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약 공동체를 위한 바울의 성서해석 - 고린도 후서 3장을 중심으로 -

1. 서 론

'성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라는 성서해석의 문제는 모든 기독교인들이 당면하게 되는 중요한 신학적 사안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로 하여금 신·구약의 관계를 고려하도록 하는데, 신약은 구약을 해석한 역사적 문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논문은 구약 성서를 해석하여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킨 바울의 성서해석 목적 및 방법 연구에 중점한다. 그리하여 성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할 것인가에 관심하는 오늘날 성서 독자들에게 한 모범을 제시하고 신·구약의 관계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정립할 수 있도록 한다. 이것을 위해 필자는 바울의 성서에 대한 이해와 그 기능이 반영되어 있는 고린도 후서 3장을 연구본문으로 택하였다.

고후 3은, 바울의 적대자들에 의해 제기된 그의 사도직과 선교의 합법성 문제를 변호하는 단락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비평을 통해 진행되어 온 본문 연구는 대부분, 바울이 구약의 본문(출 34:25-29)을 원래의 맥락대로 얼마나 정확히 인용했는가, 인용 방법은 그 당시 유행했던 유대해석학과 어떻게 다른가에 집중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은 본문의 원형을 중시하고 객관적 사실성을 입증하는 것에만 목적을 두는 역사비평적 연구 방법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미 일종의 문학작품으로 완성되어진 바울 서신 그 자체를 연구하기보다는 인용의 정확성 여부에 따른 역사비평적 기준으로 바울을 평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르낙이나 불트만 같은 학자들은 바울의 구약인용이 터무니없는 역사적인 오류라고 평가하였으며, 이에 반하여 엘리스, 고펠트, 카이저와 같은 학자들은 바울의 구약인용이 역사적 오류가 아닌 기독론적인 올바른 재해석이라고 옹호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들은 역사비평적 기준에 따른 '옳고 그름'의 평가에 치우친 나머지 바울의 성서해석의 본래 의도 및 방법과는 낯선 연구를 하게 되었으며 성서해석에 대한 그의 진정한 이해를 축소시켰다. 그러므로 필자는 바울의 성서해석을 연구함에 있어서 새로운 방법이 요청됨을 인지하게 되었고, 그 실마리를 R.B.헤이스가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에서 소개하고 있는 '상호텍스트적 반향'(Intertextual Echo)이라는 문학비평 개념에서 찾게 되었다.

2. 본 론

A. 상호텍스트적 반향의 이해

상호텍스트성이란 초기 본문의 단락이 후기 본문 안에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삽입되어 새로운 텍스트를 생산케 하는 현상이다. 이것을 최초로 정의한 J. 크리스테바는 "모든 텍스트는 다른 텍스트의 흡수와 변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고, 크리스테바의 견해를 발전시킨 R. 바테스는 상호텍스트성이란 "그 영향의 원천이 절대로 파악되지 않는, 익명의 방식에 무의식적으로 인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분야"라고 한다. 문학비평에서 시작된 상호텍스트성 연구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헤이스는 J.홀란더가 The Figure Of Echo에서 제시하는 '암시적인 반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즉 한 본문이 문학적인 울림(Literary echo)으로 다른 본문과 연결될 때 그 효과는 독자들이 '울리는 동굴' 속에서 언어화되지 않은 공명을 듣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헤이스는 바로 이러한 개념을 빌어 바울 역시 '이스라엘 성서'라는 '울리는 동굴'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 의식을 인식하고 자신의 논의에 구약성서를 상호텍스트적으로 반향시킴으로써 옛 본문의 메시지를 메아리치게 함과 동시에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그것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새로운 의미에 참여케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서신에서 상호텍스트적인 현상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고후 3장 본문연구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B. '상호텍스트적 반향'을 중심으로 한 고후 3장 연구

고후 3장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성을 변호하기 위해 보내는 바울의 첫번째 변증 서신으로, 추천장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신학적 응답을 일괄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본문이다. "위대한 사도들"(고후 11:4-5)로 지칭되는 바울의 적대자들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받은 권위있는 추천장을 사도직의 근거로 삼고 그것을 소유하지 않은 바울을 공격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문서화된 추천장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확실하게 증명될 수 있는 권위있는 추천장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선교로 이루어진 '고린도 공동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떤 인간적인 권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로부터 이루어진 "새계약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공격하는 적대자들과 서신을 읽게 될 독자들을 새 계약의 주제가 반향되는 렘 31:31-34, 겔 33:26의 '울리는 동굴' 속으로 안내한다.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두 본문에서 메아리치는 메시지는, 새 계약은 하나님의 용서와 주권에 의해 시작되며 그것은 각 개인의 말씀의 내면화를 통해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 새로운 공동체로 부름받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은 '영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져 그 결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 진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이 새 계약 본문의 메시지가 울리는 동굴 속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새 계약 본문이 들려주는 심오한 반향을 듣도록 유도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율법이 먹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돌판 위에가 아닌 사람의 마음 안에 쓰여진 것으로 자신의 선교 근원을 설명한다. 또한 바울 자신의 섬김으로 이루어진 고린도 공동체는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 새로운 계약 백성으로 부름 받은 "새 계약 공동체"이며, 내적인 삶의 변화를 경험해가는 이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 알려지고 읽혀지도록 밝히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러한 새 계약 공동체의 특징은 구성원들이 '담대함'과 '자유함'을 지니는 것으로 드러난다. 옛 계약에 의지하여 살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고 빛나는 얼굴로 그들 앞에 섰을 때 모세의 얼굴에 반영된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였다(출 34:29-35). 그러나 새 계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있는 담대함과,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은 영이시며,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 자유함이 있기 때문이다(3:17). 이제 마지막으로 바울은 새 계약 공동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 서로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갈 것으로 방향성을 제시한다(18절). 그리고 새 계약의 시대는 "영의 시대"임을 선포하고 자유로운 영의 활동에 자신들을 열어 놓을 것과 공동체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3. 결 론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후 3장 본문 연구에 의해 밝혀진 신학적 메시지를 통해서 바울의 성서 읽기 목적과 방법을 추론해 낼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을 변증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이스라엘의 성서 자료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서 사용은 원문 그대로를 사용하거나 엄밀한 역사적 주석을 거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성서를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시는 이야기(narrative)로 이해하고, 그 이야기가 말씀으로 존재하는 까닭도 바로 종말적 구원 공동체인 '새계약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있었던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오늘날 적용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상호텍스트적인 반향'을 일으킨다. 이것은 자유한 영의 활동으로 이루어진 새 계약 공동체 안에서 본문의 조직적인 분석보다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갈 공동체의 삶의 변화(18절)에 관심하였기 때문이다. 문자화된 텍스트에만 몰입하는 것은 스스로 죽이는 것이며(6절), 주께로 돌아서서 새 계약 공동체의 삶의 특징인 담대함과 자유함으로 읽을 때 성서는 제 기능을 발휘하며 공동체를 변화되는 삶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도 바울이 읽었던 같은 방법으로 성서를 읽을 수 있다. 그것은 새 계약 공동체 내에서 자유하신 영의 인도함을 받아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는 성서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 서로 같은 모습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텍스트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하여 상호텍스트적인 공간에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