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식별과 성서(구약성서)

영성수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중의 하나는 식별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너희는 ...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엡 5:9-10)라고 성서는 식별의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름을 인식하는 자는 누구나 다양하게 열려져 있는 선택 앞에서 매순간 하나님의 방식에 맞는 선택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신중하게 된다. 물론 열려져 있는 모든 선택의 대상은 기본적인 상식이나 윤리적인 규범에 따라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어느 것을 선택할지라도 윤리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선택들 중에서 하나님의 방식에 맞는 최선의 것이 있다고 믿기에 선택은 여전히 중요한 일이다. 더우기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미칠 영향을 고려한다면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서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식별은 하나님의 파트너 쉽에 우리 자신이 참여하고자 하는 영적 욕구로부터 시작된다. 영성생활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 속에 하나님을 개입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그 기도가 활동적인 삶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해서 최선을 향하여 식별작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후기 중세 이래로 가장 탁월한 영성생활의 길은 기도생활이었으며, 구체적인 기도 양식인 기독교적 명상을 통하여 내면세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대 기독교 영성을 연구하는 이들은 기독교 명상을 통한 주관적인 경험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경향은 기독교 명상에 대한 다음과 같은 측면 때문에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으며, 그 방법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명상이란 메마른 추리 작용이거나 감정적인 작용에 불과하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명상은 세가지 면을 반드시 전제한다. 사변적인 차원, 감성적인 차원, 실천적인 차원이다. 사변적인 차원이란 객관적인 말씀이나 교의적인 숙고를 의미한다. 감성적인 차원이란 묵상을 통한 내면적이고 정의적인 경험(affective experience)을 의미한다. 셋째 실천적인 차원이란 그리스도의 명령에 대한 의지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에서의 기도생활이 영성생활에로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식별적인 통찰력이 필연적이다. 식별작업이 없는 기도는 감상주의에 빠지게 되고, 영성생활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통념적인 식별이이란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영성식별에 있어서 구분하고 평가해야 할 대상은 단순한 사고작용 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우리의 느낌과 직관들이 함께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합리적인 사고와 직관과, 느낌이 적절한 영성식별의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계시의 말씀인 성서가 식별의 객관적인 규범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앞으로 계속되어질 이 글은 우선 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식별의 규범을 구약과 신약의 입장에서 다루고 끝으로는 심리적인 요소로서의 식별원칙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때때로 식별 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신관으로부터 비롯된 다. 첫째 하나님은 시계 제작자와 같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했고, 그리고 그 창조위에 당신의 기술과 원리를 새겨 놓았기 때문에 그 원리대로 돌아갈 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피조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현대 理神論者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마치 시계제작자가 당신은 당신의 시계를 가지고 무엇 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질문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계 제작자와 같은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영성식별이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하나님을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신관(the puppeteer-God)이다. 고대 세계에 흔히 있었던 신관이다. 이 관념은 인간의 자유와 책임을 극단적으로 부정한다. 인간의 책임성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존재한다. 이것은 초기 구약에서 볼 수 있는 예이다. 즉 사울이 선한영 혹은 악한영에 의해서 감동과 시달림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의해서 사울은 찬사를 받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삼상 11:6; 16: 14-23). 그것은 오늘도 유형은 약간 다르나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태도이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절망에 빠뜨리는가? 나도 인식하지 못한채 상황이 이렇게 악하게 돌아가고, 나의 일이 이렇게 꼬이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어떻게 할 수 없다라는 등의 생각이 그러한 것들이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의 선지자들은 야웨 하나님과 그들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친구와 아버지로서 나타난다. 친구의 관계란 성숙한 사람들과의 대등한 관계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자율적인 존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실 여기에 두가지 구분점을 위해서 또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미 성숙한 어른과의 관계를 의미하는가? 혹은 성숙되어져 가는 자녀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하는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유비를 인간의 부성적인 관계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이것은 완전한 성숙자를 의미하기 보다는 성숙되어 가는 자녀로서의 관계를 의미한다. 즉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서의 자녀란 이미 성숙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성숙을 기대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성숙되어가는 존재로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식별적인 삶을 요구한다. 식별적인 삶이란 하나님의 최선의 뜻을 찾아가는 성숙되어 가는 과정으로서의 매듭을 의미한다. 바울도 이러한 의미를 고전 3:1-3절에서 피력하고 있다. 완전히 성숙된 존재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니라 젖을 먹는 자녀로부터 밥을 먹는 자녀로 성숙되어 가는 존재로서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바울서신 고전 2:15절에서 영적인 사람(성숙한 사람)은 모든 가치를 판단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판단 받지 않는 사람으로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이 의미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식별의 사람이며, 그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안내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말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의 성숙은 바로 우리 자신의 측면에서 원숙한 식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아버지와 성숙한 자녀와의 관계이다.

구약에서는 이러한 인격적인 관계를 실현하는 방법으로서 식별적인 아이디어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제시해 주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뜻을 전해주기를 원하시지만 식별 없이도 그 뜻이 명백하게 저절로 알려지지는 않는다. 때로 그 목소리는 매우 모호하고 신비적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소리와 더불어 다른 영의 목소리도 함께 섞여 들려지도록 허락하시는 듯하다. 즉 다른 영들의 목소리가 하나님의 소리와 더불어 경쟁적으로 우리에게 들려온다. 예를 들자면 하나님의 목소리와 하나님과의 적대적인 죄악의 목소리, 즉 사단의 목소리(창 4:7)가 섞여져 들려온다. 사단의 목소리 역시 하나님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모호하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이나 실상 그 목소리는 사람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어떤 다른 원천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우리 자신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힘이 세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의 성향 보다 더욱 집요하고, 자신의 계획을 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온실로부터 벗어나 시장이라는 어두움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거기에 하나님을 닮은 경쟁적인 목소리가 많이 나타난다. 인간은 삼중적인 어두움에 던져져 있다. 첫째 하나님은 보이지 않은채 명령한다. 두 번째 사단은 자기 자신을 숨긴채 하나님이 확인한 것 이상을 제시하고, 하나님이 요구하는 것 이상을 제안함으로서 하나님의 목소리와 사단의 목소리를 혼란케 어두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인간 자신 안에 드리워진 어두움이 있다. 즉 자기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없는 어두움, 자신의 행동과 그것으로부터 초래되는 결과들을 진지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어두움이다. 이러한 삼중적인 어두움 속에서 인간은 삶을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도전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자신이 듣고 있는 목소리의 정체를 밝혀내고 판단하도록 요구를 받는다. 그것이 바로 영성식별의 문제이다.

구약에서 우리는 신빙성 있는 예언을 식별하기 위해서 몇 가지 암시적인 규범을 찾아볼 수 있다. 이 기준으로부터 우리의 내적 음성을 간접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원칙을 유추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첫째 불행에 대한 예언은 행운에 대한 예언들 보다 더 믿을 만하다. 왜냐하면 듣기 좋은 예언은 인기를 모을 수 있고, 청중들의 욕구를 중개해 주며, 반면에 좋지 못한 예언을 하는 데에는 자연적인 욕구가 발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아의 소리가 아닌 다른 어떤 음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렘 28장). 다른 어떤 음성이란 예언자 자신의 욕구 표현이 아니라 진지한 사명의 확신으로 비롯된 하나님의 소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신빙성 있는 예언이란 앞으로 지나가게 될 징조(표시, signs)에 대한 예측으로부터 확인된다. 예언자란 하나님의 메시지를 맡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때, 그가 예언할 때 그 예언에 상응하는 표시들(signs)을 제시해 줌으로서 그 신빙성을 더해 준다. 즉 어떤 예언에 대한 신뢰성은 현재 경험하고 있는 일을 예언의 표시(sign)로 알려준다면 참 예언으로서의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사역과 가르침에 대해서 배척을 받을 때 '내가 행하는 것을 보고 믿으라'고 했다(요 10:38).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세례요한에게 전하라고 하셨다(마 11:4-6). 예수님의 메시야성에 대한 예언은 완성되지 않은 미래적인 것이었으나 그 예언의 신빙성은 현재적으로 보여주는 그 표시들(signs)으로서 그 진실성을 확인시켜 준 한 예이다.

세 째는 위의 기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믿음의 신조'에 충실하고 있느냐이다. 사실 성공적으로 수행된 징조나 기적조차도 예언자들의 신빙성을 확실하게 보장해 준다고 할 수 없다. 악마도 기적을 통하여 유사한 징조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위안을 주는 사건이나 표시가 모두 하나님의 임재나 영향을 나타내는 표시는 아니다. 만약 선지자가 이스라엘이나 교회의 근본적인 믿음과 모순된다면 그의 예언이 하나님의 영에 의한 감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그 예언자의 신앙고백이 보편적인 교회의 신앙고백과 일치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네 째 선지자의 삶의 증언은 교리의 건전성만큼 중요하다. 흠잡을 데 없는 예언자라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반면에 거짓 예언자는 그 죄악 된 삶에 의해서 그 자신 스스로가 순수한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불행한 일, 어떤 표시들, 기본적인 믿음의 신조, 삶의 증언 등은 보이는 외적인 기준들이다. 다섯 번째의 기준은 예언자의 내적인 성향을 말한다. 예언자의 예언이 남의 비위를 맞추려 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려놓고자 하는 열망에서 비롯된 것인가?를 식별한 후에 그 예언의 신빙성을 가늠할 수 있다. 여섯째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개인의 경험이 중요한 식별의 기준이 된다. 성서는 모든 예언자들에게 취임비젼(inaugural vision)을 보여주고 있다(예를 들면, 사 1:6; 렘 1: 4-10; 출 3: 모세; 호 1-3). 이 비젼은 청중들에 의해서 인지되지도, 확증되지도 못하지만 예언자들 자신은 자신의 예언의 신빙을 증명해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예언자들의 예언이 명명백백하게 객관적인 신빙성을 가지지 못하고 다양한 식별 규범을 통하여 그 예언의 정당성을 확인케 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코 시계 제작자나 꼭두로서가 아니라,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증거이다. 식별을 통하여 우리 모두는 책임적인 존재로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성숙한 자녀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린 자녀들의 아버지로서 간섭하시기를 원하시지만, 동시에 당신의 자녀들이 영원히 미성숙한 채로 머물러 있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이스라엘에게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대해서도 하나님의 목적은 성숙한 자녀로서의 관계요 책임적인 존재로서의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다(요 15:15).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에 간섭하시기를 원하시지만 그의 의지를 강제로 강압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로 하여금 그 목소리를 판단하고 식별하기를 원하신다. 특히 이스라엘에게 대해서는 예언자들의 예언의 소리가 하나님의 소리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식별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 기독교적인 전통에 의하면 하나님은 결코 시계 제작자이거나 꼭두가 아니라 성숙한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관계라는 의미에서 식별적인 삶은 필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