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슬리와 相生신학

박 종 천 교수

(감신대/조직신학)

I. 한국의 문화적 전통과 相生신학

"탁월한 의미에서 통일되지 못하고, 민중 속으로 생활력 있게 파고들어 가지 못하고, 현장 민중의 정서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들의 생(生) 자체를 진보시키며 개조시킬 수도, 그 혼을 참된 뜻에서 풍부하고 대담하고 자비로운 것으로 유도,계발시킬 수도 없는 고등종교는 특히 외래의 그것은 그 후진 사회의 부패한 상층 부르조아의 권력과 야합하여 그들의 불의를 용납하고, 부패의 소산인 잘못된 비애(悲哀)를 의미 있는 비애로 바꾸어 놓고, 그들의 권위주의를 옹호 방조하는 나쁜, 아주 나쁜 '바리새'로 전락하고 만다." /1/

한국적 신학으로서 상생의 신학을 구상하면서 나는 몇 가지 잊지 못할 체험을 상기해 본다. 첫째,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읽었던 성서가 나의 심혼에 불어넣었던 경이와 희열을 생각한다. 창세기에 나타나는 이스라엘의 열조들의 이야기나 복음서가 들려주는 예수의 이야기는 나에게 단순히 종교적 영감만이 아니라 전인격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하지만 나의 성서 읽기는 나의 신학 행위와 오랫동안 상관이 없었다. 본격적인 토착화 신학은 토착민들의 성서 읽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둘째, 나는 최근에 해후하였던 한국적 종교 경전들을 생각한다. 동학의 경전은 한국민중의 고난과 영성에 대한 나의 오만한 거리감을 무너뜨렸고, 증산교의 경전은 한국민중의 익살과 해학의 종교적 깊이에 대한 깨달음을 주었다. 이제 한국신학은 한국 종교 경전의 해석을 통해 한국적 성서 읽기의 렌즈를 준비해야 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에 대한 나의 신앙을 한국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는 렌즈를 한국 종교 경전들로부터 조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그 렌즈의 초점 맞추기이다. 렌즈의 초점은 한국인의 심성과 영성이며, 그것에 의해 맞추어지는 신앙의 내용은 유일하신 하느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한국인의 심성과 영성의 전형성, 모형성, 현재성을 한국민중의 한(恨)과 신명(神明)으로 정형화하려는 제반 문화과학의 연구들이야말로 우리의 렌즈의 초점을 조정하는 데 필요불가결한 도움을 준다.

한국 종교 경전을 한과 신명의 텍스트로 바라볼 때, 그것으로부터 성서해석학적 발견원리(heuristic principle) 를 어떻게 찾아낼 것인가가 문제된다. 이미 민중신학의 일각에서 성서를 한(恨)의 텍스트로 보았던 전례가 있다. 성서 속의 가난한 자들의 신음과 외침의 기록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해석하려 할 때 성서가 가진 한의 텍스트성은 효과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내의 한의 텍스트성이 정치경제학적 불의에 대한 고발에서만이 아니라, 인종과 성의 차별 그리고 생태학적 위기의 문제를 포괄하는 광범위하고 다의적인 의미로 이해되고 해석되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이는 신학적 다원주의 상황의 출현 때문만이 아니라 민중 종교 경전을 통한 성서 읽기, 곧 성서 읽기의 '간텍스트성(inter-textuality)'으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이다.

'간텍스트성'이란 하나의 텍스트 안에 하나 이상의 텍스트가 공존하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서 동학경전에서 수운이 "서학과 동학이 운(運)이 하나이고 도(道)가 같으나 서학에는 이치가 없다"라고 할 때 이것은 이미 서학 경전 곧 성서의 내적 의미가 긍정적으로나 부정적으로 수용되어진 것을 암시한다. 물론 토착화 신학의 성서읽기에 있어서 '간텍스트성'은 앞에서 지적한 렌즈의 유효적절한 사용법과 직결된다. 곧 성서로부터 억지 춘향식으로 한과 신명의 영성을 읽어내려는 강석(强釋:forced reading)이 목표가 아니라, 이를테면 춘향이 겪었던 한과 신명의 체험과 언어의 기초적,암묵적 구조와 성서적 하느님에 대한 체험과 언어가 갖고 있는 규범적,명시적 구조 사이의 상호조명이 관건인 것이다.

한국의 한과 신명의 텍스트들이 제시하는 종교적, 윤리적 이상은 '해원상생(解寃相生)' 이다. 해원상생이란 '원한을 풀고 더불어 산다'는 뜻이다. 이는 강증산의 종교적 통찰인 바, 이를 통해 그는 민중의 한풀이의 무속적 기초를 높은 윤리적 이상과 종교적으로 결합시켰다. 참다운 한풀이는 앙갚음도 현실도피도 아니고 윤리적인 삶, 곧 더불어 사는 삶에 있다는 주장에는 고유한 종교언어적 문법이 있다. 우리 나라의 민중종교에 있어서 상극(相克)과 상생(相生)의 이해는 동양 고전종교의 음양오행설적인 우주론적 운수론으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벽론적 세계관으로의 변천이 담겨있다.

오행설에 따르면 "금(金)에서 수(水), 수(水)에서 목(木), 목(木)에서 화(火), 화(火)에서 토(土), 토(土)에서 금(金) 이 나는 것을 상생(相生)이라 하고, 금(金)은 목(木)을, 목(木)은 토(土)를 토(土)는 수(水)를 수(水)는 화(火)를 화(火)는 금(金)을 이기는 것을 상극(相克)이라 한다." 따라서 상생,상극은 서로 맞물려 있다. 토(土)에서 금(金)이 나고 금(金)에서 수(水)가 난다. 그런데 화(火)는 금(金)을 이기고, 금(金)은 목(木)을 이긴다. 그러므로 금(金)은 토(土), 수(水)와 상생하는 만큼이나 화(火), 목(木)과 상극한다. 오행의 각 요소는 다른 둘과 대립하고 나머지 둘과 화합한다. 그러나 이러한 오행설적 상생,상극론은 음양과 천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음을 억제하고 양을 존중(抑陰尊陽)'하였고, '하늘을 존귀히 여기고 땅을 비천히 여겼음(天尊地卑)'을 알아야 한다. 동양의고전종교들은 하늘과 땅의 조화, 음과 양의 화합을 이상으로 생각하였으되, 그 실제적인 운용은 양자간의 상극법을 전제로 한 상생법에 의해 지배되었던 것이다.

우리 나라 민중종교전통에 있어서 특기할 만한 점은 상극·상생을 민중해방적 개벽론의 지평에서 새롭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상극이란 하늘과 땅, 음과 양이 대립하는 선천시대의 죽임의 논리를, 상생은 '하늘과 땅이 아우러지는 사건'(天地公事)와 '바른 음, 바른 양'(正陰正陽)을 통한 후천개벽적 살림논리를 가리킨다. 증산에 의하면, 선천 시대에는 상극의 이치가 지배하므로 하늘,땅,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원한을 품고 그 결과 살기가 터져나와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게도 온갖 재해가 임한다. 증산이 이러한 종교적 역사현실 인식은 선천 시대의 상극상이 근본적으로 하늘만 높이고 땅을 낮추는 데서 유래했다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우상화되고 절대화되고 관념화된 거짓 하늘에 대한 종교적 투사를 중지하고 참 하늘에 대한 바른 관계의 수립이 선행되어야 선천 시대의 상극상은 종식되고 해원이 실현된다. 증산은 이러한 해원의 제의를 '천지공사'라 불렀으며, 이 때 인간은 이러한 해원의 제의의 사제가 된다고 이해하였다.

물론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증산의 종교사상이 갖고 있는 무질서한 듯한(난장판같은) 종교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와 증산이 자칭 상제(上帝)의 기능을 수행하려는 데서 나타나는 익살스러운 과장과 허황스러움이다. 그러나 이것도 따지고 보면 비극의 해학적 풀이를 통한 더불어 사는 세계의 암중모색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심성에는 청승맞고 궁상스러운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원한을 익살과 해학으로 승화하고 극복하는 신명과 여유,그리고 멋이 있다. 눈먼 심봉사의 청승과 궁상은 그가 눈을 뜰 때 여러 곳의 장님들도 더불어 '개평으로' 눈을 뜨게 되는 경이로움과 익살맞음에 의해 상쇄된다. 이 점에서 증산의 사상으로부터 해묵은 주술적 낙인을 떼어내고 증산 사상을 현대적 맥락에서 문학적으로 재현하는 데 있어서 시인 김지하의 공이 크다고 하겠다.

특히 김지하의 [대설(大說) 남(南)]은 증산의 종교사상을 현대판 판소리의 형식을 빌어 형상화한 뛰어난 작품이다. 마치 증산이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금산사 미륵으로 하생(下生) 하였듯이, [대설남]의 운천은 도솔천의 상제의 미움을 받아 지상으로 내쫓긴다.이것은 전통적으로 도교의 종교적 상상력과 유비되는 것이며, 다만 그것과 증산의 차이점은 미륵불사상, 곧 민중 메시아주의를 옷입은 것이라 하겠다. 김지하는 한국 민중의 고유한 가락인 판소리의 형식을 빌어서 선천으로서의, 도솔천에 대한 운천의 '반신론적 항거'(anti-theocratic protest) 를 익살스럽고도 박력있게 그려내었다. 도솔천왕에 대한 운천의 도전을 들어보자.

"대저

도솔천과 三十三天만 태평태평한 것이

온 시방세계 육도중생의 태평태평이 아니옵고

도리어 하늘세상 태평이 다른 세상 고통되고

하늘세상 善한 것이 다른 세상 惡이 되고

하늘세상 자유로움이 다른 세상 억압되는 법

.....

애시당초 先天開闢은 음양이 서로서로 갈라지되

어우러지고 어우러지되 갈라져서

엇바뀌어 돌아가되 갈라짐이 주가 되는

양개벽이 분명하니

극락같이 음양이 서로서로 갈라지며 어우러지되

어우러짐이 주가 되는 음세상은 도무지

양개벽중에서야 오래갈 수 없는 법

.....

한울과 중생 원수 되니

신명과 신명이 척을 짓고

하늘과 인간이 담을 쌓고

중생과 중생이 으르렁거리고

생명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죽어가고

넋은 죽어 보석이 되고

.....

시방세계 왼갖 육도중생이 하늘이고 인간이고

흙,풀,새,짐승이고 간에

모조리 모조리 돌처럼 굳어

서로 부딪쳐 싸움질로 날을 새는

相克 세상에 살게된 터.." /2/

김지하의 대설에는 거짓 하늘, 거짓 하느님인 도솔천과 도솔천왕의 횡포와 위압, 그리고 이에 대한 민중의 장렬하고 익살스러운 저항이 '웅장, 호방하여 장작 패듯한 소리의 중두막을 잘라 버리는 식의' '우조(羽調)' 의 선율을 타고 흐른다. 판소리에 있어서 '우조'는 '강건한 톤이 주조를 이루는 남성적인 창조(唱調)인데 반하여 '계면조(界面調)'는 '애원성이 주조를 이루는 여성적인 창조'로서 '웅장 호방한 우조의 흐름 속에서 빚어지는 그늘 짙은' 분위기를 한스러운 가락으로 부르는 것을 말한다./3/ 김지하의 표현으로 계면조는 '갖은 궁상, 온갖 청승을 다 떨어가며 발발발발 잔뜩 추위타는 발발성' 이고 '바쁘게 눈굴려 사방 눈치 살펴가며 나직나직 숨죽이고 울며 부르는 저 궁상, 저 청승 질질 흐르는 소리'이다. 김지하의 [大說 南]에서 운천은 거짓 하늘, 거짓 하느님과 그것을 빙자한 제국들의 압제하에서 신음하며 탄식하고 해방과 구원을 갈망하는 온천하 민중의 한을 매개하는 사제로서 그 풀이의 신명을 다음과 같은 기원으로 숨죽이고 부른다.

"변화의 극들이여, 양극의 하나됨이여, 싸움의 화해여, 변형의 그릇이여,

하늘과 땅의 일치여, 삶과 죽음의 피안이여, 죽음과 부활의 지렛대여,

생명의 베틀이여, 삶의 수레바퀴여, 해와 달나무, 낮과 밤이 익어 떨어지는

태극나무 햇빛이 가득 비친 무화과 나무

생명을 낳고 먹이고 키우고 어르고 감싸고 상처를 치료하고 고통을 진정시키고

죽은 자를 살게 하고 벌레를 나비로 바꾸어놓는 예언의 불꽃, 신명의 미풍,

굿과 두레의 참다운 사제여, 진정한 단골네여"/4/

김지하를 통해서 문학적으로 재현되고 있는 한국 종교 경전의 의미는 한국신학을 위한 '암묵적 메시아론'(implicit messianism)의 영역에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민중의 상생적 영성이라는 귀중한 자원은 한국의 기독교 신학에 의해 성숙한 차원에서 수용되어 탁월한 신학적 상상력을 계발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와 같은 암묵적 메시아론은 한국신학의 현대적 성격과 기독교적 성격의 규정 속에서 '명시적 기독교'(explicit christology)의 형성에 의하여 그것의 새로운 의미를 종교적으로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의 민중의 종교적 상황, 곧 안으로 봉건 구체제에 의한 수탈과 밖으로 제국주의 외세에 의한 침탈이라는 이중질곡적인 반생명 상황에 대한 종교적 진단과 처방이 20세기 후반기를 살고 있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 무리없이 어울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국의 민중 종교사상은 여전히 근대적 역사 비판의식 이전의 신화론을 반영하기 때문이며, 비판 이후 소위 '근대이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 이해에도 서구 기독교적 신화론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행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신학은 두 다른 신화적 세계관의 만남을 통한 긴장, 갈등, 조화, 변형을 통한 새로운 신학형식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III. 존 웨슬리와 相生의 신학

"만일에 인간이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빌 2:12) 능력을 가진다면 하느님께서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없지 않은가" 라고 묻는 자들에게 다시 묻겠다. 하느님께서 모든 영광을 누림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것은 인간과의 상호생성(concurrence)없이 하느님 혼자서 모든 역사를 이루는 것을 말하는가? 만일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데 있어서 인간이 하느님과 더불어 역사한다면 하느님과 더불어 역사하는 인간 없이 하느님은 모든 역사를 이루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가장 참되고 가장 확실히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느님께서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느냐고 또 물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 나는 인간과 더불어 역사하는 그 능력이 하느님께로부터 비롯되기에 하느님께 모든 영광이 돌려진다고 대답하겠다. /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에 대한 성서의 이야기는 기독교 신학의 핵심적 내용을 구성한다. 이러한 이야기와 한국 종교 경전에 나타나는 이야기는 무슨 상관이 있을까? 지금까지 우리는 성서 이야기에 대한 틀에 박힌 읽기와 해석 때문에 도저히 그것을 우리 이야기로 생각할 수 없었다. 과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인가? 이 문제는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인의 하느님이기도 함을 주장하였다. 물론 이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구원의 은총이 매개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제 이방인들을 위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으며, 이것은 유대인의 이야기가 기독교 공동체의 이야기가 되어진 과정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방인의 교회에게 주어진 계약이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대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위 이스라엘의 옛 계약을 교회의 새 계약이 대치한다는 기독교 승리주의적 신학사상은 "하느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음"(롬 11:29)을 망각하는 오류이다. 아브라함을 통한 계약이 인류 전체를 위한 노아와의 계약을 대치하지 않았듯이 교회도 이스라엘을 대치하지 않으며, 도리어 교회는 "올리브 나무의 뿌리 진액을 함께 받고자 그것에 접목된 야생 올리브 나무"(롬 11:17-18) 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의 이야기가 이방인 교회의 이야기가 되어진 과정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의 이야기에 이방인 교회의 이야기가 편입된 것이며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특수한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통해 보편적인 계약으로 그 지평이 확대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과 9장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 이야기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가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중심으로 고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를 고민하게 하였던 문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의 선조들과 맺은 특수한 계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총을 통해 넓혀짐으로써 구원사에 편입된 이방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또다시 배제된 유대인들에 대한 신학적 딜렘마였다. 사도 바울이 잠정적으로 얻은 해답은 기독교 신학 2천년의 역사를 뒤흔들어 놓은 것이었다. 곧 바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하느님의 계약의 특수성과 그것과 맞물려 있는 하느님의 주권성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약을 통한 이방인의 구원을 논증하려 한 것이다. 로마서 9장 7-8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 계약의 계승자를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 못박는다. 이 말은 우선 아브라함이 사라에게서 얻은 아들 이삭과 그의 계승자 야곱을 두고 한 것이며, 이 때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얻은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의 또다른 아들 에서는 배제된다. 이러한 계약의 특수화에 대한 이해에는 약속의 자녀와 육신의 자녀의 대립이 전제되며 그 대립의 이유를 하느님의 주권적 자유에서 찾으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신학적 사고가 오늘날 더 이상 타당한가? 아브라함 가문의 계약의 특수화 과정에서 제외된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는 과연 영원히 사라와 이삭 그리고 야곱과의 상극상 속에 있어야만 하는 것이며, 그것이 정의와 사랑의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 하느님의 주권성과 자유의 이름으로 계약의 특수성이 특정 가문의 특권으로 인식되고 그것의 책임성은 망각될 수 있는 것일까? 오늘날 풍미하고 있는 다양한 해방신학들은 바로 특권화된 배타적 계약신학 곧 상극신학에 대한 도전이고 그것의 반대급부가 아닌가? 특히 서구 남성의 부르즈와 신학이 신학의 주체로부터 배제하였던 비서구적 인종, 여성, 피억압 계층의 다양다기한 해방 열망은 우리 시대의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의 한맺힌 절규요, 신음이 아닐까?

사도 바울과 그 이후 어거스틴, 루터, 그리고 칼빈은 성서를 상극의 텍스트로 읽은 것 같다. 특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 이야기에 관한 한 그들의 성서 읽기에는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의 한에 대한 해석학적 감수성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성서를 하갈과 이스마엘 그리고 에서의 편에서만 읽으려 할 때 성서를 '테러의 텍스트'(the text of terror)로 간주함으로써 여전히 상극신학의 반대급부는 될지언정 참다운 극복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리어 우리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하갈, 이스마엘, 에서의 하느님임을 새롭게 발견하는 성서읽기 곧 성서를 상생의 텍스트로 다시 읽는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존 웨슬리를 상생의 신학과 결부시키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성서를 상생의 텍스트로 읽었던 소수의 선구자들 가운데서도 매우 뛰어난 대변자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웨슬리는 계약의 특수화와 결부된 하느님의 주권성을 옹호하는 자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고 하갈, 이스마엘, 에서를 무조건적으로 유기(遺棄)한다는 '특수 구속'(particular redemption) 사상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우선 그것은 '구약과 신약의 전체적 시야 및 음조'(the whole scope and tenor both of the Old and New Testament)와 화합할 수 없다./6/ 오히려 성서의 이야기의 핵심은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과 모든 자들을 모든 죄에서부터 구원하려는 하느님의 기꺼워 하심' 곧 '보편적 구속'(universal redemption)에 있다./7/ 따라서 성서는 하느님의 주권성을 하느님의 여타의 속성들(예를 들면 정의, 자비, 진리) 과 분리한 채로 결코 주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하고 불변하며 불가항력적인 신의(神意)'에 의해 '무오하게 구원받을 자들'과 '무오하게 저주받을 자들'을 대립시키려는 상극신학이 있다면 그것은 신성모독이기까지 하다. /8/ 웨슬리는 특유의 신학적 유우머를 구사하여 상극신학의 신성모독적 성격을 비판한다. 우선 상극신학의 문제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선자와 기만자로 만든다. 왜냐하면 성서의 도처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아야만 함을 기꺼워하시는 양 말씀하지만, 상극신학은 이것을 부정함으로 그리스도를 위선적 기만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 보면 예수께서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아래 모음같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수없이 "모으려 원했으나"(would gather) 그들이 "원치 않았다"(would not) 고 통탄하신다. 그런데 상극신학자들은 "그들은 원하나, 그가 원치 않는 양"(they would, but he would not) 말함으로써 마치 예수께서 "멸망의 운명에 빠진 먹이를 보며 울음소리를 내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신 것처럼" 비아냥거린다./9/ 그러므로 상극신학자들은 하느님을 마귀보다 더 거짓되고 더 잔인하고 더 불의한 자로 만들고서는 마치 성서가 이를 증거하는 듯이 주장한다. 그러나 성서 안에는 그것의 참된 의미를 죽음이 삼키워질 때까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책들이 많으며" 만일 그러한 성서를 상극의 텍스트로 읽는다면 "그렇게 하여 주어진 의미보다는 차라리 성서가 아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편이 낫다"고 웨슬리는 항변한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은 하느님의 계약은 무조건적이지 않고 조건적이며, 따라서 그들의 계약은 특권적이지 않고 책임적임을 분명히 한다. "아브라함과 그의 씨"(롬 9:7) 는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롬4:12) 전부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동생 야곱과 화해하려던 에서의 변화된 모습 속에서 "에서도 야곱과 같이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10/ 웨슬리적 상생신학은 하갈의 울음을 들으시고 이스마엘("하느님이 들으셨다"는 의미) 을 구원하신 하느님도 새롭게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웨슬리의 상생신학적 성서 읽기는 심지어 상극의 텍스트로 규정되었던 로마서로부터도 보편적 구속의 하느님을 발견하는 데서 그 절정에 달한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느님이 하갈, 이스마엘, 에서의 하느님이기도 하다는 웨슬리의 상생신학적 성서읽기의 발견원리는 만인 속의 만인을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자유로운 은총"(free grace)이다. 웨슬리는 결국 로마서 9장에 대한 상극신학적 읽기를 로마서 8장 32절의 상생의 텍스트에 나타난 자유로운 은총의 원리에 의해 극복하는 것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이에 대한 웨슬리의 해설은 다음과 같다. "얼마나 자유로이 하느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는 불의한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가 죄중에 죽었을 때 하느님은 당신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내놓으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그와 함께 모든 것들을 얼마나 자유로이 우리에게 주시는가! 진실로 자유로운 은총은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이다 "(Verily, free grace is all in all)./11/

웨슬리의 보편구속의 신학은 그의 후기 사상에 이르러 우주적 지평으로 놀랍도록 확대되었다. 사라의 웃음만이 아니라, 하갈의 울음을, 야곱의 영리한 미소만이 아니라 에서의 후회하는 눈물의 의미를 감지했던 그였기에 성숙한 나이에 이르러서는 모든 피조물의 탄식과 신음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웨슬리의 후기 신학사상이 단순히 구원의 사회적 의미를 넘어서 구원의 우주적, 생명해방적 의미를 추구하였기에 그의 신학은 더욱더 상생의 신학에 더할 나위없는 동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로마서 8:19-22를 본문으로 하는 설교 속에서 웨슬리는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함"의 상태를 "피조물들이 자신들의 동료 피조물들을 파괴함에 의해 생명을 보존하지 않을 수 없음"에서 곧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상극상을 찾는다. 이러한 자연과 자연간의 상극상에 비하여 볼 때 인간과 자연의 상극상의 더 치열함을 웨슬리는 특유의 '위트'(wit)로 고발한다. 사자나 호랑이나 상어는 자신들의 생명보존이라는 필연성 때문에 그들의 먹이를 잡아먹되 먹이에게 짧은 시간의 고통만을 주지만, "인간 상어는 그러한 필연성도 없이 자유자재로 동물들을 학대하며, 수 개월 혹은 수년이 지난 후 죽음이 그들을 놓아줄 때까지 지속적인 고통을 그들에게 가한다."/12/ 그러나 웨슬리는 계시록 21장 5절 (보라,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을 본문으로 삼은 설교 속에서 보편 구속의 하느님의 새 창조에 대한 비젼을 일찌기 이사야 선지자가 꿈꾸었듯이 제시한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모든 것들의 얼굴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의 자비가 그가 지으신 것들의에 있음"을 그의 모든 피조물에게 분명히 보여주실 것이다. 현재 팽배해 있는 사물들의 참혹한 상태는 곧 끝날 것이다. 새 땅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다른 피조물을 죽이거나 상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전갈은 독침을, 살모사는 독있는 이빨을 더이상 갖지 않을 것이다. 사자는 어린 양을 찢을 발톱과 어린 양의 뼈와 살을 찢을 이빨을 더이상 갖지 않게 될 것이다."/13/ 이러한 자연의 새로운 창조와 함께 인간들도 자연과 동료인간의 상극상은 물론이고, 욥같은 최상의 인간마저도 하느님과 겨루려던 마음(욥 42:2-6) 곧 인간과 하느님의 상극상마저도 넘어서 "하느님이 인간들과 더불어 거하시게 될 것이며 " "하느님과의 제한받지 않는 결합"으로 인하여 "삼위일체 하느님과 그 하느님 속에서 모든 만물이 더불어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14/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신학의 문제는 상극신학의 문제이다. 기독교와 타종교, 신과 세계, 육체와 영혼, 인간과 자연, 남자와 여자의 상극적 대립을 넘어서지 못하는 신학, 분열과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반통일적, 반생명적 상극신학을 넘어서 상생의 신학으로 나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는 성서읽기의 웨슬리안적 모형변화를 요청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생의 텍스트로 성서를 새롭게 해석하는 상생신학은 진정한 의미의 한국적 신학이며 동시에 세계적 보편성을 담지할 수 있으며, 명실상부하게 보편구속의 신학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註)

1. 김지하, [남녘땅 뱃노래] (두레신서12, 1985), 11면.

2. 김지하, [大說 南] (창작과 비평사, 1984), 118-120면.

3. 천이두, [한국문학과 恨] (이우출판사, 1985), 44-48 면 참조.

4. 김지하, [大說 南] 제2권, 137-138 면.

5. Albert C. Outler ed., John Wesley (New York ; Oxford University Press, 1980), p. 448.

6. 위의 책, p. 434.

7. 위의 책, p. 425.

8. The Works of John Wesley Vol.3 (Nashville:Abingdon Press, 1986), p. 547.

9. 위의 책, p. 555. 악어의 눈물이란 거짓 눈물을 의미하며, 이것은 악어가 먹이를 잡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한 말이다.

10. John Wesley, p.454.

11. The Works, Vol.3, p.544.

12. The Works, Vol.2, p.445

13. 위의 책, p.509

14. 위의 책, p.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