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영진 대한 성서공회 부총무 기독교사상 94.10
안식일이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안식년은 땅을 위한 것이고 희년은 구체적으로 이집트 탈출 전승을 계승한 계약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안식일이 되면 사람도 쉬고 집짐승도 쉰다.사람과 짐승이 일하지 않으니 땅도 휴식을 방해받지 않고 덩달아 쉰다.그러나 안식일은 일차적으로는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다.주인도 쉰다 주인의 아들도 쉬고 딸도 쉰다.종도 쉰다. 남종도 쉬고 여종도 쉰다.고향을 떠나 타관에서 몸붙여 살고 있는 나그네 도 쉰다.본국인 나그네도 쉬고 외국인 나그네도 쉰다.(출20:2-17,20:23-24,23:10-19,34:21;신5:6-18)
그러나 안식년은 땅을 놀리도록 하는 규정이므로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땅을 위해 있는 것이다. 6년 동안 파종하여 먹거리를 생산하게 하였으면 7년째 되는 해에는 그 땅을 놀려야 한다.(출23:10-11;신15:1-11)
안식년이 일곱 번 지나 50년이 되는 해가 희년 이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 땅을 평등하게 분배하여 똑같은 경제적 여건 아래서 공동체 생활을 시작한다.자유인이 되려고 이집트를 탈출한 평등 공동체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그래서 못사는 사람은 분배받은 땅을 팔거나 그래도 여건이 어려우면 집을 내놓거나 몸까지 내놓아 종살이를 하게 된다.그러나 평등 공동체 안에 이러한 불균형 상태가 언제까지나 무한정 지속되어서는 안된다.이러한 사회 경제적 불균형이 허용되는 최대의 기한은 50년이다.따라서 희년은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레25:8-55)생명을 가진 모든 것은 쉬어야 한다.사람도 자연도 사회도 쉬어야 한다.안식은 만물을 회복시킨다.사람도 자연도 사회도 창조된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킨다.
"너희는 여섯 해 동안은 밭에 씨를 뿌려서,그 소출을 거두어들이고,일곱 해에는,땅을 놀리고,묵혀서,거기서 자라는 것은 무엇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게 하고,그렇게 하고도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게해야한다.너희의 포도밭과 올리브 밭도 그렇게 해야 한다.(출23:10-11).
안식일이나 안식년은 "여섯 더하기 하나"라고 하는 공동 형태를 지니고 있다.안식일이 여섯에 하루를 더하는 형태라면,안식년은 육년에 한 해를 더하는 형태이다."여섯 더하기 하나"는 형태만 같을 뿐 아니라,"풀어주는 기능도 닮았다."칠일을 주기로,노동을 하는 사람과 집짐승이 안식일에 노동에서 풀려나고,땅 역시 노동이 가해지는 일을 당하는 데서 풀려나 휴식을 방해받지 않듯이,칠년을 주기로 일곱째 해가 될 때마다(아직 안식년이란 말이 사용되지 않는다),사람과 집짐승과 땅이 노동에서 풀려난다.11절에 사용된 동사 smt (면제하다)와 nts(포기하다)는 비슷한 말이다."셰밋다"(semittah)는 다른 곳에서는 빚을 면제해 주는 뜻으로 사용된다.(신15:1-11).
이런 점을 본다면 ,'일곱볁 해'를 특별히 설정한 동기는,한편으로는 휴식과 휴경이다.특히 휴경은 토지의 생산성을 높인다는 농업적인 관심이 아울러 내포되어 있다고 보기도 한다.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이 가해지지 않고 저절로 자란것은 그 땅에 사는 빈민의 몫이고 빈민이 남긴 것은 들짐승의 몫이라는 규정을 볼 때,그리고 포도밭이나 올리브 밭도 일곱 재 해에는 주인이 가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밭에서 저절로 자란 결실에 대해서 아무런 소유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는 규정을 볼 때,일곱째 해의 설정동기는 다분히 신학적이고 사회적이다.신학적이라 함은,땅은 하나님의 것이며 사람은 단순히 땅을 빌려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고,사회적이라 함은 빈민에 대한 관심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말이다.프레이(H.Frey) 같은 주석가는 일곱째 해에서 보는 휴식과 들짐승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여 복락원 사상의 반영이라고 까지 생각하기도 한다. 노트는 일곱째해의 동기를 "본래 상태로 돌아감"(restitutio in integrum)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본래의 상태란 창조된 세계를 전제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기로 한 그 땅으로 너희가 들어가면,나 주가 쉴 때에,땅도 쉬게 하여야 한다.여섯 해 동안은 너희가 포도원을 가꾸어 그 소출을 거두어라.그러나 일곱째 해에는 나 주가 쉬므로,땅도 반드시 쉬어야 한다.그 해에는,밭에 씨를 뿌려도 안되며,포도원을 가꾸어도 안된다.거둘 때에 떨어져 저절로 자란 것들은 거두지 말아야 하며,너희가 가꾸지 않은 포도나무에서 저절로 열린 포도도 따서는 안 된다.이것이 땅의 안식년이다.땅을 이렇게 쉬게 해야만,땅도 너희에게 먹을 거리를 내어 줄 것이다. 너 뿐만 아니라 남종과 여종과 품꾼과 너와 함께 사는 나그네 에게도 먹을 거리를 줄 것이다.또한 너의 가축도,너의 땅에서 사는 짐승까지도,땅에서 나는 모든 것을 먹이로 얻게 될 것이다.(레25:2b-7)
"일곱째 해"를 땅이 쉬는 해라고 하여 "땅의 안식년"(셰낫트 샤바톤.... 라아레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여기에 "안식년"이라는 말은 구약의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이다.땅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생각이 출애굽기(23:10-11)의 경우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나 있다.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다."땅은 아주 팔지 못한다.땅은 나의 것이다.너희는 다만 나그네 이며,나에 게 와 서 일시 거주자 일 뿐이다"(레23:23)라는 말에서 이러한 생각이 더욱 분명해진다.출애굽기의 '일곱째 해'규정에서는 토지의 생산성 문제가 분명하지 않지만,여기 레위기의 '안식년'규정에서는 휴경(休耕)이 토지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암시가 강하게 나타나 있다.(6-7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세운 규례를 따라서 살고,내가 명한 법도를 지켜서 그대로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그 땅에서 너희가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땅은 소출을 낼 것이고,그것으로 너희가 넉넉히 먹을 수 있을 것이며,거기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일곱째 해에는 씨를 뿌려도 안되고,소출을 거두어들여도 안된다면,그 해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하고 물을 것이다.그러나 여섯째 해에 내가 너희에게 복을 베풀어, 세 해 동안 먹을 소출이 그 한 해에 나게 하겠다.(레25:18-21)
위 본문은 안식년 직전 해에 풍년이 들어,안식년 직전 해와 안식년 당년과 안식년 직후 일년 동안 먹을 수 있는 먹거리가 생성될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너희를 여러 민족 사이로 흩어 버리고,칼을 뽑아 너희 뒤를 쫓게 할 것이다.너희가 살던 땅은 버려진 채,거칠고 쓸모 없이될 것이며, 너희가 살던 마을은 폐허가 될 것이다.그 때에야 비로소 땅은 안식을 누릴 것이다.땅이 그렇게 폐허로 버려져 있는 동안,곧 너희가 원수들의 나라로 잡혀가 있는 동안에 비로소 땅은 쉴 것이며,제 몫의 안식을 누릴 것이다.너희가 그 땅에 사는 동안에는,안식년이 되어도 땅이 쉬지 못하였지만,폐허로 벼려져 있는 동안에는 땅이 쉴 것이다...... 나는 야곱과 맺은 언약과 이삭과 맺은 언약과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또 그 땅도 기억하겠다.그들에게 버림받은 그 땅은,오히려 그들이 없는 동안 폐허로 있으면서 안식을 누릴 것이다.그 기간에 그들은 내가 명한 법도를 거역한 죄값과 내가 세운 규례를 지키지 않은 죄값을 치를 것이다.(레26:33-35,42-43)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유배의 형벌을 이스라엘 백성이 땅을 학대한 것과 결부시킨 진술이다.이스라엘 땅에 살던 백성이 유배지로 다 흩어지고 난 다음이라야 땅이 비로소 안식을 누린다는 것이다.이것을 재해석한 것이 다니엘서 9장24-27절에 나오는 일흔 이레[또는 주간(週間)]이다.예레미야서 25장 11-12절에 다음과 같은 신탁이 있다.
이 땅은 깡그리 끔찍한 폐허가 되고,이 땅에 살던 민족은 칠십 년 동안 바빌로니아 왕을 섬길 것이다.이렇게 칠십년이란 기간이 다 차면,내가 바빌로니아 왕과 그 민족과 바빌로니아 땅의 죄를 벌하며,그곳을 영원히 황우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나 주의 말이다.3
여기 "칠십년"이라는 연대를,다니엘은 안식년의 70회 주기,곧 490년 동안을 예루살렘 멸망으로부터 메시아가 오실 때까지의 기간이라고 본 것이다.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유배지의 포로로 만들어서라도,이렇게까지 해서라도,안식을 박탈당한 땅에게 안식을 보상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매 칠년 끝에 그 해의 끝에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 면제규례는 이러하다.누구든지 이웃에게 돈을 꾸어 준 사람은 그 빚을 면제하여 주어라.주께서 면제를 선포하였기 때문에 이웃이나 친족에게 빚을 갚으라고 다그쳐셔는 안된다.이방 사람에게 준 빚은 갚으라고 할 수 있으나 너희의 친족에게 준 빚은 면제해 주어야 한다........ 너희 친족 히브리 사람이 남자든지,여자든지,너희에게 팔려와서 여섯 해 동안 너희를 섬겼거든,일곱째 해에는 그 에게 자유를 주어서 내보내라.자유를 주어서 내보낼 때에,빈 손으로 내보내어서는 안된다....(신15:1-18)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부과한 무거운 채무의 짐을 벗는 해방과,땅이 생산을 강요당하는 노동의 짐을 벗는 것과,남에게 팔려 온 종에게 부과된 종살이의 짐을 벗는 것이 서로 연결된 것을 우리는 여기 신명기의 채무 면제 규정에서 볼 수 있다.신명기의 채무'면제'에 사용된 동사와 출애굽기의 땅을 '놀린다'는 휴경에 사용된 동사가 둘 다 smt 라고 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채무자는,여러 경우에 ,종살이를 하고 있을 수 있다.여기에서,땅의 안식년은 땅과 빈민의 안식년으로 발전한다.땅도 쉬고,빈민도 그 힘겨운 노동과 채무에서 벗어나 쉰다.
안식년에 관계된 구약성서의 주요 본문의 내용을 요약하면,1)여섯 해 동안 농사를 지은 당은 일곱째 해에는 반드시 묵혀야 한다.2)당을 쉬게 해야만 당이 사람의 먹거리를 생산해 낼 것이다.달리 말해서 ,땅에 씨앗을 계속 파종하고 추수하여 땅에게 휴식을 주지 아니하면 .땅이 황폐해져서 먹거리를 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이 함축되어 있다.3)사람이 땅에서 안식년을 허락하지 않고 땅을 혹사시키면,하나님께서는 땅위에 사는 사람들을 다른 곳으로 사로잡혀 가게 해서라도,사람들이 살지 않는 동안 땅을 쉬게 하신다.4)안식년은 일차적으로 "땅을 위한 땅의 안식년"이다.5)일곱째 해에,묵힌 땅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먹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다.6)가난한 사람들이 다 먹고도 남은 것은 들짐승의 몫이다.7)안식년이 되면,빚진 사람들의 빚을 다 탕감해 주어야 한다.8)안식년이 되면,종을 풀어 주어 자유인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1.안식은 창조의 목표이다.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의 공통적인 요소 중에서 으뜸은 휴식이다.안식이다. 안식은,하나님께서도 창조의 역사를 끝내시고서 취하신 것이다.:"하나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엿새날 까지 다 마치시고 ,이렛날에는 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다.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창2:2-3)."그러면서 피조물에게 하나님의 그 안식에 함께 참여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너희는 엿새 동안은 모든일을 힘써 하여라.그러나 이랫날은 주 너의 하나님의 안식일이니,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된다.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딸이나,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너희의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일을 해서는 안된다.이는,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주고,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출20:8-11).
쉰다는 것은 시간의 막간에 피곤을 풀거나 새로운힘을 얻기 위하여 잠시 일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창조의 완성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이 함께 누리는 안락함이요 평안함이다.샬롬이다.창조의 완성에서 누리는 영원한 샬롬을 미리 맛보는 것이 휴식이요 안식이다.
2.안식은 금욕이다.
휴식은,있는 이들에게는,휴식의 중단이다.더 가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시위이기도 하다.'그만 벌어라'이다.탐욕의 중단이다.아무리 벌어도 인간의 탐욕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긍정이다.탐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이다.금욕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구약의 안식일이나 안식년의 기원을 연구하는 고대 근동의 민속과 종교에서 "금기"의 개념을 발견하였다.이렛날이나 일곱 째 해에는 사람에게 화를 미치는 악령이 집배하는 날로 바뀌어,일상활동을 중지하고 회당에 모여 예배하는 의식을 거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이교의 금기가 이스라엘에서는 "금욕"으로 바뀐 것이다.탐욕을 스스로 억제하는 이러한 금욕은 탐욕의 희생물이 되어버린 공동체 안의 다른 구성원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이어진다.그래서 안식은 한편으로는 안식이면서,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이의 탐욕 때문에 희생당했던 이들에게 보상이 이루어진다.
휴식은,없는 이들에게는,하나님이 자라게 하신 것을 거두어 먹는 기쁨을 준다.들에서 저절로 자란 먹거리를 거두는 것은 곳간에 쌓아두기 위한 수확이 아니다.먹을 만큼만 먹고 남기니까,들짐승이 먹고 함께 기뻐한다.사람을 송이 가 닿지 않고 저절로 자란 포도와 올리브를 공짜로 먹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나 들짐승에게나 그들의 휴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다."일하기 싫은 사람은 먹지도 말라"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나 일찍부터 있어 온 교훈일 것이다.그러나,사람이 일을 아무리 힘들게 해도 늘 허기를 못 면하는 사회가 있다.또 일을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는 사회 구조도 있다.그래서 안식년은 그러한 이들을 종살이에서 풀려나게 한다.도저히 갚을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난 빚을 지고 허덕이는 이들에게는 빚갚음이 면제된다.짓누르는 빚을 짊어진 채 일도 하지 않는 휴식은 죽음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채무를 벗고 나서,주인의 거둔 수확을 함께 나누며 쉬는 휴식이라야 진정한 샬롬이다.여기에 ,주인과 노예가 없다.
3.안식은 피조물을 보전(保全)한다.
비록 땅을 손질하여 가꾸고 돌본다 하더라도,그래서 자연이 지닌 생산의 힘을 더욱 더 증대시킨다 하더라도 땅에게 휴식을 주지 않고 계속하여 갈아먹기만 한다면,이것은 땅에 대한 착취요,땅을 황폐하게 만드는 일이다.자연 파괴이고 환경파괴이다.하나님께서 땅의 안식을 명하신 배후에는 창조된 세계에 대한 보호의 의지가 들어 있다.안식년 규정은 피조물 가운데서는 특별히 땅을 예로 들어 말하면서,피조물에 대한 착취 행위,휴식의 박탈이 가져올 가공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