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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이 말하는 공동체성
김 영 봉 (협성대학교 신학과 교수/신약학) |
1. 종말론적인 구원의 공동체: 예수 공동체
예수가 공동체를 의도했는가? 예수의 종말론을 임박한(imminent) 것으로만 해석하던 사람들은 예수가 공동체를 의도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라고 믿고 있던 예수가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거부당했다. 거부의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첫째, 예수는 임박한 종말만을 기대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이다. 예수의 종말론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실현된(realized) 차원이었다. 예수는 자신의 사역 안에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 역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가 구원의 백성들을 한 공동체로 모았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둘째, 예수의 행동이나 말씀을 보면 실제로 예수가 공동체를 모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발견된다. 열 두 제자를 모은 것도 종말론적인 구원의 역사를 위한 "근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함이었고, 자신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나누었던 식탁 교제(table-fellowship)도 역시 예수의 공동체에 대한 비전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예수가 공동체를 의도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에 대한 예수의 비전을 가장 잘 설명하고 있는 책으로는 다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G.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왜관, 분도 출판사)]
그렇다면 예수의 공동체는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가? 예수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무상으로 공급해 주시는 구원의 은혜 위에 서 있었다.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 구원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예수의 주변에는 그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예수의 공동체는 따라서 근본적인 성격에 있어서 "종말론적"이었다.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 행동이 있었기에 이 공동체는 설 수 있었으며, 이 공동체 안에서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현실들이 경험되었다. 이 공동체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축하하고, 그 구원을 증언하였다.
예수의 종말론적인 공동체는 다른 유대 공동체들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달랐다. 다른 유대 공동체들은 율법적인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의 호의(好意)를 사는 데 집중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공동체는 폐쇄적이었고 배타적이었다. 반면, 예수의 공동체는 모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호의를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호의를 애써 얻은 것이 아니라 무상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했다. 그래서 예수의 공동체는 자연히 개방적이었고 관용적이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어떤 종류의 사람이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이 있었다.
예수 공동체의 개방성과 관용성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일화가 있다. 예수님의 제자 요한이 어느 곳에 갔다가,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그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예수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은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는 예수님께 그 사실을 자랑삼아 보고하였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분은 "막지 말아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눅 9:50//막 9:40). 이 말씀 속에서 우리는, 예수의 공동체 비전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수의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개방성과 너그러움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은 서로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나 남겼다.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신을 찾으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이렇게 반문하였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그리고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보아라,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말하였다(마 12:46-50//막 3:31-35//눅 8:19-21). 이 말은 예수의 공동체에 들어 온 사람들은 모두 한 가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예수의 공동체는 산 위에 높이 세워진 동네와 같다(마 5:14). 혹은 등경 위에 올려진 등불과 같다(마 5:15). 그 삶의 독특성 때문에 이 세상에서 쉽게 드러난다. 왜 이 공동체는 이렇게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가? 그들의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마 5:20) 낫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산상 설교에 모아진 말씀들을 통하여 자신의 공동체에게 기대했던 것이다. 그 공동체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공동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차원을 보여 주는 공동체이기도 했다.
2. 초대 교회의 실천
이러한 예수의 공동체 비전이 초대 교회에서는 어떻게 실천되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사도행전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행전은 처음 교회의 공동체적인 삶의 모습에 대하여 세 번씩(2:43-47; 4:32-37; 5:12-16)이나 요약하여 전해주고 있다. 이 요약문들이 말하는 대로 본다면, 처음 예루살렘 교회는 예수가 살아 생전에 모았던 공동체의 성격을 그대로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종말론적인 구원의 즐거움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공동체 안에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현실들(예컨대, 기적들)이 넘쳐 났다. 그들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가족처럼 생각하고, 그들의 소유를 함께 나누었다. 그들은 가족처럼 한 마음이 되었으며, 그들의 삶은 외부 사람들이 매료될 정도로 높은 덕성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래서 날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로 모여들게 되었다. 부활과 오순절 체험 이후, 예루살렘의 예수 공동체는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적 성격은 시간이 흐르면서 초대 교회의 삶 속에서 점차로 사라져 갔다. 학자들은 그 동안, "왜 누가가 세 개의 요약문을 전반부에 소개하고 있는가?"를 질문해 왔었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가는 이 요약문들을 일종의 "원시 신화"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의 교회는 이러한 공동체성을 많이 잃어버렸다는 것을, 누가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려니" 생각하고 그냥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교회는 처음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그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실현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누가는 이 요약문들을 일종의 원시 신화로 제시함으로써, 독자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가능한 한 원래의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초대 교회"라는 간판을 내 건 교회들을 자주 본다. 이 간판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교회의 그 공동체성을 회복하겠다는 의도가 그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 교회에 대한 이러한 동경이 어디에서 출발했는가? 누가의 요약문에서 출발하였다. 결국 누가는 성공하였다. 그는 독자들에게 원시 공동체의 삶에 대하여 동경하고 그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어 넣어준 것이다. 바로 그것이 그의 의도였다.
3. 주님의 몸으로서의 교회: 바울의 비전
여기에서 우리는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비전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바울이 실제로 어떠한 공동체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다. 사도행전의 보도들은 바울의 전도 이야기에만 집중해 있기 때문이다. 그의 편지들을 보더라도, 그러한 삶의 모습들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지, 그가 쓴 편지들을 보고, 공동체에 대한 바울의 생각이 담겨 있는 부분을 찾아 논의하는 것뿐이다.
바울의 공동체 비전이 가장 농도 깊게 농축되어 있는 곳은 고린도전서 12장이다. 여기에서 그는 공동체를 "몸"에 비유한다. "몸의 비유"는 에베소서에서 다시 한 번 반복된다.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인간의 몸과 같이 작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몸은 똑 같은 지체들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가지의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고전 12:13). 이 말씀을 통하여 바울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개방성과 관용성을 강조한다. 이 공동체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하며, 누구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이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마치 몸이 물을 마셔야 사는 것처럼, 이 공동체는 성령을 마심으로써 그 생명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성령은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제공해 줌으로써 공동체의 원래적인 기능을 이룰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 공동체라는 사실이 여기에서 자명해 진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그리스도 공동체는 그 기능을 다할 수 없다. 공동체 내에서 역사 하는 성령의 은사들에 대하여 말하면서 바울은 두 가지 점을 강조한다. 첫째는 은사의 다양성(diversity)이다. 마치 몸의 지체들이 다양하듯이, 공동체의 존재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제공해 준 성령의 은사들도 다양하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대로, 우리 몸에다가 각각 다른 여러 지체를 두셨습니다"(고전 12:18)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주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다. 따라서 인간이 그것에 대하여 항변할 수 없다. 인간으로서는 다만 그 은사를 겸손히 받아 몸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뿐이다.
바울이 공동체 내의 은사에 대하여 지적하는 두 번째 사항은 은사의 통일성(unity)이다. 은사의 내용과 성격은 각각 다르다. 하지만 그 은사들이 합하여 이루는 일은 하나다. 마치 몸의 지체들이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그것들이 합하여 하는 일은 하나인 것과 같은 이치다. 하나님께서 서로 다른 은사를 허락해 준 이유는 제각기 제 일만 하고 살라는 뜻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목적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다른 모든 지체가 그 고통을 함께 느끼듯이, 공동체의 구성원들도 친밀한 교제를 통하여 한 몸다운 운명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 공동체에 있어서 "교제"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떠오른다. 교제(koinwniva)는 단순한 사귐의 차원을 넘어 선다. 공동체가 나누어야 할 교제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드림으로써 진정한 교제의 모델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의 삶의 양식을 닮아 산다는 것이다. 예수의 삶의 양식이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희생하는 삶이었다. 이것이 진정한 교제의 삶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공동체 안으로 들어 와야 한다. 그 공동체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서 서로를 위해서 자신의 것을 주고받는 교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공동체에서의 친교는 구체적으로 삶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서로 더불어 사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삶이 있을 때,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 있고, 그 때 그 모임은 진정한 의미에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의 공동체라고 규정한 바 있었다. 성령은 교회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은사로써만 역사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열매로써 역사하기도 한다. 흔히들 교회를 "용서받은 죄인들의 모임"이라고 말을 하지만, 이것은 매우 소극적인 규정이다. 교회는 오히려 "성화 되어 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성화의 과정을 인도하는 것이 바로 성령이다. 성령의 열매가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 성화로써 표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양식 때문에 그리스도 공동체는 바깥 사회로부터 구별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배타적인 구별이 아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바깥 사회에 대하여 한없이 열려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공동체는 바깥 사회와는 다른 삶의 질을 가지고 있다. 그것으로써 공동체는 구별될 수 밖에 없다.
4. 결 론
이상과 같이 신약성서의 공동체 비전을 살펴보았다. 물론, 우리의 논의는 예수와 누가와 바울, 세 사람의 공동체 신학에 국한되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위의 논의는 신약성서의 공동체 비전이 전체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진 것인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 종말론적인 구원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다. 그 공동체는 그 구원의 현실들을 즐기고 축하하고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공동체는 근본적으로 성령론적이다. 이 공동체는 바깥 사회에 대하여 무한히 열려 있으며, 동시에 특별한 삶의 질을 통하여 구별된다. 이 공동체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바깥 세상에 끊임없이 선포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내적으로는 한 가족처럼 혹은 한 몸처럼 서로 친밀한 교제 안에서 살아간다. 이것이 그리스도 공동체의 중요한 특징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오늘의 교회를 이와 같은 신약성서의 공동체 비전으로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오늘의 교회는 과연 종말론적인 구원의 공동체이며, 성령의 공동체인가? 구원의 현실들이 경험되는 축제의 장인가? 이 세상에 대하여 얼마나 열려 있으며, 세상에 대한 책임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가? 교회 내적으로 진정한 교제가 있는가? 한 가족으로서의 혹은 한 몸의 지체로서의 연대감이 얼마나 강한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의 교회가 과연 신약성서의 공동체성을 얼마나 잃어가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줄 것이며, 교회로 하여금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살아가게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