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부르심과 보내심

< 서론 >

사도행전에는 실천과 실례가 나오고 있는데 즉 교회가 기도를 하고, 하나님께서 일꾼들을 부르시고, 보내는 일이 실제로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믿음으로 기도할 때, 교회가 믿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일꾼들을 주시는 방법을 볼수있게 된다.

"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 행 13 : 2-3 )

< 본론>

1. 성령의 부르심

성령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사람을 지명하고 그들을 보내신다.

⸁ 행 13장 - 사실상 13장에는 성령께서 가지는 권위가 새롭게 나타나 있다.

"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은 것은 "( 행 13:4 ). 사도들의 주인은 성령님이 시다 , 그 이유는 "사도" 나 "선교사"는 보냄을 받은자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 금까지 "사도"라는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에 의해 혹은 그리수도의 이름으로 선택된 사람들에 한하여 사용되었다.

⸂ 행 14장 - 그러나 14장으로 들어가면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 행 14:14 ) 등의 표현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성령은 성령의 사도가 될 자에게 사도의 권위를 부여 하고 파송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성령께서 선택하시고 성령을 위해 따로 세울( 성별한 ) 어떤 사람들, 즉 바나바와 바울이 있다는 것이다.

2. 성령의 표적 ( 증거 )

이렇게 성령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에 의해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성령의 임재와 능력을 나타내는 표적들이 함께 하였다.

⸁ 행 13:9-12 - 사울은 박수 엘루마에게 앞을보지 못하는 징벌이라는 심판적 이적을 베푼다. 이것은 전형적인 이적이다. 그 이유는 이 박수가 진리에 대해 자기 자신의 눈을 감았을뿐만 아니라, 눈먼자의 눈먼 인도자 ( 마 15:14 ) 처럼 되어 서기 오 바울이 진리를 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둘 다를 구덩이에 빠지게 하려고 했 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심판의 채찍을 내리쳐 서 엘루마의 눈을 멀게한다.

⸂ 행 13 : 52 - "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춤만하니라 "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지금도 신적 존재는 우리앞에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기쁨이 충만한것도 성령의 행동에 서 오는 한 가지 결과이다.

⸃ 행 14 : 3 - 14장에 들어오면 성령의 증거가 한 번 더 드러나고 강조되는데, 이때에는 전 보다 훨씬 더 강하고 특별하다.

" 주께서 ⋯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 --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그를 증거할 때 다른 한 분이 그들과 함께 증거하며 또 제자들을 증거하는 것 -- 제자들의 증거를 확증하고 인치는 더 위대한 증거 --을 보게 될 것이 라고 약속하셨다.

사도행전 속에는 이중적 증거가 진행되는데 사실은 제자들에 대한 증거, 제자들과 함께하는 증거, 제자들을 통한 증거등인 삼중적 증거가 진행되고 있다. 여기서는 성령의 증거가 제자 들과 제자들의 사역을 확증하는 것과 관련하여 언급되어 있고, 제자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 를 증거할 때, 성령께서도 제자들과 제자들의 말을 증거하셨다.

이러한 결과들은 한편으로는 예증 ( demonstration )이요, 입증 ( attestation ) 이었다.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 ( 막 16 : 20 )

" 진리의 성령이 ⋯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 증거하느리라 " ( 요 15: 26-27 ) "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 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 ( 히 2:4 )

따라서 행 14 : 26 의 말씀 "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 이 말씀은 선교사역을 위해 따로 세움받은 사도들이 성 령의 임재와 인도와 능력에 맡기고, 위임하고, 의탁하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령께 대한 신탁과 의탁은 신뢰라고 불러야 할 구원얻는 믿음에 해당되는 측면과 일치한 다. " 믿음은 받아들이는 것이요, 신뢰는 의탁하는 것이다 " 라는 표현대로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는 반면, 다른 하나는 하나님 께서 주신 생명을 되돌려드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사용하시게 하는 것이다.

성령과 연결된 믿음의 두가지 측면을 보다면 믿음에는 네 단계가 있는데 즉 믿음, 설득, 의 탁, 지식 또는 확신이다. 이것을 성령과 연결지을 때 두 가지 측면이 나타난다.

첫째, 우리는 성령을 그리스도의 승천선물로 맏는다.

둘째, 우리는 우리자신을 그의 내주하심, 내적역사, 외적역사에 신탁 또는 의탁한다.

전자는 성령께서 들어오시도록 마음과 전존재를 열어드리는 행동이요, 후자는 성령께서 내 주하시는 전존재를 그의 소유와 능력, 봉사와 지배에 넘겨드려 몸의 모든 지체, 머리의 모든 생각, 가슴의 모든 감정이 그의 요청에 순종하고 그의 명령을 기꺼이 행하게 하는 것이다.

3. 성령의 보내심

⸁ 행 13 : 4 - "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떠나니라 ".

다시 말해서 보냄을 받은 그들은 즉시 출발함으로써 성령의 인도에 명시적인 굴복을 하였다. 따라서, 우리가 그에게 순종하고 그의 통치와 인도에 굴복할 때에만 능력을 가질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행 14 : 27 - "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했다. "

⸃ 행 15 : 3 - "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며 형제 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였다."

⸄ 행 15 : 4 - "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하셔 행하신 모든일을 말하고"

15 : 12 - "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를 고했다"


< 결론 >

사도행전 만큼 처음부터 끝까지 겸비하게 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선물로 맏는 영생은 우리자신의 선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성령을 받게될 때 그는 우리안에서 능력이 되신다. 그렇지만 우리가 자기를 신뢰하거나 자만하는 순간 이 능력은 중단되어 버린다.

신자나 교회가 기도나 설교도는 하나님을 위한 삶, 하나님과의 동역 등에 능력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께서 영원히 내주하시면서 내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하나님으로 사랑하고 경배하고 숭배하면, 성령의 임재와 통치를 인정하고, 소중히 여기면 성령의 권위에 복종하며 그의 영과을 위해 모든 것을 행하면, 이루어진 모든 업적을 겸손하게 성령의 역사로 돌리면, 그때는 성령께서 교회를 늘 그의 보좌로 삼으실 것이며 교회를 그리스도의 참된 몸으로 만들어 각 지체가 머리되신 분께 순종하게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