주택지원금을 포함한 사회개발비(넓은 의미의 사회복지비)가 정부예산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증가하여 1991년에는 10.2%에 달하였다.그러나 1992년에는 9.8%, 1993년에는 9.1%로 다시 감소하고 있으며, 이중 사회보장 예산은 1993년의 경우 정부예산의 5.8%, GNP의 1%에 불과하다.이러한 수준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보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1987년의 통계를 인용하더라도, 국민소득 6천달러 이상의 선진국들에서는 정부예산의 43.2%가 복지부문에 쓰이고 있으며, 우리와 비슷한 소득수준(2천∼6천 달러)의 국가들은 평균 24.4%, 그 이하의 국가들도 평균 17.4%를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편 우리나라 예산에서 방위비의 비율은 대체로 25% 전후로 나타나 낮은 복지비 지출의 원인 중의 하나가 이에 있음을 알게 된다.1993년도 예산에서도 일반회계 14.6%, 경제개발비 26.3%, 국방비 9.8%가 각각 인상된 반면 사회개발비의 인상률은 6.3%로 각 부문 중 최하위의 성장률을 기록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우려되면서 국가발전 전략에서 사회복지에 우선순위가 부여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밝혀주는 바는 우리나라의 복지제도들은 가능한 정부가 돈을 적게 쓰는 방향으로 설계되고 운용되어왔다는 점이다.이에 따라 그 질적 수준(급부수준)이 대체로 낮을 수밖에 없고, 복지재정 조달에 있어서도 정부책임보다는 수익자부담원칙이 강조되어 복지효과가 반감되고 있으며, 복지혜택이 주어지는 대상자의 범위도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참고로 복지선진국들의 복지정책의 추세를 경향적으로 본다면,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수준에서 최대한의 쾌적한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빈곤의 구제로부터 인간다운 삶의 질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빈민이나 무능력자에 대한 복지라는 관념에서 전국민적인 복지향상의 방향으로, 사후치료에서 사전예방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즉 사회 문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복지관념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중시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복지관념으로의 전환을 목격할 수 있다.이러한 경향과 대비해볼 때 우리나라의 복지정책과 제도들은 '불가피한 최소한의 복지'라는 관념을 아직 탈피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구체적인 문제점들은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사회복지정책의 목표와 범주 잘못 설정해

일국의 사회복지정책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복지정책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먼저 규명해야 할 것이다.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복정책은 빈곤구제라는 목적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으며, 오늘날에는 단순한 생존보호를 넘어 보다 높은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복지혜택의 제공을 지향하고 있다.이러한 과저을 통해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대표적인 복지정책 모델은 사회민주주의 형과 시장자본주의형으로 대별해볼 수 있는데, 이들의 차이는 빈곤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고 있다.

먼저 시장자본주의형 복지모델은 빈곤의 절대적 개념에서 출발한다.이 모델에서는 계량화될 수 있는 일정수준(빈곤선) 이하의 소득수준을 빈곤으로 파악하며, 복지정책(빈곤정책)은 빈곤선을 넘지 않는 정되의 최저생활의 보장을 목적으로 하고 그 이상의 생활수준획득은 각자의 노력(시장 메카니즘)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된다.따라서 복지정책은 노동무능력자들이나 그외 빈곤상태에 빠진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한되는 최소한의 시혜로 파악된다.

반면 사회민주주의형은 빈곤의 상대적 개념을 채택하고 있으며, 빈곤을 상대적 격차 또는 상대적 박탈의 개념으로 인식한다.여기에서 빈곤문제 해결은 평등의 실현을 통해서 가능한 것으로 파악되며, 따라서 복지정책은 전체국민의 평등하고 높은 수준의 삶의 질 확보를 목표로 전개된다.

일반적으로 미국과 일본이 사장자본주의형의 대표적 사례로, 스웨덴이나 오스트리아 등이 사회민주주의형으 대표적 사례로 예시되고 있지만 각각의 모델에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라기보다는 경향과 추세를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역대 정권의 이념적 성격상 평등과는 거리가 멀었고 시장자본주의형 복지모델을 따르고 있지만, 정책의 현실은 후자의 목표인 최저생활의 보장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구체적인 정책현실의 범주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하는 문제이다.복지정책을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 정책이라고 광범위하게 본다면, 정부의 정책 중 이와 관련되지 않는 정책은 거의 없을 것이다.따라서 복지정책의 개념이나 범주에 대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기본적인 복지정책으로 통상 간주되고 있는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서비스 및 관련정책들을 복지정책의 범주로 설정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회보장은 사회보험(의료보험, 연금, 산재보험, 실업보험)과 공적부조(생활보호사업 등)로 구성되며, 빈곤의 예방과 치유를 주목적으로 한다.즉 사회보험은 유사시의 소득보장을 통한 빈곤의 예방, 공적 부조는 최저생활의 보장을 통한 빈곤상태의 치유를 그 목적으로 한다.결국 사회보장은 빈곤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이면서 사회복지의 출발점을 형성한다고 볼 수 있다.

최저생활 보장에도 못 미치는 복지정책의 현실

사회복지서비스(사회복지사업)은 노인, 요보호 아동, 장애인, 부녀 등 특수계층의 욕구충족을 위한 대인적 사회서비스이며, 관련정책들은 보건의료, 주택, 고용정책 등 사회상황에 따른 사회적 욕구충족 또는 주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구체적인 복지정책들의 질적인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복지예산문제에서 본 바와 같이 복지에 대한 국가의 기여가 매우 저열한 데서 우선적으로 비롯된다.열악한 예산 수준은 열악한 급부(혜택,benefit)수준을 초래하고 정책대상자의 범위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위에서 구분한 정책의 범주에 다라 주요한 문제점들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영세민에 대한 생활보호사업이 최저생계를 보장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전국민의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 중의 하나이며 사회복지정책의 기본이다.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 최저생계비를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그러므로 무엇을 기준으로 최저생활을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애매하다.1990년의 경우 생활보호대상자 중 거택보호자가 월 1인당 3만 9천원, 시설보호자가 4만 8천원 상당의 생계보호를 받았는데 이는 보건사회연구원이 계측한 최저생계비의 36%와 44%에 불과한 것이다.결국 생활보호의 수준은 과학적으로 계측된 최저생계비에 근거하기보다는 전년도의 기준과 예산의 제약을 반영하여 점증주의적인 방식으로 결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제 이러한 애매하고 소극적인 태도는 과감히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아울러 생계보호 외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재활과 자녀교육을 위한 서비스도 과감하게 확충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사회보험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유사시에 빈곤이나 질병 등의 발생에 대비하고 예방하는 제도로서 사회보장제도의 중심이 된다.그러나 사회보험제도에 대해 이제까지 국가는 관리운영비 일부만 지원하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고, 수익자부담원칙을 중시함으로써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우선, 사회보험 대상자 설정에 있어 보험료 부담능력이 있고 또 보험료 징수가 용이한 계층을 중심으로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배제되는 역기능을 보이고 있다.예를 들어 국민연금제도는 노후의 생활보장이 중심기능인데, 5인 이상 사업장에 종사하는 직장인만 강제 가입시키고 있고, 오히려 노후에 빈곤 위험이 더 큰 농민, 도시자영업자, 영세업체노동자 등은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90년대 후반기 실시 계획인 실업보험 역시 10인 이상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할 예정이어서 마찬가지의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산재보험도 5인 이상 업체에 국한되고 산업재해 위험이 높은 영세업체 노동자는 제외되고 있다.

다음으로, 보험의 운영에서 기업이나 국가의 부담보다 피보험자 즉 민중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점이다.대부부느이 사회보험 기금은 노사 쌍방의 50대 50의 기여로 충당되고 있는데, 외국의 경우와 비교할 때 노동자의 부담이 큰 편이고 경제적 능력에 따른 누진성이 거의 고려되고 있지 않은 현실이다.의료보험의 경우는 지역의료보험에 대한 국고지원으로 인해 국가재정의 기여가 가장 높고 또 우리 정부가 가장 자랑하는 복지제도이지만, 총진료비 중 피보험자(근로자,주민) 부담이 75%를 상회하는 현실이어서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미가 극히 취약한 형편이다(진료비의 절반 가량은 보험급여에서 제외되고, 보험급여의 절반 정도는 피보험자의 보험료로 충당되기 때문에 피보험자의 총부담을 75%를 상회하게 된다).

이런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 (의료보험의 경우 조합형태를 극복하고 통합재정을 운영하는 것 등)이 이루어져야 할 부분도 많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자세가 선격과제라 할 것이다.

셋째, 탁아·장애인복지·노인복지 등의 사회복지서비스 분야를 살펴보면 고아원·양로원 등 수용시설의 운영을 지원하는 경비가 전체 사업비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생활보호사업과 마찬가지로 예방과 재활을 위한 서비스라기보다는 시설보호를 통한 생존유지에 치중하고 있는 형편이다.그 외의 약간의 혜택鑁을은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중심으로 한정적으로 주어지고 있다.따라서 전국민의 4.5%정도인 생활보호대상자이외의 저소득층 일반과 중산층을 포괄하는 보편적인 복지서비스로 확대시켜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고, 이런 방향이 단순한 빈곤구제에서 벗어나 전국민의 삶의 질을 생각하는 복지국가 일반의 추세에 부응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넷째, 복지관련 정책 중에서 주택정책의 예를 들면, 1989년에 생활보호대상자를 주 대상으로 영구임대주택 25만 호 건설과 공급이 시작되으로써 본격적인 사회주택정책이 시작된 것으로 기대되었다.그러나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입주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았고, 1인 가구는 원천적으로 대상에서 제외되었으며, 그나마 대상자가 없다는 이유로 1992년을 마지막으로 영구임대주택은 19만 호 건설로 축소종료되고 말았으며, 서민주택건설을 위한 국가예산은 대폭 축소되었다.

이상과 같이 우리날의 복지정책이나 제도들은 1980년대를 지나면서 점진적으로 확충되어왔지만 그 질적 내용에 있어서는 수많은 한계와 개혁의 과제를 안고 있다.중요한 문제는 그러한 개혁을 실천할 수 있는 장치를 의미한다.그런데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을 기획하고 실천하는 일은 거의 대부분 행루부의 독중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역대 정권의 속성상 적극적인 복지정책의 추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그동안의 실정이었다.

나아가 현대 국가에서 행정부의 비대화는 어쩔 수 없는 추세라고 하겠지만, 최소한 이를 견제하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정당의 제 기능 회복과 함께 국민의 정치적, 정책적 참여가 가능해야 할 것이다.그러나 우리의 경우 사회복지 부문에 있어 정당의 기능은 취약하기 짝이 없으며, 사회운동 또는 시민운동을 통한 국민적 참여 구조 또한 모색의 단계에 불과한 실정이다.이렇게 볼 때 우리의 복지제도가 앞서 언급한 대로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국면을 극복하고 민중적 욕구에 기반한 개혁을 달성하는 일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시점에서 추구해야 할 현실적인 개혁적 방향의 노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정책 개혁의 선결 과제는 복지재정의 확대

먼저 복지정책의 개혁을 위해서는 국가의 복지재정의 지출의 증대가 선결과제라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한 제도적 개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복지재정지출의 확대를 위해서는 재원의 확충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재원의 획기적인 증대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조세의 누진성 강화와 지하경제에 대한 과세를 통한 세수 증대와 함께, 방위비의 축소와 같은 세출구조의 조정을 통해 복지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이 추구되어야 할 것이다.

복지제도의 개혁에 있어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과학적으로 산출된 최저생계의 보장, 사회보장과 복지서비스의 보편적 확대 및 역진성의 제거, 질적 수준의 제고, 예방과 재활의 강조와 같은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인데, 이는 복지재정의 획기적인 확충이 수반되어야 가능한 일들이다.

다음으로 사회복지행정을 전문화시켜야 하는 과제가 있다.현재 사회복지 행정부문은 전문인력이 대단히 부족하고 행정체계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중앙에서는 보사부에서 대부분의 복지 행정을 총괄하고 있지만, 지방에서는 내무부 산하의 지방공무원들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어 전문성과 효율성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중앙사회복지청, 지방사회복지청, 일선 사회복지사무소로 이어지는 전문적인 행정체계를 수립하고, 그 업무도 사회복지전문요원이 전담하는 방식의 개선안이 오래전부터 주장되고 있다.그렇게 될 경우, 사회복지행정과 정책이 전문화되고 일관성을 갖게 됨으로써 재정면에서도 경비가 절감되는 효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사회복지정책을 운여하는 각종 기구와 기금의 운용에 국민적인 참여구조가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국민연금기금의 경우 앞으로 국가예산 규모를 능가하는 기금의 축적이 예상되는데, 그 운용은 거의 전적으로 행정부의 일방적인 의사에 좌우되고 있어 많은 문제점이 예상된다.따라서 각종 복지관련 행정기구와 복지기금의 운용에 피보험자나 수혜자 및 주민들의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이 요망되는데, 현실적으로는 국회나 지방의회가 운영위원의 선출이나 기금의 관리문제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김영삼 정권은 복지후진국 오명 탈피할까

1980년대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외형적으로 확립된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이제 질적으로 새롭게 정비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정부의 복지재정 지출이 큰 폭으로 증가되어 왔던 1980년대와 달리 1990년을 고비로 하여 경제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복지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투자가 감소하는 국면으로 나타나고 있다.특히 1993년도 정부예산안 중 복지부문의 인상률이 최저치로 설정되어 실질적인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재집권에 성공한 민자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다른 정당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복지관련 선거공약을 제시하였다.민자당의 공약은 농어민복지, 주택문제해결, 영세민 대책, 노인복지, 장애인복지, 보건의료, 보훈사업, 근로자복지, 여성복지 등으로 구분되어 수십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이러한 공약들의 정확한 내용과 실천전망을 현시점에서 평가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민자당의 보수적 성격으로 볼 때 사회민주주의형 복지모델의 채택과 같은 적극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를 바라보는 현시점은 복지후진국의 오명을 탈피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요구되는 중요한 시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