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과 구약성서

선린교회 김 정출목사

사람이 성장함에 따라 어릴 적의 일들은 '잠재의식"이란 심연속으로 침

전되어 간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 어릴 적의 일들은 기억 속에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어릴 적의 경험들이 우리의 언행심사를

원격 조종하는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얼마

전 T.V에서 힛치콕 감독의 영화 한편이 방영된 적이 있다. 주인공인 한 처

녀는 여러가지의 전혀 다른 인격적인 양상을 병적으로 드러내는 "천의 얼

굴"의 소유자였다. 이 처녀의 정신질환을 치유하기 위해 여선생은 끈질기게

어릴적의 기억을 연상하도록 이 처녀에게 여러가지 자극을 가한다. 그 결과

이 처녀는 어릴 적에 성격이 지나치게 강한 어머니에게 병적인 상처를 입었

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부터 치유작업이 시작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양상은 인간 개개인 뿐만 아니라 인간 공동체가 형성하고 있는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여러가지 병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

는 현대인과 현대사회에 대하여 회개를 선포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인간

과 역사의 심층 속에 있는 비밀을 캐내어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한 예수의 요청은 자신의 생리적인 갈증을 해소하려고 한 것이

라기 보다 깊이에까지 메말라 있는 여인의 비밀을 떠올리려는 시도하고 생

각해본다. 결국 예수는 "회개하라"는 말없이 여인의 삶을 회개(전환,회복)

시키셨다.

오순절 직 후 사도 베드로의 설교는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서

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구

약성서나 그들의 과거 역사를 더듬으면서 한 설교였다.

그 결과 "회개하라"(2:38)고 말하기도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먼저 "형

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2:37)라고 하는 말을 하게 되

었다.

사도 바울의 설교들 역시 오랜 과거에서 부터 울려나오는 장중한 음성에

의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와 사도들의 음성이 그 시대의 사람드에게 충격적인 반향을 불러 일

으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설교 근저에 인간 마음의 심연과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만큼 그들의 설교는 인간과

사회의 깊이에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었고 그 병통의 근저에서 부터 근본적

으로 치유할 수 있었다고 본다.

구약 성서란 고풍스럽고 근엄한 경귀들을 모은 책이 아니다. 오히려 현

대인이 보기에는 유치하고 황당무계한 언어들을 수록한 책같을 것이다. 그

러나 인간 개인의 어릴 적 경험들이 그러한 것처럼 인류와 사회의 현재 양

상을 원격 조종하고 있는 인류와 사회의 심연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즉 원

인을 모르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의 심연과 해결하기 어려운 인간관

계의 복잡함의 근원과 이상향을 지향하는 많은 국가들이 엮는 인간 역사가

오히려 자멸을 초래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역사적 아이러니의 근원을

말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를 사는 개인, 사회 그리고 인류 역사는 오늘의 콤플렉스

를 치유할 실마리를 구약성서에서 찾을 수 있고 교회는 구약성서 연구에서

호소력있는 구체적인 선교의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성서가 현대인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

인가? 첫째, 해석되지 않은 채로의 구약성서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며 현실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둘째, 한 권의

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필요한 노력과 시간을 보다 많은 새로운 책을

위해 투여하는 것이 낫다는 물량주의적인 사고경향 때문이다. 셋째, 아전인

수격인 해석으로 구약성서를 율법전서화하는 사고들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

약성서를 접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표면적인 표현들에 대한 선입관념을

배격하고 끈기있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성서

에 대한 비평을 타부시하는 소심을 버려야 한다. 인류에 대한 성서의 영향

에 대하여 반감을 품은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부정적인 비평을 받고도 성서

는 오늘도 책중의 책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성서는 비

평을 통하여 그 위대성이 돋보인 책이다. 비평이란 부정이 아니라 멧세지를

담은 그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구약시대의 사상과 생활습관및 정치, 경제,

역사및 사회문화적인 배경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성서에 흐르고 있

는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서의 형성사를 더듬어 내는 작업이다. 이

러한 작업이 멧세지 이해에 미치는 영향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어머니!'

라는 부름은 그 부름의 상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그것이 배고픈 어린 아아에게서 나온 경우와 어머니의 주검을 앞에

둔 아이에게서 나온 경우와 학교에서 막 돌아온 아이에게서 나온 경우들은

각기 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성서에서의 예를 든다면 시편 23편이

쫓기고 있던 다윗이 부른 노래이냐 또는 편안히 궁궐에 있던 다윗이 부른

노래이냐에 따라 독자들에게 다른 느낌으로 이해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책읽듯이 막 읽는 것이 아니라 보다 끈기있게 연구하는

태도 즉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의 태도와 예리한 안목-잡다한 사심에 흐려지

지 않은-이 필요하다. 그럴 때 구약성서는 먼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혼란한

사상의 와중에 사는 나와 우리에게 올바른 방향 즉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와닿게 될 것이다. 또한 그럴 때 우리 개개인은 인간,

사회 그리고 인간사에 대해 보다 폭넓은 이해를 가질 것이며 그리스도의 사

랑의 깊이와 넓이를 닮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