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조직 신학의 동향
윤철호 교수(장신대/조직신학)
서구 기독교 신학 사상사에 있어서 현대신학은 18세기 계몽주의의 시대와 더불어 시작되어 오늘에까지 이르는 신학들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18세기는 격변의 시대였다. 17세가 산업, 과학혁명의 결과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형성되고 있었으며 도시화로 인하여 시민사회가 형성되고 급기야는 프랑스 혁명으로 왕정통치의 시대가 마감되고 민주 정치에로의 전환이 시작되었다. 과학의 분야에서는 이미 뉴우턴의 원인-결과의 기계론적 물리학이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대치하였고, 다아윈의 진화론은 목적론적 우주관에 도전하였다. 또 지동설이 사실로 입증됨에 따라 천동설을 뒷받침하던 교회의 권위도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되었다. 철학적으로는 데카르트 이후 사고의 주체와 객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인간은 살아 있는 정신으로, 자연은 죽은 물질로 여기는 존재론적 이원론이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이러한 이분법적 존재관은 칸트에 와서도 극복되지 못하였다. 또한 고전에 대한 문헌학 연구방법론의 발전은 성서 해석에도 영향을 미쳐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적인 저술의 하나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계몽주의 이전까지 서구 기독교가 초월적 계시에 근거한 교회와 전통의 권위(가톨릭), 또는 성서의 권위(개신교)에 기초를 둔 연역법적인 방법론을 사용해 왔다면, 왕권신수설에 의해 종교적으로 비준되어 왔던 왕정체제가 무너지고 사회 전반적인 영역에서 기존의 권위가 붕괴되어지게 됨과 함께, 기독교 신학에 있어서도 기존의 권위와 초월적 계시개념을 거부하고, 인간의 주체적 이성의 척도에 입각한 합리적이고 귀납법적인 방법론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세기에 이르러 전통적인 연역법적 방법론 위에 세워진 신조나 도그마 속의 '신앙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을 통하여 새롭게 발견되어진 역사적 예수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또한 전통적 도그마와 신조에서 잊혀졌던 하나님 나라의 주제를 재발굴해 내었는데 19세기의 신학자들은(특히 리츨학파) 칸트의 영향으로 묵시적, 또는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아닌 역사의 지평에서 점진적으로 실현되어질 이상적 도덕공동체로서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그려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이 슈바이쳐, 볼트만 등의 비판으로 인하여 일단 한계점에 도달되어지고 종국을 맞게 되었다. 20세기초 변증법적 신학자들의 말씀의 신학이 신학의 지평을 초월적 원역사의 항구(바르트)나 내면적 개인 실존의 역사성의 영역(볼트만)으로 축소시켰다는 비판과 함께 역사적 예수와 역사 현실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고 있으며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주제가 고난과 고통의 좌절 속의 현대인들의 궁극적인 희망의 근거로서 신학의 중심주제가 되었다(볼트만, 판넨버그).
또한 20세기에 들어와서 주목할 만한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훗셀, 하이덱 이후의 현상학에 의한 데카르트적 이원론의 극복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한 뉴우턴적 물리학의 한계점에 대한 인식, 그리고 양자 물리학과 화이트 헤드의 과정철학의 관계론적이고 유기체적인 존재론적 전망에 의한 전통적 서구의 실체론적 존재관의 몰락과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새로운 존재론적 전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세상과의 관계성을 새롭게 인식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원론적 존재관에 입각한 초월적 절대군주적인 신관에 대한 거부와 함께 세상과의 본질적인 관계성 안에서 함께 고통당하며 인류와 세상의 역사를 인도해 가시는 새로운 신관을 구축하고 있으며, 나아가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성(예를 들면 여성 신학)과 인간과 자연과의 유기체적 관계성(예를 들면 생태신학)에 대한 새로운 통전적인 인식으로 인한 신학적 전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최근의 현대신학의 동향은 한마디로 다원적 패러다임의 특징으로 규정되어질 수 있는데 이는 통시적으로는 고대교회의 패러다임(동방정교), 중세적 패러다임(로마 카톨릭), 종교개혁 신학의 패러다임(개신교 정통주의)과 더불어 계몽주의 이후의 현대적 패러다임이 오늘날 공존하고 있음을 뜻할 뿐만 아니라, 공시적으로 현대적 패러다임 안에 다양한 문화 역사적 현실과 세계관을 반영하는 정치신학, 여성신학, 해방신학, 생태신학, 과정신학, 토착화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 등의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러한 다원적 현대의 신학 상황속에서 차츰 다양한 신학적 전통과 패러다임, 입장들 사이에 서로 배타적이고 유아독존적인 태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성 안에서 조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영성이 증진되고 있다. 즉 다양성 가운데 일치와 연대성을 추구하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더 나아가 이미 일각에서는 18세기 이후의 현대주의 개념을 넘어서서 21세기를 향한 현대 이후의 문화사상적 신학적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예를 들면 통일성과 통합적 체계보다는 다양성과 해체적 편린성을, 보편성보다 특수성을, 절대성보다 상대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대 이후의 신학적 전망은 대체로 아직은 모호하며 산만한 형편이며 포스트모더니즘은 실현된 현실성이라기보다는 열려진 가능성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의 기독교 신학은 또 하나의 '시간의 사이(Zwischen den Zeiten)'에 서 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