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에 관한 예수의 두 가지 비유 눅 11:5-8; 18:2-8 장 해 경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교수/신약학)

1. 서 론

누가복음은 신약성서 가운데서도 '기도'에 관한 예수의 교훈과 실천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책이다. 특히 눅 11:5-8에 실린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떡을 빌리는 사람의 비유"와 눅 18:2-8에 실린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는 누가복음에서만 발견되는 전승자료에 속한다. 그리고 바로 이 두 비유는 오래 전부터 설교자들이 "강청(强請)하는" 기도의 자세를 촉구하기 위해 가장 자주 인용해 온 본문들이기도 하다.

오늘날 기도에 관한 많은 설교가 무엇보다 기도자의 '열심'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아울러 많은 크리스챤들은 기도의 결과가 무엇보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매달렸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러므로 기도할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 "끈질기게 졸라대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 의식은 바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우리 조상의 옛 신앙정서와도 일맥상통한다.

이제 기도에 관한 누가의 두 가지 비유를 고찰함에 있어서 이 비유들의 원래 의도가 과연 위에서 말한 기도의 자세를 교훈하고 권장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와 다른 어떤 메시지를 가리키는 것인지 검토해 보자.

2. 두 비유들의 문맥과 구조

우리가 살펴보려는 두 개의 비유는 누가복음 가운데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 설화"(9:51-19:44) 앞부분과 뒷부분에 놓여 있다. 눅 11장에 나오는 첫 번째 비유(5-8절)는 예수의 "주기도"에 관한 가르침(1-4절)과 "기도의 응답"에 관한 가르침(9-13절) 사이에 삽입되어 있다. 이 비유는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지만 이 비유 전후에 기록된 예수의 가르침들은 마 6:9-13과 마 7:7-11에 병행구를 가지고 있다. 이 교훈들이 원래 주어졌던 상황을 마태보다는 누가가 더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태는 산상설교에서 "주기도"를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와 대조시킨 하나의 모범기도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 누가는 "주기도"를 예수가 제자들에게 맨 처음 가르치게 된 배경과 동기를 소개한다. "기도의 응답"에 관한 가르침도 산상설교에서는 기도와 전혀 상관없는 문맥 가운데 놓여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기도에 관한 연속된 교훈들의 논리적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눅 11:2-4의 "주기도"는 5-8절의 비유와 a!rto"(3절："양식"∕5절："떡")라는 단어에 의해 연결된다.

눅 18장에 나오는 두 번째 비유(2-8절)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종말론적 교훈(17:20-37)과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비유"(18:10-14) 사이에 놓여 있다. 여러 학자들은 눅 18:2-8의 비유가 "예수의 예루살렘 여행 설화"(눅 9:51-19:44) 내에서 눅 11:5-8의 비유와 서로 교차대구적인(chiastical) 짝을 이루며 의미상으로도 서로 병행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 두 비유가 "기도"를 소재로 한 것에는 일치하지만 그들이 반영하는 '삶의 자리'는 각각 다르다. 눅 18:2-8의 비유는 특별히 크리스챤이 "종말적으로 견지해야 할 믿음"의 문제를 다루는 반면 (17:20, 22, 24, 26, 30; 18:8：'인자의 날'∕'인자의 때'∕'인자의 나타나는 날'∕'인자가 올 때'), 눅 11:5-8의 비유는 "일상적인 삶에서의 기도와 기도응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눅 18:2-8을 해석할 때 많은 학자들은 2-5절만을 원래 예수가 가르친 비유로 간주하고 6-8절은 그 비유에 대한 누가의 해석적인 첨가구로 분리하려 한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그릇되어 보인다. 첫째, 눅 18:1-14의 본문 전체가 오직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특수한 자료에 속하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누가의 편집작업 범위와 성격을 규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둘째, 6b-7절에서 사용된 언어가 누가의 것과 상이할 뿐 아니라 그 곳에서 보이는 아람어적 구조는 그 구절의 전승이 오래된 것임을 시사한다. 셋째, 6-8절이 2-5절의 비유를 먼저 하나님의 성품에 관련시키고(6-8a절) 그 다음 제자들의 자세에 관련시킴으로써(8b절) 두 번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6-8절을 후대의 해석적인 첨가구로 판단할 수 없다. 왜냐하면 눅 15:11-32에 기록된 "탕자의 비유"에서도 예수는 먼저 하나님의 성품을 서술한 후(11-24절) 이어 맏아들의 반응을 묘사함으로써 (25-30절) 청중들의 합당한 태도를 교훈하는 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면 제약 상 여기서 눅 11:5-8과 18:2-8에 관한 편집비평학적 논의를 더 이상 전개할 수 없다. 다만 지금까지 간략히 살펴본 바에 근거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누가복음의 본문을 있는 그대로 현재의 문맥에 비추어 해석해 보자.

3.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떡을 빌리는 사람의 비유(눅 11:5-8)

이 비유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첫째, 이 비유의 초점이 밤중에 친구를 찾아가 떡을 빌리는 사람에게 있는가, 아니면 밤중에 친구의 요구를 받은 사람에게 있는가? 다시 말하면 이 비유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의 태도에 관심을 두고 교훈하는가 아니면 간구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성품에 관심을 두고 교훈하는가? 둘째, 8절의 diaV thVn a*naivdeian au*tou'라는 구절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질문에 관해서는 본문이 후자의 견해를 뒷받침한다：1) 5-7절의 중점은 "너희 중에 누가(tiv" e*x u&mw'n) …하면"이라는 5b-6절의 상황설정 문장이 아니라 7절의 "저가(ka*kei'no") …하겠느냐?"는 종결문장에 놓여 있다. 2) 5-7절의 이야기를 결론짓는 8절도 친구의 요구를 받은 사람의 최종적인 반응에 관심을 쏟는다："저가(개역성경에는 이 주어가 생략되었음) 일어나 그에게 그가 필요한 대로 주리라." 3) 8절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levgw u&mi'n)"라는 서두와 "그가 주리라(dwvsei)"는 동사는 9절의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Ka*gwV u&mi'n levgw)"라는 서두와 "주어지리라(doqhvssetai, 개역성경은 능동태로 번역했음)"는 동사와 각각 평행을 이룬다.

둘째로, diaV thVn a*naivdeian a*utou'(8절, 개역성경은 "그의 강청함을 인하여"라고 번역함)의 의미는 a*naivdeia라는 명사가 이 문맥에서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au*tov"라는 대명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달려 있다. a*naivdeia는 문자적으로 "뻔뻔스러움", "파렴치함"(shamelessness∕Unverschmtheit)을 뜻한다. 많은 주석자들은 본문의 이 단어를 "고집스러움"(persistence)이나 "끈덕짐"(importunity)으로 번역하지만 이 해석은 어원적으로나 용례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사실상 본문에서 a*naivdeia가 의미하는 바는 계속 졸라대는 "집요함"이나 "끈덕짐"이 아니라 밤에 불끄고 잠자리에 누운 친구와 그의 집안을 소란케 만든 "몰염치"와 "뻔뻔함"이다. "그의"(a*utou')라는 대명사는 떡을 빌려 달라고 요구한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고 요구를 받은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라면 diaV thVn a*naivdeian a*utou'는 "밤중에 찾아온 그 사람의 염치를 무릅쓴 행동 때문에"로 해석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밤중에 요청을 받은 그 사람의 파렴치함", 즉 "그가 친구의 절실한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나중에 받게 될 파렴치하다는 비난 때문에"로 해석된다. 전자의 경우가 후자보다 전체 문맥에 더 잘 어울린다(8절에 나오는 diaV toV ei^nai fivlon a*utou'["그의 벗됨을 인하여"]라는 문구에서도 a*utov"를 떡을 요구한 사람으로 보는 편이 더 낫다).

위의 맥락에 비추어 볼 때 눅 11:5-8의 비유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크리스챤의 모범적인 태도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비유의 초점은 신자들이 하나님께 간구를 드릴 때 그가 얼마나 잘 들어주시겠느냐 하는 데에 있다. 자녀의 간구에 반응하는 하나님의 태도가 밤중에 친구의 불편한 요청을 받은 인간의 반응과 대비되었다. 이 비유의 이러한 초점과 대비는 9-13절에서 더욱 강화된다. 9-10절의 초청과 약속은 매우 적극적이며 긍정적이다. 만일 이 초청과 약속을 부정적이나 조건적으로 적용한다면­이를테면 "너희가 구하지 않는다면 주지 않을 것이다", 혹은 "너희가 반드시 구해야만 주겠다" 등으로­원래의 의도는 크게 손상될 것이다. 10절의 "구하는 이" 앞에 붙은 pa'"(pa'" o& ai*tw'n)는 논리상 "찾는 이"와 "두드리는 이"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구하는 이마다 "모두"∕찾는 이마다 "모두"∕두드리는 이마다 "모두"). 예수는 11-13절에서 소위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a minori ad maius)의 논증방식을 사용한다. 먼저 이 세상의 악한 "아비"라도 자기 자식의 요구에는 반드시 좋은 것으로 주는 사실을 환기시킨 후(11-13a절), 그렇다면 선하신 "천부"께서는 구하는 자녀들에게 "얼마나 더"(povsw/ ma'llon, 개역성경에는 "하물며"로 번역됨) 확실히 좋은 것을 주시겠느냐고 반문한다(13b절).

눅 11:2-13에 기록된 기도에 관한 예수의 교훈은 하나의 근본신앙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믿음이다(2, 13절을 보라). 5-8절의 비유도 앞뒤의 맥락 속에서 바로 이 믿음을 적용시키는 하나의 논증이다. 너희 중에서도 친구가 절박한 필요에 놓였을 때는 그의 요구를 마지못해(친구관계이기 때문이 아니라) 들어준다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더" 자녀의 필요를 돌아보시겠느냐는 것이다. 우리와의 "관계"를 귀히 여기시고 시간과 장소로 인해 결코 방해받지 않으시는 천부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하실 것이라는 논증이다. 눅 11:5-8의 비유는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끈덕지게 졸라대는" 태도를 모범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버지 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의식에 기초한 큰 확신을 가지고 우리의 필요를 언제든지 하나님께 구할 것을 가르친다.

4.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눅 18:2-8)

이 둘째 비유의 목적은 1절이 밝히는 대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꾸준하고 지치지 않는 기도는 위에서 살펴본 대로 특별히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며 견지해야 할 자세이다(17:22- 39; 18:8).

이 비유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결정적인 단서는 7-8절에서 사용된 비교논법이다(개역성경은 7절 서두를 "하물며"로 시작함). 만약 7절에서 시작되는 논리적 반전(o& deV qeoV" ou* mhV…)을 간과하고 2-6절의 이야기만을 우리의 기도생활에 그대로 적용하려 한다면­첫째 비유에서 11:8의 진술만을 따다가 우리의 기도생활에 곧장 적용시키려는 것과 마찬가지로­여기서 또 다시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는 끈질긴 기도"의 모범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이 비유에서도 등장인물인 재판관과 과부는 하나님과 신자들의 입장을 각각 대변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두 인물 짝들은 서로 엄청난 본질적 차이를 지니고 있다. 비유에 나오는 재판관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재판관 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부적합한 사람이다. 이에 반해 하나님은 가장 의롭고 자비로운 재판장이시다. 과부는 악하고 무자비한 재판관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이요 호의를 베풀만한 조건이 없는 사람이다. 이에 반해 신자들은 의로운 재판장의 자녀들로서 그의 가장 큰 사랑과 호의를 입고 있는 대상이다. 그런데 이토록 본질이 서로 다른 인물의 쌍을 빌어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비유했기 때문에 7-8a절의 비교논증(a peiore ad melius, "악한 것에서부터 선한 것으로"의 논증)은 더 큰 설득력을 발휘하게 된다："그 무력한 과부도 불의한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호소함으로써 마침내 자기의 원한을 풀 수 있었다면, 과연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하신 자녀들의 원한을 끝까지 풀어 주시지 않겠는가? 반드시 속히 풀어 주시리라!".

그러므로 이 둘째 비유에 있어서도 우리는 과부가 재판관에게 행한 방식대로 신자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고 기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된다. 이 비유는 과부가 재판관에게 끈질김을 무기 삼고 매달려 자기 소원을 달성했듯이 신자도 하나님을 "번거롭게 하는" 기도를 통해서 자기의 소원을 관철할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비유는 세상에서 종말적 환란과 핍박을 겪는 신자들이 지치고 낙망하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리고 신자들이 재림할 "인자"를 대망하는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들이 당한 고통과 원한을 풀어 주실 것을 믿으라고 교훈한다. 이러한 종말론적 "믿음"은 하나님께 "밤낮 부르짖는" 기도로 표현되지만(7절)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는 매우 희귀할 것이다(8절).

5. 결 론

눅 11:5-8과 18:2-8의 기도에 관한 두 가지 비유의 요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의 기도와 부르짖음을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두 비유는 모두 먼저 사람들 사이의 경우를 예시한 후 나중에 이를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의 경우와 비교하여 적용시키는 논증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 논증방식(a minori ad maius∕a peiore ad melius)에 유의한다면 밤중에 친구의 온 가족을 깨우면서 떡을 빌려 달라는 사람의 "무례하고 몰염치한" 행동이나 불의한 재판관을 "번거롭고 괴롭게" 졸라대어 자신의 소원을 성취한 과부의 태도를 크리스챤이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모범으로 삼아야 할 자세로 받아들일 수 없다. "주기도"의 서두가 암시하듯 크리스챤의 참된 기도는 하나님의 "아버지"되심을 확신할 때에야 비로소 열린다. 이런 확신에 의해 문이 열린 기도에서는 "나"의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끈질기게" 졸라대야 한다는 강박의식도 사라진다. 마음의 소원을 다 아뢰고 그저 쉴 뿐이다.

목회자는 모든 교인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열심 있는 기도생활을 하도록 적극 면려해야 한다. 그러나 교인들에게 기도의 동기를 부여하고 실천을 촉구할 때 그저 인간의 보편적 종교심에 호소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종교행위로서의 기도는 기독교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원시종교를 포함한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나라의 기독교는 전래 초기부터 지금까지 항상 기존의 무속신앙 및 유불선(儒佛仙) 사상과 혼합될 위험에 놓여 왔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기독교의 독특한 신관과 인간관에 비추어 기도의 본질을 제시하고 오직 복음의 원리 안에서 기도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