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죄



A.원죄론의 성서적 근거와 유래

아우구스틴 이후부터 교회는 원죄(原罪)의 교리를 주장하여 왔다.원죄의 교리는 인간의 존재를 죄된 존재로 규정한다.원죄의 교리는 분명한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성서는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죄의 보첥성(普遍性)을 말하고 있다."죄짓지 않는 사람아 어디있겠습니까?"(왕상8:46) "모두들 다른 길 찾아 벗어나서 한결같이 썩은 일에 마음을 모두어 착한 일하는 사람 하나없다"(시14:3,53:3) "올바른 사람은 없다.한사람도 없다.깨닫는 사람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모두들 비뚤어져 쓸모없게 되었다.선한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단 한사람도 없다"(롬3:10-12) 원죄의 교리는 죄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는 하나님의 힘,내지는 숙명으로써 모든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다.인간은 그가 임의로 행하는 죄된 행동들에 앞서서 그 존재(存在)에 있어서 죄인이다.그리고 이 원죄는 계속적으로 후손들에게 임신과 분만을 통하여 유전(遺傳)된다.원죄는 유전죄이다.

B.원죄론의 의도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원죄론을 그의 교리로 삼아왔다.그러면 원죄는 무엇을 말하고져 하는가?

첫째,원죄는 죄는 우리가 설명할수 없는 하나의 비밀(秘密)이라는 것을 말하고져 한다.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살고 있지만 죄가 어떻게 이세상에 들어왔고 어铽게 우리의 삶속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한다.창세기 3장의 말씀은 바로 이부분을 말하고 있다.인간의 말로 설명할수 없는 죄의 비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죄가 어디에서부터, 그리고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하는 죄의 비밀과 근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원죄는 죄의 불가피성(不可避性)을 말하고져 한다.우리 자신이 인간인 이상 우리는 죄를 피할수가 없다.우리는 이미 "죄인(罪人)의 존재"이다.우리는 죄와 함께 태어나서 죄가운데 살며 죄와 함게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이렇듯 원죄는 죄의 불가피성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셋째,원죄는 우리는 죄에 있어서 서로 결속(結束)되어 있음을 말하고져 한다.우리모든 인간은 죄인이다.우리는 죄의 사귐속에 있으며 "죄인들의 공동체"를 형성한다.유전죄로써의 원죄는 바로 이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유전죄는 아담의 죄가 인간의 성(性)을 통하여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우리모든 인간은 아담이었던 바로 그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고져 한다."최초의 인간 아담"과 그리고 오늘 우리 인간은 죄에 있어서 서로 결속된 한 인간이라는 것이다.우리모든 인간은 아담안에서 죄를 지었으며 그 죄에 있어서 서로 결속되어 있음을 원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C.원죄의 문제점과 새로운 해석

교회의 전통에 있어서 원죄(原罪)는 유전죄(遺傳罪)로 이해되어 왔다.인간은 "죄중에 태어났고 모태에 있을때부터 이미 죄인이었다"(시51:5) 욥기 15:4절에 의하면 "죽을 인생이 어찌 깨끗할수 있겠는가? 여인에게서 난사람이 어찌 죄없을수 있겠는가?" 이러한 성서적 근거에 의하여서 원죄는 유전죄로 이해되어 왔다.그러나 만약에 원죄가 유전죄라고 하면은 몇가지 문제를 가지게 된다.첫째,만약에 우리가 아담의 혈통으로 인하여 다시말하여 상속관계를 통하여 죄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죄에 대한 책임이 엄밀한 의미에서 없는 것이다.(고가르탱) 둘째,본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性)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창조"이다.따라서 성을 죄악된 것으로보고 죄를 유전시키는 수단으로 보는 아우그스틴의 견해는 성서의 정신에 위배된다.이상의 두가지의 문제점에서 우리는 원죄가 유전죄라는 사실에 동의할수 없다.

우리는 아담이 지은 원죄가 임신과 분만을 통하여서 생리적(生理的)으로 유전된다고 볼수 없다.성서가 말하는 아담은 개인인 동시에 "모든 인간의 근원적 통일성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즉 아담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모든 인간의 대표자이다.원죄가 말하려는 것은 아담의 죄가 모든 인간에게 결속되어 있어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앞에서의 죄인임을 말하고져 하는 것이다.아담이 지은죄가 생리적으로 유전되는 차원이 아니라 이미 인간은 그 존재에 있서서 죄인이라는 것을 원죄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따라서 어떠한 인간도 죄의 테두리를 벗어날수 없다.인간의 죄의 영역속에 있다.그는 죄된 세상에서 죄로 또한 세상을 물들이면서 죄가우데 거하다가 그 죄로 인하여 결국은 죽게 될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는 바로 이 원죄의 문제를 해결하셨다.할렐루야!

D.원죄와 자범죄(自犯罪)

원죄는 우리 모든인간이 죄를 지을수밖에 없다는 보편적인 운명을 가르키며 자범죄는 이 보편적인 운명을 증명한다.원죄가 죄의 뿌리라고 한다면 자범죄는 죄의 열매이다.우리는 죄라는 나무에 부리를 두고 있으면서 죄의 열매를 맺으면서 살고 있다.죄의 열매는 무엇인가? 미움,시기,다툼,살인,----,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문제를 해결하셨다.그는 원죄와 자범죄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셨다.원죄는 일회적인 예수의 죽음과 일회적인 인간의 회개로써 해결되었다.그리고 자범죄는 십자가에서의 인간의 계속적인 죽음을 통하여 해결된다.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하고 있다.죄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한번 완전히 죽은 삶(원죄 해결)이며 날마다 죽는 삶(자범죄 해결)인 것이다.여기에 우리의 구원의 길과 은총의 길,축복의 길이 있는 것이다.

E.죄(罪)와 벌(罰)

죄에는 반드시 벌이 따라온다.그것이 빨리올수도 있고 늦게 올수도 있다.그러나 그것은 반드시 오고야만다.부모의 죄에 대한 벌이 자식에게 나타나는 일도 있다. 이것은 개인에게 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동체와 한 민족과 세계에 이르기까지 타당한 진리이다.부패하고 부도덕한 조상을 가진 민족은 그 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분노의 벌을 면할수가 없다.한 나라와 민족이 회개하지 아니하고 부패하고 부도덕한 삶을 그치지 아니할때 차츰차츰 몰락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이러한 사실은 세계사에서 얼머든지 찾아볼수 있다.수많은 제국들이 흥왕하다가는 몰락하였다.그런데 모든 제국의 멸망의 원인은 물질적 빈곤에 있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물질적 풍요에 있었음을 우리는 발견할수 있다.물질적 풍요는 생활의 나태와 권태를 불러오며 생활의 나태와 권태는 사치와 방탕과 허영과 부도덕을 일으키며 공동체의 부패를 초래한다.

이렇게 일어나는 공동체의 몰락은 이 공동체에 속한 조상들과 자녀들이 공동으로 받는 하나님의 심판(審判)이라고 말할수 있다.죄와 벌은 반드시 따라다닌다.이 들을 나누어 놀수가 없다.아니 이미 죄는 그 자체로써 벌이라고 말해도 좋다.벌은 이미 죄의 행위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쓴 [죄와 벌]에서 발견할수 있다.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인을 살해한다.그는 자기나름대로 전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리대금업을 하는 전당포 노인은 그가 볼때 인간 쓰레기이며 마당히 제거되어야 할 인류의 적(敵)인것이다.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살해는 분명한 죄였다.그는 이 노파를 하나님의 판단에 맡기지 아니하고 자신이 이 노파에 대한 심판자로써 심판을 집행한다.이리하여 그는 오히려 자기자신을 하나님의 분노와 심판아래 세우게 된다.그는 자신의 범죄행위와 함께 자신의 벌을 초래한다. 그의 벌은 이때 양심(良心)의 가책(呵責) 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라스콜리니코프가 받는 이 말할수 없는 양심의 가책은 라스콜리니코프 자신이 자기에게 불러온 벌이며 그의 범죄행위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었던 벌인 것이다.그는 마음의 괴로움을 견디다 못하여 그의 범죄사실을 애인 소니아에게 고백한다.소니아의 권유로 그는 경찰에 자수하고 먼 시베리아로 유형(流形)의 길을 떠난다.그는 사랑하는 애인 소니아를 버릴수 없음에도 불구히고 기꺼이 유형의 길을 떠난다.그는 죄에 대한 벌로써 시베리아를 선택한 것이다.사랑하는 사람을 뒤로하고 떠나는 그의 발길에서 우리는 죄와 그 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모든 인간은 죄와 벌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날수 없다.우리가 범죄한 그 죄속에 이미 벌이 포함되어 있다.그리고 그 벌은 결코 피할수가 없다.그 벌은 여러가지 형태로 반드시 나타난다.그런데 인간은 어리석게도 죄를 지으면서도 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그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양심이 무디어 졌는데 원인을 찾을수 있다.라스콜리니코프의 양심이 우리안에 반만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벌이 나타나는데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가지고 나타난다는 점이다.첫째는 시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죄를 지은 시점에 바로나타난다면 누가 감히 죄를 짓겠는가? 그런데 벌은 잠복하여 있다가 시간의 차이를 두고 나타난다.조상이 지은 죄가 후대에 나타난다.아버지의 죄가 아이들에게 나타난다.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죄의 댓가를 치룬다.이 세상에서 못치루면 저세상에서 하나님앞에서 치루게 될것이다. 둘째는 공간의 차이이다.여기에서 죄를 지었는데 그 결과는 다른 곳에서 나타난다.나는 갑이라는 사람에게 죄를 지었는데 을이라는 사람을 통하여 보응이 온다.공간의 차이를 두고 벌은 반드시 우리를 찾아온다.우리를 죄와 벌에서 해방시키신분,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자.