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5장 희년법에 나타난 토지관련 규정의 주석적 연구 - 레위기 25:13-28을 중심으로 - 이 하 준 (목사/한국성서학연구소 전임연구원)

1. 들어가는 말

가. 논문의 의도와 범위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구약에 나오는 "땅"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것은 이 땅에 사는 한사람의 신앙인으로서 갖는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실천적 관심)과 또한 성경(특히 구약성경)에 나타난 토지관에서 이러한 문제들의 해답을 얻어 보려는 관심(신학적 관심) 때문이었다.

그래서 '땅'이라는 주제를 대학원 졸업논문의 주제로 잡고 그 본문을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으로 정해 보았다. 그 이유는 구약본문 중에서도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독특한 사상을 가장 잘 나타내 준 본문이 희년법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간 희년법을 주제로 한 학위논문들이 꽤 나왔고 이들 논문은 필자의 신학적 사고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많은 논문들과 본 논문이 구분되는 특징이 어떤 것이냐가 문제일 것이다.

먼저, 이전의 논문들이 거의가 본문에 중심을 둔, 즉 충실한 주석적 작업을 거친 논문이 아닌 주제 중심적이고 해석적인 관심을 주로 다룬 것들인 반면, 필자는 정확한 신학적 해석을 위해서는 본문을 중심한 충실한 주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무엇보다도 본문의 세밀한 주석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문으로 쓰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본 논문은 희년법 자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기 보다는 앞서도 밝힌대로 "땅"이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을 우선으로 하여 희년법을 그 대표적인 대상본문으로 정한 것이었다. 따라서 본 논문의 범위는 레위기 25:13-28로 하였다. 레 25:13-28은 레위기 25장의 희년법 중에서도 토지에 관한 규정에만 해당된다. 본문을 이렇게 끊어 나누게 된 자세한 근거는 이 글에서는 지면상 생략되었지만 본 논문의 제3장 {본문의 짜임새}에서 설명한 바 있다.

나. 논문의 구조와 전개방법

본 논문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제1장 {들어가는 말} : 논문의 의도와 범위, 구조와 전개방법

제2장 {본문에 대하여} - 본문비평과 본문사역

제3장 {본문의 짜임새} - 본문의 구조 연구

[본문의 외적인 짜임새 : 레위기 전체와 성결법전, 그리고 레위기 25장의 짜임새]

[본문의 내적인 짜임새 : 본문을 25:13-28로 끊어 나눈 이유, 내용적인 자세한 구분, 인칭의 변화]

제4장 {본문에 나타난 주요 어휘의 쓰임새 연구} : 요벨<ࠌ࡝ࢫࠉ>, 아후짜<ࠄࣀ࣎ࡖ>, 에레츠<ࠖতࡒ>, 가알과 고엘<ࠌࡏࡴ, ࠌࡑࡹ>의 [레위기 외의 구약 본문에서의 쓰임새], [레위기 전체와 본문 안에서의 쓰임새], [고대근동 병행어휘의 쓰임새]

제5장 {본문의 주석을 통해 얻은 해석적 결론} :

[레위기의 토지관을 통해 본 희년법 토지규정 이해],

[희년법의 고대성과 현실성]

[희년법의 현재적 적용 문제]

제6장 {나가는 말} : 논문의 결론, 앞으로의 과제

이 글에 허락된 지면이 매우 적어서 부득이 논문의 서론과 결론 부분만을 요약하고 본론에서는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레위기의 "토지관"만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다. 좀더 자세한 내용을 보기 원하는 분들은 각 신학대학 도서관에서 논문을 구하여 참고하시기 바란다.

2. 몸말 - 레위기의 토지관을 중심으로

논문의 의도에서도 이미 밝힌 바 있지만 애당초 이 본문의 목적은 희년법에 대한 신학적인 해석이 아니라 희년법의 한 부분을 나누어 본문을 자세히 연구해 보는 일이었다. 그래서 문학적인 방법과 어휘 연구를 주된 방법론으로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세한 본문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몇가지의 신학적인 결론을 얻게 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이 "레위기의 토지관"이다. 이 부분은 본 논문의 제4장, {본문에 나타난 주요 어휘의 쓰임새 연구}에서 에레츠<ࠖতࡒ>를 [레위기 외의 구약 본문에서의 쓰임새], [레위기 전체와 본문 안에서의 쓰임새], [고대근동 병행어휘의 쓰임새]로 나누어 연구해 본 결과이다.

가. 땅에 대한 물질적 이해

땅은 사람이 그 위에 거하고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사는 곳이다(11:2, 21, 29, 41, 42, 44, 46, 25:7 등). 또한 땅은 곡물과 열매를 낸다(19:9, 23:22, 23:39 등).

이러한 땅에 대한 이해는 구약 전체뿐만 아니라 인류사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일반적인 이해이다. 그러나 본 논문의 어휘 연구 결과로, 레위기는 땅에 대해 고도로 신학화 된 이해를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일반적이고 물질적인 이해는 레위기 안에 적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나. 땅에 대한 지리적 이해

레위기는 또한 땅을 지리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애굽땅과 가나안 땅을 강하게 대비시키고 있다(가나안 땅 → 14:34a, 18:3b, 25:38b, 26:13, 45 / 애굽 땅 → 11:45, 18:3a, 19:34, 36, 22:33, 43, 25:38a, 42, 55, 26:1, 5).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지리적 의미만이 아닌 출애굽과 땅에 대한 언약의 전승을 담고있다. 애굽은 속박과 종살이를 상징하는 대상이고 반대로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언약과 복(福)의 상징이며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대가이다.

여기에는 또한 "대적의 땅"이라는 개념도 나타난다(26:34, 36, 38 등). 대적의 땅에 거한다는 말은 아마도 포로기 생활을 근거로 한 것 같다. 뒤에 나올 신학적 이해와도 연결되겠지만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대가는 땅의 선물이요 그 풍성한 소산이며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이지만(25:18, 19, 26:4), 반대로 불순종의 대가는 땅의 황폐화와 더불어 포로가 되어 대적의 땅으로 끌려가는 일인 것이다.

아울러 레위기는 땅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하는 곳으로 이해한다(18:27, 19:23, 19:33, 20:2, 4, 22:24, 25:9, 10, 45). 바로 가나안 땅이다. 이 땅은 지리적 의미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기업으로서 신학적인 이해와도 연결이 된다.

다. 땅에 대한 신학적 이해

⑴ 땅은 누구의 것인가?

레위기에 의하면 땅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이다(25:23, 27:30). 고대 근동에서는 왕만이 모든 땅의 주인이었고 땅을 개인에게 팔거나 봉신 등에게 나누어주었지만 그들도 그 소유권을 마음대로 남에게 양도할 수 없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언약의 결과로 주신(25:2, 26:42) 기업이다(14:34b, 20:24, 23:10, 25:24, 25:31, 27:24). 그래서 사람이 마음대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다(25:23). 희년제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땅이 영원히 팔리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⑵ 순종 - 불순종의 도식과 땅

레위기는 땅을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의 대가로 이해한다. 이것이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토지관의 하나이다.

순종의 대가는 자신의 기업이 되는 땅에 안전하게 거하는 것이요(25:18, 19, 26:5 등), 땅은 산물을 충분히 내는 것이다.(26:4).

레위기는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을 "땅을 음행하게 만든다(19:29 등)"라고도 표현한다. "땅이 더럽혀진다"는 비슷한 의미의 표현도 자주 나온다(18:25, 27, 28 등). 그러므로 이러한 불순종의 대가는 땅이 황무하게 되고(26:32, 33, 34 등), 황폐해져서 오히려 땅이 안식을 누리게 되며(26:34 등), 땅이 산물을 내지 않는 것이다(26:20 등).

레위기에서 땅과 관련하여 가장 재미있고도 독특한 표현은 땅이 그 거민들을 "토하여(키<ࠀࠉ঑>) 낸다"는 것이다(18:25b, 28, 20:22). 그러면 이스라엘이 그 땅에서 토해내져 열방 중에 흩어질 것이요(26:33) 그들이 대적의 땅에 끌려가 거기 거하게 될 것이다(26:34, 36, 39, 41 등). 이렇게 대적의 손에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것을 레위기는 "대적의 땅이 삼키게 된다(26:38)"고 표현한다. 레위기에서 땅이 인격화되는 것이다.

⑶ 땅의 안식

레위기는 안식년 본문에서 독특하게도 '땅의 안식'을 말한다. 계약법전의 안식년법(출 23:10-19)과 신명기 법전의 안식년법(신 15:1-15)의 강조점과는 달리 레위기는 땅 자체가 야웨 앞에서 안식하게 하라고 강조하고 있다(25:2 등). 여기에는 P기자의 고도로 신학화 된 사고가 들어있다. 안식년의 사회적-인권적인 요소 등은 퇴화하고 대신 고도로 신학화 된 제의적-신학적 요소가 부각되는 것이다. 땅이 안식을 누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인간들의 불순종으로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더럽혀지면 그 대가로 땅이 황폐해지고 그 덕에 땅이 억지로 안식을 누리게 된다고 설명한다(26:34 등).

⑷ 자기 기업인 땅으로 되돌아감

안식년법이 확대된 것이 희년법이라고 하였다. 마찬가지로 안식년법의 토지관이 확장된 것이 희년법의 토지관이다. 희년법은 토지 문제를 말하면서 맨 처음 전제로 "각자 자기 기업인 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25:13). 여기에는 강한 기업(아후짜<ࠄࣀ࣎ࡖ>)정신이 들어 있고 가난과 부채 등으로 팔게 된 이 기업을 돌려받게 해주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 방법은 희년을 기준으로 해서 값을 쳐 토지를 다시 되사는("무르는") 일이다. 우선은 토지를 판 사람의 고엘이 무르는 방법이 있고(25:25), 혹 고엘이 없고 스스로가 무를만한 여유가 생기면 자신이 무를 수도 있으며(25:26, 27), 만약 이도 저도 아니라면 희년이 이르렀을 때 토지가 자동적으로 본디 주인에게 돌아오게 된다(25:28). 안식년법에 비해 매우 발전된 형태의 토지관과 제도라 하겠다.

지금까지 레위기의 토지관을 편의상 여러가지로 나누어 보았지만 결국은 모두가 신학적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학화 된 레위기의 토지관이 안식년법과 나아가 희년법의 토지관 및 제도로 연결된 것이다.

3. 맺는말

본 논문에서는 레위기 25:13-28 본문을 중심으로 주석적인 작업을 시도해 보았는데 이를 통해 발견하게 된 몇가지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문의 외적인 짜임새 연구를 통해 발견된 점은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이 레위기 전체와 성결법전(17-26장)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레위기 전체는 제의(祭儀)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데 이 제의란 단순히 주술적인 힘을 추구하는 제의가 아니라 실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결한 삶(17-26장)을 통해 실현되어야 할 제의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제의적인 삶이란 성결한 삶을 통해 실천되는 삶이라는 것이 레위기의 사상인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도식이 가능하다.

둘째, 본문의 내적인 짜임새 연구를 통해 발견된 점으로서, 희년법 안에는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통일 희년' 개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즉, 희년법은 하나님 앞에서의 속죄라는 종교적 요소가 전제가 되지만(레 25:9) 그 내용에는 경제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희년법에 종교적-경제적 의미만 있고 정치적 요소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종교-경제-정치를 분리하려는 이원론적 사고라 하겠고 종교적인 의미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경제, 혹은 정치적 요소만을 강조하는 것은 희년법의 본질적인 전제조건은 잃은 채 외형적인 현상이나 그 결과적 실천만을 말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이라 하겠다.

셋째, 본문의 중요 어휘 연구를 통해 발견한 점으로서, 희년법은 몇몇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실적으로 전혀 실현되지 않은 유토피아적인 법이 아니라 고대성을 가진 현실적인 법이라는 사실이다. 희년법은 고대근동은 물론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실제로 실시된 관습법이었다. 따라서 비록 문자적인 적용은 아니라 해도 희년법의 정신을 오늘날에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넷째, 역시 본문의 중요 어휘 연구를 통해 발견한 점으로서, 레위기에는 "땅"에 대한 독특한 신학적 이해가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이 점이 본 논문의 가장 중요한 결론이라고 생각된다. 레위기에 나타나는 땅은 우선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신 기업(아후짜<ࠄࣀ࣎ࡖ>)이다. 특히 땅은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기도 한 야웨 하나님과의 관계, 즉 "제의를 통해 확인되는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이해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언약을 지키는 삶을 산다면 땅은 그들에게 복(福)을 주고 풍성하고 평안한 삶을 줄 것이지만 반대로 불순종하고 거역한다면 땅이 황폐해져 소산을 내지 않고 결국 옛 가나안 백성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을 쫓아내고 말 것이다. 땅이 이토록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기에 우리는 땅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앞서 말한 대로 레위기 전체와 성결법전, 그리고 희년법을 타고 흐르는 사고의 맥락을 읽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