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만의 신학적 인간학

I. 서 론

A. 문제 제기

몰트만(J.Moltmann)에 의하면 인간은 자체가 수수께끼이다. 그래서 "인

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 존재의 질문은 자기를 의식하는 인간 자신 만

큼이나 오래된 질문이다. 인간이야말로 모든 철학이 갖고 있는 가장 중요

한 주제이며 고대 희랍 소피스트들이 인간을 철학의 중심문제로 취급한 이

래 철학은 단 한번도 인간을 잊은 적이 없다.

인간은 늘 수수께끼의 존재요 사고뭉치의 문제아로 남아있기 때문에 인

간에 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계속되어 왔던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질문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언제나 다시금 제기될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슬픔과 기쁨을 당하

기도 하고 고통과 희열을 느끼기도 한다. 이 모든 삶의 상황속에서 인간

이 부딪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인간 자신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문제에 부딪치면서 인간들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

하려고 노력해왔다. 더우기 이것은 근대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되면서 더욱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다. 다시말하면 과거에는

자연적인 재앙이나 질병과 같은 자연의 파괴력 아래서 인간은 연약한 존재

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그러한 자연이 가져다준

인간의 고통과 고난의 문제가 어느정도 해결을 보면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인간이 닥친 연약함과 비참함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희망을 가져다 주는듯했던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인간의 문

제를 야기시켰다. 그것은 기술왕국적 산업사회안에서 파생된 비인간성과

소외의 경험이다. 이러한 산업사회안에서의 비인간적 경험은 사람들에게

다시 인간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게 했고, 기술왕국적 사회안에서 영원한 평

화의 나라를 꿈꾸던 사람들은 인간성의 상실과 창조적인 것의 결여를 경험

하면서 낭만적인 현실도피를 하게됐다. 그래서 몰트만은 산업사회안에서

의 여러가지 회의적 경험이 이 세계를 사람들에게 자기소외의 지옥으로 경

험케 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기소외의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아

야했으며 인간에 대한 질문에 대해 새로운 해답을 던져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철학, 종교등 모든 분야에서 인간에 대

한 물음에 대답하려고 많은 노력과 연구를 해왔고 지금도 인간에 대한 연구

는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연구가 점점 더 심화되고 있

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나의 통일된 인간개념은 없는 듯하다.

근대의 인간학은 근대의 인간중심적 세계상을 무비판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데 이 세계상에 의하면 사람이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는 사람때문에 그리고

그의 유익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대 학문들은 이러한

인간중심적 세계상을 폐기시켰다. 예를들면 현대 우주학은 프톨레메우스

(Plolemaic)의 세계상을 극복하고 우주의 무한한 공간과 수없이 많은 별들

에 직면하여 이 땅위의 사람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게 했다.

현대 생물학도 사람이라는 종(種)을 등장했다가 다시 사라질 수 있는 종

들의 진화과정으로 환원시켰다. 그리하여 이것은 사람은 자연도태의 우연

한 산물인가 아니면 진화과정에 있어서 늦게 태어난 의미있는 존재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게 했다. 현대 심리학도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연약한 자기의식 아래에는 무의식적인 것, 인식되지 않은 충동들 그리고 원

치않는 억압들의 세계들이 있다고 제시하면서 사람의 영혼은 그 자신의 집

안에 있는 주인인가 아니면 의식되지 않은 힘들의 장난감에 불과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게 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샤르댕(P.Teilhard de Chardin)은 인간이 사물의 일반

성 속으로 폐기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몰트만은 그리스도교 인간학

이 중세기에 프톨레메우스의 세계상을 받아들여 인간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선언하면서,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로써 하나님과의 사귐속에 있는

존재로 보는 성서의 전통적 인간이해의 근거를 간과했다고 하면서, 근대의

그리스도교 인간학은 성서의 전통을 우주에 있어서 인간의 특별한 위치, 즉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된 인간은 세계의 중심이며, 세계는 그를 위해 창조되

었다는 것을 정당화하는데만 참고하고 사람이 가진 창조의 사귐을 통찰하는

데는 참고하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의 가치와 윤리성을 구하기 위하여 근대의 인간 중심주의를 방

어해야 한다고 했을때 그것은 진부하고 경직된 것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몰트만은 계시신학의 조명하래 인간을 "창조의 사귐속에 있는 피조물"로 이

해하고, 인간의 존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그 안에 등장

하고 그것으로 엮어져 살아가는 관계들과 환경들과 함께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것은 '인간이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근본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일련의

관계성 안에서 찾으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의 관심은 개인에게 있

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역사와 사회와 공동체에 있고, 그의 신학적 사고도

실존적이 아니고 역사적이며, 수직선적이 아니고 수평선적이며, 현재적이

아니고 미래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인간학은 신학적 규범없이 출발하는 인문과학적이거

나 철학적인 인간학이 아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떠나 신학적 교리속에 매

몰되어 있는 인간학도 아니다. 그의 인간학은 급변하는 산업사회 안에서

파생되고 부딛치는 문제들과 실재적 삶에서 경험되는 문제들에 직면한 인간

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더우기 오늘날의 한국사회도 6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되는 산업화와 기술문

명의 발달로 인해, 사람들은 물질주의, 기능주의, 기계화속에서 비인간화와

비인격화를 경험하게 되었고, 빈부의 격차로인해 소외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교회가 아직도 사회구원보다는 개인구원을 내세우며

현실적이지 못하고 타계적인 신앙만을 수구해오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사

회가 겪는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침묵만을 지켜온게 사실이다.

따라서 몰트만의 신학은 오늘날 한국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문제들

에 직면한 인간에게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며 한국교회에 새로운 빛을 비춰

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래서 본 논고는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경험되는 불안

과 갈등과 인간의 소외의 문제, 카프카의 용어를 빌어 부조리한 인간의 문

제를 몰트만 신학의 조명아래 비춰보고 그에게서 해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B. 연구방법 및 범위

본 논고는 몰트만의 신학적 인간학을 다루기 위해 그의 저서 [인간](Man)과

[창조안에 계신 하나님] (God in Creation)을 주로 참고하면서 전개했다.

이제 본 논고를 전개함에 있어서 제 II 장은 몰트만의 신학적 인간학의 특

징적 배경을 인간이해의 전제로 살펴보고, 제 III 장은 현대 산업사회 속에

서의 인간의 불안과 희망을 진단하고, 이 산업사회가 제시하는 구원론적 인

간상을 살펴보며, 제 IV 장은 현대의 갈등속에서 몰트만이 제시하는 새로운

인간으로서의 인자를 살펴보면서 참다운 인간화의 길을 모색해 본다. 마

지막 장에서는 결론 부분으로써 몰트만의 인간학을 평가하면서 본 논고를

마치도록 하겠다.

자료원 : 오상길

발행일 : 921130

분 류 : 실천신학

제 목 : 몰트만의 신학적 인간학 ( 2 인간이해의 전제 A 자연주의와 관념론적 )

II. 몰트만의 인간이해의 전제

A. 자연주의와 관념론적 인간이해에 대한 비판

19세기 초엽까지 교회의 신학에 의하면 인간의 기원은 우주의 시작만큼 오

래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근대의 과학적 진화론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은 지구의 역사상 가장 늦게 나타난 동물중 하나로 드러나게 되었다.

즉, 인간은 진화의 결과요, 자연도태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로인해 근대

의 인간중심적 세계관은 흔들리게 되었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종(種)은

전체를 관망할 수 없는 진화의 과정속에 있는 작은 개체에 불과하고, 또한

인간이 지금까지의 우주적 역사의 결정적인 마지막 결과가 아니고 한 중간

결과에 불과하다고 보기때문에 인간은 창조의 목적일 수 없으며 그를 위해

세계가 창조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연과학적 진화론이 말하는 것처럼 진화의 과정으로

결과되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후마눔'(humanum)인데, 이것은 동

물에게는 전혀없는 것으로 주체적으로는 '영'(spirit)으로, 객체적으로는

문화의 창조로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인간의 '정신적 활동'(humanum)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후마눔 자체가 동물의 영역에서는 도저

히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후마눔은 동물적인 것

을 초월한 인격적인 어떤 것이다. 이처럼 자연주의는 인간을 생물학적

현상들을 통해 인간을 규정해 보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관념주의

는 인간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으로 규명하고 이해하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동물과 다르다.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원칙적으

로 다르다. 인간에게는 이성과 정서이 있고, 인간만이 이것들을 통해 문

명과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인간만이 양심과 진리와 예술과 종교를 갖

고 있다. 부르너는 인간의 정신적, 영적 본성을 인정하면서, 인간이 말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주의적 인

간이해를 거부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이 점을 들고 있다.

그러면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영'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 성서해석의

입장에서는 영은 그 기원과 성격이 신적이고 반면 육체는 그것보다 낮고 열

등하다는 이원론적 사상은 전혀 없다. 영혼이 본성적으로 불멸하다는 사

상은 플라톤적일 뿐이지 결코 성서적인 것은 아니다.

죽음이후에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간다는 플라톤적인 요소

가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깊이 뚫고 들어왔으며 또한 이 사상이 오늘날에도

형이상학 분야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그러나 성서에서의 인격성이라는

개념에서 생각할때에, 이러한 이원론적 사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때 다만 기능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즉,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 영적 기능이 있다는 것

이다. 따라서 영혼의 불멸이란 있을 수 없고 오직 한 인격체가 하나님에

의해 영생하도록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영-혼-육으로 된 한 인격체가 단

일체로 죽고 단일체로 살아난다. 이에대해 부르너는 영혼불멸이라는 관념

은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위해 규정된 인간의 운명이라는 말로 대치되어

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같이 인간의 영혼을 없어지지 않는 영원한 것 내

지는 신적인 것으로 보며, 또한 인간의 육체를 영원한 것에 임시로 붙어있

는 열등한 어떤 것으로 보는데서 관념론의 오류가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인간이해의 근거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고 있다. 성육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는 자는 더이상 육체를 멸시할 수도, 영적인 본성을

신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도 없다. 성육하신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는 인

간이해는 자연적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은 '객체'

(object)인 동시에 '주체'(subject)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편만을 이해할 경

우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만일 인간이 스스로 다른 대상들중에 속해있는 하나의 대상으로만 이해

한다면 그 결과 자연주의로 흐르게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물질론'

(materialism)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인간이 스스로를 대상으로 보지않

고 주체로만 이해하게 되면 관념론의 오류에 빠지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신

격화(theopanism)로 흐른다. 따라서 인간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의

빛에서 스스로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둘중 한쪽으로만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법 이외의 길은 없는 것이다.

이 두가지 인간이해가 계속 마찰을 일으켜 왔지만 그 어떤 것도 승리를 얻

지 못했다. 이 둘을 종합하려는 시도도 번번이 있었지만 그 결과는 일종

의 타협된 체계이며, 이것은 인간의 영적 본성이나 물질적 본성 그 어떤쪽

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대의 자연주의적 인간학

은 인간의 문명이라는 객관적인 실체를 보면서도 동물보다 상대적으로 발달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뿐 근본적으로 다른 영혼의 실재는 모른다.

반면 관념론적 인간학은 인간의 영적 본성에 제한을 가함으로써 인간정

신의 신격화를 방지하는 길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몰트만은 인간

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의 빛에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스스로를 파악할때만 가능한 것이

라고 한다.

B. 비교인간학적 고찰

인간존재에 대한 물음은 인간이 의식하는 한 영원히 던져지는 물음이다.

이러한 물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자가 자기자신에게 그것을 다시 던져서

자기자신에 대하여 의문을 갖게 될때 의식안으로 들어온다. 이때 그는 자

기가 관계하는 주위의 대상들과 자가자신과의 차이를 발견하게 되며 또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가 공유하는 세계와 자기의 운명과의 차이를 발견하

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가 자연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대답을 요청했던 물음은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지게 된다. 이것은 인간이 공유하는 세계 안에서, 경험되

는 일련의 관계성에서 인간의 물음이 제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몰트만은 "인간이 누구냐 ?"는 물음은 일상적인 경험들 속에서, 행복과 고

통의 특별한 상황들 속에서, 또 그의 의식의 최고의 성찰들 속에서 나타난

다고 말한다.

인간에 대한 이런 물음은 여러가지 상황에 따라서 다양하게 물어질 수 있고

또한 그것이 일어나는 여러가지 장소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몰트만은 인

간의 물음은 비교를 내포하는 물음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고립

된 존재가 아니고 또한 인간의 문제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물음이 제기되는 비교의 장(場)으로 다음 세가지를 제

시한다. 그것은 생물학, 문화인류학, 종교이다.

1. 생물학적 인간학

이것은 인간을 동물과 비교하여 인간을 규정하려는 노력이다.

인간은 동물과 차이가 있다. 동물은 종(種)에 따라 일정한 환경에서 살고

그 반응에 있어서는 충동적이며 본능적이지만, 반면 인간은 그가 활동하는

생활권외에는 확고한 환경도 가지고 있지 않고 또 그 안에서 힘들여 적응해

야만 한다. 그래서 헤르데르(Herder)의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Essay on

the Origin of Language)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동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소속하는, 곧 그일생 머물다 죽기까지 사는

영역이 있다. ...반면 인간은 한가지 일을 실행할 수 있는 일정하고 좁은

공간 조차도 없다. ...자연은 모든 곤충에 대하여 가장 사랑스러운 어머

니지만 사람에게는 가장 준엄한 의붓 어머니이다. ...인간은 매우 분열되

고 약화된 육감성을 가지고 태어나며 불명료한 능력(faculty)과 매우 분화

된 약한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인간은 세계에 대해서 개방되어 있으며 외계의 신호에 심한자극을 받고, 본

능도 불확실하다. 동물에게 있는 환경과 본능적 반응의 조화는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자기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어려운 과제이다. 이런 이유로 니이체는 인간을 "아직 확정되지 않은 동

물"로 간주 하였다.

그러나 몰트만은 인간은 이렇게 생물학적으로 불완전한 생물이긴 하지만 동

시에 문화를 창조하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문화가 인간의 본성

을 제어하고 조절하게 한다. 동물에게는 본능적인 요구와 본능의 대상이

종(種)에 특유하게 확고히 결합되어 있지만 인간에게는 본능적 성질이 비교

적 비전문화 되어있다. 다시말하면 인간에게는 유전적으로 확정된 본능의

대상들이 외계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교육을 통해 얻어질 수

있을 뿐이다. 인간은 내적충동과 문화적 충동을 문화적으로 조화시키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서 막스 쉘러(Max Scheller)는 인간은 동물처럼 종의 성질을 가지고

확정된 환경과의 특수관계에만 놓여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를 형성하면서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세계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개방된 존재라고 했

다.

인간의 여러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인간만이 가진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정신과 이성이다. 인간의 자연본능적 결함은 인간의 정신과 이성의 배면

에 불과하며 인간의 비전문화는 그 창조적인 활동성과 환타지(phantasie)의

배면에 지나지 않는다.

문화는 사회적으로 불가결한 충동을 체념하는 통찰이며, 인간이 억제하기

어려운 충동적 본성과 투쟁하는 학습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젯

트(Ortegay Gasset)는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하고 그가 스스로 창조하려는

것까지도 규정한다" 고 말하고, 또한 겔렌(A. Gehlen)은 "인간은 생존할 뿐

만아니라 자신의 생을 이끌어 가는 존재이다" 라고 규정한다.

이처럼 생물학적 인간학은 인간을 동물과 비교함으로써 인간을 규정하려 한

다. 그러나 이 비교의 장소는 인간문제에 대한 중요터전이 못된다. 이

장소가 자기인식의 출발점이긴 하지만 그의 자아규정의 유일한 길은 아니

다.

2. 문화인류학적 인간학

인류학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인간이란 문제가 제기될때 전체개념에서 파악

되지 않고 인종중심주의에서 파악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주로 백

인인종주의와 이방인 배타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이란 문

제가 제기되면 같은 민족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그것이 적용될 수 있었고,

다른 민족에 속한 사람 - 외국인 - 에게는 그것이 적용될 수가 없었다.

즉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서 배타적인 자세를 가졌던 것이다. 따라서 흑

인 백인 유색인은 있었지만 문화적 및 인종의 차이에 있어서 다른 민족 사

람들은 '인간'이라고 불리워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백인의 인종중심주의 현상은 왜 일어날까 ? 몰트만은 그

이유가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불안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불안이

인간을 타인에 대한 반감으로 몰아가며 이방인에 대한 증오로 자기를 몰아

간다. 이때 그는 인간존재를 그가 가진 긍정적인 것, 그의 인종, 그의 종

교, 그의 문화, 그의 소유물과 동일시하고 자기 속에서 쫓아내고 싶은 비인

간적인 것을 자기와 구별되는 외국인에게 투사한다.

그에게 있어서 외국인은 적이요, 노예로 살아야 할 야만인 인것이다.

그러나 몰트만은 후대에 이르러 소피스트들은 희랍인과 야만인 사이에 공통

된 인간성(humanitas)이 있다는 사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이 사상을 스토아 철학이 받아들였고, 그들은 민족간의 역사적 문화적

차이보다도 인간의 본질속에 있는 공통성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통용되는 '인간성'이란 개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스토아 학파에서부터이다. 키케로는 로마인(homo romanus)의 고대로

마의 인간상과 윤리적인 인간다운 인간상을 대립시켰다. 그래서 이 대립

은 그에게 있어서 로마인이냐, 야만인이냐의 문제가 아니고 인간성이냐, 비

인간성이냐의 문제였다.

이러한 인류사상과 더불어, 이스라엘과 기독교에 의해서 또하나의 인류

(oneness of mankind)라는 전망이 생겼다. 계약의 신이 모든 인간의 창조

주요 심판자라면 모든 민족들은 하나의 공통된 세계사 속에 서게되며, 장차

올 하나님 나라의 기대는 모든 인간 개개인의 운명과 민족사를 하나의 공통

된 세계사와 결속시킨다. 이러므로 모든 사람은 창조와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공통된 운명을 갖게 된다.

그런데 스토아학파의 인류사상과는 달리 이 전망이 중요한 것은 인간사

이의 역사적 상이성을 중요시 했고, 인종과 계급사이의 구체적인 역사적 투

쟁을 위해서 공통된 미래의 시야 곧 미래의 공동체에 대한 시야를 발견하였

기 때문이라고 몰트만은 말한다.

인간을 인간과 비교할때 문화인류학이 발생한다. 서로 다른 민족이 가진

상이한 문화를 서로가 만나게 될때 그 사람들은 자기 것외에 다른 것을 알

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기들의 것이 절대적인 것으로 알던 그들의 고유문화

가 상대성과 한계성을 경험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몰트만은 문화인류학

을 인종학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하나 이상의 문화를 알면 자연히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긴다. 이 질문은 우리에게 '인간의

인간성'에 대한 관심을 갖게한다.

계몽주의 이래 인간성은 단지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내용적인 명칭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그의 과제와 희망의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성취하

기 위한 윤리적 메시야적 명칭이 되었다. 그래서 서로를 이해하는 관점

에서 인종학은 항시 미래의 인간성취를 위한 관점에서 보는 인간학으로 옮

겨간다. 이런 관점에서 몰트만은 문화인류학을 "인간을 진보시키는 인간

학"(the advancement of mankind)이라고 한다. 칸트(Kant)는 이것을 "실

용적으로 다루는 인간학"(anthropology treated Dragmatically)이라고 불렀

다.

인간은 문화의 창조자요 제작품이다. 모든 문화는 자기자신에 이르는 영

혼의 길이며(Georg Simmel), 미래의 품안에 아직 감추어져 있는 저 인간의

인간성에 이르는 길로 이해될 수 있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 문화를 역사

적으로 만나고, 역사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인

간은 끊임없이 자기를 완성하고 자신의 실존안으로 밀려들어가는 공허함을

막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인간을 몰아가는 이 공허함과 불안이 어디에 존

립하는가를 물을때 문화인류학은 한계에 부딪친다.

그것은 문화인류학이 인간이 인간에게 가지는 경험의 영역에서만 그 의

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인류학이 인간존재의 물음의 장(場)이

기에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고 폭넓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 물음이

등장하는 유일한 장소는 아니다.

3. 종교적 인간학

이것은 인간을 신성과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운명과 숙명을 규정하려는 것이

다. 신에 대한 인간을 말할때 이것은 생물학이나 문화인류학의 그것과는 전

혀 다르다. 인간은 신앞에서 자기자신을 그의 비신성과 비열성과 그의 지

상성(earthness)으로 경험한다. 중세의 인간성이라는 말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위대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비천함과 오류 범하기와 신

의 영원성에 대조된 가멸성을 의미한다.

인간은 신의 영원성 앞에서 순간 사라져 버릴 유한성을 경험하며 자신

의 진리와 진실 앞에서 거짓을 경험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와

진실의 감동아래서 시편기자는 "모든 인간은 거짓말장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시 116:112). 이러한 종교적 인간의 모습을 휠더린(H lderlin)은 그

의 시 "히폐리온의 운명의 노래"(Hyperions Schick salslied)에서 그리고

있다.

"그대들은 하늘의 빛속에 그 부드러운 팔 위를 거니는구나.

더 복된 천재들이여

......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아무 안주할 곳이 주어지지 않고, 고민하는 인간들은

흐르는 물처럼 이 시간에서 저 시간으로, 이 절벽에서 저 절벽으로 던져져

서 몇해를 두고 불확실한 곳으로 사라지고 떨어져 간다."

또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이나 인간존재의 죄성 뿐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의심스러움도 신적인 것에 대한 감동에서 생겨난다.

종교적 경험에서 인간은 하나의 절대적 인간의 이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

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화가 경험된다. 문화가운데서 자신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었던 인간은 신앞에서 다시금 "나는 누구입니까, 내

하나님이시여 당신 앞에서?"라고 묻는다. 종교적 인간학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을 하나님을 향한 종교적 인간에게서 찾는다.

인간의 자기 인식은 하나님에게 바치는 신뢰와 희망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감추이신 하나님에게서 자기자신의 감추임을 경험한다. 인간은 살

고 있지만 자신은 자기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자이면서도

자신의 삶을 붙잡아 둘 수 없고 그는 자기자신 앞에 머물수 없다. 오직

인간의 삶을 문제시하는 하나님 자신이 오실때에만 비로소 인간의 비밀을

여는 묵시가 기대될 수 있다. 이때 인간은 그의 인간상의 어떠한 것속에

서도 자기자신을 발견하고 평안을 얻게될 것이다. 이것이 종교적 인간이

라고 몰트만은 말한다.

인간을 이와같이 이해하는 종교적 인간학은 생물학적 인간학이나 문화적 인

간학과는 다른 차원에서, 즉 종교적 차원에서 인간의 문제에 대하여 대답하

고 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종교적 인간학의 내용은 기독교의 것이기도 하

지만 기독교외의 다른 종교나 문화에서도 발견된다. 그래서 이러한 종교

적 인간학은 문화의 위기의 역사안에서 기독교적 인간학과 밀접하게 결합되

어 있기는 하지만 결코 기독교적 인간학이 종교적 인간학일 필요는 없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기독교의 신학적 인간학만이 가진 특질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신학적 인간학은 다른 인간학이 말하는 타당한 내용을 거부하

지 않고 인정함으로써 인간을 더 풍부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몰트만을 말한

다.

C. 기독교적 인간이해의 출발점

인간에 대한 물음은 성서의 이야기 속에서 찾아볼때, 그 물음은 결코 자연

과 세계내에 존재하는 것과의 비교 즉, 짐승과의 비교, 다른 국민과의 비

교, 종교적 개념으로서의 신성과의 비교에서 얻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구

체적인 신의 소명과 위임에 직면하여 일어난다고 몰트만은 말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가 누구이관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

도하여 내리이까?"(출 3:11)라고 고백한다. 베드로도 예수와의 만남에서

고백한다. "주님이시여 내게서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눅 5:8). 여

기서의 자기인식은 신성을 직감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고 인간의 삶에서 인

간 자체내에서는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하나님의 소명에서 생겨진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물음은 그에게 "새로운 존재"(New Being)를 기대하는

부르심과 무력함과의 차이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인간이 갖

는 이 물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그저 관조만하지 않으시고 그 물음에 대답하

신다. 모세가 하나님의 소명앞에서 자신을 인식하고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졌을때, 하나님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고 그 물음에

답하셨다.

이 대답은 하나님이 그의 임재와 삶의 길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증하

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인해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를 미래

속으로 인도하는 역사가 개방된다. 그에게 있어서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

이 하나님이 함께하는 공동체안에서의 존재의 가능성으로 그에게 약속된다.

결국 그는 여기서 새로운 전망을 얻는다. 그는 그의 사명을 역사적 소명속

에서 경험한다. 그는 더이상 자기자신을 환상속에 두지않고 '희망'과 '미

래'안에 둔다. 이 희망과 미래에서 인간의 이해가 출발된다고 본다.

그런데 몰트만을 이 희망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야 한다고 본다. 그것은 진

정 하나님을 오시는자로써 또 미래의 힘으로써 이해할때 하나님은 해방의

근거로 경험되고, 자유의 근거로 경험되기 때문이다.

그는 블로호(E. Bloch)의 희망의 철학과 관련하여 희망의 신학을 펼친다.

그러나 그는 블로호의 희망을 '신앙없는 희망'이라고 평한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역사적 특정한 사건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희망을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었던 출애굽의 하나님과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부활의 하나님으로부터 찾는다.

신양성서에서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써 한 인간

나사렛 예수를 제시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안에서 참된 하나님과 참된

인간의 인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J. Calvin)은 십자

가상에서 죽임을 당한 이가 하나님과 우리자신을 그 안에서 알아볼 수 있

는 거울이라고 말하였다.

예수는 선함과 아름다움을 이상으로 하는 인간상과 대립되는 인간이다.

그는 병자들과 함께했고, 가난한 자들중의 하나였으며, 착하고 의로운 새로

운 이상을 인간들에게 가르치거나 앞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 다가올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져왔고 병자를 고치고 악귀를 쫓

아냈다. 그는 정의를 은총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로 불의한 자들에게

선포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라는 비밀을 땅

위에 실현하였다. 또한 그는 불행한 자들의 형제가 되었다. 그들은 인

간사회에 발붙여 살수없는 소외된 자들이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외

로운 자들이다. 몰트만은 이들을 칭하여 "이 땅위의 저주받은 자들"(the

accursed of this earth)이라고 했다.

예수가 그들과의 친교를 통해 자기자신을 발견할때 그는 인자(the Son of

Man)라고 불리워질 수 있다. 인자는 악귀를 쫓아낼때 그 광인들속에서

자신을 보는 사람이다. 인자는 그들의 죄를 용서할때 그 죄인들속에서 자

신을 보는 사람이다. 인자는 그들을 인간이라고 부르기 위해 자신을 비인

간적 인간과 동일시하는 자이다.

이로써 인간은 예수의 방식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 존

재로 나타나며,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인간적 하나님(Human God)으로 나타

난다. 이러한 인자를 통해서 인간은 자신을 인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부르

심안에서 역사적 사명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에게서 우리는 참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며 인간에 대한 물음이 바로 여기에

서 해답된다. 그래서 몰트만은 기독교 인간학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의 인간학"(an anthropology of the crucified Lord)이라고 한다.

III. 현대 산업사회안에서의 자기구원적 인간상

인간은 자기자신과 그가 만나는 세계에 대해서 물음을 던져왔다. 더우기

오늘날과 같이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산업사회 안에서 구체적인 사회적 정

치적, 경제적 문제들과 부딪치면서 인간에 대한 물음은 더욱 다양해졌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답도 여러가지로 모색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장에서는 산업사회 안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불안 즉, 인

간성의 위기의식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하는 현대의 자기구원론적 인간상

즉, 인간신론(人間神論)을 비판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A. 산업사회의 휴머니즘

몰트만에 의하면 인간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이상 자연의 영역안

에서 살지않고 그 자신의 일과 조직, 기술의 환경안에서 살게되었다. 인

간은 자연을 탐구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자신의 생물학적 생을 통제

할 힘과 기후에 영향을 줄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과학과 기술의 힘은 인류에게 자연의 파괴력 - 자연적인 재앙이나 질

병등 - 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해 주었다. 기

술왕국적 사회가 되어가는 오늘날에 있어서 자연의 지배를 받아오던 인간은

이제 과학과 기술의 힘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된것이다.

산업화로인해 인간은 그 자신의 활동과 기구에 의존하게 되었고, 그의 도구

들은 그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기구일뿐 아니라 동시에 그것들은 그 자신

의 한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인간과 그가 만든 주위세계와의 구별은 매우

어려워지고 인간은 점점 더 기계화 되어가고 있다. 이에 몰트만은 이런

사회에서는 "인간기계의 새로운 통일체 형상"(a new unitary form of

man-machine)이 생긴다고 말한다.

산업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기술적 진보와 동일시하기에 이르렀고, 인간은

기술왕국적 사회 안에서 영원한 평화의 나라를 꿈꾸게 되었다. 이런 평화

의 나라에 대한 동경이 "기술적 천년왕국사상"(technological chiliasm)에

서 나타나고 있다. 이 사상은 그리스도교의 천년왕국사상이 산업화의 발

전 속으로 스며들면서 지상에 실현할 수 있는 행복과 평화의 왕국을 희망하

여 나타난 것이다. 이때에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폐기된다.

재산의 공동관리가 규정되면 중세의 봉건국가는 소멸할 것이고 중세의 군

주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 대신에 경제국가가 들어설 것이며 성직자

와 헌법학자들의 지배는 심리학자들의 심리기술과 사회학자들의 사회기술에

의하여 대치될 것이다. 그래서 상시몬(Saint Simon)은 "사회전체는 산업

에 의존한다. 산업이 사회존립의 유일한 보증이며, 산업에 유리한 질서는

사회에 대한 최선의 질서이다"라고 말한다.

몰트만도 이제 기술의 능력은 하나의 새로운 자유와 확장된 인간의 가

치와 평화의 달성을 약속한다고 말한다. 영원한 평화와 보편적 행복이

인류를 사로잡게 될 것이다. 이때가 바로 기술의 신이 통치하는 기술의

왕국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인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던 기술의 신은 이제 모든것을 멸망으로

이끄는 무서운 악마로 나타나게 되었다. 기술의 진보와 경제적 성장률의

측정계수가 인간생활의 질적개선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단

순한 기술적 경제적 진보의 숭배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으며, 기술적 연구가

인간생활속에서 악용될 수 있다는 불신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자연적 재앙

이나 질병을 두려워했던 인간은 이제 기술사회에서 나타난 문화의 질병 들

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 기술왕국적 사회는 혼이 없는 기계의 시대가 되었으며, 삶의 충일과 다

채로움과 또한 유기체적인 유동성(流動性)은 어느곳에서나 계획된 조직의

시계장치로 굳어지게 되었다. 현대의 분업과 전문화는 모든 개개인을 부

분적으로만 요구하기 때문에 조그만 단편에 얽매이는 인간을 단편적으로만

형성하게 한다. 그가 회전시키는 바퀴의 단조로운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그의 본질의 조화를 결코 발전시키지 못하고, 인간성을 그의 본성안에 부각

시키는 대신에 그는 단순히 그의 사업과 그의 전문지식의 복제로 화한다.

이러한 산업사회안에서 경험되는 불안의 요소들은 다시 인간에 대한 물음을

갖게 하였고, 인간의 기술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와 자기파멸의 위험이 초래

된 현실속에서 인간들은 몸부림쳤으며, 인간학은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몰트만은 기술의 천년왕국설과 병행해 나타나게 된것

이 "기술의 묵시록"(an apocalypticism of techology)이라고 한다.

이 기술적 묵시록은 산업사회의 현실속에서 절대적 절망을 경험했을때, 현

실을 벗어나 저 피안에 소망을 두듯이, 현실 도피적 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노동, 생산, 소비에서 다시 노동, 생산, 소비로 되풀이

되는 산업체제속에서 갖게되는 이 영원히 동일한 것의 의미없는 회귀, 기계

장치속에서 본래적인 것의 상실과 창조적인 것의 결여를 슬퍼하면서 낭만적

현실도피를 꾀하려는 사람들에게서 이 묵시록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