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론 특강

1. 들어가는 말

신은 존재하는가? 한스 큉의 이런 물음은 우리 시대의 상황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신을 긍정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못하는 가운데 결단을 내리지 못한채 회의하면서 오늘날의 신앙인은 막연한 신앙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날은 '신 죽음의 신학' 이나 '신 부재'의 신학에 머무르지 않고 이런 잇슈들 자체가 대중적인 무관심이 되어 버렸다. H.Zahrnt는 [The Question of God]에서 "신 죽음은 이제 소수 무신론자나 급진적인 신학자들의 순간적이고, 소수적인 주제가 아니고 결정적이고, 대중적, 역사적 과정의 주제로 나타났다." 고 말함으로써 현대에 들어서 신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공허해졌음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왜 이렇게 신에 대한 언급이 공허해지고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여기서는 이런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서 그 원인 분석을 시도해 보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존재론적 구도를 설명함과 아울러 현대의 신학자인 Paul Tillich 의 "Being" 개념을 언급함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2. 공허성의 원인

철학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중세까지를 '존재론'이라는 틀거리로 이 세상을 이해한다. 존재론적 구도에 의해 논증된 신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참 구세주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고 이 바탕위에 세워진 교회는 구원의 방주라고 여겨지게 되었다. 따라서 교회는 진리를 판가름할 수 있는 규준으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성서 해석도 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해석되어졌다.

그러나 후기 유명론이 대두 되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거치면서 중세의 존재론적 틀거리가 깨지게 되었다. 특히 교회사의 입장에서 볼때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은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의식을 가져다 주었다. "sola scriptura" 이 한마디에서 중세와 16세기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즉, '성서를 볼때 어떻게 이해하느냐' 라고 하는 관점은 성서 해석의 열쇠를 교회의 권위에다 두느냐, 아니면 성서는 그 자체로 해석되어야 하느냐의 문제 곧, 신학에 대한 관점의 차이를 일으켰다. 루터는 "Scriptura est sui ipsius interpres"를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루터는 성서 해석에 있어서 "성령의 내적인 증거 (testimonium internum Spritus Santi)" 라는

해석학적 원리를 내세워 '은총과 복음'에 의해 성서를 해석해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이것은 주

관성으로 빠지게 되어 다시금 성서 해석의 기준을 요구 하게 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시도는 철학사 속에서 시도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 이었다. 결국 존재론적 구도를 거부하게 되고 인식론으로 주제가 바뀐 것이

다. 여기서는 이성이 새롭게 강조 되었으며 이를 이어받은 18세기의 계몽주의의 사람들은 이성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할 수 있다고 즉, 진리의 판단 기준이 이성이라고 믿었으며 신학의 주제도 이

성적이지 않으면 거부되기 시작했다. 자연과학과 역사의식의 발달도 우리의 사고 구조를 바꾸

어 놓았는데, 역사의 상호 연관성과 자연 과학적 인과율을 동일시 함으로 "historical fact" 만

을 찾게 되었고, 이에 따라 신에 대한 생각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면 이상의 이성적 판단 대두, 자연과학의 발달, 역사 상대주의로 인해 신에 대한 생각이 어

떻게 바뀌었는가를 살펴보자.

첫째로 섭리론에 변화가 생겼다. 전통적으로 하나님을 제1원인으로 생각하여 모든 사건이 하나

님에게 연유되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전통적으로 그 원인을 하나님에게

귀속시켰던 것을 "자연적 방법 (Natural Way)" 에 귀속시켰다. 이것은 근본적인 틀거리의 변화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자연과학적 방법이 '역사' 개념에도 적용되어 역사 실증주의적 사고로 발전

하였으며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여도 자연적 인과율이나 방법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결국 인간

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어서 하나님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은 사라

지게 되었다. 이런 영향으로 일부 극단에서는 역사의식이 빠져있는 신비주의나 공간적인 섭리론

만 남게 되었으며, 개인적인 체험, 개인적 구원과 같이 역사성이 결여된 하나님으로만 남게 되었

다.

둘째로 역사의식이 대두 되면서 역사 상대주의로 빠지게 되었다. [기독교의 절대성]이라는 책에

서 트뢸취는 기독교 신앙을 포함해서 모든 역사적 현상은 절대로 보편 타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

다. 그의 역사 상대주의적 입장에는 세가지 기본 원리가 놓여 있는데, 곧 비판(criticism), 유비

(analogy) 및 상관성(correlation)이 그것들이다. 비판이란 모든 증거가 비판적으로 측정되어야

만 하며, 또한 모든 결론은 새로운 증거의 조명 하에서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유비란 연구 대상인 사건들이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사건들과 그 종류에 있어서 본질

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뜻한다. 상관성이란 역사 내의 모든 사건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으며,

역사 전체는 일종의 이러한 상호-관련성의 연락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특별한 신적 개입이라는

의미에서 역사 내에 어떤 단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그 자체로서 독특하고

개별적이고 특이하기는 하나 다른 모든 것과 질적인 면에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

로 말해서 그 결과 어떤 종교도 '절대적'이거나 '죄종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트뢸취의 역사

의식이 깔고 있는 전제에 의하면, 역사에 있어서는 계시나 초월적인 것을 직접적인 것에 접목시

키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은 기독교 계시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절대성, 독특성, 궁

극성"이 무의미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 버렸다.

셋째로 종말론적 요소가 상실되었다. 종말론 개념에는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데,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그것이다. 불연속성이란 초월적이라는 의미로 이역사에는 종말이 있다는 의미이다.그

러나 불연속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하나님의 역사속에서의 구체적인 개입은 상실되어 버리게 된다

연속성이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강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보는데 불연속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종말론적인 요소를 상실하게 되고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윤리, 가치 안에서만 기독교가 존재하

게 되어 기독교의 독특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런데 역사 상대주의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초월성이

비 시간적으로 되고 다만 공간적인 초월만을 얘기하게 되어 종말론은 상실되고 하나님은 역사 밖

의 하나님으로만 규정되어 버렸다.

이상과 같은 결과로 진리개념이 상대화 되었다. 전통적으로 진리는 하나님에 의해 주어지는 것

이었는데 계시의 권위가 흔들리고 역사 상대주의 영향으로 진리 개념에 다원화를 가져오게 되

었다.

그러면 이제는 신에 관해 특히 기독교의 하나님에 관해 얘기하는 것이 무의해진 것인가? 더 이

상은 하나님을 언급한다는 것이 이 시대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는 서두에서 이것에 대한 대안으로서 존재론적 구도를 언급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필자

가 보기에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면서 중요한 것 한가지를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존재론적 구도에서 인식론적 구도로 넘어감을 의미한다. 근대 이후 우리는 신을 어떻게 해야 그

존재를 알 수 있는지를 파악하려 했다. 신토마스주의자들이 본 견해이기도 하지만 중세 이후 존

재론적 구도는 역사속에서 무시되어 왔다. 물론 역사가 발전하면서 사상도 변하지만 우리의 근본

구조를 알아야 우리는 그 존재론적 기반 위에서 인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칸트가 '물자체'

를 언급함으로 우리 인식의 한계를 잘 설정했다고 보는데 유한적 존재가 가지고 있는 사유의 한

계 곧 존재론적인 규정을 하여야만 우리는 바른 사유를 할 수 있고 현실을 바로 파악할 수있다.

하나님을 언급함에 공허함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존재를 올바로 인식 못한데서 기인한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의 존재론으로 귀속시킬 수는 없다. 고전적 의미의 존재

개념은 이원론적 구도속에 있었기 때문에 역동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다만 아리스토텔레가

말한 '부동의 원동자(unmoved mover)' 적인 의미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역사의식 속에 있기

때문에 옛날의 존재론적 구도는 오히려 퇴행을 가져온다고 본다. 우리는 그야말로 "새로운 존재"

(New Being)를 상정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Paul Tillich를 언급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그의 존재 개념만을 언급하여 그 관점만을 살펴 보기로 한다.

3. 상황신학(Situation Theology)

틸리히의 신학은 신학의 근본적 재구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정통주의 신학의 잘못이 시대의

요구를 무시하고 성서 안에 포함되어 있는 불변하는 메시지, 또는 신조, 교회 질서 등에서 부터

출발하려는 것에 반해 틸리히는 이와 반대로 상황의 요구에서부터 출발한다. 그의 근본적 목적은

대답을 주려는 데 있다. 그것은 신학의 과제를 상황에 대한 응답과 대답으로 보기 때문이다. 틸

리히에 의하면 상황이란 "존재의 창조적 해석(the creative interpretation of Existence)"," 한

시대의 인간의 창조적인 자기 해석의 전체"를 의미한다. 상황은 존재 자체의 질문이다. 신학은 이

와 같은 '상황의 소리', 즉 존재 자체의 질문에 대답을 주는 것이다.

틸리히는 주어진 상황 또는 질문에 관계하여 대답을 상관시킨다. 이 양자는 이원론이 아니다.

질문과 대답의 관계는 변증법적이고 실존적이다. 즉 이 상관은 다만 질문과 대답, 상황과 메시지

를 통계적으로 나란히 놓거나 평행시키는 것이 아니다. 변증법적으로, 실존적으로 상관시킨다.

그러기에 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부른다.

틸리히의 변증법적 신학의 출발점과 표준은 인간 속에 있는 절대자의 자기 경험, '신비적 아프

리오리', 즉 궁극적 실재에 대한 실존적 의식 또는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다. 이 궁극적 관심의

대상은 "존재 자체"이다. 이것을 그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이 존재는 모든 실존의 "근거" 를

말한다.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은 바로 그 힘에 참여함으로서 실존하며, 거기에

서 돌출된 것이다. 특히 인간실존은 존재의 근원으로 부터 어느 정도의 간격을 가지며 분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존재(Being)에 의존하며, 또한 그럼으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바로 그분이 우리의 깊은 요구들과 심오한 질문에 대해 대답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답은 우리들 자신 밖에 있는 순수한 어떤 것이나, 우리들 밖에 실존하는 다른

사물이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우리의 실존과 사물들의 실존의 근거요 바탕으로서 가능한 것이

다.

틸리히의 존재는 실존적인 존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의 존재론은 주관성에 치우친 것이 아

니다. 그는 분명 '주체'와 '객체'의 구분과 대립을 언급하지만 고전적인 방식으로 말하지 않고

이 둘의 기반으로 "근저에 놓인 존재"를 제시하였다. 이렇게 함으로 존재론적 구도를 회복함과

동시에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 해석이 가능하며 인간실존의 근본을 다루기 때문에 비기독교인들

에게도 이 궁극적 존재를 언급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구도속에서라면 현대에 신을 얘기하는 데에 공허해지지는 않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