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발표

IMF시대의 청소년선교 - 평화교육 생명문화의 사랑마을

강사 : 장동식 목사

(이웃사랑교회, 사랑마을대표)

1. 90년대의 청소년, 그리고 TV

90년대가 되면서 청소에게 있어서 교회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극단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한마디로 하자면 "없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적인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군사)독재의 시대를 살았었고, 그 독재가 가능할만큼 단순한 사회였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가 80년대 말의 거품의 시대까지 전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담론이었다. 그런 전반적인 사회상황은 청소년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소년들의 삶 역시 대단히 단순했으며, 오늘날 청소년들이 그렇게 매달리고 있던 TV 역시 그렇게 재미있었던 시대가 아니었다. 그 당시의 TV는 우리사회를 지배했던 "잘살아 보세"라는 담론을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형성시켜주었던 기제는 가정, 학교, 교회라고 하는 아주 전통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90년대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80년대 후반(아마도 올림픽 이후)부터 시작된 경제의 거품현상과 더불어 92년 문민정부 출범이후 우리 사회 자체가 열려지게 되었다. 9시를 알리는 시보와 함께 들을 수 있었던 "땡전, 땡노"가 더 이상 "땡김"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가 더 이상 그런 독재적이고 비민주적인, 그리고 획일적인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 사회와 우리들의 삶 자체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해지고 다원화되기 시작했다.

경제적인 풍요(비록 거품일지라도, 혹은 거품이라서 더욱)와 비록 형식적인 것이라고 하더라도 정치적인 차원에서의 일정한 민주화와 더불어 시작된 사회의 다원화 현상 속에서 청소년들의 정체성을 형성시켜주는 기제는 이제 더 이상 어른들에게 익숙한(어른들이 통제하기 쉬운) 가정과 학교와 교회가 아니게 된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것이 바로 춤으로 무장한 청소년스타들로 대변되는 TV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이 다음 달이면 컴백할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난 알아요~~"에서부터 시작된 서태지의 열풍은 "됐어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는 교실 이데올로기, 학교 이데올로기를 파괴하는 노래로 이어졌다. 서태지가 정신차렸다고 어른들이 좋아하는 노래인 컴백홈 역시 단지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노래가 아님을 아이들은 안다.

이제 그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은 더 이상 집이나 학교가 아니다. 이미 모든 교회에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듯이 교회는 그 대열에서 가장 먼저 탈락해 버렸다. 대신에 청소년들은 TV와 그들의 우상들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 나가게 되었다. 그것도 TV를 통해 얻게 된 아주 광범위한 정보를 바탕으로. TV와 TV를 통해 자신의 제품을 광고할 기회를 얻게되는 기업은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가장 큰 구매력을 가지는 청소년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점점 더 청소년들이 즐기는 TV프로를 만들고 후원하게 된다.

청소년들의 문화는 이제 TV문화와 그것의 모방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그들의 삶이 그렇다는 말이다. 문화는 곧 삶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90년대 내내 기성세대를 곤혹스럽게 했던 X세대 논쟁의 핵심이다. 어른들은 자신들이 그래왔듯이 청소년들이 학교와 가정을 통해서만 경제적으로나 신분상의 보장을 받기를 바라면서 그 틀로 청소년들을 묶어 놓으려고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있어서는 이미 아무 의미없는 것들, 오히려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존재가 될 뿐이다. 90년대 내내 청소년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 가출을 할 수 있었으며, 학교를 다니지 않는 것이 그리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사회에는 그들이 일할만한 일자리들이 널려있었던 것이다.(전국 주유소의 주유원이 10만명이라고 한다. 그중에 70~80%이상은 청소년이다. 또 편의점의 숫자는 도대체 얼마인가? 미성년자를 고용하는 유흥업소는?)

이미 가출을 하고 학교를 그만 둔 청소년과 아직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의 차이점은 '이미'와 '아직'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2. 청소년과 교회

이미 앞에서 밝힌대로 청소년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본다면 교회가 청소년을 외면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교회에서 청소년을 외면하고 있는가? 모든 교회가 굉장한 노력을 기울여 교회의 중고등부와 청년회를 부흥시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교회가 청소년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데 왜 청소년들은 교회를 떠나는가? 청소년기에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더라도, 고등부를 졸업한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2/3이상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교회가 청소년을 외면한다는 말은 청소년들의 (변화된)문화, 그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전시대에는 유효했을지 모를 자신(어른)의 잣대와 방법 그리고 내용으로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를 재단하고 교육시키려고 했기 때문인다. 실제로 필자에게 상담전화를 해온 대부분의 주일학교 교사들은 자신은 그런 내용과 방법으로 은혜를 받고 지금까지 그렇게 열심히 아이들을 섬기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주지 않고 들은 척도 않는다고 호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그 방법으로 은혜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었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시대, 모든 청소년들에게 유효한 것은 아니다. 특히 청소년들의 삶의 조건과 실제적인 그들의 문화가 급격하게 바뀌었음에도 그것을 무시한 채 자신의 신앙경험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신앙을 포기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그런 열심은 자신에게는 의미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올바른 길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미 가출을 해도 충분히 먹고 살 길이 열려있는 가출 청소년들을 놓고 무작정 집에 돌아가라느니 부모님이 어떻고 먹고 사는 문제는 어떻고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이미 가치관과 정체성이 형성된 청소년들을 향해서 이전시대의 것을(어른 자신의 것을) 들먹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정말 그들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삶의 방식을 옳다고 믿고 그것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자기를 부인해야, 자신이 죽어야 청소년들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어른의 자기부정이 청소년을 만나는 일의 핵심이다. 청소년의 문화는 우리가 직접 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어른들은 10분 이상을 듣기 힘든 댄스음악을 하루종일 듣지 않으면 이상한 청소년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음악을 하루종일 같이 듣는 고역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방식이고 오래가지도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 삶과는 다른 청소년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마음이다. 그리고 어른이 이해하고 받아준만큼 정당하게 청소년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적과의 동침'이 아닌 '공존의 법칙'을 어른들이 먼저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3. IMF이후의 청소년과 교회

요즘은 다시 많이 변하기는 했지만 IMF가 처음 터졌을 때 청소년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그토록 믿고 숭배해 왔던 TV가 자신들을 배신한 것이다. 어느날 아침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청소년스타들이 TV에서 사라지게 되었으며, 정말 재미없는(그러나 어른들은 눈물을 흘릴만한) 프로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어느날 설교시간에 예배에 참석한 청소년들에게 IMF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단순했다. "①TV가 재미없어요 ②과자를 사먹을 용돈도 없어요."

이 두가지가 청소년들의 심각한 정체성 공황을 알리는 신호라고 해석되었다. 그동안 TV와 TV문화의 모방(그것은 필연적으로 소비문화를 대동한다)을 통해 자신을 형성해가던 청소년들에게 이 두가지가 어느날 아침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청소년들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그 혼란이 가출과 같은 직접적인 문제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IMF가 되면서 청소년들의 신규가출이 많이 줄었다. 그것은 청소년들이 정신차렸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출을 해도 먹고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에 작년처럼 쉽게 가출을 선택할 수는 없게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대로 있고 가정의 파괴와 해체, 직접적으로 겪는 경제적 어려움(수업료를 내지 못한다든가 도시락을 싸지 못하는 등)같은 다양한 문제들이 오히려 증폭되는데 그 해소방법의 하나였던 가출이 줄었다는 것(학교를 그만두는 비율도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은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을 의미한다. 모든 문제가 잠재되어 폭발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일어났던 몇가지 사건들, 이를테면 가정형편을 비관한 4명의 여중생들의 집단투신같은 사건들이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정체성의 위기를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잠재적인 폭발가능성이 5월이 넘어서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또다른 의미의 가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새롭게 발생하는 가출의 특징은 이른바 가정해체형 가출이다. 집에서 가방을 싸주면서 내쫓기다시피 해서 나온 가출의 경우(대개는 이미 부모들이 별거상태, 혹은 한쪽의 가출상태), 가출을 해도 찾지 않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지금 부득이 하게 우리 교회에서 보호하고 있는 서너명의 가출청소년들 역시 이런 경우다). 이른바 IMF형 가출인 셈이다. 청소년들은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부분에서의 어려움을 이겨 낼 방법이 별로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방법의 문제만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 즉 정체성의 문제들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그 갈등을 받아내고 해소시켜줄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의 파괴 속에서 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물론 이런 정체성 부재 혹은 공황의 문제는 단지 청소년들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어른들 역시 '잘 살아 보세'라는 구호로 집약되는 경제적인 풍요, 더 많은 소비와 소유, 그리고 그를 위한 더 높은 자리같은 가치들에 지배를 받아왔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타당하고 '올바른' 삶의 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회의를 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불어닥친 경제적인 어려움은 이 모든 것을 불가능 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 가정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 혹은 인간관계를 유지시킬만한 다른 어떤 충격흡수장치도 없었던 우리사회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교회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대형화, 부흥, 축복위주의 신앙으로 유지되어온 교회들 역시 이런 경제적인 어려움과 그로인한 가정의 파괴와 해체, 그 속에서 고통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그것을 다른 차원에서 보고 극복시킬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교회들 역시 내부에서 커다란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단지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 만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사회의 모든 부분이 충실하게 발전되어 있었어야 하는데 단지 경제적인 어려움이 우리사회의 모든 것을 파괴할만큼 우리사회의 가치관이나 정체성이 경제적인 풍요로 경도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교회 역시 마찬가지 였다. 최근에 일어났던 금란교회사건이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위한을 찾아 교회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비단 교회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에서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 이유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것도 있고, 신앙을 가짐으로 '축복'을 받아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믿음'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하나님의 뜻은 그런 축복에 있지 않음이 최근의 IMF사태를 통해 이미 밝혀졌다. 즉 교회는 그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조금은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복을 내려서 부자가 되게하는 요술 지팡이를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들 역시 교회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어른과 청소년들이 다시 교회를 찾아온다는 것은 IMF를 맞이한 한국교회에 축복이다. 그러나 이런 축복을 다시 교회부흥으로만 연결시킨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교회는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명확한 반성을 해야한다. 그동안 교회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선포해왔다. 그것은 진리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에 나오면 구원을 받는다는 말로 곧바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우리 교회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는가, 우리교회에서 지도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정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 교회는 이런 심각한 자기반성과 회개 속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어야 한다.

청소년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은 교회어른들의 자기반성 속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동안 자신이 진리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청소년들은 이래야 한다'는 막연한 자기확신 속에서 그것을 강요해왔던 이제까지의 자세와 태도를 버리고 겸허하게 청소년들의 삶과 문화,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들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고통받고 있는지, 무엇을 고민하며 어떻게 그것을 풀어나가려고 하는지, 그들의 삶의 방식이 무엇인지 하는 것들에 겸허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한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 그들에 대한 인정(認定)이 없을 때 청소년들은 어른들과 교회를 떠날 수 밖에 없다. 대학을 가야만 하는가? 가출을 하면 안되는가? 학교는 지금 꼭 다녀야만 하는가? 청소년의 본분이 공부인가? 그들은 놀 권리가 없는가? 모든 것이 유예된 채 오직 어른들의 지도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인가?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에 대해서 어른들은, 최소한 교회는 회의(懷疑)하면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4. 사랑마을의 청소년 선교

1) 지금의 청소년문제와 사랑마을의 지향

지금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청소년문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고 있는 것은 "교육과 문화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교육은 대학입학을 위한 학교교육으로 일원화되어 있으며, 입시 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되지 않는 교육적 상황은 청소년들의 삶, 곧 그들의 문화를 피폐하게 한다. 그것은 청소년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위협이다. 이렇게 자신의 삶이 사회적으로 부정되는 상황 속에서 청소년들은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탈현상(기성세대가 보기에)을 일으키게 된다.

이런 교육·문화적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상실한 청소년들에 대하여 교회는 그저 수수방관만 할 뿐 어떤 대안이나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80년대 학력고사가 전면적으로 실시되면서 청소년들에게 있어서 학교교육은 교회교육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고, 교회에서도 주일날 하루 진행되는 주일학교조차 대학진학이라는 학교교육의 목표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다. 오히려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학생들을 몰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과연 교회가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할 의지가 있는가 하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교회의 처지가 이러하기 때문에 그나마 80년대까지 교회를 통해서 상당부분 충족되었던 청소년들의 문화적인 욕구에 교회는 더 이상 응답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교회를 점점 멀리하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교회에서 젊은이들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다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쳐 청소년이 교회를 떠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청소년선교는 이른바 "예수천당-불신지옥"을 선포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어른들의 삶이 그러하듯 청소년들의 삶 역시 그런 구호로 집약될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복잡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일상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공부를 잘 하건 잘 하지 못하건, 학교라는 것이 그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건 없는 것이건 상관없이 교육, 아니 보다 정확하게 '학교'는 청소년들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강제하기 때문이다. 그 일상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삶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문화'다. 문화는 사고를 포함한 전 삶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한국교회의 청소년선교 문제는 '교육'과 '문화'라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지금 청소년들이 접하고 있으며, 그 안에 포함되기를 강제 당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교육철학과 교육현실을 과감하게 부정하고 교회가 성서의 정신을 따라서 새롭게 교육과 문화를 일으켜야 한다.

사랑마을은 이런 생각에서 '평화'와 '생명'이라는 성서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을 교육과 문화에 접목시키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평화교육·생명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 청소년들이 처한 교육현실은 온통 경쟁일 뿐이다. 일등을 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다른 모든 것이 적대적인 관계로 자리 매김 되었으며, 일등 이외의 가치들, 이를테면 나눔과 섬김, 봉사와 희생, 사랑 같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이루시려고 하셨던 가치들은 의미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는 죽음과 죽임의 문화일 뿐이다.

평화교육이라는 것은 그런 경쟁을 극복하고 다른 존재들과 화해하고 공존하도록 하는 교육이다.(따라서 그것은 생태교육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생겨나는 문화는 서로를 살리는 생명의 문화이다.

사랑마을 평화와 생명의 정신으로 지금의 학교교육을 대치하면서 교육과 문화를 새롭게 일으키려고 한다. 그런 측면에서 사랑마을은 대안교육의 한 현장이다. 물론 지금의 상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완전한 대치가 불가능하고 학교교육의 주변에 있지만, 장차 서로를 죽이는 이 파행적이고 비 성서적인 학교교육을 완전히 대치하기 위한 교육운동을 하게 될 것이다.

2) 사랑마을 이야기

사랑마을은 1990년 구로공단 주변에 있는 이웃사랑교회의 공부방에서 시작한다. 공부방은 당시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는 지역주민의 자녀들을 학교교육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교육공간 이었다. 참고로 말을 하자면 이웃사랑교회는 1983년 창립될 때부터 교회의 부흥보다는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구로구에서 처음으로 탁아소(당시에는 '어린이집'이라는 법적인 명칭이 없었다)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그 외에도 지역신문을 발간한다든지 야학을 한다든지 하는 일들을 했고, 지금은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문화선교를 주로 하는 교회이다.

이러한 공부방활동을 하면서 많은 성과가 있었던 반면, 많은 한계도 있었다. 1995년 가을이 지나면서부터 우리의 교육활동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되었는데 가장 중요한 반성의 지점은 교육의 목표와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 과연 교육을 왜 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교육목표, 또는 철학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접하고 만들어나가는 교육현실은 똑같이 아이들을 질곡으로 몰아넣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반성들이 되면서 서서히 대안교육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1996년 3월에 공부방을 어린이교실과 청소년문화교실이 포함된 "지역사회학교 사랑마을"로 바꾸게 되었다.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하는 청소년문화교실을 통해서 지역의 청소년들에게 좁은 의미의 문화를 매개로 한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한가지 믿음과 세 가지 필요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원칙 하에서 지금의 "문화쉼터 사랑마을"을 만들어 나가게 된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들을 만나고 교육시키면서 한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아직 청소년들은 살아있다는 믿음이다. 그들 가운데는 아직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숨이, 사람이 비로소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바로 그 생명의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음을 발견한 것이다. 아무리 문제아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외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들을 만나서 교육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믿어야만 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또한 우리가 발견한 세 가지 필요, 청소년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 위한 세 가지 필요는 다음과 같다.

① 청소년들이 무엇을 하던 용인되고 받아들여지는 공간

② 청소년들을 인정하고 사랑으로 지켜보는 어른

③ 교육적이고 문화적인 도움

문화쉼터 사랑마을은 이 세 가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거의 대개의 것이 허용되며(본드나 도둑질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어지간하면 인정을 받는다. 그리고 항상 어른들이 지켜보고 있는 공간이고, 어른들은 그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청소년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이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그 도움을 위해서 약 40여평의 공간을 임대하여 여러 가지 활동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공간은 여러 가지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음향 및 조명시설과 방음시설을 갖추었으며, 월 1회정도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일상적으로는 청소년 카페의 형태로 운영되는데, 청소년들을 월 5,000원의 회비로 이 공간 안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스스로 차를 타 마시면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때로는 춤도 춘다. 춤을 아주 잘추는 청소년들도 있어서 그들에게 춤을 배우기도 하고 그들의 연습공간이 되기도 한다. 배가 고프면 사발면을 끓여먹고, 가끔씩은 선생님들이 하는 식사에 동참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동아리들을 자발적으로 만들어서 스스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동아리활동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교실프로그램(연극, 풍물, 수화, 영화, 미디어, 노래, 철학 등)을 운영하였다. 그 외에도 요일에 따른 프로그램들이 있어서 영화보기, 함께 이야기 하기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공연장의 모습을 동시에 갖추었는데,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리아'와 '미스미스터'의 공연이 있었고, 혼순관집사의 정신대 할머니를 위한 콘서트(89회)도 개최되었다. 그 외에도 독립영화(닫힌 교문을 열며, 닥쳐)의 상영, 락그룹인 메이데이와 천지인의 공연, CCM 그룹인 좋은 씨앗의 콘서트등이 있었다. 지역의 학교 연극반들을 연결해 청소년 연극제인 '해담제'를 열기도 했으며, 금년은 2회 해담제를 준비중이다. 같이 활동하고 있는 극단인 '배우집단 숨'의 연극공연이 두차례 이루어졌다.

이런 과정에서 교회를 배경으로 성장했으나 교회에서는 받아주지 않는 수많은 문화인력들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들의 도움으로 이 공간의 문화행사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즉 그들 역시 교회에 대한 나름대로의 애정을 가지고는 있지만, 교회가 그들의 문화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를 등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지금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문화인력의 2/3이상은 교회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원했던 것은 아니지만, 가출 청소년들이 발생하게 되어 그들이 이 공간을 쉼터공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청소년의 문화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의 삶,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이들은 사랑마을에서 거의 하루종일 댄스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처음에는 그저 모방에 그치지만, 일정한 수준에 올라서면 스스로 창작을 해댄다. 지역의 특성상 다른 문화들을 활발하게 향유하지는 못하지만(경험의 영역이 너무 협소하다), 접하는 부분들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만들어 내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여간 그 댄스음악과 댄스가 어른들의 귀에, 특히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어른들의 눈과 귀에 익숙하지 않고 심지어 적대감까지 가지고 있지만, 어른들이 자신을 버려야 한다.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법을 어른들이 먼저 터득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 신뢰관계가 형성되며, 그 때 비로소 청소년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다른 것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복음도 그런 상황에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교회, 특히 도시교회가 교육과 문화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청소년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협소한 의미의 문화(기술적인 의미의 문화)라는 도구를 매개로 청소년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을 통하여 청소년들의 삶이라는 넓은 의미의 문화를 제대로 일궈나갈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도구들 안에 담기는 것이 어떤 정신, 어떤 철학인가 하는 것이다. 사랑마을은 복음의 정신, 평화와 생명이라는 복음의 정신에 기초하여 평화교육을 실시하고 이에 바탕한 서로 살리는 생명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