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의 복음 엡 2:14-21 김 창 락 (한신대학교 교수/신약학)

1. 실마리 : 머리에 떠오르는 것

'화해'는 요즈음 폭발적인 인기 품목이 되었다. 아니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품목이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렷다"라는 우리의 속담이 있다. 싸움질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 싸움을 하는 마당에서 해야 할 가장 좋은 일은 싸움을 말리는 것이다. 이 말에 누구나 다 동의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되는 속담도 떠오른다.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시누이가 비록 때리는 제 어미를 막으며 싸움을 말린다 하더라도 그 시누이의 마음은 제 어미 쪽에 기울어져 있음은 뻔한 일이다. 약자로서 학대를 받는 며느리의 억울한 사정을 덮어둔 채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도 따지지 않고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분쟁이나 갈등을 적당하게 얼버무려 해결짓는 것은 화해를 참으로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오늘 한국 기독교회가 이 땅에 참된 화해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2. 출발 채비 : '시장의 우상'에서 벗어나기

성서 본문이 증언하는 화해의 의미를 올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두 개의 '시장(市場)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의 우상이란 철학자 플라톤이 지적한 바 잘못된 여론을 일컫는 말이다. 화해와 관련한 시장의 우상의 하나는 우리말 사전에 적혀 있는 '화해'라는 낱말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말 성서[=한글 개역판]에 사용된 '화해' 및 '화목'이라는 낱말의 개념이다. '화해'의 사전적(辭典的) 의미는 '(1)다툼질을 서로 그치고 맺힌 감정을 풂. (2)소송 또는 분쟁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상호간의 분쟁을 그치기로 약속함으로써 성립되는 계약'이다. 이 경우에 화해의 주체는 양쪽 당사자들이다. 이러한 화해는 분쟁의 원인을 해결하기보다는 서로의 주장을 양쪽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멈추도록 합의하는 것이다. 성서에는 이러한 의미의 화해 개념이 없다. 개역성경에는 더욱이 '화해'라는 명사가 신구약 전체에서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아니했으며 '화해하다'라는 동사는 누가복음 12장 58절에 꼭 한 번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써라"는 말씀은 상황에 맞추어 의역한 것이지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그에게서 놓여나기를 (ՐՇՋՋ՗ՈՁՉ Րҳ ՁՔՏ) 힘써라"이다. 병행절인 마태복음 5장 25절은 "너를 송사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私和)하라"라고 번역되었다. '사화하다'의 뜻은 송사를 법정적인 중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당사자끼리 서로 좋게 풀어 버리는 것이니까 '화해하다'라는 낱말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이다. '화해' 및 '화해하다'라는 낱말이 신약성서에서 중요한 구원사적 개념으로 사용된 곳은 고린도후서 5장 18, 19, 20절, 로마서 5장 10, 11절, 11장 15절, 에베소서 2장 16절, 골로새서 1장 20, 22절이다. 개역 성경은 이 모든 곳을 예외 없이 '화목' 및 '화목하다'라는 낱말을 사용하여 번역하였다. '화목'의 사전적 정의는 '화락하고 구순함. 서로 뜻이 맞고 정다움'이다. 이러한 의미의 화목은 반드시 불화나 분쟁을 해결하고 나서 이룩된 어떤 상태나 관계를 뜻하지는 않는다. 즉 화목의 개념은 불화나 분쟁과 같은 장애 요소의 극복을 반드시 전제하는 것이 아니다. '화해'를 뜻하는 낱말이 '화목'으로 번역됨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의미상의 굴절이 생겼다. 이와 같은 개념 굴절은 성서의 화해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벗어나야 할 두 개의 시장의 우상 중의 다른 하나이다.

3. 구원 사건으로서의 화해

1) 화해는 구원사적 개념인가?

오늘의 본문에 평화, 십자가, 화해, 하나님의 가족(=교회) 등등의 중요한 구원사적 개념들이 많이 들어 있다. 우리의 설교는 화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화해는 과연 구원사적 개념인가? 그렇다. 14-17절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서술한다 : 1)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의 가르는 담을 허물어 평화를 이루시고 이 둘을 화해시키셨다(14-16절); 2) 그 목적은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께 화해시키시는 것이었다(16절); 3)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신 사역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전하시는 것이었다(17절). 에베소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적극적인 결과를 '평화'라는 개념으로 요약하였다. 그리고서 그는 이것을 다시 '화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풀이하였다. 이 화해는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인간 집단 사이에 원만한 관계가 회복되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회복되는 것을 뜻했다. 바울은 복음 선포의 내용을 '화해의 말씀'(고후 5:19)이라 하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화해의 직분'(고후 5:18)이라 하였다. 화해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과 사도들의 복음 사신의 핵심 내용이었다.

2) 화해의 주체와 객체

성서에 증언된 화해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해의 주체와 객체가 각각 누구인지를 명백히 해야 한다. 에베소 2장 18절에 의하면 화해를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기에게 화해시키셨다"고 했으며 19절에서 다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에게 화해시키신 것입니다"라고 했으니 화해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화해 사업을 수행하신 대행자이시다. 화해의 주체가 하나님과 그리스도 두 분 가운데서 누구이신 지를 깊이 따질 필요는 없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 사건을 이루셨다면 하나님의 활동과 그리스도의 활동 사이를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화해의 객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는 '우리'라 하였고 19절에는 '세상'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좁은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기 보다 인간 전체를 가리키며 '세상'은 세상 사람 전체를 뜻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경우의 화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 회복을 뜻하게 된다. 이와 달리 에베소 2장에서는 화해의 객체를 인간 일반이라 하지 아니하고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인간 집단으로 제시하였다. 여기서는 화해의 일차적 목표가 두 집단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통일을 이루는 데 있다.

'화해하다'라는 우리말은 자동사이다. 그러니까 두 분쟁 당사자가 화해한다는 것은 두 당사자가 이 화해의 작업에 각각 일정한 자기의 몫을 담당하는 것을 뜻하게 된다. 그러나 성서에서 화해를 뜻하는 동사로 사용된 '카탈랏소'(ՊՁՔՁՋՋՓՓՙ)와 '아포카탈랏소'(ՐՏՊՁՔՁՋՋՓՓՙ)는 자동사가 아니고 전적으로 타동사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기에게 화해시킨 분이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God reconciled man to himself"이다. 이 화해의 작업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소관 사항이다. 이 화해의 작업 자체에 인간이 할당받은 몫은 없다. 인간이 담당할 몫은 다만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화해의 사건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이루신 화해 사건을 믿고 하나님께 화해되는 것이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Man is reconciled to God"이다. 화해는 하나님 쪽에서 솔선해서 이미 이루신 구원 사건이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이 동사가 단순 과거분사로 나타난 것은 바로 이 사정을 단적으로 드러낸다(로마서 5장 10절과 골로새서 1장 20절도 이러한 사정을 잘 나타낸다).

3)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화해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화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는 종교의 가장 깊은 차원이다. 기독교가 잠시라도 이 관계를 외면하는 경우에는 기독교는 종교로서의 가장 중요한 하나의 차원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종교이든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만 관심할 경우에는 그러한 종교는 역사 변혁의 힘을 상실하고 개인주의자의 사사로운 일거리로 전락해 버린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를 문제삼는 경우에 인간 쪽에 등장하는 것은 으레히 단독자로서의 인간 개인이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기독교 복음의 공동체적 연대성을 망각한 이기주의, 모든 세상사와 단절된 내면주의(內面主義), 극단적으로는 인간성 자체를 상실한 열광적 신비주의에 빠지게 된다. 오늘 우리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 사건을 이런 식으로 왜곡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에베소서 2장 14-17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서술하는 데 '평화'라는 낱말이 4번(14절, 15절에 한 번씩, 그리고 17절에 두 번) 사용되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평화는 신구약 성서에서 중요한 구원사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예언자 이사야는 평화를 종말적 구원의 내용으로 선포하였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52:7);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도다"(53:5). 신약성서에 사용된 평화 개념을 올바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위에서 지적한 이른바 '시장의 우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개역 성경은 단지 네 곳만(눅 2:14; 19:38, 42; 롬 12:18)을 예외로 하고 '평화'를 '화평', '평안', '평강'으로 번역하였다. 종말적 구원을 뜻하는 경우의 '평화'를 '화평', '평안', '평강'으로 번역하면 그 뜻이 개인적이며 내면적인 것으로 축소되어 버린다. 예수의 탄생은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건이며(눅 1:79; 2:14) 예수의 사역의 내용은 평화이며(요 14:27; 16:33; 행 10:36; 엡 2:14, 15, 17) 예수의 제자들이 위탁받은 종말적 사신의 내용은 평화라는 개념으로 성격 지어졌다(마 10:13; 눅 10:5, 6). 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규정하기를 '평화의 복음'(롬 10:15; 엡 6:15)이라 하였고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구원을 받은 상태를 서술하기를 하나님과 더불어 누리는 평화라 하였다(롬 5:1).

에베소서 2장 14-17절에서 평화라는 개념이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내용을 성격 짓는 핵심 용어로 사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분(=그리스도)이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14절)라고 선언한 것은 14-17절에 개진될 구원론의 제목으로 제시한 셈이다. "그는 우리의 유일한 희망이다"라는 말이 "그는 유일하게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또는 "우리가 유일하게 희망을 거는 것은 그 사람뿐이다"를 뜻한다. 이와 같이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는 말은 그분이야말로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어 주신 분(the peacemaker for us)이라는 것을 뜻한다. 원문에 주어를 강조하는 대명사 ՁՔՒ의 뜻을 살리려면 "그분은…"이라고 번역하기보다 "그분이야말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14절a가 제목에 해당한다면 17절은 지금까지 서술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내용을 다시금 평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요약한 것이다.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는 선언은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평화의 내용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무엇인지에 대한 상세한 기술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가) 그리스도께서 없애신 일

a.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심(14절).

b. 이 둘 사이에 원수된 것을 없애심(14절).

c.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심 (15절).

d.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심(16절).

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일

a. 이 둘(=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을 하나로 만드 심(14절).

b.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 드시고 평화를 이루심(15절).

c. 이 둘을 화해시켜서 한 몸이 되게 하심(16절).

d. 이 둘을 한 몸이 되게 하여서 하나님께 화해 시키심(16절).

e.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평화를 전하시고 가까 이 있는 사람에게도 평화를 전하심(17절).

에베소서 2장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대상으로 되어 있는 인간은 단독자 개인이거나 사회적인 무관계 속에 놓여 있는 인간 일반이 아니고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두 인간 집단이다. 그 한 편을 이방 사람, 다른 한 편을 유대 사람(=할례 받은 사람 또는 이스라엘 나라의 시민)이라 일컫기도 하고(11-12절) 멀리 있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 일컬었다(17절, 13절). 여기서 지칭된 이 두 집단은 이 편지의 수신인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에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은 각각 이방 사람 일반과 유대 사람 일반을 가리킨다기보다는 이방 기독교인과 유대 기독교인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초대교회 공동체 안에서는 유대 기독교인과 이방 기독교인 사이의 관계 설정이 가장 어려운 쟁점이었다. 이른바 유대주의자들은 이방 기독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했으며 유대인으로 귀화하여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것은 유대 민족의 특권을 고수하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이들의 주장에 대항하여 싸웠다. 14-16절은 이 시기의 그 두 집단 사이의 적대 관계를 잘 반영해 준다. 그러나 에베소서가 후기 바울서신에 속하며 90년경에 저술되었다고 하면 이 시점에서는 그러한 갈등은 이미 오래 전에 해결된 문제였다. 에베소서 저자는 과거에 이루어진 일을 거울삼아 현재 그의 교회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이루셨는가? 그것은 평화를 저해하는 장애 요인을 제거하심으로써이다. 그분은 그 둘을 적대 관계로 가르는 담을 허무셨다. 먼저 분단과 갈등의 원인을 제거하셨다. 그리하여 그 둘 사이에 쌓이고 맺힌 적대감을 소멸하셨다. 양쪽을 서로 가르는 차별의 담은 양쪽이 함께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잘난 쪽에서 자기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하여 쳐 놓은 울타리가 결국에 양쪽을 가로막는 분리의 장벽이 된다. 이 장벽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특권 의식을 가진 유대 사람 쪽에서 세운 것이다. '담을 허무셨다'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인데 그것은 곧 유대교의 율법을 폐하셨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양쪽에 일으키신 새로운 변화는 이 둘을 하나로 통일시키신 것(14절), 이 둘을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드신 것(15절), 이 둘을 한 몸으로 화해시켜서 하나님께 화해시키신 것(16절)이다. '하나', '하나의 새 사람', '한 몸'은 산술적인 결합이나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 통합을 이루셨음을 뜻하지 아니하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통일하셨음을 뜻한다. 이것은 이방 사람과 유대 사람으로 구성된 기독교 교회라고 하는 새로운 공동체의 설립을 뜻한다(갈 3:28 참조). 16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우선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없애시고"라는 분사 구문을 괄호 속에 두고 나머지 부분(ՊՁ ՐՏՊՁՔՁՋՋՁՎ ՔՏՒ ՌՖՏՔՑՏՕՒ Ս Ս ՓՌՁՔՉ Ք ՈՅ ՄՉ ՔՏ ՓՔՁՕՑՏ)만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이 문장은 다음 두 문장 즉, 1) "그분은 그 둘을 십자가로 화해시켜서 한 몸으로 만드셨다"(ՐՏՊՁՔՁՋՋՎ ՔՏՒ ՌՖՏՔՑՏՕՒ Ս Ս ՓՌՁՔՉ ՄՉ ՔՏ ՓՔՁՕՑՏ)와 2) "그분은 그 둘을 십자가로 하나님께 화해시키셨다"(ՐՏՊՁՔՁՋՋՎ ՔՏՒ ՌՖՏՔՑՏՕՒ Ք ՈՅ ՄՉ ՔՏ ՓՔՁՕՑՏ)를 한 문장으로 압축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십자가로 그 두 집단 사이의 수평적 화해를 이루시고 하나의 몸이 된 이 둘과 하나님 사이에 수직적 화해를 이루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 일어났다. 17절은 예수의 지상(地上) 사역의 내용을 성격 짓는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인 이방 사람에게도 평화를 전하시고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자처하는 유대 사람에게도 평화를 전하는 것이었다.

4) 교회의 현재 모습

18절은 하나가 된 그 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 처지를 감격적으로 고백한다. 이 문장의 주어는 표면상으로는 3인칭 복수(Տ ՌՖՔՅՑՏՉ)이지마는 내용상으로는 1인칭 복수(՗ՏՌՅՍ이라는 동사의 형태를 보라)로 취급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19-20절은 이방 사람이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차지한 복된 신분을 서술한다. 이것은 믿기 이전에 그들이 처해 있었던 희망 없는 가련한 처지(11-13절)와 대조시킬 때에 그 의미가 더욱 두드러진다. 21-22절은 교회 공동체를 성전 건물에 비유하고 이방 기독자와 유대 기독자가 다함께 이 건물을 이루는 요소이며 이 공동체가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라고 밝힌다.

4. 화해의 사명

화해는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다. 하나님 쪽에서 솔선하여 먼저 화해를 이루셨다. 여기에 응답하는 사람은 새로운 존재로 변화를 받는다. 이러한 사람은 단독자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족인 교회라는 구원의 공동체를 이룬다. 그는 하나님의 화해 사역의 동역자로서(고후 6:1), 그리스도의 사신으로서(고후 5:20) 세상에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화해의 직분을 맡았다(고후 5:18, 19). 하나님께서 솔선하여 화해를 이루셨기에, 그리스도께서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의 넘을 수 없는 담을 허무셨기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리고 적대적인 인간 집단과 집단 사이의 화해에 대한 어떠한 장애 요소도 그 존립 근거가 박탈당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값싼 화해의 싸구려 판매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안전 지대에 가만히 앉아서 호각만을 불어 대는 심판관으로 행세해서는 안된다. 화해의 일꾼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갈등, 분쟁, 차별, 억압, 착취, 소외 등등의 갖가지 불의와 악이 지배하는 그 자리에 뛰어 들어 약자의 편에서 그 악을 제거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하나님의 정의에 입각하여 해결하려는 사람은 스스로 새로운 갈등에 휘말려 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너희는 소금을 치고 화목하여라"(막 9:50). 소금을 빼 버린 화목 및 화해는 가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