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심적 원리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에 있어서 중심이 되는 방법론적 원리는 "하나님은 하나님을 통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통하여 인식된다."는 명제에 있다. 다시말하면, 죄와 악의 현실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을 스스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자연신학과 바르트
1) 자연적인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은 죄의 상태속에 있는 인간을 인정하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2) 자연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준비성보다는 인간의 준비성에 의존한다. 3) 인간의 준비성이란, "인간의 필요성, 하나님의 은혜가 객관적으로 현실적이라는 인식, 인간의 주권적인 자발성"을 의미하는데, 이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폐쇄성과 불순종을 의미할 뿐이다. 4) 자연신학에 의하여 하나님 인식이 가능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단독적인 통치는 불가능하게 된다. 5) 자연신학에 의하면, 인간은 그의 본성 내지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직접적 인식을 할 수 있게 된다. 6) "자연과 병행하는 은혜"를 말하는 "기독교적 자연신학" 또한 하나님의 가능성과 인간의 가능성을 공존시켜버리고 만다. 7) "자연신학의 인간학적 요청"과 "교회론적 요청"은 각각 은혜에 대항하는 싸움과 죄인들의 모임인 교회에 대한 모순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을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즉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모든 자연적인 하나님 인식의 가능성을 거부한다.
3.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
1) 아날로기아의 문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하등의 존재유비가 없으며, 오직 신앙의 유비, 즉 하나님 자신의 역사와 행위에 의하여 정립되었고 창조된, 하나님으로부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이 가능하며 신앙 가운데에서, 오직 신앙가운데서만이 참된 유비가 있을 뿐이다.
2) 간접적인 하나님 인식: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인식은 "간접적인 인식"이다. 이는 하나님을 "대상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3) 신앙의 인식: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신앙에 대한 인식이다. 신앙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이 신앙의 사건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인식은 수행된다.
4) 인식 대상의 특수성--은혜의 인식으로서의 하나님 인식: 이 인식은 인식의 대상으로부터 선물된 인식으로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라는 특성을 가진다. 하나님의 인식에 있어서의 대상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가운데서 제시되는 대상이다.
5)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자기 인식과 인간의 하나님 인식: 하나님의 은혜의 인식, 이 인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에 계시되어 있는 은혜의 인식을 말한다. 즉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있을 뿐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사건 이전에 있는 하나님의 영원한 삼위일체의 존재안에서 찾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간접적으로 대상적이지만, 그의 영원한 삼위일체되신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대상적이다."
6) 하나님의 은폐성(Verborgenheit): 첫째, 창조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본질적 차이성 내지는 상이성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개재하는 이질성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와 교통에도 불구하고 존속한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대상성은 결코 폐기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계시는 동시에 하나님의 은폐성을 의미한다.
7) 하나님 인식의 진실(Wahrhaftigkeit): 첫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 인식의 진실성은 하나님의 계시의 진실성에 있다. 따라서 영원한 하나님도 계시로부터 인식되어져야 한다. 둘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계시에 참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다. 이러한 감사는 곧 "경외"와 "허락"를 포함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거리감"을 말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적절한 개념은 동일성의 개념이 아니라 "유비(Analogie)"의 개념이며, 이는 동일성도 비동일성도 아닌, 두 가지 혹은 그 이상의 상이한 사물들의 부분적인 "상응과 일치"를 의미한다. 셋째, 상응과 일치는 존재론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가능한 상응과 일치를 의미한다.
4. 맺는 말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의 자기계시를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 사이에 존재론적 상호 관계내지 연결성을 전제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직접적 하나님 인식을 주장하는 19세기의 신학 및 모든 자연신학에 반하여 바르트는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인 간격을 주장하고 인간이 하나님을 인식하고 알 수 있는 가능성은 오로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서 주어지는 선물이며 이에 대한 인간의 태도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과 경외와 순종의 태도이어야 함을, 그리고 신앙의 태도이어야 함을 말한다.
바르트에게서의 하나님 인식은 하나님에 대한 자연적인 인식을 말하는 헤겔의 입장과는 대조를 이루지만, 칸트의 입장과는 상통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식을 실천이성과의 관련에서 인정하며 기독교 신앙을 "순수한 실천적 이성의 신앙"으로 확립시키는 점에서 칸트는 바르트와 결별한다. 또한, 바르트의 하나님 인식론은 틸리히의 인식론과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하나님의 "은혜의 인식"이요 인식하는 자의 모든 존재가 관련된 "신앙의 인식"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성령의 도움으로 인하여 가능한 인식이라고 말한다. 하나님 인식의 출발점 내지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있다.
바르트는 기독론적 관점에서 루터, 칼빈, 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의 전통적인 예정론을 비판하며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영원한 하나님에게서 예정의 근거를 발견한다.
1. 선택의 주체와 객체인 예수 그리스도
바르트는 예정론의 근거 및 출발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발견한다. 동시에 그는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과 예정의 "대상"이기도 하다. 즉 그리스도는 "모든 다른 인간들의 대리자로서" 선택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고 자기와 계약을 맺도록 하신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선택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
선택하는 하나님인 동시에 선택된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이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이다. 또한 예정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에서 우리에게 계시되었으며 은폐되어 있지 않고 열려져 있다." 이중예정에 있어서도 그는 전통적 견해와 입장을 달리하는데 바르트에게 있어 이중예정이란 저주와 죽음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축복과 생명을 예정하는 반면, 자기 자신에게는 이 인간이 당해야 할 저주와 죽음을 예정하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한 그는 영원한 사건으로서의 예정을 말하는데 그것은 "그의 전체성에 있어서 그 자체 하나님의 의지이나 인간과 그의 의지와 그의 결단과 그의 독자적 실존이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사건"이다. 결론적으로 바르트는 예정이란 개념을 "완결되어 버렸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존재의 개념"이 아니고 "시간적 사건의 영원한 규정"이지만 죽은 것이 아니라고 보며, "충만한 힘과 함께 '오늘도 일어나는 행위'"로 본다.
3. 공동체의 선택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개별적이거나 사적인 인격들로서가 아니라" 한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규정되었고 능력을 부여받은 "사귐"으로서 선택한다. 많은 사람들의 선택은 언제나 이 사귐으로부터 이 사귐과의 관련속에서만이 올바로 얘기될 수 있다. 이 사귐도 "공동체"를 말한다. 공동체는 전 세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전 세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하도록 권유하는 여기에 그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기 자신을 넘어서 "모든 인간이 사귐"을 언제나 지향하고 여기에 그의 "일시성"을 가진다.
공동체의 기능은 "하나님의 심판과 자비의 기술"에 있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기능과 교회의 기능으로 나뉘는데, 이스라엘의 기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인간적인 원인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인간의 무능력과 비자발성과 무가치성을 보여주고 이를 알게 하는데 있고, 교회의 기능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인간에게 일어날 심판의 신적인 의미를 증거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거부하는 무가치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발성과 영광을 증거하는데 있다.
4. 개인의 선택
바르트의 견해에 의하면, 각 개인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과 공동체의 선택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개인들의 선택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으며 공동체는 이 선택을 중재한다. 하나님에 대하여 개별화된 인간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선택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원한 의지 가운데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 있는데, 바로 이것이 공동체가 각 사람에게 전해야 할 "소식"이요 "약속"이다. 이제 선택된 자의 존재가 선택된 자의 삶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선택의 약속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건과 결단이 있어야 하고 반대로 선택되어 있지만 이 약속을 믿지 않을때 그는 "그의 선택에도 불구하고 저주된 자로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선택받은 자와 버림받은 자의 객관적 구별은 "그들의 소명"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이 그들 자신의 선택으로 "선포"되고 또 "신앙"되는 것이 곧 선택된 자들의 소명을 뜻하며 이 소명을 통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된다. 그러나 버림받은 자들은 "단지 잠재적으로 버림받은 자들일 수 있을 뿐"이므로 선택받은 자는 버림받은 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과 기대를 부인해서는 안된다. 즉 버림받은 자들도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선택받은 자의 규정으로는 우선 예수 그리스도가 그를 위하여 존재하듯이 그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존재하는데 있고, 공동체의 직분에 참여하기 위함이며 사랑, 축복, 감사의 삶을 사는데 존재 규정이 있다. 또한 버림받은 자도 하나님의 선택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며 복음의 의도를 보여주어야할 규정을 가진다.
5. 맺는 말: 만인 구원설과 바르트
바르트의 예정론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택한 저주와 버림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감당할 것을 하나님은 예정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을 버리는 데 있지않고 선택하는 데 있다. 지금 버림받은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선택된 자가 되어야 한다.
바르트의 예정론은 삼위일체론적 사고에 뿌리 박고 있으며, 그의 예정론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이중예정론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예정론은 인간의 electio(선택)와 reprobatio(버림)를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예정론에 의하면 모든 인간이 받아야 할 reprobatio를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Gnadenwahl)을 뜻한다. 하나님은 자신에게는 심판과 죽음을, 인간에게는 구원과 생명을 예정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이 예정은 실천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하나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요 "약속"이며 인간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이다. 인간이 이 가능성을 받아들일 때 선택은 현실화되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때 그것은 여전히 가능성 내지 "Angebot"(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선물)로 머물게 되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는 여전히 버림받은 자로 머물게 된다. 바르트는 신앙없는 사람도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보편구원설이나 은혜의 보편주의를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오늘날 바르트에 대한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데, 차른트는 바르트의 신학이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 결과 "무역사성"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고, 알트하우스는 전통적 이중예정론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의지에 대한 복음의 명제와 모순된다"고 보았으며, 틸리히도 이중예정론을 부정하고 있다. 판넨베르크도 바르트의 이중예정론을 비판하였는데,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하나님의 창조와 세계에 대한 설계의 종말적 성취로서 이해하지 않고 단지 창조와 세계사를 선행하는 전제와 원형으로 이해하며 예수의 선택과 세계사의 관련을 조직적으로 전개시키지 못하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